오늘날 많은 사람들은 성경의 어떤 부분을 자신들이 이해하지 못한다고 해서 하나님의 말씀에 대한 의심에 빠진다.
이제 그리스도교의 신앙을 새로 시작한 사람들에게 있어서 이러한 경향은 더욱 자주 나타난다. 예로부터 사단은 성경이 하나님께서 주신 기별이라는 믿음을 흔들려고 시도하여 왔다. 의심을 소유한 사람들은 다음과 같은 말을 한다. “성경이 하나님의 말씀인지를 어떻게 알 수 있는가?”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믿으라고 요구하시기 전에 먼저 진리를 이해할 수 있도록 안내해 주신다. 하늘의 수많은 별들을 보면서 누가 창조주를 부인할 수 있는가? 자연계에 있는 수많은 생물을 바라보면서 누가 하나님을 부인하겠는가? 이 세상에서 어떤 종교가 창조와 종말의 신비를 설명할 수 있는가? 오직 그리스도교만이 그것을 설명할 수 있다. 우주 만물을 보면서 창조주 하나님을 알 수 있듯이, 그분께서 이루어질 것이라고 말씀하신 사건들과 역사들이 예언에 따라서 정확하게 이루어짐을 보면서, 우리는 그분의 말씀이 진리임을 알게 된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전혀 의심할 가능성을 제거하지는 않으셨다. 우리의 믿음은 사실로 판명된 것 위에 세워지는 것이 아니라, 건전한 이성과 합리적인 판단력 위에 세워져야 한다. 의도적으로 의심하고자 하는 사람들은 의심과 회의로 인하여 믿음이 생길 수 없다. 그러나 진정으로 진리를 알고자 하는 사람들은 믿을 수 있는 근거와 이유를 성경 속에서 충분하게 발견하게 될 것이다. 그리하여 그들은 하나님의 말씀 위에 자신들의 믿음을 세울 수 있게 된다.
인간의 마음으로 하나님의 성품과 역사하심을 완전하게 이해하기란 불가능하다. 가장 높은 지혜를 가지고 있는 사람이라고 할지라도 거룩한 분을 완전하게 이해할 수는 없다. “네가 하나님의 오묘를 어찌 능히 측량하며 전능자를 어찌 능히 알겠느냐 하늘보다 높으시니 네가 어찌하겠으며 음부보다 깊으시니 네가 어찌 할겠느냐?”욥기 11:7-8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인간을 취급하시는 당신의 사랑만은 성경과 자연계를 통하여 우리들이 볼 수 있도록 나타내셨다. 어떤 사람이든지 신앙과 믿음을 세울 수 있을 만큼의 진리를 성경에서 발견할 수 있다.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 전체를 이해할 수 없다고 해서 그분의 말씀을 의심해서는 않된다.
우리의 눈에 보이는 천연계에도 우리가 설명할 수 없는 신비들이 많이 있다. 어느 곳에나 우리가 이해할 수 없는 기적과 이적이 존재한다. 그렇다면 영적인 세계에 우리가 이해할 수 없는 어떤 것들이 있다고 해서 놀라거나 의심해서야 되겠는가? 우리의 마음과 생각은 너무나 좁고 한계가 있기 때문에 때때로 우리는 하나님의 생각에 미칠 수 없다. 우리가 그분의 모든 길과 섭리와 뜻을 이해하지 못한다고 해서 그분의 말씀인 성경을 의심할 수 있겠는가? 오히려 성경의 위대함과 오묘함은 우리로 하여금 성경이 하나님의 말씀임을 믿게 해주고 있다.
성경은 인간의 마음의 필요와 소원을 채워주는 진리를 단순한 방법으로 제시하고 있다. 가장 뛰어난 두뇌를 가진 사람일지라도 성경의 진리 앞에서 놀라운 기쁨을 맛보게 된다. 또한 가장 비천하고 적게 교육받은 사람들일지라도 인류를 위한 하나님의 구원의 계획을 이해할 수 있다. 때때로 진리가 너무도 단순하고 쉽게 제시되기 때문에 복잡하고 뒤틀린 사고 방식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은 진리를 잘못 이해하게 된다.
의심을 극복하는 길은 성경을 연구하는 것이다. 어떤 사람들은 성경을 연구하지 않은채 자신의 머리 속에서 떠오르는 여러가지 잡념에 의거하여 하나님의 말씀을 의심한다. 우리가 성경을 탐구하면 할수록 우리는 그것이 살아계신 하나님의 말씀이라는 확신을 더욱 갖게 된다. 그리하여 우리는 그러한 진리를 보여주신 하나님 앞에 머리를 숙이게 된다.
하나님의 마음을 인간의 마음이 완전히 이해할 수 없다는 사실을 인정하라. 이 사실을 의심하는 자마다 하나님의 말씀을 등지고 돌아서게 될 것이다. 의심을 가지고 성경을 읽는 자들은 모든 성경 말씀이 분명하게 이해되지 않을 뿐 아니라, 그것을 여러가지로 해석하려고 할 것이다. 의심을 품고 있는 자들은 성경의 어떤 구절도 분명하고 명확한 하나님의 명령으로 받아들이지 않게 된다. 다음에 나오는 사도의 경고를 들어보라. “형제들아 너희가 삼가 혹 너의 중에 누가 믿지 아니하는 악심(evil heart of unbelief)을 품고 살아 계신 하나님에게서 떨어질까 염려할 것이요.”히브리서 3:12
우리는 마땅히 하나님의 말씀을 연구해야 한다. 성경은 우리에게“오묘한 일은 우리 하나님 여호와께 속하였거니와 나타난 일은 영구히 우리와 우리 자손에게 속하였나니 이는 우리로 이 율법의 모든 말씀을 행하게 하심이니라”라고 권고하고 있다(신명기 29:29). 어떤 경우에 우리는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진리를 보여주실 때까지 기다려야 한다.
오늘날, 성경에서 나왔다고 주장하는 많은 이론들과 사상들이 성경 속에서 발견되지 않는다. 그러한 것들은 성경이 가르치는 바와 전혀 다르다. 바로 그러한 거짓 가르침들이 성경을 의심하도록 만드는 일에 일조하고 있다. 성경이 말하는 바 그대로 믿는 일은 매우 중요한 일이다. 성경을 잘못 해석하고 받아들임으로써 많은 사람들이 의심을 품고 하나님을 떠나가고 있다.
하나님께서는 당신을 따르고자 하는 사람들 앞에 진리를 끊임없이 펼쳐 놓기를 원하신다. 우리가 그분의 진리를 받을 수 있는 길은 오직 하나뿐이다. 우리는 하나님의 말씀을 오직 성령을 통하여 오는 빛에 의해서만 이해할 수 있다. “하나님의 사정은 하나님의 영 외에는 아무도 알지 못하느니라.”,“성령은 모든 것 곧 하나님의 깊은 것이라도 통달하시느니라.”고린도전서 2:11,10. 우리가 하나님의 지혜를 깨닫게 되면, 우리는 그분 앞에서 겸손하게 될 것이다. 우리는 마치 하나님 앞에 직접 나아가는 것과 같은 마음으로 성경을 읽어야 한다. 우리의 마음과 정신은 위대하신 존재 앞에서 낮추어져야 한다. 하나님께서는 성경 말씀을 이해하기 위하여 겸손한 마음으로 탐구하는 자들의 눈을 밝혀주실 것이다. 성령의 도움 없이는 성경을 이해할 수 없으며, 오히려 그 뜻을 변경시킬 위험이 있다.
성경을 연구하는 중에도 우리의 사상이 사단에게 이끌림을 당할 수 있다는 사실을 기억하라. 어떤 사람들은 성경에 잘못된 기록이 있는가를 찾으려고 한다. 그러한 사람들은 자신에게 퍼부어진 하나님의 사랑을 이해하지 못하는 자들이다. 결국 그들은 자신들이 성경을 믿지 못하는 여러가지 이유들을 성경 속에서 발견하게 된다. 의심은 단순한 진리를 이해하기 어렵게 만드는 요인이다.
대개의 경우에 있어서, 의심과 불신의 진정한 원인은 죄와 세상에 대한 애착심이다. 우리가 죄를 사랑하고 교만할 때에 우리는 하나님의 말씀을 좋아하지 않게 된다.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에 자원하는 마음으로 순종하지 않으면, 우리는 의심을 품을 준비를 갖추게 된다. 우리는 진리를 알고자 하는 진정한 욕망과 진리에 즐겨 순종하고자 하는 단순한 마음을 가져야 한다. 우리가 간절한 마음으로 성경을 공부하면, 우리는 성경이 하나님의 말씀이라는 확실한 증거들을 발견하게 될 것이다. 그리하여 우리는 구원을 가져다줄 진리를 이해하게 될 것이다.
우리는 우리가 이해하지 못하는 것에 대해서 의심하고 결함을 찾아내려고 해서는 안된다. 우리는 우리가 이미 가지고 있으며, 분명하게 이해하고 있는 빛 가운데서 걸어가야 한다. 그리하면 우리는 더욱 더 큰 빛을 받게 될 것이다. 성령을 통하여 분명하게 밝혀진 진리에 대한 의무와 책임을 실천하는 믿음을 가져야 한다. 이러한 실천적인 경험을 통하여서, 우리는 우리가 지금까지 이해하지 못하던 것들에 대한 대답을 얻게 될 것이다. “여호와의 선하심을 맛보아 알지어다.”시편 34:8.
바울은 하나님에 대하여“그가 우리를 흑암의 권세에서 건져내사 그의 사랑의 아들의 나라도 옮기셨”다고 말하였다(골로새서 1:13). 우리가 구원을 받았을 때, 우리는 다음과 같이 말할 수 있게 된다. “하나님은 참되시다. 나는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도움을 발견하였다. 내게 필요한 모든 것을 예수 안에서 얻을 수 있었다. 내 마음의 굶주림은 넉넉함으로 채워졌으며, 불안한 마음은 평화로움으로 채워졌다. 성경은 나에게 예수 그리스도를 보여준다. 내가 왜 예수님을 믿느냐고 묻는다면, 그분은 나를 죄로부터 구속해준 구세주이기 때문이다 라고 대답하겠다. 내가 왜 성경을 믿느냐고 묻는다면, 나는 성경이 하나님께서 나에게 말씀하시는 음성임을 발견했기 때문이다 라고 대답하겠다.”
진리와 빛은 각 시대를 통하여 교회에게 주여졌으며, 그것들은 세상 끝날까지 계속해서 주어질 것이다. 자신과 세상을 버리는 자마다 하나님의 진리를 더욱 더 분명하게 보게 될 것이다.
2.그대는 가정에서도 그리스도인입니까?
- 탐 워터스
“노하기를 더디하는 자는 용사보다 낫고 자기의 마음을 다스리는 자는 성을 빼앗는 자보다 나으니라.”잠언 16:32. 나는 이 글에서 어떻게 하면 우리가 우리 자신을 제어(self - control)함으로써, 가장 효과적으로 자녀들을 교육시키며, 결혼 생활을 아름답게 이끌어 갈 수 있는가에 대해서 설명하고자 합니다.
어떤 평화로운 오후에 나는 한 여자 분과 함께 이야기를 나누게 되었습니다. 그녀는 나에게 여러가지를 물어 보았습니다. 내가 왜 가족들과 함께 몬타나의 조용한 시골로 이주하였는가에 대해서도 물어 보았습니다. 나는 모든 위선과 가식을 버리고 하나님과 진실하게 동행하기로 결심했던 사실과, 가정 안에서 하나님의 복음이 먼저 실현되어야 한다는 사실을 깨닫게 된 나의 경험을 설명해 주었습니다. 나는 복음전도 사업을 가정 안에서부터 시작하기로 결심했습니다. 가정 안에서 참된 그리스도인으로서 말하고 행동하고 생각하지 않는 사람이 어떻게 세상으로 복음을 전하기 위해서 나갈 수 있겠습니까? 가정 안에서 성령의 지배를 받지 못하는 사람이 어떻게 교회에서 성령의 권능을 받기를 기대할 수 있습니까? 또한 가정에서 아내와 남편 그리고 자녀들에게 진실하고 참된 그리스도인이라고 인정받지 못하는 사람이 어떻게 사회에서 인정받는 그리스도인이 되고자 애쓸 수 있습니까?
우리가 어떻게 가정 안에서 그리스도인으로 살 수 있을까요? 이 문제에 대답하기 위해서, 우리는 먼저 그리스도인은 어떤 사람인가를 이해해야 합니다. 그리스도인은 그리스도를 사랑하는 사람입니다. 그리스도를 사랑하기 때문에 그리스도의 말씀에도 순종하는 사람을 그리스도인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그리스도인은“너희가 나를 사랑하면 내 말을 따르라”는 말씀을 믿는 사람들 입니다. 그리고 그리스도인은 양심 속에 울리는 조용한 그리스도의 음성에 자기 자신을 복종시키는 사람들 입니다.
“자아를 굴복한다”(self - government)는 말의 의미는 자아가 그리스도께 지배된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그리스도께서 나를 지배하실 때에, 나는 그리스도를 통하여 내 자신을 굴복시킬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내가 양심 속에 들려오는 그리스도의 음성을 거절하고 등을 돌릴 때마다, 자아는 나를 정복하였습니다. 그러므로 사도 바울은“나는 날마다 죽노라”라고 말할 수 밖에 없었습니다. 사도 바울 역시 자기 자신을 부인하고 굴복하지 않는 한, 참된 그리스도인으로 살 수 없다는 사실을 간증하였던 것입니다.
자신을 부인하지 않으며, 자아가 그리스도께 지배되지 않는 사람이 어떻게 가정 안에서 참된 그리스도인으로 살 수 있을까요? 어떻게 부부지간에 또는 자녀들을 사랑과 인내와 동정으로 대할 수 있을까요? 그것은 전혀 불가능한 이야기 입니다. 오늘날, 교회와 세상에서 존경받는 수많은 그리스도인들이 가정 안에서 그리스도인으로 살지 못하고 있는 현실을 보게 됩니다. 우리의 신앙이 가정 안에서 실현되지 못할 때, 신앙은 위선적이고 무능력한 것이 될 수 밖에 없다는 사실을 깨달아야만 합니다.
자아를 굴복한다는 것은 올바른 원칙과 순결한 이성과 양심의 소리에 자신을 굴복시키는 것을 의미합니다. 그러나 너무도 자주 우리는 우리 자신의 충동, 감정, 느낌, 습관에 굴복하기로 선택합니다. 하나님께서는 모든 그리스도인들이 하나님의 원칙에 자원하는 마음으로 굴복하기를 원하십니다. 왜냐하면 하나님께서는 그리스도인들이 이 세상에서 당신의 성품을 반사하기를 원하시기 때문입니다.
성경에는 두종류의 사람들, 즉 자아를 굴복시키는 방법을 배운 사람들과 그것을 배우지 못한 사람들이 있습니다. 자아를 굴복시키는 방법을 배우지 못했다는 말은 자아에게 굴복당했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구약 성경에서 요셉이 노예로 팔려가던 날을 기억하십니까? 그날은 요셉에게 있어서 매우 슬프고 쓰라린 날이었습니다. 그러나 요셉은 하나님께 온전히 헌신하기로 결심하는 선택을 했습니다. 요셉은 자신의 의지력과 선택권을 하나님의 지배 하에 두었습니다. 요셉은 하나님께서 자신을 완전히 지배하실 수 있도록 그분께 굴복하였던 것입니다. 요셉은 자신이 팔려가던 그날, 자신을 하나님께 굴복한다는 의미를 배웠습니다. 노예로 팔려간 후에도 요셉은 유혹과 시험에 굴복할 수 있는 환경에 수없이 처하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그는 그때마다 자아를 하나님께 굴복함으로써 하나님께 계속해서 신실하였습니다. 요셉은 후에 자신을 상인들에게 팔아넘긴 형제들을 용서할 뿐만 아니라 그들에게 자비를 베푸는 참된 그리스도인의 아름다움을 보였습니다. 요셉은“자아를 굴복한다”는 의미를 이해했습니다.
삼손의 경우를 생각해 봅시다. 삼손은 자아를 부인하고 굴복시키는 대신에, 자신의 충동과 느낌과 기질에 굴복하였습니다. 그는 자아를 만족시키기 위해서 하늘의 원칙을 희생시켰습니다. 그는 거룩한 원칙에 자신을 굴복시키기 보다는 충동적이고 감정적인 본능을 만족시켰습니다. 그 결과, 그는 여인의 유혹에 빠지게 되었고, 급기야는 시력을 잃어버림으로써 적군의 노예가 되었습니다. 우리가 죗된 충동과 정욕과 감정의 노예가 되기로 선택할 때에, 우리는 영적인 눈을 잃어버리게 될 것입니다. 삼손은 하나님을 믿었지만, 자신의 충동과 기질과 느낌을 하나님 앞에 굴복시키는 방법을 배우지 못한 사람이었습니다. 삼손은“자아를 굴복한다”는 의미를 이해하지 못했습니다.
우리 자신에 대해서 생각해 봅시다. 우리는 삼손을 닮은 사람입니까? 아니면 요셉을 닮은 사람입니까? 우리는 충동과 느낌이 요구하는대로 끌려다니는 노예입니까? 아니면, 우리는 자신의 의무와 거룩한 원칙에 신실한 사람입니까?
다시 가정 이야기로 돌아 갑시다. 우리는 사람들의 눈이 많이 있는 교회와 직장에서 요셉과 같은 면모를 보일 수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가정에서도 신실한 요셉처럼 말하고 생각하고 행동합니까? 아내나 남편에게 자존심이 상하는 말을 듣고, 부당한 대우를 받으며, 대화 중에 자신의 의견이 관철되지 않을지라도 여전히 상대방에게 신실한 요셉처럼 대하고 있습니까? 자녀들이 귀찮게 굴고, 버릇없이 대할지라도, 짜증을 내거나 거칠게 대하는 대신에 사랑과 공의로서 그들을 대하고 있습니까?
몇년 전부터 하나님께서 나의 눈을 열어주셔서, 가정에서 자아를 굴복하는 것이 무엇을 의미하는지를 보여주셨습니다. 가장 훌륭한 자녀 교육법은 가정에서 부모가 자녀들에게 예수 그리스도의 모습을 보여주는 것입니다. 충동적으로 짜증을 내는 대신에 온유하게 설명을 해주고, 화를 낼 수 있는 상황에서 인내와 겸손을 보여주며, 돈과 명예를 위해서 사는 것이 아니라 봉사와 희생을 위해서 사는 모습을 자녀들에게 보여줄 때, 그들은 작은 예수로 성장하게 됩니다.
충동과 기질과 느낌에 굴복하는 습관은 어렸을 때부터 배양될 수 있습니다. 어떤 일을 하다가 조금만 어려움을 느끼거나 싫증을 느끼는 어린 아이들이 있습니다. 그러한 자녀들을 위한 다음과 같은 경고가 있습니다.
“어린 아이들은 종종 열심으로 어떤 일을 시작하지만, 그것이 조금 어렵거나 싫증이 나면 다른 새로운 것을 갖기를 원한다. 그리하여 그들은 여러가지를 갖게 되는데, 조금만 어려움을 느끼면 그것을 포기하고 계속해서 다른 것을 찾는다. 결국, 그 아이는 어떤 것도 완전하게 성취하지 못한다. 부모들은 자녀들의 이러한 경향을 고쳐주어야 한다.”Fundamentals of Christian Education
자녀들 역시 자아를 굴복하는 법을 배워야 합니다. 가정에 세워져 있는 원칙과, 자신의 양심 속에서 들리는 음성에 굴복하는 것을 배우지 못한 자녀들은, 그들이 성인이 되었을 때에 매우 많은 시련을 겪게 될 것입니다. 순간적인 충동과 감정을 지배하지 못하는 부모들은 자녀들에게 그리스도인의 참 교육을 줄 수 없습니다.
자아와의 싸움은 모든 그리스도인들 앞에 놓여져 있는 가장 큰 투쟁입니다. 그 투쟁에서 승리한 부모와 자녀들만이 하늘을 바라볼 수 있을 것입니다.
“이기는 자에게는 내가 내 보좌에 함께 앉게 하여 주기를 내가 이기고 아버지 보좌에 함게 앉은 것과 같이 하리라.”요한계시록 3:21
자아가 우리를 정복할 수 있는 상황에서 자신을 하나님의 지배 하에 둘 때, 우리는 자아와의 싸움에서 승리할 수 있습니다. “자아가 우리를 정복할 수 있는 상황”이라는 말이 무슨 뜻 입니까? 그것은 우리의 연약한 본성이 시험과 유혹을 받을 때를 말하는 것입니다. 믿었던 사람에게 푸대접을 받았을 경우, 따돌림을 받았을 경우, 자기보다 못한 것처럼 보이는 사람에게 멸시를 받았을 경우, 남편이나 아내에게 무시를 당했을 경우, 돈이나 재물에 대한 부정직한 유혹을 받았을 경우, 진리로 인해서 외로움과 시련을 받았을 경우, 이러한 모든 경우들이 자아가 우리를 정복할 수 있는 상황들입니다. 이러한 상황에서, 우리가 우리의 자아를 하나님이 뜻에 굴복시키고 참된 그리스도인의 길을 온유와 겸손과 인내로 걸어간다면, 바로 그것이 자아를 부인하는 것입니다.
“아무든지 나를 따라 오려거든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좇을 것이니라.”마태복음 16:24
여기에서 그리스도께서는 당신을 따라가는 세가지 계단을 소개하셨습니다. 그리스도를 따르는 선제 조건은 그분을 따르고자 하는 마음이 있어야 합니다. 그분을 따르고자 하는 마음이 있어야만 우리는 첫번째 계단을 오를 수 있는데, 첫번째 계단은 자신을 부인(굴복)하는 것입니다. 자신을 부인하고 굴복하는 그리스도인들에게는 십자가를 져야 하는 두번째 계단이 나타납니다. 자아를 굴복하지 않고 자기 감정이나 충동대로 살아가는 자들에게는 십자가가 나타나지 않습니다. 실제에 있어서, 그들은 자신들이 져야하는 십자가를 거절하면서 살고 있는 것입니다. 화를 내고 싶을 때 화를 내고, 거짓말을 해야만 하는 상황에 처할 때 거짓말을 하는 사람에게 십자가가 있을 수 없습니다. 우리 모두는 자신을 부인하는 결과로서 나타나는 십자가를 자원하는 마음으로 선택해야만 합니다. 많은 사람들이 자아를 굴복하지 못하는 이유는, 굴복의 결과로 따라오는 십자가를 두려워하기 때문입니다. 두번째 계단을 올라 섰을 때, 비로서 우리는 주님을 따라서 동행하는 세번째 계단을 밟을 수 있습니다.
사랑하는 남편들과 아내들이시여, 그대들은 가정에서의 모든 대화와 생활 중에서 자아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있습니까? 아니면 자신의 거듭나지 못한 성격이 이끄는 대로 말하고 행동하십니까? 만일 우리가 교회에서 아무리 신실한 그리스도인이라는 칭송을 받고 있다고 할지라도, 가정 안에서 자기를 부인하는 참된 그리스인이 아니라면, 어쩌면 우리는 다음과 같은 경고의 말씀을 깊이 생각해 보아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나더러 주여 주여 하는 자마다 천국에 다 들어갈 것이 아니요 다만 하늘에 계신 아버지의 뜻대로 행하는 자라야 들어가리라. 그날에 많은 사람이 나더러 주여 주여 우리가 주의 이름으로 선지자 노릇하며 주의 이름으로 귀신을 쫓아내며 주의 이름으로 많은 권능을 행치 아니하였나이까 하리니 그때에 내가 저희에게 밝히 말하되 내가 너희를 도무지 알지 못하니 불법을 행하는 자들아 내게서 떠나가라 하리라.”마태복음 7:21-23
주의 이름으로 선지자 노릇하기 전에 우리는 가정에서 자아를 굴복하는 법을 배워야 합니다. 주의 이름으로 귀신을 쫓아내기 전에 우리는 가정에서 자기를 부인하는 법을 배워야 합니다. 주의 이름으로 많은 권능을 행하기 전에 우리는 가정에서 성령의 음성에 자아를 복종시키는 참된 그리스도인의 길을 걸어야 합니다. 바로 이러한 사람들이야말로 주의 뜻을 행하는 자들이며, 하나님의 법에 순종하는 자들입니다.
어떻게 하면 자아를 그리스도의 뜻에 굴복시킬 수 있을까요? 우리가 전적으로 굴복하기로 선택할 때, 주님께서 우리의 감정과 생각을 변화시켜 주실 것입니다. 그분께서 당신의 마음을 우리에게 주실 것입니다.
“너희 안에 이 마음을 품으라 곧 그리스도 예수의 마음이니.”빌립보서 2:5
그리스도께서 당신의 마음을 우리에게 주실 때에만, 우리는 자신을 굴복할 수 있습니다. 우리는 우리 스스로 마음을 억지로 변화시킬 수 없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그리스도의 마음을 품기로 선택할 수는 있습니다. 예수께서는 당신께 간절한 마음으로 나오는 단 한명의 영혼도 거절하지 않으실 것입니다. 그리스도의 의에 주린 심령으로 그분께 나아가면, 그분께서는 분노와 짜증과 억울함과 미움이 있는 우리의 마음을 사랑과 동정과 인내와 자비가 풍부한 은혜로운 마음으로 변화시켜 주실 것입니다. 그분의 변화시키는 능력을 바라보면서, 그분께 나아 가십시요. 그분께서는 우리 모두에게 당신의 마음을 선물로 주실 것입니다.
우리는 가정에서도 그리스도인 입니까? 기억하십시요! 가정에서 그리스도인이 아니면, 그리스도인이 아니라는 사실을 ....
3.스트레스
- 질리안 기본슨
어떤 사람은 말하기를“현대는 스트레스의 시대이다”라고 하였다. 지진, 폭력, 데모, 전쟁에 대한 소문, 물가의 폭등, 불확실한 경제, 사고와 같은 요소들은 모든 사람들을 염려하게 만든다.
현대인들에게 있어서, 내일에 대한 염려는 오늘을 어둡게 만드는 요소가 되고 있다. 우리는 스트레스의 바다를 항해하고 있다. 스트레스, 그것이 건강에 미치는 영향에 대해서 생각해 보자. 어떻게 스트레스가 생기며, 우리는 그것을 어떻게 정복할 수 있는가?
스트레스의 위험
스트레스는 홀몬을 분비시키는데, 스트레스에 의해서 분비되는 홀몬은 섬세한 혈관벽에 자극을 가함으로써 심각한 문제를 야기시킬 수 있으며, 암과 싸우는 T임파구의 기능을 저해할 수도 있다. 또한 스트레스는 고혈압과 뇌일혈의 주요 원인이 된다. 스트레스는 우리의 삶과 직장과 행복을 앗아갈 수 있는 무서운 적이다. 우리 모두는 스트레스를 정확하게 이해해야만 하는 시대에 살고 있다.
스트레스는 신경시스템과 홀몬을 통하여 우리 몸에 영향을 미친다. 우리 몸이 스트레스를 받으면, 그것은 곧장 심장의 박동에 영향을 미치며, 위장에 해를 가하게 된다.
한가지 예를 들어보자. 스트레스에 의해서 근육이 긴장 상태에 있게 되면, 근육이 수축되고, 근육이 수축되면 근육 속을 지나가는 혈관이 수축되어서, 혈액을 따라서 함께 운반되는 산소의 공급이 충분하게 이루어질 수 없게 되어서, 결국에는 산소 부족 현상으로 인하여 통증을 느끼게 된다. 이러한 상태가 지속되면 다음과 같은 악순환이 형성된다: 근육의 긴장 - 근육의 경직(spasm) - 통증. 이러한 악순환의 되풀이는 등, 목, 어깨 부위에 수시간 동안의 통증을 가져 온다. 이것이 심해지면, 만성적인 통증이나 기능 장애의 형태로 자리를 잡게 된다.
스트레스에 대한 올바른 이해
여기 고무줄이 있다. 손가락으로 고무줄을 양쪽 방향으로 잡아당기면 탄력을 느끼게 되는데, 그것이 우리의 몸의 일상적인 상태라고 말할 수 있다. 그러나 고무줄을 조금 더 잡아 당기면 고무줄이 팽팽해 지는데, 이 상태를 스트레스라고 말할 수 있다. 여기서 조금 더 잡아 당기면 고무줄이 끊어지게 되는데, 이러한 상태의 신체를 기진맥진한 탈진 상태(burn-out)라고 설명할 수 있다.
어떤 무엇에 의해서 신체적으로나 심리적으로 긴장 상태에 들어가게 될 때, 우리는 스트레스를 받게 된다. 어떤 면에 있어서 스트레스는 매우 개인적인 것이다. 나에게 스트레스를 주는 상황이 다른 사람에게는 전혀 스트레스를 주지 않을 수도 있다. 물건을 사기 위해서 줄을 서있는 사람들에게서 이러한 모습을 볼 수 있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즐겁게 이야기 하거나 책을 보면서 자신의 차례를 기다리는 동안, 어떤 사람은 자신의 차례가 너무 늦게 온다고 짜증을 내거나 불만을 토로한다. 스트레스를 받는 정도는 각 개인에 따라서 다르다. 스트레스 반응은 우리가 우리 자신을 자극하는 상황을 어떠한 생각과 감정으로 받아들이는가에 따라서 결정된다.
사실, 스트레스 반응 자체는 유익한 것이다. 그것은 생명을 위협하는 상황을 순간적으로 빨리 극복하게 위한 신체의 메카니즘이다. 스트레스 반응은“싸울 것인가? 도망갈 것인가?”(fight-flight) 를 결정하는 반응이다. 아드레날린과 같은 홀몬은 우리의 신체로 하여금 적과 싸우도록 하거나, 위험으로부터 빨리 도망치도록 하기 위해서“적색 경보”를 내린다. 이러한 경보는 근육, 심장, 폐, 두뇌가 최우선적으로 활동하게 만들며, 소화 기능과 같은 다른 신체 기능들은 2차적인 것으로 만든다. 산소와 포도당을 근육 속으로 빨리 공급하기 위해서 심장의 박동은 빨라지며, 혈압이 상승하게 된다. 근육은 순간적으로 긴장 상태로 돌입하게 되어서, 물에 빠져 들어가는 아이나 자동차에 치이려는 아이를 순간적으로 건져낼 수 있게 된다.
이러한 종류의 스트레스 반응은 어떤 위기나 긴장의 순간을 잘 극복할 수 있게 만든다. 시험을 치루거나 직장을 얻기 면접 시험을 볼 때에 정신적인 긴장 상태를 느끼게 된다. 약간의 스트레스는 좀더 효율적으로 일할 수 있게 만들어 준다. 짧은 기간 동안에 우리의 모든 신체적, 정신적 기능들을 집중함으로써, 가장 효과적으로 일할 수 있다.
그러나 물건을 사기 위해서 길게 줄 서있거나 러시 아워에 교통 체증에 막혀서 차 안에 갖혀 있는 짜증난 사람들에게 있어서 스트레스는 어떤 작용을 하는가? 스트레스로 인하여 신체에는“적색 경보”가 내려지게 되는데, 이러한 경우 우리 몸은 값비싼 댓가를 지불하게 된다. 인간의 몸은 생명을 위협하는 상황과 사람이 스스로 과민하게 반응하는 것을 구별할 수 없다. 그러므로 일상 생활에서 교통 체증과 같은 것 때문에 일일히 짜증을 내고, 초조해 하며, 화를 내면, 우리 몸은 그때마다 스트레스 때문에 자극을 받게 된다. 반면에 상황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면서 평안을 유지하기로 선택하면, 스트레스 반응을 최소화 할 수 있다. 이러한 면에서 볼 때, 스트레스는 간단한 문제라고 생각할 수 있다.
스트레스의 위험 수준
위협이나 압박감을 느끼거나, 화를 낼 때마다 스트레스 반응이 시작된다. 위협, 압박감, 분노와 같은 부정적인 감정들이 잘 다스려지면, 스트레스 반응은 중단되고 안락함을 느끼게 된다. 그러나 일반적으로 스트레스는 효과적으로 다스져지지 않으며, 오랫 동안 지속되기 때문에 여러가지 심각한 문제를 몸 안에서 일으키게 된다.
가정이나 직장에서 스트레스를 많이 받는 사람들은 사람들은 계속적으로 몸과 마음이 긴장 상태에 있게 되는데, 이러한 상황이 장기간 계속되면 마침내는 육체적, 정신적으로 탈진 상태에 이르게 된다.
우리의 몸이 스트레스의 위험 수준에 접근하고 있는지를 어떻게 알 수 있는가? 스트레스가 위험 수위에 접근하면 할수록, 우리 몸은 신체적이나 심리적으로 경고 신호를 보낸다. 그러므로 다음과 같은 경고 신호를 많이 받으면 받을수록, 우리가 더 많은 스트레스를 받고 있다고 판단할 수 있다.
신체적인 증세
발열, 땀에 젖음, 입안이 마름, 호흡이 얕아짐, 가슴의 통증, 심장이 두근거림, 맥박이 고동침, 혈압의 상승, 두통, 등이 아픔, 쇠약해짐, 소화불량, 설사, 토함, 변비, 장에 개스가 참, 위경련, 피로, 식욕을 잃어버림, 불면증, 어지러움, 피부가 가려움, 근육의 경직화, 근육이 뭉침, 잦은 병치례.
정신적인 증세
흥분 상태, 공포감, 우울감, 기분의 변화의 폭이 극심함, 짜증, 쉽게 지침, 망각, 걱정, 부주의, 안절부절, 쉽게 흥분함, 도피경향.
고무줄을 계속해서 잡아당기면, 언젠가는 끊어지는 것처럼, 이러한 증세들을 무시한채 계속해서 스트레스를 받게 되면, 언젠가는 탈진 상태(burn-out)에 들어가게 된다. 스트레스가 점점 더 강도를 더해갈 때, 탈진 상태에 더욱 빨리 이르게 된다. 어떤 사람들은 심장마비나 정신병과 같은 치명적인 질병을 얻게 되며, 어떤 사람들은 어쩔 수 없는 상황 속에서 자살을 계획하게 된다. 계속적인 스트레스 상태에 자신을 놓아둘 때에, 우리는 하나님께서 주신 생명력을 마구 소모하게 되어서 결국에는 돌아올 수 없는 상황에 까지 이르게 된다. 생활 속에 있는 스트레스를 소홀히 여기지 말라. 젊었을 때에는 스트레스가 조금 있어도 그것을 극복하면서 일하고나 생활할 수 있지만, 언젠가는 스트레스에 의해서 허물어져 가는 자신을 발견하게 될 것이다.
스트레스를 정복하는 방법
스트레스가 계속해서 우리를 누르고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을 경우, 어떻게 해야 하는가? 먼저, 스트레스를 불러 일으키는 대부분의 요인은 우리 자신이라는 사실을 먼저 인정해야 한다. 어떤 사람들은“아닙니다. 문제는 내가 아니라 저 사람이죠. 그는 정말 함께 하기 어려운 사람입니다. 나는 매우 바쁘단 말입니다.”라는 말을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기억하라. 스트레스의 수준은 스트레스를 그대가 느끼거나 받아들이는 정도에 따라서 결정된다는 사실을.... 제1차적으로, 스트레스는 어떤 사람들이나 상황 또는 우리 자신으로 인해서 생성된다. 그리고 2차적으로는 먹고 마시며 운동하고 수면을 취하는 라이프 스타일에 의해서 형성될 수 있다.
1. 올바른 라이프 스타일을 선택하라: 우리 몸은 자동차와 같다. 잘 관리하면, 효과적으로 일한다. 건강에 해로운 음식을 먹고, 몸을 마구 사용하며 학대하면서, 어떻게 스트레스가 엄습할 때에 그것에 대해서 적절하게 반응하기를 기대할 수 있겠는가? 운동은 아드레날린과 같은 홀몬의 분비량을 줄여준다. 규칙적으로 옥외에서 운동을 하지 않고, 밤 늦게까지 텔레비젼 앞에서 앉아 있는 사람이 어떻게 스트레스를 정복할 수 있겠는가?
2. 자연이 스트레스를 치료한다: 존 홉킨스 대학에서 개들을 대상으로 한 실험 결과는 우리 모두에게 중요한 교훈을 주고 있다. 개들에게 먹이를 줄 경우에 항상 낮은 음의 신호를 주었다. 또한 개들에게 전기 충격을 줄 경우에는 날카로운 고음의 신호를 주었다. 모든 개들이 이러한 신호에 매우 익숙해졌을 때, 저음의 소리는 음식을 먹으라는 신호가 되었고, 고음의 소리는 전기 충격을 받는다는 신호로서 받아들여졌다. 그런데 갑자기 고음과 저음의 신호를 동시에 주었더니, 심각한 혼돈이 생겼다. 어떤 개들은 신경 계통에 심각한 장애를 일으켰으며, 심장이 정상적으로 박동하지 않았고, 체내의 기관이 올바로 작동하지 않았다. 자신들의 집을 물어 뜯거나 심한 우울증에 빠지게 되었다.
연구원들이 그러한 증세를 나타내는 개들에게 특별한 정성을 쏟으면서 사랑을 베풀었지만, 증세가 호전되었을 뿐 여전히 정상으로 회복되지 않았다. 그리하여 그러한 개들의 환경을 완전히 바꾸어 주기로 결정하였다. 어떠한 종류의 신호나 굉음이 없는 평화로운 환경의 큰 농장에 풀어 놓았다. 개들은 얼마 안되어서 활기를 되찾기 시작하였다. 생명은 매우 단순한 것이다. 농장에 풀어 놓은 거의 모든 개들이 회복되었다. 연구원들이 개들을 부르면, 숲속이나 개울에서 놀던 개들이 일시에 정확하게 다시 모였다. 자연을 이용한 프로그램을 통하여 모든 개들이 완전하게 치료를 받았다.
스트레스로 인하여 몸과 정신이 여러가지 증세를 나타내고 있는가? 자연으로 가라! 그곳에 스트레스를 위한 완전한 치료 시설이 준비되어 있다.
3.가장 근본적인 해결책
스트레스를 조절하는 가장 근본적인 방법은 생각과 감정을 조절하는 것이다. “그대가 자신의 생각을 바꿀 수 있다면, 그대는 세상을 바꿀 수 있을 것이다”라는 말이 있다. 만일 그대가 마땅히 들어야 할“감사합니다”라는 말을 듣지 못했거나, 따돌림을 당했거나, 잘못된 대우를 받았다면, 그대는 스트레스를 받을 것이다. 만일 그대가 내일에 대한 걱정과 염려 속에 휩싸여 있다면, 그대는 스트레스를 받을 것이다. 만일 그대가 분노하고, 원한을 품으며, 속상해 하고, 어떤 무엇으로 인해서 압도되면, 그대는 스트레스를 받을 것이다. 그대가 비현실적인 목적을 위해서 자신을 혹사한다면, 그대는 스트레스를 받을 것이다. 스트레스는 부정적인 느낌이나 감정과 함께 다가온다.
만일 그대가 자신의 느낌을 바꿈으로써 스트레스를 제거하기를 원한다면, 그대는 지금과는 다르게 생각해야만 한다. 생각을 바꾸는 것이 가능한가? 건강한 라이프 스타일을 유지하고, 생각과 느낌을 긍정적이고 건설적으로 바꾸는 것이 가능한가? 그렇다. 그대는 성공적으로 바뚤 수 있다. 그대가 진정으로 그것을 원하기만 한다면.... 그러나 완전한 변화를 원한다면, 먼저 그대의 생각과 감정이 새롭게 되어야만 한다.
그리스도인은 그것을 거듭남이라고 부른다. 거듭남은 혼자서 투쟁하는 것을 포기하고, 자신을 변화시켜 주실 수 있는 하나님의 능력을 간절하게 필요로 하는데에서 시작된다. 먼저 그대 자신을 되돌아 보고, 자신이 잘못한 것에 대해서 하나님께 용서를 간구하라. 모든 잘못된 생각과 느낌을 가져가 주실 것과, 사랑과 인내와 자아 조절과 평화와 행복한 마음을 그대의 마음 속에 창조해 주실 것을 기도하라. 하나님께서는 그대의 그러한 기도를 응답하실 것에 대해서 약속하셨다. 하나님의 약속을 믿음으로 받아들인다면, 그대는 새로운 생각과 느낌을 가지고 살 수 있다. 그러나 이러한 하나님의 축복은 날마다 새롭게 계속해서 받아야만 한다.
그대 주변에, 문제와 투쟁이 여전히 존재할 것이다. 어쩌면 더욱 심각하게 악화될 수도 있다. 그러나 그대 주변에 있는 문제와 투쟁을 바라보는 그대의 눈이 거듭남의 경험을 통해서 변화되는 것이다. 스트레스가 그대에게 접근할 때마다, 하나님의 능력을 간구하라. 하나님의 변화시키는 능력을 붙잡을 때마다 스트레스를 정복할 수 있다는 사실을 깨닫게 될 것이다. 스트레스가 범람하는 세상에서 스트레스를 정복하는 방법이 바로 여기에 있다. 그대의 주변 상황이 변화되기를 기다리면서 스트레스를 몸 안에 쌓아가지 말고, 하나님의 능력을 힘입어 그대 자신을 변화시킴으로써 스트레스를 정복하라!
4.통밀을 식탁에 올리세요!
통밀
빵, 국수, 수제비, 야채지짐, 만두피, 과자류, 씨리얼, 케익 - 밀가루를 이용한 다양한 식품들이 우리 주변에 산재해 있다. 밀가루는 지구에 살고 있는 모든 사람들의 중요한 식품이다.
밀가루는 어떤 곡물이며, 그것의 역사는 어떤 것인가?
밀은 수천년 전부터 식품으로 사용되기 시작하였다. 고대로부터 두가지 종류(wild einkorn, wild emmer)의 밀이 사용되어 왔다. 오래된 기록 가운데서 스위스에서 밀을 멧돌에 갈아서 사용했다는 사실을 발견할 수 있으며, 성경에는“밀의 가장 아름다운 것(the finest of the wheat) 으로 저희에게 먹이며”라는 영감적인 말씀이 기록되어 있다(시편 81:16). 밀은 거의 모든 지역에서 재배가 가능하다. 예를 들면, 해발 3000m의 고지에서도 재배할 수 있으며, 북극지방 근처부터 미국의 남부지방까지 어느 곳에서나 재배할 수 있다.
통밀에 담겨 있는 놀라운 유익
통밀은 에너지로 가득차 있다. 그래서 어떤 사람들은 밀을“3중의 가치”를 가지고 있는 에너지원이라고 부른다. 밀에서 가장 많은 부분을 차지하고 있는 전분(녹말)은 소화과정에서 글루코스로 전환되는데, 이것은 우리 몸의 신체적 활동에 있어서 중요한 연료로 사용된다.
그러나 글루코스 하나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 비타민과 미네랄이 있어야 탄수화물이 에너지로 전환될 수 있다. 밀에는 생명의 필수요소인 비타민과 미네랄이 풍부하게 포함되어 있다. 심장을 건강하게 유지하기 위해서, 그리고 암을 극복하기 위해서는 비타민 E의 도움이 필요하며, 좋은 혈액을 소유하기 위해서는 철분이 필요한데, 밀에는 이러한 것들이 풍부하게 들어있다. 밀은 놀라운 보물이 담겨 있는 곡식이다. 아무리 많은 금과 은을 가지고도 이러한 영양을 창조해 낼 수 없다. 오직 천연계에 숨겨있는 하나님의 손만이 이것을 만들어 낼 수 있다.
밀이 우리의 몸에 매우 유익한 성분을 가지고 있다는 사실을 알았으니, 이제는 한 알의 밀을 놓고서 자세하게 살펴보도록 하자. 밀의 표피는 매우 강력한 7층으로 덮여 있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밀의 표피부위는 소나 말 그리고 특정한 환자들만이 다음과 같은 놀라운 유익을 독차지 했었다: 밀이 함유하고 있는 전체 니아신의 86%, 피리독사민(비타민 B6) 73%, 판토텐 산 50%, 비타민 B2 42%, 티아민 33%, 그리고 단백질 19%가 밀의 표피부위에 집중적으로 분포되어 있다. 또한 밀알의 14.5%에 해당하는 이 작은 부분에 풍부한 섬유질이 포함되어 있다. 가장 중요하고 핵심적인 영양이 담겨 있는 밀의 표피층을 소나 말에게 주고서 남은 찌꺼기를 사람들이 섭취하여 왔던 것이다. 진한 갈색의 밀의 표피를 먹는 소나 말은 건강한데, 흰밀가루를 먹는 많은 사람들의 체질이 병약해 지는 이유를 여기에서 찾아볼 수 있다.
밀알의 싹이 트는 부분을 밀눈이라고 부른다. 밀눈은 전체 낟알의 2.5%에 불과한 부분을 차지하고 있지만, 티아민 64%, 비타민 B2 26%, 비타민 B6 21%, 단백질 8%, 판토텐 산 7%, 니아신 2%가 이곳에 밀집되어 있다. 이 귀중한 부위에는 극도의 고품질 지방이 함유되어 있으며, 비타민 E가 다양한 형태로 숨겨져 있다.
미네랄의 경우는 어떤가? 전체 칼슘 함유량의 60%, 인 71%, 마그네슘 85%, 포타슘 77%가 밀의 표피층과 밀눈에 분포되어 있다.
밀의 표피층을 제외한 밀의 내부는 밀알에서 가장 큰 부분을 차지한다. 이 부위는 낟알의 83%에 해당하는 부분인데, 흰밀가루는 바로 이 부위에서 만들어지는 것이다. 가장 큰 부피를 차지하고 있는 밀의 내부에는 비타민 B2 42%, 니아신 12%, 비타민 B6 6%, 그리고 티아민 3%만이 있을 뿐이다.
표피를 깍아내는 작업
많은 사람들은 흰밀가루의 예쁜 하얀 색과 입에서 부드러운 감촉을 좋아한다. 또한 밀을 제분하여 파는 사람들은 밀의 표피층에 있는 지방을 제거함으로써, 밀이 짧은 시간 내에 쩔지 않도록 만든다. 이와 같은 사람들의 요구와 필요에 따라, 밀알로부터 표피층과 밀눈이 제거된다. 그리하여 건강과 치료를 위하여 창조주께서 밀알에 넣어두신 놀라운 영양소들이 말이나 소의 먹이로 전락하게 되는 것이다. 현대인들의 식생활에서 밀이 차지하는 비율이 급진적으로 증가하고 있다. 식생활에서 밀이 차지하는 비율이 증가하면 할수록 현대인들은 생명력 있는 영양분들의 심각한 손해를 보게 되며, 그 결과 신체에 각종 문제들이 야기된다. 통밀 대신에 흰밀가루를 섭취함으로써, 전분과 설탕을 체내에서 전환시키는 기능이 저하되며 신경에 과민하게 된다. 왜냐하면 밀의 표피층에 들어 있는 비타민들은 전환과 대사의 기능을 도와 주며, 특히 비타민 B는 신경을 안정되게 유지하는 기능을 하기 때문이다. 정제한 흰밀가루를 섭취함으로써, 얻을 수 있는 미네랄과 비타민을 잃어버리게 된다.
하나님께서는 작은 밀알의 섬유질 속에 영양분들을 세밀하게 심어 놓으셨다. 이러한 영양분들을 소홀히 여기는 사람마다 당뇨병과 같은 현대 질병의 피해자가 될 수 밖에 없다.
섬유질이 비록 소화 흡수되지는 않는다고 할지라도, 이것은 매우 가치있는 미네랄이다. 밀이나 곡식류, 채소 과일, 콩 종류에서 얻을 수 있는 섬유질은 다음과 같은 질병들을 예방하는 역할을 할 수 있다: 변비, 다발성게실증(diverticulosis), 장암, 관상동맥성 심장병, 탄수화물의 비효과적인 에너지 전환, 등등.
그러므로 부적당한 제분 및 정제 작업은 생명을 위해서 가장 중요한 영양을 제거하는 심각한 결과를 가지고 온다. 어떤 사람들은 이렇게 질문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면 정제 후의 흰밀가루에 비타민과 미네랄을 인공적으로 첨가시키면 되지 않습니까?” 그렇다, 어느정도는 가능하다. 미국의 식품법에 의해서, 티아민, 비타민 B2, 니아신 및 철분, 칼슘은 어느 정도의 회복이 가능하다. 그러나 그 외의 비타민과 미네랄은 어떤가? 인간의 꾀를 하나님의 지혜와 비교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가?
밀 안에 들어있는 단백질
이제, 밀이 가지고 있는 단백질에 대해서 살펴봅시다. 단백질은 몸을 이루는 중요한 성분으로써, 아미노 산으로 구성되어 있다. 단백질을 객차를 연결한 긴 기차라고 한다면, 아미노 산은 기차를 연결하는 각 객차라고 말할 수 있다. 우리의 몸에는 20가지 이상의 아미노 산들이 있다. 20여가지의 단백질이 모두 필요한 것들이지만, 그 중에서 어떤 것들은 매우“필수”적인 것으로 구분되는데 왜냐하면 우리 몸에서 그것들을 자체적으로 만들어 낼 수 없으며 음식물을 통하여서만 얻을 수 있기 때문이다.
만일 어떤 사람이 밀의 섭취를 소홀히 하면, 라이신(lysine)이라는 필수 아미노산이 결핍될 수 있다. 또한 주로 콩만을 섭취하게 될 경우, 메티오닌이라는 필수 아미노산이 부족할 수 있다. 그러나 이것은 곡식류에 풍부하게 함유되어 있으므로 곡류와 콩류를 골고루 섭취함으로써 우리 몸이 필요로 하는 모든 필수 아미노산을 충분히 공급받을 수 있다.
밀과 알러지
밀이 가지고 있는 놀라운 성분들에도 불구하고, 어떤 사람들은 밀에 대해서 알러지 반응을 나타낸다. 그런 사람들은 밀의 섭취를 완전히 중단하거나 섭취량을 소량으로 줄여야만 한다.
5.Life Line
1. 심한 편두통으로 고생하십니까?
어떤 의학자들이 편두통에 대한 연구 결과를 발표하였다. 식품과 두통의 관계를 정확하게 정립하기가 쉽지 않지만, 몇몇 식품과 음료수들은 뇌를 통과하는 핏줄을 수축, 확장할 수 있는 물질을 포함하고 있다.
다음과 같은 식품들은 편두통과 깊은 관련이 있는 것으로 밝혀졌다.
오래된 치즈, 술, 요구르트, 싸우어크림, 가공 처리된 고기류, 카페인 함유 음료수, 이스트로 부풀린 밀가루 반죽을 구운 후 24시간 이내의 상태, 쵸콜렛, MSG(monosodium glutamate: 각종 화학 조미료에 포함된 물질), 가수분해된 식물성 단백질, 인공 감미료(artificial sweetener). Berkley University Wellness Letter, Vol. 7, Issue 2.
2. 전립선염과 라이프 스타일
전립선염 환자 중의 많은 사람들이 다음과 같은 요소들을 가지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가장 현저한 것은 전립선염 환자들 가운데 많은 사람들이 스트레스에 시달리고 있다는 것이다. 그들에게서 스트레스가 제거되었을 때, 증세는 거의 즉각적으로 경감되었다. 또한 전립선염으로 고통당하고 있는 환자들 중 많은 사람들이 애연가이며, 짜고 매운 음식을 즐기고, 커피를 매우 즐기는 사람들로 나타났다. 요로를 자극하는 것으로 알려진 이러한 식품을 제거함으로써, 많은 도움을 얻을 수 있다. 전립선염은 단순히 전립선에 염증이 생기는 병이라고 표현하기 보다는 어떤 사람의 성격과 그가 먹는 음식물과 관계있는 질병이라고 말하는 것이 더욱 타당하다고 말할 수 있다. Urology
3. 단백질이면 다 같은 단백질?
식물성 단백질은 콜레스테롤를 감소시키지만, 동물성 단백질은 콜레스테롤의 상승의 원인이 된다. Nutrition for Vegetarion
4. 달걀과 알러지
알러지성 피부염과 천식과 같은 알러지성 질환은 달걀의 섭취와 관련있다는 사실이 드러났다. 달걀을 먹지 않는 어머니로부터 태어난 아기들이 적어도 생후 8개월이 될 때까지 달걀을 먹지 않았을 경우, 그들의 발병률은 일반적인 평균 통계치보다 절반이하로 낮다는 사실이 밝혀졌다. Annals of Alergy
5. 운동이 노인성치매를 저지한다
노인성치매(일명, 노망으로 불리움) 증세의 발전 속도가 운동에 의하여 저하된다는 사실이 밝혀졌다(뉴욕에서 개최된 운동과 노화에 관한 국제 심포지움). 뇌기능 가운데서 어떤 국면은 운동을 함으로써 기능 장애 현상의 속도가 저하된다. UCLA 의과대학 교수인 로날드 로렌스 박사는 매일 30-35분 걷는 것이 노인들을 위한 최적의 운동이라고 결론지었다. Geriatrics
6. 청소년의 자살
미국에서 자살이 청소년 사망 원인의 2번째 자리를 차지하는 비극이 일어났다. 지나간 1980년대의 청소년 자살률은 1950년대와 비교하여 볼 때, 3배나 증가하였다. 정확한 증가 원인을 분석하기 쉽지 않지만, 전문가들의 말에 의하면 술과 마약, 가족관계의 악화, 하나님에 대한 불신과 무신론주의의 만연, 그리고 자신의 미래에 대한 불안감 등이 자살률 증가의 주요 원인이라고 하였다. Second Leading Death Cause
7. 패스트 푸드의 지방
일반 대중들이 동물성 지방의 포화성 지방과 콜레스테롤에 대해서 경각심을 갖기 시작함에 따라서 일부 패스트 푸드 체인들이 식물성 기름으로 고기와 생선을 튀기기 시작하고 있다. 그러나 후랜취 후라이는 아직도 소기름과 식물성 기름을 섞어서 튀기는 것으로 알려졌는데, 권위있는 시장보고서는 말하기를, 대부분의 소비자들이 동물성 기름으로 튀긴 후렌치 후라이의 맛을 원하고 있기 때문에 동물성 기름을 사용하는 것으로 밝혀졌다. Trends in Frying Fat Usage
8. 뼈의 밀도와 인종
육식을 주로 하는 백인종과 그렇지 않은 동양인에 대한 뼈의 밀도에 대한 조사가 실시되었다. 조사 결과, 동양인의 뼈의 강도는 백인종의 그것보다 2배 이상 강한 것으로 나타났다. 동경에 살고 있는 일본인의 뼈의 밀도는 236이며, 백인종은 412이고, 중국인은 126으로 나타났다. The FASEB Journal, 1991년 3월.
6.몸 안에서 돌아가는 시계
엘우드 멕클러스키 생리학 박사(ElwoodMcCluskey, Ph.D.)
- 생체 리듬 전문가
천연계는 시간을 준수한다. 정해진 시간에 맞추어서, 태양은 날마다 웅장한 모습으로 떠오르고 진다.
달의 출몰 시간 역시 예정된 시간에 따라서 이루어진다. 태양과 달이 뜨고 지는 시간은 미래 뿐만 아니라 이미 지나간 과거에 대해서도 정확하게 계산해 낼 수 있다. 일조 시간의 길이에 따라서 나무에 꽃이 피고 열매를 맺는 시기가 결정된다. 새들과 동물들의 수태 시기 또한 예측이 가능하다.
인간 역시 예외는 아니다. 우주와 지구와 모든 피조물들을 만드신 창조주께서는 그것들을 유지할 수 있는 시스템을 세워 놓으셨을 뿐 아니라, 인간의 몸 안에도 질서 있고 정기적으로 활동하는 기능을 만들어 놓으셨다.
모든 인간은 잠을 잤다가 깨어나는 일정한 리듬을 가지고 태어나는데, 그것은 놀라웁게도 하루 24시간을 주기로 반복되는 밤과 낮의 싸이클에 맞추어서 이루어진다. 어떤 사람이 약 3달 동안 밤과 낮을 분별할 수 없는 상황 속에서 지낸 다음, 정상적인 상황으로 복귀했을 때, 약 25시간의 주기를 가진 정상적인 수면 시간을 정확하게 다시 회복하게 된다. 신체가 가지고 있는 여러가지 기능과 과정들은 밤 또는 낮의 정해진 시간에 정확하게 이루어진다. 신체의 어떤 기능이 가장 활발하게 발휘될 때부터 그 다음 주기까지 걸리는 시간은 약 25시간이다. 이렇게 신체 내에서 하루를 주기로 이루어지는 생체 리듬을 썰케디언(circadian)이라고 부른다. 밤과 낮의 싸이클은 몸 안에 있는 시계의 시간을 조정하며, 이로 인하여 여러가지 인체의 기능들이 24시간의 주기에 맞추어서 활동하게 된다.
이처럼 정확한 시간에 인체 기능이 이루어 짐으로써 얻게 되는 유익은 무엇인가? 하루 24시간 동안, 각 시간 대마다 서로 다른 기능들이 정확하고 조화있게 이루어 짐으로써, 신체는 미리 이러한 리듬에 맞추어서 여러가지 기능과 과정을 준비할 수 있게 된다. 신체의 리듬을 연구하는 과학도로서, 나는 창조주의 놀라운 지혜와 솜씨를 엿볼 수 있게 되었다.
인체의 리듬이 정확하게 이루어지기 위해서는, 생활이 규칙적으로 이루어져야 한다는 결론을 얻을 수 있는데, 규칙적인 생활은 우리가 생각하는 것 이상으로 매우 중요하다. 일어나는 시간, 잠자는 시간, 식사 시간, 기도 시간 등등.
그렇다면 밤에 일하는 사람의 경우에는 생체 리듬이 어떻게 되는가? 오랜 기간 동안, 밤 시간에 일을 해야만 하는 사람들은 건강을 위해서 작업의 시간대를 바꾸는 것이 바람직하다. 몇년 동안, 매 주마다 근무 시간을 밤과 낮 시간으로 바꾸었던 공장이 있었다. 그 공장에 종사하는 노동자들의 몸 안에 있는 생체 리듬의 시계는 그들이 태어난 이후부터 그 공장에서 일하기 전까지 밤과 낮시간이 정상적으로 유지되어 왔기 때문에, 비록 수면 시간대가 바뀌었다고 할지라도 종전과 같은 싸이클을 유지하고자 하는 경향을 띄게 된다. 한 주일이 지나서 작업 시간이 바뀔 때마다, 노동자들의 신체는 시간에 대한 혼돈 상태에 머물러 있게 된다.
그 공장에서는 작업자들의 작업시간을 3주일마다 밤과 낮으로 교대하기로 결정하였다. 그 결과, 생산성이 크게 증대되었으며, 작업자들의 건강 상태는 전보다 나아지게 되었다.
근무 시간을 낮과 밤으로 교대하는 사람들은 매일 동일한 시간에 수면을 취해야 할 뿐 아니라, 캄캄한 방에서 수면을 취해야 한다. 야간 작업 장소에 매우 밝은 조명 장치를 하면, 생체 리듬이 보다 빠르고 양호하게 조절될 수 있다.
이미 잘 알려진 바와 같이, 생체 리듬의 조절은 사람이 빛에 노출되는 시간에 따라서 결정된다. 비정상적인 시간에 수면을 취하면, 신체의 조화가 깨어질 뿐만 아니라, 신체 리듬과 환경 사이와 여러가지 리듬 사이에서 부조화 현상이 일어나게 된다.
우리의 생활 스타일과 패턴이 신체가 가지고 있는“규칙적인 시간”과 조화있게 이루어져야만, 신체적으로나 영적으로 건강한 상태를 유지할 수 있다는 사실을 깨달아야 한다. 하나님께서 인간의 몸 안에 생리학적인 시계를 넣어두셨다는 사실을 기억하라! 먹고 마시며 자는 시간이 몸과 정신의 건강과 직결되어 있다는 사실의 중요성을 깨닫는 사람들의 숫자가 너무도 적다!
7.요즘 잠을 잘 주무시나요?
머조리 발드윈 의사(Marjorie V. Baldwin, M.D.)
그들은 잔인한 사람들이 아니었다. 그들은 다만 사람이 얼마나 오랫 동안 잠을 자지 않을 수 있으며, 그러한 경우에 신체에 어떠한 변화가 일어나는지를 실험하고자 하였을 뿐이다.
그러나 그 실험에서 가장 오랫 동안 잠을 자지 않았던 학생은 그 실험이 매우 무서운 고문인 동시에 재앙이라는 사실을 깨닫게 되었다.
실험에 참가한 학생이 얼마나 오랫 동안 잠을 자지 않을 수 있었다고 생각하는가? 그가 잠을 물리치려고 여러가지 꾀를 동원하였음에도 불구하고, 96시간의 불면 기록을 세웠을 뿐이다. 그것은 4번의 밤과 낮의 사이클에 해당하는 시간이다.
그런데 그 학생에게 무슨 일이 일어났는가? 그는 며칠 후에 치룬 4학년 졸업시험에서 낙제하게 되었고, 4학년을 다시 다녀야 하는 재난을 겪게 되었다. 그 학생의 뇌파에서 알파 리듬이 정상을 회복하기까지는 4달이라는 시간이 소요되었다.
많은 사람들은 잠의 필요성에 대해서 잘 알고 있다. 이 실험에서 재 확인된 것처럼, 잠은 신체의 조직과 기능을 적절하게 유지하는데에 있어서 절대적으로 필요한 요소이다.
1. 하루에 몇 시간의 수면이 필요한가?
7-9시간의 수면이 정상적인 사람에게 요구되는 수면량이며, 대부분의 사람들에게 있어서 보통 8시간의 수면이 적당하다고 말할 수 있다. 그러나 규칙적인 시간에 이루어지는 수면은 더욱 효과적인 결과를 가져다 준다. 정해진 시간에 자고 일어나고 사람들은 그렇지 않은 사람들보다 동일한 수면 시간에서 훨씬 더 많은 유익을 얻게 된다. 왜냐하면 두뇌와 몸 전체가 이미 익숙해져 있는 정해진 시간에 규칙적으로 안정된 휴식을 취할 수 있기 때문이다.
2. 수면이 우리 몸에 주는 영향은 무엇인가?
수면은 두뇌에서 생각하고 분석하는 부분의 뇌세포들에게 휴식을 준다. 밤 시간 동안, 뇌가 휴식을 취할 때에 일련의 중요한 홀몬들이 분비된다. 특히, 이러한 홀몬들은 몸을 성장시키고, 고장난 부위를 고치는 역할을 밤 시간 동안에 성공적으로 수행한다. 그리하여 다음 날 아침에 두뇌와 뼈와 근육이 다시 활기있게 활동할 수 있도록 도와준다. 바로 이것이 성장 홀몬인데, 어린 아이 뿐만 아니라 모든 연령층의 사람들에게 있어서 절대적으로 필요한 홀몬이다. 또 다른 중요한 홀몬이 수면 시간 동안에 분비되는데, 그것의 이름은 코티솔 홀몬으로서“보강하고 강화하는”역할을 한다.
밤에 수면을 취하는 시간 동안에 위장 역시 비어있는 상태에서 휴식을 취해야 한다. 이 시간은, 다음 날 아침 식사 때에 위장으로 들어올 음식물을 소화시키기 위한 소화액이 준비되는 시간이다. 위장이 휴식을 취해야만 깊고 포근한 양질의 수면을 취할 수 있게 된다. 늦은 시간에 먹는 저녁 식사나 밤참은 위장을 지치게 만들 뿐만 아니라, 깊고 안락한 수면을 빼앗아 간다.
어떤 과학자들의 실험을 살펴보자. 개구리의 다리에 전기선을 연결하여서, 전기적인 자극이 개구리 다리에 전달될 때마다 다리 근육이 수축되는 기록을 살펴보았다. 한동안 근육은 민감하게 수축되었다가 점차적으로 약하게 수축되었고 결국에는 전혀 수축하지 않았다. 근육이 완전한 피로 상태에 도달했기 때문이다. 과학자들은 개구리의 근육을 피로하게 만드는 화학 액체 속에 담구었다. 그 다음, 근육 세포를 두르고 있는 체액에 필요한 영양을 공급함으로써 근육을 정상적인 상태로 회복시켰다. 이러한 상태에서 전기적인 자극을 주었더니 근육은 즉시로 민감하게 자극하기 시작하였다. 이러한 실험을 통하여, 과학자들은 혈액의 화학적 성분과 세포를 감싸고 있는 체액을 신선하게 회복시키면, 피로에서 벗어날 수 있다는 결론을 얻을 수 있게 되었다.
수면은 피곤에 지쳐있는 몸과 두뇌를 신선하게 회복시키는 기능을 한다. 밤에 취하는 깊은 수면은, 낮시간 동안에 이루어진 신체 활동의 부산물로서 생긴 쓰레기들을 처리할 수 있는 기회와 시간을 제공해 주며, 신선하고 에너지가 공급될 수 있도록 도와 준다.
3. 수면을 위한 최적의 환경
과학적인 증거를 말하지 않더라도, 조용하고 어두운 방에서 더 좋은 양질의 잠을 잘 수 있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수면을 취하는 실내의 온도는 서늘한 것이 바람직하며, 특히 수면시에 깨끗한 공기를 호흡하는 것은 매우 중요하다. 자신이나 같은 방에 있는 다른 사람들이 내뱉었던 공기를 되풀이 해서 재호흡하면, 깨끗하지 않은 공기로 폐를 채우게 된다. 그러므로 옥외로 통하는 창문을 반드시 열어 놓아야 한다.
두뇌의 어떤 부분에서는 깊은 잠이 들었을 때에 발산되는 뇌파를 감지하며, 반면에 두뇌의 또 다른 부분에서는 깊은 잠에 이르지 못한“깨어 있는 상태”를 감지한다. 이러한 이유 때문에, 밤에 간호원이 환자의 맥박을 체크하고 조용하게 환자의 수면 상태를 확인하였음에도 불구하고, 어떤 환자들은 아침에 일어나서“지난 밤에 한잠도 자지 못했어요”라고 말하게 되는 것이다. 다른 사람에게는 잠을 자는 것으로 보이지만, 본인에게는 깊은 수면이 아닐 수 있는 것이다.
잠에 대한 한가지 주의 사항을 살펴보자. 어떤 사람이 코를 골면서 깊이 잠자다가 갑자기 순간적으로 숨을 멈추는 모습을 본적이 있는가? 일반적으로 이러한 현상은 비만형의 사람이나 나이가 많은 노인들에게서 일어나는데, 이것은 이완된 목젖이 공기 통로를 막음으로서 생기는 현상이다. 이러한 현상은 매우 위험한 것일 수 있으므로 의사에게 가서 전문적인 검사를 받는 것이 좋다.
4. 깊고 포근한 수면의 중요성
우리들 모두는 꿈도 꾸지 않는 깊은 수면을 취하기를 원한다. 이러한 상태의 깊은 수면을“제4기의 수면(Stage IV)”이라고 부르는데, 이때에는 어떤 특정한 뇌파가 발산된다. 제3기의 수면은 이보다 깊지 않은 수면이며, 제2기는 얕은 수면인데 이때에는 계속적으로 몸을 뒤척이게 된다. 제1기의 수면 상태는 가장 얕은 잠을 취하는 상태로서, 이 상태에서는 거의 잠을 이루지 못하게 된다.
깊은 잠은 귀한 가치를 지니고 있다. 우리의 두뇌가, 기름진 저녁 식사나 밤참, 늦은 밤의 텔레비젼 프로그램, 그리고 내일에 대한 걱정거리 등에 의해서 밤 늦게까지 혹사당하지 않고 일찌기 깊은 수면을 취할 수 있으면, 밤 시간 동안 두뇌에서는 더 많은 홀몬이 분비되어서 신체의 피곤한 부분을“정비하고 활력있게”만들 수 있다. 즉, 깊은 수면은 높은 생명력을 생산해 내는데, 이것은“성공과 건강과 행복”으로 직결된다. 우울증 또한 깊은 수면으로 인해서 치료될 수 있다.
5. 수면의 질을 향상시키는 방법
A) 잠자리에 들기 전에 가벼운 산책을 하면서, 마음과 정신을 가볍게 하라. 인생 살이에 대한 걱정과 염려를 잊어버리고 행복하고 긍정적인 마음을 갖도록 하라.
B) 늦은 시간에 기름진 음식이나 과식을 하지 말라. 과일과 한조각의 빵으로 저녁식사를 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아침 식사와 점심 식사를 든든히 섭취하면, 그것으로 충분한 에너지와 영양을 얻을 수 있다. 깊은 수면을 위한 최선의 식사법은 하루에 두끼를 먹는 것이다.
C) 점심 식사 이전에 취하는 짧은 낮잠과 식사 후의 산보는 신체에 많은 유익을 가져온다.
D) 낮시간 동안의 힘든 육체 노동은 깊은 수면을 약속한다. 특히, 정신 노동자들에게 있어서 육체적인 노동이나 운동은 더욱 더 긴요한 것이다. 근육을 사용하는 활동은 혈액 속에 유산(lactic acid)을 만들기 때문에, 근육을 사용하는 운동과 노동은 천연적인 진정제 역할을 한다.
E) 일정한 시간에 잠자리에 들라. 우리의 몸 안에 있는 시계가 일정한 시간에 맞추어 지면, 좀더 양질의 수면을 취할 수 있게 된다.
F) 미지근한 물이 있는 욕조에 몸을 담그고 쉬는 것은 깊은 잠을 유도한다. 너무 차거나 뜨거운 물은 오히려 정신을 자극하는 경향이 있으므로, 졸음을 유도하는 온도의 물이 적당하다. 욕조물의 온도를 적당하게 유지하면서 원하는 시간만큼 욕조에서 휴식을 취한 다음, 물기를 잘 닥아내고 곧바로 잠자리에 들라.
G) 습관적으로 잠을 자지 못하는 사람은 홉 차(hop tea)와 같은 약초로 만든 차를 마시면 도움을 얻을 수 있다. 이러한 약초는 중독성이 없으며, 인체를 강제로 잠들게 만드는 화학 약품과는 전혀 다르다.
H) 끝으로, 하나님과 기도로서 대화하라. 낮시간 동안에 주어진 축복을 돌이켜 보고, 자신이 범한 죄에 대한 용서를 간구하라. 다시 한번 주님께 마음을 바침으로써, 양심과 마음의 평화를 얻을 수 있다. 하나님께 그대의 마음과 몸을 재창조해 줄 수 있는 깊은 수면을 달라고 간구하라. 깊고 포근한 수면은 그대의 건강을 최적으로 유지해 주는 필수적인 요소이다.
치료의 선물이 담겨 있는 수면법
1. 규칙적으로 저녁 9시 이전에 잠자리에 들어감으로써, 우리 몸은 생명력이 담겨 있는 홀몬을 선물로 받을 수 있다.
2. 침실에는 반드시 옥외로부터 유입되는 신선한 공기의 통로가 있어야 한다.
3. 늦은 저녁 식사와 기름진 저녁 식사를 피함으로써 위장을 비워야 한다.
4. 낮시간 동안의 육체 노동이나 운동은 깊은 수면을 약속한다.
8.병자의 기도와 하나님의 치료법
이 글은 Pathway to Health and Happyness 에서 발췌하였습니다.
성경은“항상 기도하며 낙망치 말아야 될 것”이라고 말한다(누가복음 18:1). 사람들이 기도의 필요를 느낄 때가 있다면, 그것은 기운이 쇠약해 지고 생명 자체가 커다란 위험에 처하게 될 때이다.
대부분의 경우에 건강한 사람들은 날마다 그들에게 주어지는 하나님의 놀라운 자비를 잊어버리고, 그들을 돌보시는 하나님의 은혜에 대해서 부주의 하다. 그러나 질병이 닥쳐오면, 그들의 머리 속에 전능자이신 하나님이 떠오르며 그분에 대한 필요를 느끼게 된다. 하나님께서는 당신께 진정으로 도움을 구하는 자들을 결코 외면치 않으신다. 그분께서는 병든 자나 건강한 자를 막론하고 우리 모두의 피난처가 되신다.
“이에 저희가 그 근심 중에서 여호와께 부르짖으매 그 고통에서 구원하시되 저가 그 말씀을 보내어 저희를 고치사 위급함에서 건지시느니라.”시편 107:17-18
하나님께서는 오늘날에도 병자들의 고통과 질병을 치료해 주시기를 원하신다. 예수께서는 당신께서 이 땅에서 봉사하시던 때와 마찬가지로 지금도 자비로운 의사시다. 그분께는 모든 질병을 치료하시는 향유와 모든 약한 것들을 고쳐주시는 능력이 있다. 우리는 믿음을 가지고 그분께 나아가 병 낫기를 간구해야 한다. 우리는 어떤 지정된 사람을 통하여 주님께 나아가는 것이 아니라 각 개인이 자신의 믿음을 가지고 그분께 나아갈 수 있다. 구주께서는 병든 자, 희망이 없는 자, 고통당하는 자들에게 당신의 능력을 붙잡을 것을 호소하신다. 믿음과 기도를 통하여 병실이 벧엘로 바뀔 수 있다.
하나님께서는 병자의 기도를 불쌍히 여기는 마음으로 들어주신다. 사람은 그분의 긍휼하심을 받을 자격이 없지만, 마음 전체를 그분께 바치면서 믿음을 행사할 때, 그분께서는 당신께 나아오는 자들을 받아 주신다. 우리는 믿음을 가지고 그분의 약속을 주장할 수 있다. 그러나 그분의 약속은 당신의 말씀에 대한 우리의 순종을 통하여 성취된다는 사실을 기억해야 한다. “내가 내 마음에 죄를 품으면 주께서 듣지 아니하시리라”시편 66:18. 오늘날 많은 사람들은 죄를 그대로 품고 있는 마음을 가지고 주님의 약속과 축복을 요구하고 있다. 죄인이 하나님 앞에 나아갈 수 있는 유일한 길은 회개를 통하여서 이다.
많은 사람들은 방종과 무절제로 인하여 스스로 질병을 초래한다. 어떤 사람들은 먹고 마시고, 옷입고, 일하는 습관에 있어서 건강의 법칙을 무시하였다. 또 다른 어떤 사람들은 부도덕하고 죗된 생활이 영혼과 몸을 쇠약하게 만드는 원인이 되었다. 만일 하나님께서 이러한 사람들의 기도를 응답하셔서 건강을 축복으로 회복시켜 주신다면, 그들은 전과 동일한 부절제와 방종의 길을 걸어가게 될 것이다. 만일 하나님께서 그러한 사람들의 회복을 위해서 기적을 행하신다면, 그분께서는 그들의 죄와 부절제를 조장하시는 것이 된다.
병자들은 믿음으로 치료에 대한 하나님의 약속을 주장함과 동시에, 자신들의 버려야 할 부절제와 잘못된 생활 습관을 결정적으로 포기해야 한다. 기도에 대한 응답을 받기 위해서, 병자들은 모든 죄를 버리는 진정한 회개를 해야 하며, 동시에 위생적이고 올바른 생활 습관을 가져야 한다. 병자들은 건강법칙과 영적법칙 뿐만 아니라 하나님의 모든 말씀에 철저하게 일치하는 마음과 생활을 소유해야 한다. “너희 죄를 서로 고하며 병낫기를 간구하라.”야고보 5:16
먼저, 과거에 하나님께 범한 죄와 사람들에게 범한 죄를 고백하고, 피해를 보상하며, 화해하고, 용서하고, 자비를 베풀라. 모든 잘못과 죄가 하나님의 어린 양을 통하여 사함을 받고 양심이 정결하게 된 이후에, 성령께서 인도하시는대로 신실한 믿음을 가지고 병자 자신의 필요를 겸손하게 간구하라. 마음과 정신에서 이루어지는 하늘의 평화는 병자에게 놀라운 치료의 기적을 가져올 것이다.
우리가 병자들을 위해서 기도할 때, 우리는“마땅히 빌 바를 알지 못”한다는 사실을 기억해야 한다(로마서 8:26). 우리는 우리가 바라는 축복이 최선의 것이 될 것인지, 그렇지 못할 것인지를 알지 못한다. 그러므로 우리의 기도에는 다음과 같은 사상이 담겨있어야 한다. “주님, 주님께서는 사람의 모든 비밀을 아십니다. 주님께서는 이 병자를 가장 잘 아십니다. 당신께서는 당신의 생명을 이 병자를 위해서 주셨습니다. 우리가 이 병자를 사랑하는 것보다 당신께서 이 영혼을 사랑하는 크기와 깊이가 훨씬 위대하다는 사실을 인정합니다. 우리는 주님의 이름으로 이 병자의 건강을 회복해 주실 것을 기도합니다. 그러나 만일 이 병자가 회복하는 것이 주님의 뜻이 아니라면, 우리는 주님의 은혜로 그를 위로해 주시고 고통 중에 있는 그에게 오셔서 그들을 끝까지 지켜주실 것을 기도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시작과 끝을 아시는 분이시다. 그 병자가 죽음의 병에서 다시 살아나면 그들에게 닥쳐올 시험들을 견딜 수 있을 것인지, 견디지 못할 것인지 아신다. 그분께서는 그들의 생애가 그들 자신과 세상에게 축복이 될 것인지 저주가 될 것인지를 아신다. 바로 이런 이유 때문에, 우리는 병낫기를 열렬하게 탄원함과 동시에“그러나 내 원대로 마옵시고 아버지의 원대로 되기를 원하나니다”라고 말해야 한다(누가복음 22:42). 예수께서는 겟세마네 동산에서“내 아버지여 만일 할만하시거든 이 잔을 내게서 지나가게 하옵소서”라고 간구하신 후, “그러나 내 뜻대로 마옵시고 아버지의 뜻대로 하옵소서”라는 말을 덧붙이셨다. 하나님의 아들에게 이러한 기도가 흘러나왔는데, 하물며 유한하고 실수가 많은 인간들의 입술에서는 어떠한 기도가 흘러나와야 하겠는가!
기도로 병고침을 받고자 하는 사람들이 하나님께서 자연계 속에 넣어두신 치료의 방법들을 이용하는 것은 믿음을 부인하는 것이 아니다. 하나님과 협력하고, 회복을 위해서 스스로를 가장 적합한 상태에 두는 것은 믿음을 부인하는 것이 아니다. 우리는 건강을 회복하기 위해서 모든 유익을 취해야 하며, 또한 천연계의 법칙과 조화되도록 활동해야 한다. 기도할 때에 하나님께서 인정하시는 치료 방법을 깨닫게 해달라고 기도하라.
어떤 결과가 나오더라도 하나님을 믿는 믿음을 잃어버려서는 안된다. 기도의 응답으로써 가장 쓴 잔을 받는다고 할지라도, 우리를 가장 사랑하시는 하늘 아버지의 손이 그 잔을 우리의 입술에 대어주시는 것으로 생각해야 한다.
병자들이시여, 그대들이 어떤 인간으로부터 사망선고를 받았는가? 염려하지 말라. 그대들의 생명은 그대들이 태어날 때에 하나님의 손에서 나온 것처럼, 돌아갈 때에도 그대를 가장 사랑하시는 하나님의 손에 의해서 결정되는 것이다. 병낫기를 위해서 간구하라. 그러나 그대는 육체의 병만을 위해서 기도해서는 안된다. 하나님께서는 그대의 육체 뿐만 아니라 심령의 병도 고치시기를 원하신다. 믿음을 가지고 하나님 앞으로 나아가라. 이 우주에서 그대를 가장 사랑하시는 분이 그대의 최선을 위해서 놀라운 능력으로 역사하실 것이다.
질병은 원인이 없이는 결코 생기지 않는다. 건강을 보존하는 생명의 법칙을 무시함으로써 질병이 들어오는 길이 마련된다. 어떤 이들은 자신들의 부모의 부절제와 부도덕의 결과로 고통을 받는다. 그들은 부모들이 범하였던 잘못된 습관을 피하고 올바른 생활을 통하여 자신을 보다 좋은 환경 아래에 놓아야 한다. 오늘날 많은 사람들은 먹고, 마시고, 옷입고, 일하는데에 있어서 건강의 원칙을 무시한다. 하나님께서 이 자연계와 신체 안에 새겨놓으신 자연법칙을 범하면 거기에는 반드시 결과가 따른다. 그리하여 질병이 그들을 엄습하면, 많은 사람들은 고통의 참 원인을 생각하지 않고 오히려 자신들이 당하는 고통 때문에 하나님을 원망한다. 자신들이 자연법칙을 무시함으로써 초래된 고통에 대한 책임을 하나님께 돌리려고 한다.
하나님께서는 어떤 특정한 양의 생명력을 우리에게 주셨다. 만일 우리 스스로가 부절제하고 생명의 법칙을 무시하는 방향으로 먹고 마시고 생활하면, 생명력이 빨리 소모되게 된다. 쇠약해진 몸이 가장 필요로 하는 것은 신체에 가해진 과중한 부담을 제거해 주는 것이다. 많은 경우에 있어서, 가장 좋은 치료법은 환자를 한두끼 굶김으로써 지쳐 있는 위장에게 쉴 기회를 주는 것이다. 정신노동을 하는 사람들이 2-3일 간 과일만의 음식을 섭취하면 때때로 큰 도움을 얻을 수 있다. 여러 차례 짧은 기간에 걸쳐서 완전한 금식(물만 마심)을 한 후에 간단하고 적당한 식사를 하면, 하나님께서 몸 안에 만들어 놓으신 생명력의 자체 노력을 통하여 몸이 회복될 수 있다. 한 두달 동안, 절제 있는 식생활을 해보면 절제의 길이 건강의 길임을 확신하게 될 것이다.
9.성경 예언의 확실성
요즈음 지구 환경학을 연구하는 과학자들의 발표에 의하면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지구가 현재 점점 올라가는 기온의 상승 때문에 남 북극의 빙하들이 녹아 내리게 되어 모든 대륙들이 물에 잠기게 되어 자멸할 수 밖에 없는 형편이 될 것이라고 역설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다른 한편에서는 정 반대로 이 지구가 다시 빙하 시대로 돌아가 (진화론자들의 가정) 모든 생태계가 완전히 멸종 당하게 될 것이라는 학설을 발표하고 있습니다.
또한 어떤 천문학자들은 우리 지구가 하늘을 떠 다니는 혜성과 부딪치게 될 확율이 점점 커지면서 언젠가 가까운 장래에 혜성과의 충돌 때문에 옛날 공룡들을 멸종시켰던 똑같은 위기가 다시 한번 이 지구를 흔들 것이라고 예언하고 있습니다. 헐리우드에서 만들어내는 공상 과학 영화들에서는 핵 폭탄으로 자멸된 지구 위에 소수의 생존자들이 연명하는 장면들이 흔히 등장하는가 하면 외계인의 침입에 의하여 지구가 시달리는 이야기들이 인기의 가도를 달리고 있습니다. 과연 우리가 살고 있는 지구의 장래는 어떻게 되는 것일까요?
지금도 이 지구는 엄청난 속도로 우주를 질주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지금 어디로 가고 있는 것일까요? 과연 이 지구는 운전 기사없이, 정처 없이 어디론가 달려만 가고 있는 외로운 항성일까요? 아니면 창조주께서 계획을 가지시고, 섭리대로 지구의 역사를 정확한 목표를 향하여서 운행하시고 계신 것일까요? 누가 이 세상의 역사를 주관하고 있습니까? 100년 후에 이 세상은 어떻게 될까요? 10년 후에 우리는 어떠한 세상에서 살게 될까요? 과연 우리의 후세대에 미래에 대한 희망이 있을까요?
우리는 이 질문에 대한 정확하고 확실한 해답을 성경에서 발견하게 됩니다. 성경이 말씀하고 있는 바로 그 기독교의 하나님께서 이 지구의 역사를 당신의 뜻을 따라 주관하고 계시다는 사실을 이해하게 만들어 주는 것이 바로 성경 속에 들어있는 예언들입니다. 예언이 그 말씀 그대로, 정해진 시기와 사건 속에서 정확하게 이루어져 나가는 사실을 목격하게 될 때에, 인생의 한치 앞도 내다 보거나 예견 할 수 없는 인간들로서 하나님의 존재와 그 분의 무한하신 능력, 그리고 우리에 대한 깊은 관심과 사랑을 발견하게 되는 것입니다. 우리가 사는 이 지구는 광대한 우주 속에 내 팽개쳐진 고아가 아니라, 하나님께서 이 지구의 역사를 운영하고 계시며 당신의 뜻을 따라 끝마치실 것이라는 사실을 발견하게 되는 것입니다. 자, 그러면 이제 부터 성경에 있는 한가지 예언 즉, 지구의 역사의 흐름에 대하여 미리 계시하여 주신 하나님의 예언의 말씀을 한가지 연구해 보도록 하십시다. 그 예언은 구약 성경 다니엘서 2장과 7장에서 발견할 수가 있습니다. 성경은 하나님께서 이 만물을 잘 디자인 하셔서 창조하셨을 뿐만 아니라, 이 지구상의 역사의 흐름도 당신의 구원의 역사에 따라 잘 계획 되어서 움직이고 있다는 사실을 우리에게 알려 주고 있습니다. 아모스서 3장 7절은 다음과 같이 말씀합니다. “주 여호와께서는 자기의 비밀을 그 종 선지자들에게 보이지 아니하시고는 결코 행하심이 없으시리라.”
다니엘 2장은 흥미진진한 예언을 담고 있습니다. 그 예언은 아주 단순한 것처럼 보이지마는 연구하면 할 수록 하나님의 머리에서만 나올 수 있는 지혜인 것을 보게 됩니다. 지면 관계상 다니엘 2장을 여기에 기록할 수가 없기 때문에 독자 여러분들께서 다니엘 1장과 2장과 7장을 개인적으로 정독 하신 후에 이 기사를 계속해서 읽어 주시기를 바랍니다. 예언에 들어 가기 전에 먼저 그 역사적인 배경 부터 잠간 설명하도록 합시다.
다니엘은 유다 왕국의 왕족에 속했던 유수하고 탁월한 청년으로서 바벨론의 왕 느부갓네살 왕의 공격때 포로가 되어 바벨론으로 잡혀 가게 됩니다. 그러나 그는 거기에서도 하나님께 대한 충성을 버리지 않고 가정에서 배운 교육 그대로 진실하게 신앙을 지키며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믿음의 생활을 살게 됩니다. 그는 같이 끌려간 그의 세 친구들과 함께 바벨론의 최고의 대학에서 교육을 받게 되는데, 그 이유는 그들을 바벨론 식의 교육을 시키어 다시 유대로 되돌려 보내면 자기들의 속국으로 다스리기가 훨씬 쉬울 것이라는 바벨론 왕의 계획 때문이었습니다. 그러나 그 학교에서도 신실하게 하나님의 법과 말씀에 따라 생활하였고 술취하거나 방탕한 식생활 대신 채소를 먹으며 모본적인 생활을 한 나머지 다른 바벨론 학생들 보다 훨씬 더 뛰어난 지혜를 가지게 되었으며, 바벨론 학자들에게 까지 인정 받는 사람들이 되었습니다. 그런데 하루는 이상한 일이 바벨론 왕 느부갓네살에게 일어났습니다.
느부갓네살 왕이 하루는, 자기가 세우고 또한 세계 최강의 나라로 부각시킨 바벨론 나라가 과연 앞으로 어떻게 될 것인지에 대하여 염려하게 되었습니다. 자기가 키운 이 나라가 과연 영원히 지속될 것인지, 과연 이 세상 역사가 어떻게 진행될 것인지에 대하여 염려 하면서 잠자리에 들었습니다. 그날 밤에 그는 한 꿈을 꾸게 되었습니다. 이 꿈은 보통 예사한 꿈이 아니었습니다. 그는 이 꿈, 아니 이 계시가 하늘의 하나님께로 부터 왔다는 사실을 알았습니다. 그 꿈은 이 지구 역사의 줄거리를 보여 주는 것으로서 이 세상 역사의 강대국들의 흥망 성쇄가 미리 예언 되어진 꿈이었습니다. 그에게 가장 큰 감명을 준 대목은 이 지구의 역사가 어떻게 끝마쳐 질 것인가에 대한 그 꿈의 마지막 부분이었습니다. 그는 깜짝 놀라서 잠을 깨었습니다. 그런데 이상한 사실은 그가 그 꿈을 깨자마자 그 계시에 대하여 까맣게 잊어버린 것입니다. 아무리 생각해 내려고 해도 도저히 기억할 수가 없는 것이었습니다. 이렇게 중요한 계시를 잊어버리다니. 그는 도저히 답답해서 참을 수가 없었습니다.
그 꿈을 주신 하나님께서 꿈을 깬 후에 느부갓네살이 기억치 못하도록 만드신 것이었습니다. 그 이유는 누가 참 하나님이며, 누가 이 지구상의 역사를 주관하고 있는지를 확실하게 밝혀 주시기 위해서였습니다. 세계를 주장하는 제국의 왕인 그가 참 하나님에 대한 지식을 알게 되면 하나님의 복음을 세상에 전하는 일에 큰 유익이 될 것이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러나 바벨론의 술객들과 이교 학자들이 그 꿈을 마음대로 해석하거나 혼돈시켜 놓을 가능성이 있기 때문에 그 꿈을 잊어버리도록 하셨던 것입니다. 그리하여 하나님의 종인 다니엘을 통해서 올바른 해석을 듣도록 하시기 위해서 말입니다.
너무나 궁금한 느부갓네살은 바벨론의 모든 종교 지도자들과 최고의 학자들을 다 불러 들인 후에 자기가 지난 밤에 아주 중요한 꿈을 꾸었는데 그만 그 꿈을 기억해 낼 수가 없다고 말하였습니다. 그리고는 그 꿈이 무엇인지를 알아내라고 호령을 치기 시작하는 것이 아닙니까! 그는 이러한 식으로 말하였을 것입니다. “너희들은 항상 내게 모든 것을 다 안다고 장담하여 왔다. 무엇이든지 다 해석할 수 있다고 말하여 왔다. 이 세상의 역사의 흐름을 예견 할 수 있다고 내게 말들을 해왔다. 또한 너희가 섬기는 이 말둑 신(바벨론의 신)이 참 하나님이며 이 하나님이 세상의 역사를 주관하여 오는 것이라고 말하여 왔다. 내가 어제 밤 꿈에 하나님이 보내 준 꿈을 꾸었는데, 만약에 너희가 섬기고 나에게 늘 소개해 주던 그 신이 참 하나님이라면 그 신이 너희에게 내가 잊어버린 그 꿈을 다시 알려 주시지 않겠느냐. 그러니 빨리 당장 그 꿈을 알아 내어 내게 말을 하렸다!” 그 때에 바벨론의 학자들과 종교 지도자들의 난처한 입장을 이해 하시겠습니까? 이러한 생떼가 어디 또 있겠습니까? 당황한 그들은 이렇게 말합니다. “왕이시여, 진정하시옵소서. 이 일은 불공평하옵니다. 왕께서 그 꿈을 저희에게 말씀해 주셔야 우리가 해석을 드릴 것이 아닙니까? 꿈도 모르고서야 어떻게 해몽을 할 수가 있겠습니까?” 그 때 왕은 더욱 더 노를 발합니다. “너희들은 지금 시간을 끌려고 하는 수작들이지. 꿈을 이야기 해주면 누군들 해석을 못하겠느냐? 아무렇게나 엉터리로 해석을 한들 내가 어떻게 알겠느냐? 그러므로 너희가 진짜 신을 섬기고 있으며 최고의 학자들일 것 같으면 빨리 그 꿈부터 먼저 알아내고 그 후에 해석까지 알아 내어야 한다. 그렇지 못할 때에는 너희들은 다 가짜들이기 때문에 너희들의 목을 칠 것은 물론이요, 너희의 모든 가문들도 다 처형하여 너희 집들을 거름더미로 만들겠노라!”
이러한 긴급한 왕의 명령이 하달되자 온 궁궐 안은 험악한 분위기로 휩싸이게 되었고, 그 당시 학자들의 그룹에 속하고 있던 다니엘과 세 친구들에게도 그 영향이 미치게 되었습니다. 그 때, 참 하나님, 성경의 하나님의 종이었던 지혜있는 다니엘은 왕의 명령을 수행하고 있던 아리옥 장군에게 나아가서 자기를 왕의 앞으로 인도해 달라고 부탁을 합니다. 다니엘은 왕에게 삼일의 여유만 주시면, 이 세상의 참 신이신 이스라엘의 하나님께 기도하여 그 꿈을 알아 내고 또한 그 해석을 알게 해 드리겠다고 말하고는 그 허락을 얻어내게 됩니다. 그후에 다니엘은 자기 세 친구들을 불러 모으고 넷이서 간절하게 하나님께 기도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러자 하나님께서는 느부갓네살 왕에게 보여 주셨던 같은 계시를 다니엘에게 보여 주셨습니다. 다니엘은 다음과 같이 하나님을 찬양하였습니다.
“이에 이 은밀한 것이 밤에 이상으로 다니엘에게 나타나 보이매 다니엘이 하늘에 계신 하나님을 찬송하니라. 다니엘이 말하여 가로되 영원 무궁히 하나님을 찬송할 것은 지혜와 권능이 그에게 있음이로다. 그는 때와 기한을 변하시며 왕들을 폐하시고 왕들을 세우시며 지혜자에게 지혜를 주시고 지식자에게 총명을 주시는도다. 그는 깊고 은밀한 일을 나타내시고 어두운데 있는 것을 아시며 또 빛이 그와 함께 있도다.” 다니엘 2:19-22
이에 다니엘은 다시 아리옥 장군을 불러 자기를 유대에서 끌려온 포로라고 무시하고 또한 시기와 질투로 자기를 못살게 굴던 그 바벨론의 학자들을 오히려 살려 달라고 호소합니다. 이 장면에서 우리는 다니엘이 참 하나님의 종으로서의 아름다운 품성을 가진 참된 신자이었음을 보게 됩니다. 다니엘은 곧 느부갓네살 왕에게로 인도되고 왕은 다음과 같이 물었습니다. “그래, 네가, 내가 본 꿈과 그 해석을 능히 내게 알게 하겠느냐?” “다니엘이 왕 앞에 대답하여 가로되 왕의 물으신바 은밀한 것은 박사나 술객이나 박수나 점장이가 능히 왕께 보일 수 없으되 오직 은밀한 것을 나타내실 자는 하늘에 계신 하나님이시라. 그가 느부갓네살 왕에게 후일에 될 일은 알게 하셨나이다. 왕의 꿈 곧 왕이 침상에서 뇌 속으로 받은 이상이 이러하니이다. 왕이여 왕이 침상에 나아가서 장래 일을 생각하실 때에 은밀한 것을 나타내시는 이가 장래 일을 왕에게 알게 하셨사오며 내게 이 은밀한 것을 나타내심은 내 지혜가 다른 인생보다 나은 것이 아니라 오직 그 해석을 왕에게 알려서 왕의 마음으로 생각하던 것을 왕으로 알게 하려 하심이니이다.” 다니엘 2:27-30
하나님의 영감을 받은 다니엘은 다음과 같이 말을 계속합니다.
“왕이여 왕이 한 큰 신상을 보셨나이다. 그 신상이 왕의 앞에 섰는데 크고 광채가 특심하며 그 모양이 심히 두려우니 그 우상의 머리는 정금이요, 가슴과 팔들은 은이요, 배와 넓적다리는 놋이요, 그 종아리는 철이요, 그 발은 얼마는 철이요 얼마는 진흙이었나이다. 또 왕이 보신즉 사람의 손으로 하지 아니하고 뜨인 돌이 신상의 철과 진흙의 발을 쳐서 부숴뜨리매 때에 철과 진흙과 놋과 은과 금이 다 부숴져 여름 타작 마당의 겨같이 되어 바람에 불려 간곳이 없었고 우상을 친 돌은 태산을 이루어 온 세계에 가득하였었나이다.” 다니엘 2:31-35
그 때에 느부갓네살 왕은 무릎을 치며 소리를 지릅니다. “그래! 맞다! 맞어! 내가 바로 그 꿈을 꾸었다. 이제 생각이 나는구나! 그래 어서 빨리 그 의미를 내게 알게 하렸다!”
여기에서 우리는 잠간동안 예언을 해석하는 기본 원칙에 대하여 생각하고 지나가도록 합시다. 여러분이 성경 예언을 이해하시려면 다음과 같은 세가지 원칙을 아셔야만 합니다. (1)첫째로, 먼저 그 성경 예언의 본문 자체를 잘 정독하여 읽으십시요. (2)두번째는, 그 예언을 성경 자체가 어떻게 해석해 주고 있는지를 잘 살펴 보십시요. 우리가 인간들이 마음대로 해석하는 해석들 중에 누구의 것이 옳은지 어떻게 알겠습니까? 그러므로 우리는 성경 자체가 성경을 해석 하도록 하여야 합니다. (3)세번째로는, 하나님께서 성경 가운데 주신 그 예언에 대한 해석이 세상 역사 가운데서 어떻게 성취되었는지에 대하여 살펴 보십시요. 그럴때에만 우리는 안전한 해석을 가질 수가 있습니다.
이제 다음의 기사에서 우리는 흥미 진진한 느부갓네살 왕의 꿈의 그 해석과 역사상의 놀라운 성취에 대하여 연구해 보도록 하겠습니다. 그리스도인들 가운데 아직도 점쟁이나 역술가들에게 장래에 대하여 물으러 다니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들에게는 장래를 내다보는 지혜가 없습니다. 그 지혜는 이 지구 역사를 주관하시는 하나님께만 있습니다. 성경은 우리에게 확신을 가지고 미래를 직면하도록 만들어 줍니다. 자, 그러면 이 세상의 역사가 어떻게 꼴지워져 내려 왔으며, 또한 과연 어떻게 그 역사를 끝마치게 될지에 대하여 다음 기사에서 연구해 보도록 하십시다!
10.2,500년간의 역사를 요약해 준 예언
강병국 목사
바벨론 (금 나라)
“왕이여 왕은 열왕의 왕이시라 하늘의 하나님이 나라와 권세와 능력과 영광을 왕에게 주셨고 인생들과 들 짐승과 공중의 새들, 이느 곳에 있는 것을 무론하고 그것들을 왕의 손에 붙이사 다 다스리게 하셨으니 왕은 곧 금머리니이다.” 다니엘 2:37, 38
성경의 예언들의 적용은 대부분 바로 그 계시를 받은 선지자의 시대에서 부터 시작됩니다. 다니엘이 설명한 이 예언은 다니엘 시대로 부터 시작해서 약 2500년이 넘는 지구상의 역사를 요약해서 한눈으로 설명해 주고 있습니다. 아주 간단하지만 정확하고 요점이 분명한 줄거리를 가지고 역사를 미리 예언하여 준 것입니다. 우리가 요한 계시록을 공부하여 보면 계시록은 사도 요한이 살던 시대 즉, 로마 시대 부터 세상 종말까지에 있을 중요한 사건에 대하여 예언해 주고 있는 사실을 보게 되는 것입니다.
다니엘은 느부갓네살 왕에게 “금머리는 왕이 다스리는 바벨론 나라를 상징합니다”라고 설명하기 시작합니다. 얼마나 정확한 묘사입니까? 바벨론 나라는 유프라데스 강이 가운데로 흐르고 있던 강력한 제국으로서 그 성벽의 높이가 200피트에 달하였고 성벽은 그 위에서 마차 세 대가 지나갈 수 있는 넓은 두께를 가지고 있었으며, 역사가 헤로도투스에 의하면 바벨론은 엄청난 양의 금을 사용하였다는 것입니다. 장식품들에는 물론이요, 특히 신전을 꾸미는데 있어서 신상이나 그 보좌, 제단들 그 모두를 순금으로 장식하였으며 그 어느 나라도 바벨론 만큼이나 금을 많이 사용한 나라는 없었다는 것입니다. 그 부요한 나라 바벨론을 금나라로 상징한 것은 얼마나 잘맞는 상징입니까! 고고학자들의 발견에 의하면 느부갓네살 왕은 바벨론 나라의 성벽의 벽돌 하나 하나 마다에 자기의 이름을 새겨 두었고, 한 비석에 다음과 같은 글을 적어 놓았습니다. “오! 바벨론이여, 내 눈을 기쁘게 하는 바벨론 왕국의 영광이여! 너는 영원히 지속될지어다!”라고. 자기의 나라가 영원히 존재하게 되는 것이 그 왕의 꿈이요 포부였습니다. 그러나 다니엘은 다음과 같이 말합니다.
메데 페르샤 (은 나라)
“왕의 후에 왕만 못한 다른 나라가 일어날 것이요.” 다니엘 2:39. 느부갓네살 왕이 본 꿈의 신상은 전체가 금으로 만들어 진 것이 아닌 것 처럼 한 나라가 세상을 계속적으로 지배할 것이 아니요, 나라들의 권세가 뒤바뀌면서 결국에는 인간 나라들의 권력들이 이 세상 역사를 주관하는 것이 아니라 하늘의 하나님께서 주관 하신다는 사실을 보게 됩니다. 금으로 상징된 바벨론은 이제 곧 쓰러지게 되고 그만 못한 은으로 상징된 메데 페르샤 나라가 그 뒤를 이을 것이라고 다니엘은 설명해 주고 있는 것입니다. 바벨론은 605 B.C. 부터 539 B.C.까지 세상을 지배하였었는데, 느부갓네살 왕이 죽은지 여러해 후인 539 B.C.에 바벨론의 벨사살 왕이 잔치를 베풀고 있는 동안 밤에 몰래 페르샤의 고레스 왕이 거느리는 군대가 유프라데스강을 빼돌린 후 수문 밑으로 군대들을 들여 보내어 난공불락의 성채였던 바벨론을 점령하게 되었습니다. 그날 밤, 벨사살 왕이 잔치를 즐기며 하늘의 하나님을 무시하는 말들을 하는 동안 한 손이 나타나 벽에 글씨를 썼습니다. 떨고 있는 왕 앞에 다니엘이 들어와 그 의미를 해석하여 준 사실이 다니엘 5장에 기록되어 있습니다.
“기록한 글자는 이것이니 곧 메네메네 데겔 우바르신이라. 그 뜻을 해석 하건데 메네는 하나님이 이미 왕의 나라의 시대를 세어서 그것을 끝나게 하셨다 함이요. 데겔은 왕이 저울에 달려서 부족함이 뵈었다 함이요. 베레스는 왕의 나라가 나뉘어서 메대와 바사 사람에게 준바 되었다 함이니이다.” 다니엘 5:25-28
성경의 예언에 의하여 539 B.C.에 메데와 페르샤의 동맹군에 의하여 바벨론이 멸망을 당하였는데, 페르샤의 고레스왕이 바벨론을 점령하기 150년 전에 벌써 선지자 이사야는 고레스왕에 대하여 예언해 두었으며 고레스가 자기에 대한 예언이 기록된 성경을 보자 깜짝 놀라서 그는 다니엘과 유대나라를 선대하고 예루살렘의 무너진 성전을 다시 건축 하도록 허락하게 되었던 것입니다. 이사야는 다음과 같이 예언해 두었습니다. “고레스에 대하여 이르기를 그는 나의 목자라 나의 모든 기쁨을 성취하리라 하며 예루살렘에 대하여 이르기를 중건되리라 하며 성전에 대하여는 이르기를 네 기초가 세움이 되리라 하는 자니라. 나 여호와는 나의 기름 받은 고레스의 오른 손을 잡고 열국으로 그 앞에 항복하게 하며 열왕의 허리를 풀며 성문을 그 앞에 열어서 닫지 못하게 하리라.”이사야 44:28 ~ 55:1
성경은 인간이 기록한 책이 아닙니다. 이 책은 하나님의 영감으로 기록된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이 말씀들을 믿고 받아드리는 자들에게 영생의 문이 열리는 것입니다. 성경의 예언들은 장래들을 미리 말하여 주고 심지어는 사람의 이름까지 150년전에 기록해 두었습니다. 이 세상의 역사의 흐름은 하나님의 계획 속에서 움직여 나가고 있습니다. 그러면, 가슴과 팔 부분인 은으로 상징된 메데 페르샤가 다시 세상을 영원히 지배할 것인가요? 다시 다니엘 2장으로 돌아가 보십시다.
그리스-헬라 (놋 나라)
다니엘은 두번째 나라인 페르샤도 영원히 지속되지 못하고 331 B.C.에 세번째 제국인 헬라에 의하여 정복되게 될 것인데 그 세번째 나라는 배와 넓적 다리 부분으로서 놋으로 표현되어 졌다고 설명하였습니다. 우리가 잘 아는 헬라왕 알렉산드리아는 25세 때에 왕이 되어서 33세 때에 그 당시의 온 세계를 점령하였으며, 인도 간지스 강까지 가서 더 이상 정복할 나라가 없다고 하여서 울었다는 이야기는 유명한 전설 중의 하나입니다. 잘 알려진 역사가 아리안은 알렉산더 대왕에 대하여 기록하기를 “그가 영향을 미치지 아니한 나라나 도시들이나 사람들은 없을 것이다. 그의 행적과 사업에는 마치 하나님의 손이 함께 하신 것 같은 느낌이 든다”라고 말하였습니다. 이 예언 가운데서 한가지 괄목할만한 흥미있는 점은 금속의 가치가 금신상의 아래로 내려가면서 떨어지지마는 그 금속의 강도는 점점 더 강하여져 간다는 것입니다. 다시 말을 바꾸어 보자면, 잇다라 일어나는 제국들의 부요함이 점점 약해 질런지는 모르지마는 무력의 힘은 점점 더 커져 간다는 뜻이 되겠습니다. 그러면, 세번째 놋의 나라인 그리스가 영원히 지속 될까요? 아니지요. 네번째 나라가 등장합니다.
로마 (철 나라)
다니엘은 다시 이렇게 설명해 나갑니다. 네번째 나라는 가장 주목할만한 나라 입니다. “네째 나라는 강하기가 철 같으리니 철은 모든 물건을 부숴뜨리고 이기는 것이라 철이 모든 것을 부수는 것 같이 그 나라가 뭇 나라를 부숴뜨리고 빻을 것이며.” 다니엘 2:40
네번째 등장할 세력도 성경은 예언하고 있습니다. 그리스를 뒤엎은 나라가 어느 나라입니까? 어느 나라가 예수 그리스도께서 이 땅에 사실 당시에 세계를 지배하고 있었습니까? 바로 로마 나라입니다. 로마 제국은 168 B.C. 부터 450 A.D. 까지 세상을 지배하였습니다. 로마가 바로 느부갓네살 왕의 꿈 속의 신상의 네번째 나라입니다. 그 나라는 다리 부분의 철로 상징되고 있습니다. 바로 이 로마의 명령으로 예수의 부모인 요셉과 미리아가 호적하러 베들레헴으로 가게 되었고, 바로 이 로마의 군인들의 못에 의하여 예수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 못박혀 돌아 가셨습니다. 예수의 무덤도 로마의 인으로 봉하여 졌었습니다. 대영 백과사전 40권 631페이지에서 유명한 역사가 “에드워드 기본”씨는 다니엘서 2장의 신상은 인간 역사의 제국들의 흥망 성쇄를 묘사하는 것이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심지어는 그리스도인이 아닌 역사가들도 그 사실을 인정하고 있습니다. 실로 철로 상징된 로마는 강력한 군대를 가진 제국으로서 많은 나라들을 잔인하게 부수고 짓밟는 일을 자행한 사실을 보게 됩니다.
우리가 세상 역사의 패턴을 지켜 보면서, 한 나라가 일어나면 또 다른 나라가 그 뒤를 이어 일어나 세상을 지배하고 또 다시 다른 나라가 일어나서 이전 나라를 패망케 하면 곧 다시 다른 나라가 뒷이어 일어나는 흥망 성쇄의 네번의 연속을 바라 볼 때에, 우리는 그 뒤에 다섯번째의 나라가 일어나게 될 것으로 생각하는 것은 당연한 일일 것입니다. 그러나 놀라웁게도 성경은 그렇게 예언하지 않았습니다. 그 놀라운 예언의 국면을 살펴 보도록 합시다. 별들과 항성들을 만드시고 운행하시는 하나님께서 세상의 역사도 지배하고 게십니다.
열국 시대 (철과 진흙 나라)
다니엘 2장 41절 부터 43절까지에서 성경은 다음과 같이 역사를 예언 하였습니다. “왕께서 그 발과 발가락이 얼마는 토기장이의 진흙이요 얼마는 철인 것을 보셨은즉 그 나라가 나누일 것이며 왕께서 철과 진흙이 섞인 것을 보셨은즉 그 나라가 철의 든든함이 있을 것이나 그 발가락이 얼마는 철이요 얼마는 진흙인즉 그 나라가 얼마는 든든하고 얼마는 부숴질만한 것이며 왕께서 철과 진흙이 섞인 것을 보셨은즉 그들이 다른 인종과 서로 섞일 것이나 피차에 합하지 아니함이 철과 진흙이 합하지 않음과 같으리이다.”
하나님께서는 로마 나라가 다른 다섯번째의 나라에 의하여서 계승될 것이 아니라고 예언하여 주신 것입니다. 로마 제국은 열국으로 갈라질 것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신상의 발과 발가락에 철과 진흙이 섞여 있는 것으로서 상징된 것은 어떤 나라는 강하고 어떤 나라는 약한 나라들일 것이지만 이 세상은 열국으로 나뉘어 져서 공존하게 될 것이라는 사실을 상징한 것입니다. 4세기 중반부터 5세기 중반까지 북쪽에 살던 앵글로 색슨, 프랑크, 알레마니, 벌건디안, 반달, 훈, 수에비 와 같은 만족들이 약해져 있는 로마 제국을 침략해 내려 오면서 제국의 토지들을 각기 제나름대로 점령해 나가기 시작하였습니다. 프랑크족은 지금의 불란서를 이루게 되고 앵글로 색슨은 영국에 머물게 되었고 수에비 족은 지금의 스위스를 점령하는 등등 지금 우리가 알고 있는 현재 유럽을 이루게 된 것입니다.
성경 예언의 정확성을 살펴 보십시요. 바벨론, 메데 페르샤, 그리스, 로마가 순서대로 일어나더니, 인간의 생각대로 다섯번째 다른 나라가 다시 일어나는 것이 아니라, 예언대로 여러 나라로 갈라진 열국시대가 되더니 어떤 나라는 철의 금속 처럼 강한 나라가 되고 어떤 나라는 진흙처럼 약한 나라로 남아있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이 유럽이 다시 연합하게 될까요? 아니면 다시 세계를 제패하는 다른 한 세력이 등장하게 되는 것일까요? 다니엘 2:43절에서 읽은 바와 같이 그들은 피차에 합하지 못할 것입니다. 로마 제국의 멸망 이후로 여러 사람들이 유럽을 통합 하려고 애를 썼지마는 번번히 실패 하였습니다. 솰레망 대제의 시도도 실패하였고 나폴레옹의 유럽 정복의 시도도 결국은 수포로 돌아가고 말았습니다. 그 당시 유럽 나라들은 왕자와 딸들을 결혼을 시켜 서로 주고 받았기 때문에 왕권들의 피들이 다 섞이게 되었지마는 성경의 예언대로 합쳐지지가 않았습니다. 성경이 말했습니다. “피차에 합하지 아니함이 철과 진흙이 합하지 않음과 같으리라.” 나폴레옹은 워털루 전쟁에서 “전능자와 싸우는 일은 내게는 너무나 큰 일이다”라고 말하였습니다.
히틀러는 온 유럽을 정복하는 일에 거의 성공한 듯이 보였을 때인 1941년 3월에 감히 다음과 같은 말을 한 적이 있습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도움이 필요없다. 우리는 하나님 없이 우리의 무기로 이 전쟁을 싸울 것이다. 우리는 그의 도움없이 승리를 거둘 것이다.” 히틀러의 군대가 연합군을 영국 던커크 해협으로 몰고가서 거의 물속으로 밀어 넣으려 하던 가장 긴박한 입장에 있었을 때에, 그렇게 좋던 날씨가 갑자기 흐려 지더니 영국 해협에 안개가 짙게 내려 앉았습니다. 그날 밤 윈스턴 처칠은 영국 국민들에게 방송으로 호소하여 모든 배들을 가지고 나오도록 하였습니다. 그날 밤 연합군들은 민간인들의 배들을 타고 무사히 영국으로 피신하게 되었고, 다시 재 무장 정비하여 나아가 결국은 연합군이 세계 2차 대전을 승리로 이끌게 되었습니다. 참으로 아슬 아슬한 순간이었습니다. 하나님께서 연합군을 도우셨습니다. 히틀러도 유럽을 점령하려 하였습니다. 그러나 성경의 예언은 그들이 서로 섞일 것이나 피차에 합하지 아니할 것이라고 말하였습니다.
뜨인 돌의 나라 (세상 끝)
그러면 이 세상의 장래는 어떻게 될 것인가요? 인류의 역사는 바벨론 시대를 지났습니다. 페르샤 시대도 지났습니다. 헬라 시대도 지났습니다. 로마 제국 시대도 지나갔습니다. 우리는 지금 이 세상 역사의 머리나 가슴이나 다리의 시대에 살고 있지 않습니다. 우리는 발가락 시대에 살고 있습니다. 우리는 지금 바로 세상 역사의 마지막 시대의 그 끝에 살고 있습니다. 과연 이 세상의 역사는 어떻게 끝나게 될까요?
다니엘 2:44,45절은 다음과 같이 예언해 주고 있습니다. “이 열왕의 때에 하늘의 하나님이 한 나라를 세우시리니 이것은 영원히 망하지도 아니할 것이요, 그 국권이 다른 백성에게로 돌아가지도 아니할 것이요, 도리어 이 모든 나라를 쳐서 멸하고 영원히 설 것이라 왕이 사람의 손으로 아니하고 산에서 뜨인 돌이 철과 놋과 진흙과 은과 금을 부숴뜨린 것을 보신 것은 크신 하나님이 장래 일을 왕께 알게 하신 것이라 이 꿈이 참되고 이 해석이 확실하니이다.”
사람들은 염려 합니다. 이 세상이 핵 폭탄으로 멸망하던지, 아니면 환경 오염이나 인구의 증가와 식량의 부족으로 자멸할지 모른다고요. 여기에 기쁜 소식이 있습니다. 이 세상은 핵 폭탄으로 망하지 않을 것입니다. 식량난으로 자멸하는 것도 아닙니다. 세계 3차 대전으로 끝나든지 다시 빙하 시대가 오는 것도 아닙니다. 이 지구의 역사는 돌의 나라, 즉 인간의 손으로 만들지 아니한 왕국인 하나님의 나라가 임함으로 끝날 것입니다. 그것은 곧 그리스도의 재림을 상징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계획하신 때가 다 되었습니다. 이 세상 역사는 하나님의 심판과 함께 그리스도의 왕국을 이 땅에 세우심으로 종결 지어질 것입니다. 이 세상 나라들은 여름 타작 마당의 겨같이 될 것입니다 (다니엘 2:35 참조). 여러분은 하나님의 심판을 통과하기 위하여 마음과 성품이 준비되어 있습니까? 더 이상 겉치레의 위선적인 신앙이 우리를 보호하지 못하는 때가 곧 오고 있습니다. 신상을 쳐서 가루를 내어 버릴 돌의 나라는 하나님의 나라를 상징합니다. 언제 돌 나라가 임하는 것입니까? 그 돌의 나라는 머리를 치는 것이 아니고 가슴이나 다리를 치는 것도 아닙니다. 이 “열왕의 시대”에 하나님의 나라를 세우신다고 하였습니다. 이렇게 유럽이 아직도 분열되어 있는 지금 우리가 살고 있는 바로 이 시대를 말하고 있습니다.
지금 유럽은 다시 모종의 연합을 이루어 한 나라로 만들려는 계획을 한창 진행 중입니다. 돌의 나라의 시대가 다가 오고 있습니다. 이제 곧 임할 그리스도의 나라는 영원할 것입니다. 거기에는 더 이상 슬픔과 이별이 없을 것입니다. 고통이나 질병이나 죽음도 더 이상 없습니다. 거기에는 다시는 위험이나 굶주림도 없을 것입니다. 죄의 역사가 영원히 끝날 것입니다. 여러분은 그 나라의 백성이 되기 위하여 준비되어 있습니까? 오늘 예수 그리스도를 받아들이십시요. 이미 주님을 받아들이신 분은 그 분의 말씀대로 순종하는 생활을 사십시요. 주여 주여 하는 자마다 다 천국에 들어가는 것이 아니라 하늘 아버지의 뜻대로 하는 자라야 천국에 들어 갈 것이라고 말씀 하셨습니다. 오늘날 거짓 신자들이 너무 많습니다. 이 세상에는 해결할 수 없는 문제들로 가득 차 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나라가 임하는 것입니다. 먼저 하나님의 나라가 여러분의 마음을 다스리도록 하시기를 바랍니다.
11.천년 전에 만들어진 호적등본
“이에 모세와 모든 선지자의 글로 시작하여 모든 성경에 쓴바 자기에 관한 것을 자세히 설명하시니라.”누가복음 24:28. 예수께서 부활하신 후 승천하기 전까지, 그분께서는 제자들에게 자신이 메시야 임을 확신시키기 위해서 구약 성경을 사용하여“자세히 설명”하셨다.
예수께서는 천년 전에 자신이 선지자들을 통해서 미리 기록해 놓은 출생신고서와 사망신고서가 정확하게 성취되었음을 제자들에게 보여주심으로써, 그들에게 확신과 믿음을 주시고자 하셨다. 예수 그리스도와 그분의 예언에 대한 믿음과 확신이 부족한 사람이 있는가? 예수께서 탄생하기 천년 전에 기록된 호적등본(예언)을 보면서 의심과 회의를 내쫓기를 바란다.
천년 전에 작성된 출생신고서와 사망신고서
어린 아이가 태어나면, 부모는 그 아이에 대한 출생 신고를 한다. 그러나 유일하게도, 자신이 태어나기 1000년 전에 출생신고를 스스로 했던 사람이 있다. 그는 출생신고 뿐만 아니라 사망신고 또한 자신이 사망하기 1000년 전에 스스로 작성하였다. 그는 누구인가? 예수 그리스도! 성경은 예언을 통하여 그리스도께서 탄생하기 천년 전에, 이미 그분의 출생날짜, 주소, 가족 관계, 죽는 모습과 방법, 사망일자 등에 관한 등록을 마쳤다.
왜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1000년 전에 미리 자신의 호적등본을 만드셨을까? 왜냐하면 그분께서는 후세의 사람들이 그분의 초림을 위해서 잘 준비하기를 원하셨기 때문이다. 그리스도의 탄생 1000년 전에 만들어진 그분의 호적등본이 정확하게 이루어 지는 장면을 보면서, 성경을 연구하는 학도들은 예언의 확실성과 성경의 영감성을 더욱 더 확신할 수 있게 된다.
예수께서는 자신의 자서전을 구약 성경에 미리 기록해 놓으셨다. 신약시대가 시작되기 수세기 이전에 쓰여진 예수 그리스도의 자서전이 신약시대에 과연 정확하게 이루어졌는가를 살펴보는 일은 우리의 믿음과 신앙을 성경의 기초 위에 세울 것이다.
예언 __500-1000년____ 성취
1. 베들레헴에서 출생함 - 미가서 5:2 마태복음 2:1
2. 동정녀에게서 태어남 - 이사야 7:14 마태복음 1:18-23
3. 다윗의 혈통을 타고남 - 예레미야 23:5 사도행전 13:22-23
4. 헤롯의 살해 명령 - 예레미야 31:15 마태복음 2:16-18
5. 한 친구의 배반 - 시편 41:9 요한복음 13:18,19,26
6. 은 30냥에 팔리심 - 스가랴 11:12 마태복음 26:14-16
7. 십자가에 못박히심 - 스가랴 12:10 요한복음 19:16-18,37
8. 그분의 옷을 제비뽑아 나눔 - 시편 22:18 마태복음 27:35
9. 뼈 하나도 상하지 않음 - 시편 34:20 요한복음 19:31-36
10. 부자의 무덤에 묻히심 - 이사야 53:9 마태복음 27:57-60
11. 그분의 사망 년도, 날짜, 시간 - 다니엘 9:26-27 마태복음 27:45-50
12. 3일만에 부활하심 - 호세아 6:2 사도행전 10:38-40
수학으로 증명하는 호적 등본의 진위
어떤 사람들은 이러한 증거들을 보면서 이렇게 말할지도 모른다. “구약에 있는
예언이 신약시대에 예수라는 이름을 가진 사람에게 우연하게 이루어졌을 수도 있지 않습니까?” 좋은 질문이다. 가능성은 항상 있는 것이다. 그러면 이제 그러한 가능성에 대한 수학적 확률을 계산하여 보자. 성경에는 메시야에 대한 300개 이상의 예언이 나와 있다. 미국 캘리포니아주에 있는 파사데나 대학의 수학과/천문학과의 학장으로 재임하였던 피터 스토너 박사는 여러해 동안, 600여명이나 되는 학생들의 도움을 받아서“메시야의 오심에 대한 예언이 정확하게 이루어질 수 있는 가능성에 대한 수학적 확률”이라는 연구 결과를 발표하였다. 그들은 300여개의 예언 중에서 단지 8개를 고른 다음, 그 예언들이 한 사람의 생애 동안에 정확하게 성취될 수 있는 수학적 확률을 계산하였는데, 그들의 계산치는1\1,000,000,000,000,000,000,000,000,000,000,000 이었다. 만일 그들이 메시야에 대한 300여개의 예언이 한 사람에게 이루어질 수 있는 확률을 계산하였다면, 어떤 확률의 숫자가 나왔을까? 이런 경우의 확률을“0”라고 대답한다고 할지라도, 아무도 그것을 틀렸다고 말할 수 없을 것이다. 2000년 전에 나사렛에서 태어났던 예수는 틀림없는 메시야였다. 이렇게 해서 예수 그리스도의 탄생 천년 이전에 만들어졌던 호적등본이 수학적으로 증명되었다. 바로 이러한 수학적 증거가 수많은 현대인들이 예수 그리스도의 신성과 예언의 정확성을 확신하게 만들고 있다.
미리 만들어진 세계사
예수께서는 다니엘 선지자를 통하여 지금부터 약 2500년 전에 이미 세상의 역사를 기록해 놓으셨다. 그분께서는 다니엘이 살던 기원전 6세기의 바벨론 시대부터 세상 마지막 날까지의 역사와 사건을 정확하게 기록해 놓으셨다. 2600년 전에 미리 만들어진 지구의 세계사를 공부하면서, 다시 한번 우리는 역사를 주관하고 계시는 예수 그리스도의 신성을 확신하게 된다. 예수께서는 왜 세계사를 2500년 전에 미리 기록해 놓으셨는가? 왜냐하면 그분께서는 후세의 사람들이 성경의 예언을 연구함으로써, 성경의 영감성을 확신하고, 자신들이 살고 있는 시대가 어떤 시기인지를 분별할 수 있게 되기를 원하셨기 때문이다. 또한 그분께서는 세상 종말에 살게 될 사람들이 재림을 위해서 잘 준비할 수 있게 되기를 원하셨던 것이다.
건전한 이성과 합리적인 판단력, 그리고 지나간 세계 역사에 대한 지식을 가지고 있는 현대인들마다 성경의 예언 앞에서 자신들을 겸손하게 낮추는 모습을 보게 된다. 각 시대마다 그 시대에 알맞는 진리와 믿음과 생활이 요구되었다. 바벨론 시대에는 금신상의 시험에 굴복하지 않는 믿음이 요구되었고, 종교개혁시대에는 개혁을 위한 믿음과 신앙이 요구되었다. 다니엘의 예언은 지금이 마지막 시대임을 분명하게 증거하고 있다. 그렇다면 마지막 시대에는 어떠한 믿음과 신앙이 요구될까?
가장 중요한 당면 문제는?
마지막 시대에 살고 있는 우리 모두에게 있어서, 가장 중요한 당면 문제는 지구의 마지막 날 밤이 멀지 않았다는 것이다. 오늘날 이 시점에서 소유하고 있어야 하는 진리와 믿음은 어떤 것인가? 성경은 마지막 때에“모든 자”가 짐승의 표를 받게 될 것이라고 경고하고 있다(요한계시록 13:16). 마지막 시대의 진리는 짐승의 표를 피할 수 있는 진리이어야 하는데, 요한계시록은 그 진리를 이렇게 표현하고 있다. “성도들의 인내가 여기 있나니 저희는 하나님의 계명과 예수의 믿음을 지키는 자니라.”요한계시록 14:12. “하나님의 계명과 예수의 믿음을 지키는 자”들이야말로 마지막 시대에“살아남는 이들”이 될 것이다. 지구의 마지막 사건은 그리스도인들에게만 제한된 사건이 아니다. 성경은 지구 상에 살고 있는 모든 사람들의 눈앞에서 벌어질 마지막 사건에 대해서 다음과 같이 경고하고 있다.“너희는 스스로 조심하라 그렇지 않으면 방탕함과 술취함과 생활의 염려로 마음이 둔하여지고 뜻밖에 그 날이 덫과 같이 임하리라. 이 날은 온 지구상에 거하는 모든 사람에게 임하리라.”누가복음 21:34-35.
12.일곱 번 넘어져도
첫 번째 넘어졌을 때,
“아들아 다치지 않았니?”하시고
상한 곳을 어루만지시며
치료해 주신 후, 새 옷 입혀주신 사랑의 아버지
두 번째 넘어졌을 때,
“괜찮아 이렇게 자라는 거야”하시며
나를 품안에 안으시고
두손으로 토닥거리며 빙긋이 웃으시는 자비로운 아버지
세 번째 넘어졌을 때,
“많이 다치지 않았니?”하시며
눈물고인 사랑의 눈으로 나를 보시며
“오직 의인은 믿음으로 살리라” 하며 용기주시는 은혜로운 아버지
네 번째 넘어졌을 때,
“너희 죄가 주홍같을지라도 눈과 같이 희어질 것이요”하며
사랑의 두팔 넓게 벌리며
나를 안으시고 입맞추시는 긍휼히 여기시는 아버지
다섯 번째 넘어졌을 때,
그래서 무릎꿇기 민망할 때,
“선을 행하고 죄를 전혀 범치 아니한 의인은 없어”하시며
내게로 달려와 측은히 여겨주시며 내 목을 안고 함께 우시는
자애로운 아버지
여섯 번째 넘어졌을 때,
용기도 없고 소망도 보이지 않을 때,
“너는 불에서 꺼낸 그슬린 나무가 아니냐”하시며
더러운 죄수 옷 손수 벗기시면서 통곡하시며 아름다운 옷 입혀주시는
노하기를 더디하시는 아버지
일곱 번째 넘어져서
눈 앞이 캄캄하고 기력이 쇠하여 완전히 절망할 때,
“하늘이여 들으라 땅이여 귀를 기울이라”하시며
“대저 의인은 일곱번 넘어질지라도 다시 일어나려니와”하고
나 못듣고 지나칠까봐 하늘도 땅도 듣도록 외치시는
인자하심이 지극하신 아버지
그 아버지가 오늘 내게 말씀하시네
“가서 다시는 죄를 범치 말라, 죄가 너를 주관치 못하게 하라.
순종의 종되어 의에 이르라, 의의 열매를 많이 맺어 내 제자가 되라
생명을 얻되 더 풍성히 얻으라
네가 내 아들이라 오늘날 내가 너를 낳았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