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 제528호 | |
| 포덕 159년 |
3월 셋째주 화요시일 | |
발행처:천도교 동천교구 / 발행인:강병로 / 편집인: 배영진/ 주소:부산남구못골번영로105(대연동) /전화(051)628-1300 FAX : 624-0519 |
시 일 식 순
집례 : 중암 김대석 교화부장
▶ 청 수 봉 전
▶ 개 식 심 고
▶ 주 문 3 회 병 송
▶ 경 전 봉 독 -- 동경대전 ‘포덕문’(15~22쪽) ---- 김현우 학생동덕(3)
▶ 천 덕 송 합 창 ---------교훈가(기1)(천덕송 7쪽, 1~2절)
▶ 설 교 ‘ 민중의 벗 해월신사님 ’덕암 성강현 종학실장
▶ 천 덕 송 합 창 ---송가, 개벽행진곡(천덕송 64쪽, 1~2절)
▶ 폐 식 심 고
* 음악준비 : 김창훈 학생동덕(3)
설교: 민중의 벗 해월신사님
덕암 성강현 종학실장
모시고 안녕하십니까?
오늘 신학년도 들어서 첫 시일입니다. 학생 동덕님들께서는 새 학년에 진급해서 새롭게 각오를 다졌을 것을 것입니다. 인생의 각 시기에 익혀야 할 것들을 제대로 익히는 것이 미래를 준비하는 좋은 길이아닌가 생각합니다. 열심히 최선을 다해 주십시오. 오늘 이 자리에는 새로 우리 학교에 오신 선생님들도 오셨습니다. 지난 2월에 선생님들과 함께 천도교의 발상지인 용담을 찾아 대강 말씀은 드렸지만 아직 낮설 것입니다. 학교 생활을 하면서 천천히 동학이 무엇인지 알아보기를 기대합니다. 동학천도교는 우리 역사의 자존심이며 자신의 삶을 풍요롭게 만들 수 있는 최고의 선택이라고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오늘은 동학의 제2세교조인 해월 최시형 신사님에 관해 말씀드릴까 합니다. 주요 내용은 지난 1월 3일 울산저널에 실었던 원고를 바탕으로 했습니다. 올 한해 울산저널에 해월신사의 일대기를 연재하고 있습니다. 힘들지만 의미 있는 작업입니다. 시간나면 울산저널에 들어가 한 번 보시기를 권합니다.
해월신사는 최보따리라고 불렸습니다. 신사께서 최보따리라고 불렸던 이유를 제자였던 오지영이 지은 『동학사』를 보면 짐작할 수 있습니다. “수운 선생이 세상을 떠난 후에는 해월 선생이 도의 제반 일을 맡아 보았다. 선생의 초명(初名, 처음 이름)은 경상(慶翔)이오, 개명(改名, 고친 이름)한 것은 시형(時亨)이니, 또한 경주 최씨 집안에서 출생했다. 선생은 어려서 그 부모를 잃고 가도가 빈한하여 남의 집 고용살이를 하였었다. 일찍이 수운 선생을 만나 도를 배워 깨달은 것이 있어 수운 선생의 심법(心法)을 받아 도의 장래를 당부하였었다. 수운 선생이 갑자년(1864년)에 변을 당한 이후 숨어서 몰래 다니며 경상·전라·충청·강원·경기·황해·평안 등의 각 도를 다니며 비밀히 도를 전하여 수만 명의 문도(門徒)를 두었었다. 사람이 점점 많아지고 지목은 점점 커서 고난의 생활로 몸을 마치었다.”
오지영의 말대로 해월신사께서는 늘 도망을 다녀야 했습니다. 그래서 그는 항상 보따리를 머리맡에 두고 잠을 잤다고 합니다. 그러다 관군의 급습하면 보따리 하나만 둘러매고 흔적 없이 어디론가 사라져 몸을 감추었습니다. 그렇게 신사께서 도망 다닌 기간이 35년간이었습니다. 우리나라 역사상 가장 오랜 기간 도망 다닌 도바리꾼(도망자를 일컫는 말)이었습니다. 그 힘든 와중에 신사께서는 백성들에게 다가갔습니다.
신사께서는 수운대신사의 가르침인 동학의 시천주(侍天主)를 실천하기 위해 ‘사람을 하늘과 같이 섬기라’는 ‘사인여천(事人如天)’을 강조하였습니다. 사인여천은 “어린 아이를 때리는 것은 한울님을 때리는 것이니 아이를 때리지 말라.”, “저 건너방에서 베를 짜고 있는 아낙이 한울님이다.”라는 실천으로 구체화하였습니다. 또한 “우리 도인 중에 있는 사람이 없는 사람에게 재물을 베풀어라.”라고 하는 ‘유무상자(有無相資)’는 당시 빈천한 사람들을 동학으로 이끌었습니다. 이렇게 해월신사께서는 백성의 벗으로 한 평생을 살았습니다.
해월신사가 아니었으면 전봉준, 김개남, 손화중 등이 일으킨 자주적 근대화운동인 동학농민혁명도 일어나지 못했을 것입니다. 동학농민혁명은 사람이 주인이 되는 세상을 외치던 동학의 세상을 만들기 위해 30년간을 한 걸음 한 걸음 디디며 전국을 다니며 백성들의 아픔을 어루만지며 새로운 세상을 같이 건설하고자 했던 해월신사의 발끝에서 시작되었습니다. 해월신사의 발걸음 속에는 우리 민중의 고통과 염원이 함께 담겨 있었습니다. 그 고통과 염원이 동학농민혁명으로 폭발한 것이었지요..
또한 일제강점기 독립운동도 해월신사의 영향을 받았습니다. 우리 독립운동사의 가장 중요한 인물인 손병희와 김구는 해월신사의 제자였습니다. 해월신사의 수제자인 동학의 3세 교주인 의암 손병희성사는 1919년 기미독립만세운동을 주도하였는데 그는 15년간 해월신사 밑에서 공부하였습니다. 대한민국임시정부의 주석 김구도 동학의 접주로 동학농민혁명에 참여하였습니다. 당시 황해도에 살던 김구는 충청도의 청산까지 내려와 해월신사를 만났습니다. 김구는 당시의 상황을 다음과 같이 기억하고 있었습니다.
어떤 고을 원이 도유(동학도)의 전 가족을 잡아 가두고 가산을 강탈하였다는 것이다. 이 보고를 들은 (해월) 선생은 진노하는 낯빛을 띠고 순 경상도 어조로 “호랑이가 물러 들어오면 가만히 앉아서 죽을까! 참나무 몽둥이라도 들고 나가서 싸우자.” 하시니, 선생의 이 말씀이 곧 동원령이다.(『백범일지』)
초기 동학농민혁명을 관망하던 해월신사께서는 동학도가 관에 의해 탄압을 받아 죽고 가산을 강탈당하자 이에 적극적인 대응해 동학도의 총기포령을 내렸습니다. 이러한 해월신사의 적극적 투쟁은 김구의 이후 독립운동에도 큰 영향을 주었습니다. 이처럼 해월신사는 우리의 자주적 근대화의 기틀을 마련한 인물입니다.
해월신사의 120주기를 맞는 오늘 우리가 해월신사를 주목해야 하는 이유는 지금 우리가 사는 이 시점이 신사께서 살던 시기의 마찬가지로 수많은 난제들이 얽매어져 있기 때문입니다. 밖으로는 미국과 중국의 영향력 확대와 일본의 우익화, 그리고 북한 핵 위기 등이 엄습하고 있고, 안으로는 금수저와 흙수저로 논란되는 빈부의 격차, 보수와 진보의 갈등 등이 산재해 있습니다. 해월신사의 생명사상을 실천했던 장일순은 이 시대에 해월신사를 주목해야 하는 이유를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습니다.
"이 땅에서 우리 겨레가 어떻게 살아가야 하고, 또 온 세계 인류가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가를 정확하게 알려주신 분이 해월이지요. 우리 겨레로서는 가장 자주적으로 사는 길이 무엇이며, 또 그 자주적인 것은 일체와 평등한 관계에 있어야 한다는 것을 그는 설명해주셨지요. 눌리고 억압받던 이 한반도 100년의 역사 속에서 그 이상 거룩한 모범이 어디 있겠어요? 그래서 저는 해월에 대한 향심이 많지요. 물론 예수님이나 석가모니나 다 거룩한 모범이지만, 해월 선생은 바로 우리 지척에서 삶의 가장 거룩한 모범을 보여주시고 가셨죠."(『나는 미처 몰랐네 그대가 나였음을』 )
장일순의 말대로 우리 가까이에서 삶의 가장 거룩한 모범을 보여주며 우리가 살아가야 할 방향을 제시해준 분이 해월신사이십니다. 이것이 바로 동학 천도교의 실존입니다. 해월신사께서는 수운대신사로부터 시천주의 가르침을 익혀 인생의 참 의미를 찾았습니다. 그리고 이런 세상을 실현하기 위해 35년간 도바리꾼으로 살면서도 “사람 섬기기를 한울님같이 하라”, “어린아이도 한울님을 모셨으니 사람어린아이를 때리지 마라.” “저 새소리도 한울님의 소리이다.”라고 백성들에게 전하며 오늘 우리가 추구하는 생명과 평화의 새로운 패러다임을 제시하였습니다.
동학에서 이야기하는 개벽은 바로 해월신사의 삶에서 찾을 수 있습니다. 우리 천도교인들은 이러한 해월신사를 닮으려고 노력하는 사람들입니다. 앞으로 같이 노력하면서 해월신사가 그랬던 것처럼 힘을 모아 개벽의 세상을 만들어 나갑시다. 감사합니다.
사계명(四誡命)
1. 번복지심(飜覆之心) 두게 되면 이는 역시 역리자(逆理者)요,
2. 물욕교폐(物慾交蔽) 되게 되면 이는 역시 비루자(鄙陋者)요,
3. 헛말로 유인(誘引)하면 이는 역시 혹세자(惑世者)요,
4. 안으로 불량(不良)하고 겉으로 꾸며내면 이는 역시 기천자(欺天者)라.
임사실천 십개조(臨事實踐 十個條)
1. 윤리를 밝히라. 2. 신의를 지키라. 3. 업무에 부지런 하라. 4. 일에 임하여 지극히 공정하라. 5. 빈궁한 사람을 서로 생각하라. | 6. 남녀를 엄하게 분별하라. 7. 예법을 중히 여기라. 8. 연원을 바르게 하라. 9. 진리를 익히고 연구하라. 10. 어지럽고 복잡한 것을 금하라. |
☞ 제36회 졸업식 실시(2/13) : 본교 제36회 졸업식이 지난 2월 13일 원곡관에서 실시되었다. 각계 내빈이 참석한 가운에 실시된 이날 졸업식에서는 천도교 교령상에 강수윤 학생, 천도교교육자회장상에 정원빈 학생, 흥신포 도정상에 조유신 학생, 동천교구 교구장상에 김정철, 허규태 학생이 수상하였다.
☞ 신임교사 용담정 연수 실시(2/22) : 올해 새로 부임한 선생님들에 대한 연수가 지난 2월 22일(목) 경주 용담정에서 실시되었다. 이날 연수는 천도교 창도지 용담정에서 참례식을 갖고 천도교를 건학이념으로 설립된 동천고등학교의 의미와 학교생활 전반에 대한 연수를 실시하였다. 이번 연수에 교구에서는 강병로 교구장, 성강현 종학실장, 김대석 교화부장과 신임 선생님으로는 백은혜, 길도영, 윤정환, 윤지영, 이아라 선생님 등이 참가하였다.
☞ 제99주년 3.1절 기념식 실시(3/1) : 제99주년 3.1절 기념식이 지난 3월 1일 오전 10시 30분 전 교직원과 1,2,3학년 전교생이 참석한 가운데 원곡관 3층에서 실시되었다.
☞ 성강현 종학실장, 해월신사 일대기 <울산저널> 연재 : 성강현 종학실장이 천도교 제2세 교조 해월신사님의 일대기를 <울산저널>에 연재하고 있다. 지난 1월 3월부터 연재되고 있는 해월신사님의 일대기는 총 30회 분량으로 예정되어 있다.
■ 다음 화요시일 안내 ■
집 례 | 경전봉독 | 천덕송 합창 | 설 교 | |
봉독자 | 내용 | |||
기암 신원기 교무부장 | 정대성 학생동덕(3) | 동경대전 ‘논학문’(23~32쪽) | 제2장 교훈가(기2)(8쪽, 1~2절) | 노암 강병로 교구장 |
송가, 동학행진곡(천덕송 66쪽, 1~2절)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