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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6일 오후 1시쯤 서울 송파구 오금동 보인고등학교 3학년 7반 교실에서 몇몇 학생들이 고개를 떨어뜨리고 졸고 있었다. 감독 교사가 "졸린 학생들은 뒤로 가서 공부하도록!"이라고 말하자 한 학생이 교실 뒤편의 '키높이 책상'에 가서 책을 놓고 공부를 했다. 이 책상 높이는 일반 책상보다 35㎝ 높은 1m5나 된다.
이 학교는 지난 4월 1개당 4만3000원을 주고 '키높이 책상' 24개를 주문해 3학년 12개 교실에 2개씩 배치했다. 이 학교 김범두(43) 교사는 "처음에는 '2분 퇴장'이란 규정을 만들어 졸거나 지적받은 학생이 2분간 선 채 키높이 책상에서 공부하게 하는 '벌'이었지만 지금은 졸음이 오면 학생 스스로 뒤로 나가 키높이 책상에서 공부하다 잠이 깨면 자리에 앉는 '자율 규범'이 됐다"고 말했다. 그는 "키높이 책상 덕분에 잠자는 아이들이 없어졌고 면학 분위기도 살아났다"고 했다.
학생들은 이 키높이 책상을 '졸음방지 책상'·'스탠딩 책상'·'입식 책상'·'키다리 책상'으로 부른다. 학생들은 졸음이 쏟아지면 책을 들고 '잠깨는 책상'으로 간다. 3학년 김모(18)군은 "책상이 모자라 한 책상을 두 명이 쓰는 경우도 있다"며 "3학년이 돼서야 이런 책상을 쓰게 된 게 아쉬울 정도"라고 했다. 이 학교는 학생들 반응이 좋자 다음 달에는 3학년 교실에 2개씩 추가 배치하고, 1학년과 2학년 교실에도 2개씩 배치하기로 했다.
경기도 수원의 한 교구사 관계자는 "지금까지 25개 학교에 1200여개의 키높이 책상을 납품했다"며 "표본으로 몇 개 가져갔다가 수십 개를 주문하는 학교도 있고 학부모가 개인적으로 사가는 경우도 있다"고 말했다. 서울 송파구 잠실7동의 정신여고도 지난 1학기에 43개의 키높이 책상을 주문해 전 학년 교실에 1개씩 배치했다. 이 학교 이희천 교감은 "다른 학교에서 키높이 책상 효과가 높다고 해서 구입했다"며 "졸음이 오면 스스로 나가 공부하도록 하고 있는데 학생들 만족도가 높다"고 했다.
미술 교사이면서 논술 강의도 하는 서울 A중학교 B(39)교사는 동료 교사들의 '뒷다리 잡기' 관행에 치를 떨었다. B교사는 독학으로 논술 강의를 준비해 2006년 5월 무료로 방과 후 수업을 열어 학생들에게 호응을 얻었다. 그러나 이를 못마땅하게 여긴 교사들이 방해해 그해 겨울방학 강의는 할 수 없었다. B교사는 "2006년 겨울방학에 아무도 수업을 신청하지 않아 알아보니 담임교사들이 학생들에게 신청하지 말라고 했다더라"고 말했다.
그는 "지금 학교 시스템은 열심히 일하는 교사들의 의욕을 꺾고 있다"고 했다. 밤 10시까지 일하며 수업준비에 바쁜 교사나 오후 4시 30분에 '칼퇴근(정시 퇴근)'하는 교사나 같은 대접을 받는 것은 부당하다는 이야기다. 그는 "수업을 대충해도 고용·연금이 보장되기 때문에 윗사람들 눈치나 적당히 보고 일하는 교사들도 있다"고 했다.
B교사는 행정업무 부담이 커서 수업 준비가 어렵다는 일부 교사들 주장은 받아들이기 어렵다고 했다. 교사가 되기 전 한 벤처기업에서 1년간 일했다는 그는 "교사의 업무량이 적은 건 아니지만, 민간 기업에 비하면 상대적으로 매우 적은 편"이라고 했다.
그는 공개수업을 해서 학생·학부모·동료 교사의 평가를 받는 교원능력평가제도도 무의미하다고 말했다. 낮은 평가를 받은 교사에게 벌칙도 없고 한 학기 연수만 받으면 그만이기 때문이다. 교사들이 서로 교수법을 평가하는 연구수업도 교사들이 서로 눈치 보느라 낮은 점수를 줄 수 없으니 효과가 없다고 했다.
B교사는 이런 상황에서 학생들이 학교에서 잠자는 것은 당연한 결과라고 말했다. 그는 "아예 학업을 포기하고 자는 애들도 있지만, 공부하려는 아이들은 학교보다 학원 수업이 효과적이라고 생각해서 잔다"고 말했다. 그는 "사교육 때문에 공교육이 무너진다는 건 핑계일 뿐"이라며 "사교육 시장은 학생들이 공교육에서 부족함을 느꼈기 때문에 커진 것"이라고 말했다.
"수업시간에 아이들이 정말 많이 자긴 합니다. 수업 과목에 따라 다르긴 하지만, 한 반에 3분의 1은 항상 잔다고 보면 돼요. 성적이 상위권인 아이들은 덜 자는 편이고…."
서울 A고등학교에서 사회과목을 가르치는 교사 최모(53)씨는 수업시간에 자는 학생들을 깨우는 것을 이제 거의 포기했다. 끊임없이 바뀌는 입시제도와 점점 늘어나는 행정업무로 해야 할 일들이 너무 많아서 잠자는 아이들을 깨워 가면서 진도를 제대로 맞춰갈 여력이 없다는 게 최씨 항변이다. "요즘 교원평가제가 시행되면서 선생님들이 좀 더 긴장하는 측면이 있기는 하지만, 수업시간에 자는 아이들까지 깨우다 보면 너무 힘들어서 일일이 깨우고 수업하기가 어려워요. 소리 지르면 목도 쉬고요. 그래서 자는 아이들을 못 본 체 지나치기도 하죠."
서울 B고등학교에서 국어를 가르치는 한모(27)씨는 "교사가 잣대를 들고 잠자는 학생을 가리키며 '일어나라'고 하면 선생님 손에 있던 자를 잡아채고 째려보며 대드는 아이들도 있다"며 "그럴 때 교사는 당황스러운 것을 넘어 위협감을 느낀다"고 했다. 공부하느라 늘 잠이 모자라는 아이를 깨운다고 학부모가 학교에 항의하는 일도 비일비재하기 때문에 깨우고 싶어도 못 깨운다는 교사도 있었다.
인천 C중학교 교사 박모(56)씨도 '잠자는 학교'를 어쩔 수 없는 현실로 받아들이고 있었다. 박씨는 "아이들이 수업시간에 자는 것은 어제오늘 이야기가 아니다"며 "요새 초등학교에서도 선행(先行)학습을 한 아이들은 잔다"고 했다. 박씨는 "솔직히 아이들은 교사가 깨워도 잘 일어나지 않는다"며 "인성교육이 중요한데 그게 안된 아이들이 많아서 가르치기가 쉽지 않다"고 푸념했다.
공교육의 수요자인 학생과 학부모는 '잠자는 학교'의 가장 큰 원인으로 노력하지 않는 교사들을 꼽고 있다. 수업을 재미있게 준비하거나 교실에서 자는 아이들을 깨우려는 열정이 부족하다고 지적한다. 하지만 학교 현장에서 만난 교사들은 다른 얘기를 한다.
B고등학교 교사 한씨는 "수업준비 시간도 모자라는데 지난 1학기에는 학생들이 하루에 양치질을 몇 번씩 하는지를 파악해 보고하라는 공문도 내려왔다"며 "예전에는 학생들 성적 등 필수 정보만 입력하면 됐는데 요새는 별 시답잖은 것까지 다 조사하라는 지시가 떨어진다"고 불만을 터뜨렸다.
인천 D중학교 교사 박모(56)씨는 "방과 후 수업을 하면 학생들로부터 받은 방과 후 수업비와 비용을 정산하는 일까지 선생님이 다 한다"며 "행정실에서 해야 할 일들도 선생님이 떠맡고 있다"고 말했다. 박씨는 "교사는 교육의 질(質)만으로 평가받아야 하는데 아이들 돈을 관리하는 일까지 맡기는 시스템에서 무슨 공교육의 질을 얘기할 수 있겠느냐"며 "이런 잡무들 때문에 학생들 앞에서 체면도 안 설뿐더러 수업에 대한 집중력도 떨어진다"고 했다. 대구 E고등학교 교사 유모(38)씨도 "수업은 따로 준비를 안 해도 별 표시가 안 나는데, 공문은 기한이 있으니까 안 하면 바로 표시가 난다"며 "공문서 처리가 교사들의 주(主) 업무 같다"고 답답해했다. 높은 경쟁률의 임용고시를 통과한 고학력 학교 교사들의 봉급이 학원이나 대기업 등에 비하면 박봉(薄俸)이어서 교사들이 수업준비를 위해 노력하게 하는 '당근'이 부족하다는 목소리도 있었다.
학생들 간의 성적 격차가 너무 크고, 한 반에서 가르쳐야 하는 학생 수가 많은 것도 교사들의 고충이었다. 서울 F중학교 교사 황모(51)씨는 "수학시간에 학생들에게 주관식 20문제로 시험을 치면 반에서 절반은 0점이 나오는 게 현실"이라고 했다. 경기도 G고등학교 교사 한모(51)씨는 "학교는 시험을 거쳐 비슷한 성적의 학생들을 모아놓은 학원과 달리 공부를 잘하는 학생과 포기한 학생이 섞여 있어 가르치기 어렵다"고 털어놨다.
한편으로 교사들이 자성(自省)해야 한다고 말하는 교사도 있었다. "수업준비보다 행정업무에 더 신경 쓰는 교사들이 많은 게 사실"이라는 것이다. 서울 H중학교 교사 배모(46)씨는 "선생님들이 시간을 내려면 얼마든지 낼 수 있는데 본인 여가 활동에만 관심이 많지 수업 연구는 잘 안 한다"며 "교사 중 15% 정도만 공부하는 것 같다"고 말했다.
이거 학원에서 다 배웠지? 교사들 그냥 넘기기 일쑤
학원 안 다니는 아이들은 알아들을 수 없어 잠 청해"
"형편없는 교육하면서 잠 깨우는 것조차 안하니…"중학교 1학년 아들을 둔 회사원 김모(40)씨는 지난 1학기 말 학부모들을 초청해 진행한 공개 수업에 참석했다가 황당한 경험을 했다. 공개 수업인데도 학생들이 아무렇지도 않게 잠을 자고 있었던 것이다. 김씨는 "학부모들이 뒤에서 지켜보는데도 30명쯤 되는 아이 중 5명이 엎드려 자더라"며 "학부모가 없는 수업시간엔 도대체 얼마나 많은 아이가 잠을 잘지 상상하니 어처구니없었다"고 했다. 그는 "너무 기가 차서 지난 7월 학교가 인터넷으로 교원평가를 받을 때 희망사항란에 '자는 아이가 있으면 훈계해서라도 학습에 참여시켜 달라'고 건의했다"고 했다. 하지만 김씨는 아직 학교로부터 어떤 후속조치를 했다는 얘기를 듣지 못했다. 김씨는 "다른 학부모들도 비슷한 경험을 해서 자주 이런 얘기를 나누는데 우리끼리 얘기하면 뭐 하느냐"며 "2학기 시작한 지 얼마 안 돼서 일단 지켜보려고 하지만 별 기대는 안 한다"고 한숨을 쉬었다.
50대 주부 임모씨도 지난 4월 1학기 중간시험 때 중학교 3학년 딸이 다니는 학교에 보조 시험감독을 하러 갔다 깜짝 놀랐다. 시험지에 이름만 쓱쓱 적더니 곧바로 엎드려 자는 학생들이 많았다. 그런데도 교사는 당연하다는 듯 내버려뒀다. 임씨는 "안타까워서 선생님을 쳐다봤는데 아무 일 아닌 것처럼 자는 아이들을 깨우지 않아서 속만 태우다 나왔다"고 말했다. 임씨는 "시험시간에도 엎드려 자는 걸 보니 수업시간에는 어떨지 충분히 짐작이 가더라"며 "학교에서 이런 아이들을 바로잡아 공부시키지 않으면 도대체 하는 일이 뭐냐"고 목소리를 높였다.
학부모들은 잠자는 아이들을 방치하는 학교에 절망하고 있다. 학부모들은 "학교가 학생들이 잠을 잘 수밖에 없게 형편없는 교육을 하면서 자는 학생들을 깨우는 것조차 하지 않는다"며 "무책임한 학교에 대해 더 기대할 게 없다"고 입을 모은다.
고등학교 3학년 아들을 둔 주부 성모(52)씨는 "많은 학생이 1교시부터 잔다는 아이 말을 듣고 분통이 터졌다"고 했다. 그는 "가끔 야간자율학습 감독이나 시험 감독을 하러 학교에 가보면 그 말대로 자는 아이들투성이"라고 했다. 성씨는 "학교에서 공부 잘하는 학생들을 앞 두 줄에 앉히고, 그 뒤에 앉는 아이들은 잠을 자도 전혀 신경을 쓰지 않는다던데, 학교가 아이들 교육을 포기한 것 아닌가"라고 말했다.
공고 2학년 아들과 외고 1학년 딸이 있는 조모(46·회사원)씨도 자녀로부터 학교 수업 분위기를 전해듣고 답답했다고 한다. 조씨는 "아이들이 학교에서 선생님이 수업할 때 '이거 다 알지? 학원에서 다 배웠지?'라고 한다기에, '설마 선생님이 그러겠니?'하고 물으면 '엄마는 왜 내 말을 못 믿느냐'고 하더라"고 했다. 조씨는 또 "다 아는 애들은 그냥 대충 듣는 척하고 넘어가고, 모르는 애들은 아무것도 배우지 못한 채 그냥 넘어가는 게 현실"이라고 했다. 고등학교 3학년, 중학교 3학년 딸을 둔 김모(47·주부)씨도 "교사들이 학생들 모두 사교육을 받는다고 생각하고 '이거 학원에서 다 배웠지?'라고 묻는 게 당연한 일처럼 됐다"며 "교사들이 아이 교육을 학원에 의지하며 나태해져 있다"고 말했다. 김씨는 "학원에서 배워 아는 애들도 많겠지만 그렇지 않은 애들은 알아들을 수 없으니 수업시간에 잠을 잘 수밖에 없지 않겠느냐"고 했다.
학부모들은 교사들의 작은 관심이 학생들의 학습태도를 바꿀 수 있고 적어도 학교에서 잠자지 않게 할 수 있는데도 교사들이 그런 노력조차 기울이지 않는다고 지적했다.
고등학교 1학년 아들이 있는 주부 김모(43)씨는 "아이들은 관심을 가져주는 선생님 수업시간에는 절대 잘 수가 없다고 한다"며 "좋아하는 수업시간에는 짝꿍한테 '내가 졸면 팔꿈치로 쳐 달라'고 하는 애들도 있다고 하더라"고 말했다. 중학교 1학년 딸을 둔 장모(39·주부)씨도 "아이들은 수업뿐 아니라 쉬는 시간에 복도에서 만났을 때 '시험 잘 봤니'라고 묻는다든지 관심을 보이는 선생님 시간에는 수업을 더 열심히 듣게 된다고 한다"고 말했다. 시험을 치르고 나서도 "어떤 걸 틀렸니. 아깝게 틀렸구나!" 같은 말 한마디라도 해주는 선생님에게 감동하고 그 선생님 수업은 잘 듣고 싶다는 게 아이들 마음이라는 것이다. 장씨는 "아이들이 선생님을 신뢰한다면 애들이 다니던 학원도 끊게 할 수 있다"며 "그런 선생님에게는 엄마가 먼저 꽃도 갖다주고 편지도 쓰고 싶다"고 말했다.
학부모들은 학교 선생님보다 학원 강사를 더 좋아하는 게 당연하다고 했다. 장씨는 "학원 강사들은 한 달에 한 번씩 전화해서 아이가 문제없이 잘 지내는지 먼저 물어보고 학원 친구들 사이에서 힘들어하는 점이 있으면 메모를 해놓았다가 얘기해준다"며 "학교 선생님은 1년에 한두 번 시험감독할 때 만나 인사하는 게 전부"라고 말했다.
학부모 임씨(51)는 "선생님들이 시험이 끝나면 원하는 학부모들과 간담회라도 좀 해줬으면 좋겠다"며 "그래야 부모가 애들이 뭐가 부족한지를 알 수 있는데, 그걸 모르니까 불안해서 무조건 학원을 보내는 것"이라고 말했다. 임씨는 "어떤 선생님은 아이 이름 대신 번호를 부른다는데 이름이라도 불러주는 최소한의 애정만 보여도 학교에서 잠자는 아이는 없어질 수 있다"며 "교육환경을 개선한다며 한 학급 학생 수도 예전보다 많이 줄였는데 선생님의 관심은 왜 더 줄어드는지 모르겠다"고 불만을 터뜨렸다.
중학교 3학년 아들을 둔 한모(43·주부)씨는 "학부모들은 입시공부도 중요하지만 예민한 사춘기 아이들이 학교에서 바르게 자라 줬으면 하는 바람이 크다"며 "아이들이 수업시간에 잠을 잘 때는 깨우고 올바른 태도를 가르치는 것이 학교 선생님이 해야 할 기본적인 교육 아닌가"라고 말했다.
중·고등학교 수업시간에 일부 학생들이 잠을 자는 것은 오래전부터 있던 일이다. 그러나 요즘 들어 잠자는 학생들이 더 늘었다. 방과 후 학원에 가서 공부하려는 학생이나 지루한 수업에 지친 학생들이 대부분이다. 교사들도 이를 방치하고 있다. 그러나 더 이상 이대로 둬선 안 된다. '잠자는 학교'의 실태와 대책을 심층 취재해 시리즈로 싣는다. 편집자
서울 A 중학교 3학년 박모(15)군은 지난달 26일 오전 8시 등교해 학교 수업이 끝나는 오후 3시 30분까지 자다 깨다 하면서 시간을 보냈다. 박군은 6교시 수업 중 4시간은 내리 책상에 엎드려 잤고, 나머지 2시간은 교실에서 옆자리 친구와 '조용히' 수다를 떨었다. 어느 교사도 박군을 나무라지 않았다. 박군은 "우리 반 학생이 33명인데 재미없는 사회 시간에는 거의 다 엎드려 잔다"고 말했다.
이날 오후 2시 A 중학교 2학년 한 교실은 학생 35명 가운데 8~9명이 책상에 엎어져 있었다. 여름방학을 마치고 신학기를 시작한 지 3일밖에 안 됐지만, 수업 분위기는 처질 대로 처져 있었다. 교사와 불과 서너 걸음 떨어진 자리에 앉은 한 남학생은 교사 바로 앞에서 책상에 엎드려 뒤척이고 있었다.
하지만 교사는 혼자서 교과서를 줄줄 읽어나갈 뿐이었다. 교사가 한 번씩 학생을 지목해 교과서 문장을 읽게 하면 그 학생은 마지못해 일어나 맥빠진 소리로 읽었다.
같은 시각 서울 B 중학교 2학년 한 교실에서는 머리카락이 희끗희끗한 영어 교사가 교과서를 소리 내 읽는 동안 듣는 학생은 30명 중 5명쯤밖에 되지 않았다. 9명은 엎드려 잠을 자고 3명은 졸다 깨기를 반복했지만, 교사는 수업시간 내내 본체만체했다. 학생 10여명은 짝과 잡담하거나 노트에 낙서하며 장난만 쳤다. B 중학교 3학년 탁모(15)군은 "개학하고 이번 학기부터 마음잡고 공부하려 했는데 체육 시간 빼고는 다 졸린다"고 했다.
경기도 C 고등학교 3학년 최모(18)군은 "하루 수업 중 3~4시간은 잔다"며 "우리 반 학생 40명 중 절반이 자는 수업도 있다"고 했다. 우등생인 최군은 요즘엔 학교에서 잠자지 않으려고 노력하고 있다. 수업을 잘 듣기 위해서가 아니라 다가오는 수학능력시험 때 잠자지 않는 '훈련'을 하기 위해서다. 최군은 "솔직히 교원평가제는 선생님들이 반대해서 제대로 안 되는 것 아니냐"며 "'정말 아니다'라는 생각이 드는 선생님들은 평가를 제대로 해야 한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특수목적고(특목고) 학생도 잠을 자기는 마찬가지다. 서울의 한 외국어고 2학년 임모(17)양은 "우리 반은 수업시간에 30여명 가운데 평균 10명 정도 잠을 잔다"며 "나는 학교에서 매일 1~2시간씩 자는데 학원수업을 받을 땐 절대 안 잔다"고 했다.
"제가 교사 생활을 18년 했고 학원강사를 8년 했는데, '이래서 학생들이 사교육을 받는구나'하고 많이 느낍니다."
'교사 출신 스타강사' 이만기(49) 유웨이중앙교육 평가이사는 "교직 사회가 술렁거려야 한다. 학교에 움직임과 변화가 있어야 한다"고 했다. 이 이사는 1986년부터 인천 문일여고 국어교사로 학교에 있으면서 EBS(교육방송) 강사로 활동했고, 2002년 학원강사로 나서 언어영역 과목에서 독보적인 강의 능력을 인정받아 유명 강사가 됐다.
그는 "사교육은 목표가 '대학입시' 하나로 분명하지만, 공(公)교육은 진학 말고도 인성교육 같은 많은 영역을 다뤄야 하기 때문에 비교하기가 어렵다"면서 "하지만 그렇다 해도 공교육은 지금 큰 변화가 필요하다"고 했다.
이 이사는 "수요자 중심 교육을 못하는 게 학교 교육의 가장 큰 문제점"이라고 지적했다. 학교에서는 교사가 '스승'이라는 인식에 얽매여 교육의 공급자(교사)와 수요자(학생·학부모) 개념이 뿌리내리지 못하고 있다는 것이다. 그는 "교권 침해라는 말이 있는데, 교권만 있는 게 아니라 학생권도 있고 학부모권도 있다"고 말했다. 이 이사는 "가르치는 자와 배우는 자 누구나 권리가 있다"며 "대학교수도 평가를 받는데, 학교 교사도 당연히 평가를 받아야 한다"고 했다. 그는 "교사들은 교권이 중요하면 교사의 의무도 중요하다는 것을 기억해야 한다"며 "학부모들의 학력이 높아지면서 예전처럼 맹목적으로 교사들을 존경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명심해야 한다"고 말했다.
또 이 이사는 "일반 회사와 학교, 학원을 다 다녀봤지만 해고당할 염려 없고 마음 편한 교사가 그래도 제일 쉬운 편이었다"고 했다. 그는 "교사들은 수업, 생활지도 그리고 공문서 처리를 병행하느라 힘들다고 하지만, 그런 잡무 없는 직업은 세상에 없다"며 "학원강사도 아이들과 문자를 주고받고 인터넷 게시판에 답글을 달고 마케팅도 해야 하는 등 잡무가 많다"고 했다. 그는 "교사로 있을 때 EBS 강의 준비, 참고서 집필, 고등학교 3학년 부장교사, 야간자율학습 감독까지 다 했다"며 "잡무 때문에 연구시간이 없다는 건 핑계"라고 했다.
이 이사는 "요즘 학생들은 공부에 대한 태도가 과거와 확연하게 달라졌다"며 "진지하게 몰입하는 게 아니라 게임처럼 즐기기를 원한다"고 했다. 예전의 진지한 수업 스타일을 고집하다가는 지루해하는 학생들로부터 교사나 강사가 외면당할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그는 "학교 교사들은 학원강사들이 수업시간에 농담하고 장난치는 걸 보며 '장사꾼'이라고 하지만, 요즘 아이들은 그런 수업을 좋아한다"며 "학생들의 트렌드를 유심히 관찰하고 이를 받아들이는 것도 학교 수업이 학생들을 만족하게 하는 하나의 방법이 될 수 있다"고 말했다.
이 이사는 그러나 "우리나라 공교육에 대해 '무너졌다'는 표현은 맞지 않는다"며 "아픈 사람에게 '너 아프지?' 하면 더 아프지 않겠느냐. 스스로 바뀔 수 있도록 용기를 더 북돋워 줘야 한다"고 말했다.
9일 오후 경기도 안양시 백영고등학교 한 교실에서 국어 교사 김태현(34)씨가 고려가요 '가시리'를 가르치면서 가수 빅마마가 부른 대중가요 '체념'을 함께 설명하고 있었다. 김 교사는 학생들이 이별의 아픔을 정서적으로 이해할 수 있게 하려고 아이들이 좋아하는 가요를 '교재'로 선택한 것이다. 김씨는 "아이들이 이별의 감정에 공감하면서 '가시리'를 효과적으로 배우게 하려 했다"며 "학생들도 감정 이입(移入)이 돼서 수업에 집중했다"고 말했다.
시민단체 '사교육 걱정 없는 세상'의 김성천(37) 부소장은 학력 수준이 낮아 거의 '무너져가던' 한 중학교를 살리는 작업에 참여한 적이 있다. 김 부소장은 "교사들이 미술 같은 예술 분야를 접목한 교육을 하게 하고, 학생들이 협동해 과제를 하도록 했다"며 "학생들의 수업 흥미도를 높이는 효과가 있었다"고 말했다. 김 부소장과 다른 방법으로 '재미있는 수업'을 위해 노력한 교사들도 있다. 한 교사는 학생들이 친숙하게 느끼는 매체인 동영상을 학생들과 같이 만들어 보기도 했다. 국어 시간에 기행문(紀行文)을 가르치던 어느 교사는 학생이 집에서 학교 가는 동안을 여행한다고 생각하고 글을 쓰게 하는 체험형 교육으로 좋은 반응을 얻었다고 한다.
교육 전문가들은 학교에서 학생들의 잠을 깨우는 것은 "선생님 하기에 달렸다"고 말한다. 교사들이 수업에 대한 철학을 갖고 주입식이 아닌 참여형 수업을 하면 학생들은 눈을 반짝이며 수업을 듣는다는 것이다. 전문가들은 학생들이 교사의 노력하는 모습을 보면 교사를 신뢰하고 존경하는 효과도 있다고 설명한다.
흥미로운 수업으로 학생들의 학습태도를 적극적으로 만드는 것은 선진국에선 이미 일상이 됐다. 지난해 초등학교 4학년 아들과 함께 스웨덴 연수를 다녀온 회사원 김모(40)씨는 "한국에서는 말이 없던 아이가 스웨덴에서는 즐겁게 수업하는 선생님 덕분에 적극적인 성격으로 바뀌었다"고 말했다. 김씨는 "한국에서는 발표도 전혀 안 하는 소극적인 아이였는데 스웨덴에서는 영어 발표도 척척 잘하더라"며 "스웨덴 교사가 '발표를 아주 잘한다'고 아이를 칭찬하며 재밌게 수업한 덕분"이라고 말했다. 김씨는 또 "스웨덴의 중학교 영어 수업도 참관한 적이 있는데 초등학교처럼 퀴즈, 편지 낭독, 팝송 부르기로 흥미를 유발해 한 반 20~25명 아이 중 자는 아이가 하나도 없었다"며 "스웨덴에선 아이들을 살리는 교육을 하고 있었다"고 말했다.
고려대 교육학과 권대봉(58) 교수는 "한국도 이제 지식을 '주입하는 교육'이 아니라 학생들의 호기심을 자극해 잠재력을 '이끌어내는 교육'을 해야 잠자는 아이들을 깨울 수 있다"고 조언했다. 학교 교사들이 교과서만 줄줄 읽어내려가는 천편일률적인 교육 방식을 탈피해야 한다는 것이다.
교육 전문가들은 '잠자는 학교'가 제대로 깨어나려면 교사들이 재미있는 수업을 위해 노력하는 것은 물론 한국의 교육행정 또한 바뀌어야 한다고 지적한다. 공교육살리기학부모연합 이경자(54) 대표는 한국 공교육이 '잠자는 학교'로 전락한 원인으로 평준화를 꼽았다.
이 대표는 "평준화 체제에서는 교육 서비스의 고객인 학생이 서비스 제공자인 학교와 교사에게 매년 저절로 공급된다"며 "이는 곧 교사들이 수업을 열심히 하려는 노력을 기울이지 않아도 되는 구조를 만들었다"고 말했다. 그는 또 "평준화 시행과 더불어 정부가 모든 학교의 교육과정을 획일화하고 통제하는 시스템을 만들었다"며 "학생들의 다양한 욕구가 반영되는 학교 교육이 실종됐고 학교마다 간직했던 특유의 전통과 학풍도 사라졌다"고 했다. 이 대표는 "평준화가 전국 어느 학교든 똑같은 교육을 받으라고 강요하면서 줄 세우기 입시체제가 만들어졌고 살아 있던 학교도 다 죽었다"며 아쉬워했다.
학생들은 '본능적으로' 학교에 통제가 아닌 자율과 다양성이 도입되기를 원하고 있었다. 경기도 A고등학교 3학년 최모(18)군은 "3년 동안 수업구성, 학기운영 등이 똑같았다"며 "교장 선생님에게 자율적인 운영권을 줬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최군은 "학교 선생님들은 수업을 조금 자유롭게 하고 싶어도 규정이 있어 마음대로 하지 못한다"며 "학교에 자유를 주면 지금처럼 입시제도의 변화를 따라가지 못하는 문제점도 해결될 것이라 본다"고 했다.
서울 B중학교 2학년 곽모(15)군은 "대학교처럼 내가 원하는 과목을 골라서 수업을 듣고 싶다"며 "국·영·수 중심이 아니라 모든 과목이 중심이 되는 교육이 됐으면 좋겠다"고 했다. 체육교사가 꿈이라는 곽군은 "학교는 장래에 내가 하고 싶은 직업을 가져야 행복하다고 가르치지만, 결국 국어·영어·수학만 강조한다"며 "변호사, 의사만 강요하는 학교가 너무 싫다"고 말했다. 요리사가 꿈인 서울 C중학교 3학년 김모(16)군도 "요리전문 고등학교에 가고 싶은데 모든 전문학교가 높은 성적을 요구한다"며 "연기나 음악, 요리를 잘해도 국어·영어·수학을 못하면 하고 싶은 일을 못하는 게 현실"이라며 한숨을 쉬었다.
중앙대 교육학과 이성호(53) 교수는 "교육 현장의 핵심인 교사를 지금보다 늘리면, 교권도 살리고 공교육이 싫어 학원으로 가는 학생도 줄일 수 있다"고 했다. 이 교수는 "다만 경쟁력 있는 공교육을 위해 임용 뒤 일정 기간이 지나면 평가를 받고 능력을 인정받으면 정년을 보장하는 제도도 도입을 고려할 만하다"고 말했다.
지난 8일 오전 서울 양천구 목동 한가람고 2학년 영어 교실에선 창가 쪽과 복도 쪽 학생들이 마주 보고 앉아 있었다. 가운데 자리 학생들은 교탁 쪽을 보고 있었다.
복도 쪽 맨 앞에서 수업을 듣던 장영지(17)양은 "선생님이 더 잘 보이고 토론 수업을 할 때는 친구들을 보며 얘기할 수 있어 좋다"며 "선생님이 책상을 옮겨주고 자리도 정해준다"고 했다. 15분쯤 지나자 창가 쪽 맨 앞에 앉아 있던 김성훈(17)군이 교실 뒤 '키 높이 책상'으로 나갔다. 김군은 "집중력이 떨어지면 여기 나와 수업을 듣는다"고 했다. 75분 수업시간 동안 잠을 자는 학생은 한 명도 없었다. 손윤진(29) 교사는 "우리는 교사 겸 디자이너"라며 "자리 배치는 물론 교실 장식까지 책임진다"고 말했다. 핼러윈날(10월 31일) 때는 해골 그림을 교실 벽에 붙이고, 크리스마스엔 트리로 교실을 꾸민다고 했다. 그는 "모두 아이들의 집중력과 흥미를 높이기 위한 것"이라고 말했다.
이 학교에서만큼은 '공교육의 위기'라는 말이 통하지 않았다. 교사는교재를 직접 제작하는 등 수요자인 학생 맞춤형 수업을 하고 학생들도 즐겁게 따른다. 수업 시간에 자는 학생은 찾기 어렵다. 2학년 김은주(17)양은 "사회 시간에는 모의재판을 하고, 미술 시간에는 컴퓨터 그래픽을 배운다"며 "학원보다 학교 수업이 더 기다려진다"고 말했다. 이 학교는 학기마다 학생들이 교사를 평가하는 '수업만족도 조사'를 하고 있다. 1997년 개교이래 한 번도 빠진 적이 없다. 5점 만점에 2점대를 받은 교사는 교장을 만나 수업방식에 대해 면담을 한다. 사회과목을 가르치는 백성호(47) 교감도 "학생들 평가를 받을 때면 지금도 긴장된다"고 했다.
교사들은 '권위'를 버린 대신 '자신감'을 얻었다. 학교는 지난 6월 26일부터 한 달 동안 교사 41명의 수업을 동영상으로 만들어 학교 홈페이지에 공개했다. 교사들은 동료의 수업을 보며 좋은 교수법을 익혔다. 2학년 과학을 가르치는 김정오(33) 교사는 "내가 잘 가르친다고 자신했는데 동료 교사 몇 분의 수업을 보니 정말 '딱딱' 짚어주더라"며 "여름방학 때도 '어떻게 가르쳐야 하나' 고민 많이 했다"고 말했다.
시행착오도 있었다. 1997년 개교하며 일부 과목에서 학생이 수업을 선택하고 교실을 옮기며 수업을 듣는 '교과 교실제'를 시행하자 교사들이 불만을 터뜨렸다. '아이들 관리가 어렵다', '아이들도 교실을 옮기기 귀찮아한다'는 이유였다. 이옥식(52) 교장은 2006년 1월 교사 40여명을 데리고 미국에 갔다. 이 교장은 "교사들이 교과 교실제를 잘 운영하는 미국 명문고의 수업 모습을 보더니 탄성을 터뜨렸다"고 했다. 이듬해부터 이 학교는 모든 과목에 교과 교실제를 시행했다.
학부모들 사이에서 '잘 가르친다'는 소문이 퍼진 한가람고는 지난해 7월 '자율형 사립고'로 지정됐다. 첫 자율형 사립고 입학생을 모집한 지난해에는 일반전형 경쟁률이 9.1대1로 서울지역 13개 자율형 사립고 중 1위였다.
이 교장은 "'잠자는 학교'에는 다 이유가 있다"며 "교사들은 교육제도 탓, 학생 탓만 하지 말고 좀 더 절실한 심정으로 수업을 바꿔야 한다"고 말했다.
"학생들이 말하는 '학교에서 제일 괴로운 시간'이 언제인지 아세요? 잘 가르치는 선생님 수업시간에 너무 피곤해서 어쩔 수 없이 조는 거랍니다. 못 가르치는 선생님 시간에는 기분 좋게 잔다고 합니다. 교사들이 많은 노력을 해야 한다는 걸 느끼게 해주는 말입니다."
교사들이 '잠자는 학교'의 현실을 허심탄회하게 털어놨다. 12일 오후 1시 본사 편집국 인터뷰실에서 일선 학교 교사 5명이 참석한 가운데 진행된 난상토론에서 교사들은 2시간 동안 학교 현장의 고충과 현실 그리고 공교육 발전 방안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의견을 내놓았다.
지난 6일부터 5일 동안 연재한 '잠자는 학교' 시리즈는 중·고등학교 수업시간에 잠자는 학생들이 늘어나는 실태와 문제점을 심층취재해 보여주면서 학생, 학부모는 물론 교사들로부터 큰 반향을 일으켰다. 시리즈를 보면서 학생·학부모는 학교 현장을 이끌어가는 핵심축인 교사들이 분발해 학생들의 잠을 깨워달라고 요구했고, 교사들은 학교 현장의 실태는 밖에서 보는 것과는 다르다는 말을 많이 했다. 난상토론에는 구자현(31·한가람고), 김재환(51·남강고), 김정훈(39·서울사대부고), 임정옥(46·개웅중), 지윤섭(54·영훈고·이상 가나다순) 교사가 참여했다.
◆학생들은 왜 학교에서 자나
―졸업장만 따러 온 아이들과 대학 가려는 아이들이 한 교실에 섞여서 수업을 받습니다. 그러니까 자는 아이들이 생기고, 그 학생들 깨우려다 보면 수업을 진행하기가 여간 어려운 게 아닙니다. 의욕 있는 선생님들은 아이들을 깨우지만, 아이들이 대들면 어쩔 겁니까? 학생들과 싸울 수도 없는 노릇이죠. (선생님이) 체벌도 못하게 손발을 다 묶어놓지 않았습니까.
―중학교에 구구단도 못하는 학생들이 있습니다. 학부모가 참가하는 공개수업을 할 때 4~5번을 깨워도 자는 아이가 있습니다. 아무리 쉽게 가르쳐도 이해하지 못하고 아예 포기하는 학생들이 있다는 거죠. 초등학교 때부터 실력을 쌓아오지 못한 학생들입니다. 학력이 떨어지면 상급학교로 진학하지 못하게 하는 제도를 검토할 필요가 있습니다.
―중·고등학생들이 수업시간에 한 번에 최대 집중할 수 있는 시간이 20분 정도입니다. 그래서 20분마다 수업방식을 바꿔줘야 합니다. 안 그러면 아이들이 힘들어서 잡니다. 강의식으로 수업하다가 작문 실습을 하고, 나머지 20분은 교재를 바꿔서 한다든지 노력이 필요한 거죠.
◆학교 중시하는 입시제도 필요해
―입학사정관제는 긍정적으로 봅니다. 학생이 성장하는 모습을 교사가 학교에서 쭉 지켜보면서 앞으로 가진 잠재성에 대해서도 써줄 수가 있거든요. 결과보다 과정을 중시하는 풍토를 마련할 수 있고 그래야 공교육과 교권(敎權)도 살아날 수 있습니다. 대학입시에서 정시모집은 수학능력시험 점수만 잘 받으면 유리한데, 그건 학생이 성장한 과정보다는 결과만 중시하는 방법입니다. 아이들의 최고 목표가 대학입시라고 하면, 아이들에게 '대학을 잘 가려면 수업에 성실하게 임하는 게 중요하다'는 인식을 심어줘야 교사들도 충실하게 수업을 이끌 수 있습니다.
―정권이 새로 들어설 때마다 바뀌는 일관성 없는 입시제도는 심각한 문제입니다. 그리고 학교가 학원보다 학생들 입시에 대한 준비가 약하다고 하는데, 학원은 학교에서 가르쳐 기초를 다져놓은 학생을 마지막에 족집게로 가르쳐 대학 보내고 열매만 따 먹습니다. 마치 입시가 교육의 전부인 것처럼 사회 분위기가 흘러가면서 교사들의 숨은 노력을 인정해주지 않는 분위기가 안타깝습니다. 요즘에는 박지성 선수처럼 축구만 잘해도 성공하는 세상이 됐는데 학교는 계속 공부만 하라고 몰아갑니다. 다양한 아이들의 욕구를 수용해줄 수 있는 시설과 교육과정이 없는 것도 큰 단점입니다.
―평준화가 모든 학교에 똑같은 교육을 강요해서 공교육이 침체했다는 말도 있는데, 사실 평준화 안에서도 학교 재량권을 늘려주고 교사 증원, 학교 시설 현대화 등만 뒷받침되면 지금보다 나은 공교육이 충분히 가능합니다. 무상급식한다고 하는데 그 돈으로 학교 도서관을 짓거나 시설투자에 쓰는 게 우선이라고 생각합니다.
◆출근하자마자 하는 일이 공문 확인
―제가 10년 전에 처리한 공문의 양과 최근 처리한 양을 비교해 보니 3~4배는 늘었습니다. 얼마 전 교육청에서 3년 전 자료를 조사해서 보고하라고 한 적이 있는데, 그 내용도 이미 1~2년 전에 찾아서 한번 보고했던 내용입니다. 교육청이 창고에 들어가 있는 걸 찾기 싫으니까 교사들에게 공문 한장 달랑 보내서 처리하는 겁니다. 필요없는 행정업무는 줄여야 합니다.
―학교 출근해서 가장 먼저 하는 일이 '무슨 공문 내려왔나' 확인하는 겁니다. 쉬는 시간에도 수시로 확인합니다. 오늘내일 중에 처리해달라는 긴급공문도 내려오거든요. 정말 바쁠 때는 내가 수업하러 학교 온 건지 공문 처리하러 학교 온 건지 헷갈릴 정도입니다. 교육청이 공문을 내려 보내는 곳이 아니라 학교와 교사를 지원해주는 곳이 됐으면 좋겠습니다.
―시의원들이 질의할 때마다 정신이 없습니다. 수업하고 있으면 "1시간 내로 자료를 빨리 올려 보내라"는 연락이 옵니다. 이러면 수업도 하다말고 공문처리 하러 달려가는 실정입니다. 교육청이나 구청에서도 툭하면 학교에 자료 요청을 하는데 그런 게 힘듭니다.
◆해답은 '교사 수업의 질(質)'
―교사에게 가장 중요한 건 행정업무가 아니고 수업입니다. 아이들이 듣고 싶은 수업을 만드는 게 잠자는 수업에 대한 해답이고, 그 이외의 것들은 장식일 뿐입니다. 학교에서 학생들의 생활지도를 하면서 느끼는 것은 교사의 권위가 바로 수업에서 나온다는 겁니다. 수업을 잘해서 학생에게 인정받는 교사와 그렇지 않은 교사가 생활지도 할 때 학생들 반응이 달라요. 자기반성과 평가는 교사가 퇴직하기 전까지 계속 부딪히면서 가야 할 화두(話頭)라고 생각합니다.
―교사들이 교단에 서는 이유가 다른 게 있을까요. 어느 선생님이 잠자는 학생을 앞에 두고 수업하면서 기분이 좋겠습니까. '어떻게 하면 아이들이 보람차게 느끼는 수업이 될까' 노력하고 고민하는 선생님이 학교에는 더 많습니다. 교사들은 아이들의 만족해하는 모습에 자신감과 용기를 얻습니다. 많은 선생님이 그 행복을 느끼기 위해 오늘도 노력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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