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양제철남초 졸업과 동시에 이국 멀리 독일로 축구유학을 떠났다. 그리고 2년 동안 선진축구를 익히며 고국으로 돌아올 날을 손꼽아 기다렸다.
그런 그가 지난겨울 2년 만에 귀국해 포철중학교 축구부에 새로운 둥지를 잡았다.
지역 명문 축구부 광양제철중 진학을 포기하고 포철중에 둥지를 튼 이유는 최문식 감독의 영향 때문이다. 최문식 감독은 현역시절 최고의 테크닉을 자랑하는 게임메이커 출신이다. 화려하면서도 아무도 흉내 내지 못하는 플레이로 팬들로부터 많은 사랑을 받았다. 이런 최 감독 아래서 축구를 배우고 싶어서 문창진은 고향을 떠나 포항에서 새 둥지를 틀었다.
이번 추계연맹전에서 문창진의 경기를 지켜보면서 최문식 감독 현역 때와 비슷한 축구를 구사하는 것을 볼 수 있었다. 중앙에서 자신이 충분히 볼을 갖고 있다 빈 공간이 생기면 일선 공격수들에게 연결하는 패스, 그리고 좌우로 흔들어 놓은 전환패스, 예리한 드리블 등 최 감독이 현역시절 보여주었던 플레이와 유사했다.
흔히 위대한 플레이메이커는 팀 전체를 지배한다고 이야기한다. 마치 그 선수의 의도에 따라 볼의 흐름이 이어지고 선수들이 움직이고 있다는 착각이 든다고 해야 할까.
플레이메이커는 이탈리아어로 레지스타(Regista, 연출가)라고 불리며, 공수 흐름을 조율하고 이끌어가는 역할을 수행한다. 한 마디로 필드의 사령탑이라고 말할 수 있다.
이번 추계연맹전 포철중의 축구를 보면 레지스타라고 불릴 만한 선수가 바로 문창진이 그 주인공이다. 솔직히 말해 2008년 포철중은 문창진의 팀이라고 까지 말할 수 있다.
올 시즌 포철중의 축구를 본 사람이라면 누구라도 인정할 것이다. 포철중의 볼 흐름에는 언제나 문창진이 관여하고, 그에 의해 전후좌우로 볼이 전개된다. 깔끔하고 간결한 볼 터치와 예리한 왼발 킥 능력, 경기를 이끌어가는 리딩 능력까지 갖춘 문창진에게 중학 최고의 플레이메이커라는 수식어에 토를 달수 없다.
5일 열렸던 추계연맹전 결승전 남수원중의 경기에서도 문창진의 진가는 그대로 드러났다. 경기 내내 포철중 공수를 이끌었던 문창진은 일선 공격수들에게 연결해주는 유효 패스는 곧 바로 득점으로 연결됐다.
사실 지금도 문창진은 중학교 최고의 플레이메이커로 각광을 받고 있지만, 이미 초등학교 시절 최고의 선수로 평가 받았던 선수였다.
한 가지 더 이야기하자면 예전의 문창진은 지금보다는 좀 더 공격적인 성향의 선수였다. 현재의 문창진이 공격수 아래에 위치해 전체적인 경기조율을 하는데 중점을 둔다면, 예전 광양제철남초 시절의 문창진은 최전방 공격수로 맹활약을 펼치며 득점을 책임졌었다.
이러한 포지션변화는 포철중 최문식 감독이 문창진의 특기를 살리기 위한 것이다. 예리한 패스와 드리블 돌파 능력을 주특기로 삼고 있는 문창진이 공격보다는 경기를 조율하는 미드필더 자리가 더 잘 어울린다는 것이다.
“맞아요. 예전에는 좀 더 공격적인 역할을 수행했죠. 지금도 경기 상황에 따라서는 좀 더 앞에 나서서 공격에 관여할 때도 있어요. 그날 그날 경기에 따라 감독님이 변화를 주시죠.
이제 중학교 3학년, 고교무대에서 새로운 도전을 준비해야 한다. 그리고 15세 상비군 선발에도 자신의 이름을 올려야한다. 15세 상비군에서 최고라고 각광받았던 많은 선수들이 중도에 탈락하고 있다. 문창진 역시 이를 알고 있기에 마음을 단단히 먹고 있다.
오랜 기간 독일에서 유학생활을 하면서 자신의 꿈은 언젠가는 또 다시 유럽무대에서 세계적인 선수들과 어깨를 나란히 하는 것이라고 한다.
이번 추계연맹전을 통해 이제 중학교 미드필드 선수 중 최고의 자리에 올랐고 팀도 정상에 올려놓았다. 고교무대에 진출해 좀 더 큰 선수로 발전하는 것이 일차적인 목표다. 그리고 유소년 상비군에 선발돼 그동안 유학생활로 들어가지 못한 대표팀에서 자신의 진가를 보여주는 것이다.
현재 대한축구협회 유소년 전임 지도자들도 문창진을 예의 주시하면서 지켜보고 있어 빠른 시간 내 상비군에 합류할 것으로 예상된다.
‘리틀 마라도나’의 천재성이 이제 서서히 빛을 발휘하고 있다. 이제부터 문창진의 활약상을 눈여겨 지켜보면서 어린 선수 한 명이 어떻게 자라나는지 관심을 갖고 예의주시 해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