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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롱뇽 법정에 서다
도롱뇽 법정에 서다
풀들이 내 품에서
건강하면 좋겠다
도롱뇽이 내 안에서
편히 살면 좋겠다.
바람이 나를 지나며
향기로워 지면 좋겠다.
사람들이 나를 보면서
환해졌으면 좋겠다.
우리가 크면
흙이 되어주자
꽃을 심을 수 있게
동물이 땅을 밟을 수 있도록
도롱뇽이 쓰는 편지
우리의 친구라고 자처하는 사람들이 처음 우리를 법정에 서라고 했을 때 우리 도롱뇽의 세계에는 일대 혼란이 일어났습니다.
인간의 법정이라는 곳은 이익과 탐욕과 시비가 들끓는 곳으로 죄지은 자를 벌하는 곳이라고 알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왜 우리가 인간의 법정에 서야 하는지, 그곳에서 무슨 일이 일어날지 알지 못하기 때문에 수많은 억측과 소문들이 떠돌아 다녔습니다. 그동안 우리 세계의 뉴스는 고작 새싹들이 등을 간질이는 이야기나, 나무뿌리에 기대 살던 도순이와 도돌이가 장마에 쓰러진 집을 옮기지 않을 수 없었던 이야기 정도였습니다.
그동안 우리는 자신의 영역에서 조용히 천성의 일부로 서로의 삶을 지탱하며 많이 알 필요가 없는 세계에서 살았습니다.
자연 그 자체를 집으로 삼고 있는 우리들은 따뜻한 땅의 기운과 축축한 밤이슬을 호흡하며, 달빛에 반사되는 흰 바위틈을 헤집고 부드러운 냄새가 나는 썩은 나무 등걸을 타고 다니면서, 수억 년 동안 조상들이 우리에게 전해준 생존의 지혜를 익히고 그 순리를 따르며 천성의 아름다운 늪과 기슭에서 조용한 평화를 이루고 있었습니다.
우리에게도 천적이 있고 우리를 위협하는 많은 일들이 있지만 공생과 상관관계에서 협력하고 조화를 유지하며 자연이 준 수명에 만족하며 살았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람들이 천성의 계곡에서 조용히 살고 있는 우리를 아예 생명의 호적에서 지워버렸다는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어쩌면 그들은 멸종해 가고 있는 우리의 운명을 예견했던 것일까요.
멸종 위기종―그것은 우리를 향한 연민의 이름이며
환경 지표종―그것이 현재 지구적인 위기에 처한 우리의 또 다른 이름입니다.
사람들은 쫓기는 동물과 멸종의 위기에 놓인 생물들이 겪는 비애에 대하여 얼마나 이해하고 있을까요.
우리는 인간의 걸음걸이가 두렵기만 합니다.
하지만 지금 우리가 인간의 법정에 서려는 것은 인간의 침해에 의해서 사라져가는 도롱뇽이라는 개체로서의 비극 때문이 아니라, 공동의 뿌리로 우리가 함께 하고 있는 아름다운 생명의 어머니―천성을 구하기 위해서입니다.
밤이면 갈대밭 사이로 천 명의 성인이 내려와 생명이 있거나 없는 모든 것을 향해 화엄의 진리를 설하고, 달빛 속에 아홉 용을 키우고 있다는 것은 결코 신화가 아닙니다.
그 전설과 신화 속에서 어머니 천성은 잠시도 쉬지 않고 22개의 늪과 12계곡으로 물을 길어 부으며 우리를 돌보고 있는 것입니다.
어머니의 끊임없는 노동은 우리의 생명의 연줄이며 한숨은 바람이 되고 고요한 호흡은 이슬이 됩니다.
바람과 비, 안개와 이슬―이것은 우리를 키우는 어머니 천성의 손길입니다.
지금 우리는 천성의 품에 들어 긴 겨울의 잠을 자고 있습니다.
우리가 잠든 사이에도 어머니 천성은 우리의 잠을 깨우지 않기 위해 낙엽을 덮고 눈을 불러오는 수고를 아끼지 않을 것입니다.
눈과 낙엽이 덮인 땅 밑에서 봄을 기다리며 꿈꾸고 있는 생명들은 우리 도롱뇽뿐만이 아닙니다.
무당개구리와 두더지, 얼레지며 노루귀, 현호색과 제비꽃, 멀리서 날아온 솔씨도 우리 곁에 잠들어 있습니다.
어떤 사람들은 생명을 잉태하고 있는 따뜻한 어머니의 품을 지하―죽음의 세계라고 한다지요.
그러기에 그들은 어머니 천성의 옆구리를 뚫어 갈비뼈를 꺼내고 심장을 잘라 사람들이 다닐 길을 낸다지요.
봄이 와도 싹을 틔울 수 없는 생명들이 늘어나고 돌아가 알을 낳을 수 있는 샘과 계곡이 줄어든 뒤 사람들은 생명의 어머니 천성은 죽었다고, 22개의 늪과 아름다운 12계곡의 이야기는 신화였다고 이야기 할 것입니다.
이제 우리는 도롱뇽의 친구라고 하는 사람들이 왜 우리를 법정에 세웠는지 알게 되었으며 우리가 해야 할 일이 무엇인지 알게 되었습니다.
우리가 인간의 법정에 서려는 것은 잠시도 쉬지 않고 생명과 생명의 싹을 키우기 위해 물을 길어 붓고 있는 어머니 천성을 구하기 위해서라는 것을….
두렵고 떨리는 마음으로 법정에 선 우리는 지구 가족으로의 연대와 우정을 믿으며 여러분들께 호소합니다.
생명의 어머니 천성을 구해주세요.
우리의 아름다운 어머니 천성을 살려주세요.
추신
법정에서, 공단의 관계자들과 영향평가에 함께했던 교수들은 천성산 지역에서 도롱뇽의 서식을 확인하지 못했으며 도롱뇽이 살 가능성은 배제 할 수 없지만 살지 않는 것으로 안다고 실질적으로 도롱뇽의 서식을 부인하는 법적 증언을 했습니다.
그들은 또한 수달과 원앙, 삵과 담비, 소쩍새와 황조롱이, 꼬마잠자리 물방개 등 천성산에 살고 있는 30종의 보호 동식물에 대하여도 언급하지 않았으며 오히려 “천성산에는 특별히 보호를 요하는 동식물은 없음” 이라는 놀라운 보고서로 환경영향평가의 면죄부를 주게됩니다.
천성의 깊은 숲에서 밤마다 울어 대는 소쩍새와 두견이의 울음소리를 듣지 못하게 귀를 막는 것은 과연 무엇일까요.
봄이면 온 산을 보랏빛으로 물들이는 얼레지며, 은방울꽃, 현호색, 피나물군락, 족두리꽃, 천남성의 아름다움을 볼 수 없게 눈을 가리게 한 것은 무엇일까요.
눈앞의 이익에 가려 그들에게는 그 모든 생명의 빛과 소리가 정녕 보이지 않고 들리지 않았던 것일까요
그들이 들을 수 없었던 것은 비단 소쩍새와 두견의 소리 뿐만이 아니며 ‘그들은 텅 빈 허공에 울려 퍼지는 바람소리, 물소리, 그 가운데 생명이 일어나며서 울리는 아름다운 소리를 들을 수 없었을 것입니다.
그들은 소리가 진동이라는 것을, 진동은 파장이라는 것을 이해 할 수는 있었지만, 파장이 에너지이며 에너지는 생명이라는 것을, 그들이 걷고 있는 논리의 길에서는 이해하기 어려웠을 것입니다.
하지만 빛이 내리고 바람소리, 물소리가 우리의 생명 현상의 일부라는 것을 이해하는 데는 그렇게 많은 지식이 필요치 않습니다.
물소리 맑은 내원의 계곡에 들어서서 잠시만 귀 기울이면 조용히 꿈꾸는 도롱뇽의 숨결을 느낄 수 있을 테니까요.’
도롱뇽과 함께 꿈꾸는 세상
인간은 오랫동안 자연과의 공생 속에서 문화와 문명을 이루어 왔습니다.
떨어진 꽃도 함부로 밟지 못하는 것이 오랜 우리의 전통이었으며 미물을 의식해 뜨거운 물을 하수구에 함부로 버리지 못하게 해온 것이 우리 선조들의 생활도덕이었습니다. 고시레와 까치밥 역시 우리의 생활 속에 배어 있는 생명에 대한 존엄사상에서 시작되었습니다.
현대의 물질문명은 환경파괴에만 그치지 않고 우리가 갖고 있던 생명에 대한 존중과 자연에 대한 미덕마저 함께 사라지게 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미물이라고 부르는 생명을 통해 현재의 개발과 자연파괴를 재조명해 보는 것이 필요합니다.
이제 자연의 방문자로 이 땅에 온 우리 모습을 겸허히 돌아보고 인간이 아닌 뭇 생명들의 눈으로 개발문제를 되짚어 보아야 할 때입니다.
도롱뇽 소송은 살아 있는 모든 생명체와의 아름다운 연대를 유지하며 조화로운 지구 가족을 실현하려는 노력을 담은 새로운 역사가 될 것입니다.
우리가 도롱뇽의 친구가 되어 주는 것은 살아 있는 많은 생명체와 함께 하고 죽어가는 생명들의 손을 잡아주는 작은 실천입니다.
도롱뇽 재판
지난 월말께 울산 법정에서 도롱뇽의 법정 출석을 확인하는 이색 절차가 있었다. 경부 고속전철의 천성산 구간공사 때문에 이 산에 사는 도롱뇽이 죽어가고 있다고 소송을 제기했는데, 원고가 피해동물인 도롱뇽으로 되어있었기 때문이다.
원고는 출정하지 못했지만 도롱뇽의 친구인 환경단체가 대신하여 재판을 진행시켰던 동물재판이었다. 이 자리에는 일본에서 환경파괴에 대항하는 토끼 재판, 도요새 재판 등을 주도해온 환경운동가들이 응원 방청했다는 보도도 있었다.
동물재판의 역사는 동서간에 유구하다. 돼지를 놓아기르던 중세 프랑스에서는 사람이나 작물, 기물을 다치게 한 돼지를 잡아 도시 한복판에서 재판을 하고 그 자리에서 태형을 집행하는 광경을 흔히 볼 수 있었다.
1519년 북이탈리아에서 두더지 때문에 피해를 본 농부들이 두더지를 피고로 제소한 궐석재판에서 피해지역에서 두더지의 추방을 선고했는데, 다만 임신한 두더쥐와 아기 두더쥐에 한해서 15일간 유예를 준다는 인정 단서가 붙어있었다. 도스토예프스키의 <<죽음의 집의 기록>>을 탄생시킨 시베리아 유형(流刑)시절, 아이를 떠받쳐 다치게 한 양의 유배살이에 대해 언급했는데, 러시아에서 사람에게 해를 끼친 동물은 유형시키는 관행이 있었다.
10여 년 전 노르웨이 오슬로에서 이웃집에서 놓아기르는 앵무새의 흉내소리 때문에 심장마비의 발작을 일으켰다 하여 제소했는데, 이 앵무새 재판에서 좁은 새장에 감금, 한 달 동안 물만 먹이고 먹이를 주지 못하게 하는 판결을 하고 있다.
우리 역사에도 동물재판 기록이 없지 않다. 태종 때 일본에서 선물한 코끼리가 사람을 짓밟아 죽였다. 이에 병조판서 유정현이 검사가 되어 사람을 죽인 자는 살인죄로 다스려야 한다는 논고 끝에 사형을 구형하자 재판장인 태종은 보현보살이 타고 다니던 영물이요 절도 잘하는 예의를 아는 짐승인지라 감일등(減一等)하여 외딴섬에 유배시키고 있다.
이처럼 동물재판의 역사는 동물이 피고로서 일관돼 있는데, 환경을 고발하는 수단으로 각광받고 있는 현대의 그것은 동물이 원고가 되고 있다는 점이 다르다. 그래서 도롱뇽 재판의 판례는 환경보호의 변수로 중량을 갖게 되어 주목되는 것이다
- 이규태 mailto:kyoutaelee@chosun.com -
자연의 권리 소송 사례
아마미흑토끼 소송
1995년 일본 아마미오오시마(庵美大島)의 스미요우(住用)촌에 있는 삼림을 채벌하여 골프장을 개발하는 것에 맞서, 그 곳에 서식하는 아마미흑토끼와 오오토라개똥지빠귀, 아마미산도요새, 루리어치, 주민 등이 가고시마(鹿兒島)지방법원에 임지개발허가처분의 무효 확인 또는 취소를 요구한 행정소송이다.
아마미소송은 원고로서 동물의 종명을 표시하고 자연의 권리를 주장해서 커다란 반향을 불러일으킨 자연보호소송으로, 임지개발 허가 처분은 자연의 권리와 자연향유권의 침해, 멸종 위험에 있는 야생동식물의 종 보존에 관한 법 위반, 삼림법 위반, 문화재보호법 위반 등 관련 조약을 위반했다고 주장했다.
아마미소송은 2001년 1월 가고시마지방법원에서 원고적격을 인정할 수 없다며 각하되었고, 2002년 3월 후쿠오카고등법원에서도 같은 이유로 공소 기각되었으나, 현재까지 숲은 울창하고 골프장 개발의 전망은 거의 없는 상태이다.
빠리야 소송
1979년 하와이 주정부가 하와이 섬에 위치한 빠리야의 서식지 내에서 사냥을 즐기는 사람들을 위하여 많은 수의 야생염소와 양을 유지시키기로 결정하였다. 이에 대하여 시에라 클럽과 오두본 협회, 하와이오두본 협회 등이 빠리야의 서식지를 파괴할 수 있는 행위로 주정부가 위기종보호법을 위반하였다고 주장하며 빠리야와 자신들을 원고로 소송을 제기하였다.
이 사건에서 법원은 ‘하와이의 희귀조인 빠리야도 고유한 권리를 지닌 법인격으로서 법률상 지위를 가지며 연방법원에 소송을 제기할 수 있다’고 원고적격을 판시하고, 하와이 주정부는 위기종보호법을 위반하였으며, 빠리야 서식지 내에서 야생염소와 양을 제거하는 계획을 시행하라고 판결하였다.
바다오리 소송
일생의 대부분을 바다에서 보내고 오래 된 숲에서 새끼를 낳기 위해 수십 마일을 날아가는 대리석무늬 바다오리가 환경보호정보센타와 함께 1996년 태평양목재를 상대로 제기한 소송이다.
태평양목재는 캘리포니아 훔볼트 카운티에 오래된 삼나무와 미송으로 울창한 숲을 소유하고 있었는데 이곳은 대리석무늬 바다오리가 새끼를 낳고 기르기에 이상적인 서식지였다. 그런데 이 회사는 숲을 벌목할 계획을 세우고 주정부로부터 허가도 받기 전에 벌목을 하기 시작하였다. 근래에 그 수가 현격히 줄어 1992년 위기종보호법상의 위기종으로 분류되어 보호받게 된 대리석무늬 바다오리는 태평양목재를 상대로 소송을 제기하였다.
이에 법원은 대리석무늬 바다오리는 위기종보호법에 의한 보호종으로서 자신의 권리로 소송을 제기할 원고적격이 있다고 하면서 희귀종인 바다오리의 생존에 위해를 끼치는 방식으로 벌목행위를 하여서는 안 된다고 판결하였다.
돌고래 카마 소송
1981년 샌디에고에 있는 씨월드에서 태어난 돌고래 카마가 1986년 보스턴에 있는 뉴잉글랜드 수족관으로 옮겨지면서 벌어진 소송으로 해양포유동물보호법과 관련된 소송이다.
수족관 측은 카마가 수족관 환경에 적응하지 못한다며 아무런 허가도 받지 않고 카마를 하와이에 있는 돌고래의 음파탐지 능력을 연구하는 해군기지로 옮겨버렸다. 이에 ‘동물에 대한 학대와 착취를 종식시키기 위한 시민들의 모임’은 1993년 수족관 측이 해양동물을 이전할 경우 해양포유동물보호법이 요구하는 정부의 허가를 받지 않았으니 카마의 이전은 무효라고 주장하며 자신과 카마 그리고 여러 환경단체들을 원고로 하여 수족관과 해군, 상무성 등을 상대로 소송을 제기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