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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약 1만여톤에 달하는 배수량과 길이 190미터 폭 20미터에 달하는 거대한 합선으로 9문의 200밀리 함포와 8문의 130밀리 부포 그리고 다양한 대공포로 무장한 전형적인 포클랜드급 순양함으로 2차대전동안 수많은 해전들을 겪으면서도 침몰하지 않았던 함선중 하나였습니다.]
[수많은 전쟁을 무사히 빠져나간 그녀의 마지막 임무는 바로 2차대전을 끝낼 비장의 무기인 첫 프로토타입 원자폭탄을 실험을 위해 티니안섬으로 운반하는 임무였습니다. 그리고 언제나 그랬듯 무사히 그 임무를 완수하고 돌아가던중...]
[임무를 완수하고 전함 USS 아이다호와 함류하기 위해 필리핀해 근처의 레이티만을 지나다 일본해군의 I-58 잠수함이 발사한 어뢰6발중 2발을 맞고 침몰하게됩니다.]
[두발의 어뢰가 인디아나 폴리스호를 강타하는 바람에 (한발은 뱃버리에 이러 두번째 명중은 연료탱크와 탄약실을 날렸다) 두동강난 함선은 그대로 침몰하였고 탑승했던 1196명의 승무원중 900여명이 바다위로 뛰어내렸습니다.]
[갑자기 이른 폭발로 대부분의 수병들은 구명쪼끼만을 입고 뛰어내릴수 밖에 없었고 구출된 사흘후 생존자는 고작 3백여명에 불과했습니다. 대부분은 굶주림과 열사병 그리고 상어의 공격으로 실종되거나 사망했습니다. 이는 2차대전중 두번째로 많은 승무원을 잃은 사고였으며 미해군 2차대전 최후의 침몰 함선이였습니다.]
참사내용:인디애나폴리스호 침몰
참사요인:어뢰로 인한 침몰,상어의 공격,굶주림,갈증,열사병등
참사시간:1945년 7월 30일 오전 12시 14분
장소:필리핀만(괌과 필리핀 사이의 내해)
사상자:승무원 1196명중 879명 사망
참사유형:선박침몰사고,맹수에 의한 사고
발생장소
세계 최초로 사용된 원자폭탄은 1945년 7월 26일 전함 인디애나폴리스호에 의해 티니안섬으로 수송되었다. 인디호는 괌에 있는 태평양사령부에 보고를 하고 다음 임무를 부여 받았다. 그리고 일본 침공을 준비하고 있는 전함 USS 아이다호와 합류하기 위하여 필리핀의 레이티 걸프로 향하였다. 인디호는 호위함 없이 괌을 떠나 시속 17노트로 항해하고 있었다. 1945년 7월 30일, 자정을 14분 지난 시각, 목표지점까지의 중간지역에서 일본 잠수함 I-58이 발사한 6발의 어뢰 중 두 발을 맞았다. 첫 어뢰는 뱃머리를 날려 버렸고, 두 번째 어뢰는 연료탱크와 탄약이 실려 있는 우현의 중간 부위를 강타하였다. 이때문에 일어난 폭발로 배는 바닥까지 쪼개졌으며 배의 모든 전기장치가 작동을 멈추었다. 수 분만에 배는 우현쪽으로 기울면서 뱃머리 부터 가라앉기 시작하였다. 배가 가라앉는 12분 동안 승무원 1196명 중 약 900명이 바다에 뛰어들 수 있었다. 구명 보트는 거의 내려지지 못하였다. 대부분의 생존자는 구명조끼를 입었을 뿐이었다. 첫날 해가 떠오르면서 상어의 공격이 시작되었으며 이후 5일 후 구조될 때까지 상어의 공격이 계속되었다.
아래 사진들은 당시 상황의 재현이다.
인디애나폴리스호의 승무원을 공격한 장완흉상어(Oceanic whitetip shark,Carcharhinus longimanus).
4일째 오전 11시가 조금 지난 시각, 대잠수함 초계 비행을 하던 PV-1 Ventura Bomber에 의하여 생존자들이 발견되었다. 조종사 윌버 그윈 중위는 많은 군인들이 바닷물 속에 떠 있다고 기지로 무전을 보냈다. 애드리언 마크스 중위가 지휘하는 수상비행기가 급파되었고 구축함 세실 도일호가 사고 해역으로 향하였다. 비행기는 도일호가 도착하기 수 시간 전부터 바다에 고무보트와 필요한 물품을 투하하기 시작하였다. 그리고 생존자들이 상어의 공격을 받는 광경을 목격하였다. 착륙이 금지되어 있었음에도 마크스 중위는 바다에 착륙하여 생존자들을 비행기에 싣기 시작하였다. 그들이 인디애나폴리스호의 승무원임을 알게된 마크스는 이 소식을 무전으로 보내고 즉각적인 지원을 요청하였다. 도일호가 그리로 가고 있다고 응답하였다. 완전한 어둠이 깔리자 마크스는 지원이 오기를 기다리면서 거의 죽어가는 사람들을 계속하여 찾았다. 비행기 동체안에 사람들이 꽉 차자 그는 낙하산줄로 생존자들을 비행기 날개에 묶었다. 마크스와 그의 승무원들은 이날 56명을 구조하였다. 세실 도일호는 현장에 처음 도착한 구조함이었다. 바다의 생존자가 부상을 입지 않도록 도일호는 멈추어 섰고, 마크스가 구조한 사람들을 옮겨실었다. 도일호의 함장은 위험을 무릅쓰고 배의 가장 큰 서치라이트를 하늘에 비추어 다른 구조선들이 찾아올 수 있도록 하였다. 이 등댓불은 대부분의 생존자들에게 그들의 기도가 응답받았다는 첫번째 신호가 되었다. 마침내 신의 가호가 내렸구나. 바다에 뛰어내린 약 900명 중 단지 317명 만이 살아남았다. 거의 5일에 걸친 상어의 공격, 굶주림, 무서운 갈증, 뜨거운 태양, 부상에 의한 고통을 이겨내고 인디애나폴리스호의 승무원들은 결국 구출되었다.
인디애나폴리스호의 비극은 대중들에게 거의 2주일이 지난 8월 15일에야 알려졌으나 일본의 항복을 전하는 트루먼 대통령의 담화문에 묻혀버렸다. 그러나 해군은 역사상 최대의 비극이 된 이 사건의 책임이 어디에 있는지를 알기 위하여 서둘러 자료들을 수집하였다. 이것은 판단을 흐리게 할 수도 있는 조급한 결정이었다.
군사법정은 함장 맥베이에게 유죄를 선고한다. 1990년에 이르러서야 미정보국이 일본군의 암호를 해독하여 두 척의 일본 잠수함이 인디애나폴리스호의 항로에서 활동을 하고 있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는 사실이 들어났다. 이 사실은 당시 법정의 재판관이나 맥베이함장의 변호인에게 제공되지 않았다. 미해군은 잠수함 탐지 능력이 없는 인디애나폴리스호를 위험한 지역으로 보내면서 호위함을 붙여달라는 멕베이함장의 요청을 무시하였던 것이다. 군사법정은 맥베이함장이 어뢰를 맞은 당시 군함을 버리고 탈출하라는 명령을 한 증거가 없다고 문제 삼았다. 하지만, 어뢰를 맞은 인디애나폴리스함은 전기시설이 정지하여 그렇게 할 수가 없었다.
또한 군사법정은 어뢰에 피습당한 날 밤, 맥베이함장이 적의 공격을 막기위하여 지그재그로 운항하지 않았다는 사실을 문제 삼았으나, 그날 밤은 시계가 극히 불량하여 그렇게 운항할 수 없었다는 사실이 밝혀졌다.
뿐만이 아니다. 일본 잠수함이 인디애나폴리스호를 격침한 직후 미국의 전함을 격침시켰다고 일본해군본부에 보낸 무전보고를 미정보국이 암호해독 하였으나 이를 무시하였다는 사실도 밝혀졌다. 미군 당국이 즉시 조사에 나섰더라면 더 많은 수병의 목숨을 구하였을 것이었다.
인디애나폴리스호를 격침한 일본 잠수함의 함장은 2000년 초 죽기 수개월전에 한 인터뷰를 통하여 당시 군사법정은 처음부터 맥베이함장을 옭아넣으려고 했던 것 같은 인상을 받았다고 밝혔다. 그는 그때 군사법정에 증인으로 출두하였었다.
2차세계대전 중 350척의 미국 군함이 격침되었으나 다른 어떤 함장도 그때문에 법정에 서지는 않았다.
맥베이함장에 대한 군사재판은 미해군 역사의 한 오점으로 남아 있다.
출처:dyatrima님의 블로그 |
2차대전 비극으로 불리는 2차대전 미해군 전순양함 USS INDIANAPOLIS "CA-35' 가 드디어 다음주에 출시됩니다.
생각보다 빠르게 출시되는데 같은 제품을 트럼페터에서 출시하기 때문에 앞서 내는것 같습니다.
이 제품은 요즘 빠르게 함선제품을 출시중인 아카데미의 4번째 1/350 함선 제품입니다.
당연 신금형이고 요새 절정의 실력을 보여주고 있는 아카데미답게 끝내주는 품질을 보여주고 있는 제품입니다.
2013년 4월26일 출시예정 권장소비자가격 38,000원 판매처 미라지의콤프방 (www.compmania.co.kr)
현재 비밀방에서 저렴하게 공동구매중입니다.~~
미라지콤프방 공동구매는 비밀방에서만 진행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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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Wrighten By Mirageknight (2013.4.17 Ver 1.0)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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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중요한내용이 빠져있네요..... 함장님이 몇년후 권총자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