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타포(metaphor)’ 읽어주는 여자
구경영(시낭송가, 전임회장)
한 젊은 여자가 돌도 지나지 않은 아기를 들쳐 업은 채 어딘가로 향하고 있었다. 그녀가 도착한 곳은 어느 사무실이었다. 그곳은 시를 낭송하는 단체의 모임장소였다. 수줍게 그리고 어색하게 들어선 그 곳엔 이미 여러 명의 사람들이 모여 있었다. 시를 직접 쓰는 것도 아니고 그저 다른 사람이 쓴 시를 읽는 것일 뿐인데 무슨 모임씩이나 만들어서 한단 말인가? 의아했다. 하지만 조금이나마 정신적 위안이 될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그녀는 발을 담그기로 결심한다.
95년 가을, 나와 시와의 인연은 그렇게 시작되었다. 그로부터 16년! 참으로 많은 세월이 흘렀다. 딸아이는 지금 고등학생이 되었으며 나는 벌써 불혹의 나이를 넘어버렸다. 오랜 세월이 지났으니 시에 대해 낭송에 대해 나는 참 할 말이 많을 것이다. 물론 꺼내기 시작하면 끝도 없다. 낭송과 함께 하며 보낸 지난 시간들은 때로 행복이었고 때로는 힘겨운 시간이었다. 좋기도 우울하기도 한 시간들이었다. 시낭송은 위로이기도 했다가 고통이기도 했고 자랑이기도 했으며 위선의 도구이며 포장이기도 했다. 97년 겨울, 전국시낭송경연대회를 통해 ‘시낭송가’가 되었고, 이제 그날은 소중한 추억으로 남아있다. 무엇보다 무료했던 삶에 큰 활력이 됐으며 육아와 결혼생활에 지친 내게 신선한 에너지를 불어넣는 계기가 됐다. 협회 임원활동과 각종 행사 연출 및 출연, 회장 역임 등, 시와 함께 인생길을 걷다보니 문득 모임에선 어느새 대선배가 돼있었다.
“시를 낭송하셨을 때 단어들이 이리저리 움직였어요. 제가 마치 선생님 말들 사이로 넘실 거리는 배 같았어요.”
“시는 쓰는 사람의 것이 아니라 읽는 사람의 것이에요.”
-‘네루다의 우편 배달부’ 中에서-
시인 ‘파블로 네루다’의 우편배달부였던 마리오의 외침이 들려오는 듯하다.
시를 한편 외울 때마다 새로운 세계가 펼쳐졌다. 또 다른 세상이 열렸다. 내가 나를 위해 읽기도 했고 내가 다른 이를 위해 읽기도 했다. 또한, 힘들 때마다 그때그때 시와의 만남이 시작 됐다. 눈물을 쏟는 날들이 있었고 가슴이 먹먹해지는 날도 있었다. 때로는 시를 삼키기도 했고 어떤 날은 시에 체하기도 했다. 새벽녘까지 연습하며 지치기도 했고 그러다 간혹 잃어버린 나를 만나기도 했다. 그것은 삶을 노래하는 것이었으며 삶을 엮어내는 일이기도 했다. 나를 드러내고 성숙시키는 일이었다.
한 중년의 여자가 딸아이와 팔짱을 낀 채 어딘가로 향하고 있었다. 그녀가 도착한 곳은 어느 사무실이었다. 그곳은 시를 낭송하는 단체의 모임장소였다. 밝게 그리고 웃으며 들어선 그 곳엔 이미 여러 명의 사람들이 모여 있었다.
나는 계속해서 ‘시 읽기’를 이어갈 것이다. 그렇게 詩의 행로를 멈추지 않을 것이다!
누군가 묻는다.
“그거하면 돈 얼마 벌어요?”
-시여울 2011년 4월호-
첫댓글 잘 있었어요? 제목 은유로 표현한' metaphor 읽어주는 여자' 좋습니다. 낭송할 때는 시를 쓰는 사람 것이 아나라 읽는 사람의 것이라는 네루다의 말을 인용한 것도 좋고 ......시를 써서 발표하면 그건 시인의 것이 아니라 독자의 것이지요. 눈물나는 봄날 잘 계시기를! 김성춘.
선생님 감사합니다. 하마트면 영문을 틀릴뻔 했네요. 다행히 인쇄전인지라^^metaphor. 언제한번, 선생님 시...녹음해서 올려보려고 계획하고 있답니다. 특히 '천사'라는 시가 맘에 쏙 들어요^^
시를 읽으며 눈물을 쏟는 여자, 시를 읽으며 잊고 있던 자아를 찾는여자, 수필같이 긴 시를 줄줄줄 눈물처럼 읽던 여자
시집을 가방속에 넣고 다니던 시집보다 이쁜 여자, 시낭송 한번 해봐요 하면 조금 낯설어하며 망설이던 어떤 시인보다 시낭송 맛있게 하는.
^^ 선생님..글로써 생각과 느낌, 마음을 나눌 수 있다는 게 참 멋진 일인것 같아요. 왠지 연애감정에 젖어 폭 빠져버릴 듯한.....빠지고 싶은, 그 기운에 취하고 싶은..봄날입니다. 누군가 손 내밀면 잡아버릴 듯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