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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읽기(책 소개) 조종영 저,"지당에 비 뿌리고-중봉 조헌과 그의 의병들-" 독후감및 서평
낙암 (정구복) 추천 0 조회 242 19.07.24 23:02 댓글 10
게시글 본문내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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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 19.07.25 12:35

    첫댓글 정 박사님의 서평을 읽으며 감탄합니다. 방대한 분량의 역사서 한 권을 짧은 시간에 독파하신 점도 놀랍거니와, 단순히 감상을 적은 독후감 차원이 아니라 한 평생 이 분야에 전문적인 식견을 쌓으시고 학문적 연구를 해오신 역사학자의 시각으로 심층적이면서 객관적으로 평해 주셨습니다. 제가 감히 정 박사님 서평에 댓글 한 줄 올리는 것도 조심스러우나 오늘 올려주신 서평은 독자의 한 사람으로서 역사적 사실을 이해하는데 큰 도움이 되었습니다. 그래서 권위있는 전공 학자님의 해설이 필요한지도 모르겠습니다. 저자인 조종영 작가에게는 감사를, 정 박사님께는 존경하는 마음을 표합니다.

  • 19.07.25 12:21

    정박사님의 객관적인 서평이 눈에 띕니다. 독자가 돈을 지불하고 책을 구매하여 읽는다는 것은 나도 언젠가는 책을 쓰겠다는(삶에 적용하겠다는) 심정일 것입니다. 읽기만 하고
    쓰기(비평)를 거부한다면 이 또한 올바른 독서 방법은 아닌듯 싶습니다.

  • 작성자 19.07.25 09:49

    두 분 감사합니다. 이 책의 4부에 참여한 의병 160명을 소개하고 있는데 청양 사람, 정산 사람도 나오고 있습니다. 3번의 임정식은 정산 사람, 17번의 복응길은 청양사람으로 소개되었습니다. 복응실은 복지겸의 후손임을 언급하고 있습니다.그리고 지적은 안했지만 이 책에는 오자가 몇군데 나옵니다. 부색(否塞)은 비색으로 치은(治隱)은 야은으로 등등 보입니다. 그리고 충청도 지방이 왜군에 의해 점령되지 않았음을 암시해주는 내용도 있습니다.

  • 19.07.25 11:14

    정박사님은 참으로 자상하십니다. 꼼꼼하게 살피시면서 읽어주셨습니다. 감사합니다. 서평에서 몇 군데 오자 발견되어 지난 밤에 카톡으로 보내드렸습니다. 조종영 작가에게도 보내드려야겠기에 수정 요망합니다.(그리고 댓글에서 지적하신 '비색[否塞] : (운수가)꽉 막히다', 도 살펴 주시기 바랍니다.)

  • 작성자 19.07.25 11:37

    부색이라는 단어는 없습니다. 부자는 막힐비자로 읽습니다. 저의 글이 횡설수설이 된 것 같아 부끄럽습니다. 오자의 지적 참으로 감사합니다.

  • 19.07.25 11:53

    그렇습니다. <비색>이 맞습니다.

  • 작성자 19.07.26 11:08

    동조(洞照)라는 단어도 통조라고 표현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동자는 꿰뚫을 통지이므로 이렇게 고쳐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도지(度地)는 탁지(度地) 또는 度支의 잘못입니다.

  • 19.07.26 14:24

    우리가 쓰는 한자어 중엔 두 가지로 읽히고 쓰이는 한자어가 많습니다. 그래서 출판사에서는 전문 교정팀이 필요합니다. 1차적으로는 작가가 초고부터 사전을 찾아보며 세밀히 작성해야겠지만 2차적으로는 출판사 교정 전문가의 여과 시스템이 치밀하게 작동해야합니다. 저도 책을 낼 때 그래서 적어도 3회 이상 교정을 봅니다. 그래도 인쇄 후에 오자가 한 두개 보입니다. 부탁하신 저자의 이메일은 카톡으로 보내 드렸습니다. 책의 저자소개 밑에도 저자 이메일 주소가 있습니다. 감사합니다.

  • 19.07.26 14:45

    @윤승원 ※이와 관련 책에는 잘 표기돼 있습니다만, <배천(白川)조씨>에 대한 저의 개인적인 에피소드도 있습니다. 저의 할머니가 배천조씨입니다. 학창시절 어르신들이 축문을 읽을 때 白川이라 써 놓고 배천조씨라 독축하는 것이 이상하여 찾아보았더니, <활음조 현상>에 의해 배천으로 읽는다고 하더군요. 옛날 사람들도 헷갈렸는지 전해오는 이야기에 배천군수로 발령받게 되었다고 집안 어른들께 인사하기 위해 백천군수로 간다라고 말했다가 집안 어른에게 "제가 갈 고을 이름도 제대로 못 읽다니!" 라고 혼났다는 이야기도 있습니다.

  • 19.08.19 14:12

    중봉는 장수가 아니라 백면서생 선비였습니다 즉 전투 전쟁의 전문가가 아니란점. 오직 국난으로 부터 나라를 구해내야겠다는 의를위해 자발적으로 뭉친 말그대로 의병이였다는점 청주성탈환시 3000천이넘던 의병들의 수가 관의 시기 질투 모략으로 점점 줄어 700백만 남은시점에 내생명 부지하고자 후퇴했다면 아마조선은 영혼까지도 왜에 패배하는것이였을겁니다 중봉 본인은 고사하고 자신의 장손까지도 희생한 거룩한 구국의 장렬한 희생입니다 아무도 그의 잘잘못을 평해서는 안될것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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