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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양오씨 대종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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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대댁 손자 글방 스크랩 서울성곽 혜화동구간 답사기
오대댁(병연) 추천 0 조회 241 08.06.30 08:54 댓글 1
게시글 본문내용

 

한성대입구역(=삼선교(三仙橋)역:역이란 역에 죄 대학 이름을 붙이는 것도 병폐다)

5번 출구로 나와 혜화동 쪽을 바라보면 왼쪽 언덕 위에 성문이 있으니

서울 도성(都城) 4대문 4소문 중 동소문(東小門)인 혜화문이다.

 

 

 

 

혜화문(惠化門)

 

성문(城門)을 길에 세우지 않고 왜 저런데 올려 붙여 놓았을까?

우리 조상들도 바보가 아니니 처음부터 저랬던 것은 아니다.

 

동소문(東小門)-혜화문(惠化門)은 언덕 아래 한길에 있었다.

일제 강점기인  1928년 문루(門樓)가 먼저 헐리고, 

1939년 도시확장하며 혜화동고개를 자르고 남아 있던 돌문마저 없애 버린다.

 

근년 도성을 복원하며 혜화문도 1992년부터 3년에 걸쳐 다시 세운다.

그러나 원 위치에 만들자니 미아리-돈암동-혜화동-도심으로 이어지는

도로 흐름이 막혀버린다. 그래서 할 수 없이 근처를 고른 것이 저 언덕이다.

 

이제 원래 혜화문과 그 주변 모습을 조선 후기 그림으로 살펴본다.

 

동소문(東小門)

겸재 정선(謙齋 鄭敾), 영조30년 (1754) 경

 

 

비단에 엷은 채색, 16.7 x 18.1 cm, 고려대학교 박물관 소장

 

창경궁과 서울대 병원 사이 언덕에서 바라본 그림으로

왼쪽은 응봉(鷹峯)에서 내려오는 산자락이고,

오른쪽 나무 무성한 봉우리가 낙산(駱山),

그 아래 구름이 휘감아 도는 곳이 대학로다.

혜화문 올라가는 길 오른 쪽 기와집  근처가 지금 혜화동 성당쯤일 것 같다.

홍예(虹霓-아치)만 있고 문루(門樓)가 보이지 않는 것은 임진왜란 때

불탄 문루(門樓)를 영조 20년(1744년) 재건 하기 전 모습이기 때문이다.

 

혜화동 고개에 터널을 만들고 그 위로 혜화문을 옮기자는 주장이 있는데

그렇게 한다면 저 겸재 그림과 비슷한 광경이 될 것이다.

 

서울에서 강원도, 함경도는 혜화문을 나가 미아리 고개 넘어 양주, 포천으로

가야 했기에 이름은 소문(小門)이지만 대문(大門) 이상으로 붐비었다.

여진의 사신은 혜화문으로 들어 왔다. 이리로 들어와 대학로를 거쳐

지금 이화대학병원 자리에 있던 숙소-북평관(北平館)으로 갔을 것이다.

 

 

 

 

혜화문은 늘 잠겨 있다.

관리 때문에 그런 것 같은데, 일정 시간만이라도 개방했으면 좋겠다.

닫힌 문 틈으로 샛눈 뜨고 홍예 천정화를 보니 새가 그려져 있다.

보통 성문에는 용을 그리는데 혜화문에는 봉황이다.

 

 

렌즈를 문틈으로 간신히 넣고 찍은 사진이다.

작은 보급형 디카니 망정이지 큰 카메라 같으면 어림도 없을 뻔 했다.

그런데 어째 닭 같이 생겼다. 하긴 닭이나 봉황이나….

 

봉황을 그린 이유는 새 피해를 막기 위해서라는데,

왜 혜화문 근처에 유독 새가 많았을까?

새 먹이는 들판이 너른 동대문이나 남대문 밖에 더 흔하지 않았을까?

Fact 가 아니라 전설임을 알지만 짐짓 까칠하게나가 보았다.

 

창의문(彰義門 : 서북문)에도 봉황 또는 닭을 그렸는데

그 이유는 문 밖 형세가 지네 같아 그 천적인 닭을 그렸다고 한다. 

 

 

 

안내판 내용에 신경이 쓰인다.

숙정문이 도성 4대문 중 하나이고 또 북쪽에 있지만

북대문(北大門)이 아니라 북문(北門)으로 보통 부른다.

한자는 肅正門 이 아니라 肅靖門 이다.

 

문체도 공무원 냄새가 풀풀 난다. 

‘위치한’ 대신 ‘있는’ 이라고 쓰면 격이 떨어지나?

‘지어졌다’ 는 중학교 1학년이 영어 수동태를 직역한 듯 하고,

‘본래의 이름’ 에서 ‘의’는 없어도 뜻이 통하고 또 빼는 것이 좋다.

없어도 좋을 ‘의’를 자꾸만 넣는 것은 일어(日語) ‘노’를 번역하던 버릇이다.

 

여기뿐 아니라 어디 가나 안내판은 문면이 대강 이런 식으로

진한 관료 냄새에 일어 잔재까지 들어가 있다.

 

위 안내판 설명대로 동소문 처음 이름은 홍화문(弘化門)이었다.

성종 때 대비가 셋 씩이나 (세조 비, 예종 비, 성종 어머니 인수대비) 되어

창덕궁이 비좁았다. 이에 수강궁을 확장하여 창경궁이라 하고

그 정문에 또 홍화문(弘化門)을 붙인다. 그러자 두 문 이름이 같아져

혼란스러워 중종 때 동소문 이름을 혜화문(惠化門)으로 바꾼다.

 

혜화문 옆으로 복원한 성벽이 잠깐 이어지는 듯 하다가 소공원이 나타난다.

 

 

 

 

소공원에서 성벽은 끊어지고 길 건너에 서울시장관사가 있다.

 

 

 지금은 시장관사 지만 필자 어렸을 때는 대법원장 공관이었다.

 

 

축대(築臺)가 된 성벽

 

 

 

서울시장관사 축대는 분명히 성벽 돌이다.

 

조선일보 2005.11.09

서울성곽 위에 앉은 市長관사 이전을..

 

전략(前略)... 서울시장 공관 축대가 된 서울성곽은 기초 부분의 경우

가로 1m30㎝ 이상, 세로(높이 부분) 60~70㎝에 이르는 큰 돌이 사용됐는데,

중략(中略)

 

서울성곽은 서울시장 공관 동쪽과 북쪽 축대 구간을 포함,

이 일대에서 서북쪽으로 200m 정도 이어진다. . 중략(中略)

 

서울시 김홍기 문화재과장은 “서울성곽을 보존하기 위해

서울시장 공관 이전을 하는 것은 원칙적으로 옳다고 본다”며

“그러나 이전 및 신축 비용 문제 등 다양하게 파생되는 문제도

고려해서  결정해야 할 사안”이라고 밝혔다.   하략(下略)

 

 

너무나 자연스러운 변신(變身)

 

 

 

왼쪽은 옛 성곽 돌이 분명하나 오른 쪽으로 가면서 두산빌라 축대로

바뀌는데 천의무봉(天衣無縫)으로 이음매를 찾을 수 없이 자연스럽다.

 

 

두산 빌라부터 다시 성벽은 끊어지지만 완전범죄가 없듯이

흔적은 어떤 식으로든 남는다. 두산 빌라에서 약 50m 떨어져

혜성교회 올라가는 계단 옆이 수상하여 살펴보니 옛 성곽돌이다.

 

 

 

 

혜성교회 계단에서 다시 50m 쯤 더 가 앵두 1길 팻말 있는 곳

축대 아래 쪽도 역시 옛 성곽돌이다.

 

 

 

곧 경신(敬信)학교가 나오면서 흔적이 그만 끊어진 듯 하다.

 

 

 

사진: 경신 운동장. 옛 성곽 선은  이 운동장을 가로 질렀다.

경신(敬信)은 오래 된 학교다. 아펜젤러가 배재학당을 세운 것이

1885년인데 그 다음 해인 1886년 언더우드가 경신을 건립했다.

 

 

경신학교 뒷담장에서 성곽 흔적은 다시 나타난다.

 

 

 

 

경신학교 뒷담이 끝나는 곳에 돈가스 집이 두 군데 있다.

먹어보아도 특별히 맛 있는지 잘 모르겠던데 많이들 찾아 온다.

 

 

돈가스 집 길 건너 과학고가 있고 그 오른 쪽으로

2-30m 내려가면 복원한 성곽이 다시 시작된다.

 

 

 

사진 왼쪽 성안으로 난 길로 걸으면 쉽다. 그러나 성곽답사는

바깥으로 돌아야 제 맛이 나니 오른 쪽 소공원으로 들어간다.

 

 

 소공원에서 성벽이 계속 보이지만 길은 덤불과 집으로 곧 막힌다.

따라서 공원 오른 쪽으로 내려와 쌍다리길로 이름 붙은 길을 따라간다.

몇 십 미터 가면 왼쪽에 크린토피아라는 대형 클리닝 점포가 나오고

그 옆 골목으로 올라가면 성곽이 나온다.

 

 

 

 

 

여기서부터 약 3-400 m 는 성을 따라 걸을 수 있다.

 

 

그러다 쓰레기가 널린 곳이 나온다. 성곽 탐방로가 제대로 정비되지 않아

지저분한 곳은 여러 군데지만 여기는 소규모 매립장 같은 기분마저 든다.

 

 

 

앞쪽이 몹시 어지럽지만 약 100 여 미터 더 나아 갈 수는 있다.

그러나 사진상 숲이 우거진 곳에 이르면 길이 완전히 막혀 버린다.

따라서 사진 앞쪽-오른 쪽으로 해서 아래로 내려가 우회해야만 한다.

 

 

다 내려가면 북정 2길이 나오고 성벽은 왼쪽으로 올라가야 할 것 같지만

끝이 막혀있다. 되돌아 나와 북정 3길로 가는데 비교적 넓은 길이라 재미가 없다.

 

다시 성벽에 붙을 수 있는 길이 어디일까?

궁리하며 골목을 누비는데 그 재미가 또 쏠쏠하다.

 

 

 

벽돌집들 지붕 왼쪽으로 멀리 성곽이 보인다.

사진 왼 쪽 쌀가게로 꺾으면 시간이 정지한 듯한 골목이 나온다.

 

 

 

차는커녕 사람 둘이 스쳐 지나가기도 힘들 정도다.

막다른 골목 같지만  가 보면 뚫려 있다.

처음 가는 동네지만 어디서 본 듯한 느낌-기시감(旣視感)

드는 것은 옛날 다 이런 데서 놀며 자란 탓이다.

 

 

 

골목을 빠져 나오면 북정길이고, 왼쪽으로 성벽 암문(暗門)이 보이면 그리로 가야 한다.

 

 

 

암문에서 위쪽으로 성 바깥을 따라 길이 있으나 100 여 미터 가면 다시 막힌다.

 

 

사진 중앙 집 있는데 쯤에서 더 이상 갈 수 없다.

따라서 이제는 암문(暗門)으로 들어가야 한다.

 

 

성벽 안쪽은 탐방로가 잘 정비되어 있다.

5분 가면 와룡공원이 나오니 이번 답사 종점이다.

 

 

 사진: 와룡공원

 

이상 구간을 구글 지도에 나타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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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 08.06.30 09:50

    첫댓글 성북구 우리 동리 인데도 아직 지나치고 말았던 혜화문 성곽 답사기를 섬세하고 자상히 안내해 주시니 직접 본듯합니다 본다해도 그냥 지나칠수밖에 없겠지요 안내판이 맘에 걸리는군요 수正문 하루속히 바로잡아 두어야할일이군요,감사합니다,뫼셔갑니다,므흣!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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