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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 9. 18.
그 더운 날 관암지맥이라는 이름으로 이 용수지맥을 시작했었습니다.
신산경표의 체계를 따라 진행하였지만 나르 합수점을 중시한 진행이었습니다.
즉 다른 이들과 같이 신산경표에서 제시한 금남면 부용리의 부용봉 방향이 아닌 합수저을 중시한 불무산 방향이었습니다.
그러나 그렇게 진행하고도 뭔가 찝찝한 마을을 숨길 수 없었습니다.
어쨌든 우여곡절 끝에 세 번으로 진행하여 관암지맥을 마무리 할 수 있었습니다.
그러고는 채 2년이 되지 않은 2017. 5. 대한산경표가 선을 보이면서 그 찝찝했던 기분을 해소할 수 있었습니다.
즉 합수점을 원칙으로 한 제대로 된 지맥 산행의 시대가 열림에 따라 그 무거운 짐을 내려놓을 수 있게 되었기 때문입니다.
금이 그어졌으니 이제 남은 것은 그 끝을 확인하는 작업.
곧 지맥 산행입니다.
시작은 관암이었지만 그 끝은 용수입니다.
당시 놓친 것은 이 지맥이 계룡산 쌀개봉에서 가지를 칠 때 그 사이에서 발원하는 물줄기가 용수천이라는 사실이었습니다.
선생님께서 그어 놓으신 산줄기에 메어 있다 보니 '1물줄기 1산줄기'의 대원칙을 놓쳤었다는 얘기입니다.
참고도 #1
위 지도에서 보듯 이 지맥이 금남정맥에서 가지를 칠 때 그 사이에서 발원하는 물줄기는 용수천이었습니다.
그러니 당연히 이 산줄기는 그 용수천이 자신보다 상위 등급의 물줄기인 금강에 합류하는 그 합수점에서 맥을 다하여야 합니다.
지극히 단순한 그 논리를 놓쳤으니.....
참고도 #2 용수천과 지맥의 만남
그러니 오늘 산행은 관암지맥이라는 이름으로 걸었던 쌀개봉 ~ 금병산 구간을 제외한 금병산 ~ 합수점 구간으로 좁혀집니다.
오늘 구간에는 어떤 멋진 모습이 펼쳐질까요.
꽃이 너무도 아름다운 춘삼월 가절에 용수지맥으로 듭니다.
2019. 4. 17. 수요일.
수헌님과 산으로님은 고속버스로, 저는 기차 편으로 진행하여 유성터미널에서 합류합니다.
그러고는 택시를 타고 자운대로 이동합니다.
지도 #1
09:47
2015. 11. 25. 왔던 곳이어서 낯설지 않군요.
늘 산줄기와 그 산줄기의 들머리는 그렇습니다.
266동 앞에서 산행을 준비하고는,
구간을 살펴보고 다시금 이 안내도의 금병산과 국토지리정보원 지도의 그곳이 서로 다른 위치에 있음을 확인합니다.
날씨도 좋고....
얼마 전과 전혀 다른 세계가 되었습니다.
산벚꽃보다 복숭아 꽃이 더 아름답게 다가옵니다.
桃花는 됴화라 읽었죠?
도롱뇽 알....
산꽃의 어울림.....
철계단은 여전하고.....
새로 정비한 나무 계단.
10:14
국토지리정보원 지도 상 금병산353m
여기서 지맥에 접속합니다.
시에서는 금병산 노루봉이라 부르지만,
수운교에서 설치한 정상석에는 창덕봉이라 표기되어 있습니다.
덕을 세상에 드러내어 밝힌다는....
부근에 천도교에서 떨어져 나온 수운교의 교당이 있고 도솔천이라 불리우는 천단이 있기도 한데 이 수운교 사람들은 금병산을 특히 창덕봉이라 부르는 것 같습니다.
폐기된 납작 삼각점도 보고....
한편 이 봉우리에서 계룡산 방향으로는 국방과학연구소와 한국화약이 자리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지맥 마루금으로는 상당한 거리가 통제되어 있습니다.
그러나 철책 옆으로 선명하게 길이 나 있기 때문에 일반 등로 개념으로는 진행도 가능할 것 같습니다.
자, 이제부터 예전에 관암지맥이라는 이름으로 걸었던 우리의 산줄기를 용수지맥이라는 이름으로 바꿔 진행합니다.
행정구역 역시 예전의 충남 연기군 남면 금천리였던 곳이 이제는 세종특별자치시로 변경이 되었으니 지금부터 세종시와 대전시의 시계를 따라 진행하게 됩니다.
이정표의 금병산을 따릅니다.
음 너무너 편안한 등로.
둘레길로 공하기 때문이죠.
이런 표석은 작은 봉우리마다 계속 나오고....
10:37
3등급 삼각점(대전304)과,
정상석이 있는 372.2봉입니다.
자운대...
중앙 멀리 대둔산이 보이고....
수운교가 탄생하게 된 배경....
10:52
그러고는 지도 #1의 '가'의 곳에 있는 383봉에 오릅니다.
아주 중요한 봉입니다.
기존의 관암지맥은 여기서 직진을 하여야 하지만 합수점을 중시하는 대한산경표의 용수지맥은 여기서 좌틀합니다.
이정표의 용바위 고개가 아닌 구룡동 방향입니다.
이제부터는 저도 미답지입니다.
고로 용수지맥 개척 산행이기도 합니다.
주요 포인트에는 표지띠를 달고 갑니다.
등로는 널널하고....
좌측으로 한국화약의 시설물들이 보입니다.
11:13
사진 #1의 '나'의 곳에서 좌틀하여 바람재 쉼터를 따르면서 온전하게 세종시 안으로 들어갑니다.
우측으로 밤절저수지도 보고.....
11:24
임도를 만나고 정자가 있는 쉼터를 봅니다.
좀 이른 시간이긴 하지만 점심을 먹고 가기로 합니다.
이 정도되는 곳을 만나기가 그리 쉽지 않을 것이라는 판단입니다.
하지만 실은 오랜만에 만났으니 이바구 좀 떨려고 하는 것이겠지요.
수헌님이 가지고 온 부대찌개와 반주로 겨우살이주를 곁들입니다.
1시간 5분 정도 머물다 일어납니다.
2002년도에 개설한 임도....
이러니 이 부근을 걷는 분들을자주 뵙게 됩니다.
아주 양호한 등로 사정입니다.
12:38
너무 좋은 등로 사정.
감탄만 연발합니다.
지도 #2
12:43
지도 #1의 '다'에서는 좌틀하여,
임도로 내려서고.....
이 임도는 'S'자로 굴절하는 아주 멋진 길입니다.
숲이 날아가는 듯 합니다.
12:56
263.4봉을 지나고....
13:02
계속 감탄사를 연발시키는 등로 사정.....
그 등로는 임도와 같이하고....
13:05
그러고는 바람재 공원입니다.
지방도가 지나고 있는 바람재는 여러 가지 시서물이 지나는 이들의 편의를 돕고 있습니다.
좌측으로는 여전히 금병산 줄기의 한국화약 시설물들이 따라오고....
공원 내 잔디밭에는 수준점(U대전 02)이 박혀 있어 이곳이 해발183.7m임을 알려 주고 있으며,
근심을 씻어준다는 의미의 세민정洗悶亭은 충분한 그늘을 만들어 주고 있습니다.
13:13
'마루금파'답게 임도를 버리고 오리지널 지맥길로 올라갑니다.
잡목의 저항이 심하지만 지맥길에서는 의례 그러려니 합니다.
13:18
그러다 보면 다시 좋은 길도 나오기 마련....
이내 소로로 진입합니다.
데크도 마련되어 있는 이 243.5봉을 세종시에서는 바람산이라 명하고 이름표까지 붙여 놓았습니다.
아래 고개가 제 이름을 가진 바람재임에 근거한 것 같습니다.
하지만 아무리 그래도 바람봉도 아닌 바람산이라고 하기에는 봉우리가 가진 위세에 미치지 못하는 것 같습니다.
더욱이 표고도 잘못 표기하여 놓았고 나아가 이름표를 못으로 하여 박아놓았으니 나무가 얼마나 아파하겠습니까?
담당 공무원의 의식의 결여 입니다.
어쨌든 등로는 펑퍼짐한 안부로 떨어져,
멋들어진 길로 진행됩니다.
만연히 걷다보면 혹여 알바를 할깨 염려가 되기도 하니 중요한 장소에 표지띠 부착은 필수!
개척 산행에는 이래서 표지띠가 많이 소요됩니다.
대전산꾼 박병부님의 표지띠도 계속 보이기는 하지만 이분이 지맥길을 인식하고 갔으리라고는 보여지지 않습니다.
그저 대전이 자신의 관할구역이므로 위치 확정 정도의 의미로 봅니다.
정원 같은 느낌.....
13:31
음택이 있어 조망이 트이는 곳!
지도 #2의 '다'의 곳입니다.
아!
이 용수지맥이 시작되던 계룡산입니다.
좌측의 우산봉573.4m 뒤로 철탑이 있는 바로 계룡산 천황봉입니다.
그 계룡산 중에서도 쌀개봉.
그 우측으로 이어지는 삼불봉, 신선봉 능선이 명백합니다.
그 능선의 흐름은 그 우측의 정맥의 만학재도 가늠캐 해주고....
13:37
231.5봉을 지나.....
아주 주의를 요하는 곳입니다.
참고도 #3
처음 이곳의 마루금을 그을 때 청색선으로 그었습니다.
맥의 흐름은 물론 황색선이었으나 그 맥은 물길을 만나니 절대 아니고....
차선으로 그은 게 적색선이었으나 이도 이내 골을 만나게 됩니다.
이럴 경우 맥을 찾는 것은 현장에 임해서 찾아가는 것이 맞습니다.
그렇더라도 위 참고도의 검은색 골짜기를 찾는 것은 쉽지 않습니다.
단순한 저라면 그저 청색선으로 진행하여 골을 하나 건너 다음 'A'곳에 이르러 "우측으로 조금 더 가서 크게 우회해야 했었구만!"하는 푸념을 하였을 게 분명합니다.
검은색 골을 못 봤기 때문이죠.
다시 되돌아 나가 232봉 부근으로 가서는 현장을 이리저리 둘러봐도 맥은 곧 골로 떨어질 것 같은 분위기!
역시 꼼꼼하고 노련한 산으로님은 한두 번 지도를 더 보더니만 그 검은 선을 찾아냅니다.
그러고는 그 골을 우회하는 루트로 진행합니다.
이어지지 않을 것만 같던 그 루트는 교묘하게 그 골을 우회하게끔 만들어져 있고 그 루트는 그저 일반인이 걷던 그 등로였습니다.
산줄기의 묘미!
확대해석이 금물이기는 하지만 산줄기는 산맥이 아니라는 한 증거를 여기서 찾게되는 것 같아 아주 즐거워집니다.
좌측의 골.
이 골이 그 검은 색 골이었습니다.
그리고 이 밭이 그 골이 발전하여 이루어진 것.
즉 위 참고도 #3의 "A'곳 부근의 너른 선상지 같은 곳.
그곳이 그 작은 골을 따라 내려오는 퇴적물들을 이용하여 개간한 밭입니다.
지맥에서만 느낄 수 있는 기쁨이었습니다.
자하 신경수님을 뵙습니다.
아마 관암지맥에서 가지를 친 '비학단맥'이라는 이름으로 걸으셨을 듯....
진행방향으로 조마애가 보이고 정자도 보입니다.
고도를 낮춰,
지도 #2의 '마'의 곳의 도로를 다리로 건넙니다.
이정목은 비학산을 가리킵니다.
금남면 영치리와 남곡리를 잇는 도로를 지나,
계단을 올라,
아주 잘 다듬어진,
세종시민의 명소,
14:19
일출봉으로 오릅니다.
지도에는 그저 156봉으로 표기되어 있고....
모르긴 해도 아마 세종시에서는 새해 첫 일출 장소로 이곳을 선정하여 홍보할 것 같군요.
도시의 면모를 갖추려면 아무래도 산을 중심으로 신앙이나 의지를 결집하려 했던 조상들의 의지를 신도시 세종시도 닮으려 했던 것 같습니다.
좌측이 조금 전 지나온 바람산.
그 너머가 바람재였죠?
그 우측 뒤로 오늘 걸어온 지맥길이 한눈에 다 들어오는군요.
그 너머가 서대산 라인.....
좌측 우산봉과 정면의 계룡산.
이 정도되면 세종시의 진산이 될 자격이 있나요?
시가지 우측으로 미호천으로 진행하는 미호서지맥의 맹주 전월산259.8m과 그 우측의 노적산 182.2m가 보이는군요.
저 전월산과 노적봉 사이로 미호천이 흘러 금강에 합류되겠고 저 전월산 줄기 즉 미호서지맥은 그 미로천의 서쪽에서 맥을 잠기게 될 겁니다.
물론 그 지맥의 시작은 금북정맥의 국사봉 부근이었음은 정맥을 할 때 보았었고.....
10여 분 쉬다가 다시 출발합니다.
세종시민이 즐겨 찾는 곳인 만큼 등로도 잘 정비되어 있습니다.
바위가 있는 곳은 사면으로 돌고.....
지도 #3
14:41
그러고 만나는 곳.
비학산 삼거리입니다.
우리는 왼쪽으로 가야하죠.
비학산 삼거리입니다.
그러면 지도 #3의 '바'의 곳에서 바로 전망대가 나오고.....
이곳은 그저 225봉에 불과한 무명봉인데 관계 공무원이 이렇게 비학산이라고 못박아 버리면 그렇게 굳어지게 마련입니다.
그런데 사실 비학산은 국토지리정보원 지도에 나와 있듯 지도에 표기된 飛鶴山이 예전부터 비학산이라 불렸던 곳 맞습니다.
즉 이 비학산은 생김새가 날아가는 학의 형상이 아니라 모양과 주변 환경을 보고 지어진 이름이기 때문입니다.
- 졸저 '현오와 걷는 지리산' 212쪽 각주12)
그러나 이런 것에 상관없이 국어 학자들은 '지리'의 어원을 순수한 우리말에서 찾는다.
한 걸음 더 들어가 생각해 보면 ‘두류’는 우리말을 한자어로 표기한 것에 불과하다. 즉 두류는 옛 우리말 ‘두르’였다. ‘병풍처럼 크게 둘렀다’라는 의미이다. 곧 ‘큰 산줄기’라는 말로 ‘두름/ 둠’의 형태였던 것이다. 이 ‘두르〉두류’로 변천된 것에 적당하고 그럴싸한 한자 頭流를 갖다 붙인 것이다. 또한 ‘지리’는 ‘두르〉드르〉드리〉디리〉지리’의 과정을 거쳐 변하게 된 것인데 마찬가지로 이 ‘지리’에 적당한 한자인 智異를 갖다 붙여 오늘날의 한자어 지리산(智異山)을 가지게 된 것이다. 즉 구개음화와 전설모음화 과정을 거쳐 결국 오늘의 지리산이라는 이름이 되었다는 얘기이다.
그러니 ‘頭流’·‘豆流’·‘頭留’·‘斗星’·‘斗流’ 등으로 한자를 붙여 지명이 된 것은 그 어원이 ‘두르다’의 뜻으로 보면 될 것이다. 이렇듯 지명은 땅과 지역의 특성을 제일 먼저 드러내 보여주는 얼굴이다. 거기에는 땅의 생김새와 장소적 특성이 반영되어 있을 것이고, 그 지명을 붙인 당시의 사람들의 지리적 사고도 담겨 있을 것이다. 당연히 거기에는 자연적 특성뿐만 아니라 사회적, 정치적 속성도 가미되어 있을 것이고 역사와 시대에 따라서 변화하는 역사지리적인 성격도 담겨 있다고 할 것이다. 그러니 지명은 사용하는 그 당시 사회의 주체에 따라 이름이 변하기도 하며 그 의미와 범위가 달라지기도 할 것이다.
- 전게서 287쪽
그러니 두름은 다시 두루미로 바뀌게 되고 이를 한자로 쓰다보니 鶴이 되었으니 이는 비학산이 학이 날아가는 형세가 아니라 가파른 비탈이 있는 산의 능선이 한 마을을 감싸고 있는 형세를 보고 지은 이름이 시간이 흐름에 따라 조금씩 음운변화가 생기다가 이를 한자로 표현하는 과정에서 얻어진 이름이라 보면 될 것입니다.
그러니 비학산은 직접 가보지 않더라도 그 지세를 보면 신촌리 대유사 방향으로 아주 가파른 비탈이라는 것을 쉽게 알 수 있습니다.
그리고 가래골에서 이어지는 능선이 이 비학산을 지나 225봉 ~ 215봉으로 이어지는 능선이 이 신촌리를 두루고 있다는 것 또한 쉽게 알 수 있습니다.
세종시가지를 보고.....
가운데 희미하게나마 금강의 흐름도 볼 수 있습니다.
다시 걸어야죠.
14:57
다시 임도를 버리고 맥을 따라 오르면,
214.6봉에는 중광산이라는 이름표가 붙어 있고....
희미한 지맥길을 따라 잡목을 헤쳐 진행하여,
15:14
지도 #3의 '사'의 곳 전봇대 번호 도암선 63L20에서 다시 임도에 합류합니다.
용포리 마을로 내려 섭니다.
15:18
금남정수장을 지나,
조금 전 내려온 중광산.
그나저나 저길 중광스님이 다녀가셨나?
신천 강씨 가족묘원이 있는 삼거리에서 잠시 발림봉을 다녀와야겠습니다.
사실 이 부근도 지도에 마루금 긋기가 상당히 어려웠습니다.
이 봉우리를 거쳐 면사무소로 내려가고 싶었던 것이기도 합니다.
그런데 이 봉우리로 내려갈 경우 금맘면 사무소 일대가 지대가 낮아 어떻게해서든 그 방향으로 진행이야 할 수 있겠지만 정확한 진행은 될 수 앖을 것입니다.
15:28
일단 발림봉108.5m을 확인하고....
아울러 그 넘어에 있는 신천강공 묘지까지....
다시 되돌아 나갑니다.
15:35
되돌아 나가는 길에 면사무소가 있는 용포리를 봅니다.
바로 이 골때문에 아까 본 봉우리로 진행을 하면 안 되었던 것입니다.
밭을 가로질러 연립주택 옆으로 진행을 하여,
마을을 빠져나와,
면사무소를 좌측으로 틀어 올라갑니다.
15:51
교회 좌측으로 올라,
15:53
신성아파트 좌측산길로 접어들어,
우측으로 발림봉을 본 다음,
15:56
지도 #3의 '자'의 곳을 찍은 다음 바로 능선을 이어가야 하는데 지맥길을 민가들이 점거하고 있어 부득이 우회하여,
경로당을 내려와,
우회하여 지맥길을 다시 이은 다음,
수로 바로 옆으로 나옵니다.
이번 지맥길을 긋는데 가장 어려웠던 부분이 바로 이 지역이었습니다.
참고도 #4
지금은 이 일대가 신시가지 공사로 한창이지만 예전에는 금강으로 인한 퇴적물이 쌓인 그야말로 옥토였을 곳입니다.
그러니 이 일대가 논농사가 활발하게 이루어졌던 곳이었을 것이니 당연히 여러 곳에 수로가 있었을 터, 그 수로는 지맥을 여러 곳에서 끊어놨을 것은 자명하다 할 것입니다.
그래서 금강천변 제방길을 따를 생각도 해봤으나 거기도 마찬가지여서 어쩔 수 없이 수로를 건너야 했고 그렇다고 해서 그것이 산자분수령의 취지에 어긋나는 것도 아니라고 판단했습니다.
과감하게 그 수로를 건넙니다.
그러면 동학사 옆에서 봤던 그 맑디 맑은 용수천이 지맥꾼을 반깁니다.
몇 년 후면 이 왕벚꽃 나무도 가지를 더욱 쳐서는 봄이면 지맥꾼들보다는 행락객들을 유혹할 것 같습니다.
뒤로 오늘 오전에 시작한 금병산 줄기가 더 가깝게 다가왔고....
그 줄기들을 좌에서 우로 한방에 봅니다.
지맥길은 숲뜰근린공원으로 이어지고....
그 공원 아래에서 자전거 길로 내려섭니다.
멀리 금강교가 보이고....
이곳에서 보는 합수점은 어떤 모양일까?
이렇게 흘러내려와,
저 끝에서 금강에 합류할 텐데.....
16:35
바로 이런 모습으로 말입니다.
학나래교를 배경으로 인증 샷!
산으로님도.....
합수점에 손을 담그고 돌아 나갑니다.
여기서 대청댐까지 33km.
세종시외버스 터미널 부근에는 편의 시설이라고는 전무합니다.
거의 1km 정도를 걸어 짬뽕집 하나를 발견하여 거기서 뒤풀이를 하고 오송역으로 나가 기차를 타고 귀가를 하니 8시입니다.
무지 빠른 시간에 귀가를 하였습니다.
다음에는 석성지맥을 하지구요?
예 한번 거닐어보죠.
오늘 걸은 거리는 15.7km, 소요 시간은 점심시간 1시간 5분 포함 6시간 48분 걸렸군요.
꽃길을 걸은 행복한 시간이었습니다.
첫댓글 권태화님 안녕하십니까?
산에서 일에 파묻혀 지내느라 홀대모 카페에 자주 들어와 보지도 못하고 글도 제대로 읽지를 못하다가
봄 모임을 마치고 약간의 시간이 남아 카페에 잠깐 들어 왔다가
좀 생소한 지맥이름을 보다 이게 무엇인가?? 하고 읽어 보게되었습니다.
그러면서 권태화님의 필력에 새삼 감탄을 하게 되고 늦게나마 책 발간도 축하드립니다.
더우기 제가 살고 있는 지리산 권역에 대한 책이네요. 지금은 접할 시간이 없지만 나중에 시간이 허락된다면 한번 찾아보겠습니다.
글을읽다 보니 제가 산줄기 지식이 짧아 맞는지 잘 모르겠지만
대한산경표란 하나의 산줄기 체계를 정립하신 것 같습니다. 강을 기준으로 한 것인가요?
어떻든 정립된 산줄기를 많은 후답자들이 그 산줄기를 이어가는 계기가 되기를 바랍니다.
그런데 한가지 읽어 보다가 한 두 문장은 조금 접근을 달리했으면 어떨까 싶었습니다.
새롭게 정립한 체계니 기존의 신산경표와의 차이점을 표기하는 것은 그렇다고 하더라도
나름 정립한 신산경표에 대해 원칙을 놓쳤다라든가?
권태화님은 합수점을 중시하여 이쪽으로 방향을 튼다든가 하는 문장은 다른 쪽에서 보면 합수점을 중시하지 않는다란 의미로도 해석될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주제넘은 제 생각으로는
신산경표와의 차이는 밝혀도
산행기록에 본 기록은 대한산경도에서 정립된 어떤 기준을 따라 이런 이런 경로로 산줄기를 둘러 본다라는 정도의 정리가 되는 것이 어떨까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제가 느낀 점이라 신산경표을 따라 둘러 보신 산객들은 어떨지? 체계를 정립하신 박성태선생님은 어떠하실지는 잘 모르겠지만
잠깐 읽어보면서 느낀 점이오니 넓게 이해 요청드립니다.
마지막으로 다시 한번 책 발간을 축하드립니다.
형님. 너무 소원했습니다. 자주 뵈야 하는데.....
형님 지적사항 백번 타당하신 말씀입니다.
나름 대한산경표의 취지에 공감을 하다보니 너무 앞서간 느낌입니다.
하지만 박성태선생님은 저에게 산줄기를 깨닫게 해주신 사부님이십니다.
그래서 늘 물줄기ㅘ 합수점을 중심으로 이야기 할 때에도 신산경표를 앞세우고 있는 저입니다.
다만 표현 상에 오류나 과도한 표현으로 선생님이나 선배님들의 심기를 흔든 부분이 있다는 것은 저의 사려깊지 못한 부분으로 이 자리를 빌어 심심한 유감의 뜻을 표합니다.
형님께서도 조금이라도 제가 신산경표를 폄훼하려는 의도가 없다는 점만큼은 이해해주셨으면 합니다.
재차 글로서 다른 이들의 마음에 상처가 되는 일이 없도록 각별히 유념하도록 하겠습니다.
앞으로도 형님과 같은 분들의 글을 서운하다 생각않고 저의 발전을 위한 계기로 삼겠습니다.
다음 서울 모임때 형님 참석하시면 마음의 잔 올리겠습니다.
감사합니다.
주제넘게 말씀드렸는데 넓게 봐주셔서 감사드립니다.
뵌지가 오래되었는데
그사이에 큰 족적을 많이 남기셨네요.
다시 한번 책 발간 감축드리구요.
항상 즐거운 산행길 이어가시기를 바랍니다.
감사합니다.
뵙고싶은 권태화님께!
바쁘시죠, 안 뵙지는 어언 몇년이 지난 것 같습니다.
이번 모임에는 뵐까 했는데 조금 아쉬움이 남습니다. 그래도 책에서, 산 길에서나마 반가운 표지기에 고마움을 전하곤 합니다.
글을 읽다 부담스러운 면이 종종 있어 전화 드리려다 글이 낫을 것 같아 남김니다.
카페가 개개인의 걸어 온, 걸어갈 길을 논하기 보다는
산이 좋아,사람이 좋아 만나는 그 이상,그 이하도 아니었으면 하는 저의 바램입니다..
또한,앞서 닦아 놓으신 억척스러운 선배님들의 땀방울에 德을 보는 후배로써 먼저,인정하고 존경하는 마음이 바탕이 되어야 훗 날 후배들로 더 많은 인정과 존경을 받지 않겠습니까.
소중한 글을 보관하려니 아직 카테고리에 없는 지맥이 나와
당황하고 찾아 옮기려고도 하니 마음이 좀 찜찝하고 혼란스러운 것도 사실입니다. 기존 지맥 기준으로 맞춰 옮겨도 되는 것인지요.
늘 즐산,안산하시기 바랍니다.
사랑합니다. 행님!!
고맙습니다.
위에서 무심이 형님깨 드린 말씀으로 갈음토록 하겠습니다.
제가 신산경표를 폄하하려는 의도가 전혀 없음을 대감님도 충분히 이해하시리라 믿습니다.
어쨌든 질책 겸허히 수용하면서 좀 더 신중을 기해 글을 올라겠다는 생각을 합니다.
부산 갈 일이 있으면 꼭 연락을 드리겠습니다.
소주 한 잔 나누면서 미않한 마음을 전해야....
보고 싶습니다. 대길 대감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