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에게 축은 '축적하다'라는 단어를 떠올리게 했다. 다시 사전을 찾아보니 저축하다라는 단어가 더 마음에 들긴 하다. 그 단어를 떠올리고 난 후 먼저 생각난 그림책은 따로 있었다. 그리고 슈퍼거북에서 나를 사로잡은 이 한 장면. 이 장면을 다시 본 순간에도 한참동안 흡족한 표정을 지으며 바라보았다
내가 제일 좋아하면서도 편안하지 않은 날도 많은 잠자는 시간. 나는 잠을 자면서 에너지를 얻고, 무료한 시간을 보내고, 억눌렸던 마음도 알게 되고, 드물지만 내가 몰랐던 욕구를 알게 되기도 한다. 그래서 나의 잠자는 시간은 눈 떠있는 시간만큼 바쁘고 고마우면서도, 꿈을 꾸지 않고 잠에서 깨어나기를 바라기도 한다.
2020년은 분주한 한 해였다. 내가 이렇게 정신없는 생활을 하게 될 줄은 꿈에도 몰랐고, 두 가지 일도 헉헉대며 하는 내가 여러 가지 일을 한꺼번에 하게 될 거라고는 더 예상하지 못했다.
여기저기 부딪치며 내 모습을 확인하는 게 자신 없어서 일을 그만둔 지 10년. 분명 나는 도망치듯 선택한 거였는데, 그래서였는지 그동안의 시간들은 나에게 혹독했고, 그 시간을 지나면서 내가 잘 해왔던 일이 그 일이였다는 것도 확인할 수 있었다. 무엇을 하며 살아야하는지 방황하며 다시 찾은 일을 해내기 위해 마음이 바빴다. 일을 하면서는 쉬고 싶다는 생각을 하고, 쉬면서는 일 생각을 하면서 충분한 에너지를 만들지 못했던 1년. 분명 실마리가 있을 거라며 기억 속을 헤매면서 찾으려고도 해보았지만, 결국 알게 되는 건 10년이라는 시간이 지나는 동안 나에게 남아있는 기억이 별로 없다는 거였고 새로 시작할 게 많다는 거였다.
그나마 간당간당 갖고 있던 자신감도 사라지지 않게 꾸역꾸역 견뎌야했던 1년의 막바지에 슈퍼거북의 자는 모습이 나에게 콱 박혔다. 그래, 나에게 필요한 건 이거였어! 아무 생각 없이, 걱정 없이 그냥 자는 것. 아주 마음에 드는군.
‘축’이라는 단어를 떠올린 날, 거북이의 편안한 모습을 보기 위해 다시 책을 펼쳤다. 역시나 거북님이 열심히 노력하시는 모습은 내 얼굴을 찡그리게 하고 그렇게 살고 싶지 않은 마음이 한 가득이었고, 마지막 장면에서 또 흐뭇한 미소를 짓고 있다.
눈이 올 수도 있다는 예보가 있어서 멀리 가는 걸 포기하고 앞산에 가기로 마음먹었다. 예보와 달리 눈은 오지 않았지만, 자고 있던 아들 깨우고 길잡이 남편과 함께 길을 나섰다. 산책로가 아니어서 나무들이 제멋대로 자라고, 지난 여름 산사태에 길의 모습도 변해서 길을 만들어가면서 걸어야했다. 게다가 산이 가파르고 초입은 얼음이 덜 녹아서 미끌미끌. 여기저기 찔리고 미끄러운 길을 지나 걸을만해지자, 흐릿한 하늘이 개기 시작했고, 차갑던 바람도 나무가 막아주어 포근해졌다. 남편이 사진 찍을 예쁜 곳이라며 이곳 저곳 안내도 해주고, 나무마다 올라타며 신나 하는 아들을 보니, 투덜거리던 삐죽 입도 쏙 들어가고 그림책 자리도 찾으면서 편안해졌다.
험한 길을 다시 내려와 나의 초록집을 마주하니 먼 여행을 다녀온 것처럼 반갑고 큰 숨도 쉬어진다. 아! 고된 길을 걸어야 거북님의 평화가 찾아오는 거였군! 나의 분주하고 정신없던 1년 덕분에 지금의 평온한 마음을 찾게 되었다는 걸, 길을 걸은 후에야 또 알게 된다. 아마 나는 또 내 머리를 부여잡고, 가슴을 치면서 후회와 고민을 듬뿍 담은 1년을 보낼 것이다. 그래도 그 시간은 지난 시간보다는 더 나아질 것이다. 나를 위해 화이팅!!
첫댓글 우와 산책 고양이도 함께 였군요~~너는 소리.. 수퍼거북의 잠처럼, 쿨쿨님의 일상 뒤의 쿨쿨을 응원해요^^
고맙습니다~ 든든한 응원받고 또 한걸음 내딛어봐요.
엄청 도도한 고양이인데, 그림책 사이에서 긴장을 놓는 모습에 한참 웃었어요. 집에서 기르는 천방지축 멍멍이처럼 가려운 곳 팍팍 긁는 모습입니당.ㅎㅎ
@쿨쿨 명장면~~
@쿨쿨 우왕 진짜 레알 대빵 귀여워요!!
@쿨쿨 우와!!! 뚜셰님 옆에 있던 고양이가 거기에도? 저희도 그날 고양이를 보았어요:)
@황금박쥐 ㅍㅎㅎ
@쿨쿨 ㅋㅋㅋㅋ그림책에서 튀어 나온 고냥이🐱같아요!!! 포즈하며~표정두ㅋㅋ
쿨쿨 님의 잠 이야기를 들으니 10년 전 만든 <go to sleep>이 떠올랐어요
시계 초침, 달빛, 물방울 소리에 뒤척이며 잠을 못 자는 아이가 물구나무 오바이트로 생각을 비운 뒤 창밖이 밝아올 무렵 잠이 들어요
힐드리드 할머니에게 오랜 전우애가 느껴진 이유였어요ㅎㅎ
고작 요 1, 2년 잠 좀 잘 잤더니 불면의 20년이 까마득하게 느껴집니다
쿨쿨 님의 아무 생각 없이, 걱정 없이 그냥 자는 것! 응원합니다
잠이 최고야! 짜릿해! 늘 새로워!
오 go to sleep~~그런 작업을 했구먼
@깐마늘 나중에야 알게 되는 삶의 신비 비밀..
우와~ 잠 못 드는 아이에게 이렇게 정감이 느껴질 수가요~ 응원 감사합니다. 힐드리드 할머니가 저 같았는데, 이유가 있었군요.ㅎㅎ 짜릿하고 새로운 잠을 위하여~~!
@쿨쿨 오, 짜릿 새로운 잠
오!! 고 투 슬립!! 더 보고 싶어요💓
우와!! 탐나요 😴 ❤
저는 한국에 살면서 유럽식으로 ‘시에스타’ 삶을 살아요. 안그러면 오후의 기력이 없어요. 예전에는 잠을 줄여서 열심히 하면 뭐든 잘할 수 있을것 같았는데 나이가 들어갈 수록 내 몸의 상태에 따라 살아가는 삶이 더 편안하고 좋아집니다. 쿨쿨님에게도 슈퍼거북처럼 쿨쿨자는 여유가 있는 하루가 되셨기를....^^
충분히 그랬죠. 이제 틈 날 때마다 쿨쿨 자고, 산책하면서 제 자신에게 여유를 줘야겠어요.
축적하다. 저축하다의 축과 잠.
푹 자는 거북이님이 엄청 부럽네요~~^^
저축하다는 단어를 황금박쥐님 글에서 보니 더 마음에 드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