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스라의 결심
스 7:6-10
유대인들에게 있어서 가장 소중한 물건을 꼽으라 하면 ‘토라’일 것입니다. 토라는 엄격하게 말하면 모세 오경을 말합니다.
토라는 사람 손이 직접 닿지 않도록 취급하는 것이 그들의 원칙입니다. 우선 토라를 꺼내서 읽을 때는 토라손(토라 포인터)을 이용합니다.
사람의 팔처럼 만들어진 토라손은 회당에서 토라를 읽을 때 여러 사람에게 현재 읽고 있는 부분을 알려 줄 수 있을 뿐 아니라 토라에 때를 묻히지 않게 합니다.
만일 토라를 땅에 떨어뜨리거나 무심코 땅바닥에 놓은 사람은 금식을 해야 합니다.
이처럼 유대인들은 토라를 인격적으로 대우합니다. 만일 회당에 불이 났을 경우에는 사람을 다 구한 뒤에 제일 먼저 토라를 구해야 하고, 토라 두루마리가 낡거나 못쓰게 되어 폐기해야 할 때는 사람처럼 무덤에 묻어줍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경외하는 것이 지혜의 근본입니다. 유대인들은 그 가르침을 따르기 위해서 노력을 아끼지 않습니다.
어떻게 하는 것이 하나님 말씀을 경외하는 것일까요? 유대인들처럼 성경책 자체를 소중하게 다루는 것도 좋습니다.
그러나 사실 더 중요한 것은 성경책이 닳도록 읽고 또 읽어서 그 말씀이 우리 마음에 새겨지게 하는 것이 더 좋은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말씀에 대한 진정한 경외심이 아니겠습니까?
포로에서 돌아온 에스라의 중대한 결심이 본문에 나타나고 있습니다. 어떤 결심입니까?
여호와의 율법을 연구하여 준행하며 율례와 규례를 이스라엘에게 가르치기로 결심한 것입니다. 그래서 오늘 말씀의 제목을 ‘에스라의 결심’이라고 정하였습니다.
그렇다면 스라야와 에스라 사이에 적어도 약 120년의 차이가 존재한다고 볼 수 있습니다.
에스라에 나타난 계보는 모든 사람을 다 소개한 것이 아닙니다. 개괄적으로 나열한 것입니다. 에스라의 족보를 거슬러 올라가면 누가 나옵니까? 첫 번째 대제사장인 아론이 나옵니다.
에스라는 아론의 16대 손이라는 것입니다. 왜 오늘 본문이 이런 것을 소상하게 기록하고 있을까요?
에스라가 개혁을 주도하기에 충분한 자격을 갖춘 인물임을 보여주는 것입니다.
한 사람의 족보를 이렇게 자세히 보도하는 것은 매우 이례적인 일입니다.
이것은 저자가 에스라라는 인물에 특별한 관심을 보이고 있다는 것입니다.
무너졌던 성전은 재건되었고, 성전 봉헌식도 성대히 치러졌습니다. 그러나 성전을 재건하시는 하나님의 역사는 그것으로 끝나지 않았습니다.
예루살렘 성전의 진정한 회복을 위해 하나님은 한 사람을 등장시킵니다. 그가 바로 아론의 16대 손인 학자 겸 제사장 에스라입니다.
첫째 : 하나님의 도우심으로 다 받는 자
“이 에스라가 바벨론에서 올라왔으니 그는 이스라엘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주신 모세의 율법에 익숙한 학자로서 그의 하나님 여호와의 도우심을 입음으로 왕에게 구하는 것은 다 받는 자이더니”(6절)
당시 제사장이라고 해서 모두 율법에 정통한 것은 아니었습니다. 율법을 잘 모르는 제사장도 많았고, 율법을 알더라도 지키지 않는 사람들도 있었습니다.
그러나 제사장 에스라는 하나님의 언약 백성이 지켜야 할 모세 율법에 익숙한 성경학자요, 율법 교사였습니다.
여기에서 ‘익숙한’이라는 말은 ‘능통한, 통달한, 준비된’이라는 여러 가지 의미를 지닌 단어입니다.
그는 율법에 정통한 학자였습니다. 그는 율법을 공부했고 그에 순종함으로써 그 의미를 체험한 사람이었습니다.
그는 바벨론 학문도 공부하였지만, 무엇보다도 하나님의 율법을 중요시하고 마침내 그 율법에 정통한 학자가 된 것입니다.
아마 여기에는 그가 아론의 후손이라는 정체성이 한 몫을 했을 것입니다.
그는 하나님의 말씀이 지식의 근본임을 확신했습니다. 말씀에 대한 이런 확신이 있었기 때문에 그는 바사의 선진 문화에 휩쓸리지 않고 하나님의 백성으로서 말씀을 연구하는 일에 매진했던 것입니다.
에스라가 귀환할 때, 율법 책을 가지고 오면서 예루살렘 공동체는 토라 중심의 공동체로 새롭게 시작할 수 있었습니다.
성전이 중요하지만 그 안에서 행해지는 것들이 하나님의 율법을 따라야 하지 않겠습니다. 이제 외형이 갖추어졌고 내실을 다지게 된 것입니다.
‘모세의 율법에 익숙한 학자’로 에스라를 소개하고 있는데 ‘학자’(쏘페르)는 ‘기록자, 서기관, 비서’를 뜻하는 단어입니다.
학자는 바벨론 포로 기간에 생긴 새로운 직업으로, ‘율법을 기록하고 연구하는 사람’을 말합니다.
이런 면에서 에스라는 포로기 이후 성전과 율법을 중심으로 새로운 공동체를 건설하는 데 적합한 인물입니다.
“그의 하나님 여호와의 도우심을 입음으로 왕에게 구하는 것은 다 받는 자이더니”
둘째 : 선한손의 도우심
“첫째 달 초하루에 바벨론에서 길을 떠났고 하나님의 선한 손의 도우심을 입어 다섯째 달 초하루에 예루살렘에 이르니라”(9절)
그가 바벨론으로부터 4개월 만에 예루살렘에 도착한 것도 하나님의 도우심 때문이었습니다.
그에게 사명을 맡기신 하나님은 그의 길을 친히 인도하시며 실제적인 도움을 베푸셨습니다.
하나님의 보호하심은 무슨 일을 당해야만 나타나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은총의 손길은 내가 아팠다 고침 받아야만 드러나는 것이 아닙니다.
한 번도 아프지 않았다면 더욱 큰 은총을 받은 것입니다. 한 번도 험한 꼴을 당하지 않고 살았다면 엄청난 은혜를 받은 것입니다.
한 번도 실패한 적이 없다면 놀라운 보호하심을 얻은 것입니다.
(사26:11) “여호와여, 주의 손이 높이 들릴지라도 그들이 보지 아니하나이다마는 백성을 위하시는 주의 열성을 보면 부끄러워할 것이니라.”
하나님은 나를 향해 손을 높이 들고 돌보시고, 축복하십니다. 그것도 매우 열성적입니다.
그런데 문제는? 사람들이 그걸 모릅니다. 자기 잘나서 잘 사는 줄 압니다. 자기가 똑똑해서, 자기 팔자가 좋아서 잘 나가는 줄 압니다.
그러다가 마침내 실패한 뒤에야, 위기에 빠진 뒤에야 눈을 들어 하나님의 열성을 바라봅니다. 보십시오! 잘 나갈 때 하나님의 선한 손을 보십시오. 나를 돕기 위해 높이 들린 그 든든한 손을 보십시오. 보지 않으면 나중에 심히 부끄러울 것입니다.
(시121:1-2) “내가 산을 향하여 눈을 들리라 나의 도움이 어디서 올까? 나의 도움은 천지를 지으신 여호와에게서로다.”
오늘날에도 교회의 회복을 위해 하나님은 성령의 능력으로 날마다 도우시고 인도하십니다.
성령님은 교회를 위해 성도 개개인의 인생에 들어와 거하시는 하나님이십니다. 성령님은 날마다 성도에게 필요한 모든 것을 공급해 주십니다.
율법에 익숙한 학자인 에스라에게 하나님의 도우심이 머물러 있었던 것처럼, 성령님은 교회에 필요한 모든 능력이 나오는 원천이십니다.
성령님은 교회를 바른 길로 안전하게 인도하시고, 성도 개개인과 함께 하시며 해야 할 일과 가야 할 길을 밝히 보이십니다.
셋째 : 에스라의 결심(決心)
“에스라가 여호와의 율법을 연구하여 준행하며 율례와 규례를 이스라엘에게 가르치기로 결심하였었더라”(10절)
에스라는 왕에게 신임을 받고 있었지만 그는 자신의 성공을 위한 정치적 입지를 마련하려고 하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왕의 곁을 떠나 예루살렘으로 가고자 했습니다. 그는 예루살렘으로 돌아가기를 원하는 사람들을 이끌고 예루살렘으로 출발합니다.
그런데 예루살렘으로 돌아가는 여정은 그렇게 쉬운 길은 아니었습니다. 그들을 노략하려는 대적들이 곳곳에 매복해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에스라는 하나님께 평탄한 길을 주시라고 금식 기도하면서 이 일을 감당하였습니다.
하나님의 선한 손의 도우심을 입어 4개월의 여정을 마치고 무사히 예루살렘에 도착하게 되었습니다. 그가 예루살렘에 돌아와 결심한 것이 무엇입니까?
에스라는 율법을 연구하기로 결심했습니다. 당시에는 율법을 아는 사람이 드물었습니다. 가르쳐주는 사람도 희귀했습니다. 사람들의 관심을 율법으로부터 아주 멀어졌습니다.
그들은 살아남기 위해 바벨론이나 페르시아의 학문과 문화를 배우는 것에 열심이었습니다.
그것은 출세를 위해 필수적인 요소였습니다. 반면 율법은 잘 안다고 해서 누가 알아주지도 않았습니다.
오랜 세월 이국 생활을 하며 살아남기에 바빠서 사람들은 더더욱 율법을 중요하게 여기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모두 율법에 무관심했습니다. 그렇게 율법은 사람들에게서 멀어지고 잊혀지고 있었습니다.
에스라는 율법을 연구하기로 결심하는 데 멈추지 않고 율법을 연구하여 깨달은 것을 준행하기로 결심했습니다.
에스라는 율법을 연구하는 중에 하나님은 자기를 찾는 모든 자에게 선을 베푸시고 자기를 배반하는 모든 자에게 권능과 진노를 내리시는 분임을 알게 되었습니다.
에스라는 당시 예루살렘 공동체의 위기를 말씀의 부재가 원인인 것을 깨달았습니다. 성전은 큼지막하게 지었지만 그리고 제사도 끊임없이 이어졌지만 하나님의 말씀이 채워지지 않는 공동체는 흔들릴 수밖에 없음을 알았습니다.
그래서 에스라는 백성들에게 율법을 가르침으로 유대 공동체를 하나님의 백성으로 올바로 세우고자 마음을 확고하게 정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