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시에 집을 나섰다. 핵교 가는 길잉게 델다 준단다. 앞만 보고 있다. 콜롬방 병원 올라가는 네 거리에 차가 잠시 섰다. 무안허기도 해서 말을 걸었다. “어야, 쩌 꽃이 무슨 꽃이당가?” 뭐라고 대답헌디 목소리가 나무토막이다. “자네 삐쳐부렀능가?” “.....” 슬쩍 훔쳐봤다. 눈가에 물기가 묻어있다. ‘앗, 뜨거.’
2호 광장에서 걸어갈랑게 굽이길(커브길) 돌아서 세워도라고 했다. 굽이길에 앞 차들이 서 있다. 언능 내렸다. “어야, 고맙네. 고생허소. 나 갔다 올라네.”허고는 차에서 내렸다. 인도에 서서 반쪼기를 향해 손을 흔들었다. 눈은 안 준디 고개를 끄덕인다. 가심을 쓸어내리고 역으로 발길을 내딛었다.
약속 시간이 될라믄 10분 정도 남았다. 한참 이리저리 찌웃짜웃허고 있는디 “어이, 재성이!”헌다. 신서 성이다. 조금 있응게 재용이가 온다. 신서 성이 누군가한테 전화를 헌다. “민영감 님이 오신다고 했는디 어째 아직도 안 오싱고?”
30분이 다 되어서 영창 식당 쪽에서 이리로 담박질해 오는 분이 있다. 열혈투사 경선이 성님이다. 어깨에 가방 한나 들쳐 매고 구두발로 뛰어오신디, 역광장 아스팔트가 진동을 헌다.백발허고는 전혀 안 어울리게 다리심이 짱짱허다. “내가 좀 늦었제? 첫 차를 놓쳐부렀당게?” 아칙마동 2시간썩 뛰신단다. 정년을 코앞에 두신 양반이 해직교사 원상회복을 위한 국도 1호선 종단을 꿈꾸고 계신다. 목포 교육청에서 출발해각꼬 서울 교육부까지 걸어가실락 헌단다. ‘대단해요, 경선이 성!’
고속열차(케이티엑스)를 탔다. 승무원들이 별로 안 보인다. 경선이 성 말씀에 이쁜 여승무원들은 다 농성 중이란다. ‘아, 근다요?’ 자리를 잡자마자 잠속으로 빠져들었다. 넘의 자리에 앉었다가 주인이 자리 비워도락히서 한 번 깨고는 천안까지는 비몽사몽 헤매었다. 정신을 차리고 차창을 바라본다. 언뜻언뜻 차창 밖으로 펼쳐지는 풍경이 푸르싱싱허다. ‘요로고 아름다운 땅에서 전쟁을 헐라고 미군기지를 평택에 옮겨? 노꼴통 이 새끼는 찍소리도 못허고 미국놈들 똥꾸녁이나 뽈고 자빠졌고? 개씹새끼들...’
용산역 3층 먹거리터로 갔다. “어이, 재성이 자네 해물도 안 묵응가?” “해물은 묵어부러라우?” 바지락칼국시 허는 데로 갔다. 자리를 잡고 앉는다. 우리 바로 옆에 큰애기들 시 사람이 앙거 있다. 시 사람 다 ‘오동통헌 내 너구리’들이다. 근디 내 맞은 편에 앙거 있는 두 큰애기들은 눈을 감고 있다. 표정이 한 테기도 안 어둡다. 호박죽, 만두를 묵음시로 뭐라고 재잘댄다. 그 시 큰애기들한테 음석 가져다 주는 아짐의 눈길이 따숩다.
1시 15분에 교육부 농성장에 도착했다. 윤희찬, 차상철, 조희주 선생님들이 우리를 맞는다. 위원장님은 안 보이신다. ‘어디 가셨으까?’ 해직교사 원상회복 몸자보를 걸쳤다. 조금 있응게 후문 쪽이 시끄럽다. 누군가 길 건너에서 후문 쪽에다 대고 크게 소리친다. 역사 바로세우기 어쩌고저쩌고 헌다. 하루에도 몇 번썩 저런다고 헌다.
지난 번허고는 다른 펼침막도 걸려 있다. “특별정원 확보하고 특별전형 실시하라!” “쟁취하자 우리 권리, 실천하자, 바른 교육!” 우리 식군지 알았는디 쬐께 다른 양반들이 젙에 앙거 있다. 투쟁 391일째란다. 전국교육대학교 특별편입협의회 식구들이다. 사범대 나온 사람들인디 교육대학에 편입해라고 해서 했등만 나몰라라 허고 있단다, 교육인적자원부가! 1980년대 초반 전두환이가 축산 농가한테 한우 키워라고 돈 빌려줘서 키웠더니 소 수입해분 꼬락서니다.
3시에 해직교사 원상회복 쟁취를 위한 결의대회를 시작했다. 위원장님 대신 차상철 부위원장 님이 대회사를 허신다. 장혜옥 위원장님은 병원에 실려 가셨단다. 고재성이 전남 대표로 투쟁사를 했다. 2학기 시작허믄 몸자보 걸치고 살자고 했다. 교실에서도, 교무실에서도, 길거리에서도... 해직교사 원상회복은 추상적잉게 구체적으로 호봉인정이라고 허자고 했다. “해직교사 호봉 인정! 교원평가 결사 반대!”로 몸자보 만들어 입고 다니자고 했다. 그러고는 소리 한 도막 했다.
그 뒤로 제주지부 선생님이 말씀허셨고, 서울지부 원회추위원장님의 말씀이 이어졌다. 초등학교 때 18색 크레파스면 정말 좋은 거였는디, 자기는 36색을 갖고 있었단다. 근디 고곳을 잃어부렀단다. 그 담날 담임선생님이 요것 누구 것이냐고 크레파스를 들고 물어봤는디 차마 내 것이라고 말헐 수 없었단다. 부끄러워서..... 이을재 선상님 왈, 인제 부끄럽게 생각하지 말고 해직교사 원상회복을 당당하게 외칩시다. “참여정부 각성하고 해직교사 원상회복 즉각 실시하라!”
끝으로 부산지부 선생님 한 분께서 마이크를 잡았다. 당신은 전교조 이전에 해직되었단다. 80년에 1년 근무하고 군대 갔는디 바로 감옥으로 보내불드란다. 깜빵생활헐라고 군에 입대헌 꼴이었단다. 당신은 자식들한테 늘 역사 앞에 부끄럽지 않은 사람이 되라고 해오셨단다. 그 분 마지막 말씀이 이렇다. 당신도 부산상고 나오셨단다. “선배님~, 정신 좀 차리이소!”
결의대회가 끝나고 각 지부 원회추 위원장님들이 모여서 회의를 한다. 나머지 사람들은 쉬고 있다. 3시 50분께 사부님이 오셨다. “워메, 성 오셨소? 바쁘시꺼신디...” “응, 나도 한 번 와야지. 언제 왔나?” “오늘이요.” “요새 바쁘시제라?” “늘 그렇지 뭐.” “예, 말이요~, 동네 사람들~! 우리 박광수 선상님 오셨응게 아프신 양반들 언능언능 오시쑈, 야?” 하이간 속 창아리 없는 고재발이는 우리 싸부님이 조께 쉬는 꼴을 못 못당게라우.
4시 30분에 우리는 중앙인사위원회에 갔다. 문이 잠겨있다. 현관 안에는 전경 아그덜이 앙거 있다. 후문도 막고 안 열어준다. 지난 번에 만났던 과장이란 젊은이가 나온다. 낮익은 얼굴도 있고 처음 보는 이들도 있다. 대표단 6명이 올라갔다. 남지기는 정문 앞에 앉는다. 오줌이 매롭다. 후문으로 갔다. 문을 두들겼다. 전경 아그덜이 안 된다고 험시로 옆 건물로 가락헌다. 아니, 오줌도 못 싸냐고 항의했다. 늬기들이 따라붙으믄 안 되냐고 해도 막무가내다. 점잖허게 양복 입은, 머리 약간 벗어진 사람이 문 열어라고 헌다. 그래도 안 열어중게 자기는 정보과 직원이란다. 그렁게 열어준다. ‘어, 씨언허다!’ 나옴시로 그 사람한테 고맙다고 했다.
갑자기 전경들이 방패를 앞세우고 현관 문을 막는다. 옆에 앙거 있던 나는 영락없이 가들한테 포위당한 꼴이다. ‘계속 있으까?’ 허다가 빠져 나와부렀다. 이 놈들이 방구라도 껴불믄...
하염없이 시간만 죽이고 있었다. 해직교사들이 여그저그 앙거 있다. 경선이 성님이랑, 신서성, 재용이는 분수대 옆에 앙거 있다. 분수가 치솟아 오른다. 근디, 우리의 분노는 좀처럼 치솟아 오를 줄을 몰랐다.
싸부님허고 동무들허고 앙거 있는디 꼽사리 끼었다. 무심코 고개를 들었는디 바로 앞 난간에 손을 짚고 규완이가 씨익 웃고 서있다. 동의학 식구들이 한나 둘 모여든다. ‘또 무담씨 전화했으까?’ 속으로 좋음선도 미안허다. 창덕이, 우한이, 황관장이 나타났다. 서울물이 좋응갑다고 황관장한테 말을 건넸다. 얼굴이 안동서보다 훨썩 맑다.
6시 반에 온다던 저녁밥이 7시 50분이 되어서야 왔다. 밥을 날라 주고는 우리는 실비집으로 갔다. 실비가 뭐냐고 물었다. 말 그대로 실비란다. 많이 안 붙이고 싸게, 실비만 받는 집 말이다. ‘아하, 그렇구나.’ 우리는 할매집으로 갔다. 총각당 당수 몽시기 성님이 반갑게 맞는다. 2층으로 올라갔다. 서울 막걸리 15병 자빠쳤다.
9시 반께에 다시 중앙인사위 건물 앞으로 갔다. 안에 들어간 여섯 분은 계속 협의 중이다가 이제 항의 농성 중이란다. 우리의 요구는 이렇다. “교육부에서 호봉인정 헐라고 헌 것을 인사위가 막았다. 인사위원장이 사과해라. 둘째,호봉인정 해라.”
근디 경찰 놈들이 음석 못 들여다 준단다. 안에 계신 분들한테 드릴 깁밤 못 전해주고 있단다. 경찰 놈들이 허는 말, 인사위 직원들이 반입 못하게 했단다. ‘이런 쳐죽일 놈들!’ 경찰 책임자로 보이는 놈한테 거세게 항의했다. “예끼, 여보쑈. 전쟁 중 적군한테도 묵을 것은 믹이고 싸우요. 근디 이것이 뭣이오. 언능 갖다 주쑈!” 그러자 경찰 제복(진압복 말고) 입은 젊은 놈이 나한테 뭐라고 헌다. “야이, 개섀꺄! 너 금방 뭐라고 했어. 이 씨발 새끼 너 뒤질래? 이롸 이 개새꺄!”
주위의 만류로 고재술이의 난동은 금방 막을 내렸다. 그 덕(?)에 안에 계신 여섯 분의 식사는 곧바로 전해졌다고 헌다.
10시 20분께 사철가를 했다. 신서 성이 술 한자 허자고 헌다. 재용이허고 셋이 갔다. 쭈꾸미 볶음에 쐬주 시 병 자빠쳤다. 두 사람 치료했다. 신서 성은 오른 손으로 얼굴을 못 만진단다. 맥을 짚었다. 폐실이다. 폐기맥 끝에서 피를 땄다. 만져보라고 했다. “엉, 다네? 이것이 뭔 일이여!” 재용이가 다리가 아프단다. 오금쟁이다. 맥을 짚었다. 신실이다. 오금쟁이가 땡기쟈고 물었다. 그런단다. 신장기맥 크터리에서 피를 따고 오금쟁이 상응점에 침을 꽂았다. 일어나 보라고 했다. 일어난다. 걸어본다. 안 땡긴단다. 이번에는 신서 성 오른 다리가 아프단다. 무릎 부근 인대가 늘어났단다. 그것은 안 되지 않냐고 헌다. 또 가서 맥을 짚었다. 비장실이다. 피를 따고 무릎 상응점에 침을 박았다. 안 아프단다. 나는 술을 한잔썩 해야 침발이 받능갑다. 그래서 술지침이라고 헌다.
작년, 신서 성 아프게 해서 미안허다고 했다. 마음이 징허니 안 편했능갑다. 서운했던 야그를 헌다. 야그 중에, 작년 위원장의 행태에 대해서 또 쓴소리를 했다. 이 놈의 주댕이가 참 방정이다.
술자리에서 먼저 돌아와 대리석 바닥에 몸땡이를 뉘였다. 아하, 그랬다. 청계천 시작을 알리는 분수의 빛깔이 희거들 안 했다. 그 분수는 시컴시컴했다.<땡>