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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년 시월, 전남 남부의 누정을 둘러본 데 이어, 이번에는 그 북부의 누정, 특히 담양 일대의 누정을 둘러보고자 계획을 세웠더랬습니다. 그야말로 호남가단이 쌓아올린 금자탑, 면앙정가, 성산별곡, 사미인곡, 속미인곡, 교과서에서나 보던 그런 시가들이 수없이 창작되고 낭송되던 그 누정을 한번 다같이 둘러보고 싶었는데, 마침 그 순서가 왔습니다 !!! ^^
1박2일에 우겨넣긴 다소 벅찬 일정이긴 했지만, 그렇다고, 일정을 쪼개서 2회에 나눠서 둘러보기엔, 다 둘러보고 싶은 맘이 급하고@@ 수없이 타협하면서 맞춘 답사일정을 공지하고, 자료집 만들고, 그렇게 토요일 아침이 밝았습니다.. 그런데, 이번에는 타지에서 대전에 모이시는 모든 분들이 역으로 들렀다가 터미날로 오시는 계획을 얘기하셔서, 급히 대전역 집결 및 출발로 수정했습니다... 고속/시외버스 노선이 없어진 노선도 많고, 역시 대전이 교통의 요지라, 철도 이동이 편한 점도 있었을 듯해요^^
그렇게 대전역 동광장에 모인 우리는 짧게 출석체크하고는 무턱대고 대전을 출발, 우리는 담양으로 향하는 중간에 전주와 태인을 들릅니다... @@
첫 답사지로 전주 한벽당을 들르는 것은, 담양까지 가는 먼 길에 중간에 비중있는 답사지에 들르면서 가급적 부담이 적은 일정이 되었으면 했던 점이 컸습니다. 물론 답사 컨셉에도 잘 맞기도 했고, 여튼, 우리는 예정보다 빨리 대전을 출발하여, 한벽당에도 예정보다 좀 더 이른 시간에 도착했습니다. 가장 먼 곳, 서울에서 출발하는 유키짱님 가족과 한벽당에서 만나뵙기엔, 시간이 맞지 않아, 아쉽지만 태인에서 이른 점심을 같이 하면서 답사를 시작하기로 하고, 일단 한벽당 마루에 모인 우리는 절벽에 아슬아슬 발 딛고 서있는 건물과, 탁 트인 전망을 둘러봤습니다. 안목은 다들 비슷했음인지, 600여년간 한벽당은, 그 독특한 위치와 빼어난 경관으로 오랫동안 많은 시인묵객들이 이 곳을 들러 시를 읊었습니다.
무주 한풍루, 남원 광한루, 전주 한벽당, 이 세곳은 '寒'을 표방한 절경과 함께하는 경승지를 꼽은 것일텐데, 그 중에서도 이 곳, 전주 한벽당, 이 날의 모습이, 으스스한 흐린 날씨와 서늘한 기온, 비마저 뚝뚝 내리는 것까지, 그리고 절벽과 함께하는 입지를 보더라도, 가장 이름에 걸맞는 곳이지 않나 싶네요^^
중국 복건성 무이산 아홉구비에 승진동(升眞洞), 옥녀봉(玉女峯), 선기암(仙機巖), 금계암(金鷄巖), 철적정(鐵笛亭), 선장봉(仙掌峯), 석당사(石唐寺), 고루암(鼓樓巖), 신촌시(新村市), 이렇게 절경이 이어진다고 하는데, 주희 선생은 여기에다 무이정사를 짓고 은거하면서, 1183년에 무이정사잡영, 무이구곡가를 지었고, 400년 터울의 이황선생은 도산십이곡을, 이이 선생은 고산구곡가를 지었습니다. 나중에, 면암 최익현 선생의 한벽당중수기에서 밝힌 '한벽'의 근원을, 무이정사잡영 속 싯구절에서 찾았네요..
釣磯
낚시터
削成蒼石稜 。倒影寒潭碧 。永日靜垂竿 。兹心竟誰識 。
깎아 세운 듯 푸른 모서리, 차디찬 연못에 비쳐 푸르르구나.
조용히 종일토록 낚시 드리우니, 누가 이 마음을 끝내 알까.
이제, 우리는 태인 피향정을 들르기 전에 바로 옆 대일정에서 참게장 정식을 조금이라도 맛볼겸 점심을 먹으러 출발합니다. 참게장으로 내력있는 대일정이라 기대가 넘 컸던 것인지, 아니면, 메뉴판을 통독했어야 했는데 놏친게 있었던지, 예상보다 조금 단가가 높아지긴 했지만, 여기서 참게장정식을 맛보긴 해야 하지 싶어서, 약간 무리를@@ 그리고, 거기에 비하면 조금 기대에 못미쳤나 싶기도 한데, 여튼 사답으로 체크못한 탓이라, 죄송한 느낀이@@
여튼, 예상보다 조금 더 지출이 있었지만, 여튼 첫 끼니 맛나게(?!) 해결하고, 산책거리의 피향정으로 향했습니다.
이름그대로 연꽃향이 일대에 퍼져갔을 그 어느땐가에는 이 곳이 참 멋진 곳이었을텐데, 이 날은 가랑비가 오락가락 바람도 불고, 꽤 서늘한 날씨였네요.. 한벽당에서도 따라다녔던 빗방울은 중간중간에 차에서 내려 바깥을 거닐때 잠깐 멈추는 듯했다가, 다시 이동할때는 주룩주룩 내리는 일이 반복되어서, 은근히 답사 도우미역할을 해주긴 했습니다^^;;; 하지만, 쨍한 날씨였으면 더 좋았겠다는 아쉬움을 가지면서, 게다가 점심을 같이 먹으면서 서울팀과 같이 답사를 시작했는데, 답사 최연소 참가회원, 세라가 컨디션을 유지하는데 좀 애먹었을 법한 약간은 서늘하고, 습한(?) 날씨여서 좀 죄송한 마음도 있었네요@@ 하필 답사일 날씨가==;; 그래도 이틀째에는 해가 나서 그나마 조금 정원을 만끽하는 데 더 맘이 여유로웠다 싶긴 합니다..
호남제일루, 광한루와 비견될 장대한 규모의 피향정을 이제 둘러봅니다.. 꼭 최치원 선생의 연대까지 올라가는 지는 확실치 않지만, 다름아닌 목민관 시절 들르신 터라, 이 곳에 부임한 시절에 분명 새로 누각을 지을 법도 하겠고, 마치 전국에 의상대사, 원효대사, 도선국사 창건이 당연시되는 상황을 생각하면, 이 또한 이해되는 측면도 있네요^^ 깍두기처럼 또 연상되는 강고한 골품제 기득권이 나라를 뒤덮던 신라 말기 진성여왕 대의 최치원은, 그렇게 한직을 전전하면서 무쓸모 행정관으로만 평생을 보내게 되네요.. 이런 재능낭비는, 정약용 선생의 장구한 유배만큼이나, 권력에 취한 이들의 오만함에 치를 떨게 되는 포인트아닌가 싶네요...
여튼, 연못에는 피어있는 연꽃은 없었습니다.ㅠㅠ 바람도 차갑고, 가끔씩 떨어지는 빗방울에 약간은 을씨년스럽기도 하고, 서둘러 브리핑을 마치고, 간단하게나마 연지를 둘러봅니다...
화창한 날씨였다면, 아마도 여유롭게 김종직의 시라도 읊어봤을텐데, 도저히 그런 분위기는 아니었던 듯, 시 낭송을 꿈도 못꿨네요@@
泰仁蓮池上懷崔致遠
태인의 연지 가에서 최치원을 생각하다
割雞當日播淸芬。枳棘棲鸞衆所云。
할계(割鷄) 마냥 내려오신 선생 곁에 흩어지던 청아한 향기, 사람들은 가시나무에 깃든 봉황이라 말했다네.
千載吟魂何處覓。芙蕖萬柄萬孤雲。
천년전 시 읊던 넋은 어디서 찾을까, 일만 송이 연꽃에는 꽃마다 고운 선생 깃들었네.
비와 바람, 어느 하나도 호의적이지 않은 날씨, 그렇게 서둘러 우리는 백양사를 향합니다.
고불총림, 대개 자리잡은 산 이름에서 따오는 관례와 달리, '석가모니 본래의 가르침을 잇고자 하'는 사찰의 의지가 담긴 이름이라고 하니, 강원, 선원, 율원을 다 갖춘 그 뜻 또한 스님의 모든 행적이 부처님의 뜻 그대로이길 원한 것이 아닐까 싶습니다...
그 치열한 구도의 장을 오락가락하는 날씨 덕에 경내는 관광객도 적고 호젓한 분위기에 거닐어보는 행운이 뒤따랐네요^^;;
백양사 주차장을 찾느라 조금 해멨다가, 다행히, 차단기 바로 앞 주차장에서 모인 우리는 우선, 경내를 거닐어보고, 쌍계루 앞에서 모여 정리하기로 하고, 백암산 자락 아래 경내를 둘러봅니다.
사진에서 엿보이듯, 간간히 비가 그쳤다가 조금 내렸다가 오락가락했네요... 하필, 핸드폰 카메라 렌즈가 금간 탓에 광각으로 찍은 사진에 서리가 끼어버렸네요@@
옛 백양사 뜰에서 옮겨심은 홍매가 지금의 고불매라고 합니다. 천연기념물로 지정된 매화 중 으뜸이라고도 하고, 여튼, 매화꽃을 볼 수 없긴 했지만, 담장 옆에 푸르른 가지를 기대어 참배객에게 인사를 건냅니다.
두 시냇물이 만나서 다시 큰 줄기를 이루는 지점에 우뚝 세워진 쌍계루는, 바로 아래 징검다리에서 바라보는 백암산의 절경과 어우러져 정치함을 보여줍니다. 아마도 그럼직한 유래를 처음 찾을 수 있는 예는 정도전과 이색의 중수기에서부터일텐데, 특히 성리학의 비조인 정몽주의 시에서도 언급되었던 목은 선생의 중수기에 과연 이 터가 어떤 빛나는 아름다움을 선사하는지 잘 나타나있습니다...
長城縣白巖寺雙溪樓記
장성현 백암사 쌍계루기
李穡
이색
三重大匡福利君雲菴澄公淸叟。因絶磵倫公名其樓。
삼중대광(三重大匡) 복리군(福利君) 운암(雲菴) 징공(澄公) 청수(淸叟) 절간(絶磵) 윤공(倫公)의 부탁으로 쌍계루(雙溪樓)의 이름을 짓고,
且以三峯鄭氏記相示。寺之故詳矣。而溪之爲溪。樓之爲樓。皆略之而不書。
또 삼봉 정씨(三峯鄭氏)가 지은 누기(樓記)를 보여주었는데, 절의 내력은 자세하나 쌍계와 쌍계루의 내력은 모두 생략되어 써 있지 아니하다.
盖難乎命其名矣。 於是從絶磵訊之。
아마도 이름짓기가 어려워서 그런 듯 싶다. 그리하여 한번 구경하기로 작정하여 절간공(絶磵公)을 따라 절을 찾았다.
寺在二水間。而水合于寺之源。
절은 두 물 사이에 있었고, 물은 절을 일으킨 윗목에서 합쳤는데,
東近而西遠。故其勢有大小焉。
동쪽은 근원이 가깝고 서쪽은 근원이 멀기 때문에 수세가 서로 다르다.
然合而爲淵。然後出山而去。
그러나 합쳐 못을 이룬 뒤에 산을 빠져 흘러 내려간다.
寺四面山皆高峻。夏蒸溽。無所納涼。是以據二水合流之處。有樓焉。
사방을 둘러 싼 산은 모두 높고 가팔라 한여름 유월 더위에도 바람 쐬고 땀을 식힐 만한 곳이 없어 두 물이 합치는 곳에다 쌍계루를 세웠다.
跨左水俯右水。樓影水光。上下相涵。實爲勝覽矣。
왼쪽 물 위에 걸터앉아 오른쪽 물을 굽어보면 다락의 그림자와 물빛이 아래 위로 서로 비쳐 참으로 볼만 하다.
庚戌夏。水大至。石堤隳。樓因以壞。
경술년 여름에 큰물이 나 축대가 무너져 누각도 무너졌다.
淸叟曰。
청수옹(淸叟翁)은 이 누각을 중수하고 기문을 청하면서 말하기를,
樓吾師所起也。如此可乎。
“누각이 우리 스승님이 세운 것인데 이처럼 무너졌는데도 내버려 두어서야 되겠습니까.
吾師師師相傳凡五代。所以留意山門者至矣。
우리 스승님은 스승을 이어받기 오대(五代)나 되었으므로 절에 뜻을 둔 것이 지극하였습니다.
樓今亡。責將誰歸。
그런 누각이 지금 없어졌으니 그 책임을 어디로 돌려야 하겠습니까.
乃剋日考工。復其舊腐者堅。漫漶者鮮明。 於是足以自慰矣。
그래서 부랴부랴 날을 다투어 공사를 끝내고 옛 모습대로 다시 지어, 썩었던 재목이 견고하여지고 흐릿해졌던 채색이 선명하게 되어, 이제서야 족히 스스로 위안이 됩니다.
然吾之心。惟恐一毫或墜吾師之心者。吾之徒未必知也。
그러나 내 마음에 조금이라도 우리 스승님의 마음에 누가 되는 일은 없는가 두려워하는 마음을 내 제자들은 필시 모를 것입니다.
吾之徒踵吾而住是寺者。或不知吾之心。則山門之事。不可保矣。獨樓乎哉。
내 제자로서 나를 따라 이 절에 머물러 있는 자가 나의 이 마음을 못 알아본다면, 절 일은 지탱되지 못할 것이니 누(樓)쯤이야 말해 무엇하겠습니까.
像設之塵埃。棟宇之雨風。爲人所咲也必矣。
불상에 먼지가 끼고 지붕에 비바람이 들이치게 되어 남의 웃음거리가 될 것이 분명합니다.
是以一樓之興復。雖不足書。必求能言者筆之。
그러므로 누 하나쯤 재건한 것으로써, 글로 쓸 만한 것이 못 된다 하더라도 꼭 글 잘하는 분을 구하여 써주기를 청하는 것은
所以圖不朽也。所以戒吾徒也。幸無讓。
오래도록 전하기를 꾀하기 때문이요, 나아가서는 나의 후배를 경계하기 위한 까닭이니, 사양하지 마시고 써주시면 다행이겠습니다.” 하였다.
予甞師事杏村侍中公。與子姪遊。師其季也。
내 일찍이 행촌(杏村) 시중공(侍中公)을 스승으로 모셨고, 그 자질(子姪)과 같이 공부하였는데 선생은 그 계씨(季氏)다.
重違其請。用絶磵言。名之曰雙溪樓。
써드린다는 약속을 여러번 어겼던 터라 이제 절간공(絶磵公)의 말을 인용하여 이름을 ‘쌍계루’라 하고 기를 지어 보낸다.
予老矣。明月滿樓。無由一宿其中矣。恨不少年爲客耳。
“아, 내가 늙었구나. 명월이 누에 가득 찼으련만 하룻밤 그곳에서 구경할 길 없으니, 젊어서 길손되지 못한 것을 한할 뿐이로다.” 하였다.
其師弟子之相承。載在寺籍。故不書。
그 사제(師弟)의 이어받은 계통은 자세하게 절 문서에 기재되어 있기에 여기에는 쓰지 않았다.
호걸님과 미리 건너본 징검다리가 아무래도 마음에 걸려, 의논 끝에, 다같이 건너서 중간에 쌍계루를 바라보는 것은 건너뛰기로 했네요... 기대하셨을 모든 분들께 죄송@@
서옹스팀 쓰신 쌍계루 편액 아래 모여 잠시 이번 일정의 유일한 사찰 정원, 쌍계루 앞 연못 수면이 잠잠해지면 드러나게 될 쌍계루와 백암산의 당당한 자태를 떠올립니다. 정몽주 선생도 이렇게 떠올렸을까요 ?
長城白嵒寺雙溪寄題
장성 백암사 쌍계에 시를 지어 부치다
求詩今見白巖僧 。 把筆沈吟愧未能 。
시 구하는 백암사 스님 이제 뵈었는데, 붓 잡고 읊어 봐도 글 안 되어 부끄럽네.
淸叟起樓名始重 。 牧翁作記價還增 。
청수스님 누각 새워 그 이름 소중하고, 목은선생 기문을 지어 그 가치 더욱 높아졌다네.
煙光縹緲暮山紫 。 月影徘徊秋水澄 。
아스라한 노을 빛에 해 저문 산 아름답고, 달 그림자 어른거린 가을 물빛이 더욱 맑아라.
久向人間煩熱惱 。 拂衣何日共君登 。
오랜 인간사에 번뇌로 괴로웠더니, 어느 날 훌훌 떠나 그대와 함께 누각 오를까.
답사 내내 강행군에도 씩씩하게 잘 따라다녀준 세라에게 고마움을 전하고 싶네요^^
주차장으로 이동할때는 반대편 강가로 내려갔습니다. 백양사 경내를 통해 걷느라 강가의 풍경을 못봤다가 또다른 모습이 길 오른쪽에 내내 펼쳐져 또다른 감흥이 있었네요^^;; 그리고, 다시금 확인하는 물살... 예전 사답때는 물이 약간은 줄어 있어 잠긴 징검다리가 없었는데==;;
이제 답사객은 담양으로 접어들어서 호남가단의 효시가 되었던 면앙정을 먼절 들릅니다.
마침, 길 건너편에 공영주차장이 지도에 보여 여기에 주차하고 답사하면 되겠다 싶었는데, 들러보니, 바로 아래 주차할 만한 공터가 있었네요^^;; 그런데, 십여년전의 아득한 기억에 이렇게나 계단이 가팔랐는지 몰랐는데, 꽤 높은 언덕 위에 지어져있는 덕에 상당히 조망이 멀리까지 보였겠다 싶습니다만, 그 때문에 계단이 상당히 걸어오르기 힘들었던 것을 미리 알지 못해서 난감했었네요@@ 다들 힘겨운 산행이 되셨을 것 같아 죄송합니다~
그 옛날, 면앙정 선생의 회방연(回榜宴) 때에는 제자들이 가마에 태워 다녔다는데, 설마 이 오르막을 오르진 않았겠죠 ??@@
담양에서 높은 대(臺) 위에 지어진 누정에서 공통적으로 보였던 게, 쑥쑥 잘 자란 나무들 때문에 조망이 잘 안되는 아쉬움이 컸네요@@ 아무래도 그 옛날의 멋진 탁트인 거기에는 못 미치는 나무 틈사이로 짐작해야 하는... 그래도 평지에서 수십미터 위라 사이사이 엿보는 장쾌한 조망입니다 !!!
그래도 여기서 짧게 읊을 만한 싯구를 찾아보다가, 자료집에 있었던 면앙정삼언가를 막간에 낭송했네요^^;; 약간 뻘쭘하긴 했지만...
俛仰亭三言歌
면앙정삼언가
俛有地仰有天 亭其中興浩然 招風月挹山川 扶藜杖送百年
굽어보면 땅이요, 우러르면 하늘이라. 정자 한가운데 흥취가 크고 넓구나.
풍월을 불러들이고 아름다운 산천을 끌어당기니, 명아주 지팡이 짚으며 한 평생을 보내리라.
바로 그 면앙정 삼언가입니다. 면앙정을 노래했던 수많은 시가들을 일별하긴 힘들겠지만, 여튼 목릉성세를 장식했던 많은 시인들이 면앙정을 필두로 식영정, 한벽당, 소쇄원을 무대로 종횡무진 다양한 풍류를 그려냈습니다.
어김없이 서리낀 광각렌즈@@
무려 37줄에 달하는 면앙정가를 차마 같이 낭송해보자고 못하고, 내려왔네요^^;;; 대신 시비(詩碑)를 둘러보면서 그 시정을 읊어봅니다...
너르바회 우희 송죽(松竹)을 헤혀고 정자(亭子)를 안쳐시니
너럭 바위 위 송죽(松竹)을 헤쳐 정자를 앉혔으니,
구름 탄 청학(靑鶴)이 천 리(千里)를 가리라 두 나래 버렷는 듯.
구름을 탄 푸른 학이 천 리 가리라 두 날개 벌였는 듯.
옥천산(玉泉山) 용천산(龍泉山) 나린 믈히
옥천산(玉泉山), 용천산(龍泉山) 내린 물이
정자(亭子) 압 너븐 들해 올올(兀兀)히 펴진 드시
정자 앞 너른 들에 잇달아 펴진 듯이,
넙거든 기노라 프료거든 희지마니
넓거든 길지 말거나, 푸르거든 희지 말거나.
이제 우리는 첫날 마지막 답사지, 송강정을 들릅니다. 마침, 저녁 식사에 딱인 내력도 짱짱하고 맛집으로 꽤 오랜동안 이름을 알린 식당도 바로 옆에 주차장을 공유하고 있고, 여기다 싶었네요^^
역시나 여기도 언덕도 좀 높이 솟아 있고, 오르막이 중간중간 쉬긴 하지만 꽤나 올라가네요@@ 세라에게 미안@@
오르막 끄트머리에는 죽록정 편액이 멀리서 먼저 보입니다... 먼저 불렸던 이름이라, 먼저 눈에 띈 걸까요 ?? ^^ 정치적으로 유독 부침이 심했던 정철 선생은 그럼에도 문학적으로는 절대적으로 인정받았던 거장이었습니다. 이 곳에서 지어졌다고 하는, 사미인곡, 속미인곡은 이른바, 교과서에 실릴 정도의 위상을 가지고 있습니다... 물론 33줄이나 되는 사미인곡, 28줄이 되는 속미인곡을 연창할 수는 없겠다 싶어서 생략^^;;
하지만, 정치적으로 정철이 관여한 여러 정치적 소용돌이가 조선에 끼친 악영향이 만만치 않아서 나누는 얘기도 꽤 무거웠네요... 우의정으로의 화려한 정계복귀가 하필이면 추국을 관장하는 위관이라니. 시작과 끝이 모두, 진실과는 거리가 먼 조작일 가능성도 있었던 실로, 거대한 음모였다는 얘기도 있었을 정도이니, 노정객으로서는 그 말로가 인정사정없을 만도 했을 듯합니다... 동인들에게 유독 그렇게 잔인했던 추국이었으니@@
처음 답사 일정을 고민했던 첫날 저녁 장소를 쌍교숯불갈비 담양본점으로 정한 것은, 바로 송강정 옆이어서 시간을 최대한 맞춰, 대기없이 저녁 식사를 할 수 있겠다는 점이 컸습니다^^;;
예상대로 워낙 이른 시간이 첫날 답사가 마무리되어^^, 무사히 많이 대기하지 않고, 거의 바로 식사할 수 있었네요... 토요일에 예약을 받지 않았던 곳이라, 약간 걱정되었는데, 다행이었습니다... 그리고, 예상대로 메뉴도 무척 맛났네요^^;; 소문만큼이나..
숙소로는 진작에 죽록원으로 정했더랬습니다. 위치도 담양이라, 답사지에서 멀지 않고, 경내에는 마침 담양군의 명소 중에 유명한 누정 몇 곳을 재현하여 경내 곳곳에 배치해서, 아침 일찍 누정을 산책해 볼 수 있는 맞춤형 숙소라는 생각이 들어서, 한달전 예약이 열리기만 기다려, 새벽같이 예약했다는@@
이른 저녁을 마무리하고, 다시 이른 체크인을 위해 죽녹원으로 이동했습니다. 가는 길에 마트에 들러 저녁 뒷풀이 장을 보고, 숙소에 들어가서는 맥주 한잔에 이런 저런 얘기를 나누기도 하면서 다음 날 편안한 답사를 위해 푹 쉬었네요^^ 원래는 각자 자유로이 아침 산책을 하고 체크아웃 시간만 정해서 다같이 답사를 시작하려고 했지만, 예상과 달리 또 다같이 모여 아침 산책을 하게 되었네요^^;;;
역시나 부지런하신 회원님들, 7시에 짐까지 다 챙기고 아침산책 준비 완료!! 이제 우리는 죽록원 경내를 천천히 거닐어봅니다...
먼저 들른 곳은 명옥헌... 능양군의 삼고초려의 예를 물리쳤던 오희도 선생의 단표누항의 초가집이 기와집으로 바뀌었지만, 그 뜻만은 삼고 편액에 담겨 후손에게 전하고자 했던 듯합니다... 대숲에 둘러쌓여 자그마한 천원지방의 연못을 앞에 두고, 새벽같이 우리를 기다리고 있었네요..
발길을 돌려 아래쪽으로 둘러봅니다. 저 멀리, 소쇄원의 광풍각이 보이네요... 비록 그 호중지천과 같은 깊은 계곡을 옮겨오지는 못했지만, 이른 아침에 걸맞는 우아한 연못이 그 앞에 펼쳐져 있습니다.
이른 아침의 산책인데도, 세라는 보채지 않고, 잘 뛰어다니네요^^ 다행~ 눈을 돌려 오르막 계단 위를 보니, 저 위에는 환벽당을 옮겨다 놓았습니다... 선선한 아침 공기, 비도 갠 날씨라, 산책하기 좋은 죽록원이네요..
그나저나, 최근 새로 조성한 여러 정원들의 조악한 완성도에 기겁했던 적이 많았더랬는데, 예전에 처음 죽녹원을 들러서 둘러봤을 때 느꼈던 감동이 다시금 밀려오네요.. 딱 지세에 맞게 과하지도 모자라지도 않게 그 정취를 떠올릴만큼만 옮겨온 듯한 실력이랄까요 ??
저 아래에는 식영정이 서 있습니다. 여긴 높은 언덕위는 아니지만, 오히려 잔디밭 한가운데라, 조망이 더 나은 느낌이 드는건@@
이제 우리는 후문 쪽으로 더 나아가 봅니다... 다리를 건너다보면, 저멀리 면앙정이 보입니다... 여기는 연못가에 앉아 있네요^^
이제 우리는 거의 죽녹원 동쪽 끄트머리까지 걸어왔습니다. 여기는 독수정이 있습니다... 물론 없던 연못이 주위를 두르고 있긴 하지만, 정취는 겉돌지 않고, 오히려 그윽합니다... 몇 송이의 연꽃이지만, 오히려 더 감상하는 멋이 있네요^^
여전히 서리는 끼어있는 렌즈@@ 씩씩한 세라와 함께 아침 안개를 바라보는~~
이제 아쉽지만 한시간가량 산책을 마치고 아침 먹으러 창평원조시장국밥으로 출발했습니다. 약간 지체를 하긴 했지만, 먼저 준비한 팀부터 차례로 출발해서 다음을 기약하면서 숙소를 떠납니다...
지난 체크인때 죽녹원 앞 식당얘기도 듣긴 했지만, 이미 예약해둔 창평원조시장국밥도 있고 해서, 양해를 부탁드리고, 아침 간단한 산책 이후 우리는 서둘러 창평 읍내로 갔습니다. 약간 늦긴 했지만, 그래도 아침이라, 바로 식사를 해결할 수 있었네요^^ 어찌나 양이 많았는지==;;
원래 공지할 당시에는 명옥헌-풍암정을 오전에 둘러볼 요량이었습니다... 1일차 저녁이 되어가면서, 귀갓길에 더 가까운 명옥헌을 답사 마무리에 들르고, 오전에 원거리의 독수정과 풍암정을 들르는 게 어떨까 생각이 들었네요.. 점심 이후, 가까운 거리에 모여있는 소쇄원-환벽당-취가정-식영정을 집중적으로 들르는 것도 그렇게, 갑작스런 제안에 그래도 다들 흔쾌히 동의해주셔서 우리는 아침먹고 바로, 담양 증암천 가에 가장 먼저 자리잡은 독수정원림을 향했습니다...
독수정원림은 마땅한 주차장을 찾는 일이 문제였습니다. 나중에 와서 보니, 독수정을 지나 바로 주차장 공간이 있어보였지만, 미리 알지 못한 우리는 일단, 마을 뒤쪽 산음교 언저리에서 주차하고 걸어서 올라가기로 했습니다. 앞의 얘기처럼, 와서 주차장 표지가 있었지만, 다시 내려갔다 오기 힘들기도 하고, @@
보통, 산의 북쪽 자락을 산음, 남쪽 자락을 산양이라고 부르는 걸 다리에 이름붙인거라면, 그 기준은 바로 독수정이 올라앉아 있는 무등산 북쪽자락이겠죠 ?? 망한 고려왕조을 바라보는 응달진 위치를 굳이 찾아서 누정을 지은 뜻을 되새겨볼 필요있는 독수정입니다. 그 옛날 전신민 선생은, 아마도 호걸님이 걸어보고 계신 저쪽 북쪽 방향의 경사지쪽으로 걸어올라오셨을 수도 있겠다 싶네요..
風塵漠漠我思長 何處雲林寄老蒼
세상 일 막막하여 내 고민만 깊어지니, 구름 낀 숲 어디에 늙은 이 몸 맡길까
千里江湖雙鬢雪 百年天地一悲凉
천 리 강호에서 두 귀밑머리 희어지니, 천지간 백 년 인생 한 결 같이 구슬퍼
王孫芳草傷春恨 帝子花枝叫月光
저 무성한 풀은 봄을 상심한 원한이고, 달빛에 절규하는 듯 저기 진달래 꽃들
卽此靑山可埋骨 誓將獨守結爲堂
이곳 청산은 뼈 묻을만한 곳인가 하니, 홀로 지키자 맹세하고 이 정자 지었네
未死遯身 全新民
죽지 않고 은둔한 신하 전신민
이제 우리는 독수정을 출발해서 풍암정을 향합니다... 그런데, 여기가 예상하지 못한 장벽이 있었네요@@ 이 숲길까지는 아주 좋았습니다^^;; 마침 초여름같은, 그늘이 선선해서 더 좋은 그런 숲길을 조금 걷다보니, 풍암정으로 가는 이정표가 나있네요..
물론 블로그에서도 이 물가에서 큼지막한 돌다리를 건너가서 풍암정을 볼 수 있었다고는 되어 있었으나, 전날 백양사에서와 같이 불어난 물살 때문에 잠겨버린 낮은 징검다리가 상황을 녹록치 않게 만드네요.. 전체 답사객들이 안전하게 건너지 못할 것 같아, 현장에서 양해를 구하고, 눈 앞에 보이는 풍암정을 보는 것에 만족하고 발길을 돌렸습니다... 죄송@@
다들 바쁜 시간을 쪼개서 이틀 답사를 같이 하시는 상황이어서, 이 곳을, 저 우람한 기단 위에 서 있는 풍암정 마루에 걸터앉아서 물가를 굽어볼 기회를 @@
이 누정에서 풍암 김덕보 선생은, 세상이 품지 못한 둘째형 김덕령 장군을 추모했습니다...
謾詠
마음가는 대로 읊다.
晩結楓崖屋數間 巖前脩竹溪重巒
단풍나무 언덕위에 두어 칸 집 지으니, 바위 앞엔 대나무 푸르고 뒤로는 산봉우리 겹겹이 둘렀네
向陽簷牑三冬暖 臨水亭臺九夏寒
창문 남쪽을 향해 한겨울에도 따뜻하고, 물가의 정자 한 더위에도 차겁네
靈藥每從仙侶斲 好書時借野人看
영약 구하려고 신선따라 땅을 파고, 좋은 책은 야인들이 빌려다 본다.
捿身自有安閒地 何用蓬壺海外山
이 곳에 저절로 편안한 삶이 있는데, 어찌 바다건너 봉오산을 찾을까.
목릉성세(穆陵盛世)를 망친 한 사람을 꼽으라면, 단연 선조 자신을 꼽지 않을 수 없겠네요...
꼭 모든 잘못된 일이 한 사람의 탓으로 돌릴 수는 없겠지만, 그는 모든 것을 행하거나 막을 수 있었던 지존이었기 때문에, 걸맞는 책임이 돌아가는 것이니, 편한 욕받이가 되는 것도 자연스러운 일입니다... 특히 의병장에나 신각, 이순신장군에 대한 사리에 안맞는 처분은 민심의 분노를 이끌어내기에 부족함이 없었을 정도였으니...
풍암정을 아쉽지만 뒤로 하고, 우리는 또 다시 이른 점심을 먹으로 광주호 호반의 생선구이 전문점 대가 식당으로 향합니다. 이틀간 4식이 겹치지 않게 메뉴를 고르다보니, 이 산골에서 생선구이를 먹게 되었네요^^;; 그리고, 정말 푸짐하게 잘 구워져 나온 생선을 종류별로 실컷 먹을 수 있어서 아주 즐거웠던 점심시간이었네요~
이제 점심 식사를 마친 우리는, 어쩌면 이번 답사의 하이라이트 소쇄원을 둘러보기 위해 동쪽을 향합니다.
드디어 소쇄원입니다... 호남가단을 일구었던 1세대 시인들, 송순, 임억령, 김윤제와 달리 양산보는 어릴적 봐두었던 자그마하지만 거대한 어느 골짜기에 자기만의 원림을 지었습니다. 그렇게 구별을 해보자면, 환벽당은 강가에 짓기는 했지만, 그 앞 너른 들과 멀리 내다보이는 산록을 차경으로 동시에 조망하는 원림을 지은 셈이 될 것 같고, 그에 비해 식영정과 면앙정은 누정 자체는 일체의 원림 조성은 생략하고, 오직 그 높은 언덕이 이끌어주는 장쾌한 조망을 원림으로 삼아 지은 것입니다...
그렇게 본다면 둘째날 오후 두 곳, 소쇄원, 환벽당은 누정을 바로 에워싸고 있는 공간이 중요한 원림인 셈입니다...
기묘사화에 스러져 간 스승 조광조 선생을 지켜보면서, 양상보 선생은 담양 창평으로 내려와 이 곳에 별서를 지었습니다. 이 근처가 어릴적 살던 데이기도 했고, 들오리 헤엄쳐 내려온 시냇물을 거슬러 올라가 본 폭포와 계곡에 반해, 오랫동안 집을 지어 살 생각을 품었고, 낙향하면서는 이를 바로 실행에 옮겨 소쇄원을 지었습니다.
帶雪紅梔
붉은 치자가 눈에 덮이다
曾聞花六出。人道滿林香。絳實交青葉。淸姸在雪霜。
내 일찍이 듣기로 치자는 꽃잎이 여섯이라, 사람들은 그 자욱한 향이 가득 찬다고 하네.
붉은 열매 푸른 잎이 서로 어울리니, 눈서리에도 맑고 곱기만 하여라.
池臺納涼
못가 언덕에서 더위를 식히며
南州炎熱苦。獨此占涼秋。風動臺邊竹。池分石上流。
남쪽 고을은 무더위가 심하다지만, 이 곳은 서늘한 가을이구나.
언덕 가 대숲에는 바람이 일고, 연못의 물은 바위 위로 흩어지네.
負山鼇巖
산을 짊어진 거북바위
背負靑山重。頭回碧玉流。長年安不抃。臺閣勝瀛洲。
등 뒤엔 겹겹의 청산이요, 옥빛 시내로 고개를 돌렸네.
나이 들어 편안하니 손뼉칠 일도 없이 매대와 광풍각이 영주산보다 낫구나.
처남 김윤제의 환벽당 또한 바로 강건너에 있으니, 게다가 둘은 모두 시작(詩作)을 즐겨하는 점까지 공유하여, 멀리 외사촌 송순의 면앙정에, 오촌조카인 김성원의 서하당, 그의 장인 임억령의 식영정까지 포함하면, 시 지을 핑게, 가족 만난다는 핑게, 친구 만난다는 핑게로 오죽 왕래가 잦았을까 싶습니다^^;;
언제 어느 방향으로 카메라를 돌려봐도, 그윽한 초록초록한 황홀경이 담깁니다@@ 응달은 응달인 대로, 양지는 또 양지인 그대로 그림이 됩니다...
石逕攀危
위험한 돌길을 더위잡아 오르며
一逕連三益。攀閒不見危。塵蹤元自絶。苔色踐還滋。
좁은 돌길 위험하게 매달려 오르며 좁은 길 연이어 매(梅), 죽(竹), 석(石) 삼익(三益)이니, 바위턱 매달려 오르다 위험을 보지 못하고,
속세의 자취 절로 끊는데, 으뜸이라 이끼는 밟혀도 또다시 푸르구나.
斷橋雙松
다리 너머의 두 그루 소나무
㶁㶁循除水。橋邊樹二松。藍田猶有事。爭及此從容。
콸콸 물은 뜰을 따라 흐르고, 다리 가에는 두 그루 소나무가 서 있네.
남전에도 오히려 일이 있을 것인데, 어찌 이 한가한 곳에 이르렀는가.
平園鋪雪
눈이 넓은 들에 깔리다
不覺山雲暗。開窻雪滿園。階平鋪遠白。富貴到閒門。
산 구름이 짙어 어두움을 깨닫지 못하고, 창 열고 보니 뜰엔 눈이 가득하네.
섬돌에도 골고루 흰 눈 널리 깔리어, 인적 드문 문에 부귀 찾아들었네.
혹여나 예전 모습과 어느정도 비슷할까 궁금하면 아래의 소쇄원도가 큰 도움이 됩니다. 지은지 200여년 후의 소쇄원이긴 하지만, 이 또한 지금으로부터 200여년 전의 모습이니, 상상하기에 부족하지 않습니다... 이 곳 하나하나에 소쇄원48영의 모든 모습이 떠오릅니다.
이제 볕이 든 계곡의 모습이 눈에 들어옵니다. 저 멀리 우뚝 솟은 축대 위에는 광풍각이 당당하게 지켜보고 있습니다. 죽녹원의 광풍각은 오히려 초원 위에 다소곳하게 지어졌다면, 소쇄원의 광풍각은 꽤나 다이나믹한 계곡 가파른 비탈에 일부러 축대를 힘주어 쌓고 지었습니다...
散崖松菊
낭떠러지에 흩어져 자라는 소나무와 국화
北嶺層層碧。東籬點點黃。緣崖雜亂植。歲晚倚風霜。
소나무와 국화는 낭떠러지에 흩어져 자라고
북녘 고개는 층층이 푸른 소나무요, 동녘 울엔 점점이 누런 황국이라.
송국(松菊)을 여기저기 심어 벼랑을 장식하고, 세밑 늦겨울 찬 서리에도 잘 버티는구려.
假山草樹
석가산의 풀과 나무들
爲山不費人。造物還爲假。隨勢起叢林。依然是山野。
사람 안 부리고 산을 지었다는데, 조물주 조화로 석가산 되었다네.
형세를 좇아 우거진 숲을 일으켰으니, 의연한 산야 그대로라네.
槽潭放浴
조담(槽潭)에서 미역을 감다
潭淸深見底。浴罷碧粼粼。不信人間世。炎程脚沒塵。
못물 맑아 깊어도 바닥을 볼 수 있으니, 목욕을 마치고도 맑기는 그대로일세.
인간 세상을 더는 믿을 수 없어, 더운 여름날 내디딘 발엔 티끌도 없다네.
倚睡槐石
회화나무 옆 바위에 기대어 졸며
自掃槐邊石。無人獨坐時。睡來驚起立。恐被蟻王知。
몸소 홰나무 가의 바위를 쓸고서, 아무도 없이 홀로 앉아 있을 때에,
졸다가 놀래어 일어서는 건, 의왕에게 알려질까 두려워서라.
壑渚眠鴨
오리가 산골 물가에서 졸다
天付幽人計。淸泠一澗泉。下流渾不管。分與鴨閒眠。
하늘이 은자(隱者)에게 맡긴 것은, 맑고 서늘한 산골짜기 샘물이라네.
흐르는 물 모두 자연 그대로인데, 오리만 그곳에서 한가로이 졸고 있구나.
脩階散步
긴 섬돌을 거닐며
澹蕩出塵想。逍遙階上行。吟成閒箇意。吟了亦忘情。
차분히도 속세를 벗어난 마음으로 소요하며 섬돌 위를 구애 없이 걷네
노래할 땐 갖가지 생각들 한가해지고 읊고 나면 또 희로애락의 속정 잊혀지네
石趺孤梅
매화는 돌 받침대 위에 외로이 있고
直欲論奇絶。須看插石根。兼將淸淺水。疏影入黃昏。
매화의 기절(奇絶)을 논하려거든, 모름지기 돌에 꽂힌 뿌리를 보시오.
맑고 얕은 물까지 아우르고 있어, 저물녘 성긴 그림자를 드리우네.
梅臺邀月
매화 자라는 언덕에서 달맞이하다
林斷臺仍豁。偏宜月上時。最憐雲散盡。寒夜映氷姿。
숲은 끊기고 매대가 환히 트이니, 달 떠오를 때가 유난히 좋다네.
가장 좋은 것은 구름 다 흩어지고, 차가운 밤에 비치는 맑은 자태라네.
계곡에 내려가서 담아보는 풍경에 빠져 아직도 계곡 아래에 머물러 있습니다... 저 멀리 위 둔덕에는 애양단이 지어져 있습니다. 있다가 애양단 안으로 난 오솔길을 따라 본격적으로 소쇄원을 둘러볼 요량입니다.
小塘魚泳
작은 연못에 물고기는 노닐고
方塘未一畝。聊足貯淸漪。魚戲主人影。無心垂釣絲。
한 이랑 안되는 네모진 연못, 그런대로 맑은 물은 모을만 하네.
주인의 그림자에 고기떼 헤엄쳐 노니, 낚시대 드리울 마음이 전혀 없다네.
危巖展流
높다란 바위 위에 퍼져 흐르는 물
溪流漱石來。一石通全壑。匹練展中間。傾崖天所削。
시냇물이 돌을 씻으며 내려오니 돌 하나가 온 골짜기로 통하네.
비단 한 필이 중간에 펼쳐졌니 기울어진 비탈은 하늘이 깎아놓았네.
床巖對棋
평상 바위에서 바둑을 두며
石岸稍寬平。竹林居一半。賓來一局棋。亂雹空中散。
돌 언덕이 조금은 넓고 평평해 죽림의 절반을 차지했네.
손님 와 바둑 한판을 두니, 어지러운 우박이 공중에 흩어지네.
봉황을 기다리는 사대부의 마음이 이 초가집 이름에 담겨 있습니다... 이번 답사에 들렀던 곳들이 대부분 원래는 이런 초막이었다가, 후손들이 조상을 현양(顯揚)하기 위해 기와집으로 다시 지은 것입니다... 그런 의미에서는 이런 초가집을 보면서 상상해보는 것도 답사의 또 다른 재미인 듯하네요^^
陽壇冬午
애양단에서 겨울 낮을 맞이하다
壇前溪尙凍。壇上雪全消。枕臂迎陽景。鷄聲到午橋。
단 앞엔 아직도 시냇물 얼어 있는데, 단 위의 눈은 모두 녹아버렸네.
팔 베고 누워 따뜻한 햇살 맞으니, 정오 닭 울음소리가 다리를 건너오네.
桃塢春曉
복사꽃 언덕에 봄이 찾아오다
春入桃花塢。繁紅曉霧低。依迷巖洞裡。如涉武陵溪。
복사꽃 언덕에 봄이 찾아드니, 붉은 꽃들 새벽안개에 낮게 드리우네.
바윗골 동리 속이라 아득한데, 마치 무릉계곡을 건너는 듯하네.
長垣題詠
노래가 긴 담에 걸리도다
長垣橫百尺。一一寫新詩。有似列屛障。勿爲風雨欺。
긴 담이 옆으로 백 자나 되니, 일일이 새로 시를 지어 붙였네.
병풍을 벌여놓은 듯한데, 비바람은 여기 건드리지 마오.
이 오곡문과 애양단은, 도면과 비교해보면 이 명명을 이해해볼 수 있는 재밌는 단서를 찾을 수 있을 듯합니다.. 소쇄원에 접어든 물길이 다섯번 굽이 돌아 빠져나간다는 뜻이라면 그럴 법하겠고, 굳이 서향한 담장의 서쪽 면에 이런 이름을 지었다면, 분명 볕이 드는 오후에 빛나는 모습이 제격이라 그런 뜻을 담은 것이라면, 이렇게 점심이후에 들르는 나들이가 제격이겠다 싶기도 하네요^^
桐臺夏陰
여름 그늘이 오동나무 언덕에 드리우다
巖崖承老幹。雨露長淸陰。舜日明千古。南風吹至今。
바위 비탈에 늙은 줄기 이어지고, 비와 이슬에 맑은 그늘 길게 드리우네.
순임금의 은덕 천고에 길이 밝혀주니, 남녘 바람이 지금도 불어오네.
垣竅透流
담장 밑을 뚫고 흐르는 물
步步看波去。行吟思轉幽。眞源人未泝。空見透墻流。
물 보며 걷는 한 걸음 한 걸음, 거닐며 읊조리니 더욱 그윽해지네.
사람들은 물줄기를 거슬러 오르지 않고, 공연히 담 구멍 아래 흐르는 물만 본다네.
자, 이제 드디어 소쇄원 가장 상류에까지 올라왔습니다. 역시나 이번 답사는 시냇물이 꽤나 불어있어서 물 흐르는 소리를 제대로 들을 수 있었던 것 같네요.. 모름지기 정원에 빼놓을 수 없는 수경을 만끽하기에는 때가 좋았던 것 같습니다^^ 이렇게 내려다보는 광풍각을 둘러싼 녹음은 마치, 호중지천을 보는 듯하다면, 과장일까요 ?? @@
洑流傳杯
빙빙도는 물살에 술잔 띄워 보내며
列坐石渦邊。盤蔬隨意足。洄波自去來。盞斝閒相屬。
석와 가에 둘러앉으니, 소반의 채소가 아주 풍족하네.
소용돌이치는 물에 절로 가고 오니, 술잔이 한가로이 서로 권하네.
廣石臥月
넓은 바위에 누워 달을 보며
露臥靑天月。端將石作筵。長林散淸影。深夜未能眠。
맑은 하늘 나와서 달 아래 누워, 단정히 돌 위 자리잡았네.
깊은 숲 흩날리는 맑은 그림자, 밤이 깊어도 잠 못 이루네.
斜簷四季
사계화가 처마 곁에 비스듬히 피어나다
定自花中聖。淸和備四時。茅簷斜更好。梅竹是相知。
꽃 중의 으뜸은 바로 사계화이니, 봄 여름 가을 겨울 맑고 화창하구나.
띠집 처마에 비껴드니 더욱 보기 좋아, 매화와 대나무도 서로 알아본다네.
여기에도 남아 있는 송시열의 글씨입니다.
고문관지에 수록된 남조의 제나라 사람 공치규의 북산이문에는 소쇄를 콕 짚어 원림의 이름으로 삼았습니다. 조금 길지만 글을 다 읽어보면, 과연 왜 이 글에서 이 단어를 따왔을까 무릎을 탁 치게 될 것 같은 느낌이^^;;;
北山移文 - 孔稚珪
북산이문 - 공치규
鍾山之英,草堂之靈,馳煙驛路,勒移山庭:
종산(鍾山)과 초당(草堂)의 신령이 분노하여 역로(驛路)를 내달린 안개더러 산마루에 이문(移文)을 다음과 같이 새기도록 하였다.
夫以耿介拔俗之標,蕭灑出塵之想。
무릇 은자는 강직함과 속세를 초탈한 품격을 갖고, 맑고 고요하여, 속세를 벗어난 이상(理想)이 있어야 한다.
度白雪以方潔,干青雲而直上,吾方知之矣。
흰 눈과 같이 품격이 순결하여야 하고, 푸른 구름 너머 곧장 하늘 위에 오를만큼 높아야 한다고 나는 지금까지 그렇게 알고 있었다.
若其亭亭物表,皎皎霞外,芥千金而不眄,屣萬乘其如脫。
은자는 만물 위에 우뚝 솟은 듯 하여야 하며, 세속을 벗어난 듯 빛나야 하며, 천금도 하찮게 여겨 거들떠보지 않고, 천자의 자리도 짚신처럼 벗어던지듯 하여야 한다.
聞鳳吹於洛浦,值薪歌於延瀨。
은자는 낙수(洛水) 가에서 봉황의 울음소리를 듣는 듯, 연뢰(延瀨)에서 나무꾼의 노래를 듣는 듯 하여야 한다.
固亦有焉。豈其終始參差,蒼黃翻覆,淚翟子之悲,慟朱公之哭。
물론 이런 사람들은 있었으니, 어찌 처음과 끝이 한결같지 않고, 푸른색과 노란색이 거듭 변하듯 하며, 묵적(墨翟)이 슬픔에 눈물 흘리는 듯, 양주(陽朱)가 통곡하며 슬피 우는 듯 하였는가.
乍回跡以心染,或先貞而後黷,何其謬哉!
잠깐 사이에 발길을 돌려 마음이 속세에 물들었는데, 먼저는 곧았다가 나중에는 더러워졌으니, 어쩌면 그리도 그릇되었는가!
嗚呼,尚生不存,仲氏既往,山阿寂寥,千載誰賞?
아! 상자평(尙子平)과 중장통(仲長統)은 이미 가버렸으니 산모퉁이는 고요하고 적막한데 천추만년을 누가 즐기려는가?
世有周子,雋俗之士,既文既博,亦玄亦史。
세상에 주옹(周顒)이라는 자가 있었는데 속세에서는 뛰어난 선비로 문장에 능하고 학문에 박식하며 또한 도가의 학문과 역사에도 뛰어났다.
然而學遁東魯,習隱南郭。
그런데도 동노(東魯)의 안합(顔闔)에게서 은둔을 배우고, 남곽자기(南郭子綦)에게서 은거를 본받았다.
偶吹草堂,濫巾北岳。
초당(草堂)에서 뒤엉켜 숫자나 채웠으며, 북악(北岳)에서 은자인양 함부로 두건을 쓰고 다녔다.
誘我松桂,欺我雲壑。
신령인 나의 소나무와 계수나무를 유혹하고, 나의 구름과 골짜기를 속였다.
雖假容於江皋,乃攖情於好爵。
비록 장강(長江) 가에서 은자의 모습을 가장했지만 마음은 좋은 관직에 얽매여 있었다.
其始至也,將欲排巢父,拉許由,傲百氏,蔑王侯。
주옹이 처음 왔을 때에는 장차 소부(巢父)를 밀쳐내고 허유(許由)를 안중에 두지 않는 듯하였으며, 백가(百家)의 학설로 업신여기고 왕과 제후의 권세로 그들을 모두 깔보았다.
風情張日,霜氣橫秋。
그의 운치는 햇빛처럼 장대했으며, 서리 같은 기상은 가을 하늘에 가득 찼다.
或歎幽人長往,或怨王孫不游。
때로는 은자들이 영원히 가버린 것을 탄식하고, 때로는 왕손(王孫)이 놀러오지 않는 것을 원망하기도 했다.
談空空於釋部,核元元於道流。
불경(佛經)에 있는 ‘사대개공(四大皆空)’을 담론하기도 하고, 도가(道家)의 '현지우현(玄之又玄)‘을 공부하기도 했다.
務光何足比,涓子不能儔。
무광(務光)이 어찌 주옹에 견줄 만하겠으며, 연자(涓子)가 어찌 주옹과 짝이 될 수 있었겠는가.
及其鳴騶入谷,鶴書赴隴,形馳魄散,志變神動。
급기야 사신이 징을 울려 길을 열고 앞뒤로 에워싸며 골짜기에 들어서고, 임용하는 조서(詔書)가 산 언덕을 넘어오자, 혼백이 흩어지 듯 몸은 기뻐 달려 나갔고, 지조는 변하고 정신은 흔들렸다.
爾乃眉軒席次,袂聳筵上。
이때 그는 사신을 맞는 자리에서 기뻐 눈썹을 치켜 올리고, 옷소매를 높이 들어 올리며 의기양양했다.
焚芰製而裂荷衣,抗塵容而走俗狀。
마름으로 만든 옷을 불태우고 연잎으로 만든 옷을 찢고서 세속의 얼굴을 드러내고 속된 모습으로 달려갔다.
風雲悽其帶憤,石泉咽而下愴。
바람과 구름은 슬퍼하며 분노하였고, 바위 틈의 샘물은 오열하며 슬프게 흘러내렸다.
望林巒而有失,顧草木而如喪。
우거진 산봉우리를 바라보니 실망한 듯하였고, 풀과 나무를 돌아보니 상심한 듯하였다.
至其鈕金章,綰墨綬,跨屬城之雄,冠百里之首。
그 후 주옹은 금 인장의 손잡이를 검은 인끈으로 꿰차고서 각 현령을 초월하여 우두머리를 차지하고 권세가 백리 땅의 우두머리가 되었다.
張英風於海甸,馳妙譽於浙右。
늠름한 기상이 해안까지 퍼졌으며, 아름다운 명성이 절강(浙江) 동쪽에까지 전해졌다.
道帙長擯,法筵久埋。
도가(道家)의 책들을 버린 지 오래되었고, 불법을 강론하던 자리는 오랫동안 묻어 두었다.
敲扑喧囂犯其慮,牒訴倥傯裝其懷。
죄인을 매질하는 시끄러운 소리에 생각이 어지러워지고, 가진 책들의 번잡함으로 그의 마음이 얽매이게 되었다.
琴歌既斷,酒賦無續。
거문고와 노랫소리는 이미 끊어졌고 술 마시고 시 짓는 것도 계속할 수 없었다.
常綢繆於結課,每紛紜於折獄。
항상 세금을 매기는 일을 사전에 준비하고 매번 옥사(獄事) 처리에 바쁘고 어지러웠다.
籠張趙於往圖,架卓魯於前籙。
옛 기록에서 장창(張敞)과 조광한(趙廣漢)을 가슴에 품었고, 전대의 탁무(卓茂)와 노공(魯恭)의 기록을 넘어섰다.
希蹤三輔豪,馳聲九州牧。
삼보(三輔)의 장관의 종적을 추모하여 천하의 지방장관 사이에서 이름 날리기를 원했다.
使我高霞孤映,明月獨舉,青松落陰,白雲誰侶?
그는 나로 하여금 북산에 외로이 높은 노을이 물들도록 하고, 밝은 달이 홀로 떠오르도록 하며, 푸른 소나무가 그늘을 시원하게 드리우도록 했지만, 저 흰 구름은 누구랑 벗하도록 할 수 있을까?
礀戶摧絕無與歸,石逕荒涼徒延佇。
산골의 집은 박살났으니 함께 돌아갈 이 없고, 황량하게 우두커니 목이 빠지게 기다리는 것은 돌밭 사이의 산길만 뿐이다.
至於還飆入幕,寫霧出楹,蕙帳空兮夜鶴怨,山人去兮曉猨驚。
장막 속으로 회오리바람까지 들어오고, 안개는 기둥을 휘돌아 나오며, 혜초로 엮은 장막 안은 텅 비어 밤마다 학이 원망하고, 산인(山人)이 떠나자 원숭이는 새벽에 놀라 울었다.
昔聞投簪逸海岸,今見解蘭縛塵纓。
옛말에 이르기를, 어떤 이는 벼슬을 버리고 바닷가에 은거한다 하였는데, 지금 보니 어떤 이는 난초허리띠를 풀어 던지고 속세의 갓끈을 매었구나.
於是南嶽獻嘲,北隴騰笑,列壑爭譏,攢峯竦誚。
이에 남쪽 산들이 조롱하고, 북산의 언덕들도 소리 높여 비웃었으며, 줄지어 있는 골짜기들이 다투어 나무라고, 산봉우리들은 소리 높여 꾸짖었다.
慨遊子之我欺,悲無人以赴弔。
노닐던 나그네가 나를 속인 것에 분개하고, 아무도 나를 위로해 주지 않는 것에 슬퍼한다.
故其林慙無盡,礀愧不歇,秋桂遣風,春蘿罷月。
그리하여 우거진 숲의 치욕은 끝이 없고, 계곡 물의 수치는 그치지 않아, 가을 계수나무는 바람을 내쫓아버렸고, 봄날의 담쟁이덩굴은 달을 밀쳐버렸다.
騁西山之逸議,馳東皋之素謁。
이에 서산(西山)의 은둔 생활만 의논하겠다 선언하고, 동쪽 언덕의 소박한 사람 말만 듣겠다 다짐했다.
今又促裝下邑,浪栧上京。
듣자하니 지금 또 주옹은 아래 고을에서 급히 여장을 꾸리고 노를 저어 상경한다고 한다.
雖情殷于魏闕,或假步於山扃。
비록 그의 마음이 조정 깊숙이 가 있을지라도, 혹시 북산에 들어와 잠시 머물지도 모른다.
豈可使芳杜厚顏,薜荔蒙恥,碧嶺再辱,丹崖重滓,塵游躅于蕙路,汙淥池以洗耳!
그렇다면 어찌 향기로운 풀의 낯가죽을 두껍게 하고, 줄사철나무로 하여금 수치심을 당하게 하며, 푸른 산마루를 다시 욕되게 하고 붉은 벼랑을 다시 더럽히게 만들어, 혜초 난 산길을 속세에서 노닐던 발자취로 더럽히고 귀를 씻던 맑은 연못을 오염시키게 한단 말인가!
宜扃岫幌,掩雲關,斂輕霧,藏鳴湍,截來轅于谷口,杜妄轡於郊端。
마땅히 북산의 창에 빗장을 걸고, 구름으로 산의 관문을 굳게 닫아버리고, 가벼운 안개는 거둬들여버리고 소리 내어 흐르는 여울은 감춰버려, 그의 수레는 골짜기 입구에서 막아버리고 함부로 교외로 나와 달려오는 그의 말은 막아야 한다.
於是叢條瞋膽,疊穎怒魄,或飛柯以折輪,乍低枝而掃跡:
그리하여 떨기를 이룬 나뭇가지들은 눈을 부릅떠 성을 내고, 수많은 풀 이삭들은 혼백이 날아갈 듯이 화를 내고, 혹은 큰 가지를 날려 수레바퀴를 부러뜨리고, 별안간 작은 가지를 늘어뜨려 길을 감출 것이니,
請迴俗士駕,為君謝逋客。
속된 선비에게 수레를 돌리라 요청하며, 북산의 신령을 위해 도망자는 접근을 사절하노라.”
千竿風響
대숲에서 들려오는 바람 소리
已向空邊滅。還從靜處呼。無情風與竹。日夕奏笙竽。
이미 허공으로 사라졌다가, 다시 고요한 곳으로 불어오네.
바람과 대나무는 무정하다만, 밤낮으로 피리를 연주한다네.
너럭바위 아래 계곡과 광풍각이 감춰져 있는 듯 보이네요^^;; 어찌 보면 브라이스 캐년의 한 모롱이를 옮겨다 놓은 듯도 하고...
刳木通流
나무 홈통을 뚫고 흐르는 물
委曲通泉脈。高低竹下池。飛流分水碓。鱗甲細參差。
꼬불꼬불 물의 맥을 통하였더니, 높고 낮은 대밭 아래 연못 이루었다네.
물방아에서 폭포가 나누어지니, 가다란 물고기 비늘은 들쑥날쑥하구나.
이제 제월당으로 발걸음을 옮겨봅니다...
映壑丹楓
단풍이 골짜기에 비치도다
秋來巖壑冷。楓葉早驚霜。寂歷搖霞彩。婆娑照鏡光。
가을 들어 바위 골짜기 서늘하고 서리에 놀라 단풍은 벌써 물들었네.
저녁노을이 고요하고 쓸쓸함을 흔드는데, 성긴 가지는 거울 빛처럼 물에 비치는구나.
황정견(黃庭堅, 1045-1105)은 염계시서(濂溪詩序)에서 주돈이(周敦頤, 1017-1073) 선생을 다음과 같이 얘기했습니다.
舂陵周茂叔,人品甚高,胸中灑落,如光風霧月。
용릉(舂陵)의 주무숙은 인품이 너무나 고매하여, 마음이 상쾌하고 깨끗하여, 마치 맑은 날씨 속 바람과도 같고, 비 갠 뒤 비추는 달과 같다.
어찌나 표현이 적확한지, 마치 그림이 그려지는 듯 합니다.@@
杏陰曲流
은행나무 그늘 아래 굽이도는 물
咫尺潺湲地。分明五曲流。當年川上意。今日杏邊求。
지척에는 물줄기 줄줄 내리니, 분명 오곡을 구비도는 흐름이거니.
당년 물가에서 말씀하신 공자의 뜻, 오늘은 은행나무 아래에서 찾는구나.
柳汀迎客
버드나무 물가에서의 손님맞이
有客來敲竹。數聲驚晝眠。扶冠謝不及。繫馬立汀邊。
손님이 와서 대사립문을 두들겨, 몇 마디 소리에 낮잠이 깼네.
의관 갖추고 마중 못간 것 사죄하노니, 말을 매놓고 물가에 서 있네.
滴雨芭蕉
빗방울 파초 잎에 떨어지다
錯落投銀箭。低昂舞翠綃。不比思鄕聽。還憐破寂寥。
빗방울이 은촉처럼 어지러이 떨어지고, 파초는 푸른 비단처럼 너울너울 춤을 추네.
고향을 떠올리는 소리보다 못하지만, 적막함을 그치게 하니 되려 좋구나.
玉湫橫琴
맑은 물가에서 거문고 비껴 안고
瑤琴不易彈。擧世無鍾子。一曲響泓澄。相知心與耳。
소리내는 거문고 타기 쉽지 않는 건, 세상에는 종자기같은 친구 없어서라.
맑고 깊은 물에 한 곡조 울리고 나면, 마음과 귀만은 서로 안다네.
딱 제월당처럼 멀찌기 떨어져 있지도 않고, 계곡 바로 앞에 내려와, 흐르는 시내를 마루에 걸터앉아 바로 앞에서 굽어볼 수 있는 광풍각에서 한 자락 쉬어보는 게 다들 인지상정인 듯 합니다.^^
枕溪文房
시냇가에 누운 글방
窻明籤軸淨。水石映圖書。精思隨偃仰。妙契入鳶魚。
창이 밝아 책읽으니, 물 속 바위 위 책들이 어리네.
정신 들여 생각하고 마음대로 머무니, 오묘한 계합이 천지 조화라네 .
저도 잠깐 쉬어보기로 합니다... 그나저나 계곡 건너편 고사목은 안타깝기도 하고, 베어지기 전의 모습은 어땠을까 싶기도 합니다...
梧陰瀉瀑
오동나무 녹음 아래 쏟아지는 폭포
扶疏綠葉陰。昨夜溪邊雨。亂瀑瀉枝間。還疑白鳯舞。
무성한 푸른 잎의 그늘, 어젯밤 시냇가엔 비가 내렸네.
어지러운 폭포가 가지 사이로 쏟아지니, 다시금 백봉이 춤을 추는가 의심했네.
激湍菖蒲
창포가 세찬 여울가에 피다
聞說溪傍草。能含九節香。飛湍日噴薄。一色貫炎涼。
듣자니 여울 물가의 창포는 아홉 마디마다 향기를 머금고 있다.
나는 여울 물 날로 뿜어대니, 이 한 가지로 더위와 추위를 꿰뚫는다오.
小亭憑欄
작은 정자의 난간에 의지해
瀟灑園中景。渾成瀟灑亭。擡眸輸颯爽。側耳聽瓏玲。
소쇄원 안의 경치가 온전히 소쇄정이 되었네.
눈 들면 시원한 경치가 보이고 귀 기울이면 영롱한 소리가 들리네.
散池蓴芽
순채 싹이 연못에 흩어지다
張翰江東後。風流識者誰。不須和玉膾。要看長氷絲。
장한이 강동으로 돌아간 뒤에, 누가 풍류를 아는가.
꼭 농어회가 아닐지라도, 길게 자란 순채 싹 맛보려 한다네.
舂雲水碓
구름 위로 절구질하는 물방아
永日潺湲力。舂來自見功。天孫機上錦。舒卷擣聲中。
종일 좔좔 흐르는 물로 찧으니, 절로 찧어서 공이 이루어지네.
직녀가 베틀 위 비단을 짜듯, 방아 찧는 가운데 책을 걷으락 펴락.
叢筠暮鳥
저문 대밭에 새가 날아들다
石上數叢竹。湘妃餘淚斑。山禽不識恨。薄暮自知還。
돌 위 여러 무더기의 대나무 숲엔 상비의 눈물 자국 아직도 남았어라.
산새들은 그 어린 한을 알지 못하고, 저물어 돌아오면 제 깃 찾아든다네.
襯澗紫薇
배롱나무가 산골물 가까이에 피다
世上閒花卉。都無十日香。何如臨澗樹。百夕對紅芳。
이 세상 많은 꽃이 있다 하더라도, 열흘 이상 가는 향기 아주 없다네.
산골물가 배롱나무만은 어이하여, 백일 내내 붉은 향내를 맡게 하는고.
榻巖靜坐
평상 바위에 조용히 앉아
懸崖虛坐久。淨掃有溪風。不怕穿當膝。偏宜觀物翁。
낭떠러지 바위에 오래도록 앉았으면, 깨끗하게 쓸어가는 계곡의 시원한 바람.
무릎이 상한 데도 두렵지 않아, 만물을 관조하는 늙은이에겐 가장 알맞네.
광풍각의 위치가 쉬어가기 딱 좋은 것 같습니다^^
絶崖巢禽
새는 낭떠러지에 집 짓고 살다
翩翩崖際鳥。時下水中遊。飮啄隨心性。相忘抵白鷗。
새는 벼랑 끝에서 펄펄 날고, 때때로 물속으로 내려와 노니네.
마시고 쪼는 것 제 심성을 따른 것이니, 저 백구처럼 으레 서로 잊으리오.
遍石蒼蘚
바윗돌에 두루 덮인 푸른 이끼
石老雲煙濕。蒼蒼蘚作花。一般丘壑性。絶意向繁華。
오래된 돌에 운무가 스미니, 푸르고 푸른 이끼가 꽃이 되었네.
이러한 구학의 성품은 번화한 곳 향할 뜻이 없네.
迸石竹根
대 뿌리 바위틈에 서려 뻗다
霜根恥染塵。石上時時露。幾歲長兒孫。貞心老更苦。
하얀 뿌리 티끌에 더럽힐까 부끄러워, 가끔씩 돌 위에 뻗어 나오네.
어린 손주처럼 몇 해나 자라났는고, 곧은 마음은 오랠수록 더욱 모질구려.
透竹危橋
대숲 사이로 위태로이 걸쳐진 다리
架壑穿脩竹。臨危似欲浮。林塘元自勝。得此更淸幽。
골짜기에 걸쳐 죽림으로 뚫렸는데, 하늘에 둥둥 떠있는 듯 높기도 하여라.
숲 속 연못은 원래도 승경이었다만, 다리가 놓여 더욱 맑고 그윽하구나.
처음 소쇄원 사진을 찍을 장소를 여기로 하면 어떨까 생각했었는데, 한적한 분위기는 좋았지만, 앵글에 담고보니, 애양단이나 폭포가 담기지 않는 아쉬움이 있네요^^;;;
松石天成
천연의 소나무와 바윗돌
片石來崇岡。結根松數尺。萬年花滿身。勢縮參天碧。
조각난 돌이 굴러와 언덕을 이루니, 결국 뿌리를 내려 작은 소나무 되었네.
오랜 세월에 몸엔 꽃을 가득 피우고, 기세 곧아서 하늘 높이 솟아 푸르네.
隔澗芙蕖
연꽃이 개울 건너 피다
淨植非凡卉。閒姿可遠觀。香風橫度壑。入室勝芝蘭。
단정한 모습 평범한 꽃이 아니구려, 한가로운 자태 멀리서도 볼 수 있다네.
바람결에 실린 향내가 골짝을 넘어오니, 방안에 스며드는 것이 지란보다 더 좋구나.
이렇게 아쉬운대로 소쇄원에서의 소풍을 마무리하고, 이제 우리는 사돈인 김윤제 선생의 아지트, 환벽당으로 이동합니다... 그런데, 사답을 건너뛴 탓인지, 주차문제로 당황하게 될 줄은 몰랐네요@@
夾路脩篁
곧은 대숲에 좁은 길
雪幹摐摐直。雲梢嫋嫋輕。扶藜落晩籜。解帶繞新莖。
눈 쌓인 대 줄기 말없이 곧고, 구름에 덮인 대 끝은 바람에 가벼이 움직이네.
지팡이 짚고 묵은 대껍질 벗기고, 띠 풀어서 새 줄기 동여맨다네.
이제 우리는 사돈인 김윤제 선생의 아지트, 환벽당으로 이동합니다... 원래는 개인적으로 답사하던 시절, 인근에 주차장이 마땅하지 않아, 강을 따라 이어지는 길가에 그냥 주차하거나, 멀리서부터 걸어가기 마련이었는데, 혹시나 싶어 찾아보니, 환벽당 정문쪽에 넓찍한 주차장이 보여서 여기가 좋겠다 싶어, 회람하고 이동을 시작했습니다만@@ 들어가는 초입이 아주~ 좁고, 위의 파란 부분과 같이 늘어진 나뭇가지가 똿!! 예상치못하게 차를 가로막는 바람에@@ 후진해서 다른 주차장소를 찾아야 했네요==;; 그렇게 천신만고 끝에 강가 안쪽 언덕배기의 달마사 뒤쪽 주차장에, 그리고, 강가 노견에 그렇게 요령껏 차를 잠깬 대고, 우리는 삼삼오오 환벽당을 향했습니다.
식영정에 머물며 주옥같은 문학작품을 풀어냈던 사선(四仙), 임억령, 김성원, 정철, 고경명, 그 중 고경명 선생은 1574년 무등산을 유람하면서 마지막에 소쇄원-식영정-서하당을 들렀던 이야기를 유서석록에 남겼는데, 그 안에 환벽당 얘기가 있습니다.
高霽峯遊瑞石錄
고제봉유서석록
...
晡時投瀟灑園。乃梁山人山甫。舊業也。
해저물 무렵 소쇄원에 묵었는데, 이 곳은 양산보 선생의 옛 별서였다.
澗水來自舍東闕墻。通流㶁㶁。
누정의 동쪽으로부터 흘러온 시냇물이 담장을 뚫고 들어와 비단결같은 물줄기가 뜰 아래로 감돌았는데, 맑은 물소리는 구슬이 굴러가는 듯 하였다.
循除下上有略彴。略彴之下。石上自成科臼。號曰槽潭。瀉爲小瀑。玲瓏如琴筑聲。
그 위로 조그만 다리가 놓여 있었고 다리 아래에는 조담(槽潭)이라 불리는 바위가 오목하게 패였는데 고였던 물이 조그만 폭포가 되어 쏟아져 내리니 그 소리가 영롱하여 거문고를 튕기는 듯 하였다.
槽潭之上。老松盤屈如偃。蓋橫過潭面。小瀑之西有小齋。宛如畫舫。
조담의 위에는 굽은 노송이 일산을 편 듯 비껴 연못 위에 걸쳐 있었고 조그만 폭포의 서쪽에는 아담한 서재가 있었으니 완연히 화방(畵舫)과도 같았다.
其南累石高之。翼以小亭形如張傘。當簷有碧梧甚古。枝半朽。
그 남쪽에 높게 돌을 쌓아 조그만 누정을 세웠는데 일산과도 같았으며 처마 앞에 벽오동이 있었는데 고목이 되어반쯤 썩어 있었다.
亭下鑿小池。刳木引澗水注之。池西有鉅竹百挺。玉立可賞。
누정 아래에는 조그만 연못을 파고 나무 홈통에 시냇물을 끌어와 대었는데, 연못의 서쪽에는 대숲이 있어 백여 그루 대나무가 옥롱과 같이 높이 서 있어, 참으로 완상할 만하였다.
竹西有蓮池。甃以石引。小池由竹下過蓮池之北。又有水碓一區。所見無非瀟灑物事。
대숲 서쪽에는 연지가 있는데 둘레를 돌로 쌓여 있고, 시냇물을 끌어와 조그만 연못을 이루었다. 대숲 아래를 거쳐 연지의 북쪽을 지나면, 또 물레방아가 하나 자리잡았으니, 보이는 풍경이 소쇄하지 않는 것이 없었다.
而河西四十詠盡之矣。
김인후 선생의 40영 시에 그 아름다운 풍치가 모두 그려져 있다.
主人梁君子渟。爲先生置酒。日夕始到息影亭。卽剛叔別墅。
주인인 양군(梁子渟)이 선생을 위하여 간소한 연회를 베풀었다. 이날 저녁에 비로소 식영정에 당도하였으니 곧 김성원의 별장이었다.
先生倚檻寓賞。頗極從容。夜入棲霞堂。秉燭窮歡。興闌而罷。斯亦一時勝事也。
선생이 난간에 기대어 한가로이 감상하다가 밤이 되어 서하당에 들어가 촛불을 켜고 실컷 놀았는데, 흥이 다하고서야 자리를 파했으니, 이 또한 이 시절 뜻깊은 일이었다.
息影棲霞二額皆朴公詠。所題。而亭則八分而堂則篆也。
식영정과 서하당의 두 편액은 모두 박영(朴詠) 선생의 글씨로, 식영정은 팔분(八分) 서체이고, 서하당은 전서체(篆字)이다.
凡亭若堂之勝。已悉於石川之記而雜出於二十詠。八詠之中奚容贅焉。
무릇 식영정과 서하당의 아름다운 풍치는 이미 석천의 기문에 소상히 실려 20영과 8영 시에 나와 있으니, 새삼스레 지금 첨언할 필요있으랴?
堂後石砌數級。植以牡丹芍藥月季花日東躑躅皆殊品。不繁而麗。有自然之勝。
서하당 뒤에는 돌로 몇 단을 쌓아 모란, 작약, 월계화, 일동, 철쭉 등을 심었는데 모두 희귀한 종류로 번화하지 않고 청수하여 자연스런 멋이 있었다.
堂之乾隅。方塘半畒。種白蓮四五莖。以竹筧走泉。伏流階下而入于塘。塘之南有碧桃一株。其西有金櫻樹數本。蔓延墻上。
서하당의 서북쪽에는 10여평 되는 연못이 있는데 백련 4~5그루가 심어져 있었고 대 홈통에 끌어온 샘물이 뜰 아래를 거쳐 연못으로 흘러왔는데, 연못의 남쪽에는 벽도(碧桃) 한 그루가 있었고 그 서쪽에는 금앵수(金櫻樹) 몇 그루가 있어 담장 위로 뻗어 있었다.
自息影南望有亭翼然。前有盤石捍流。下有澄湫。
식영정에서 남쪽을 바라보니 정자가 날아갈 듯 서 있었고 그 앞에는 시냇물이 큰 너럭바위에 가로막혔는데, 아래에는 맑은 웅덩이가 있었다.
卽金斯文允悌故居。申靈川潛。扁曰環碧云。
이는 곧 김윤제 선생의 고택으로 편액이 신잠선생이 쓰신 글씨라 전하고 있다.
次環碧堂韻庚申夏
경신(庚申) 여름 환벽당 운에 차운하다.
烟氣兼雲氣 琴聲雜水聲 夕陽秉醉返 沙路竹輿鳴
연기는 구름기운과 섞어지고 거문고 소리는 물소리와 섞이네.
석양에 술 취하여 돌아오니 모랫길에 대가마가 삐걱 소리를 내네.
微雨洗林壑 竹輿聊出遊 天開雲去盡 峽坼水橫流
가랑비가 씻고 지난 숲 골짜기 가마타고 그냥 놀러 나갔는데
하늘 열리듯 구름은 흩어지고 넓은 골에 물은 비껴 흐르구나
白髮千莖雪 蒼松五月秋 飄然蛻蟻穴 笙鶴戲瀛洲
백발은 천 가닥 눈발과 같은데 저 푸른 솔 오월에도 선선하니
개미굴같은 이 곳 훌쩍벗어나 신선학 타고영주에 노니리라
自得顏瓢樂無心羿彀遊 夢涼松月上窓濕水雲流
분수에 만족하는 즐거움 얻으니 관직에 관한 마음도 없어지는데
소나무에 달 떠 잠도 설친 터에 물과 구름 흐른데라 창도 젖어
村酒寧嫌薄山田敢望秋 騎牛細雨裏吾道付滄洲
시골 술맛 없다 어이 꺼릴거며 산밭에서 감히 풍년까지 바라리
저 가랑비 속에 소타고 다니며 나의 풍류를 창주에 부쳐보리라
그런데, 늘상 쪽문으로만 걸어 올라오면서 봤던 환벽당과는 확연히 다른 인상이네요... 뭔가, 강가의 초록색 숲과 그 아래의 연두색 풀밭이 주는 포근함, 거기에 저 멀리 바라보면 파란 색의 산 봉우리들이 삐죽삐죽 올라와 장쾌함마저 느껴집니다 !!!
次環碧堂韻
환벽당 운에 차운하다.
一道飛泉兩岸間。採菱歌起蓼花灣。
한 줄기 샘물이 양 언덕 사이에 날리우고 여뀌꽃 물굽이에 마름캐는 노래가 이네.
山翁醉倒溪邊石。不管沙鷗自往還。
산늙은이 시냇가 돌에 취해 누우니 아무려나 모랫가 갈매기는 왔다갔다 하는구나.
소세양 선생이 남긴 題金牧使林亭序 시의 서문에서, 초창했을 때의 환벽당의 모습을 엿볼 수 있습니다...
題金牧使林亭序
김윤제 선생의 누정에 제하다.
金羅牧恭老氏。其先親元季。與余交甚密。嘗屢造其第。
나주목사 김윤제 선생의 선친 김후 선생은 나와 교분이 심히 돈독하여, 여러 차례 그 댁을 방문하였다.
第在光山之瑞石東麓。有泉石竹木之美。臨溪築臺。
댁은 광주 서석 동쪽 기슭에 있는데, 자연과 숲이 아름다운 곳이고, 강가에 축대를 쌓았다.
高可十丈。水至臺下。演迤渟滀。匯爲深潭。
높이는 가히 열 길이 되고, 물이 축대 아래에 닿는데, 넓게 흐르다 흥건하게 고이면, 모여 깊은 웅덩이가 되었다.
今聞恭老氏闢而增飾。亭宇煥然。其勝益奇。
지금 들으니, 김윤제 선생이 넓히고, 덧꾸며서 누정을 지으니 환하게 빛나니, 그 경치가 더욱 기이하고 빼어났다.
頃者。簡我求詩。屈指舊遊。已逾三紀。
최근에, 저에게 편지로 시를 청하시니, 햇수를 세어보니 예전 함께 유람했던 일이 어느덧 삼십여년이 되었다.
當時之存者。只吾一人。不勝悲感。書此以復。非敢爲詩。聊抒意耳。
당시 일행중 살아있는자는 오직 나 한 사람뿐이라, 슬픔과 감회를 이기지 못하여 이에 글로 회신드리거니와, 감히 시를 짓고자 함이 아니요, 다만 뜻을 조금 풀어낼 따름이다.
다른 방향으로 들어왔을 뿐인데, 이렇게나 완전히 다른 느낌을 주는 원림이었는 줄@@@
한 걸음, 한 걸음이 다 충격입니다!!! 당호에 걸맞는 이 푸르름에 멈춰 한 컷 찍고, 걷고 반복이네요^^ 이제 슬슬 답사 이틀째 오후 일정이 후반부로 접어듭니다...
次環碧堂宋判府韻
환벽당의 송판부 송순(宋純)의 시에 차운하다.
萬古仇池藏小天 白雲閑影自年年 危亭據石非無水 華屋依林更有山
만고의 구지 작은 하늘 간직하니 흰구름 한가로운 그림자 해마다 같도다
돌 위의 높은 정자 아래엔 물이 흐르고 숲속의 좋은 집 뒤에는 산도 있구나
不是遨頭甘落拓 應同谷口去夤緣 人生好醜君休說 且把深盃發浩然
오두되어 쓸쓸함을 달게 여긴 게 아니라 응당 곡구와 함께 인연을 버린거로세
인생의 곱고 추함 그대는 말하지 마소 우선 깊은 술잔 잡고 호연지기 발하노라
淸宵牕外立 迎月自開簾 圖影升空碧 明光輾小簷
맑은 밤 창문 밖에 섰다가 달을 맞아 발 걷어 올리네
둥근 그림자 푸른 하늘에 솟고 밝은 빛은 낮은 처마에 퍼지네
嬋姸三逕滿 皎潔一軒添 丘壑風流老 吾伊聲政尖
곱고 고와 삼경에 가득하고 희고 깨끗하여 마루에 들어 환하네
산골에 버려진 풍류 늙은이여 글 읽는 소리 참으로 거치네
여전히 씩씩한 세라는 무엇에 그리 몰두하고 있을까요 ?? ㅎㅎ 모쪼록 힘들기만 했던 외출이 아니었기를 바라지만, 아무래도 강행군이 되었을 것 같아서 미안하네요@@
예전같으면 이 문으로 올라왔을텐데,,, 지금 생각해보면, 앞으로는 정문으로 들어오는 게 더 낫겠다는 생각이 드네요^^
金彦勗,蔡光門,梁千尋,梁得遇,金百鎰,金礪諸君。來棲環碧堂。其還。以短律一篇。寫懷。
고경명이 김언욱ㆍ채광문ㆍ양천심ㆍ양득우ㆍ김백일ㆍ김려 등 제군이 환벽당에서 깃들다가 돌아가려 하자 이렇게 서운한 마음을 남기다.
我是逃空者。君爲悅臭人。半生攻篆刻。於道蔑涓塵。
남 모르게 숨어 살려고 하는데 자네들은 왜 나를 찾아왔는지.
나이는 벌써 반 평생이 지났어도 아무 쓸모없는 헛 이름 뿐이거늘.
旋見垂歸橐。無端濕別巾。荒詞出肝肺。應記老夫眞。
갑자기 모두가 흩어져가니 하염없는 눈물이 수건을 적시네.
짤막한 이 시 보잘것없지만 늙은 나의 심정 짐작하리라.
제 마음이 바로 이 마음 !!! 푸르른 산이 원림으로 들어와 연두빛 풀밭과 어우러지는 황홀함 !!!
環碧堂
환벽당
數曲煙溪淸若空 小堂閑夢蒲襟風
연기처럼 구불구불한 시냇물은 하늘마냥 맑은데, 낮잠자는 소당에선 베옷 소매에 드는 바람
覺來開戶無人見 斜日離離映水中
잠 깨어 창 밖에는 사람 하나 안 보이고, 뉘엿뉘엿 노을볕은 물 속에 비추이네.
이 경관을 마음에 담고, 우리는 바로 옆 취가정을 찾아 떠납니다... 김덕령 장군에게 김윤제 선생은 작은 할아버지인 셈입니다.
김덕령 장군의 경우, 실제 무공을 의심했던 조정에서 그 가혹했던 군령을 문제삼은 부분도 일부 있었다고는 합니다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무고로 옥사한 일은 두고두고 임금의 밝지 못한 처분이었음은 확실합니다... 오죽 문중의 억울함이 누정의 이름으로 전해왔을까 싶네요...
夢得一小冊。乃金德齡詩集也。 其首一篇曰醉時歌。余三復得之。 其詞曰。
꿈 속에서 작은 책 하나를 얻었는데, 곧 김덕령 장군의 시집이었다. 그 첫 번째 편이 "취시가"였는데, 내가 여러 번 반복해 읽어 뜻을 알게 되었다.그 시는 다음과 같다.
醉時歌此曲無人聞。
취해서 부르는 노래여, 이 곡조를 듣는 이 없구나.
我不要醉花月。 我不要樹功勳。
나는 꽃과 달에 취하고 싶지 않고, 나는 공훈을 세우고 싶지도 않다오.
樹功勳也是浮雲。 醉花月也是浮雲。
공훈을 세우는 것도 뜬구름이요, 꽃과 달에 취하는 것도 뜬구름이라.
醉時歌無人知我心。 只願長劍奉明君。
취해서 부르는 노래여, 이 곡조 아는 사람 없네. 내 마음은 다만, 긴 칼로 명군을 받들길 원할 뿐이네.
旣覺悵然悲之。爲作一絶。
이에 처연한 마음에 슬퍼하며 한 수 짓다.
將軍昔日把金戈。壯志中摧奈命何。
장군은 지난날에 창을 잡고 나섰건만, 장대한 뜻 중도에 꺾이니 운명을 어이하랴
地下英靈無限恨。分明一曲醉時歌。
지하에서 영령이 품었을 끝없는 한, 취시가 한 곡조에 분명히 드러나네.
나즈막한 둔덕 위에 터를 닦아 지은 누정 마루에는, 그리 오래되지는 않았지만 오래된 듯한 고색창연한 분위기를 잠시 음미해봅니다...
목릉성세에 걸맞지 않게, 아니 무색하게도 조선 일대의 전란을 대비하지 못했고, 수없이 많은 별같이 빛났던 뛰어난 신하들을 주체하지 못하고 우왕좌왕했던 옹졸한 군왕.... 그 끝은 또 못난이처럼 제 아들도 믿지 못해, 광해군을 끝까지 불신했었나 싶기도 하구요... 또 그 끝은 또 다른 전란을 자초하게 한 단초가 되었다고 하면, 비약일까요 ??
이제 남은 곳은 식영정과 명옥헌입니다... 몰아치는 일정이 이어지는 중에 다들 지치셨을 듯하지만, 그래도 잘 따라주셔서 무사히 또 다음 답사지로 출발합니다^^;; 양해해주셔서 다행~ 마무리까지 무탈하게 답사를 마무리할 수 있도록 조심조심 우리는 식영정을 향합니다...
이제 답사는 막바지로 향합니다... 증암천변의 마지막 답사지, 성산 자락의 오르막을 천천히 올라가다보면, 식영정이 있습니다... 예전에 계속 올때마다, 오르막길 초입 근처의 노견을 찾아 주차하곤 했지만, 이번엔 가사문학관 주차장에 차를 대고 올라가보기로 합니다...
여기는 서하당 건물이 보이는 평지에서 언덕배기의 식영정까지 길이 나있습니다. 물론 서하당도 들러보직 했지만, 미리 공부되어 있지 않아, 아쉬움을 뒤로 하고 우리는 식영정에 집중하기로 합니다^^;;
息影亭記
식영정기
金君剛叔吾友也, 乃於蒼溪之上, 寒松之下, 得一麓, 構小亭,
김성원군은 나의 벗인데, 창계의 위쪽, 푸른 솔숲 아래 한 기슭을 얻어서 작은 정자를 지었다.
柱其隅, 空其中, 苫以白茅, 翼以凉簟, 望之如羽盖畫舫,
모퉁이에 기둥을 세우고 가운데는 비워서, 흰 띠풀을 덮고 서늘한 대자리를 둘러, 바라보면 마치 화방(畫舫) 위에 깃털 일산(日傘)을 얹은 형상이다.
以爲吾休息之所, 請名於先生,
이에 내가 쉴 장소로 삼고는 나에게 정자의 이름을 청했다.
先生曰: “汝聞莊氏之言乎?
내가 말하기를, '그대는 장주(莊周)의 말을 들어봤는가?
周之言曰 ‘昔有畏影者, 走日下, 其走愈急, 而影終不息, 及就樹陰下, 影忽不見.’
장주가 말하기를, "옛날에 그림자를 무서워한 사람이 있었는데 낮에 달려가면 그림자는 더 빨리 달려서 그림자는 끝내 쉬지 않고 따라오다가 나무 그늘에 이르러서야 문득 보이지 않게 되었다."라고 하였다.
夫影之爲物, 一隨人形, 人俯則俯, 人仰則仰.
무릇 그림자는 끈질기게 사람을 따라다니니 사람이 엎드리면 그림자도 엎드리고, 사람이 쳐다보면 그림자도 쳐다본다.
其他往來行止, 唯形之爲然. 陰與夜則無, 火與晝則生,
그 밖에도 가면 가고 쉬면 쉬니 오직 그 형세대로 그리된다. 그늘이나 밤에는 없어지고 불빛이나 낮에는 생긴다.
人之處世, 亦此類也.
사람의 처세 또한 이런 식이다.
古語有之曰 ‘夢幻泡影.’
옛 말에, "사람의 한평생이 꿈이요, 허깨비요, 물거품이요, 그림자다(夢幻泡影)."라고 하였는데,
人之生也, 受形於造物, 造物之弄戱人, 豈止形之使影?
사람이 태어날 때 그 형체는 조물주에게서 받았으니, 조물주가 사람을 희롱함이 어찌 형체가 그림자를 부리는 것에 비하겠는가?
影之千變, 在形之處分, 人之千變, 亦在造物之處分,
그림자의 천변만화는 사람 형체의 움직임 여하에 달려 있고, 사람의 천변만화도 또한 조물주의 처분에 달려 있다.
爲人者, 當隨造物之使, 於吾何與哉?
사람은 마땅히 조물주가 시키는 대로 따를 뿐이니 내가 무엇을 어떻게 하겠는가?
朝富而暮貧, 昔貴而今賤, 皆造化兒爐錘中事也.
아침에 부자였다가 저녁에는 가난해지고, 전에는 귀한 사람이었다가도 지금은 천하게 되는 것이 다 조물주가 만들기에 달린 것이다.
以吾一身觀之, 昔之峩冠大帶, 出入金馬玉堂, 今之竹杖芒鞋, 逍遙蒼松白石,
내 한 몸으로 보더라도, 옛날에 높은 갓을 쓰고, 큰 띠를 두르고 조정에 출입하다가 지금은 대나무 지팡이 짚고 짚신 신고 산수 사이를 소요하고 있으며,
五鼎之棄, 而一瓢之甘, 皐䕫之絶, 而麋鹿之伴,
고관대작의 부귀를 버리고 선비의 가난한 생활을 달게 여기며, 조정의 어진신하들을 멀리하고 사슴과 벗을 삼았으니,
此皆有物弄戱其間, 而吾自不之知也,
이모두 중간에서 조물주가 희롱으로 그리 되었는데도 나 스스로 알지 못하는 것이니,
有何喜慍於其間哉?”
이를 두고 어찌 기뻐하고 성낼 것이 있겠는가?'
剛叔曰: “影則固不能自爲, 若先生屈伸, 由我非世之棄.
김성원군이 말하기를, '실로 그림자는 자기 마음대로 할 수 없지만, 선생님은 굴신을 내 마음대로 할 수 있으니 세상이 버린 것은 아닙니다.
遭聖明之時, 潛光晦迹, 無乃果乎?”
성군의 시대를 만나서도 재능을 숨기고, 자취를 검추어버려 이리 된 것이 아니겠습니까?'
先生應之曰: “乘流則行, 得坎則止, 行止非人所能,
내가 말하기를 '흐름을 타면 나아가고 웅덩이를 만나면 그치는 것이니, 가고 멈춤은 사람의 힘으로 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吾之入林, 天也, 非徒息影.
내가 임야로 들어온 것도 하늘의 뜻이지 한갓 그림자를 쉬게 하려 한 것이 아니다.
吾冷然御風, 與造物爲徒, 遊於大荒之野, 滅沒倒影,
내가 서늘한 바람 올라타, 조물주와 더불어 대황(大荒)의 들판을 노닐 적에 뒤집혀 따라오는 그림자 속으로 사라진다면,
人不得望而指之, 名以息影, 不亦可乎?”
사람이 바라보고도 뭐라할 수 없을 것이니 식영(息影)이라고 함이 또한 좋지 않겠는가?' 하였다.
剛叔曰: “今始知先生之志. 請書其言, 以爲誌."
김성원군이 말하기를, '이제야 비로소 선생의 뜻을 알겠으니, 그 말을 기록하여 기문(記文)으로 삼겠습니다.'라고 하였다.
癸亥七月日 荷衣道人書.
계해년(1563) 7월 하의도인(荷衣道人) 쓰다.
그림자가 쉬는 곳이면, 임억령 선생이 쉬어가는 곳일테니, 힘겹게 계단을 올라온 우리는 선생께서 머무셨던 그림자 핑게대어 쉬어가셨던 그 누정 마루에 잠깐 엉덩이를 붙여봅니다^^;; 한낮이 되어 이제 슬슬 더워질 시절이 되어서일까요 ? 꽤 기온이 올라 더운 느낌이 드네요...
그럴수록 간간이 불어오는 바람에 시원해지면, 그야말로 소나무 숲에 햇볕이 가려 그림자가 사라지고, 나도 사라지면, 세간의 거친 시선도 피할 수 있는 그런 순간이 될까요 ???
瑞石閑雲
서석산의 한가한 구름
溶溶嶺上雲。纔出而還斂。無事孰如雲。相看兩不厭。
한가로이. 산마루에 저 구름. 잠깐 날리더니 금방 걷히어 숨네.
한가할 때 제일 좋은 벗은 구름이니, 서로 보고 또 보아도 싫지가 않네.
蒼溪白波
창계의 흰 물결
古峽斜陽裏。蒼龍噴水銀。囊中如可拾。欲寄熱中人。
골짜기를 비추는 해는 서산에 빗겼는데 푸른 용이 수은(水銀)을 머금어 뿜누나.
그 고운 물방울 주머니 속에 주워 넣을 수 있다면, 더위 속 지친 사람에게 전해 줄텐데.
水檻觀魚
물 난간에서 바라보는 물고기
吾方憑水檻。鷺亦立沙灘。白髮雖相似。吾閑鷺不閑。
물 난간에 기대어 서 있노라니 모래톱 여울가에 해오라기도 서 있구나.
흰 머리는 네나 내나 같은데 나는 한가하다마는 너는 왜 그리 바쁜고.
陽坡種苽
양지 바른 언덕에 심은 오이
有陰皆可息。何地不宜苽。細雨荷鋤立。蕭蕭沾綠蓑。
그늘진 어디든 쉴 만한 곳 어느 땅인들 오이를 심지 못하리!
빗속에 호미 들고 서 있노라니 가는 비 부슬부슬 도롱이를 적시네.
碧梧涼月
벽오동에 비치는 서늘한 달
秋山吐涼月。中夜掛庭梧。鳳鳥何時至。吾今命矣夫。
가을 산이 시원한 달을 토해 내어 한 밤중에 뜰에 섰는 오동나무에 걸렸구려.
봉황은 어느 때에나 오려는고. 나는 지금 천명이 다해가는데.
蒼松晴雪
푸른 솔 위의 빛나는 눈
萬徑人皆絶。蒼松蓋盡傾。無風時落片。孤鶴夢初驚。
길이란 길은 모두 인적 끊기고 푸른 솔은 비스듬히 기울어졌네.
바람이 없는 데도 눈송이 우수수 떨어지니 나무에서 졸던 학이 놀라 꿈을 깨네.
釣臺雙松
조대의 두 그루 소나무
雨洗石無垢。霜侵松有鱗。此翁唯取適。不是釣周人。
비에 하도 씻기어 돌에도 때가 없네. 서리에 이겨져서 소나무엔 비늘 돋아.
이 늙은 낚시꾼에겐 알맞다마는 곧은 낚시 드리우던 강태공에겐 아니로구나.
環碧靈湫
환벽당 아래 영추
澄湫平少浪。飛閣望如船。明月吹長笛。潛蛟不得眠。
맑은 용추에 물결도 잔잔한데 날 듯이 솟은 정자 정말 배같구나.
밝은 달 아래 긴 피리 불고 있으니 잠긴 용도 잠 못 든다 투덜대겠지.
松潭泛舟
송담에 띄운 배
明月蒼松下。孤舟繫釣磯。沙頭雙白鷺。爭拂酒筵飛。
밝은 달 푸른 솔 아래 외로운 배를 낚시터 옆에 매었구나.
모래톱에 서 있는 두 마리 백로 서로 한 몫 다퉈 주연(酒筵)위를 빙빙 도네.
石亭納涼
석정에서 씻는 더위
礙目松爲蓋。搘頤石作床。蕭然出塵世。六月裌衣涼。
해를 가리는 소나무로 좋지! 양산을 삼자. 너른 바위 네가 곧 평상이다.
진세에서 떠나 소연히 있으니 유월인데 겹옷도 서늘하구나.
鶴洞暮煙
학마을의 저녁연기
孤煙生野店。漠漠帶山腰。遙想松間鶴。驚飛不下巢。
연기 모락모락 들판에서 일어나서 어느덧 아스라하게 산허리를 감고 도네.
아마 소나무 사이에서 졸던 학이 놀라 빙빙 돌며, 어랏! 내 둥지 어디인고.
平郊牧笛
들녘의 목동 피리소리
牧童倒騎牛。平郊細雨裏。行人問酒家。短笛山村指。
목동은 소를 거꾸로 타고는 가는 비 속에 들에서 돌아온다.
행인이 목동아! 술집이 어디냐? 단적(短笛)으로 산촌을 가리키며 저기요.
短橋歸僧
다리 건너가는 스님
深峽橫沙路。孤村照夕曛。一筇潭底影。雙眼嶺頭雲。
깊은 골짜기 오솔길 꼬불꼬불 외로운 마을에 저녁 해가 비치네.
못 속에 그림자! 저도 지팡이 짚고 있네. 바쁘다, 어서 가자 두 눈을 멀리 구름만 바라본다.
白沙睡鴨
흰 모래톱에서 조는 오리
溪邊沙皎皎。沙上鴨娟娟。海客忘機久。松間相對眠。
시냇가의 가는 모래 희고도 희다. 모래 위에 섰는 오리 곱고도 곱고.
떠도는 나그네 세상 일 다 잊어 솔 사이에 마주 누워 잠을 자누나.
鸕鶿巖
가마우지 바위
蒼石水中央 。 夕陽明滅處 。 鸕鶿驚路人 。 飛向靈湫去 。
이끼낀 바위 물 가운데 있는데 저녁 햇빛에 반짝반짝 빛나는구나
길가는 나그네에 놀란 가마우지 영추(靈湫)를 향해 날아가는 도다.
紫薇灘
배롱나무꽃 핀 여울
誰把中書物 。 今於山澗栽 。 仙粧明水底 。 魚鳥亦驚猜 。
누가 가장 아끼던 것을 산 아래 시내에다 심었나 보다.
신선이 단장하는 맑은 물 아래 어조(魚鳥)도 놀라서 시샘을 하네.
桃花徑
복숭아꽃 핀 오솔길
石徑雲埋小 。 桃花雨剪齊 。 更添今日寂 。 正似昔人迷 。
돌길은 구름에 붇혀 비좁은데 복사꽃 비에 떨어져 곱게도 깔렸네.
오늘따라 호젓하기 그지 없으니 옛님이 길 잃었던 곳 예 아닌지.
芳草洲
향기풀 핀 모래톱
晴沙明似雪 。 細草軟勝綿 。 中有白頭璟 。 閑隨黃犢眠 。
고운 모래 눈처럼 희고 애기풀은 솜보다 더 부드럽구나.
섬 가운데 머리 흰 늙은이 한가로이 송아지따라 졸고 있네.
芙蓉塘
연꽃 핀 연못
白露凝仙掌 。 淸風動麝臍 。 微時可以削 。 妙語有濂溪 。
넓은 손바닥 같은 연잎에 이슬 내렸는데 사향노루 배꼽을 청풍이 스쳐간다.
하찮은 나의 시야 버려도 괜찮거니와 주렴계의 말에는 아름다움이 넘친다네.
仙遊洞
신선이 노는 동네
蒼溪小洞天 。 明月淸風裏 。 時下羽衣翁 。 不知何道士 。
푸른 시내곁 작은 마을은 밝은 달 맑은 바람 사는 곳이지.
요즈음 깃털 옷 입은 늙은이 있는데 어떤 도사인지 알 수가 없네.
세라는 카페를 꾸며 할머니와 소꿉놀이를 합니다^^ 덕분에 우리는 이틀간의 강행군에 피곤한 중에도 웃음꽃이 끊이질 않았네요^^
이제 우리는 마지막 답사지 명옥헌을 향합니다... 증암천 가를 벗어나, 성산을 둘러 돌아가면, 저멀리 후산마을로 어느덧 접어들게 됩니다... 오희도 선생이 외가인 후산마을에 지은 서재, 망재(忘齋), 그 근처에 다시 지어진 명옥헌, 물 흐르는 소리가 마치 구슬 굴러가는 듯하다는...
鳴玉軒記
명옥헌기
古稱藍田多玉。日出則冉冉生煙。崑丘之產。爲世所珍。
옛말에 남전에는 옥이 많이 났고, 해 떠오를 때면 은은히 안개가 피어오른다는데, 곤륜산에 나는 옥은 세상 사람들이 귀하게 여겼다.
豪貴勢家。用爲杯著器皿者頗多。非寒士逸人所可得以有之者也。
권문세가에서는 그것을 술잔이나 그릇으로 쓰지만, 가난한 선비나 은자가 가질 수 있는 게 아니다.
吾黨有吳君明仲。本寒介也。守志丘園。無求於世。
내 문도 중에 오명중이라는 이가 있는데 그는 가난하나 강직한 사람으로, 시골에서 지조를 지키며 세속에 기대지 않았다.
迺於后山支麓。築數間小屋。屋後有一道寒泉。
㶁㶁循籬以入。其聲如玉碎珠逬。令人聽之。 不覺垢穢之消滌而淸涼之來襲也。
이에 후산(后山)에 두어칸 집을 지었는데, 집 뒤에 있는 샘으로부터 울타리를 돌아 흘러 내려오는 소리가, 마치 옥구슬이 구르는 듯하여, 듣는 이로 하여금 저도 모르게 더러운 때가 씻기고, 말고 서늘한 기운이 스며드는 것을 느낀다.
每於靜夜閑時。或寐或訛。只覺爽氣襲襟。涼霧沾座。怳然致身於瑤宮桂掖。
吸沆瀣而嚥珠求也。
매번 고요한 밤 한가한 때에 졸기도 하고 잠들기도 하며, 그저 상쾌한 기운이 옷깃을 스쳐오는 것이 느껴지는데, 서늘한 안개가 자리를 적시듯 내려앉아, 문득 몸이 황홀한 기운 속에 요궁과 계수나무 뜰 안에서,
청령한 기운을 들이마시고, 구슬과 옥을 삼키는 듯하였다.
水之性淸。淸則無塵。無塵則自無滓濁。
물의 본질은 깨끗한 데 있는데, 깨끗하기 때문에 티끌이 없고 티끌이 없기에 스스로 혼탁함이 없다.
及其爲狂潦所湊。惡風所簸。終未免掀擺奔逬。失其故性。而其淸故自若也。
그러나 때로 미친듯 휘몰아치는 폭풍우의 거센 바람에 이리저리 흔들리니, 결국 요동치고, 흔들리며, 사방으로 흩어지고 마니, 본래의 고요하고 순수한 성질을 잃게 되지만, 그 본연의 맑음은 여전히 흐트러짐이 없다.
人之受於天者。初無淸濁粹駁之異。
日與物鬪。時隨化去。終不能守吾天而終吾年也。
하늘에서 받은 인간의 본질 또한 처음에는 맑고 흐림, 순수함과 혼탁함의 구별이 없었다가, 나날이 세상과 부딪히며 세월에 따라 변화하며 흘러가니, 끝내 나의 천명을 지키며 일생을 마칠 수 없었다.
今君早能擺脫羈馽。遊戲文墨。其於古今作家。亦不可謂不涉其流者也。 終不以趢趗趨營爲務。
이제 그대는 이미 굴레를 벗어나, 문장을 지으며 한가히 노닐게 되었으니, 고금의 문장가들에 비춰봐도 결코 그 반열에 들지 않았다 할 수 없으되, 끝내 세속의 분주한 일에 자신을 내어맡기지 않았다.
倘來外至爲累。得一畝閑田地。便自快足。若將爲終老計。
혹 세속의 일로 번거로워진다해도, 한적한 밭 한 뙈기 만으로도 넉넉하고 흡족해지니, 마치 장차 여기서 여생을 보내고자 한 듯하다.
其與汩沒坌濁與瓦礫同區者。相去何如也。抑余因此有所感矣。
혼탁한 세속에 휘말려 깨진 기와, 자갈과 다름없는 무리와 어울리는 이들과 얼마나 다를지, 실로 나 역시 감회를 금할 수 없다.
古人比德於玉。於記詳之矣。使公其能秉心。如玉無瑕。不磷不毀。
옛사람들은 덕을 옥에 비유했고, 그 연유는 기에 상세한데, 공이 곧은 마음을 지킨다면 옥처럼 티없이 맑고, 빛이 바래거나 훼손되지 않을 것이다.
又能如水之淸而無滓。不受塵垢之汚。泥沙之淈。則其皭然皎然。
또한 물처럼 맑고 깨끗하여 때와 티끌에 물들지 않을 수 있다면, 진흙과 모래같은 더러움 속에서도, 그 빛은 오히려 더욱 맑고 환하게 빛날 것이다.
沖如澹如。接太素而超汩濛。豈常流小淙之所可混同而泯沒而已也。
맑고 잔잔하며 만물의 순수한 근원과 맞닿아 어지럽고 혼탁한 속세를 초월하는 듯하니, 어찌 흔한 작은 시냇물처럼 섞여서 흔적없이 사라져 버릴 일이겠는가?
若余半生。落在塵寰。未免改步改玉之譏。何能借君一半山麓。
만약 나의 반생을 세속에 내맡긴다면, 본래의 걸음, 옥과 같은 본성을 바꿨다는 비난을 면하기 어려울 것이니, 어찌 감히 그대의 산기슭 절반이라도 빌릴 수 있을까.
誅茅卜居。以畢餘生耶。今因記公之軒。不覺氣涌如泉。遂奮筆掀髥以記。
초가집을 지어 거처를 정하여 남은 여생을 보내고자 하니, 지금 공의 서재에 대한 기를 쓰다 보니, 묻득 기운이 샘솟아, 붓을 힘차게 들어 이 글을 남긴다.
지금 백일홍이 꽃피는 시절이 아니라, 상상만으로 저 아래 많은 배롱나무에 꽃이 피었다면 이랬을까 상상만 해보게 되네요... 저 멀리 공영주차장에서부터 천천히 마지막 답사지를 향해 후산마을을 가로질러 올라온 우리는, 아담한 연못가를 따라 올라와, 명옥헌 앞에 섰습니다...
그런데, 구슬 굴러가는 소리마냥 시냇물 소리가 어떻게 날지 궁금했던 차에, 호걸님이 먼저 명옥헌 왼편 언덕위를 살펴보시더니, 작은 웅덩이와 그 입수부에 바위에 물줄기가 부딪쳐 소리가 크게 날 수 있도록 만들었던 것 같다고 알려주시네요^^
瑞石山勢東南來 圓崖綠水相還回
서석산이 동남으로 내려와, 둥근 절벽 푸른 냇물 마주 돌아 되돌아 오네.
一區林壑小椀麓 三椽草舍憑雪微
수풀 우거진 계곡 한 켠 작은 밥그릇마냥 기슭에, 아담한 초당 위엔 희미하게 잔설이 남아 있네.
問誰作主往其間 明谷高人占淸閑
묻노니 누가 주인이 되어 그 곳에 머물렀는가, 명곡(明谷) 선생께서 맑고 한가로운 이 곳에 머무셨다네.
弱冠飛英翰墨場 爭名齟齬仍摧顔
약관에 문명을 날리셨으나, 다투고 부딪히다 이내 몰러나셨다네.
여기에도 송시열의 글씨라고 하네요...
명옥헌보다는, 이 곳을 지키는 문중과 관련해서 약간의 잡음이 있긴 있었나봅니다... 위에 번역한 기문과 관련된 문제, 여기저기 역사적으로 확인되지 않은 석물과 관련된 논란들, 건물 안에 걸여 있는 삼고(三顧)도, 능양군과의 일화가 과장되었다는 말도 있고, 이래저래 현장에서 옮기지 못한 이런저런 얘기도 남겨봅니다...
그럼에도 이 초록초록한 연두빛, 구릉 위에서 내려다보는 연못과 배롱나무 숲, 5월이네요..
오붓하게 모인 10명 답사객과 함께한 빡쎈 이틀간의 전주부터 시작하여 담양 일대의 많은 누적을 망라해보느라, 다들 녹초가 되셨을 거라 죄송한 마음@@ 그래도 무사히 큰 사고 없이 마무리되고나니, 후산마을 주차장 한 켠에 있었던 카페 오팔에서 가볍게라도 차 한잔을 나누면 좋겠다 싶긴 했습니다...
귀갓시간 여유가 없어서 결국 각자 들고 귀갓길 차안에서 음미하기로 하고, 다같이 인사나누고 다음 기회를 기약하면서 답사를 정리했네요^^
모두들 이틀 답삿길 함께 해주셔서 감사~ 다음 답사때 또 뵈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