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려 말 조선 초기의 문신이며 학자인 정이오는 아산에 대해 “수많은 산봉우리가 교차하며 대치해 섰고, 두 시냇물이 돌아 흐른다”고 했다. <세종실록지리지>에는 “땅이 기름지고 메마른 것이 반반이며, 기후가 차다”고 되어 있다.
신록의 청명함이 물씬 나는 은행나무 가로수 길.
아산은 한때 신혼여행과 수학여행의 도시였다. 30여 년 전만해도 삽교천과 현충사를 둘려보고, 온양온천에서 목욕하는 것이 단골코스. 하지만 관광버스가 늘수록 아산은 ‘스쳐지나가는 도시’로 점점 관심에서 멀어졌다. 최근 아산은 온천과 문화탐방을 겸할 수 있는 도시로 거듭나고 있다. 호젓한 봉곡사 숲길과 수려한 정원 피나클랜드, ‘꽃 천국’ 세계꽃식물원, 외암민속마을, 신정호관광지 등 볼거리가 널려 있다.
옛 공세곶창고 자리에 지어진 공세리 성당.
세상 근심을 잊고 호젓한 산길을 걷다
피나클랜드의 랜드마크라고 할 수 있는 ‘태양의 인사’.
봉곡사(鳳谷寺)로 향하는 길에 섰다. 하늘이 보이지 않을 정도로 빽빽한 소나무 숲길이 열려 있다. 수령 200년은 훌쩍 넘었을 큼직한 소나무들이 뿜어내는 정갈한 기운이 마음까지 맑게 헹구어낸다. 언덕 가득 솟아 있는 소나무 껍질의 무늬와 빛깔이 편안함을 느끼게 한다.
중부지방의 반가(班家)를 잘 보여주는 외암민속마을. (아산시청 제공)
숲길은 오른쪽에 조그마한 골짜기를 거느리고 있다. 물소리를 귀에 담고 솔 향을 맡으며 느릿느릿 걷는다. 한걸음 뗄 적마다 세상 근심을 잊는 기분이다. 간혹 차로 이 길을 오르는 이들이 있다. 새소리와 벗하고 걷는 느림의 미학과 실바람의 시원함을 모르니 아쉽다. 400여m 소나무 숲길 끝자락에는 대나무 숲에 기대앉은 봉곡사가 있다. 대웅전 하나에 산신각, 고방이 고작이지만 도선국사의 창건설화와 만공 스님이 깨달음을 얻었다는 전설이 전해온다.
건재고택 전형적인 조선 양반집의 소박하고 아담한 정원의 모습을 보여주는 고택으로 자연을 거스르지 않고 아름다움을 담으려고 했던 조상들의 멋스러움이 느껴진다. (아산시청 제공)
계절 따라 색의 마술을 보이는 가로수 길
아산시 전경 아산은 차령산맥의 지류인 광덕산 영봉이 동남으로 길게 벌어져 있고 이를 분수령으로 하여 서북으로 길게 평원을 거쳐 서해 아산만을 끼고 있다. (아산시청 제공)
아산시내 충무교에서 현충사로 넘어가면 은행나무가 정연하게 늘어서 있다. 약 1.2㎞에 이르는 이 나무터널은 전국에서 가장 긴 은행나무 가로수 길이다. 수령이 40∼50년은 된 은행나무 750여 그루가 곡교천을 따라 길게 이어져 있다. 1973년 현충사 성역화 공사 때 주민들이 심은 은행나무가 무럭무럭 자라 왕복 2차선 도로를 뒤덮었다.
윤보선 전 대통령 생가 운보선 전 대통령의 선친인 윤치소가 1907년에 건축한 이 가옥은 사랑채, 안채, 대문채, 행랑채를 비롯해 부속채가 ‘파(巴)’자 모양으로 구성되어 있다.
은행나무가 이만큼 성장하게 된 데는 온양 학생들의 공이 컸다. 온양아산향토사연구소 박노을 소장은 “은행나무가 별 탈 없이 자란 것은 당시 은행나무와 온양 학생들의 결연을 통해 애지중지 키웠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하늘을 올려다보면 숲이 하늘이고 하늘이 숲이다. 황홀한 이 길을 제대로 보려면 차량이 뜸한 새벽이 좋다. 시공을 뛰어넘어 순간이동이라도 한 듯 연둣빛 은행잎이 가득하다.
구괴정(九槐亭) 조선 때의 정승인 고불 맹사성이 황희, 권진과 함께 느티나무 세 그루씩 아홉 그루를 심었다고 전해지는데 현재는 두 그루만이 받침대에 의지하고 있다
이 길은 사계절 언제든지 찾아도 좋다. 봄이면 곡교천 둔치를 따라 샛노란 유채꽃 군락이 끝없이 펼쳐진다. 노란 은행나무가 절정을 이루는 가을이면 코스모스가 그 자리를 대신한다. 겨울의 설경은 묵향이 그윽한 한 폭의 동양화를 보는 듯하다. 지난 2000년과 2001년 연속으로 전국에서 가장 아름다운 가로수 길로 선정됐다. 은행나무 길에는 자동차를 세울 만한 곳이 없다. 곡교천 반대방향으로 두 세 곳 옆길이 있다. 여기에 차를 세우고 걷는 게 좋다. 다만 자동차들이 쉴 새 없이 다니는 구간이라 안전에 조심해야 한다.
세계꽃식물원 일년 내내 20여 가지 테마 꽃 축제를 여는 세계꽃식물원은 지역농민조합원으로 구성된 영농조합법인으로서 설립되어 국내에 소개되지 않은 세계 각국의 아름다운 꽃들을 계절별로 새롭게 선보인다.
영화감독과 프로듀서가 ‘찜’한 아름다운 성당
피나클랜드 여유로운 휴식과 새로움을 추구하는 피나클랜드는 ‘최정상의 땅’이라는 뜻으로 ‘물’ ‘빛’ ‘바람’을 주제로 한 다목적 테마관광농원으로 휴식과 즐거운 추억을 만들 수 있는 공간이다. (아산시청 제공)
평택에서 아산만방조제를 건너 차로 5분도 채 걸리지 않는 곳에 우리나라에서 가장 아름다운 성당으로 꼽히는 공세리 성당이 있다. 영화 <태극기 휘날리며> <고스트 맘마>, 드라마 <모래시계> <불새> 등 이곳에서 촬영된 영화와 드라마를 꼽으라면 두 손도 부족할 지경이다.
은행나무 가로수 길 곡교천을 끼고 은행나무 가로수 길은 봄이면 끝없이 펼쳐있는 유채꽃과 가을이면 노랗게 물들인 은행나무 가로수 길이 장관을 이루며 관광객을 맞이한다.
성당은 마을 옆, 언덕마루에 앉아 있다. 거대한 팽나무 가지로 감싸인 채 전면 중앙부에 높은 종탑을 세운 고딕식 절충 양식의 성당이다. 구조는 붉은 벽돌, 장식용으로 회색벽돌을 사용했다. 붉은 벽돌과 뾰족한 지붕이 어우러져 유럽의 성당에 온 듯한 착각을 불러일으킨다. 성당 주위에는 유구한 세월을 묵묵히 지켜온 300년 이상 된 보호수가 일곱 그루나 있다.
아산만 방조제 아산시 인주면 공세리와 경기도 평택시 현덕면 권관리 사이에 있는 아산만 방조제는 길이가 2.6㎞이며 한국에서 조석의 차가 가장 커 평균조차가 6.1m, 최대 9.6m에 달한다.
성당은 1922년 드비스 프랑스 선교사가 중국인 기술자를 데려와 지었다. 성당 터는 조선시대 충청, 전라, 경상도 일대에서 거둔 쌀을 쌓아두었던 공세창고가 있던 자리. 공세리라는 지명도 여기에서 왔다. 천주교인들에게 이 성당은 순교성지이다. 천주교가 박해받던 조선 말기, 이 성당 출신 신자 28명이 순교했다. 이중 박의서, 원서, 익서 3형제 순교자의 묘가 지금도 남아 있다. 성당 안에는 예수가 십자가에 못 박혀 순교하는 과정을 14개의 조각상으로 만든 ‘십자가의 길’이 있다.
성준경 가옥 이 집의 특징은 대문을 대신하여 줄기가 휘어진 소나무가 서 있으며 ‘ㄷ’자형의 안채와 일자형의 고방채, ‘ㄴ’자형의 사랑채가 배치되어 있다.
가족 나들이 정원, 피나클랜드
성당을 나와 온양온천 방향으로 5분쯤 가면 물과 빛, 바람을 테마로 한 피나클랜드에 닿는다. 아산만방조제 공사 때 까부숴진 석산의 초라한 몰골을 10여 년간 가꾸어 예쁜 정원으로 탈바꿈시켰다. 아기자기한 정원과 산책로, 넓은 잔디광장, 친근한 동식물 등. 가족과 연인 나들이에 좋다.
매표소에서 느티나무 광장과 은행나무 길을 지나면 꽃으로 장식된 써클가든과 너른 잔디밭이 펼쳐진다. 써클가든 중앙에는 한쪽 무릎을 꿇고 귀에 소라껍질을 갖다대고 있는 모자 쓴 꼬마 동상이 있다. 동상 주위는 다섯 개의 하얀 기둥이 호위하듯 서 있다. 팔자형의 구불구불한 라일락 산책로를 따라 오르면 산 중턱에 ‘태양의 인사’가 있다. 일본의 유명 미술가인 신구 스스무의 작품으로 거대한 은색 바람개비가 바람의 강약에 맞춰 날렵하게 춤을 춘다.
윈드밀가든과 물의 정원을 지나 산꼭대기에 이르면 ‘진경산수’라는 정원이 펼쳐진다. 채석을 하던 자리에 인공폭포를 만들고 그 아래 자그마한 연못과 이끼공원을 조성했다. 연못에는 잉어가 노닌다. 파란색이 들 것 같은 하늘을 배경으로 물방울을 흩뿌리며 쏟아지는 폭포에 감탄사가 절로 나온다. 그 옆 전망대에서는 아산만방조제와 서해대교가 손에 잡힐 듯하다. 거제의 외도처럼 개인이 세운 곳으로, 입장료(성인 기준 5000원, 단 오후 5시 이후 입장객은 50% 할인)가 있다.
소박하고 평화로운 고향의 멋에 빠지다
외암민속마을은 아산시내에서 남쪽으로 약 8㎞ 떨어진 설화산 동남쪽 기슭에 위치하고 있다. 이 마을에 관한 정확한 기록은 없지만 400여 년 전 예안 이씨 일가가 정착하면서 집성촌을 이루었다고 한다. 성리학의 대학자인 외암 이간(李柬)선생의 출신 마을이며, 근래에는 추사 김정희가 첫 부인과 사별하고 22살에 재혼한 예안 이씨(이간의 현손녀)의 처가마을로도 이름을 알리게 됐다.
마을은 전형적인 반가의 고택과 초가가 잔재하며 돌담으로 감싸인 한국 고유의 옛 모습이다. 드라마 <영웅시대>, <옥이이모>, <찬란한 여명>, <덕이> 등이 영화로는 <취화선>, <태극기 휘날리며>가 이곳에서 촬영됐다. 내를 가로질러 놓인 다리를 건너면 왼쪽에 소나무 숲과 아담한 정자가 있다. 그 앞에는 물레방아가 하얀 포말을 튕겨 시원함을 더한다. 무엇보다도 나지막한 돌담장이 인상적이다. 마을 전체가 커다란 돌담에 둘러싸인 느낌이다. 집집이 쌓인 돌담 길이를 합하면 6000m나 된다고 하니 놀라운 일이다.
한 가지 아쉬운 점은 건재고택, 송화댁, 참판댁, 교수댁의 문이 닫혀 있다는 점이다. 사생활 보호라는 측면을 무시하는 것은 아니지만, 입장료(2000원)를 내고 탐방하러 온 관광객은 쓸쓸히 발길을 돌려야 한다. 토, 일요일에는 오전과 오후에 한번씩 개방한다고 한다. 하지만 이 경우에도 행안부 지정 ‘정원 100선’에 선정된 건재고택만은 볼 수 없다.
가는 길/
서해안고속도로 서평택IC에서 빠져 아산만방조제를 건너면 된다. 경부고속도로를 이용할 경우에는 천안IC에서 내려서 21번 국도를 따라 가거나, 안성IC로 나와 평택, 둔포를 지나 아산만방조제를 건너면 된다. KTX가 천안아산역까지 대략 35분 정도 걸린다. 용산역에서 온양온천역 일반열차를 이용할 경우 약 2시간 15분 소요. 급행을 타면 1시간 50분 만에 닿는다. 고속버스는 강남, 동서울, 남부터미널에서 1시간 20분에서 2시간 간격으로 있다.
대중온천탕/
아산에는 3대 온천이 있다. 1300년 전통의 역대 임금이 이용한 온양온천과 동양 4대 유황온천이라는 도고온천, 중탄산나트륨을 포함한 알칼리성온천인 아산온천. 호텔에서 머물면서 온천을 즐길 수도 있지만, 숙박비가 비싼 편이다. 온양온천내의 대중온천탕과 아산스피비스, 파라다이스호텔도고에서도 3000원에서 8000원으로 저렴하게 온천을 즐길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