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달 금융당국의 경고에도 불구하고 은행들이 주택담보대출을 크게 늘린 것으로 나타났다. 또 상반기 전체로도 주택담보대출이 중소기업 대출보다 더 많이 늘었다.
3일 금감원에 따르면 올 들어 6월까지 국내은행의 주택담보대출은 18조원 가량이 늘었다. 같은 기간 중소기업 대출 증가액(16조2000억원)보다 많은 규모다.
특히 6월엔 중순부터 대출을 줄이라는 금융당국의 경고가 있었는데도 1~5월의 월 평균(3조원)보다 많은 3조5000억원(추정치)의 주택담보대출이 나갔다.
또 주택담보대출 가운데 집을 사기 위해 빌리는 대출의 비중도 1월 46%에서 5월에는 55%로 높아졌다.
부동산 가격 상승은 국지적 버블
그러나 지방의 주택 분양시장에선 여전히 미달 사태가 속출하고 있다. 결국 은행에서 풀린 돈이 서울 강남 등 일부 지역으로 몰리고 있다는 것이다.
이에 따라 정부는 최근의 부동산 가격 상승을 '국지적 버블'이라고 판단하고 은행들을 상대로 대출 자제를 촉구하는 구두 개입과 창구지도를 강화하고 있다.
이는 전국의 부동산 가격이 일제히 오를 때 예고 없이 전격적으로 규제를 시행하는 종전의 부동산 투기 근절대책과는 다른 것이다.
실제 최근 기획재정부ㆍ금융위원회ㆍ금융감독원의 수장들은 연일 주택담보대출의 위험성을 지적하면서도 당장 구체적인 규제를 내놓진 않고 있다. 대출 증가세가 꺾이지 않으면 언제라도 규제하겠다고 경고하면서 대출의 '소프트랜딩'을 유도하고 있는 모습이다.
1차 저지선은 이미 쳐놓았다. 금감원은 하반기에 은행들이 주택담보대출을 얼마나 늘릴 것인지를 제출받았다. 대출을 줄이라는 압박이다. 다음 카드는 대출한도를 정해놓고, 각 은행별로 한도를 배정하는 총량 규제다.
윤증현 기획재정부 장관은 3일 KTV 정책대담 프로그램에서 “부동산 규제를 해야 한다면 주택담보대출 총량 규제를 해야 한다”고 말했다.
대출규제 부동산 시장 위축시킬 수도
그래도 돈이 계속 풀린다면 주택담보인정비율(LTV) 등을 상향 조정하는 방안이 나올 가능성이 크다. 진동수 금융위원장은 이날 전국경제인연합회 강연에서 “시장 불안이 우려되면 대출기준 강화 등 선제적 대응방안을 강구하겠다”고 밝혔다.
다만 이같은 조치가 언제 나올지는 미지수다. 정부도 건설·부동산 경기 위축을 의식하고 있다. 윤 장관도 “지금은 LTV 등 규제를 수정할 단계는 아니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전문가들은 주택담보대출의 증가세를 곧바로 부동산시장의 과열로 연결하는 시각에 우려를 보이고 있다. GS건설경제연구소 지규현 박사는 “집값이 오르고 거래량이 증가한 건 서울과 수도권 일부 지역에 국한된 현상인데, 이를 시장 전체로 확대 해석해서는 안된다”며 “과열을 막겠다는 대출규제가 자칫 막 기지개를 켜는 부동산시장을 위축시킬 수 있다”고 말했다.
실제로 서울만 하더라도 강남 3구를 제외한 다른 지역은 상반기 아파트 값이 보합권에 머물거나 오히려 소폭 내렸다. 거래도 거의 이뤄지지 않고 있다.
분양시장도 마찬가지다. 인천 청라지구 등지를 중심으로 최근 청약과열 양상이 나타나긴 했지만 이달 초 주택공사가 경기도 군포시 부곡지구에서 분양한 아파트는 청약 1순위에서 90% 가량이 미달됐다.
지난달 우미건설이 김포 한강신도시에서 내놓은 단지와 4월 한양이 파주 운정신도시에서 분양한 단지는 3순위까지 가서야 겨우 모집 가구 수를 채웠다. 지방 분양시장은 더 심각해 상반기 분양된 40여 개 단지 대부분이 순위 내 청약자가 서너 명 정도다.
권오열 한국주택협회 부회장은 “대출규제의 폭과 대상 지역을 세분화해야 한다”며 “그렇지 않으면 정부가 공을 들인 부동산시장 활성화 노력이 수포로 돌아갈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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