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 위의 김수영
-홍기원/삼인 2021년판
시인 김수영은 재미있는 사람이다
1
한국 현대사회가 낳은 걸출한 시인인 ‘김수영’을 그가 태어나고 자란 동네부터 시작해서 버스 교통사고로 운명할 때까지 그가 살며 옮겨 다녔던 장소와 건물들을 시간대별로 취재해서 일생을 조명해 본 책이다.
사회적으로 뛰어난 위인의 업적과 활약을 중심으로 한 ‘전기문’도 아니고 유명한 작품을 남긴 예술가의 ‘평전’도 아니지만(‘김수영’과 관계된 평전은 일부가 이미 출판되어 있다) 그 궤적을 추억과 일화로 소환해보며 애석하게도 불의의 사고로 너무 일찍 타계한 시인을 그리는 시간이 마련된 것이다.
어떤 인물을 그리기 위해 이렇게 장소와 궤적을 시간대별로 따라 가보는 기획은 우리의 문화출판계에 드문 일이라고 할 수 있는데 그 특별하고도 신선함으로 책을 집어든 독자는 시인 ‘김수영’을 사랑하는 마음만큼 책에서 시선을 쉽게 떼지 못하게 되는데 혹 잠시 떼게 되더라도 호기심과 사랑의 관심을 완전히 놓지는 못하고 일상에서는 여간해서는 발휘하기 힘든 고도의 집중력을 시종 유지하게 되는 데 책의 마지막 페이지에 이르러서야 탄식하듯 현실로 돌아오게 된다. 그리고는 다음과 같은 말을 혼자 읊조리듯 내뱉는 자신을 발견하게 된다.
-우리는 근래에 보기 드문 훌륭하고 아까운 시인을 너무 일찍 잃어버렸구나.
2
이 책을 쓴 작가의 발로 뛴 취재들은 대부분 성공적이다. 낡은 사진들이긴 하지만 시인이 남긴 자취와 궤적들을 대부분 훌륭하게 복원했다. 그리고 남은 유족과 친지들의 증언을 토대로 시인의 과거를 반추시키기에 부족함이 없었고 그 시간들은 이 땅의 지난 역사적 시간들과 맞물리며 그 생명력을 발휘했다.
이런 일련의 사진들과 유족들의 증언으로 이어진 취재는 한 편의 영화처럼 퍽 흥미롭지만 흔히 허구로 치부되며 일상화된 요즘의 자극적인 환상과 드라마와는 차이가 많다.
우리 곁에서 살아 숨 쉬는 근현대 역사가 ‘시인 김수영’이라는 한 인물과 관련되며 소환된 생생한 기억적 사실들, 그러나 돌이키기에는 너무나 애석하고 아쉬우며 아련한 추억들이었다. 우리는 시인 김수영을 아끼고 사랑했던 것이다.
3
‘길 위의 김수영’에는 당연히 시인만 등장하지는 않는다. 당대에 시인과 함께 문단을 주도했고 이후 주류적 문학 세대로 등장하는 여러 신진 문학가들의 다양한 에피소드가 책을 읽는 즐거움을 배가시킨다. 물론 그 취재들은 문학사 이면의 신변잡기적인 이야기도 포함되어 문학을 사랑하는 독자들에게는 더욱 흥미로울 수밖에 없다.
직접적으로 관련이 있는 시인과 예술가만 하더라도 박인환, 임화, 염무웅, 박맹호, 김병욱, 이병주, 이어령, 고은, 천상병, 백낙청 등 쟁쟁한 인물들이 등장하고 있는데 역사적 인물인 이승만, 김일성, 박정희 전 대통령도 간접적으로 영향을 주고받는 인물로 등장하고 있다.
역사적으로 굵직굵직한 사건들도 그 배경으로 나타난다. 일본의 대동아전쟁, 이 땅의 남북간의 혈육상잔인 육이오전쟁, 그 전쟁 여파로 시인이 끌려간 북한 인민군 입대와 훈련, 그 후 탈출과 동시에 국군의 포로가 되어 겪었던 고문과 거제도 포로수용소 생활 등.
서울 생활 복귀 후에도 그런 움직임은 이승만의 장기 독재와 3.15 부정선거, 이어진 4.19혁명과 5.16 군사혁명 등의 굴곡진 현대사 속에서 이어지며 시인의 예민한 감수성과 역사의식 속에서 작품으로 잉태되거나 피어나고 있다.
그런가 하면 시인의 가족들도 이 책을 읽는 흥미를 가중시켜주는 역할을 한편으로 톡톡히 하고 있다. ‘시인 김수영’은 이 땅과 독자가 기억하고 지켜주는 위대한 시인으로 탄생했지만 음지에서 시인을 물심양면 뒷바라지한 가족들의 희생 없이는 그러한 결과는 얻기 어렵기 때문이다. 시인의 아내 김현경, 그림자같이 따라다닌 큰누이 김수명, 그리고 책 속에서 밝힌 글귀처럼 ‘그의 영원한 여인인 시인의 어머니’ 등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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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술사에서 훌륭한 작가를 기억하는 방법으로 이 책 ‘길 위의 김수영’처럼 기획, 편집하여 출판한다면 그 자체로도 하나의 장르처럼 독자에게 아름다운 모양새로 자리잡을 수 있겠다는 생각을 해보며 읽는 내내 기쁘고 즐거웠음을 숨길 수가 없겠다.
(2023. 0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