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제로는 착한 사람들만 억울하고 약은 사람들이 출세하는 경우가 더 많지만, 인간이라면 누구나 착한 사람이 잘 되었으면 하는 바람이 있다. 그래서인지 흥행한 영화는 대부분 우리의 이런 욕구를 충족시킨다. 아슬아슬한 고비를 넘기다가 결국에는 착한 사람이 복을 받고 악을 응징하는 모습을 지켜보면서 뭔지 모를 카타르시스를 느끼기도 한다.
하지만 '백야행'은 그런 영화가 아니다. 스토리가 스릴넘치고 반전도 식상하지 않아서 보는 내내 재미가 쏠쏠하지만, 보고 나면 기분이 영 찜찜하다. 엉뚱한 사람이 죽으니까 어쩐지 억울하다. 그래도 이 영화는 평점이 꽤 높은 편이다. 사랑으로 시작해 사랑으로 끝나는 진부한 멜로영화가 아니어서 그런 것 같다. 관객의 성향에 따라 다양한 생각거리를 제공해 주는 영화다.
법쪽에 관심이 많은 사람은 공소시효의 맹점에 대해 생각해 보았을 것이다. 사랑에 빠져 있는 연인이라면 주인공의 사랑 이야기에 끌렸을 것이고, 연예계에 관심이 많다면 고수, 손예진, 한석규 등 국내 정상급 배우의 캐스팅 만으로도 충분히 호감가는 영화였을 것이다. 그리고 나에게는 '십사년 전 그 때, 너를 잡아주지 못해서 미안하다.'는 형사(한석규 역)의 말이 강한 인상을 남겼다.
매듭 짓지 않고 덮어둔 사건 하나가 누군가의 삶을 어둠으로 몰아세우며 얼마나 많은 목숨을 앗아갔는지 기억해야 한다. 아무렇게나 내팽겨쳐 둔 역사가 정도로 가지는 않는다. 사필귀정을 말하는 기저에는 역사에 대한 최소한의 양심과 성의가 있어야 하는 법이다. 십사년 전, 사건의 현장에서 형사가 그 범인을 잡았더라면. 그래서 그 범인이 죄값을 받고 다시 인생을 시작할 수 있었더라면, 이 영화는 어떻게 흘러갔을까.
결말은 분명 달라졌을 것이다. 하지만 그렇다고 이 두 주인공이 행복해졌을 거라고는 말하지 못하겠다. 두 사람이 불행해진 보다 근본적인 이유는 인생에 대한 태도에 있었기 때문이다. 두 사람이 본인의 인생을 조금만 귀하게 생각했더라도 이렇게까지 결말이 비극적으로 치닿지는 않았을 것이다. 어떻게 본인 인생을 '태양이 높게 뜨면 사라져야 하는 그림자'정도로 치부해버릴 수 있을까. 자신은 그것이 사랑이라고 믿었지만 내가 보기에 그것은 사랑이 아닌 것 같다. 아물지 않은 상처가 세상을 향한 복수로 변하여 '사랑'이라는 핑계로 상대를 이용했을 뿐이다. 그 상대 역시 자신을 '그림자'로 생각하니 태양에 묶여 살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사실 누가 나에게 너는 그런 말을 할 자격이 있느냐, 고 물으면 부끄러워서 아무 말도 못할 것 같다. 영화처럼 극단적인 상황에 처해본 적은 없지만, 나는 매 순간 내 삶을 소중히 여기며 살아왔을까. 내 삶에 대한 최소한의 양심과 성의를 가지고 모든 일의 매듭을 깔끔하게 지으며 살아왔을까.
과거에 미처 해결하지 못하고 덮어 두었던 몇가지 일들이 떠오른다. 비겁하게 피하지 않고, 상처받더라도 부딪혀서 해결하려고 노력했던 사람에게는 시간이 약일 수 있다. 하지만 겁쟁이처럼 피하고 외면하고 그저 덮어두려고 했던 사람은 본인이 잊고 있었다고 생각했던 일들이 어느날 불쑥 튀어 나오는 일이 허다하다. 인생을 조금 더 귀하게 생각한다면, 지금이라도 용기를 내어 그 사건을 마주하고, 해결하는 게 맞다.
백야행은 참 이상한 영화다. 내 기분을 그렇게 찜찜하게 만들어놓더니, 심지어 지금은 잊고 지낸 아니, 잊고 지냈다고 착각했던 누군가에게 전화를 하게 하는, 백야행은 그런 영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