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운 베르테르
-언어 최후의 사랑 노래
슬픔이 명사여야 하는 이유를, 그리운 베르테르여, 그대 는 아는가
나는 비애를 씻어 서까래에 걸어 놓고 지나간 3세기를 건너 그댈 만나러 간다
어디서 울리는 한 발의 총소리가 그대와 나의 거리를 깨 뜨려
나는 동양의 우수를 안고 바이마르의 비애를 만나러 간다
개울물이 광목 같은 얼음이 되어야 건너는 철쭉길을 밟고
흰 타월 같은 소년의 가슴에 물길 내어 그대 볼프강을 만나러 간다
하늘에 띄운 꼬리연을 따라 가면 이내 죽음에 이르는 계곡
에밀리아 갈로티가 수선화분처럼 놓인 그대 책상의 피 는 아직도 마르지 않았다
그대 아니면 누가 이토록 아름다운 자살을 창조하겠는 가
벨벳같이 아늑한 무덤 위에 그대는 롯데의 이름을 영원으로 새겨 두고
인간의 언어로는 그녀의 아름다움을 묘사할 말이 없어
차라리 그녀의 손이 닿았던 바르하임의 그 옷을 입은 채 검은 땅에 묻히게 해 달라는 간구를 들으며
그대가 건국한 언어 최후의 나라에 입국한다
출렁이는 슈투름 운트 드랑이 동양의 끝, 경상도까지 건 너왔으니
나는 이제 정맥 속에 오시안의 노래를 심으며
귀 기울이지 않아도 들리는 세상의 사랑 이야기를 한국 의 언어로 번안해 놓으리
부탁하노니, 내 노래가 죽은 이들만의 노래가 아니기를
내 노래가 살아 있는 사람들의 노래, 이제 갓 사랑에 눈 뜬 사람들의 노래이기를!
이 흑연의 기록이 나의 언어가 아닌 그대의 핏빛 언어가 되어
등 뒤로 사라진 18세기의 잠을 깨우기를!
바라노니, 질풍노도여, 죽음에 이르는 사랑이 아니라면 영원이라 불리는 흙 속의 잠을 깨우지 말기를 게르만어가 아닌 내 언어가 폭풍이 되지 못한다면 남편, 아내, 애인, 그런 세상의 명사로도 남지 말기를 형언이 모자라 다른 이름으로 명명할 수 없어
다만 사랑이라는 이름으로 불리는 홍보석 언어
흙 속에서도 썩지 않고 꽃으로 필, 흑요석 명사이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