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삽당령-석두봉-화란봉-닭목재-고루포기산-능경봉-대관령
일 시:2013.11.17 무박 거리:28km 시간:10시간 5분
삽당령에 이르는 밤길은 이미 겨울비에 촉촉히 젖어있었다. 작은 비와 눈이 예고되었지만 산중의 날씨는 또 어떻게 뒤바뀔지 모른다. 천기에 대비하는 일행들의 옷매무시가 범상치 않다. 가는 빗방울이 속절없이 떠다닌다. 산길은 어둠을 위협하지 않았다. 선하디 선한 길이었다. 선두를 따라가는 발걸음이 편했다.
석두봉 좀 못가서부터는 후미조와 함께 걸었다. 술기운이 덜 가셔진듯한 보름달이 구름 사이로 얼굴을 내밀었다. 붉은 달이었다. 하지만 달을 둘러싼 구름의 윤곽에는 청기와빛 푸르름이 감돌았다. 달빛이 심약한 어린아이의 마음처럼 희슴프레 숲을 적셨다. 사위는 눈물을 쏟아도 좋을 만큼 고요했다. 먼 곳으로부터 목어의 독경 소리가 푸른 달빛을 등에 업고 떠 다녔다. 靜聽(정청)의 세계였다. 듣지 않아도 저절로 귀가 열리고 울림이 없이도 저절로 소리가 되었다.
07:15
화란봉 삼거리 좀 못미쳐 석두봉에 걸린 어린 해를 보며 아침을 먹었다. 밝고 총명한 해였다. 제대로 풀리지 않은 라면이 아삭거리며 씹혔다. 날은 밝았으나 움직이지 않은 몸은 금방 삭정이가 생기듯 차가와졌다. 컵라면 한그릇으로 때운 허기. 못견딜만한 추위는 아니었지만 얼른 자리를 떴다.
싸락눈이 내린다. 콘택600 캡슐 속 알갱이만한 눈이다. 채송화 씨앗같은 작은 눈알갱이가 땅바닥을 뒹굴다 힘을 잃고 주저앉으면 희미한 눈길을 만들었다. 첫눈이라고 했다. 백두대간 위에서 첫눈을 맞았다. 첫눈이라고 하지만 첫눈은 이미 올 일월에 내렸지 않은가. 그래서 첫눈의 첫자는 늘 좀 어정쩡하다. 좌우간 이름하여 첫눈이다.
화란봉 삼거리에서
화란봉을 가느냐 마는냐는 논쟁거리가 못되었다. 이런 경우 그냥 지나치는것이 후미조의 선두에대한 예의다. 만장일치로 통과.
멀리 고냉지 채소밭에는 벌써 흰눈이 소복이 쌓였다. 매서운 바람이 눈발을 몰고 다녔지만 구름이 없는 하늘은 안구건조증에 걸린 내 눈처럼 뻑뻑했다.
그러다 갑자기 생각이 바뀌면 회색빛 습자지같은 하늘을 만들어 맹열히 바람을 쏟아 부었다. 그 바람 속에는 간혹 눈 부스러기가 섞어 눈가루가 재킷에 닿을 때마다 때대거리며 여치 날아가는 소리를 흉내내었다.
강원도 산 자작나무숲이 제법 제 모습을 갖추어간다. 노란 낙엽을 달고 숲을 따뜻하게 물들이던 때가 엊그제 같은데 이제는 순백의 나신으로 겨울을 장식한다.
자작나무의 아름다움은 순백의 수피가 주는 아련함 혹은 첫사랑을 떠올리는 백색의 처녀성에 있지 않을까.
08:15
닭의 목을 비틀어도 새벽은 오듯이 긴 어둠의 터널을 뚫고 마침내 닭목령에 도달했다. 오늘 산행의 반환점에 도달한것이다. 밤길은 유난히 길었다. 길이 완만한 편이어서 산행 시간당 걸은 거리가 길어 이렇게 밤이 길게 느껴지는지도 모르겠다.
기다린다는 산악회 버스는 길이 미끄러워 오지를 못했다. 모처럼 맑은 기분이 들었다. 바람은 세차게 불었지만 바람이 메울수록 의식은 오히려 맑아졌다.
일행들과 증명 사진 몇장 찍고 아무도 기다리는 사람없는 닭목령 고개를 벗어났다.
닭목령 지나 얼마 안가서 소담한 낙엽송 숲이 나타났다. 추수가 끝난 무밭을 아담하게 감싼 모습이 추위에 다소 지친 심신에 크다란 위로가 되었다. 마치 어머니가 가르쳐 준 노래처럼 편안했다. 그 자리를 떠나기 싫어 공연히 카메라로 여기 저기 풍경을 담는다. 일행들이 저만치 멀어지자 나는 하기 싫어도 해야하는 일을 해치우려는듯 그들에게 달려갔다.
하지만 얼마못가 또 무덤가 공터를 만난다. 겨울의 빈 땅들은 왜 이렇게 다 처연한 맛일까.
그 처연함은 그냥 처연함이 아니라 처연함을 극복한 체념의 모습이었다. 아니 오히려 달관된 풍경이랄까. 슬픔이 느껴지지 않는 모습이었다.
좌우간 가을이 물러가고 겨울이 들어서는 문특에 자연과 자연이 오랜 만에 조우하는듯한 고요한 네레이션이 느껴진다. 나는 이런 이야기 즉 네레이티브한 풍경이 좋다. 오늘 산행이 무엇보다 아름다운 것은 이런 네레이티브한 장치가 곳곳에 잠재해 있기 때문일것이다.
또 다시 무밭.
추수가 끝난 무밭 사이로 동료들이 지나간다. 그 모습을 넋을 잃고 바라보다 지나가는 동료들을 세웠다. 영문을 모르는 동료들이 제 자리에 섰다. 사진을 몇장 찍고 그들을 보낸다.
그들을 보내고서도 나는 밭을 마음에서 떼어내지 못하고 무밭에 한동안 머물렀다. 낡은 고무신 같은 썩은 무가 발에 밟혔다. 죽은 무를 장송하는 레퀴이엠처럼 바람이 빈 밭을 맴돌았다. 흰 자작나무의 조사가 이어졌다. 흰구름도 늦가을을 조상한다.
슬픔을 딛고 일어서는 용기처럼 불현듯 내 마음에 희망이 솓구쳤다. 알수 없는 대상을 향한 희망이었지만 마음은 무엇보다도 흡족했다. 오래 묵은 숙제를 말끔히 해치운 뒤의 쾌감같은것이었다.
우리는 발견의 항해를 떠난것이 아니다. 대관령으로 가는 길은 이미 알고 있다. 길은 느려지다 급해졌으며 넓어지다 아주 가늘게 나누어지기도 했다. 우리가 발견할 것은 아무것도 없지만 마치 가늘게 갈라진 은빛 신갈나무 우듬지처럼 길을 따라 걷다보니 형언할 수 없는 마음의 안정과 평화가 찾아왔다.
아침 햇살을 받은 받은 때죽이 반들 반들 윤이난다. 윤이 나는 푸른 청죽 사이로 걸어오는 上行님의 모습이 선한 얼굴로 빛난다.
길은 우리를 설득하려하지 않는다 대신 눈 앞에 명백히 놓인 소중한 진리를 알아차릴것을 권하는것 같다. 세상의 온갖 신실한것들은 지극히 평범한 모습이다. 우리는 진리를 한 순간에 자신의 것으로 내면화하기는 힘들지만 산길을 걷듯 꾸준히 익혀가다보면 소리꾼이 어느 순간에 득음의 경지에 들듯 우리의 삶이 진리의 반석 위에 놓일 날이 올것이다
눈 앞의 목표를 향해 산을 오를 때의 기분과 마침내 목표 지점에 다달아 우리가 지나 온 길을 되짚어 볼 때의 기분은 사뭇다르다. 혼신의 힘을 다해 다다른 이 곳은 불과 몇시간전 까지만 해도 내가 그토록 힘들여 오르고자했던 피안이었다. 문제가 해결된 편안함과 안락함이 여기에 있다. 마치 꿈에서 깨어난듯한 그 모습 그대로의 편안함이다. 세상을 바라보는 안목은 이처럼 산정에 올라 지나온 산들을 바라보듯 자신의 실상을 폭넓게 관조하는것이다. 내가 비로소 선 자리야말로 우리가 꿈꾸는 극락인것이다.
멀리 고루포기 산인듯한 산의 모습이 시야에 들어온다.
화란봉 아래로 녹슨 열차처럼 가을 풍경 하나가 고스란히 가로 누워있다. 매어둔 매듭이 풀리듯 시간이 풀려간다. 얼마나 아름다운가 시간은.
나는 마치 사랑에 빠진 자에게 나 자신의 사랑을 들추어 사랑을 설명하려는 듯 내 가슴 속의 잠든 사랑을 깨웠다. 세상은 부연없이 맑은 그대로였다. 오히려 놀란것은 나 스스로의 구족함이었다. 무엇을 더 바라겠는가 아름다움을 바라보는 눈 외에는. 무엇을 더 바라겠는가 아름다움을 느낄 수 있는 識외에는... 그 밖은 다 욕심이요,탐진치일 따름이다.
늦가을이 선물한 아름다움
아름다움을 가장 아름답게 느낄 수 있는것도 다 시간이 필요하다. 뜸이 들어야 밥맛이 들듯 때가 되어야 비로소 느낄 수 있는 아름다움, 때가 되어야 전달되는 느낌. 지금이 바로 그 때인것이다.
너무 늦어 허망하지 않고 너무 일러 아쉬움이 없는 늦가을 그대로의 전경. 이 얼마나 아름다운가.
황금빛에서 짙은 고동색으로 그라디에이션 되는 빛의 향연. 거친 바람 속에 온통 황금색이 묻어나는듯하다.
하늘도 기분 좋게 맑아 늦가을의 온전한 빛을 유감없이 보여준다.
꿈을 꾸는듯하다. 꿈은 잠결에만 이루어지는것이 아니다.
나는 곁불을 쬐듯 가을이 주는 몽롱한 아름다움에 취해있었고 이처럼 몽상에 한번 빠져들면 개미지옥에 빠진 개미처럼 아무리 몽상에서 빠져나오고 싶어도 결국 더 깊은 몽상의 늪으로 빠져들고 만다. 몽상을 빠져나오는 유일한 길은 또 다른 몽상에 잠기는 일 뿐이었다.
정말 꿈꾸듯 길을 걷는다. 얼마 만인가. 이런 황홀한 기분. 문득 안성기가 나온 바람불어 좋은 날이 생각난다. 하나가 잘되면 세상 모든것이 잘된것으로 느껴지듯 저 매서운 대관령 바람도 지금은 오로지 순풍처럼 느껴질 따름이다.
또 다른 몽상. 숲에 빠지다.
이번 산행은 이 풍경 하나로 족한다. 더 이상의 설명은 사족이다. 바람이 주는 괴로움, 허기의 곤궁함, 산을 오르내리는 피로감 반야심경에서 관자재보살이 보았다고하는 일체고액을 이 풍경 하나로 다 제도받았다. 팔만 대장경이 다 저 숲 가운데 있는듯했다.
흠소심마(欠少甚什?)
내가 좋아하는 말 중에 흠소심마라는 구절이 있다 무엇이 부족한가 라는 중국어"치엔 수오 션머?"를 한자로 음독한것이다. 이 말은 임제록에 나오는 말인데 지금 이처럼 세월의 한자락에 앉아 가을이 가고 겨울이 옴을 실답게 다 보고 느끼며 또 아는데 새삼 무얼 더 바라는것인가 하는 말이다.
산행을 마치고 기적소리님이 말했다. "산이 다 그렇지 무얼 더 바라겠습니까?" 소리님은 오랜 산행을 통해 아마 이런 구족의 세계를 깨닫으신 모양이다.
우리나라 오래된 절은 전부 의상대사 아니면 자장 율사가 세웠듯이 중국 역사상 가장 절과 탑을 많이 세우신 임금이 양무제인데 양무제가 어느날 유명한 달마대사를 불러 자신의 공덕이 얼마나 큰가를 물었다. 천하의 황제를 앞에 두고 달마대사는 황제의 공덕이 없다고 잘라말했다.
사람이 본 시 태어나며 지니고 나온 공덕의 크기가 무한한데 절이나 탑을 세운 공덕 따위는 이에 견줄 만한것이 못된다는 뜻이다. 오늘 이렇게 자연 속에서 아름다운 풍경을 보고 느끼며 우리가 부여받은 이 능력이라는 무한공덕의 의미를 새삼 되새긴다.
心淸事達(심청사달)이라 풍경이 마음을 맑게하니 세상에 부족함이 없다.
산행 후기를 쓴다는것이 때로는 순수하게 경험한 바를 옮기는것이라기 보다 글을 쓰기 위해 의식과 감정을 끼워맞추고 있다는 느낌을 받곤한다.
경험이 경험 이전의 작위에 의해 조작되고 꾸며진것이라면 내가 경험한 바의 그 순수성을 의심하지 않을 수 없지만 경험과 글 사이에 존재하는 작위의 수단이 붕어빵을 만드는 틀처럼 내 고유의 창작물이란 사실을 인정한다면 그리 큰 잘못은 아닐것이다.
조성된 숲이다. 조성된 숲이기에 일사분란하다. 작위이다. 하지만 미술품이 작위이지만 아름다움을 동시에 주듯 비록 작위에 의해 조성된 숲일지라도 반복과 배열의 인위와 가을이 내린 빛이 동시에 혼재될 때 무엇으로도 의도되지 않은 아름다움으로 탄생되는것이다.
산행을 통해 궁극적으로 우리가 더 선해지고 도덕적이 되어간다는것은 산에 담긴 긍정적 메시지가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산은 예술품처럼 작위적이거나 어떤 의도로 만들어진 것이 아니다. 인류가 태어나기 이전부터 산은 있어왔다. 희양산이나 대야산의 백옥같은 대 슬랩. 쓰러진 소나무. 척박한 바위틈에서 자라나는 나무들. 아무것도 말하지 않는 이 침묵의 오브제를 통해 우리의 자아는 더욱 선하고 깨끗한 차원으로 변모한다. 웅장하고 숭고한 산의 모습들에서 우리는 한없이 나약한 인간의 실존을 경험한다. 세상을 더 겸손한 자세로 대하게 되는것이다. 하지만 질박하고 고요한 산길을 통해서는 자연이 주는 겸손함을 오히려 배우게 된다.
어린 아이처럼 맨살을 그대로 드러낸 시선을 개의치 않은 겸손에는 어디에도 스스로를 특별한 존재로 인식해 달라는 강압이 없어보인다.
길은 궁색한것이 아니라 스스로의 존재에 늘 만족하는것으로 보일 뿐이다. 세속의 지위에 오만하거나 불안한 자에게 혹은 인정받지 못해 안달인 사람에게 조용히 포행하듯 산길을 걷는것은 스스로를 돌아보는 더없이 좋은 기회가 될것이다. 겸손을 확인함으로써 자신이 얼마나 겸손과는 멀어져있는지를 상기시키는 좋은 계기가 되는것이다.
기분이 들떠 잘 가는 사람들을 자꾸 불러 세운다. 날머리를 향해 끝없이 간다는것은 결국 자기에게 주어진 시간들을 소모하는 행위이다.
빨리 갈 수록 산행이란 통장에 채워진 행복들은 점차 줄어간다. 산행도 알찬 살림살이로 하여야한다. 떠나면 그만이라는 식, 걷기를 위한 걷기 따위는 이제라도 그만 두어야한다.
아마 나도 그것이 아쉬웠던 모양이다. 세상의 아름다움을 일일이 설명할 수는 없어도 집 떠나는 아이 따뜻한 밥 한술 더 떠먹이고 싶은 생각으로 그들을 자꾸 불러 세운다.
자연스럽다.
참 긴 길을 걸어왔다. 오늘로 강원도 산길도 끝이다. 겨울과 봄을 거치며 일요일 하루를 온전히 강원도 산길에서 자연과 더불어 지냈다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걸 원했으니까. 그런데 자연과 더불어 살아온 내 삶을 향해 자연은 어떤 변화를 요구하고 있는걸까.
자연은 생명의 원동력이다. 하지만 한편으로 죽음의 편성표이기도 하다. 우리가 말하는 자연스러움, 그 순리라는것은 스스로 자연의 일부임을 자각하라는 뜻이다. 시시각각 변화하는 자연처럼 자연의 일부가 되어 생노병사를 당연한 현상으로 받아들여야함을 의미한다.
젊은 한 때 태양과 열정을 즐겼다면 죽음을 예고하는 숲의 전조 또한 받아들여야한다. 사람들은 누구나 죽음의 불가피성을 이해하지만 설국의 열차처럼 질주하는 죽음의 저돌성을 감각적으로 받아들이려 하지 않는다.
주위에 숱하게 늘린 노인들의 충격적 슬픔은 남의 일이 아니라 우리에게 곧 닥칠 현실이다. 참 슬프고 비극적이다. 사랑하는 사람들은 하나,둘 멀어지고 빈궁과 참을 수 없는 모욕의 상황 속에 우리가 놓여지리라는 상상은.
산업화는 가족주의를 해체하는 대신 일상의 편익과 무한의 쾌락을 제공 받았다. 하지만 한 개인의 처참한 말로도 아울러 수용해야만 했다.
참을 수 없는것은 죽음이 아니라 최후의 인간에게 자행되는 모욕이다. 일생의 말미를 개보다 못한 취급을 받는다는것이 자연의 순리일까? 신은 천사의 얼굴로 요양병원을 서성일까.
자연스레 죽음을 받아들이기가 이처럼 녹록치 않다. 죽음을 잊기 위해 자연으로 도피해야할 형편이다. 내가 어찌 할 수 없는 운명은 신에게 맡겨야한다. 일심으로 신을 칭명하다 운좋은 죽음을 맞게되면 백두대간 산신님의 가피로 생각하면 그만이다.
가을의 산길은 결국 반성이 되고 말았다. 산은 내가 자연의 리듬 위에 있음을 인지시켰다. 누구에게도 죽음이 찾아오고 그것도 곧 다가올것을 인식시켰지만 다행히 죽음은 내게만 닥칠 억울한 참사가 아니며 형벌이나 저주가 아닌 공평한 것임을 새삼 상기시켰다.
불에 탓지만 살아남은 나무.
벼락을 맞고도 살아가는 사람도 있으니...
한 겨울을 느껴보자.
神遊
중국 환제라는 임금은 주위에 꿈풀이를 잘 하는 해몽가가 있다는 소문을 듣고 그를 불렀다. 그러고는 처마 기왓장 하나가 난조라는 새가되어 날아갔다는 거짓 꿈을 지어 들려주고는 해몽을 부탁했다. 해몽가는 그 꿈 이야기를 듣고 즉각 후궁들이 문제를 일으켜 목숨이 오고가는 문제가 생길것이라고 해몽했다. 임금은 자기가 지어낸 일이라며 해몽가를 믿지않았는데 실지로 그런 일이 일어나고 만것이다. 임금은 너무나 신기해 그 해몽가를 다시 불러 연유를 물었더니 "夢是神遊"(몽시신유)라고 대답했다 즉 꿈이란 몸은 잠자는데 정신이 노는거란 뜻이다. 잠 잘 때만 꿈을 꾸는것이아니라 깨어있는 중에도 이런 저런 망상을 만들어낸다면 그것도 꿈이된다. 산길을 말없이 걷는것 같아도 우리는 神遊의 망상 놀음을 하고 있는 경우가 많다. 신유의 세상에서 노는 내 모습이 비록 참 모습이지는 않지만 때로는 그 환상이 나를 즐겁게 한다. 일종의 무의식을 통한 의식 세계의 치유다. 하지만 이런 기전을 너무 자주 쓰먹어서는 안된다. 꿈과 현실의 구분이 모호해지는 까닭이다. 뒤바뀐 생각을 멀리 떠나보내고 자기의 참모습을 찾는것이 반야의 지혜다. 깨닫음은 멀리 있지않다. 바로 코 앞에서 각성을 기다리고 있다.
전망대에서
좌측 소황병산에서 선자령에 이르는 언덕에는 언제나 변함없이 발전기가 돌아가고있다. 웅웅하고 부는 무겁고 두터운 바람이 귀전에 전해진다. 오래 서 있기 힘들 많큼 큰 바람이다. 사진 몇장 찍고 서둘러 전망대를 내려왔다.
陵京峰(능경봉)
대관령 남쪽 산중에 제일 높은 봉우리라 하여 붙여진 이름이라고 한다. 대관령보다 높다하여 凌頂峰이라 불리기도 한다. 그냥 산 전체가 하나의 크다란 능처럼 보이는 육산이다. 주위의 그만 그만 한 산에 비해 우뚝한 자태가 제왕산의 면모를 지니고 있다.
완만한 육산의 면모를 그대로 보여주는 고루포기산(좌)
다복솔이라는 키가 작고 가지가 많은 소나무가 포기 배추처럼 많이 자란다고 하여 고루포기 산이라고 한다는데 다복솔을 왜 고루라는 표현을 하는지는 알려진바 없다. 그래서 나는 이 유래에 별 찬성하지 않는다.
'골짜기' 또는 '골짝'을 뜻하는 강원도 사투리 '골패기에서 그 유래를 찾아 볼 수도 있다. 실제 1961년 평창에서는 이 산 넘어 명주군 왕산면에 ‘고루포기’라는 마을이 있 어 산 이름을 ‘고루포기산(강원도 평창군 도암면 수하리)’이라 고시하였고, 강릉에도 예전 산 앞에 골폭이라는 마을이 있어서 산 이름을 ‘골폭산(강 원도 강릉시 왕산면 왕산리)’이라 고시한 바 있다고한다. 골짜기에 폭포가 있는 산 혹은 마을이라는 뜻의 명칭에서 골폭산 골포기 산,고루포기 산,이렇게 시작하여 현재 지명으로 고착되었을 가능성이 많다.
세 번째, 고로쇠나무가 많다하여 고루포기란 이름이 생겼다는 설,신빙성이 없어보인다.
왕산면
고려말 우창비왕설(隅昌非王說), 우왕과 창왕은 신돈의 아들이라서 폐가입진(廢假立眞)의 한많은 역사의 주인공으로 이곳으로 귀양 온 우왕이 그의 복위를 위하여 능경봉 옆 제왕산(帝王山)에 제왕산성(山城)을 쌓았으며 이곳 왕산에도 많은 흔적들을 남겼다. 그래서 우왕과 관계 깊은 이산을 왕산(王山)이라 불렀고, 마을이름도 왕산면 왕산리이며 제왕산(帝王山)은 왕산면과 성산면 사이에 있다
-펌-
능경봉 오르는 돌계단
선자령에서 능경봉에 이르는 구간은 국가가 특수 조림지로 지정해 관리해 오는 곳으로 산길을 걸으며 잣나무,전나무,낙엽송,자작나무등으로 꼼꼼이 조림된 숲들을 자주 대할 수 있다. 현재 국가산림문화자산 16곳 중의 하나로 지정되어있다.
행운탑
행운이 탑을 쌓아 이루어지는것이라면 얼마나 좋을까 하지만 세상 사람들 중에는 그렇게 믿는 사람들이 의외로 많은 모양이다. 돌을 하나 쌓으며 백두대간 무사 종주를 빈다. 일종의 다짐이다.
12:48
마침내 능경봉(1123m)
강릉시 왕산면 왕산리와 성산면 오봉리,평창군 도암면 횡계리 사이의 산. 설악산,오대산,황병산이 대관령을 넘으며 다시 솟아오른 기세를 보인다. 맑은 날에는 동해 바다 너머로 울릉도가 보인다고 한다.
1.8km 남았다는 표지가 마음에 든다. 뛸듯 기쁜 마음오로 하산한다. 산 아래 묵직하게 돌고있는 발전기 하나가 보인다. 기다리다 돌이된 망부석처럼 보인다.
능경봉
눈과 비와 바람을 통과하며 묵묵히 마침내 득도의 경지에 이르신 上行보살님이다.
오르고 내렸으니 오름도 없고 내림도 없다.
내림 속에는 오름이 없고 오름 속에는 내림이 없다.
그렇다고 아주 아무것도 없는것도 아니다. 그 妙하게 있다고 느껴지는것 바로 드것이 ,妙有!다.
산을 내려오면 오름도 내림도 다 두고 오지만 신발에 묻어 온 작은 흙처럼 어제와 다른 무언가의 있음. 묘한 있음. 그것이 산이다.
실체는 없지만 분명한 있음.
텅 빈 가운데 바람처럼 느껴지는 그 있음의 세계.
오늘 산행은 그 있음, 그 묘한 있음을 실감한 산행이었다.
사람도 날려버릴것 같은 기세로 바람이 분다. 바람에 떠밀리듯 기념비를 떠나왔다. 멀리 우리를 기다리는 버스가 보였다. 바람을 피해 사람들은 보이지 않았지만 두터운 외투를 입은 산악회 회장님이 집 떠난 자식을 기다리듯 밖에 나와 기다리고 계셨다.
13:20
행복은 파랑새가 아니다. 있지도 않은 즐거움을 구하려하지마라. 괴로움의 안개를 걷어내면 바로 그자리,묘한 모습.
산길을 걷고 걸어 아주 서럽도록 걸어 나를 텅 텅 비워낼 때 그 빈 空性의 자각이야말로 행복이다.
- 후 기-
오늘로 강원도 산행이 끝났다. 산행을 끝내며 스스로에게 물었다.
산행을 하였느냐? 네, 산행을 하였습니다. 하지만 是名이 行일뿐(이름만 행일 뿐) 以無所行이니(어디에도 行이 없으니 즉 行의 실체가 없으니) 한 걸음도 行한 바 없습니다.
* 드보르작 어머니가 가르쳐준 노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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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poll 원장님!
고운 음률에 미의 감각을 승화시킨 예술 작품입니다.
강원도 산길이 끝났지만 그래도 오지의 세계가 더 아련 하리라 믿어지구요!
올린사진 잘 보고 갑니다. 변절기 늘 건강 챙기시고
군불지핀 일상에 미소가 넘쳐 나시길요!
형님 분부 잘 받들어 모시겠습니다.
헝님도 늘 건안하십시요
poll님
산행하는 날 아침 눈뜸이 두려웠던 때가 있었습니다...분명..
그 두려움과 맞서기를 얼마나 해왔던지요...지금도..
대간, 정맥,지맥등을 해 오면서 언제부턴가 생활의 한 부분이 된듯합니다...
큰 산은 큰대로, 작은산은 작은대로.....
근데 분명한것은 이세상에 잡산은 없다는겁니다....잡놈은 있겠지만...
그냥 넉두리 해봅니다...주저리..
일산일희,하나의 산은 하나의 기쁨을 준다는것이 제 등산철학입니다.산과 더불어 그렇게 살다보면 어찌 알겠습니까. 잡놈이 부처로 보일 날이 오게될지.
지난해...닭목령 가까이에 있는 자작나무 숲이 노랗게 물들어서....
매우 아름다운 정취를 나타내었는데...
계절이 조금 지났다고 모두 낙엽이 되어서 떨어지고...
앙상한 가지만 남았있구요...
고루포기 지나서 능경봉 가는 길에
보이는 전망대에서 본 대관령 목장지대...
다시보아도 아름답습니다.
이제 대간길도 끝이 보이기 시작하는 것 같습니다..
강원도 구간 줄기차게 야간산행을 하신다고...
많이 수고했구요...
늘 아름다운 산행기를 보면....
마음속에 늘 무엇인가를 갈구하는 마음으로 변하는 것은 무엇때문일까요?
폴 원장님...
대간 완주때까지 늘 건강하시고...
아름다운 산행기 남겨주시기 바랍니다...
교장 선생님께서 몸소 저희 병원을 방문하셔서 격려해주셨던 때가 엊그제 같은데 이제 정말 끝이 보입니다.
그 때만 해도 그저 대간길 맛만보고 그만 둘 생각이었는데 여기까지 오게된데는 동료들의 힘이 컸습니다.
늘 성원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선생님의 관심에 보담하는 뜻에서라도 의미있는 종주가 되도록 끝까지 노력하겠습니다.
여전한 강철 후미조
이제 거의 끝이 보입니다요....
전망대 지나 베낭 떨이 하던 지난 날이 아련합니다.
대관령 센 바람 맞으시고
찬바람 첫 눈 맞으며 걸으시느라 수고가 많으셨습니다.
저희들도 전망대 지나 바람을 피해 배낭떨이를 했습니다.
13기 후배님들과 대간 두바퀴 잘 하고계시죠.
대간길 끝나고 나니 별 만날일도 없고 좀 허무하네요.
늘 건강하십시요^^*
역시 명불허전! 이번도 산행의 모든 걸 쫙 정리를 해주시군요.
멋진사진, 좋은 글 고맙습니다.
강원도 산행은 끝나셨다는데 앞으로의 산행 스케쥴이 어찌 되시는지?
앞으로의 스케쥴은 회장님께서 내려주는 대로 임하게되어있습니다.
하늘재에서 소백산까지의 구간이 남아있습니다.
다음번 이화령- 사다리재 구간도 타야합니다.
강원도 끝산행..
묘한 여운이..
추카 드려야 하나.. 울어야 하나...
아직은 남아 있는 시간을 즐기고..
쫓기는 맘에 눈에만 넣고 온 풍경들.. 폴님 덕분에 가져갑니다...
그래요,기다린다는거 이거 참 맥 빠지는거거던요.
그동안 한번도 빠지지 않고 내 나름 열심히 대간길을 걸어왔는데 하염없이 다음 구간을 기다려야하다니
그 동안 단단히 먹은 의지가 흐트러질까봐 좀 걱정입니다.
좌우간 12월 초에 종무식이나 재미있게합시다^^*
닭목령 삽답령 고루포기 능경봉 듣기만하여도 가슴이 벅차네요.언젠가 sbs기상케스터의 일기예보를 하는데 대관령 풍력이나오길레
어 저기 능경봉 전망대네 우찌그리반갑던지 11기 번개산행때 이화령구간에서는 소름이돋아나는것처럼 그당시의 모습이 파노라마
처럼지나가는데 ....산행추억은 잊을수는 있어도 버릴수는 없으니 백두대간의 산행추억은 상당히 오래지속 될것같습니다.
이런가운데 산행사진을보니 가슴이 먹먹해져오는것을 숨길 수 가없네여 .
초봄에 지나왔던 저길을 겨울풍경을 보니
색다른 느낌으로 와닿네요
땅속을 삐집고 올라온 단풍치에
가던길 멈추고 봉지마다 한가득 단풍취 체취하던 생각이
새록새록 묻어납니다
대간을 하면서 낙엽송 노랗게물든
단풍이 절정일때를 한번도 보지못에 아쉬움이 남아있는데
미끈하게 몸매를 들어낸 낙엽송숲도 꽤나 운치가 있네요
첫눈을 맞을때 설레임의 느낌은 누구나가 같나봅니다
그렇게 반갑고 아름답던 설경과 눈이
점점지겨워지는건 귀는 듣던것은 좋아하지만
눈은 늘 새로운것을 원하기때문일까요 ??
겨울추위에 힘없이 쓰러져있는 관중위로
소복히쌓인눈이
지네발란처럼 또 다른 작품을 만들어 놓았군요
폴님의 산행후기글은 난해하면서도
제가 함께걸어온것처럼 착각에 빠질만큼
공감가는 부분들이 많아서인지
글을 읽노라면 마음이 정화되는 느낌과
삶의 여백을 채워주는 아름다운 마음을 느끼게합니다
혹독한 겨울추위에
건강단디 챙기시구
남은대간길 잘 마무리 하시기 바랍니다.
글쟁이들의 보람은 좋은 독자를 만나는 것인데 저는 비록 글쟁이는 아니지만 보름달님 같은 좋은 독자를 만나 그나마 후기를 올린 보람을 느낍니다.
아시다 시피 산행 후기를 쓰오면서 그때 그때 느낀 감정이 휘발될것을 염려하여 그동안 나도 모르는 글들을 주저리 주저리 달아놓는 만행을 저질러 왔습니다.
말도 안되는 글을 올려놓고 남들에게 읽으라고하는것은 일종의 자기기만이지요.
그래서 이번 후기를 끝으로 더 이상 후기를 올리지 않기로 했습니다.
나머지 후기는 대간을 마감하는 의미에서 오로지 나 자신을 향한 솔직한 글을 쓰고 싶습니다.
제 후기를 아껴주신 보름달님께 거듭 감사드립니다.
아니되옵니다
폴님의 후기글을 몇번씩 읽어보면서
지나왔던 한구간구간마다 상상을 해봅니다.
후기글마다 댓글올리지 못해 삐지셨나요 ? ㅎㅎ
봉우리마다의 관련된 역사를 한눈에 볼수 있어
감사하게 생각하고 폴님의 글을 읽는분들은
아마도 마음의 휠링이 되지않을까 생각합니다.
대간길 종주하는 그날까지
후기글 간절히 계속 부탁합니다
미완성으로 남기지 마시궁,,,,
다음기수의 귀감이되면서
자연을 아끼고 사랑하는 님들의
길이남을 역사가 될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