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진리와 르네상스의 세계(5-2)
참고 1. 그리스어로 미토스(mythos)는 두 가지의 뜻이 있는데, 신화(myth)와 플롯(plot)이다. 미토스가 가진 신화와 플롯의 관계를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즉 현대의 문화인들은 신화에 대한 경험을 신화의 이중 플롯(원형적 이미지의 2회 경험 플롯)으로, 이중의 체험(원형적 이미지)을 가진다. 먼저 현실에서 겪는 하나의 사건 즉 소설을 읽으면서 만나는 사건 속에서 나타나는 원형적 이미지를 1차 체험한다. 계속해서 제2차 체험은 바로 신화가 가지는 이상적인 세계속의 최초의 사건을 경험할 때는, 이것을 현실에서 영원회귀하여 이상세계에서 만나게 되는 최초의 사건을 다시 추체험한다. 여기서 추체험하여 다시 경험하는 것을 통하여, 두 번의 원형적 이미지를 경험하는데, 앞의 경험보다 뒤의 경험을 통하여 즉 반복하는 플롯(plot)을 통하여, 성현(聖顯. hierophany)을 경험하게 되어 마음이 성스러워지고 동시에 치유되는 기적을 만나게 된다. 예를 들면 <진달래꽃>에서 사건 A(시의 도입부)는 나보기가 역겨워 가실 때에는에서 한의 원형적 이미지를 만나고, 다시 사건 B(시의 종결부)에서 나보기가 역겨워 가실 때에는에서 한의 원형적 이미지가 되풀이(반복)됨을 경험한다. 여기서 영원회귀란, 앞의 사건 A에서 한의 원형적 이미지가, 뒤의 사건 B에서 한의 원형적 이미지의 최초의 사건(영원회귀한 최초의 사건. 즉 성현의 사건)으로 등장한다. 더 나아가 「구약성서」의 플롯에서는 사건 A는 첫째날 하느님께서 “빛이 생겨라”에서 천지창조의 원형적 이미지를 경험하고, 사건 B는 넷째날 하느님께서 “큰 빛물체 두 개를 만드시어... 큰 빛 물체는 낮을 다스리고...”라고 하였는데. 앞의 사건 A(첫째날)의 천지창조의 원형적 이미지가, 뒤의 사건B(넷째날)의 천지창조의 원형적 이미지의 최초의 사건(영원회귀한 사건. 즉 성현의 사건)으로 플롯을 구성한 성서신화작가의 놀라운 솜씨를 무의식에서 경험하면서 마음의 치유를 받는다. 이러한 천지창조의 경험은 아침에 떠오르는 태양을 보고, 천지창조의 신화를 떠올려서 즉 최초의 사건으로 영원회귀하여 성현을 경험하게 된다. 한편 다른 예술에서도 먼저 문학예술에서도 한의 원형적 이미지가 나오면 <진달래꽃>으로 영원회귀하여 성현을 경험할 수 있다. 또한 음악에서 반복도 음악사건 A와 B 사이에서 성현을 체험하고, 정신의 해리를 가져와서 스트레스를 치유한다. 미술이나 건축(최초의 지구라트가 영원회귀의 대상임)과 조각에서 만나는 것도, 최초의 사건을 가진 신화로 영원회귀하여 되돌아가서 성현을 경험한다. 따라서 좋은 신화는 자체에 이미 영원회귀를 체험할 즉 최초의 사건을 가진 신화이다. 더 나아가 우리가 신화를 많이 읽고 체험할 수록, 수 많은 최초의 사건을 즉 자신이 경험할 영원회귀할 사건을 많이 가지는 것이라서 부자가 되어서, 스스로는 성현을 체험할 많은 자료를 가진 교양인이 되고, 동시에 다른 이를 치유할 성현을 풍부하게 가진 부자 치유사가 되는 것이다.
참고 2. 중동의 아도니스 신화의 부활신화가 예수의 부활신화의 원형이다. 그리고 부부 이슈타르 여신의 살해와 탐무즈신(or 두무지신. 특히 길가메시의 두무지신과 엔키두의 우정)의 부활 신화도 아도니스의 다른 이름이다. 유목신의 여호와 하느님과 농업의 신 바알신과의 불화의 연속이, 구약의 솔로몬왕 이후에도 이스라엘의 멸망으로 나타난다. 참고로 아놀드 토인비는 <역사의 연구>에서, 시리아에서 5종교(유대교, 기독교, 조로아스터교, 미트라교, 이슬람교)가 발생하였다고 주장하였다.
참고 3. 티베트(티베트장경에서 <티베트 사자의 서>와 49제의 도입. 몽고의 라마교)에서 바이칼 호수까지의 <게세르 신화>에서 게르(천막속의 게세르신)에 사는 게세르신과 징기스칸신(테무진)과 단군신화에서, 게세르신과 단군신은 아버지신이 있음. 쌍봉낙타가 중심 이동수단이었고, 아라비아와 중동의 이슬람 지역은 단봉낙타(메르스 병원균 보유)임. 몽고(하라호름에서 나이밍호수로 이동할 때)의 오르혼(Orkhon river)강에서, 형제국인 고구려와 돌궐족(투르크 족)의 맹세(당나라 막아내기)가 적힌 기념비(김형오 전국회의장)가 있는데, 두 나라 모두 망하고 터키로 이동하면서 혼혈이 된 형제국 터키가 만들어짐.
참고 4. <진리와 르네상스>에서, 특히 강의 내용은 저의 연구 업적 4가지(or 노벨상을 타야할 4가지의 이유)는 다음과 같다. 즉 1). 제2 르네상스 제시(페이토 여신. 수사학 여신). 2). 시학(6장 공포와 연민)의 달레마 희극 해결. 3). 수사학 딜레마를 시학으로 해결(시학은 미토스의 수사학임). 및 신화( 미토스) 딜레마를 원형으로 해결. 4). 아이디어의 생성 메커니즘 제시. 특히 원형(or 신화)의 복사는 원상(or 원형적 이미지)이란 환상을 체험하면서, 원형적 이미지의 복사를 거쳐서 문화의 가상인 아이디어를 얻게 된다. 이것을 상징의 생성 메커니즘이라고 부른다. 이상 4가지 해결책의 제시는 세계 최초로 생각됩니다.
참고 5. 세계 신화에서 등장하는 영원회귀의 사상(주로 니체의 짜라투스투라)은 메뷔우스의 띠처럼 원(circle or Mandala 만다라)으로 순환하여 윤회사상과 연결되며, 신화에서는 주로 우루보루스(북유럽 신화의 요르문간드)와 차크라 그리고 우주수가 연결한다. 특히 우주수는 나라마다 있으며, 북유럽신화의 이그드라실과 한국의 단군과 관련된 것은 박달나무이다. 그리고 우주수는 세계의 중심에 자리잡은 유명한 바빌로니아의 건축물과 종교적인 건축물들은 신과 가까이 가려는 인간의 이상향이고 성스러운 성현(聖顯. hierophany)이 발생하는 곳이다. 그런데 신화가 가진 원형적 이미지와 영원회귀의 관계는, 즉 태양의 천지창조는 성현을 체험하게 하고, <진달래꽃>의 한도 실제로는 성현을 통한 인간의 신성한 모습을 재현하게 한다.
예를 들면 영원회귀의 모습은, 뫼비우스의 띠처럼 순환하여 영원에서 현실로 돌아오는 것을 말한다. 즉 필립 크로델은 소설문학작품에서, “... 영원회귀의 철학을 나타내듯 언약과 성취, 시작과 끝, 탄생과 죽음이 맞물리는 완벽한 원[차크라 or 만다라]이었다...”(필립 크로델, 회색영혼(이세진역), 서울: media 2.0, 2005. p.86)라고 하였다. 여기서 원(circle)은 다른 표현으로는 차크라인데, “차크라(Chakra)는 산스크리트 용어로 원 또는 바퀴를 의미한다. 많은 철학 시스템과 종교적인 계율과 개인적인 규율을 지지하는 차크라 모델, 철학과 학문에 관한 폭넓은 문헌이 있다. 차크라에 관한 이론들은 인간의 육체와 정신을 하나로 연결하는 시스템 때로는 나마루파라 불리는 것에 맞춘다. 에너지의 중심으로서 차크라의 철학적인 이론과 모델은 고대 인도에서 처음 성문화되었다...”라고 하였다.
또한 위키백과사전에서는, “뫼비우스의 띠(Möbius strip)는 위상수학적인 곡면으로, 경계가 하나밖에 없는 2차원 도형이다. 안과 밖의 구별이 없는 대표적인 도형으로서 비가향적(non-orientable)이다. 1858년에 아우구스트 페르디난트 뫼비우스와 요한 베네딕트 리스팅이 서로 독립적으로 발견했다. 모형은 종이 띠를 절반 만큼 비틀어 끝을 붙이는 것으로 간단하게 만들 수 있다. 사실 유클리드 공간에서는 어느 쪽으로 비트느냐에 따라 두 종류의 뫼비우스 띠가 존재한다. 따라서 뫼비우스의 띠는 키랄성(Chirality; 실제상과 거울상이 겹치지 않은 구조의 성질, 즉 회전반사대칭이 없는 구조의 입체적 성질)을 띤다. 뫼비우스 띠의 오일러 지표는 0이다...”라고 하였다.
먼저 위키백과사전에서는, “지구라트(Ziggurat)는 햇볕에 말려 만든 벽돌이나 구워 만든 벽돌로 만들어진 메소포타미아나 엘람 도시의 주신에 바쳐진 성탑(聖塔)이다. 원형은 우바이드기(Ubaid 期)의 기단(基壇)을 가진 신전으로서, 우르 제3왕조 우르의 지구라트는 난나르(Nannar)신에게 바쳐진 것으로, 기단은 3단인데 꼭대기에는 신전을 떠받들고 있다. '바벨탑'이라 하여 유명한 신바빌로니아 시대의 바빌론 성탑은 7층의 기단을 가진 마르두크신의 성탑이다. 걸프전쟁때는 이 주변에서 전투가 벌어진 적도 있다고 한다.”라고 하였다.
영원회귀와 관련된 또 하나의 우루보루스 뱀은 입으로 꼬리를 물고 있는 형상이다. 위키백과사전에서는, “우로보로스(그리스어: ουροβóρος)는 "꼬리를 삼키는 자"라는 뜻이다. 고대의 상징으로 커다란 뱀 또는 용이 자신의 꼬리를 물고 삼키는 형상으로 원형을 이루고 있는 모습으로 주로 나타난다. 수세기에 걸쳐서 여러 문화권에서 나타나는 이 상징은 시작이 곧 끝이라는 의미를 지녀 윤회사상 또는 영원성의 상징으로 인식되어왔다. 시대가 바뀌면서 우로보로스는 점차 많은 개념을 함께 지니게 되었는데, 특히 종교적·미신적 상징으로 중요한 상징의 하나로 특히 중세 연금술의 대표적인 상징물이 되었고 현대에서도 칼 융과 같은 심리학자들에 의해 인간의 심성을 나타내는 상징으로 여겨졌다. 따라서 어느 특정한 종류의 생물을 가리키는 것이 아니라 어떤 개념을 뜻하는 것이라고 볼 수 있다.”라고 하였다.
한편 나무위키에서는 “1. 신화, 상징으로서의 우로보로스: 간략화된 우로보로스 문양[생략]. 그리스 신화에 등장하는 자신의 꼬리를 물고 있는 용 혹은 뱀의 형상을 한 생물.Ouroboros[or uroboros]. 또는 북유럽 신화의 요르문간드가 이그드라실을 한바퀴 감고 자기 꼬리를 물고있는 모습이라고도 한다. 고대의 환수로서 불사조나 맨티코어같은 여느 환상종과는 달리 기호와 상징으로서의 의미가 강하다.[1] 무한한 순환을 의미하여 원형이기 때문에 '완전함'을 상징한다. [2] 또한 처음(머리)과 끝(꼬리) 사이에는 과정이 있는데, 과정은 언제나 변하기 마련이므로 '변화'를 뜻하기도 한다. 이러한 두 상징 때문에 우로보로스는 연금술에서 하찮은 금속을 완전한 금으로 변화시키는 현자의 돌을 상징하기도 했다. 그 외에도 윤회, 지식 등을 상징하기도 한다. 우로보로스나 우로보로스와 유사한 문양은 여러 문명권에서 나타나며, 오랫동안 전래되면서 그 의미가 점차 심오해진 것으로 보인다. 칼 융도 이 상징에 대해 연구한 바 있다.”라고 하였다.
또한 위키백과사전에서는, “영원 회귀(永遠回歸, 독일어: ewig wiederkehren)또는 같은 것의 영원 회귀(Ewige Wiederkunft des Gleichen)는 니체 철학에서 볼 수 있는 근본사상의 하나로 "똑같은 것이 그대로의 형태로 영원에 돌아가는 것(回歸)이 삶의 실상(實相)이다"라는 생각이다. 모든 생성(生成)을 한 원환(円環) 안에서의 되풀이로 보는 이 사상에서는 모든 점이 바로 중심점(中心點)이 되기 때문에 현재의 이 순간이 영원한 과거와 미래를 응축(凝縮)시킨 영원적 의미를 지니는 것이 되며, 이리하여 현재의 모든 순간, 현실의 이 대지(大地) 위의 삶 자체가 그대로 영원한 가치로 이어져 힘차게 긍정되어 간다는 것이다.”라고 하였다.
참고 6. 만다라에 대하여, 위키백과사전에서는, “만다라(曼茶羅, 曼陀羅, 산스크리트어: मण्डल, मंडल Maṇḍala, 원, 완료, 영어: Mandala)는 다양한 개체를 지칭하는 용어이다. "만다라"라는 낱말 자체는 "원(圓 · circle)"을 뜻하는 산스크리트어 만달라(मण्डल Maṇḍala)를 음을 따라 번역한 것이다.
만다라는 원래는 힌두교에서 생겨난 것이지만 불교에서도 사용된다. 주로, 힌두교의 밀교(탄트리즘 · Tantrism)와 불교의 밀교(금강승 · Vajrayana)의 종교적 수행 시에 수행을 보조하는 용도로 사용하는, 정해진 양식 또는 규범에 따라 그려진 도형을 가리킨다. 힌두교의 얀트라(यन्त्र · Yantra)도 이러한 도형에 해당하는데 만다라의 일종이라 생각할 수 있다. 보통 "얀트라"라는 낱말은 만다라와는 구분하여 힌두교의 문맥에서만 사용되는데, 반면 "만다라"라는 낱말은 힌두교와 불교 모두에서 사용된다. 힌두교와 불교의 전통에서, 만다라의 기본 형태는 사각형의 중심에 원이 있으며 사각형의 각 변의 중앙에 한 개의 문이 있는 형태로, 이 때 각 문은 주로 영어의 티(T)자 모양을 한다.[1][2] (오른쪽에 있는 불교의 금강계 만다라와 힌두교의 스리 얀트라 그림을 참조하시오.)
한문으로 번역된 불교의 밀교 경전에서, 당나라의 현장(玄奘: 602~664) 이전의 번역인 구역(舊譯)[쿠마라지바 Kumarajiva. 한역 구마라습 344-413 . 중국 후진시대의 구자국(현재 신장 쿠차)]에서는 만다라(曼茶羅)를 단(壇)이라고 한역(漢譯)하였다.[3] 반면 당나라 현장 이후의 번역인 신역(新譯)에서는 취집(聚集)이라고 한역하였다.[3] 한편, 만다라를 윤원구족(輪圓具足)이라 번역하기도 한다.[4]
한편, 불교에서, 만다라 꽃은 연화(蓮花: 연꽃)를 가리키며 불상(佛像) 앞에 놓인 제단을 만다라라고도 한다. 금강승(바즈라야나) 계열의 티베트 불교에서는 모래그림(sandpainting)을 사용하여 만다라를 제작하는 방법도 개발하였다. 이들을 모래 만다라(Sand-mandala)라고 한다.”라고 하였다.
첫댓글 참고 1을 다시 추가하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