버스에서 내리고나서야 신발에 이상이 생긴 것을 알았다. 걸을 때마다 계속 탁탁 소리가 나는 것이다. 내려다보니 끈이 끊어졌거나 뒤축이 달아난 것은 아니다. 샌들 앞섶을 장식하고 있던 장식품이 끊어져 달랑거리고 있는데 그 끈 끝이 늘어져 바닥을 치고 있다. 그럭저럭 걸을 수야 있지만 바닥에 닿는 통에 걸리적거린다. 생각다 못해 끊어진 끈을 발가락 사이에 집어넣었다. 여간 아프지 않다. 그 장식이라는 것이 타원형모양의 납작한 구슬을 몇 개 이어붙인 것이라 그렇다. 불편하기는 해도 가던 길을 포기할 수는 없어 가는 길에 신발가게가 있으면 사리라 마음먹는다.
혜화역에서 내린다. 혜화역 주변은 늘 젊은 아이들 투성이지만 오늘은 생각보다 한산한 것이 시간이 일러서 그런 모양이다. 신경이 온통 신발로 쏠린다. 학교 올라가는 길에는 신발가게가 제법 있다. 여름 끝이라 세일한다고 써 붙이고 있어 반갑기는 하다. 시계를 본다. 아무리 서둘러도 올라가는데 이십 분은 걸릴 테고, 빠듯하다. 볼일 보고 내려 올 때 들러야지. 그 동안은 불편해도 어쩔 수 없다.
올라가는 내내 발가락 사이에 끼운 장식끈이 불편해 애먹었지만 하여간 시간은 흘렀다. 일이 끝나 내려오다가 생각난다. 그래, 학교 내에 신발 수리하는 곳이 있었지. 경영관 한쪽 구석에 자리 잡은 그 구두 수선가게를 지나다니면서 눈여겨보았더랬다. 뒤축 떨어져나간 겨울 부츠와 뒤쪽 헤어진 아들 구두 때문이다. 언제 시간나면 들고 와야지 했는데 늘 바삐 다니느라 잊었다. 동네에서 고치려고 안한 것은 아니다. 그 부츠와 구두를 들고 집 주변을 한참 헤맸었다. 분명 수선 가게가 두어군데 있었는데 모두 문을 닫아버려 허탕치고 돌아갔던 것이다. 그래서 부츠와 아들 구두는 일년이 지나도록 신발장에 그냥 박혀 있다.
한 평이나 될까. 열기가 후끈 끼쳐오는 공간에 두 사람이 나란히 자리하고 앉아 수선에 여념 없다. 한쪽 구석에서 선풍기가 돌아가고 있지만 이 더위를 식히기는 어림도 없다. 구슬땀을 흘리면서 오른쪽에 앉은 이가 묻는다. “어떻게 오셨어요?” 샌들을 벗어 내민다. “여기가 끊어졌는데요.” “저기 슬리퍼 신으세요.” 까만 슬리퍼가 대여섯 켤레, 문밖에 늘어져 있고 의자가 놓여 있다. 두 사람이 내게서 받은 샌들을 살핀다. “하나 사는 게 낫겠네요. 이래서 어떻게 고쳐요.” “어디서 사셨어요?” “시장에서 샀는데요.” “요즘은 신발을 왜 이렇게 만드나 몰라. 이쁘기는 한데 약해서. 시장에서 샀으면 고칠 수도 없겠네요. 어디 봅시다. 이걸 본드로 붙여드릴 게요. 그렇게 하면 한동안 신을 수는 있어요.” “거기 앉으세요.”
하릴없이 문밖에 내놓은 의자에 앉는다. 들고 다니던 엠피 쓰리를 꺼내들었지만 하필이면 배터리 소진이다. 멍하니 앉아 있는 수밖에 도리가 없다. 가게를 들여다본다. 깔끔하게 정리는 했지만 가게 안에도 신발은 산더미 같다. 긴 머리 아가씨가 구두를 들고 온다. “이 신발 오래 신을 건가요?” “산 지 얼마 안 되었는데요.” “오래 신었네요. 뭘. 이 밑창 좀 봐요. 이런 건 갈아주고 염색해야 오래 가요.” 검은 구두 접혀지는 부분에 주름이 져 있고 밑창은 닳아 있다. “그럼 그렇게 해주세요.” “어디 보자. 밑창 가는데 만원, 염색하는데 팔천 원. 광내는 데 이천 원. 이만 원입니다.” “언제 되는데요?” “내일요.” 아가씨는 돈을 지불하고 돌아간다.
내 샌들은 어찌 되었나. 들여다 보니 한쪽으로 밀쳐놓고 밑창 가는 일을 하고 있다. "어? 내 신발, 어떻게 되었어요?" "지금 본드로 붙여놓았어요. 제대로 붙으려면 기다려야 해요."
다시 오가는 이들을 바라다본다. 아직 방학도 안 끝났는데 오가는 이는 왜 저리 많은 걸까. 가만히 앉아만 있어도 땀이 줄줄 흐르는 이 더운 날, 학교에 오는 저 아이들은 무슨 일이 있는 걸까. 그러고 보니 공사가 끝났구나. 퇴계인문관으로 올라가는 길목, 그 계단이 있는 곳은 작년부터 내내 공사 중이었다. 그 불편하게 하던 공사가 끝나 수선가게 앞은 환하고 깨끗하다. 방학이 끝나 학교에 와보면 무언가 달라져 있곤 했다. 강의실 책상이 바뀌었고 의자가 바뀌었고 음향시설도 달라졌다. 비록 강의 형태야 구태의연했지만 그렇게 강의실이 환해져 있으면 여간 기분 좋지 않았다.
그래도 구두 수선가게는 처음 보던 그때부터 변함없다. 벌써 몇 년이 되었나. 물론 그 전부터 있었겠지만 학교로 돌아온 후 언젠가부터 눈에 띄었으니. 하긴 겉에서 보기만 하고 지나치곤 했다. 최신식의 장대한 건물에 초라한 가게는 어울리지 않아 어찌 보면 빈대같아 보이기는 했다. 그래도 모두 이 가게의 존재를 알고 있다.
"신어보세요." 아저씨가 말끔해진 샌들을 내민다. "그 끈이 어디 걸렸던 모양이에요. 잘 끊어지는 끈이 아닌데. 아예 본드로 붙였으니까 물속에만 들어가지 않으면 일년은 너끈히 신을 겁니다." 바닥에 부딪쳐 약간 흠이 생긴 장식구슬이 원래 그대로 뽀얀 빛으로 올려다보고 있다. 수선비는 생각보다 비쌌다. 그래도 일 년은 걱정 안해도 된다니 고맙다. 부츠를 고칠까 하고 물어본다. "다음에 가지고 오세요. 더 오래 가게 잘 해드릴게요." 그래야겠다. 다음에 저 장인에게 내 겨울을 지탱해 줄 신발을 들고와야겠다.
올여름 사람들 많은 관광지에서 슬리프 끈이 떨어져 발가락 사이에 끼고 걷다가 나중엔 바닥 본드도 떨어지고..맨발로 혼자 뒤처져 걸었던 기억이 나네요. 쓰레기통도 안보이고...차까지 거리가 왜 그리도 멀게 느껴지던지. 여름이라는 계절이 부끄러움 조금은 가려주었나? 망할 놈의 슬리프.
첫댓글 맞아요. 그들은 장인이지요. 그러고 보니 구두수선집(?)에 가 본 지가 정말 오래 되었네요. 내가 살고 있는 김천에는 김천역 앞 구름다리 아래에 그 유명한 자그마한 수선집이 있지요. 읽으면서 심심해하는 희야님의 표정을 그려보며 읽었습니다.^^
올여름 사람들 많은 관광지에서 슬리프 끈이 떨어져 발가락 사이에 끼고 걷다가 나중엔 바닥 본드도 떨어지고..맨발로 혼자 뒤처져 걸었던 기억이 나네요. 쓰레기통도 안보이고...차까지 거리가 왜 그리도 멀게 느껴지던지. 여름이라는 계절이 부끄러움 조금은 가려주었나? 망할 놈의 슬리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