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불교익산성지
등록번호 제179호 (2005년 6월18일 등록)
건립연도 1920년대
면적 1,304.9제곱미터
근대문화유산 지정
소태산대종사가 원기9년 6월1일 보광사에서 불법연구회 창립총회를 열고 북일면 신룡리에 건설 착수
19년간 교법을 편 전법성지이다
근대문화유산 등록문화재 제179호로 등록 익산성지 지정목록은 구조물8건과 조형물2건이다
대각전,본원실,공회당,종법실,금강원,정신원,구정원,청하원 이며
조형물로는 대종사 성탑, 대종사 성비가 된다
본원실 1924년 익산성지 최초 건물 . 불법연구회
세탁부 1924년 본원실과 함께 건립, 엿방으로 사용. 1971년 세탁업무
금강원 1927년 대종사의 처소, 교육장소로 사용
종법실 1928년 대종사가 1939년 이후 거처하던곳
공회당 1929년 대중집회장소
청하원 1932년 이공주종사의 사가, 소집회장소
대각전 1935년 최초 일원상 봉안
구정원 1936년 신영기 사가. 옛날 교정원 사무실로 사용
정신원 1941년 팔타원 황정신행 사가. 외빈 응접장소로 사용
송 대 1941년 대종사의 휴양, 원불교 정전집필이 이루어진 장소
종법실 1
1928년건립. 소태산 대종사가 열반시까지 조실로 사용.
평상시에는 내빈을 영접하고 밤에는 숙소로사용하였으며, 행사가 있을 때는 방 4개를 터서 대형공간으로 사용하는 등 여러 기능을 지닌 건물이었다.처음에는 영춘원이라 하였으나 1937년이후 조실로 사용되다가 1970년새로 지은 종법원으로 조실을 이전하면서 종법실로 고쳐 불렀다. 지금은 대종사님의 영정을 봉안하고 있다.공간의 융통성을 고려한 평면구성과 기둥의 간격조정 정면 현관 등에서 근대기 한옥의 변화모습을 볼 수 있다.
종법실2
본원실 1924년 건립
총부건설 원기9년 당시에 "불법연구회"란
원불교 익산성지에서 가장 오래된 건물로서 교단 초기의 생활상을 잘 보여주고 있다
원불교 교단 초기 소태산 대종사가 제자들과 함께 낮에는일을 하고 밤에는 교리를 공부하며 공동체생활을 했던 건물이다
처음에는 도치원 道治院이라 하였는데
이는 도둑고개로 불리던 땅에 도로써 다스리겠다는 의지를 표방한 것이다.
이 건물에는 방이 셋 있었는데 서쪽방은 대종사가 사용하는 [조실]이라 하였으며, 동쪽방은 팔산 등 5, 6명이 객실과 겸하여 사용하였다. 그 사이에 있는 조그마한 방은 교감실로 사용하여 정산종사가 기거하였다.
이곳에서 엿을 만들었으며 엿 목판을 잃었던 곳이기도 하다. 처음에는 4칸 겹집이었으나 동아실을 들여서 6칸 겹집이 되었다. 원기 12년경에 금강원을 지어 그곳으로 조실을 옮겼으며 원기 17년(1932) 8월에 앞 벽을 트고 유리 창문을 달았다.
세탁부
원기 9년(1924년) 9월 총부 건설 당시 본원실(일명 도치원)과 함께 최초로 지어진 집이다. 건립 당시 [ㄱ]자형으로 5칸 초가 홑집이나 뒤에 함석을 올리었다. 총부 건립 당시 간고한 생활의 방편으로 엿 장사를 하였는데, 이 집에서 엿 곱는 일을 하여 [엿집]이라 하였으며 곡주형 집이라 [꼭두마리 집]이라고도 했다.
원기 10년(1925년) 6월 엿방은 폐하면서 식당과 사무실 그리고 여자 숙소를 겸하여 사용하였고 후에 본원실의 조실(서아실)이 금강원으로 옮겨졌으므로 사무실이 본원실로 옮겨졌다.
원기 16년 경 다시 사무실(구정원)을 신축하여 옮김에 따라 [부인선원(여자선방)]으로 사용하기 위해 담장을 신설 개수하였다. 그 후 여자 숙소로 사용되어 오다가 원기 58년 중앙 선원이 발족함에 총부 내 세탁 업무를 담당하고 있으며 통칭 [세탁부]라고 불렸다
금강원 1927년 건립
소태산 대종사가 거주할 목적으로 세운 집으로교조가 기거하였기 때문에 조실이라고도 한다. 1937년조실이 영춘원(현 종법실)로 옮겨가기 전까지 대중을 가르치는 장소로 사용되었다. 구조와 외관은 남부지방 민가의 일반적인 모습이나 툇마루 대신 설치한 현관과 유리미서기문 내부 창호 등은 일식가옥의 영향을 받은 것이다.
대종사는 중앙총부 최초 건물인 [본원실]에 거주하다가 원기 12년경 금강원으로 옮기고 한때 조실이라 부르며 옥 호를 [금강원]이라 했다. (원기 12년경) 현재의 종법실(구조실)이 당시에 영춘원이라 불렸는데 금강원을 짓고 나서 대종사께서 기거하시는 조실이 되자 "원"이라는 격을 "헌"으로 바꾸어 [영춘헌]으로 이름이 바꿔지기도 하였다.
월말통신 12호(원기 14년 2월 발행)에 [금강원설법전]이라 한 것을 미루어 보아 이곳에서 대종사께서 설법 하였으며, 대부분의 집회나 선 등 대중 모임 장소로 사용되기도 했다. 대종경 전망품 20장 법문을 설하신 곳이다
공덕원
현 백년성업회 사무실로 사용
정신원
원기 26(1941)년 팔타원 황정신행 대호법이 총부 구내에 지은 사가이다. 그 후 총부에 희사하고 익산교당 창립 당시 이곳을 교당으로 사용하였으며 감찰원 사무실과 교서 편찬을 맡았던 정화사(正和社) 사무실로 사용되었다.
정산종사 탄생 100주년 기념 사업회 사무실로 쓰였다.
구정원
원기 20년 3월경 신영기의 개인 주택으로 건축되었으나 이듬해 이리 방면으로 이사하면서 총부에 희사하였다. 이곳을 개수하여 원기 21년 5월에 교정원 사무실을 이곳으로 옮겼다. 교정원 사무실을 원기 49년 8월 다시 신축하여 (식당) 옮기고 남자 숙소로 사용하다가 반백년 기념사업 때 사업회 사무실로 사용했다. 현재는 남자 교무 숙소로 사용되고 있다.
구정원]이라는 이름은 제일 처음 교정원 사무실로 사용했다 하여 [옛날 교정원]이라 했고 그 약칭으로 부른 것이다. 구조는 4 칸 겹집으로 현관이 있으며 별채로 2 칸이 있었는데 도서관과 창고로 사용하였었다.
청하원
청하원이라는 이름은 이공주 선진의 아호가 청하인데서 유래된 것이다.
원기 17년(1932년) 7월 구타원 이공주 법사가 총부에 와 본원실의 동아실을 사용하다가 본인의 사가로 지은 집이다.
그 후 원기 21(1936)년 9월에는 일제가 불법연구회의 동태를 감시하기 위하여 이리 경찰서 북일 주재소를 설치했던 건물이다.
청하원2
대종사 당대 제일 좋은 집이기에 응접실로 사용하기도 했다.
원기 48년 4월 11회 정기 수위단회에서 수도원의 발족이 인가된 후 청하원은 수도원이 되었으나 개교 반백년 기념사업 때 정문 확장공사로 담장과 문간채가 헐리게 되었다. 현재 중앙총부 정문을 들어서면 오른쪽 언덕 위에 세워져 있는 건물이며 수위단사무처가 사용되기도 하였다. 지금은 감찰원 감찰원장실로 사용되고 있다.
정화정사
원기48년 (1963년) 건축, 원기73년 개보수 현 정남숙소로 사용.
종전에 본원실, 금강원, 구조실 등에서 행하여진 선이나 예회도 이곳으로 옮겨져 행해졌으며 염불, 회화, 강연, 시국담화 등 원기 20년 대각전이 건축되기 이전까지 모든 행사를 이곳에서 행하게 되었다. 또 하나는 이 집은 원기 31년 개원된 유일학림(唯一學林·원광대학교 전신)의 강의가 이루어진 건물로 오늘의 원광대학교가 정식 인가되어 총부 옆에 터를 잡고 옮기자 남자 숙소로 사용되었다.
혜산 전음광 대봉도 사가 터로 복원된 건물
세심원?? 최초 동하선을 났던 곳
공회당 국가등록문화재 제179호 원불교성적 제16호
본원실, 금강원, 구조실 등에서 행하여진 선이나 예회도 이곳으로 옮겨져 행해졌으며 염불, 회화, 강연, 시국담화 등 원기 20년 대각전이 건축되기 이전까지 모든 행사를 이곳에서 행하게 되었다. 또 하나는 이 집은 원기 31년 개원된 유일학림(唯一學林·원광대학교 전신)의 강의가 이루어진 건물로 오늘의 원광대학교가 정식 인가되어 총부 옆에 터를 잡고 옮기자 남자 숙소로 사용되었다.
원기 39년 중앙선원이 개원될 때 이곳에서 시작하였고, 원기 48년 중앙선원이 발전하고 해체된 후 원광대학교 원불교학과 남기숙사로 사용되었다. 원기 57년 반백년 기념사업의 하나로 건물 서쪽 일부가 헐리어졌다. 집의 구조는 중앙에 남쪽으로 현관이 있고 다락 밑에는 지하실이 있는데 이곳은 양잠 할 때 비가 오면 이곳에 뽕잎을 저장하였다. 목조 7 칸 겹집으로 지붕은 함석이다
현재 공회당은 종법사의 교도 대중 접견이 이루어지고 있으며 아침에는 원불교학과생들의 좌선장소로, 저녁에는 총부 간사들의 일기 염불 장소로 활용되고 있다.
송대
소나무 숲 속에서 지어진 집으로 옆에는 대종사 성탑과 성비가 나란히 세워져 있다. 구전에 의하며 원기 26년 가을에 대종사가 휴양과 집필을 위하여 지어진 건물이라고 한다. 3칸 겹집으로 당시 조실이나 공회당(상주선원)에서 멀리 북쪽으로 떨어진 소나무 숲 사이에 세워졌다. 한때는 주요 환자들의 간병실 역할도 하였다. 원기 34년 2월 정산종사의 유시를 받아 교단 기관지인 월간 원광(圓光)이 창간된 산실로 이곳에 원광사(圓光社) 현판을 걸기도 하였다. 정산종사는 일제 말기에 자진 휴간된 <회보>를 계승할 교단 기관지 발행을 염원하고 시봉금을 약간 희사하면서 유일학림 졸업생 이은석, 이공전에게 원광지 창간을 독려하였다.
대각전
국가등록문화재 제179호 . 원불교성적 제 12호
원불교에서 최초로 일원상을 봉안한 건물이다
첫댓글 여유없이 사진을 찍다보니 건물이름을 모르고 찍은 것도 있네요
대각전은 거리상 찍지도 못하고...
일목요연하게 잘 정리했네요.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