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루살렘 왕
삼하 5장 1-25절
주요내용 = 왕이신 예수님
오늘 읽은 본문에는 다윗이 이스라엘의 왕이 되어 당시 여부스 성을 정복하고 그 성을 수도로 삼고 외세의 침략을 이기는 내용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저는 이 시간 본문을 객관과 주관이라는 두 관점에서 말씀을 증거하려고 합니다.
먼저, 예수님의 예표로 보면
본 사건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메시야로서 기름부음을 받으시고 본격적으로 공생애를 시작하심을 예표합니다.
1.함께 목자라는 점이 그렇습니다.
2절 "네가 내 백성 이스라엘의 목자가 되며 이스라엘의 주권자가 되리라"
여기 백성들은 여호와의 말씀을 인용하여 다윗을 이스라엘의 목자라고 부릅니다. 이와 같이 예수님은 "나는 선한 목자라"고 하셨고, 유리방황하는 백성들을 민망히 여기셨습니다.
2.사역의 싯점이 같다는 데서 그렇습니다.
4절 "다윗이 삼십세에 위에 나아가서 사십년을 다스렸으되"
이와 같이 눅3:23을 보면 "예수께서 가르치심을 시작할 때에 삼십세쯤되시니라" 하셨습니다.
3.사역의 특징이 소경과 절뚝발이였다는 점입니다.
8절 "그 날에 다윗이 이르기를 누구든지 여부스 사람을 치거든 수구로 올라가서 다윗의 마음에 미워하는 절뚝발이와 소경을 치라 하였으므로 속담이 되어 이르기를 소경과 절뚝발이는 집에 들어오지 못하리라 하더라"
당시 여부스 성은 얼마나 천연의 요새였든지 소경과 절뚝발이라 할지라도 그 성을 지킬 수가 있었습니다. 그런데 이 말은 다윗을 조롱하는 말이었고 그래서 다윗은 그 전쟁에서 그들을 살육의 목표로 삼았을 뿐 아니라 거기에 대한 속담이 생겨날 만큼 그 전쟁의 특징을 이루었습니다.
이와 같이 예수님의 사역의 특징도 소경이 보고 앉은뱅이가 걸으며 가난한 자에게 복음이 전파되는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요한의 제자들이 예수님을 찾아 왔을 때 예수님은 다른 말을 하지 아니하시고 소경이 보며 앉은뱅이가 걸으며 가난한 자들에게 복음이 전파된다고 하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 말씀만 해도 다 알 것이기 때문입니다.
4.관계가 없는 사람이 집을 지어준 점에서 그렇습니다.
11절 "두로 왕 히람이 다윗에게 사자들과 백향목과 목수와 석수를 보내매 저희가 다윗을 위하여 집을 지으니"
이와 같이 예수님께서는 종교지도자도 아닌 천박한 제자들을 부르사 능력 주셔서 하나님의 집인 교회의 건설자로 삼으셨습니다.
5.하나님께서 함께 하셨다는 점에서 그렇습니다.
10절 "만군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함께 계시니 다윗이 점점 강성하여 가니라"
이와 같이 하나님께서는 예수님과 함께 하셨습니다. 요16:32에 "내가 혼자 있는 것이 아니라 아버지께서 나와 함께 계시느니라" 하셨습니다.
6.많은 자녀를 낳은 점에서 그렇습니다.
13절 "다윗이 헤브론에서 올라온 후에 예루살렘에서 처첩들을 더 취하였으므로 아들과 딸들이 또 다윗에게서 나니"
이처럼 예수님께서도 구름떼처럼 모여드는 많은 사람들에게 전도하여 하나님의 자녀를 삼으셨습니다. 다윗은 육신의 자녀였지만 예수님께서는 영의 자녀들이었습니다.
7.몸담았던 가장 가까운 데서 반복적인 대적이 있었습니다.
18절 "블레셋 사람이 이미 이르러 르바임 골짜기에 편만한지라"
여기 블레셋은 사단의 상징이며, 르바임 골짜기는 '거인의 골짜기' 라는 뜻으로 정치나 종교의 큰 세력을 상징합니다. 이처럼 당시 동족들인 제사장들과 유대인들은 사단의 조종을 받아 예수님을 끝까지 괴롭혔습니다. 그러나 다윗이 적을 물을 흩음같이 이겼듯이 주님은 이러한 시험을 진리로 이기셨고, 또 다윗이 블레셋 후면의 뽕나무 수풀 맞은 편에서 엄습하였듯이 예수님께서는 혈기로서 그들을 정면 대하시지 않으시고 십자가에 높이 달리사 다 이기셨습니다.
8.예루살렘을 수도로 정하고 다스린 점입니다.
5절 "예루살렘에서 삼십 삼년 동안 온 이스라엘과 유다를 다스렸더라"
이 지상의 예루살렘은 이제 천상의 새예루살렘의 모형입니다. 다윗은 지상 예루살렘에서 다스렸지만 예수님께서는 만왕의 왕으로 천상 예루살렘에서 다스리고 계십니다. 그런데 이 예루살렘이 지리적으로 유다와 베냐민의 경계입니다. 이와 같이 예수님의 통치는 하늘과 땅의 모든 권세라는 점을 기억해야 하겠습니다.
다음에, 주관적 측면에서는 성숙한 성도들의 심령상태를 보여줍니다.
1.본문은 성령충만의 원리를 보여줍니다.
1절 "이스라엘 모든 지파가 헤브론에 이르러 다윗에게 나아와 말하여 가로되 보소서 우리는 왕의 골육이니이다"
사울이 죽자 온 이스라엘 백성들은 헤브론으로 몰려와서 다윗이 자기들의 왕이 되어야 한다고 시위를 벌였습니다. 이런 시위는 기분 좋은 시위입니다. 여기 이스라엘 열두 지파는 인격 전체를 상징합니다. 이와 같이 영적으로 성숙해지면 영육의 갈등은 사라지고 하나님이 뜻대로 살고자 하는 마음의 아우성으로 충만해집니다.
그래서 롬14:7에 "우리 중에 누구든지 자기를 위하여 사는 자가 없고 자기를 위하여 죽는 자도 없도다 우리가 살아도 주를 위하여 살고 죽어도 주를 위하여 죽나니 그러므로 사나 죽으나 우리가 주의 것이로라" 했습니다. 이처럼 주님 만을 향한 소원으로 충만하시기 바랍니다.
2.본문은 말씀충만의 원리를 보여줍니다.
7-8절 "그 날에 다윗이 이르기를 누구든지 여부스 사람을 치거든 수구로 올라가서"
여기 여부스 성은 예루살렘 성을 가리킵니다. 그런데 이 성은 난공불락의 천연의 요새였습니다. 예루살렘은 가파른 협곡과 골짜기로 둘러싸여 있고 그렇지 않는 부분은 험악한 구릉과 성벽이 있어 접근하기조차 어려웠습니다. 그런데 다윗은 유다의 특공대들을 시켜서 수구로 올라가서 치도록 했습니다. 이 수구는 기혼의 샘물을 끌어들이기 위한 수직갱도였습니다. 그 결과 다윗은 이 우물 구멍 하나를 통해서 그 막강한 예루살렘을 완전 정복하게 됩니다. 그 결과 다윗도 그 막강한 예루살렘을 얻을 수 있었습니다.
여러분도 예루살렘처럼 견고한 믿음 갖기를 원하십니까? 그 방법이 있습니다. 여기 기혼의 샘은 말씀충만을 의미합니다. 그런데 이 때의 군대는 보통 이스라엘 군대가 아니라 유다의 특공대였습니다. 이는 성경을 보통이 아니고 신령한 차원에서 깨닫는 것을 뜻합니다. 성경은 문자적으로나 영적으로나 하나님의 말씀임은 틀림이 없습니다. 그러나 보다 신령한 성도들로 키우려면 본문 속에서 신령한 말씀이 터져나오도록 해야 합니다.
히5:14에 장성한 자가 먹는 영의 양식은 다르다고 했습니다. 구약을 문자적으로만 풀면 육신의 복만 강조하기 쉽습니다. 그러나 복음의 눈으로 볼 때 거기에는 신령한 의미가 담겨 있습니다. 그래서 이제는 육신의 복도 좋지만 자꾸 신령한 말씀을 먹여 그 방향에 관심을 갖게 함과 아울러 신령한 성도들로 키워야 합니다.
그런데 다윗의 군대가 여부스의 소경과 절뚝발이를 쳤습니다. 어쩌면 다윗답지 않은 일입니다. 그러나 여기에 귀한 진리가 숨어 있습니다. 그것은 말씀으로 충만할 때 영의 눈이 열림을 보여줍니다. 또 말씀충만할 때 좌우로 비틀거리는 잘못된 삶이 정상적인 삶으로 바꾸어짐을 나타냅니다. 이것이 말씀의 결과입니다. 그러므로 말씀충만하시기를 바랍니다.
3.기도충만의 원리를 발견합니다.
9절 "다윗이 그 산성에 거하여 다윗 성이라 이름하고 밀로에서부터 안으로 성을 둘러 쌓으니라"
여기 밀로는 예루살렘의 가장 취약지인 북방 방어를 위한 성입니다. 다른 곳은 낭떠러지와 골짜기로 천연의 요새을 이루고 있지만 북쪽은 중앙산맥의 줄기이기 때문에 상대적으로 적이 침입하기 쉬운 곳입니다. 그래서 다윗은 밀로에서부터 성벽을 쌓았습니다.
성경에서 북쪽은 대개 사단을 상징했습니다. 그런데 이 북방을 견고하게 방어했다는 것은 바로 기도충만을 의미합니다. 그런데 여기 '밀로'는 '가득히 채우다, 가득히 메우다'라는 뜻입니다. 이것은 우리가 기도를 하되 무시로 성령 안에서 기도하여 우리의 삶을 기도로 가득 메워야 함을 보여줍니다. 아무리 영적인 이해가 충만해도 기도가 없으면 넘어질 수밖에 없습니다. 그러므로 기도충만하시기를 바랍니다.
<결론>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예수님은 성령과 말씀과 기도로 충만하신 분십니다. 이와 같이 우리도 성령충만 말씀충만 기도충만해야 하겠습니다. 그 때 우리는 하나님을 영화롭게 할 수 있고, 견고한 믿음을 갖게 되며, 사단의 시험을 이길 수 있습니다. 그래서 다윗처럼 온전히 승리하고 승리하는 성숙한 성도들이 다 되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