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바람을 타고 오는 봄소식은 상큼하다. 매향과 벚꽃이 길손을 유혹하는 하동 섬진강변의 봄은 마음까지 설레게 한다. 이맘때면 지리산 자락의 기름진 땅에서 나는 봄나물과 남해바다의 싱싱한 해산물이 모여드는 하동공설시장도 강바람 타고 오는 *너뱅이들의 흙내음을 맡으며 봄단장을 한다.
글·사진 진남숙 명예기자/하동군 문화관광해설사
섬진강 벚굴은 또 다른 '봄의 전령'
산과 강, 바다를 모두 끼고 있는 하동은 예부터 물산이 풍부했다. 지리산과 그 언저리에서 나는 나물과 약재는 입맛과 기운을 돋운다. 섬진강 건너 전남 광양의 백운산에서 나는 산물도 장날이면 강을 건너온다. 참게와 재첩, 은어는 섬진강의 선물이다.
미역과 김, 파래, 백합, 바지락 등 남해바다의 해조류와 조개류는 하동 사람들의 밥상을 풍족하게 한다. 섬진강과 남해바다가 만나는 **기수역에서 나는 벚굴은 식도락가들을 불러들이는 80리 하동포구의 또 다른 '봄의 전령'이다.
이렇듯 사람들의 허기와 구미를 채워주는 최적의 조건을 갖춘 하동은 거래 물목을 풍요롭게 했다. 그리고 언제부터인지 정확하지 않지만 곳곳에 장터를 형성했다. 매월 초하루 화개장·악양장(1·6일장)에서부터 시작된 하동의 장은 하동장·노량장(2·7일장), 진교장·옥종장·양보장(3·8일장), 북천장(4·9일장), 횡천장·계천장과 배들이장이라고 불리는 고전장(5·10일장)으로 이어지며 5일마다 장이 섰다.
하동의 장들은 거래를 위한 장터에 머물지 않았다. 풍부한 물산과 모여드는 사람들은 예술과 문학작품의 소재를 제공했다. 특히 문학인들에게 인기가 높아 수많은 문학작품들을 탄생시켰다. 김주영의 <객주>, 김동리의 <역마>가 대표적이다.
돛배와 함께 하동 땅 장터도 쇠락
그 옛날 하동 땅 장터로 들어오는 물산은 대부분 섬진강을 따라 배로 이동했다. 멀리는 부산에서 출발한 정기선이 통영항을 거쳐 남해와 광양 사이 바다를 뚫고 노량에 들어서면 물산은 작은 돛배에 옮겨졌다.
작은 배들은 바람과 물때를 맞춰 노량에서 화개나루까지 80리 물길을 오르며 수많은 나루를 지나는 동안 배섬·광평·두치나루에 풀어져 제각각 갈 길을 찾아 흩어졌다. 어떤 물목은 봇짐과 등짐으로, 어떤 물목은 소달구지나 말에 얹혀 가기도 했다. 악양이나 화개, 구례 등지로 가는 물목은 배에 실린 채 샛강을 올랐다.
돛배가 강을 하얗게 덮을 만큼 번화했던 옛 뱃길은 끊어진지 오래다. 장이 번성했던 시기 최고의 교통수단인 배가 사라지는 것과 함께 시골의 장들도 쇠퇴했다.
세태가 변하면서 인근 진주와 남해, 산청은 물론 섬진강 건너 전남 땅 광양과 구례 사람들까지 모여들던 장터들도 이젠 옛 모습을 찾기 어렵다. 관광지로 바뀐 화개장을 비롯해 하동장과 같이 공설 상설시장으로 탈바꿈한 시장이 있는가 하면 명맥만 이어오는 장터도 있다.
계절 따라 '3색·3맛시장'으로 진화
이들 하동 땅 시장 가운데 하동공설시장은 조선시대 중기부터 섬진강을 따라 이동한 지리산의 임산물과 남해바다의 해산물이 모이고 흩어진 집산지였다. 하동읍에 자리해 하동장 또는 하동읍장으로 불린 하동공설시장은 옛 영화에 비길 수는 없지만 지금도 하동의 대표 장터다.
국도19호선과 국도2호선이 동서남북으로 교차하고, 경전선이 지나가는 곳에 위치해 산과 강, 바다 어느 곳으로도 쉽게 연결되어 있어 물자뿐만 아니라 숱한 사람들과 문화교류 또한 활발했다.
남해군 미조면에서 강원도 홍천군 서석면까지 이어지는 국도19호선과 부산 중구 옛 시청교차로에서 전남 신안군 압해도 송공리선착장까지 이어지는 국도2호선, 그리고 1968년 개통된 경전선은 섬진강과 접한 하동읍을 기점으로 주변에 아름다운 경관과 얘깃거리를 간직하고 있다. 이는 하동공설시장이 새로운 활로를 찾을 수 있는 소재들이다.
이를 반영하듯 하동군은 하동읍장의 명성을 되찾기 위해 매향이 가득하고 벚꽃이 흐드러지게 피는 올봄부터 '봄나물시장'(3~4월)을 연다. 봄나물의 파릇하고 상큼한 이 전통시장 활성화 프로젝트는 곧바로 3색·3맛으로 진화했다. 봄나물과 함께 하동의 대표적 농특산물을 주인공으로 했다. 진초록의 새큼한 '매실시장'(6월), 선홍빛의 달콤한 '대봉감시장'(11월)이 그것이다.
광양 땅서 온 봄나물 아낙들에 손짓
고포와 진교, 명덕, 선소, 당너리 등지에 터 잡은 장사꾼들은 이 장 저 장 한 바퀴를 돌고 다시 초이틀이나 이레에 하동읍장으로 온다. 인근에서 산나물을 채취하고, 직접 기른 야채류를 갖고 오는 시골 사람들도 젊은 아낙들을 향해 손짓한다. 경상도와 전라도 말이 적당히 버무려진 시장통은 정겨움으로 다가온다. 여든세 살인 할머니는 포대에 담긴 나물들을 빈 그릇에 채우며 지나가는 사람들을 불러 새운다. 섬진강 건너 광양 땅 다압에서 오신 할머니가 챙겨온 푸성귀는 많지는 않지만 없는 게 없다. 쑥, 씨븐너물(씀바귀), 고들빼기, 빼뿌쟁이(쑥부쟁이), 달롱게(달래), 냉이, 잔파, 봄동 등을 할아버지가 오토바이로 실어다 주고 가셨단다.
수십 년째 기름집을 운영하는 '신동참기름' 사장님은 "예전에 비해 사람이 엄청시리 줄었지. 내가 한창 젊은 나이 때는 하동 인구가 13만이었는데 지금은 5만 겨우 되니까 지금하고는 비교가 안 돼. 전에는 장날 되면 발 디딜 틈이 없었어. 내가 있는 이쪽저쪽이 다 싸전이었고, 전라도 벌교, 태인도 사람들도 많았지." 장날이 아니어도 예나 지금이나 기름집을 찾는 사람들이 있어 가게를 접지 못한다며 "이제는 여기저기 놀러도 댕기고, 하고 싶은 일도 했으면 좋겠다"고 말한다.
'장터 예술탐험대'도 4월부터 운영
(사)하동시장번영회를 찾으니 시장번영회 상무 겸 하동공설시장 매니저 김리상씨는 옛날 시장 모습이 담긴 사진을 보여주며 시장의 변천을 설명했다. 그야말로 시장통에서 한 할머니로부터 들은 '상전벽해'요, '천지개벽'이다.
하동공설시장은 작년부터 소상공인시장진흥공단의 지원과 하동시장번영회의 협조로 '장터로 떠나는 예술탐험대'를 운영한다. 시장상인과 장터를 찾은 사람들, 지역의 초·중·고 학생들이 참가한다.
첫해부터 제법 인기를 끌며 수개월간 만든 각자의 작품을 지난해 연말 전시하기도 했다. 올해도 계속되는 프로그램은 4월부터 진행된다. 매주 2회씩 열리는 프로그램은 솟대 만들기, 뜨개질, 닥종이인형 만들기, 짚풀공예, 목공예 등 손재주를 뽐낼 수 있다.
올 봄 하동공설시장에는 옛 장터의 기억을 되살리듯 지리산 자락과 너뱅이들을 비롯해 섬진강대교와 다압다리, 남도대교 건너 광양과 구례 땅의 싱그럽고 상큼한 봄나물이 모여든다. 파릇한 옷을 입고 상큼한 내음을 풍기는 하동공설시장이 하동포구 80리의 은은한 매향, 화사한 벚꽃과 어우러져 상춘객을 유혹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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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뱅이들 넓은 벌을 뜻하며, 하동읍 앞에 펼쳐진 들판을 이른다.
**기수역(汽水域) 민물과 바닷물이 만나는 지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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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월 14일~4월 4일 토요일 개장
섬진강 건너 광양시 다압면에서 열리는 매화축제와 화개벚꽃10리에 벚꽃이 흐드러지게 피는 시기에 맞춰 하동공설시장에 3월 14일부터 4월 4일까지 매주 토요일 4회 '봄나물시장'이 펼쳐진다. 시장상인과 적량·지리산청학 등 하동 관내 2개 농협을 비롯해 작목반, 참여를 희망하는 하동 군민, 구례와 광양 주민 등이 취나물, 머위, 쑥, 달래, 냉이, 미나리, 부추, 곰취, 삼채 등을 갖고 나온다.
장터에서는 각설이와 줄타기, 마술 등 공연을 비롯해 '쿵떡쿵떡 봄떡 만들기, 쑥떡쑥떡 봄떡 나누기'라는 제목으로 떡메치기 등 떡체험·딸기체험과 봄나물 요리 맛보기 등 체험프로그램도 펼쳐진다. 장터가 열리는 날에는 취나물농장을 찾는 '취나물체험'도 진행된다.
공설시장 중앙통로에는 먹거리도 펼쳐진다. 하동군다문화센터와 시장상인, 지역의 각종 단체 등이 다양한 먹거리를 내놓는다. 베트남과 필리핀 등 다른 나라의 음식과 달고나·뻥튀기·솜사탕·찐빵 등 추억의 먹거리, 재첩국·찹쌀떡·식혜 등 전통먹거리 등이 장터를 찾는 사람의 눈과 입을 즐겁게 한다.
화개장터도 벚꽃 개화 맞춰 재개장 하동 땅에서 이어져오던 10여 곳의 장터 중 가장 많이 알려진 장은 구례사람과 하동사람이 어우러졌던 화개장이다. 영·호남 화합의 상징으로 유명한 화개장이 지난해 11월 큰 화재를 입어 안타까움을 자아냈다. 하동군과 시장상인들은 성금 답지 등 각계의 성원에 힘입어 화재 직후부터 복구에 들어갔다. 그리고 올봄 벚꽃 개화시기에 맞춰 새롭게 개장한다. 새로 선보이는 화개장터는 예전보다 점포를 늘리는 한편, 동선을 단일화해 관광객들이 편리하게 둘러보며 쇼핑할 수 있도록 했다. 노래 '화개장터'를 부른 조영남의 갤러리포토존 등 볼거리도 추가한다.
첫댓글 올봄에는 화개장터도 가보고 섬진강 매화구경도 해볼까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