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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년 1월 18일 살아나서 살리는 교회 주일 설교
제목 : <1월 설교 시리즈 – ‘일어나라!’>3. Stand Up! Time For a New start!
본문 : 누가복음 15장 20절(11~20절)
그는 일어나서, 아버지에게로 갔다. 그가 아직도 먼 거리에 있는데, 그의 아버지가 그를 보고 측은히 여겨서, 달려가 그의 목을 껴안고, 입을 맞추었다. <새번역>
영화나 드라마에서 오랜 시간의 고민 끝에 주인공이 자리를 박차고 일어나는 장면을 보신 적이 있으실 것입니다. 무엇인가 결단하게 되면, 자리에서 일어나는 것으로 그 결단을 실행한 결심을 보이곤 합니다. 오늘 일어섬의 3번째의 이야기 ‘Stand Up’이 바로 그 ‘결단을 실행할 결심’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그래서 우리 모두 결단을 실행할 결심으로 자리를 박차고 일어나는 오늘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의심과 고민과 걱정과 염려에 대한 생각을 완전히 마무리했다는 것입니다. 즉, 나를 빛으로 부르신 주님의 뜻대로, 빛이 아닌 것 같고, 빛이 되기 부족하고, 제대로 빛을 비출지, 괜히 하나님의 영광만 가리는 것은 아닌지 그 쓸데없는 생각들을 잘 정리했다는 것입니다. 잘 정리했기에 이제 빛을 비추기로 결정 하였고, 실행에 옮기기 위해 드디어 일어서는 순간을 맞이했다는 것입니다.
드디어 하나님의 부르심에 힘입어, 그 부르심에 부응하기 위한 결단으로 일어선 것입니다. 그러니 내 힘이 아니라 나를 일으켜 세우신 것은 오직 하나님이십니다. 내 힘으로 일어선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능력이 맞습니다. 물론 하나님의 명령인 ‘Stand Up’을 듣고, 몸을 일으켜 세워야 하는 것은 결국 우리의 몫입니다. 하지만 소명, 그 부르심, Calling이 있었기에 이제 기꺼이 순종하겠노라 결단하고 하나님의 뜻대로 자리를 박차고 일어나는 것입니다. 이 과정이 혹시라도 별일 아니라고 생각하지 않으셨으면 좋겠습니다. 정말로 위대한 결정입니다. 왜냐하면 그렇게 부응하여 순종하여 일어선 자들이 써 내려간 이야기가 바로, ‘성경’이기 때문입니다. 여러분의 그 결정이 하나님이 써 내려가시는 성경을 오늘도 한 페이지 또 넓힌 위대한 결정임을 잊지 말아야 할 것입니다.
그리고 하나님은 자신의 명령에 순종하여 일어난 모든 이들을 마음껏 축복하신 것을 성경 곳곳에서 아주 쉽게 발견할 수 있습니다. 대표로 아브라함을 생각해 볼 수 있습니다.
아브람은 주님께서 말씀하신 대로 길을 떠났다. <창세기 12장 4절, 새번역>
이미 살고 있던 땅, 난 곳, 아버지의 집에서 ‘일어나’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는, 결단을 실행한 결심을 통해 그는 믿음의 조상이란 존재로 우리에게 전해지고 있습니다. 물론 가끔씩 흔들릴 때도 있었습니다. 하지만 극적인 상황에서, 꼭 필요한 상황에서 심지어는 100세 주신 아들을 요구하셨을 때도 동일한 모습을 보여주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께로부터 인정받는 신앙이 무엇인지를 또한 우리에게 보여준 인물이기도 합니다.
아브라함이 다음날 아침에 일찍이 일어나서, 나귀의 등에 안장을 얹었다. 그는 두 종과 아들 이삭에게도 길을 떠날 준비를 시켰다. 번제에 쓸 장작을 다 쪼개어 가지고서, 그는 하나님이 그에게 말씀하신 그 곳으로 길을 떠났다. <창세기 22장 3절, 새번역>
아브라함의 아들 이삭도, 이삭의 아들 야곱도, 소위 믿음의 조상들은, 수많은 상황 속에서도 결국 Stand Up, 일어섬을 선택하고 하나님께로 돌아갔습니다. 출애굽한 이스라엘 백성들도 마찬가지입니다. 가나안에 정착했던 여호수아를 시작으로 사사들, 왕들의 이야기에 이르기까지 일일이 다 기록할 수 없을 만큼 많은 이들이 이 ‘Stand Up’ 때문에 고민하고, 때론 일어서지 못하면 멸망하고, 다행히도 극적으로 일어나면 축복받은 이야기들의 기록이 성경에서는 이어지고 있습니다.
저는 그 많은 이야기들 속에서 가장 극적으로 일어남, 그 결단을 실행할 결심을 보인 이가 오늘 함께 나눈 본문의 작은 아들, 흔히 ‘탕자’라고 불리는 인물이라고 생각합니다. 이상하게 들리실지 모르겠지만 저는 오늘 이 작은 아들이 우리 모두의 모습이었으면 좋겠습니다. 작은 아들이 오늘 우리에게 아주 중요한 행동을 보여주고 있기 때문입니다.
작은아들은 당시의 시대 배경으로 가장 불효라고 말할 수 있는 아직 돌아가시지 않은 아버지에게 자신의 유산을 달라고 말할 정도로 철부지 소년이었습니다. 사실상 돌로 쳐 죽여도 될 만한 불효였습니다. 그런데 그 철부지 소년의 아버지는 작은아들의 원대로 해 줍니다.
작은아들이 아버지에게 말하기를 '아버지, 재산 가운데서 내게 돌아올 몫을 내게 주십시오' 하였다. 그래서 아버지는 살림을 두 아들에게 나누어 주었다. <누가복음 15장 12절, 새번역>
그리고 작은아들은 며칠 후 자기의 모든 것을 챙겨서 먼 지방으로 가게 됩니다. 분명히 헛바람을 들게 할 무슨 소식을 들었던 것이 분명합니다. 그리고 그 곳에서 방탕하게 살아갑니다. 그러니 자연스럽게 재산을 낭비하며 빈털터리가 되어 갔습니다. 마치 우리가 하나님 곁을 떠나 내 마음대로 살았을 때와 별반 다르지 않은 느낌입니다.
그리고 어느덧 당연히 모든 것을 탕진한 날이 왔습니다. 그런데 놀랍게 딱 그날부터 크게 흉년이 찾아옵니다. 설상가상, 첩첩산중, 돈도 없고, 먹을 것도 없는 상황에 작은 아들이 놓이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그리고는 아주 궁핍한 인생이 됩니다. 부자였다가 한순간 거지가 되었다면 그 충격도 만만치가 않을 것입니다. 부자는 망해도 3대는 간다고 했던가요? 그런데 완전히 쫄딱 망한 작은 아들에게는 적용되지 않는 말이었습니다. 부끄럽지만 그 타지방 지역 주민에게 자신의 몸을 의탁하고는 들로 보내어 돼지를 치게 되었습니다. 그나마 먹을 것을 좀 구하나 했지만, 돼지가 먹던 쥐엄 열매까지 철저히 관리 된 큰 흉년이었기에 그것마저도 먹지 못하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아이러니하게도 여기서 첫 번째 Stand Up의 순간이 찾아옵니다.
그제서야 그는 제정신이 들어서, 이렇게 말하였다. <누가복음 15장 17절A, 새번역>
제정신이 드는 것, 정신을 차리는 것, 드디어 자신의 현실을 마주하는 것, 이 순간은 신앙생활에서 너무도 중요한 지점입니다. 마치 이사야 60장을 만나기 위하여 이사야 59장에서 먼저 자신들의 모습을 인정해야 했던 것과 동일합니다. 아무것도 먹지 못하는 순간, 정말 굶어 죽을 것 같은 바닥까지 떨어지고 나서야 일어서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는 것입니다.
저는 이 모습이 인간이 반복하는 가장 어리석은 행동이라고 생각합니다. 조금이라도 빨리 정신을 차려서, 재산을 탕진하자마자, 그래도 자신이 한 행동을 알기에 돼지를 치던 그때라도, 제정신이 들었어야 했습니다. 그런데 이렇게 무지하고 어리석습니다. 자신의 힘으로 아무것도 할 수 없다는 것을 왜 이렇게 늦게 깨닫는 것인지 모르겠습니다. 우리의 힘으로는 아무것도 할 수 없습니다. 우리가 이루어 가는 것처럼 보이지만 실상은 우리가 만들어가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이 하시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도우시지 않는다면, 하나님이 허락해주시지 않는다면, 하나님이 시간과 환경, 호흡 등을 베풀어주시지 않는다면, 실상 인간은 아무것도 할 수가 없는 존재입니다. 그렇다면 희망이 없는 것일까요? 아닙니다. 작은아들에게는 아버지가 있었습니다. 자신에게는 답이 없었지만 아버지에게는 답이 있었습니다. 사랑하는 동역자 여러분, 우리에게는 답이 없습니다. 하지만 하나님 아버지에게는 답이 있는 줄로 믿습니다. 그래서 그 사실을 인정하며 일어서는 것입니다.
내 아버지의 그 많은 품꾼들에게는 먹을 것이 남아도는데, 나는 여기서 굶어 죽는구나. <누가복음 15장 17절B, 새번역>
그리고 여기서 우리가 더 관심 가져야 할 훨씬 더 중요한 작은아들의 행보는 신세 한탄만 한 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해답을 가지고 있는 아버지에게로 돌아가야겠다는 자신의 인생에서 가장 잘한 결정을 내리게 됩니다.
내가 일어나 아버지에게 돌아가서, 이렇게 말씀드려야 하겠다. 아버지, 내가 하늘과 아버지 앞에 죄를 지었습니다. 나는 더 이상 아버지의 아들이라고 불릴 자격이 없으니, 나를 품꾼의 하나로 삼아 주십시오.' <누가복음 15장 18~19절, 새번역>
하지만 이렇게 할 말까지 준비해 보았지만 입술이 떨어질까 걱정도 되었을 것입니다. 일단 아버지가 불효자인 자신을 만나는 주실지 그것도 의문입니다. 아무리 생각해도 만나 줄 이유가 없어 보였습니다. 의심, 고민, 걱정, 염려 가득합니다. 하지만 작은아들은 거기서 멈춘 것이 아니라 위대한 행보를 시작합니다. 모든 인류가 걸어야 할 길, 오늘도 예수를 잃어버리고 헤매 이는 이들이 걸어야 할 길, 모든 믿지 않는 이들이 행해야 할 일어섬, ‘Stand Up’입니다.
그는 일어나서, 아버지에게로 갔다. <누가복음 15장 20절A, 새번역>
자리를 박차고 일어났습니다. 과거를 딛고 현재를 살고 내일로 향해 전진하는 위대한 한 걸음이었습니다. 그러자 무엇이 기다리고 있었습니까? 새로운 시작이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그가 아직도 먼 거리에 있는데, 그의 아버지가 그를 보고 측은히 여겨서, 달려가 그의 목을 껴안고, 입을 맞추었다. <누가복음 15장 20절B, 새번역>
저는 지금도 확신합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향한 일어섬, 이 Stand Up의 결말은 이 구절과 동일할 것입니다. 하늘 아버지께서 아직도 우리가 먼 거리에 있지만 우리를 보시고 측은히 여겨서 달려오십니다. 그리고 목을 껴안고 입을 맞추는 모습! 그리고 말할 것입니다.
“일어나줘서 고맙다! 포기하지 않아서 고맙다. 다시 내게로 와 줘서 고맙다! 비록 나를 떠났지만 다시 일어나 나를 향해 와 주어서 고맙다. 나는 그런 너의 일어섬을 축복한단다. 그리고 새로운 시작을 허락할 것이다!”
의심과 고민과 걱정과 염려에 대한 생각을 완전히 마무리하지 못했다면 여전히 돼지와 함께 하고 있었을 것입니다. 아니, 머나먼 타국에서 굶어 죽어가고 있을지도 모릅니다. 그런데 그 결과는 성경에 등장하지 않습니다. 왜 등장하지 않습니까? 바로, 우리 모두를 위한 희망을 보여주기 위해서입니다. 우리의 인생은 결코 그렇게 끝나지 말아야 합니다. Stand Up! 일어나면 됩니다! 그리고 하나님께로 가면 됩니다! 그러면 Time For a New Start! 새롭게 시작하는 것입니다.
누구든지 그리스도 안에 있으면, 그는 새로운 피조물입니다. 옛 것은 지나갔습니다. 보십시오, 새 것이 되었습니다. <고린도후서 5장 17절, 새번역>
그리스도 밖에서 그리스도 안으로 일어나 옮겼습니다. 말씀 밖에서 말씀 안으로, 내 생각을 버리고 하나님의 뜻으로 일어나 옮겼습니다. 이제 하나님의 부르심, 그 소명에 합당한 삶을 살기 위한 결단을 실행한 결심을 그리스도 안에서, 말씀 안에서, 하나님의 뜻 안에서 행하게 될 것입니다.
작은아들은 종이 되지 않았습니다. 여전히 아들의 자리를 유지합니다. 하지만 더 이상 옛 아들의 모습은 없을 것입니다. 일어나 새로운 시작을 살아가는 이들에게 과거는 그저 지나간 시간으로서의 과거일 뿐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이 Stand Up, 일어나라는 과거와의 건강한 작별이기도 합니다.
이제는 더 이상 과거에 머물지 않는 새로운 피조물이기 때문입니다. 옛것은 지나갔습니다. 새것이 된 것입니다. 일어나는 이 결심만으로도 이 선포를 포함한 엄청난 일들이 일어날 것입니다. 맞습니다.작은아들은 그저 일어나 아버지께로 돌아간 것이 전부입니다. 하지만 그 다음 일은 아버지의 손에 의해 일사천리 진행이 됩니다. 역시 아버지에게는 해답이 있습니다.
사랑하고 존경하고 축복하는 동역자 여러분! ‘일어나 빛을 발하라’ 이 표어를 두고 공부하며 오늘 일어섬의 3번째 이야기 ‘Stand Up’에 대해서 함께 나누었습니다. wake up, get up 그리고 이제 stand up! 이제 결단을 실행할 결심이 되었고, 정리가 끝났으니, 새로운 피조물이 되었으니, 빛을 발하는 다음 단계로 언제든 자연스럽게 넘어갈 수 있게 된 것입니다.
혹시라도 작은아들의 상황에 놓여 있는 이가 계신다면! 혹시라도 어느덧 1월도 셋째 주가 지나가는데 이미 작심삼일에 빠져 스스로에게 실망하고 있고, 용기를 잃고 있고, 굶어 죽어가는 듯 안타까운 삶을 사는 이들이 있다면 오늘 이 누가복음 15장의 주인공 작은아들을 한 번 만나보지 않으시겠습니까? 이 자리에 계신 동역자 여러분들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 주인공은 충분히 절망적인 상황이었고, 비참했고, 자존심 상하는 시간을 보내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작은아들은 결국 ‘Stand Up’을 선택했습니다. 그리고 새로운 시작을 만나게 됩니다.
얼마나 다행입니까? 여러분에게도, 우리 모두에게도 아버지가 계십니다. 오늘도 측은히 여겨 언제 오나 기다리시는 분, 우리 모두에게는 언제라도 돌아갈 하나님 아버지가 계십니다. 그럼 고민할 필요가 없습니다. 의심, 고민, 걱정, 염려에 대해서 이제 그만 마무리하셔야 할 때입니다. 그 마무리가 Stand Up! 입니다. 또한 결단을 실행할 결심 역시 Stand Up! 입니다. 제정신을 차리고 내일로 가려는 노력도 너무 중요한 Stand Up! 입니다. 그래서 마지막으로 이제는 온전히 새로운 피조물로 살아가는 것이 바로 Stand Up의 다음 단계 ‘Arise’입니다. 그 ‘Arise’에 대해서는 다음 주일에 함께 나누도록 하겠습니다.
사랑하고 존경하고 축복하는 동역자 여러분! 예배자 여러분! 작은아들 여러분! 함께 일어섭시다. 새로운 삶이 눈앞에 펼쳐져 있습니다. 아직 늦지 않았습니다. 여전히 충분히 빛을 발할 수 있습니다. 그러니 더 이상 망설이지 말아야 합니다. Stand Up! Time For A New Start! 할렐루야!
결단 찬양 – 온전케 되리 + 주가 일하시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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