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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배는 제사에서 시작되었다.
제사는헌신 적인 드림이라고 한다면 예배는 경배라 할수있다.
현대 교회의 예배를 진정한 예배라 할 수 있을까요 ?
목회자의 설교에 귀기울이다 스스로 만족하고 돌아서는 예배를 진정한 예배라 할 수 는 있을 것 인가요?.
성서에서 예배를 엎드려 절하다. שָׁחָה / shachah . 무릅을 꿇고 엎드리다. προσκυνέω / proskuneó
자신을 낮추어 절하다. 경배를 드리다 등으로 표현하고 있다.
구약에서 언급하고 있는 제사가 성전이 사라지게 되면서 성전에서 행해지던 예배가 불가능해지자 회당의 예배로 변모하여 현재의 모습으로 변해 왔습니다. 제물로 드리는 제사의 형식이나 동물의 피로 드리던 제사는 사라져 버리게 되었습니다. 구약의 재물을 대산해 예수그리스도께서 십가에 희생을 통해 지금의 예배로 변하게 되었습니다. 구약의 예배의 모습은 예수그리스도를 희생을 통해 성령의 은혜로 지금의 예배에 이르게 된 것 입니다.
지금 교회에서 드리고 있는 예배의 모습에서 구약의 제사가 가지고 있는 원래의 의미를 알아야 합니다. 구약에서 드리는 제사와 지금의 예배가 다른 것은 구약의 제사는 희생 제물이 예배자의 죄를 대신함으로 회개와 용서의 자리가 되었으며 제사는 죄사함과 용서에 촛점이 있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통해 우리의 죄를 용서 받을 수 있는 기회를 얻는 행위. 그 유일한 행위가 바로 예배자의 죄를 대신하여 희생 제물이 되는 것이다. 예배자의 죄를 대신하여 희생제물이 죄값을 대신 치루어 하나님으로 부터 얻게되는 용서함의 자리가 바로 제사이다.
화목제의 제물로 이땅에 오신 순결한 어린양이신 예수그리리스도께서 구액의 제사장의 손에 들려 목숨대신 내어놓는 붉은 피를 흔건하게 제단을 적시고 불에 태워져 연기가 그 흔적이 되어 하나님께 올려져야 그 희생의 제사가 완성되었던 구약의 제서가 그런 일상적인 제사가 행해지던 그런 모습이던 구약의 성전에서 희생 제물이 인간의 죄를 대신해 피를 흘리며 제단에 드려지는 것이 당연시 되고 있던 그런 시절에 오늘날과 같은 제사의 모습을 한 예배의 모습으로 변할 수 있다는 것을 누구도 상상조차 하지 못하던 그 시절에 예수님께서는 이렇게 말씀하고 계십니다.
요한복음 4:23.
아버지께 참되게 예배하는 자들은 영과 진리로 예배할 때가 오나니 곧 이 때라 아버지께서는 자기에게 이렇게 예배하는 자들을 찾으시느니라. 하나님은 영이시니 예배하는 자가 영과 진리로 예배할지니라
화목제물로 죄를 대신하는 제물의 희생을 통해 드리던 구약시대의 그 제사가 행해지던 그때에 예수님은 오늘날의 예배의 모습을 보고 계셨던 예수님께서 영으로 예배하는 모습을 본문에서 말씀하고 계셨던 것입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 본문에서 말씀하신 그 예배가 오늘날 교회에서 행해지고 있는 이런 예배라고 단언 할 수 있을까요? 하나님의 백성들을 위해 희생 제물이 되시기 위해 그 길을 걸으시며 십자가를 지시기까지 하셨던 예수 그리스도의 희생하신 그 희생으로 인하여 오늘날 우리가 이런 희생 제물을 드리지 않아도 가능하게 된 제사가 오늘날 우리가 드리고 있는 예배의 모습으로 희생제사가 가능하게 된 것이다.
예배는 하나님과 마주해 드리는 제사가 되어야 하지만 오늘날 예배는 목회자의 설교에 마음을 빼았겨 세상을 탐하는 집단적인 행사로 변질되며 하나님을 위한 제사가 아닌 인간 자신의 탐욕과 욕망을 추구하는 외곡된 지금의 교회 모습이 되어 버린 건 아닐까 합니다. 정말 순수하게, 순결하게, 간절하게, 하나님과의 단절에서 화목되는 예배로 드려져야 할 예배는 어느새 인간 중심으로 치장을 하고, 살을 붙이고, 인간을 만족시키 위한 달콤한 설교로 유혹하는 모습으로 변질되어 가고 있는 예배가 오늘날 교회에서 행해지고 있는 지금의 예배 모습이 아닐까요?.
오늘의 교회에서 행해지는 예배의 모습을 보면서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어떻게 이끌어 가실까요?
고난과 아픔 괴로움. 고통속에서 우리의 삶은 그분의 메세지를 담어주고 계시다는 생각을 해 본적은 없는 건가요?
오늘날의 예배를 하나님은 왜 그냥 이대로 두시는 걸까요? 바꾸어나아 가시는 것은 아닐까요?
지금 우리가 행하고 있는 예배는 하나님의 백성으로 어떤 모습으로 드려지는 예배의 모습이 담겨 있어야 하는 것 일까요?
정말 예배는 이렇게 많은 이들이 모이고 형식을 갖추어서 집단적으로 행해져야만 예배다운 것일 까요?
그래야만 이 예배를 하나님께서 인정해 주신다고 생각하시는 것 인가요?
왜 오늘날 교회에서는 자꾸 이렇게 많이 모여야 한다고 하는 것 일까요?
예배의 의미를 담아 건네주신 예수님이 하신 말씀 중에 우리가 주목을 해야 할 분문의 말씀을 좀더 깊이 묵상해 봅니다. 마태복음 18:20. 두세 사람이 내 이름으로 모인 곳에는 나도 그들 중에 있느니라
예배의 중심에 목회자의 설교가 꼭 있어야 예배가 성립 되는 것 일까요? 그냥 성서의 말씀을 함께 상고하는것이 말씀을 더 외곡시키지 않고 받아들일 수 있는 건 아닐까요? 베드로전서 2:9. 그러나 너희는 택하신 족속이요 왕 같은 제사장들이요 거룩한 나라요 그의 소유가 된 백성이니 이는 너희를 어두운 데서 불러 내어 그의 기이한 빛에 들어가게 하신 이의 아름다운 덕을 선포하게 하려 하심이라
그리스도인이면 누구나 중보자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예배를 직접 들릴 수 있습니다. 이제 제사장이 없어도 누구나 영으로 하나님께 예배를 드릴수 있는 예배자가 될 수 있는데 오히려 교회가 그 권리를 빼앗고 있는 것은 아닐까요? 기독교의 역사를 보게되면 아이러니하게도 제사나 예배 공간의 규모가 커지면 신앙적인 타락도 비례해서 심화되어 왔음을 볼 수 있습니다.
코로나19가 창궐하고 있는 지금 그리스도인으로 우리 스스로의 신앙을 다시한번 바라봐야 하지 않을까요? 지금 우리 교회의 대형화와 정치화되어 가고 경제의 논리에 흔들리는 타락과 변질의 극치를 걷고 있는 오늘의 교회와 교회인 우리 자신을 돌아봐야 하지 않을까요?
예배는 분명히 하나님께 드리는 예배자의 드림이지만 오늘날은 예배자가 예배를 통해 무엇인가를 자꾸 얻으려 하고 있다는 것을 부인하지는 않으시겠지요? 교회가 대부분 목회자 개인의 영향력에 의해 목회자의 취향에 따라 다듬어져 변화하는 과정을 거치고 있다는 것입니다. 이러한 교회 예배에 기본적인 개념은 조금씩 종교적이되거나 세상적인 의식으로 기울어져 왜곡되어 가고 있다는 것입니다.
현재 예배가 가지고 있는 "하나님께 드리는 제사"의 본질은 자라져 가고 있으며 지금은 예배가 너무도 다르다게 변질되어 가고 있다는 것입니다. 지금의 예배 형태는 예배자를 중심으로 예배자를 만족시키는데 촛점을 맞추어져 있다고 해야 할 것 이다. 현대 교회는 예배의 대상과 주체가 종교적인 틀 안에 묶여가고 있다가 보니 그 예배의 형식과 틀이 목회자를 중심으로 예배자를 충족시키는 것에 맞추어 다듬어져 가고 있다.
예배가 목회자나 예배자를 위한 모습으로 변질되어 온 것을 보면서 지금의 현실이 이해가 될 것도 같습니다. 지금의 예배는 누구를 위해 존재 하고 있는 걸까요? 언젠가 부터 오늘날 교회의 예배는 교회라는 조직을 운영하는 수단이며 목적으로 예배자를 모으기 위한 도구로 전락해 가는 듯 합니다. 이러한 현대 교회의 예배는 하나님을 내세우고 있지만 실제로 예배속으로 들어가 보면 목회자를 위해 구성된 예배로 예배자를 위한 구성으로 꾸며져 하나님은 예배자의 탐욕과 꿈 그리고 비전을 채워주시기 위해 존재하시는 분으로 묘사되기 있는 설교가 난무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오늘날 인간의 뜻을 이루어주시는 분으로 외곡 포장을 하여 예배자를 모으려는데 혈안이 되고 있는 오늘의 교회 모습이 아니라고 부인할 수 있는 목회자가 이 시대에 존재는 하고 있을까요? 우리는 지금 예배의 자리에서 예배드리는 목적이 하나님 인가요? 이 세상의 권력과 재물인가요? 오늘날 교회에서 행해지고 있는 그 예배가 정말 하나님을 향해 드려지는 예배라고 할 수 있을까요?
설교라는 권력을 휘두르며 목회자 자신이 교회를 운영하는데 필요한 목회의 계획과 생각의 틀에 맞추어 성서의 말씀과 학문적 지식과 뉴스를 가지와 잘 섞거나 빌려서 자신의 생각과 의도대로 설교라는 의미를 담아 예배자에게 내어놓고 있다는게 현실일 것 입니다.
이런 설교를 하나님의 말씀을 전달하는 것이라고 정의해야 하는 건가요? 그저 다만 목회라는 다른 시각에서 목회자 개인의 신앙적인 생각으로 각색을 한 새로운 번역 또는 왜곡를 설교라고 해야 하는 것 일까요? 그렇기에 목회자는 예배를 통해 모여 있는 교인들을 어떻게 해서 충족을 시켜줄까에 관심이 기울어 질수 밖에 없을 것입니다.
어떻게 하면 교인들을 흡족하게 할까?
어떻게 하면 교인들에게 관심을 갖게 할까?
어떻게 하면 설교가 재미 있다고 할까?
어떻게 하면 설교를 좋왔다고 평가를 받을까?
어떻게 하면 설교가 훌륭했다는 평가를 받을까?
어떻게 하면 예배자로부터 “은혜를 받았다“는 말을 들을 수 있을까? 하는 세상적인 시각으로 많은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는 것 입니다.
목회자는 세상의 이야기 거리를 들고 하나님의 것 처럼 하는데 부끄러워 하지 않고 왜곡하고 있다는 것 조차 인식하지 못해 마치 하나님처럼 여기는데 까지 이르게 된 것입니다. 대형교회가 되면 목회자의 지위가 달라지고 경제적으로 부유함을 누리게 되고 교회의 규모가 커지면서 목회자의 영향력도 커지면 교회가 더욱 대형화 되고 성장을 하면서 가장 큰 혜택을 받는 수혜 대상자가 목회자이다. 하나님의 은혜와 섭리는 잊고 자신의 공로를 내세우며 경제적인 댓가 까지도 공로분으로 요구하고 있는 것에 동료들 조차 말을 아끼고 있다. 이런 현실이 예배에 스며들어 가면서 실제 삶의 예배보다 교회의 집단적인 예배를 더욱 중요시 여기게 되고 그래서 신앙의 중심은 예배요. 설교가 되다 보니 그리스도인으로의 삶보다 교회 활동에 더 강조점을 두게 되는 것이다. 그러면 우리가 드려야 할 진정한 예배는 어떤 모습 일까요?
예배의 기원
예배의 시작을 성서적으로 찾아 들어가 보면 창세기에서 부터 초기 예배자의 모습이 잘 그려지고 있습니다. 하나님이 떠오르면 어느 곳에서든 자신을 낮추고 하나님과 만남의 진솔함의 시간이 바로 예배였습니다. 그 예배는 제사라는 모습으로 하나님께서 직접 가르쳐 주셨으며 하나님 앞에 죄를 용서 받을 수 있는 자리였고 모세를 통해 십계명과 아론의 지팡이가 모셔진 법궤가 머무는 성막에서 드려지는 언약의 제사가 시작 되었다. 성막의 제사가 솔로몬의성전이 건축되면서 성전 으로 들어오게 되었고 하나님께서 직접 형식과 틀이 만들어주신 제사와 성전을 관리 운영하는 일을 레위지파에게 맡겨 졌다. 인구의 증가로 제사가 많아지자 제사와 함께 드려졌던 재물도 쌓여 갔다. 그와 비례하여 성전에서 일을 하던 이들의 부패와 탐욕도 커지기 시작했다.
성전 제사가 드려지던 그 시절에 탐익을 채우기 위해 하나님과 이방신을 함께 섬김이 시작되므로 나라를 잃고 나그네 된 유대인들은 제사장을 통해 드려야 하는 제사가 불가능해 졌습니다. 나라를 잃고 이방을 떠도는 그들은 새로운 형식의 제사를 예배의 모습으로 탄생케 하였는데 바로 회당 예배였습니다. 지금의 예배의 모습과 유사한 회당 예배는 선지자들의 글을 읽으며 찬양을 하고 나눔을 하고 식사를 같이하는 시간으로 바뀌었다. 이런 예배의 형식은 오늘날 교회의 예배 형식과 매우 유사합니다. 그러나 조금 다르다고 한다면 회당 예배는 안식일 토요일이 모임이며, 정원이 10명 (가장의 수)이상이 모여야 한다는 것이다.
성전에서 모이기를 힘쓰라
사도행전 2:46~47.
날마다 마음을 같이하여 성전에 모이기를 힘쓰고 집에서 떡을 떼며 기쁨과 순전한 마음으로 음식을 먹고 47. 하나님을 찬미하며 또 온 백성에게 칭송을 받으니 주께서 구원 받는 사람을 날마다 더하게 하시니라.
사도행전이 기록되어진 그 시기는 기독교인들이 박해를 받고 있던 시기로 신앙적인 구심점이 없던 때로 당시 성전에서는 유대적인 제사가 드려지고 있었다. 그리고 예루살렘의 성전 희생 제사가 드려지던 곳으로 지금의 교회와 같은 하나의 건물이 아니라 마을 형태의 커다란 공간이였다. 사도행전은 복음의 시작점인 성전에서 예수님의 흔적이 가득한 그곳에서 모여 서로 위로와 용기를 북돋아 주는 장소 였습니다.
성전에서 모이기를 힘쓰라는 말씀은 그 의미가 예배는 꼭 교회에 모여서 해야 한다는 말씀이 아닙니다. 신약의 경전이 전혀 쓰여지지 않은 시기였기에 예수님과 함께 공생애를 함께 지냈던 제자들로 부터 전해 듣는 예수님의 복음이 날마다 전해지고 있었던 것이다. 말씀을 나누며 공유되던 이 성전은 복음을 처음 접하게 된 그리스도인으로서 함께 공유할 수 있는 공간이라고 해야 할 것 입니다. 그러나 지금은 성서가 온라인과 오프라인으로 넘쳐나고 이시기에 말씀을 넘쳐남은 물론 왜곡도 매우 심해져 여기저기서 왜곡된 복음도 난립을 하고 있는 때이기도 할 것입니다. 예수님의 십자가의 사건에서 지성소의 성막이 찌어져 둘로 나누어짐은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허락하신 제사장이 없어도 드릴 수 있는 구약 초기의 원시 예배로의 회기와 회복을 허락하시는 의미이기도 할 것입니다.
그렇기에 예배는 장소와 공간에 제한을 받지 않을 뿐아니라 하나님과 자신만의 만남으로 말씀과 찬야을 통해 하나님을 경배의 의식으로 교회가 아닌 어느 곳에서 든지 드릴수 있는 것입니다. 요즘 일부 교회와 목회자들은 자신의 출석교회에 와서 주일예배에 참석을 해야 하다고 주장하며 교회안에서의 예배만이 옳바른 예배로 주장하고 있는데 이는 교회의 운영을 위함이라는 다른 의도가 담겨 있음을 알수가 있을 것입니다. 실제로 여기저기 교회를 벗어나 드려지는 예배가 더 많은게 현실인데 그런 예배를 어떻게 설명할 있을까요?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예배라는 의미
요한복음 4:20~24
우리 조상은 이 산 위에서 예배를 드렸는데, 선생님네 사람들은 예배드려야 할 곳이 예루살렘에 있다고 합니다" 하였다. 예수께서 말씀하셨다. "여자여, 나의 말을 믿어라. 너희가 이 산 위에서도 아니고 예루살렘에서도 아닌 데서 너희가 아버지께 예배를 드릴 때가 올 것이다. 너희는 너희가 알지 못하는 것을 예배하고, 우리는 우리가 아는 분을 예배한다. 구원은 유대 사람에게서 나기 때문이다. 참되게 예배를 드리는 사람들이, 영과 진리로 아버지께 예배를 드릴 때가 온다. 지금이 바로 그 때다. 아버지께서는 이렇게 예배를 드리는 사람들을 찾으신다.
본문 말씀에서 예수님께서는 예배에 대한 새로운 정의를 우리에게 가르쳐주시며 이렇게 말씀을 하고 계시는 것은 예배의 핵심은 장소나 형식이 아니라 예배를 드리는 "예배자의 내면 자세"라고 해야 할 것입니다. 이런 측면에서 예배는 공간과 시간을 초월해서 예배는 삶에서 영으로 드려져야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영이십니다. 그러므로 하나님께 예배를 드리는 사람은 영과 진리로 예배를 드려야 합니다."
현대의 교회는 그리스도의 신앙을 점점더 형식과 틀속으로 집어 넣어 교인들을 통제하려고 합니다. 그래서 교회는 말씀의 왜곡도 신앙적인 왜곡도 부끄러워 하지 않을 뿐아니라 목회라는 틀어 넣어 세장적인 기준으로의 판단도 서슴치 않고 행하고 있다.
오늘날 교회가 출석 교회를 중심으로 모임을 강조하고 있는데는 교회의 운영과 성장이라는 세상적인 기준을 갖고 있는 목회자들의 욕망과 탐욕이 밑바닦에 깔려있기 때문이라는 것에 이의를 제기 할 목회자 분이 있을까? 요즘처럼 코로나19가 창궐하는 이때 온 교인들을 모아 예배를 드려야만 진정한 예배가 드려지게 된다고 주장하는 것이 타당한 것 일까? 그렇게 예배의 중요함을 강조하는데 요즘 교회와 목회자들은 부패와 부정의 눈길에서 벗어나질 못하고 있는 것 일까? 중세나 근세에도 전염병이 창궐하던 때 기도를 하면 하나님께서 병에 걸리지 않게 해주시거나 고쳐주신다고 하여 교회에 모여 예배를 드리다가 마을 전체의 주민들이 전염병으로 죽음 당하게 된 선례는 많이 알려진 이야기다. 하나님은 그분의 언약의 복음을 위해 아주아주 특별한 경우 이적을 보여주시기는 하지만 믿음으로 전염병에서 자유할 수있다는 생각은 전염병에 대한 무지에서라기 보다 그릇된 신앙적인 믿음으로 인해 발생하는 어쳐구니 없는 것이다.
요한복음 4:23. 아버지께 참되게 예배하는 자들은 영과 진리로 예배할 때가 오나니 곧 이 때라 아버지께서는 자기에게 이렇게 예배하는 자들을 찾으시느니라. 하나님은 영이시니 예배하는 자가 영과 진리로 예배할지니라
하나님은 영이십니다. 그러므로 하나님께 예배를 드리는 사람은 어느 곳에서든 삶의 장소에서 영과 진리로 진실함의 예배를 드려야 하는 것이다.
마태복음 27:50~51. 예수께서 다시 크게 소리 지르시고 영혼이 떠나시다. 이에 성소 휘장이 위로부터 아래까지 찢어져 둘이 되고 땅이 진동하며 바위가 터지고
히브리서 10:19~20.
그러므로 형제들아 우리가 예수의 피를 힘입어 성소에 들어갈 담력을 얻었나니 그 길은 우리를 위하여 휘장 가운데로 열어 놓으신 새롭고 산 길이요 휘장은 곧 저의 육체니라
이제는 형식에 묶여있는 예배당의 예배에서 삶의 현장에서 드려지는 그 진솔한 예배가 지금 다시 시작되어야 할 때일 것입니다
예배는 예수그리스도를 통해 하나님과 우리가 화목케 되는 자리다.
고린도후서 5:18~21. 모든 것이 하나님께로 났나니 저가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우리를 자기와 화목하게 하시고 또 우리에게 화목하게 하는 직책을 주셨으니 이는 하나님께서 그리스도 안에 계시사 세상을 자기와 화목하게 하시며 저희의 죄를 저희에게 돌리지 아니하시고 화목하게 하는 말씀을 우리에게 부탁하셨느니라 이러므로 우리가 그리스도를 대신하여 사신이 되어 하나님이 우리로 너희를 권면하시는 것 같이 그리스도를 대신하여 간구하노니 너희는 하나님과 화목하라 하나님이 죄를 알지도 못하신 자로 우리를 대신하여 죄를 삼으신 것은 우리로 하여금 저의 안에서 하나님의 의가 되게 하려 하심이니라
제사를 드림수있느 장소도 제사장도 사라졌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에수그리스도를 통해 예배를 가르쳐 주셨으며 성령의 은혜로 예배를 드릴수 있게 하셨습니다 .
이런 예배는 예수그리스도의 십자가를 통해 죄의 용서를 구하는 자리이며
그 십자가의 은혜를 통해 용서를 받는 자리라 할수 있다.
우리는 어린양으로 오셔서 십자가를 통해 화목죄의 희생 제물이 되신
예수그리스도의 죽으심을 통해 하나님께 예배를 드릴 수 있는 은혜를 얻은
하나님께 선택받은 하나님의 백성으로 새로운 삶을 살아야 합니다.
그리고 이 예배는 장소의 제한을 넘어선
삶속에서 언제든 영이신 하나님께 드려지는 경배로
예배가 숨을 쉬듯 우리의 삶의 현장에서 숨을 쉬며 살아가 듯 드려질때
바로 영으로 드리는 진정한 예배가 된다는 것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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