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시 영국군은 군사적으로나 외교적으로 마찰을 일으키지 않으려는 입장을 가졌다고 볼 수 있구요. 그러다보니 거문도의 3섬 가운데에서도 거문도 사람들이 살지 않는 섬에 상륙했습니다.
그리고 거문도 원주민들과 직접 대화를 해서, 처음에는 노동력의 댓가를 쌀로 지급했구요. 그 다음에는 동래에서 엽전을 환전해와서, 엽전으로 임금을 지불했습니다.
그 당시 영국군은 러시아의 남하를 막기 위해, 이 곳을 강제 점령했구요. 조선 정부와 협상을 해서, 이곳에 영국군의 군사 기지를 둘 생각을 갖고 있었다고 생각됩니다. 당시 조선 정부는 이 문제에 깊이 고민을 하지 않았구요. 그러다보니 결국 영국군은 거문도에서 물러납니다. 이 당시 조선 정부가 좀더 능동적으로 대처하면서, 조영 군사동맹을 맺었다면 어땠을까라는 생각도 해봅니다.
후일 영국은 일본과 영일군사동맹을 맺게 되구요. 이후 청일전쟁과 러일전쟁에서 일본이 승리하는데는 영국의 첩보자료가 많은 도움이 되었을 것으로 생각됩니다.
영국군의 거문도 강제 점령 사건과 관련해서는 아래 유튜브 자료를 참고하세요.
갑신정변 이후 조선의 대외관계 & 거문도 사건 l 근대 한국사 11부; 3.08.
한국 테니스 역사 (테니스 시작은 1883~); 5.4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