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만사 어찌보면 하늘이 정해 준 운명따라 가고 있는것인지도 몰라.
다음주에 내가 안보이걸랑 운명따라 지방에서 못올라 온줄 알아래이.
글코보니 운명이란 뭘까? 운명을 알수있는 방법은 없을까?
그 운명을 알수 있다는 예언자들이 많지만 정말 운명을 점치는 사람은 드문것 같아.
서울 미아리고개에 가면 요즘도 철학관들이 즐비하다.
계룡산 처녀보살, 지리산 총각신점, 소백산 할매점집 등등 이름도 다양하다.
그런데 참 재미있는 것은 첨단과학을 살아가는 현대인들이 더욱 점을 맹신한다니
아이러니가 아닐수 없다. 그럼 너무나 유명했던 옛 예언가 이야기를 한자루 할께.
옛날, 이조 숙종대왕이 평복으로 변장을 하여 영의정만 대동을 하고 민심을 살펴
보려 몰래 궁궐을 빠져나갔다. 한참을 가다가 어느 냇가를 지나는데 더벅머리
총각하나가 허름한 관 하나를 옆에 놔두고 슬피 울면서 땅을 파고 있는게 아닌가.
상을 당해 묘를 쓰는 것은 흔한 일이지만 파는 족족 물이 스며 나오는 냇가에
혼자서 묘자리를 파고 있는 더벅머리 총각의 처량한 모습에
"아무리 가난하고 땅이 없다해도 어찌 시신을 물속에 넣으려고 하는지 희한하다"
그래도 무슨 사연이 있겠지 하며 다가갔다.
"여보게 총각, 여기 관은 누구 것인고?"
"제 어머님 시신입니다"
"여기는 왜 파고 있는가 ?"
"어머님 묘를 쓰려고 합니다."
숙종이나 영의정은 짐작은 했지만 너무나 어처구니가 없었다.
"이보게, 이렇게 물이 솟아나고 있는데 어찌 어머니 묘를 쓰려고 하는가?"
"저도 영문을 모르겠습니다. 오늘 아침에 어머니께서 갑자기 돌아가셨는데,
저 언덕위에 혼자 사시는 갈처사라는 할아버지가 찾아와 저더러 불쌍타 하면서
이리로 데려와 이 자리에 묘를 꼭 쓰라고 일러 주셨습니다."
숙종이 연신 눈물을 훔치는 총각을 보니 가엾기도 하고 또한 이런 몹쓸짓을
하라고 시킨그 갈처사라는 노인이 괘씸하기 짝이 없었다.
궁리 끝에 지니고 다니던 지필묵을 꺼내어 몇 자 적어 총각에게 주며,
"여기 일은 내가 보고 있을 터이니 이 서찰을 가까운 관아로 가져가게.
수문장들이 성문을 가로 막거든 이 서찰을 보여주게."
총각은 또 한 번 황당했지만 두 선비를 보니 정말로 자기를 생각하고 있었다.
그래서 급히 관아로 달려갔다.
서찰에 적힌 내용은 다음과 같았다.
"어명! 이 사람에게 당장 쌀 삼백 가마를 하사하고,
좋은 터를 정해서 묘를 쓸 수 있도록 급히 조치하라."
관아가 갑자기 발칵 뒤집혔다. 허름한 총각에게 유명한 지관이 동행되지 않나,
창고의 쌀 삼백섬이 바리바리 실리지를 않나....
"아! 상감마마 !!, 그 분이 상감마마이셨다니!" 총각은 하늘이 노래졌다.
냇가에서 자기 어머니 시신을 지키고 서 있을 임금님을 생각하니 몸 둘 바를 몰랐다.
한편 숙종은 총각이 떠난 뒤, 갈처사를 혼 내 주려고 가파른 언덕을 올랐다.
단단히 벼르고 올라간 언덕엔 찌그러져가는 단칸 초막이 볼품없이 달랑 있었다.
"이리 오너라"
한참 뒤에야 안에서 말소리가 들려왔다.
"게 뉘시오?"
시큰둥하게 손님을 맞는 주인은 영락없는 꾀죄죄한 촌 노인네 행색이다.
콧구멍만한 초라한 방이라 들어갈 자리도 없다. 숙종은 그대로 문밖에서 물었다.
"나는 한양에 사는 선비인데 그대가 갈처사 맞소?"
"그렇소만 무슨 연유로 여기까지 나를 찾아왔소?"
"오늘 아침 저 아래 상을 당한 총각더러 냇가에 묘를 쓰라고 정말고 그랬소?"
"그렇소만 뭣이 잘 못 되었소?"
"물이 펑펑 솟아나는 냇가에 묘를 쓰라니 당치나 한 일이요?
불쌍한 총각을 돕지는 못할 망정 어찌 그리 골탕을 먹일 수가 있단 말이요?"
숙종의 참았던 감정이 어느새 격해저 목소리가 커졌다.
갈씨 또한 낮선 사람이 찾아와 다짜고짜 언성을 높이니 기분이 좋지 않았다.
"선비란 양반이 조또 모르면서 참견이야. 그 땅이 얼마나 좋은 명당터인 줄
개코도 알기나 해?" 하며 소리를 지르는 통에 숙종은 기가 막혔다.
속으로 이놈이 감히 어느 안전이라고, 어디 잠시 두고 보자 하고 감정을 억 누르며
"저 냇가가 어떻게 명당이란 말이요?"
"모르면 가만이나 있지, 저기는 시체가 들어가기도 전에 쌀 3백가마를 받고
다시 명당으로 들어가는 땅이야. 시체가 들어가기도 전에 발복을 받는 자리인데
물이 있으면 어떻고 불이 있으면 어때? 조또 모르면 잠자코나 있으시오"
숙종의 얼굴은 그만 새파랗게 질려버렸다. 갈처사 말대로 시체가 들어가기도 전에
총각은 쌀 3백가마를 받았으며 명당으로 옮겨 장사를 지낼 상황이 아닌가!
숙종은 갈처사의 대갈일성에 얼마나 놀랬던지 자신도 모르게 목소리가 공손해졌다.
"영감님이 그렇게 잘 알면 저 아래 고래등 같은 집에서 떵떵거리고 살지 않고
이런 산마루 오두막에서 산단 말이오?"
"이 양반이 조또 모르면 가만있을 것이지 귀찮게 떠들기만 하네"
이제 숙종이 깍듯한 존대말을 쓰고 갈노인이 반말을 쓰는 형국이 되고 말았다.
"아니, 무슨 말씀인지" 숙종은 아예 주눅이 들다시피 되었다.
"저 아래 고래등 같은 기와집에 사는 것들은 남을 속일 줄이나 알지 아무 소용이
없어. 그래도 여기는 지금 비록 초라하지만 나랏님이 손수 찾아올 명당이란 말일세."
숙종은 그만 정신을 잃을 뻔 했다. 이런 신통한사람을 일찍이 만나본 적이 없었다.
"그렇다면 임금은 언제 찾아옵니까?"
"거, 꽤나 귀찮게 물어오네. 잠시 기다려 봐. 내가 재작년에 이 집을 지을 때에
날 받아놓은 것이 있는데..., 가만있자..... 어디에 있더라"
하면서 방 귀퉁이 보자기를 풀어서 종이 한 장을 꺼내어 먼지를 털면서 들여다보더니
그만 대경실색을 하며 그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밖에 나와 큰 절을 올리는 것이었다.
"상감마마, 소인이 미처 못알아 뵈어 죽을 죄를 지었습니다."
종이에 적힌 시간이 바로 지금 이 시간이었던 것이다. 임금을 알아본 것이다.
"여보게.... 갈처사, 괜찮소이다. 대신 그 누구에게도 결코 말하지 마시오.
그리고 내가 죽은 뒤에 묻힐 자리 하나 잡아주지 않겠오 ?"
"대왕님의 은덕이 하해와 같사온데 소인이 신하로서 자리 잡아 드리는 것은 무한한
영광이옵니다." 숙종은 갈처사의 두손을 맞잡아 일으키며 기쁘게 웃었다.
그리하여 갈처사가 잡아준 숙종의 왕릉이 지금 서울의 서북쪽 은평구 역촌동에서
일산 가는 작은 고개를 넘어 서오릉에 자리한 "명릉"이다. 아래 사진 참조.
그 후 숙종대왕은 갈처사에게 3천냥을 하사하였으나 갈처사는 숙종의 성의를 봐서
노자 30냥만 받아들고 어딘가로 홀연히 떠나갔다더라. 구름에 달 가듯이....
참고로 서울의 서북쪽에 있는 서오능엔 다섯 능 외에도 장희빈의 묘도 있다.
또한 서울의 동북쪽에는 동구능이 있는데 아홉 능의 가장 윗쪽엔 이성계의 능이 있다.
서울 근교에 이곳만큼 녹음 우거진 산보길도 흔하지 않으니 가족이나 연인과 가면
더없이 좋은 곳들이다. 쉬엄쉬엄 둘러보고 나오면 동구능 주위엔 값싸고 맛있는
태능돼지갈비집들이 있고, 서오능 입구엔 유명한 두부집들이 즐비하니 콩으로
만든 별미음식을 먹어보는 것도 너무 즐거울거야. 먹고 배부르면 연인과 모텔로 가던지...
이야기가 조금 틀어지고 말았다. 여튼 인생이란 철길따라 가는 기차처럼 운명따라
가고 있으니 억지로 역행하려 들지 말고 그저 주어진 운명에 물 흐르듯 순응하는
것이 어쩌면 가장 현명한 인생길이 아닌지 모르겠다.
친구들아, 시방 뭐락꼬? 나에겐 야한 이야기나 어울리지 철학적 이야기는 안어울린닥꼬?
e 18, 어떤놈은 첨부터 공자로 태어난다냐? 일타가보마 차츰 사람이 되어가는거지.
기분나빠서 오늘 이야기는 여기서 접어야 겠다. 모두 건강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