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제17장
소유를 내려놓으라
― 무엇을 가지고 있는가보다 무엇이 나를 붙잡고 있는가
예수님은 재물과 소유에 대해 매우 강한 말씀을 여러 번 하셨다.
대표적인 장면이 부자 청년의 이야기다.
그는 예수님께 묻는다.
“내가 무엇을 하여야 영생을 얻으리이까?”
예수님은 계명을 말씀하신 뒤, 그에게 한 가지가 부족하다고 하시며 가진 것을 팔아 가난한 사람들에게 나누고 자신을 따르라고 말씀하신다.
청년은 근심하며 떠난다.
재산이 많았기 때문이다.
이 이야기는 단순히
“재산은 나쁘다.”
라고 말하는 이야기가 아니다.
더 깊은 질문을 던진다.
내가 무엇을 가지고 있는가?
그리고 그보다 더 중요한 질문,
무엇이 나를 가지고 있는가?
1. 소유는 왜 중요한 문제인가
인간은 살아가기 위해 어느 정도의 소유가 필요하다.
집이 필요하다.
음식이 필요하다.
옷이 필요하다.
돈도 필요하다.
가족을 돌보고 미래를 준비하기 위해 재산을 모을 수도 있다.
예수님께서 인간의 모든 소유 자체를 악이라고 말씀하셨다고 단순화할 필요는 없다.
문제는 소유와 나의 관계다.
2. 소유가 나의 정체성이 될 때
사람은 쉽게 자신을 소유와 동일시한다.
나는 얼마를 가지고 있는가.
어떤 집에 사는가.
어떤 차를 타는가.
사회적으로 어느 정도의 지위를 가졌는가.
이것들이 필요 이상으로 중요해지면 어느 순간
“내가 가진 것=나”
가 되어버린다.
그러면 가진 것을 잃는 일이 곧 자신을 잃는 일처럼 느껴진다.
3. 5대 복음서로 읽기
마태복음 ― 보물을 어디에 쌓는가
예수님은 말씀하신다.
“너희를 위하여 보물을 땅에 쌓아 두지 말라.”
그리고 이어서
“네 보물 있는 그 곳에는 네 마음도 있느니라.”
— 마태복음 6:21
핵심은 단순히 통장의 잔액이 아니다.
마음이 어디에 붙어 있는가이다.
마가복음 ― 부자 청년
마가복음 10장에서 부자 청년은 계명을 잘 지켜온 사람으로 등장한다.
예수님은 그를 보시고 사랑하셨다고 기록되어 있다.
그런 뒤 소유를 내려놓으라고 말씀하신다.
이 장면은 매우 중요하다.
예수님은 그를 미워해서 재산을 빼앗으려 한 것이 아니다.
오히려 그를 사랑하시며 무엇이 그의 자유를 막고 있는가를 드러내신다.
누가복음 ― 생명은 소유의 넉넉함에 있지 않다
예수님은 말씀하신다.
“사람의 생명이 그 소유의 넉넉한 데 있지 아니하니라.”
— 누가복음 12:15
이 말씀은 이 책의 생명에 관한 묵상과 깊이 연결된다.
소유와 생명은 같은 것이 아니다.
요한복음 ― 소유보다 나눔
요한복음은 공관복음처럼 부자 청년 이야기를 전하지 않지만, 예수님이 제자들의 발을 씻기시며 자신을 내어주는 사랑을 보여준다.
또 선한 목자가 양을 위해 생명을 내어놓는다는 이미지가 나온다.
소유하고 붙드는 삶보다 내어주는 삶이 강조된다.
도마복음 ― 세상을 얻고 자신을 잃는 문제
도마복음에는 세상의 부와 소유, 상업적 집착을 경계하는 여러 어록이 전해진다.
특히 세상을 얻더라도 자기 자신을 잃는다면 무엇을 얻은 것인가라는 복음서적 질문과 가까운 정신을 발견할 수 있다.
4. 돈은 악한가
돈 자체를 악으로 보는 것은 지나치다.
돈은 도구다.
좋은 일에도 사용할 수 있고 나쁜 일에도 사용할 수 있다.
문제는 돈이 삶의 최종 목적이 되는 것이다.
예수님은 이렇게 말씀하신다.
“너희가 하나님과 재물을 겸하여 섬기지 못하느니라.”
여기에서 재물은 단순한 돈이 아니라주인이 될 수 있는 힘으로 등장한다.
5. 돈을 가진 것과 돈에게 붙잡힌 것
돈이 많아도 돈에서 자유로운 사람이 있을 수 있다.
반대로 돈이 많지 않아도 하루 종일 돈 생각에 붙잡혀 있을 수 있다.
그러므로 문제는 액수만으로 판단할 수 없다.
내 마음이 무엇에게 지배되고 있는가?
이것이 더 중요하다.
6. 부자 청년은 왜 슬퍼했는가
그는 예수님을 따르고 싶었다.
영생에도 관심이 있었다.
계명도 지켰다.
그런데 소유를 내려놓으라는 말씀 앞에서 멈췄다.
왜일까?
재산은 단순한 물건이 아니었을 수 있다.
안전.
정체성.
사회적 지위.
미래에 대한 보장.
이 모든 것이 그 안에 들어 있었을 수 있다.
그래서 내려놓는 일이 자신 전체를 잃는 것처럼 느껴졌을 것이다.
.
7. 내려놓음은 모두 버리는 것인가
이 질문은 중요하다.
예수님의 모든 제자가 동일한 방식으로 모든 재산을 즉시 버렸다고 보기는 어렵다.
복음서에는 집을 제공하고 식사를 준비하며 재산으로 예수님의 사역을 돕는 사람들도 등장한다.
따라서 부자 청년에게 주신 명령을 모든 사람에게 기계적으로 같은 방식으로 적용하기보다 소유가 삶의 주인이 되었는가라는 질문으로 읽을 필요가 있다.
8. 가난 자체가 거룩한가
가난은 실제로 고통스럽다.
먹을 것이 없고,
치료받지 못하고,
주거가 불안정한 상태를 영적으로 낭만화해서는 안 된다.
예수님이 가난한 사람을 귀하게 여기셨다는 것이 가난 자체를 이상적인 상태로 만들라는 뜻은 아니다.
오히려 가진 사람이 나누어 가난한 사람의 삶을 살리는 것이 중요하다.
9. 소유와 나눔
예수님의 가르침에서 소유 문제는 자주 나눔과 연결된다.
부자 청년에게 단순히 버리라고 하지 않으셨다.
가난한 사람에게 나누라고 하셨다.
따라서 내려놓음은 파괴가 아니라 흐름의 회복이다.
내 손에 멈춰 있던 것이 필요한 사람에게 흘러가는 것이다.
10. 쌓아두는 삶과 흐르게 하는 삶
재물을 무조건 모으는 삶은 안정감을 줄 수 있다.
그러나 끝없이 쌓기만 하면 언제 충분해질까?
더 많이 가지면 더 많이 필요해질 수도 있다.
예수님의 말씀은 소유를 닫힌 창고로만 두지 않고 다른 생명에게 흘려보내는 통로로 만들라고 초대한다.
11. 어리석은 부자의 비유
누가복음에는 풍년을 맞은 부자가 등장한다.
그는 더 큰 창고를 짓고 많은 곡식을 쌓아두려 한다.
그리고 자기 영혼에게 오랫동안 쓸 것이 있으니 편히 먹고 즐기자고 말한다.
그러나 예수님의 비유는 묻는다.
그날 밤 생명을 잃는다면 그 쌓아둔 것이 누구의 것이 되겠는가?
12. 소유와 죽음
죽음 앞에서는 소유의 한계가 분명해진다.
아무리 많은 것을 가지고 있어도 몸과 함께 가져갈 수 없다.
이것은 돈이 필요 없다는 뜻이 아니다.
다만 돈이 영원한 안전을 줄 수 없다는 뜻이다.
생명보다 재물을 앞세우면 우선순위가 뒤집힐 수 있다.
13.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입을까”
예수님은 염려에 대해서도 말씀하셨다.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입을까.
이런 걱정에 삶 전체가 붙잡히지 말라고 하신다.
그러나 실제로 가난한 사람의 먹고 입는 문제는 중요하다.
따라서 이 말씀을 가난한 사람에게
“걱정하지 마.”
라고 쉽게 말하는 방식으로 사용해서는 안 된다.
오히려 가진 사람은 다른 사람의 필요를 함께 책임지는 방향으로 읽어야 한다.
14. 소유의 두려움
사람이 소유를 붙잡는 이유 중 하나는 두려움이다.
혹시 부족해지면 어떡하지?
혹시 아프면?
혹시 노후가 어려우면?
이런 걱정은 현실적이다.
그래서 내려놓음은 무책임과 같지 않다.
중요한 것은 준비와 집착을 구별하는 것이다.
15. 준비와 집착
미래를 준비하는 것은 지혜로울 수 있다.
그러나 준비가 끝없는 불안과 축적의 욕망으로 변할 수 있다.
“충분하다”
는 지점을 모르면 소유는 끝없이 나를 끌고 간다.
내가 돈을 사용하는가?
돈이 나를 움직이는가?
계속 물어야 한다.
16. 저자의 묵상 ― 소유는 몸의 세계의 언어다
물질의 세계에서는 소유가 필요하다.
내 집.
내 물건.
내 돈.
이 구분 없이 사회생활을 하기는 어렵다.
그러나 생명의 관점에서는 질문이 달라진다.
내가 지금 가진 것 가운데 정말 영원히 ‘내 것’이라고 부를 수 있는 것이 얼마나 되는가?
몸조차 계속 변한다.
17. 몸도 소유인가
우리는
“내 몸”
이라고 말한다.
그렇다면 ‘내’와 ‘몸’은 무엇인가?
몸이 완전히 나라면 왜 우리는 “내 몸”이라고 말하는가?
이것은 언어적 표현일 뿐일 수도 있지만, 깊은 존재론적 질문을 던진다.
나는 몸을 소유물이라기보다 생명이 이 세상을 경험하는 자리라고 묵상해 왔다.
18. 나라는 정체성도 내려놓을 수 있는가
우리는 돈만 소유하지 않는다.
생각도 소유한다.
신념도 소유한다.
“내 생각.”
“내 교리.”
“내 신앙.”
이것들을 너무 강하게 붙잡으면 진리를 새롭게 볼 수 없을 수도 있다.
때로는 물건보다 생각을 내려놓는 것이 더 어렵다.
19. 종교적 소유
종교에서도 소유욕이 나타날 수 있다.
우리만 진리를 가지고 있다.
우리만 하나님을 안다.
우리만 구원받는다.
이런 생각은 진리를 생명으로 살아내는 대신 소유하려는 태도가 될 수 있다.
진리는 소유물이 아니라 살아야 할 길이라는 관점이 필요하다.
20. 소유와 권력
재산은 권력과 연결된다.
많이 가진 사람은 더 많은 선택권과 영향력을 가질 수 있다.
그래서 소유의 문제는 개인적 영성만이 아니라 사회적 책임과도 연결된다.
예수님이 가난한 사람과 약한 사람을 반복해서 바라보게 하신 이유를 생각해야 한다.
21. 가진 사람의 책임
많이 가진 것이 죄라고 단정할 수는 없다.
그러나 많이 가졌다면 더 많이 나눌 수 있다.
지식이 많으면 나눌 수 있다.
시간이 많으면 나눌 수 있다.
재산이 많으면 나눌 수 있다.
권력이 있으면 약한 사람을 보호하는 데 사용할 수 있다.
소유는 책임을 낳는다.
22. 삭개오의 변화
삭개오는 예수님을 만난 뒤 자신의 재산을 새롭게 바라본다.
가난한 사람에게 나누고, 부당하게 빼앗은 것이 있으면 갚겠다고 한다.
그의 변화는 단순히 마음속의 감동에서 끝나지 않는다.
재물을 사용하는 방식이 달라진다.
이것이 회개의 열매다.
23. 가진 것을 나누면 가난해지는가
나눔에는 실제 비용이 있다.
그러나 나눔을 통해 얻는 것도 있다.
관계.
신뢰.
공동체.
기쁨.
물론 나눔을 낭만화해서도 안 된다.
자신과 가족의 기본적인 필요까지 무책임하게 포기해야 한다는 뜻이 아니다.
지혜로운 나눔이 필요하다.
24. 예수님의 무소유를 어떻게 볼 것인가
예수님은 자신의 머리 둘 곳도 없다는 강한 말씀을 하셨다.
그분의 공생애는 매우 자유로운 이동의 삶이었다.
그러나 이것을 모든 사람에게 동일한 생활 방식으로 강제할 필요는 없다.
예수님의 삶에서 우리가 먼저 볼 것은 소유가 그분의 길을 지배하지 못했다는 자유다.
25. 자유로운 사람
소유가 있어도 자유로울 수 있다.
없어도 소유에 집착할 수 있다.
진정한 내려놓음은 물건의 숫자만으로 판단하기 어렵다.
필요하면 사용할 수 있고,
필요하면 나눌 수 있고,
잃어버렸을 때 존재 전체가 무너지지 않는 것.
나는 그것을 소유에 대한 자유라고 묵상한다.
26. 『그리스도의 강론』과의 대화
『그리스도의 강론』에서는 인간이 물질적 자아와 세속적 욕망에 자신을 완전히 동일시하는 상태에서 벗어나는 것을 중요하게 본다.
이 관점에서는 소유를 내려놓는다는 것이 물건을 모두 없애는 것보다 소유를 통해 자신의 존재를 확인하려는 집착에서 자유로워지는 것으로 읽힌다.
이것은 예수님의 부자 청년 이야기와 흥미롭게 대화한다.
27. 참자아는 무엇을 소유하는가
이 책에서 우리는 참자아를 몸과 사회적 역할보다 깊은 생명의 중심이라는 관점에서 묵상한다.
그렇다면 참자아는 돈의 액수로 커지거나 작아지는가?
그렇지 않다고 나는 생각한다.
소유는 삶의 조건을 바꿀 수 있지만 생명의 근원적 존엄을 증가시키거나 감소시키지는 않는다.
28. 내려놓음과 죽음
죽음은 결국 인간에게 가장 큰 내려놓음을 요구한다.
몸도,
재산도,
직함도,
소유도 내려놓게 된다.
그렇다면 살아 있는 동안 조금씩 내려놓는 연습을 하는 것은 죽음을 준비하는 삶과도 연결될 수 있다.
29. 오늘 무엇을 내려놓을 것인가
돈만 생각하지 말자.
분노를 내려놓을 수 있다.
자존심을 내려놓을 수 있다.
오래된 원망을 내려놓을 수 있다.
내가 반드시 옳아야 한다는 집착을 내려놓을 수도 있다.
때로는 이런 것들이 재산보다 더 강하게 우리를 붙잡는다.
30. 내려놓으면 무엇이 남는가
많은 것을 내려놓으면 허무만 남는가?
나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
소유를 내려놓을수록 관계가 보일 수 있다.
직함을 내려놓을수록 사람이 보인다.
자존심을 내려놓을수록 사랑이 보인다.
몸과 역할 너머에서 생명을 바라볼 공간이 생긴다.
31. 내려놓음은 포기가 아니다
내려놓는다는 것은 삶을 포기한다는 뜻이 아니다.
오히려 더 중요한 것을 선택하기 위해 덜 중요한 것의 지배에서 벗어나는 것이다.
부자 청년에게 예수님이 마지막에 하신 말씀은
“버리고 끝내라.”
가 아니었다.
“그리고 와서 나를 따르라.”
내려놓음 뒤에는 길이 있다.
32. 소유보다 생명
누가복음의 말씀으로 다시 돌아가자.
“사람의 생명이 그 소유의 넉넉한 데 있지 아니하니라.”
이 한 문장이 이 장 전체를 요약한다.
돈이 없어도 괜찮다는 무책임한 말이 아니다.
소유가 인간의 생명과 가치를 결정하는 최종 기준이 아니라는 뜻이다.
33. 저자의 묵상 ― 가지고 있으되 붙잡히지 말라
나는 이 장을 한 문장으로 이렇게 묵상하고 싶다.
“가지고 있으되 그것에 붙잡히지 말라.”
필요한 것은 사용한다.
감사히 누린다.
그러나 그것이 나의 전부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나눠야 할 때 나눈다.
그리고 가장 중요한 생명과 사랑을 소유 때문에 잃지 않는다.
삶으로 가져오기
오늘 자신의 소유 가운데 하나를 골라보자.
돈일 수도 있고,
물건일 수도 있고,
지위나 생각일 수도 있다.
그리고 물어보자.
“내가 이것을 가지고 있는가, 이것이 나를 가지고 있는가?”
또 하나 작은 나눔을 실천해 보자.
돈이 아니어도 좋다.
시간.
관심.
경험.
식사 한 끼.
따뜻한 말.
소유가 흐르기 시작할 때 관계도 달라질 수 있다.
오늘의 묵상
나는 무엇을 잃을까 가장 두려워하는가?
그것을 잃으면 나는 정말 내가 아닌 사람이 되는가?
내가 가진 것 가운데 다른 생명을 살리는 데 흘려보낼 수 있는 것은 무엇인가?
부자 청년에게 하신 예수님의 초대를 마음에 두어보자.
그리고 자신에게 묻자.
“예수님의 길을 더 자유롭게 걷기 위해 내가 내려놓아야 할 것은 무엇인가?”
제17장 한 줄 묵상
“소유를 내려놓는다는 것은 모든 것을 무조건 버리는 일이 아니라, 돈과 물건과 지위와 생각이 나의 주인이 되지 못하게 하고 생명과 사랑을 위해 자유롭게 사용하고 나눌 수 있는 사람이 되는 것이다.”
예수님 말씀으로 성경 이해하기 운동본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