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년 6월 22일
제목 선행은 영원히 기억된다
본문 시112:1-10
작년 이맘때 뜻밖의 전화가 걸려 왔습니다. 40년 전 첫 목회를 했던 곳에서 노부부가 교횔 나오셨는데 그분의 며느리였습니다. 그 며느리도 어느새 80이 넘었는데 저를 죽기 전에 꼭 만나보고 싶다고 했습니다. 며칠 후 정읍에서 순천까지 동생과 아들과 함께 오셨습니다. 찾아온 이유를 설명하셨는데 40년 전 시댁 밭에서 고구마를 캤는데, 그걸 제가 지게로 짊어다가 집에까지 가져다주었다고 했습니다. 그 고마움을 표하고 싶다며 금일봉을 내미셨습니다. 평생 고구마 사 먹어도 남을 금액이었습니다. 청년 전도사 때 젊은 힘으로 고구마를 가져다주는 일이 무슨 대수인가요? 저는 기억하지 못하는데 그걸 평생 기억해 두셨다가 통 큰 보상을 해주셨습니다. 어떤 생각이 드는가요? 사람도 이 정도로 우리의 작은 선행을 기억해 줄 수 있다면 하나님은 영원히 기억해 주시지 않을까요? 사람도 이만큼 보상해줄 수 있다면 하나님은 더 풍성하게 복을 주실 수 있을까요? 오늘 그런 내용을 말씀드리려고 합니다. 말씀을 통해 풍성한 은혜를 나누기 원합니다.
선행을 영원히 기억해 주십니다
시112:3 “부와 재물이 그의 집에 있음이여 그의 공의가 영구히 서 있으리로다.” 하나님은 우리가 행한 작은 선행을 기억해 주십니다. 나의 의로운 행위가 영원한 결과를 가져옴은 엄청난 일입니다. 큰일이 아니어도 괜찮습니다. 뒤에 오는 사람을 위해 엘리베이터를 멈추어 주는 일, 길을 묻는 사람에게 친절하게 안내해 주는 일, 사랑스러운 시선, 잘못 걸려 온 전화에 대해서 부드러움을 잊지 않음도 선행입니다.
속 터질 일이 있을 때 누구에게 얘길 하십니까? 요즘은 남편, 자녀, 친구가 아니라 강아지에게 말하는 사람이 가장 많았답니다. 푸념하는 사람은 답을 듣고 싶은 것이 아니라, 내 말을 들어주기를 원합니다. 강아지는 대답해 주지 않아도 끝까지 잘 들어주고, 무슨 얘길 해도 소문을 내지 않아서 더욱 좋답니다. 상대방의 이야기를 들어주는 일도 선행입니다. ‘그래 너의 마음을 잘 알아’ 이 말 한마디면 됩니다.
제가 처음 교회에 왔을 때 친절하게 맞아주시던 분이 기억납니다. 예배당 입구에서 안내해 주시던 이상영 집사님과 김성복 집사님입니다. 찬양단원들의 찬양에 깊은 감명을 받았고, 마침 예배당 창밖에 하얀 눈이 소복하게 내리는 모습이 참 아름다웠습니다. 첫 수요예배 때 이종배 집사님께서 다가와서 인사해 주셨습니다. 길에서 아는 척해주신 정수정 집사님이 고마웠습니다. 집에 와서 제 아내에게 나도 용인에서 아는 사람이 생겼다며 자랑했습니다. 여러분들은 작은 친절일 수 있어도 제겐 큰 위로로 다가왔습니다. 하나님은 그런 작은 친절을 더 소중히 여기시고 영원토록 기억해 주십니다.
시흥에 사는 지인은 매일 새벽 골목을 쓸고 담배꽁초를 줍습니다. 새벽에 일어날 때 선한 일을 할 것을 생각하면 가슴이 뛴다고 했습니다. 저는 가슴이 뛸 정도는 아니었어도 시골에서 살면서 골목길을 쓸고 돌멩이나 나뭇가지가 있으면 치워냈습니다. 밤길을 걷거나 새벽기도회에 걸어오시는 노인들이 걸려 넘어질까 봐서입니다.
청결과 안전만 생각하고 한 일인데, 하나님은 나의 작은 선행을 영원히 기억해 주신다니 놀랍지 않은가요? 작은 선행도 기억해 주십니다. 여러분은 어떤 선행을 실천해 보시겠습니까? 나의 작은 선행을 영원히 기억해 주심을 믿고 즐거움으로 선을 행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선한 사람을 영원히 기억해 주십니다
하나님은 선행을 기억하듯이 선을 행하는 사람도 기억해 주십니다. 6절 “의인은 영원히 기억되리로다.”라고 합니다. 국가 유공자들은 묘비에 이름을 남긴다면, 선한 사람의 이름은 말3:16에서 “여호와 앞에 있는 기념 책에 기록해 둔다고 했습니다.
사람은 자기가 기록해 놓고도 못 찾는 경우가 있으나 하나님은 그렇지 않습니다. 아하수에로왕은 살해당할 위험을 모면하게 해준 모르드개의 일을 일기에 기록해 놓고 까마득히 잊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선을 행한 모르드개를 보물처럼 마음에 기억하고 계셨습니다. 결정적인 순간, 왕의 잠을 빼앗고 일기를 펴보게 하여 큰 상을 내리도록 했고 유대민족을 구원받게 했습니다. 옥합을 깨뜨려 향유를 쏟아부은 여인을 제자들은 비난했으나 예수님은 “온 천하에 어디서든지 이 복음이 전파되는 곳에서는 이 여자가 행한 일도 말하여 그를 기억하리라.”고 했습니다. 하나님은 선을 행한 자를 하늘의 기념 책에 기록해 두시고, 영원히 기억해 주십니다. 기념 책에 기록한 선인의 이름은 지울 자가 없습니다.
작은 선을 행하는 사람을 기억해 주심을 마25:31-40절에 기록해 두셨습니다. 형제가 주릴 때 먹을 것을 주고, 목마를 때 마실 것을 준 사람들을 기억해 주실 뿐만 아니라 예수님 자신에게 한 일로 여겨주셨습니다. 그리고 복 받을 자들이라고 하시며 창세로부터 너희를 위하여 예비 된 나라를 상속받으라고 하십니다. 마10: 42 이 작은 자 중 하나에게 냉수 한 그릇이라도 주는 자는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그 사람이 결단코 상을 잃지 아니하리라 하시니라. 하나님은 선을 행한 자를 영원히 기억해 주시며 아버지의 나라에서 해같이 빛나게 해주실 것입니다.
교회 작은 구석까지 살피는 손길, 찬양봉사자, 반주자. 주일학교 봉사자, 연약한 교우를 살펴주는 자, 채소를 길러 나누시는 김성복 집사님과 박용순권사님 그리고 김귀향 집사님을 영원히 기억해 주실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선을 행하는 자를 영원히 기억해 주심을 믿고 더욱 선을 행하는 성도님들이 되십시오.
선행의 효력은 영원합니다
종종 선이 악으로 돌아오는 일도 있으나 결국은 선으로 돌아옵니다. 성경에 “선한 사람은 그 쌓은 선에서 선이 나오고”라고 했습니다. 시골 목회는 동네 사람들까지 도와야 할 때도 있어요. 가을에 벼를 말릴 때 소나기가 내리면 농부들은 안절부절입니다. 벼를 담아 드렸더니 다음날 마을 경로당을 지나가는데 마을 분들이 제 이야기를 하고 있었어요. 제 아내는 소나기 오는 날 이웃집 빨래를 걷어주었어요. 제가 이사 간다고 하니 빨래 걷어준 일을 잊지 않았다면서 고급 레스토랑으로 초대해 주셨습니다.
이런 일도 있었습니다. 어느 해 바람에 벼가 쓰러졌어요. 교회에 나온 지 얼마 안 되신 여 성도님이 무릎 관절이 아픈데 모를 일으켜 세우고 계셔서 제 아내와 함께 도와 드렸어요. 그해 추수 때부터 해마다 쌀 한 가마를 주셨어요. 그분이 천국 갈 때까지 효력이 유지되었습니다. 사람들도 선의 효력을 쉽게 무효 시키지 않습니다.
하나님은 선행의 효력을 자손만대까지 이어지게 해줍니다. 시112:2 “그의 후손이 땅에서 강성함이여 정직한 자들의 후손에게 복이 있으리로다.” 시37:25 “내가 어려서부터 늙기까지 의인이 버림을 당하거나 그의 자손이 걸식함을 보지 못하였도다.” 구약은 물질적인 표현을 즐겨합니다. 신약은 물질을 배제하는 건 아니어도 신령한 것에 강조가 있습니다. 생떽쥐페리가 어린 왕자에서 말한 대로 “중요한 것은 눈에 보이지 않는 것”입니다. 주 안에서 주시는 기쁨, 강 같은 평화는 돈 주고 살 수 없습니다. 잠을 잘 잤다면 그것도 큰 복입니다. 제 아내는 꿀잠 잔 후 백만 원짜리 잠을 잤다고 했습니다.
9절에서도 선행의 효력이 영구함을 말합니다. “그의 의가 영구히 있고 그의 뿔이 영광중에 들리리로다.”라고 합니다. 시111:3 “하나님의 의가 영원히 서 있도다.”라고 합니다. 이는 하나님의 의가 영원하듯이 의인의 선행도 영원하다는 심오한 뜻을 담은 말씀입니다.
우리의 선행이 얼마나 대단하길래 효력이 영원히 지속될까요? “그의 뿔이 영광중에 들리리로다.”라고 합니다. 여기에서 뿔과 영광은 의인에게 하나님의 의로움을 입혀 주신다는 뜻입니다. 우리의 선행은 하나님의 원하는 수준이 아닌데 하나님께서 의로움을 덧입혀서 받아주신다는 뜻입니다.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 16장 6항 “우리의 행위는 항상 불완전하지만, 우리에게 전가된 그리스도의 의로움 덕분에 거룩하신 하나님께 사용될 수 있다.”라고 했습니다. 하나님은 예수 그리스도로 우리에게 의를 덧입혀주시고, 우리의 부족한 선행을 받아주십니다. 사람은 1%만 모자라도 불합격입니다. 우리의 예배, 기도, 찬양은 미흡하지만, 예수님의 의로움을 덧입혀주심으로 하나님께서 받으실 수 있게 되었다니 큰 은혜입니다. 우리의 어설픈 선행마저 영원히 기억되는 것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이루신 구속의 덕분입니다. 그리스도 밖에서 하는 선행의 효력은 땅에서 끝나지만, 예수의 피로 구속받은 신자의 선행은 영원한 효력을 갖습니다.
우리가 범한 죄의 효력은 그리스도의 피로 소멸해 주시면서 신자의 선행은 영원히 기억해 주십니다. 나의 죄 흉악하나 기억 아니 하시면서 나의 선행의 효력은 영원토록 기억된다니 이런 엄청난 복이 어디에 있겠습니까? 예수님 안 믿었으면 어쩔뻔했습니까? 주 안에서는 티끌만 한 선행도 다 기억해 주시며 자손만대까지 영원한 효력을 갖게 될 것을 믿고 기회 있는 대로 선을 행하며 사십시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