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줄리아"란 이름의 중년 여배우에 관한 이야기.
간만에 좋은 영화를 본 거 같다. 글구 무엇보다도 맘에 드는 건 줄리아란 캐릭터가 꽤 매력적이라는 거다. (아네트 베닝의 연기가 워낙 발군이라서 그런 것도 있겠지만^^)
서민적 취향(포도주도 마다하고 맥주에 목을 맨다)에 날카로운 재담과 여우같은 허상의 가면을 쓴 사람이라고나 할까.
사실은 정말 싫어하면서도 사업상 물주이기 때문에 좋은 관계를 유지하고
무대 뒤에서완 전혀 딴판인 모습으로 관객들 앞에서 천연덕스럽게 연기를 하는 배우.
그게 줄리아에 대한 내 첫인상이다.
...근데 그런 줄리아도 "톰"(티-오-엠)이라는 미국 청년에게 빠지면서 여느 여자들과 다를바 없어진다. 이런 말이 있다.
"여자는 사랑에 빠지기 전엔 현명하다"라는.
항상 자기 중심적이고 현실을 연극무대와 동일하게 생각하는(심지어 힘들어 하는 그의 아들에게조차 조언이랍시고 연극대사를 읊어대는) 여자. 남편과도 사랑보단 사업상의 제휴 비슷한 관계를 유지하는 여자. 자기에게 악의를 갖고 비꼬는 말을 흘리는 여자에게 당신네 가족들은 "개"라고 쏘아주는 여자.
그런 여자가 질투에 미쳐 화를 내고 눈물을 쏟으며 그의 연인이 호감을 표하는 여자를 창녀라며 욕설을 내뱉고 분에 못 이겨 할말 못 할말을 쏟아내어 남자를 질리게 만드는 그런 여자가 된다.
흥미있게 보다가 그런 줄리아의 모습에 실망을 하려는 그 순간! 그녀는 어느샌가 다시 멋진 악녀의 모습으로 돌아온다.
사실 줄리아란 "배우"는 어떨지 몰라도 줄리아란 "여자"는 보통 사람의 감성을 기준으로 보면 그다지 호감을 느끼기 어려운 캐릭터인지도 모른다.
허영심이 가득하고, 남자들 앞에서 언제든 애처롭게 거짓 눈물을 흘리고, 그의 남편을 돈만 아는 놈팽이로 매도하고, 자기 아들뻘 되는 젊은 남자와 불륜에 빠지는 뱃살이 쳐질까봐 매일 매일 운동에 열심인 중년의 여자.
하지만 줄리아에겐 자기 일(연기)에 대한 열정이 있다.
남편이 이번 연기는 최악이었다고 하자 그의 따귀를 갈기며 당신따위 삼류 배우가 연기에 대해 뭘 아느냐고 앙칼지게 쏘아 붙이고 그러다가 그의 남편이 자기 말을 들으라고 하자 정말 최악이었냐고 되묻곤 순순히 고향으로 돌아가 마음을 추스리고 멋지게 컴백하는 그런 열정.
그래서 그 인간적 결함이 결코 못나 보이진 않는다. 하긴 이 영화 자체가 "배우 줄리아"에 초점을 맞추고 있으니깐 뭐.
영화의 최고 하이라이트는 마지막 즉흥공연 장면.
통쾌 그 자체라고 할까! 좀 작위적인 연출이긴 하지만.
뭐~ 따지고 보면 "시실"역의 그 여자나 "줄리아"나 하는 짓은 오십보 백보 차이다.
근본이 비슷하다고나 할까?
성공을 위해 혹은 자신의 오락을 위해 남자를 이용하는 모습이나 불륜 같은 것들.
근데 줄리아가 시실역의 여자를 완전히 엿 먹이는 장면을 보고 있음 속이 아주 후련해 진다. (내가 아는 최고의 장면 중 하나)
악랄한 대선배의 복수극?? 중년의 완숙미의 승리라고 해두자ㅋㅋ
연극 대사 중...
"오! 이런~ 내가 널 화나게 했니? 너무 화내지 말거라. 전쟁엔 모든게 다 정당화 된단다. 그리고... 오! 젠장! 단어가 도망쳐 버렸네."
그 신도 가관이지만 연극이 끝나고 시실의 대기실 신이 아주 웃기는.
이제 출세고 뭐고 연기도 다 때려 치우고 고향에 돌아가겠다고 오열하며 줄리아에게 욕설을 퍼붓는 시실역의 여자에게, 줄리아의 남편이 다가와선 이미 계약도 체결했고 연극도 대성공이고 하니 장기공연으로 가잔다ㅋㅋ
아! 엔딩곡을 어디서 들어봤다 싶었는데 여기서 나왔군.
가사가 줄리아의 독백처럼 잘 어울리는 거 같다.
사람들에게 당당히 말하는 그 성품이나 그 가사 속 상황이나.
친구들은 내게 내 사랑이 진실한지 어떻게 아냐고 물었죠.
오, 물론 난 대답했죠.
내 마음 속에 무엇인가가 절대로 부정할 수 없을 정도로 강한 사랑이라고.
사람들은 말하더군요.
내가 사랑에 눈이 멀어있다는 것을 언젠가 알게 될 것이라고.
당신의 마음이 사랑으로 불타 오를 때 당신은 느껴야 합니다.
사랑의 연기가 당신의 눈을 가리고 있다는 것을.
그래서 난 그들의 말을 웃어 넘겼고 유쾌하게 웃었답니다.
사람들이 우리의 사랑을 의심할 것이라 생각하면서.
그러나 오늘, 나의 연인이 떠나 버렸어요.
난 연인없이 홀로 있습니다.
이제 친구들은 웃으면서 조롱하고 눈물이 나네요.
하지만 나는 웃으면서 말해요.
사랑의 불꽃이 꺼지면서 그 연기가 눈에 들어와 눈물을 흘리고 있다고.
그 연기가 눈에 들어와 눈물을 흘리고 있다고 말이에요.
- 키리 데 카나와의 Smoke gets in your eyes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