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걸
하단 5일장은 로터리에서 당리까지 이어진 긴 골목의 장터이다. 중간에 들어가 좌우로 다니는 게 낫다. 싸전과 피복, 과일, 채소, 먹거리 등 온갖 가게와 가운데 햇볕과 비 가림 천막 장사가 즐비하다. 빤한 빈터마다 난전이 다닥다닥 붙어서 무엇을 팔려고 소리치며 춤추듯 움직임으로 땀 흘린다.
부산에선 구포와 오시게 이곳 장이 크다. 동서와 북쪽으로 구포는 양산과 대동 등 낙동강 주위 농산물이 모이고 오시게는 동쪽 끝으로 울산 쪽에서 찾아든다. 여기 하단은 서낙동강으로 명지와 김해, 신항, 진해 쪽 바닷가에서 드나든다. 남포동과 자갈치, 이름난 국제시장, 부전시장, 부산진시장 등은 갈 때마다 일년내내 문을 열어놓고 기다리는 것 같다.
백화점과 큼직한 마트가 마을마다 있어서 될까 해도 사람들로 득시글거린다. 대개 오전에 성하고 오훈 파장으로 시들해진다. 이른 봄엔 수많은 나무 묘목과 갓 키워낸 농작물 모종을 내다 판다. 가을엔 울긋불긋 과일이 풍성하다. 부산이어서 싱싱한 해산물이 장마다 마구 퍼덕거린다. 살아 움직인다.
그 좁은 골목을 누비며 다니는 장수가 있다. 과자 몇 개를 놓은 돈통 수레를 밀고 땅바닥을 기어 다니는 사람이 눈길을 끈다. 쿵작쿵작 음악이 들려 내려다보면 어기적어기적 긴다. 가슴엔 바퀴 달린 납작한 것을 깔아댔다. 하반신을 못 쓰는가 긴 비닐 통바지를 입고 마치 인어처럼 꿈틀꿈틀 허우적거린다.
세상에 이런 가엾은 사람이 있을까. 어쩌다 이리됐나. 안 주고는 못 배긴다. 눈을 껌벅이는 그 불쌍한 모습은 바로 내일 같아 보인다. 시장통을 몇 번이나 그렇게 오르내리는 것 같다. 가슴이 쓰리다 오늘 저녁을 어디서 자고 어떻게 먹으며 사나. 그게 걱정이어서 내내 찡하다. 이 밝은 세상에 그런 게 눈에 밟혀 못내 얼찐거린다.
얼마 뒤 잊어갈 때쯤 장 어구에 대고 아내가 나올 때를 기다렸다. 인어 옷을 입은 그 친구가 일을 마쳤는가 가득한 돈통을 밀고 나왔다. 바로 앞 가게 주인을 부르더니 천원 지폐 몇 장을 준다. 장날마다 그렇게 하는가. 그를 번쩍 안아 운전석에 앉히니 손으로 이리저리 만지작거리다 스르르 차가 빠져나가 가뭇없이 사라진다.
얼른 보니 천원 지폐와 동전으로 그득하다. 모두 합쳐도 얼마 안 되지 싶다. 지하철 하단역 지하도 긴 회랑 기둥에 앉아 하모니카를 계속 불고 있다. 모자를 푹 눌러쓴 채 앞에는 종이통을 펼쳐놓았다. 지난날 한물간 하모니카를 그리 열심히 불고 있다. 동요에서 가곡, 가요 등을 부르는 것 같다. 저 끝까지 울려 한참을 들으며 걸었다.
서면 영광도서로 가는 에스컬레이터을 타려면 그 앞에 모자를 놓고 앉아있다. 어느 날은 꿇어엎드려서 손바닥을 모아 ‘한 푼 줍쇼.’ 하는 표정이다. 어떨 때는 편하게 책상다리로 모자를 앞에 두었다. 가다 오다 생각나면 주세요. 하는 눈치다. 다 다른 사람이다. 지하철 계단 중간쯤에 앉아서 엎드려 애원하듯 기다리는 사람도 있다.
겨울 추운 날 부산역 주위엔 전국에서 모인 노숙자들이 지하철 구석 벽면에 골판지를 깔고 앉았거나 웅크리고 있다. 펑퍼져 곯아떨어져 누워 자는 사람도 있다. 여자도 간간이 보인다. 어떤 이는 술병을 마시다 말고 어정쩡 들고서 지나는 사람을 이리저리 훔쳐본다. 광장 나무 아래 이부자리를 펴고선 술병이 뒹군 채 얼큰 취해 왁자지껄하다. 꽃밭 가운데 한구석 차지 한 사람은 되게 편해 보인다. 그러면서 지나는 사람에게 대놓고 돈 달라한다.
젊은 사람도 있어 지그재그 걸음을 걸으며 가로막아선 어디 가느냐 표를 샀느냐 물어보고 시비를 건다. 잘못 걸리면 멱살을 잡힐 수 있다. 이들 문제로 역전 파출소는 번번이 출동하면서 편할 날이 없다. 와선 어찌할 수 없다. 쫓아내는 수밖에. 조용하면 다시 나타나서 여상스레 찝쩍대며 다가온다.
돈통을 보니 백 원 동전이 고작이다. 지폐는 주머니에 넣는지 안 보인다. 멀찍이 가다가 살펴보니 그냥 지나치는 사람이 많다. 넣는 이는 드물다. 돈을 고이 주는 게 아니라 슬쩍 던진다. 요즘 동전 백 원과 오백 원은 돈 같지 않아 주머니에 없다. 천 원 지폐도 별로 소용이 없는지 지갑에 안 보인다.
모든 게 넘치는 풍요로운 세상에 어디 가서 심부름해도 될 텐데 저러나 생각이다. 사대육신이 멀쩡한 대 무언들 못하겠나. 그러니 쓸데없는 동전을 던지며 가는 게 아닌가 한다. 술 취해 자유롭게 오가는 이를 가로막아 행패를 부리는 못난 일로 말썽이다. 부랑아 수용소에서 먹고 입고 재워주면 얼마 못 가 뛰쳐나와 거리를 헤맨다. 그렇게 다녀야 속이 시원하다.
그 속엔 이래라저래라 아침저녁 점호 취하고 자유스럽지 못하다. 떠돌이 신세를 알면 이게 얼마나 별천지인가 알게 된다. 제멋대로 버르장머리없는 망나니다. 여긴 법도 필요 없고 질서 따위는 관계치 않는다. 경찰이 붙들어놓고도 어찌해야 할지 난감하다. 결국 조심해서 다니라는 훈방이 고작이다.
토성동 지하도를 나오는데 난데없이 뒤에서 ‘돈 천 원만 주세요.’ 한다. 젊은 여자이다. 괘씸한 생각이 든다. 어디 가서 뭘 해도 될 텐데 저러는가. 그런데 한참 가다가 그만 발길이 멈춰 선다. 얼마나 답답했으면 그 많은 사람에게 소리치며 도와달라 했겠나. 내려가 찾아봤지만 어디로 갔는지 가뭇없어라.
동전이 다 뭔가 그것으로 뭘 하나. 겉은 멀쩡해 보여도 되게 몸 아파 배고픈 사람이다. 다 뭉쳐도 밥 한 그릇값이 되겠나. 역전에 노니는 부랑아 걸인과 노숙자도 그들 나름 복잡한 속내가 있다. 모임을 마치고 친구와 서면 지하도를 걸어가는데 한 남자가 허기지는가 겸연쩍게 돈 천 원만 달란다. 지난번 토성은 여자이더니 이번엔 남자인가.
얼른 지갑을 열어 손에 잡히는 지폐를 쥐여줬다. 저쯤 가다가 뒤돌아보니 서서 멍하니 보고 있는 남자이다. 그동안 그들에게 냉정했던 게 미안하다. 보니 열에 한 사람 넣을까 말까 하다. 그것도 동전이다. 지폐를 늘 준비해서 보면 가까이 다가가 허리 굽혀 넣어준다. 앉은 사람만 보면 혹시 아닌가 살핀다. 다 그쯤의 여유가 있지 않은가.
첫댓글 노숙자들이 가끔 지하철에 타기라도하면, 불쾌한냄새하고 철에 맞지않는 옷차림..이 한여름에도 패딩을 입고다니니,악취는 상상을 초월합니다."젊어서 어디 한곳에라도 열정쏟아서 일을 해보기나 했을려나...싶은 사람들입니다.열악함과 배고픔에 고통스러운것보다 참견받지않는 자유로움이 더 좋을래나요?
배고프다며 천원만 달라는 남자에게 만원을 줬더니 놀라 멍하니 서 있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