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68회 살점이라도 떼어줄 듯 살뜰하던 사람이었건만
오늘 이 시간에도 역시 전 시간에 이어서 두만강 가에 나의 인생을 묻었다고 쓴 탈북여성 정은아씨의 수기를 들려드리도록 하겠습니다.
함께 손잡고 두만강 물에 들어선 19살내기 연이가 무섭다고 훌쩍인다.
“무섭다니, 뭐가 무서운데? 다 버리고 가는 이가 무서울 것이 뭐가 있는데? 너 이만한 것도 생각하지 못하고 왔어? 울지 마.” 독이 밴 나의 조용한 목소리에 연이가 울음을 그쳤다.
그랬다. 아무 미련도 두려움도 없었다. 죽음을 각오해야 하는 그 순간만큼은 소중한 내 목숨도 생각지 않았다.
그렇게 넘어왔다. 내 고향의 끝인 두만강을... 다 버리고 텅 빈 가슴엔 죽지 않고 살아야 한다는 한마디만 달랑 품은 채... 꽉 꽉 채워진 얼음 위에 간신히 남아있는 그 한마디가 강가에 선 내게는 인생의 목표였다.
한번 묻어버린 소중한 추억을 다시 꺼낼 기회는 북송의 위험이 그림자처럼 따라다녔던 중국 땅에서는 단 한 번도 오지 않았다.
열심히 일하고 싶어도 일할 곳 없고, 어딜 가나 탈북자에게 보내지는 불신과 위협의 눈총에 견디기 어려웠던 나날들... 더러운 수욕을 채우려다가 말을 듣지 않으면 고발하겠다고 위협하던 사람들을 피하며 간신히 취직한 회사생활.
열심히 일해서 사장할머니의 사랑을 독차지한 내가 아니꼬워 북한여자라고 저희들끼리 수군대며 공안에 고발하라 추겨대던 조선족들. 그래도 나는 어찌할 수 없어 혼자서 화장실에서 얼굴이 퉁퉁 붓게 울었다.
갈 곳이 없는 것을 어찌하랴. 내가 이제 어디로 더 갈 것인지.. 더는 피하고 싶지 않고 도망치고 싶지도 않았다.
이 구차한 목숨 부질없이 유지하려 발버둥치지 말고 그냥 이곳에서 끝을 내고 말자. 그러나 하늘이 보기에도 나의 운명이 너무 가혹해보였는지 생각지 않게 목사분이 오셔서 사람잡이에 미친 그들의 마음을 진정시켜 주었다.
영문 모르는 목사님의 두 손을 꼭 잡고 와 주셔서 감사하다고 끊임없이 속삭이는 내 두 볼로는 하염없는 눈물만 흘렀다.
그것이 중국에서의 나의 생활이었다. 절망 끝에 한국으로 갈 수 있다는 친구의 소개를 듣고 1박 2일을 기차에 몸을 싣고 천방지축 찾아갔으나 그곳에서도 나를 기다린 것은 또 다른 북송의 위험과 끝이 보이지 않는 기다림이었다.
살점이라도 떼어줄듯이 살뜰하던 사람이 자신의 수욕을 채울 수 없게 되자 공안에 고발하겠다고 위협하던 순간에 참고 참았던 분노와 원한이 터져 그 자리를 뛰쳐나왔으나 갈 곳은 없었다.
지켜주는 나라도 없고, 죽어도 돌아볼 이 없는 내가 거리를 헤매다 폭풍이 울부짖는 바닷가에서 세찬 파도를 바라보며 생각했던 것은 저 속엔 과연 내가 있을 자리가 있을까? 이렇게 살려고 죽음의 고비를 넘기며 예까지 오지는 않았다는 것이었다. 두만강 가에 묻어버린 지나온 나의 삶, 비록 아프고 힘든 추억들도 많았지만 그래도 그것들은 언젠가는 다시 꺼내어 내 마음속에 품어야 할 소중한 것들이었다.
3.대한민국에 오기 위해 목숨을 걸었다.
철없던 시절 내가 부모님의 품에서 아무 걱정 없었던 것처럼 그렇게 행복한 날들이 다시 오게 되면 제일 먼저 묻어둔 나의 옛 추억들을 조금씩 꺼내보려 했지만 과연 그런 날이 올 수 있을지 막막하기만 했었다.
또다시 1년 반이라는 피 말리는 기다림, 그리고 마침내 이 한국 땅에 왔다.
다시 한 번 새로이 목숨을 걸고 중국에서 3국으로의 탈출이라는 극적인 인생의 포물선을 그리며 대한민국으로 왔고 여기서 나는 지금 행복한 삶을 누리고 있다. 고통스러웠던 그 모든 추억을 뒤로 한 채...
가까이 있어도 멀었던 이 곳. 분명히 하나인 우리 땅이지만 60년의 분단이 안겨준 이질감으로 힘들고 어려운 순간도 많다.
그래도 나는 이 땅에서 내 인생의 가장 즐겁고 행복한 시절을 보낸다. 대한민국에 온 내게 처음으로 새 생활에 대한 희망과 소중한 꿈을 품게 해주었던 하나원과 살뜰했던 선생님들은 오랫동안 슬픔과 고통의 미궁 속에서 헤매던 나의 넋을 안정시켜 주었다.
하나원을 수료하고 나온 내게 차려진 자그마한, 내 인생의 처음으로 가져보는 내 이름 석 자로 차려진 임대주택은 새로운 내 삶의 소중한 보금자리로 자리 잡게 되었다.
가끔 힘들 때마다 그 날의 두만강 가를 떠올린다. 암흑과 광명의 가운데에 서서 뒤돌아보며 버릴 수밖에 없었던 내 삶의 슬픈 추억들과 오늘을 위해 맞바꾸려 했던 귀중한 내 목숨, 그리고 목숨을 건 대가로 얻어진 오늘의 소중한 자유와 행복을 생각해본다.
그러면서 “요만한 게 무슨 고생인데, 이 대한민국에 오려고 목숨도 걸었었는데 이건 아무것도 아니지. 오늘의 내 삶이 얼마나 행복한데”라고 나 스스로에게 말한다.
그렇게 비우고 또 비워 다시 초심으로 돌아가 새 삶을 만들어 가며 마음속에 아름답고 즐거운 추억거리를 하나씩 하나씩 채워간다.
처음 먹어보는 생문어회를 보고 질겁해 비명을 질러 주변 분들이 깜짝 놀라던 일, 지하철을 잘 못 타 30분이면 갈 것을 2시간이나 돌고 돌던 일, 집을 배정받은 첫 날 꼭 같이 생긴 아파트들을 보고 집을 찾을 수 없어 몇 시간을 헤맨 끝에 간신히 찾은 내 집 현관 앞에서 혼자 배를 잡고 웃던 일...
몸도 약한 내가 한국에서의 어려운 생활을 이겨낼 수 있을지 혼자 걱정할 때 내게도 면접이라는 행운이 차려졌고, 부족한 나와 함께 일하자며 선뜻 손 내밀어 주던 사람들, 아무것도 모르는 내게 차근차근 가르쳐주며 오늘의 내가 있게 해 준 직장의 동료들...
익숙하지 않은 한국생활의 부적응으로 몸살을 앓아누운 내게 다정히 대해주던 고마운 사람들.
지금은 두만강 가에서 소중하면서도 버릴 수밖에 없었던 그 모든 것들을 파내어 내 마음속 깊은 곳에 담아 소중히 담아 안고 남북이 하나 될 통일의 날을 손꼽아 기다리며 살고 있다.
그날이 오면 내 고향에 그리웠던 이들에게 나의 마음 속에 가득 채워진 대한민국에서의 아름다운 삶의 갈피들을 모두 퍼내 보여주려고...
네, 정말 가슴 아픈 정은아씨의 수기였습니다. 그럼 오늘 이 시간은 여기서 마치구요. 저는 다음 주 이 시간에 다시 여러분들을 찾아뵙도록 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