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1.24.수요성령집회 설교
*본문; 고전 15:10
*제목; 승리하는 그리스도인의 삶(6) 축복보다 하나님의 은혜를 구하라!
“그러나 내가 나 된 것은 하나님의 은혜로 된 것이니 내게 주신 그의 은혜가 헛되지 아니하여 내가 모든 사도보다 더 많이 수고하였으나 내가 한 것이 아니요 오직 나와 함께 하신 하나님의 은혜로라” (고전 15:10)
1. 지난 주일 이야기
당신은 그리스도인입니까?
이는 ‘당신은 주님을 목자삼고 있습니까?’라는 말입니다.
이는 ‘당신은 어떤 일이든지 주님의 말씀만 좇고, 주님만 의지하는 자입니까?’라는 말이기도 합니다.
또한 이는 ‘목자이신 주님으로 인해서 늘 평안하며, 염려와 근심은 하나도 없는 자입니까?’라는 말이기도 합니다.
만일 그렇지 못하다면, 당신은 진정 주님을 목자삼고 있지 않는 자입니다.
이제부터 날마다 말씀을 읽고 듣고 묵상하십시오. 그리고 날마다 주님을 바라보며 주님 생각을 하십시오. 그리고 날마다 주님의 마음에 합당한 말과 기도로 사십시오.
그러면 주님이 목자되신 “승리하는 그리스도인의 삶”을 살게 될 것입니다.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물과 양식도, 짐승의 위협에 지켜줄 칼과 무기가 아니라 “목자이신 주님”입니다.
2. 축복과 은혜를 구별할 줄 알아야 한다.
우리는 세상이 누리는 복을 받기를 원합니다. 더 많이 가지고, 더 편하게 살고, 더 풍성한 삶을 누리길 원합니다. 이를 “축복”이라고 부릅니다.
그러나 성경에서는 이와 대조되는 것이 있습니다. 바로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축복”과 “하나님의 은혜” 같아보여도 전혀 다른 것입니다. 하나님의 은혜는 하나님께서 함께 하심을 의미합니다. 그러므로 축복을 받든지 그러지 못하든지, 하나님의 은혜를 항상 우리에게 임하게 됩니다.
믿음의 자녀들은 이를 구별할 줄 알아야 하고, 바른 은혜를 구하는 자가 되어야 합니다.
축복의 관점에서 “가나안”이 더 좋은 곳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은혜의 관점에서 보면, 오히려 “광야”가 더 좋은 곳일 수 있습니다. 왜냐하면 이 곳 광야에서는 은혜를 저절로 구하게 되기 때문입니다. 즉, 광야에서 우리는 자동적으로 하나님과 진정으로 동행하는 삶을 원하고 또 그렇게 살 수 있게 되는 것입니다.
“축복” 더 많은 것을 항상 원하지만, “은혜”는 더 많은 것이 필요 없습니다. 하나님이 언제나 함께 하시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은혜” 가운데 풍성할 수도 빈곤할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그 풍성과 빈곤이 우리의 “하늘 평강”으로 가득한 마음을 빼앗을 수 없습니다.
이 둘 사이의 가장 큰 차이점은 그래서 “행복”입니다.
“축복”은 항상 더 많은 것을 추구하기에 행복하지 못합니다. 그러나 은혜는 가진 것이 많든 적든 행복합니다. 하나님께서 함께 하시기 때문입니다. 그 함께 하시는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가장 필요한 것을 가장 필요한 만큼 채우시기 때문입니다.
당신은 “은혜”로 인해 행복하십니까? 그렇다면 당신은 진정한 하나님의 자녀입니다.
구약성서는 ‘광야와 가나안의 삶’의 역사를 표현한 것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스라엘은 ‘출애굽 광야’로 나아갑니다. 이는 ‘하나님을 바라보는 훈련의 시간이요, 약속한 가나안의 삶을 준비하는 시간’입니다. 그래서 자녀들에게는 필수적인 하나님의 프로그램의 시간인 것입니다.
이 광야의 시간에 하나님을 바라보는 것을 준비하지 못하면, 비록 가나안에 들어가더라도 다시 광야로 쫓겨나게 됩니다. 아직 훈련이 덜 되었기에 다시 훈련과정으로 보내시는 것입니다.
이스라엘은 40년의 광야학교에서 제대로 ‘하나님 바라보기’를 배우지 못했습니다. 그래서 가나안에서 세상에 시선을 빼앗기고, 세상의 기준과 우상에 빠져버립니다. 결국 그들은 70년 ‘바벨론포로’광야로 쫓겨납니다.
쫓겨난 그들은 깊이 묵상하기 시작합니다. ‘왜 이렇게 된 것일까?’
그때부터 그들은 다시 하나님을 온전히 바라보기 시작했고, “회당예배”를 통해서 그 믿음의 회복되기 시작했으며, 이를 통해서 ‘구약성서’를 기록하는 복된 시간을 가지게 됩니다.
가나안의 삶을 온전히 준비한 것입니다. 그래서 광야의 삶의 끝나기 시작합니다.
“은혜”를 구하기 시작하면, 하나님께서 함께 하시기 시작합니다.
그러면 고난조차도 복으로 변합니다. 왜냐하면 그 고난으로 인해 주님과 더 가까이 동행하기 때문입니다. 이것이 바로 은혜의 특징입니다. 이런 자들은 가나안의 삶을 온전히 누릴 수 있게 되는 것입니다.
가나안에 살고 계신 여러분! 여러분들은 ‘내가 벌어먹고 살고 있습니까? 모든 것이 다 하나님의 은혜입니까?’ 이것이 광야학교를 수료하고 못하고의 기준이 됩니다.
광야이든 가나안이든 모든 것이 주의 은혜로 된 것임을 고백하면, 광야이든 가나안이든 더욱 주님을 의지하게 됩니다. 그리고 모든 것을 주님께 맡겨드리게 됩니다. 그래서 은혜로 말미암아 믿음이 더욱 자라나고, 행복의 간증이 넘치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나 아직도 은혜가 아니라 축복을 구하고 있다면, 믿음은 점점 더 사그라들게 될 것입니다. 왜냐하면 내가 구하는 복은 ‘자꾸 더 큰 복’(더 큰 집, 더 큰 자동차, 더 좋은 직장,...)을 구하는 자가 되게 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만족하지를 못합니다.
그러니 이런 자들은 믿음이 점점 사라지고, 간증도 없습니다. 그러나 삶이 더욱 더 어려워지게 되는 것입니다.
축복보다 은혜를 구하십시오.
은혜 받고 나면, 오직 우리의 관심이 복에서 주님으로 바뀌어 집니다. 왜냐하면 “목자이신 주님” 한 분만으로 만족하다는 것을 알게 되기 때문입니다.
축복은 하나님보시기에 필요하시면 주십니다.(만나와 메추라기, 반석의 물처럼,...)
우리는 그래서 날마다 은혜를 구해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늘 동행하여 주시고, 나는 그 하나님을 늘 바라보는 자가 되는 것이 은혜입니다. 이런 은혜로 넘치기를 기도합니다. 아멘.
첫댓글 축복보다 은혜를 구하십시오. 은혜 받고 나면, 오직 우리의 관심이 복에서 주님으로 바뀌어 집니다. 왜냐하면 “목자이신 주님” 한 분만으로 만족하다는 것을 알게 되기 때문입니다. 축복은 하나님보시기에 필요하시면 주십니다.(만나와 메추라기, 반석의 물처럼,...) 우리는 그래서 날마다 은혜를 구해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늘 동행하여 주시고, 나는 그 하나님을 늘 바라보는 자가 되는 것이 은혜입니다. 이런 은혜로 넘치기를 기도합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