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상도에서 전라도 남쪽 끝에 있는 월출산으로
월출산은 전라남도 영암과 강진 사이에 있는 국립공원이다. 영암군과 강진군의 경계가 되고 있으며, 최고봉은 810.7m인 천황봉이다. 월출산은 수려한 경관을 자랑하는 것으로 이름 높지만 인구가 많은 수도권과 경상도에서 멀어 연간 탐방객 수는 항상 꼴찌를 달리고 있다. 나 또한 월출산 국립공원에 가기 위해 큰 결심을 해야했다. 처음 월출산에 가기로 결정한 당시 포항에 거주하고 있었는데, 포항에서 영암까지 가려면 고속버스를 타고 광주까지 간 뒤 영암으로 가는 버스로 갈아타야 했던 것이다. 이동하는 데 걸리는 시간만 무려 5시간이나 걸리는 강행군이었다. 당일에 월출산 등반까지 하는 건 도저히 무리라고 판단해 금요일 밤에 광주까지 가서 목포로 가는 버스를 탔다. 목포에 간 이유는 영암에 가는 버스가 상대적으로 많고 거리가 가까워 아침 일찍 등산을 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국립공원 이야기 25 - 월출산 국립공원 (月出山 國立公園)
월출산은 ‘달이 뜨는 산’이라는 이름에 걸맞게 아름다운 자연경관과 유수한 문화자원, 그리고 남도의 향토적 정서를 갖추고 있는 한반도 최남단 산악형 국립공원이다. 56.1㎢의 작은 면적에 암석노출지와 수량이 적은 급경사 계곡이 많아 자연생태계가 풍부하게 유지되기엔 불리한 조건이다. 하지만 오랜 세월동안 암석 지형에 적응해 온 생태적인 독특성과 난대림과 온대림이 혼생하는 위치 여건으로 인해 국립공원으로 지정되어 보호받기에 충분하다.
월출산 국립공원의 특징으로 설악산 못지 않게 다양한 기암괴석을 꼽을 수 있다. 큰바위 얼굴 형상을 한 장군바위, 부처님을 닮은 불상바위, 돼지와 비슷하다 하여 이름 붙여진 돼지바위 등 각양각색의 바위를 탐방로를 걸으며 볼 수 있다. 천황사에서 출발하는 탐방로를 따라 구름다리에 도착하면 영암평야를 배경으로 펼쳐진 기암괴석의 모습이 가히 장관이다.
자연경관 뿐 아니라 월출산이 품고 있는 문화유산 또한 가치가 높다. 천년 이상의 역사와 국보급 문화재를 보유하고 있는 도갑사와 무위사는 고색창연한 분위기 속에서 아름다운 모습을 드러낸다. 월출산 정상부에 위치한 마애여래좌상은 대한민국에서 가장 높은 곳에 위치한 국보다. 불교 유적뿐 아니라 월출산 주변에서 발견되는 청동기 유적은 오래 전부터 월출산이 사람들이 벗삼아 살아가기에 좋은 곳임을 알게 한다. 월출산은 가히 남도답사 일번지로 꼽아도 손색이 없는 산이다.
주요 탐방로는 천황사터에서 천황봉-구정봉-도갑사로 이어지는 종주 코스로 6시간이면 완주할 수 있다. 월출산의 구름다리는 우리나라에서 가장 높은 곳에 위치한 구름다리이며, 구정봉의 아홉 개 물웅덩이, 미왕재의 억새밭은 종주 코스에서 만날 수 있는 멋진 풍경이다.
실패로 끝난 단풍 산행, 그럼에도 아름다웠던 월출산
처음 월출산에 갔을 때는 11월 중순이었다. 이미 대한민국 다른 지방은 단풍이 지고도 남았지만 전라남도는 단풍이 절정에 이르는 시기라 하여 마지막 단풍 산행으로 월출산을 찾았다. 하지만 온도가 급격하게 내려가 월출산과 대둔산을 비롯한 전라남도 남쪽의 산들 또한 단풍을 찾기는 어려웠다. 아침일찍 도착해 바라본 월출산은 단풍은 커녕 눈없는 겨울산 풍경에 불과했다.
하지만 이 먼 곳까지 찾아온 이상 산행을 하지 않을 수는 없었다. 큰 맘 먹고 와야하는 전라남도 여행은 비가 오든 눈이 오든 숙소에서 시간을 보내기엔 너무나 아까웠다. 원래 계획대로 종주 코스를 따라 걷기로 결심하고 천황사지에서 산행을 시작했다. 천황사는 말 그대로 절터밖에 안 남은 곳으로 최근에 지어진 불당은 아무 특색이 없었다.
천황사에서 정상인 천황봉까지 가는 길은 두 개가 있다. 구름다리를 지나지 않고 책바위를 거쳐 곧장 정상으로 향하는 길과 구름다리를 지나 사자봉을 거쳐 천황봉으로 가는 길이 있는 것이다. 처음 월출산을 찾는 이라면 구름다리를 통해 가는 것을 추천한다. 구름다리에서 보는 풍경이 월출산의 상징이라고 할 수 있을 정도로 아름답기 때문이다. 설악산의 기암괴석을 보기 위해선 1,000m가 넘는 능선을 올라야 하지만 월출산은 1시간 정도만 투자하면 구름다리 위에서 시인묵객들이 옛부터 노래하던 금강산을 보는 기분을 느낄 수 있다.
천황사지에서 천황봉까지 가는 길은 온통 바위로 이루어진 길이라 거리에 비해 난이도가 꽤 있는 편이며 낙석 또한 주의해야 한다. 사자봉을 통해 천황봉까지 가더라도 2시간 정도면 도착할 수 있다. 월출산을 종주하려는 탐방객은 천황봉까지 왔다면 남은 길은 그리 어렵지 않은 능선길이다. 능선을 따라가며 월출산의 다양한 바위를 감상하고 영암평야와 강진평야의 논을 보며 전라남도의 곡창지대가 얼마나 기름진 땅인지 깨달을 수 있다.
구정봉
천황봉에서 도갑사 방향으로 걸으면 통천문-불상바위-돼지바위-남근바위를 지나 바람재가 나온다. 바람재에서 15분 정도 걸으면 구정봉으로 가는 갈림길이 나온다. 구정봉을 보지 않고 도갑사로 곧장 향할 수도 있지만 앞에서도 말했듯이 전라남도 여행은 최대한 많이 보려고 노력할 수밖에 없는 형편이다. 베틀굴을 지나 구정봉에 오르면 아홉개의 물웅덩이를 볼 수 있다. 구멍이 날 수 없는 단단한 바위에 물이 고여있는 모습을 보면 자연의 힘이 신비하기만 하다.
월출산 마애여래좌상
구정봉에서 내리막길을 따라 내려가면 월출산이 품고 있는 국보인 월출산 마애여래좌상과 용암사지 삼층석탑이 나온다. 월출산의 신령한 기운은 험한 산 중턱에도 용암사라는 절을 자리잡게 만들었나보다. 월출산 마애여래좌상은 높이 8.6m의 거대한 불상으로 불상의 오른쪽 옆에는 부처님을 향하여 예배드리는 모습을 한 86cm의 동자상도 있다. 머리 위에는 크고 높은 상투 모양의 육계가 있고, 신체에 비하여 비교적 큰 얼굴은 근엄하고 박력있는 느낌을 준다. 오른쪽 어깨를 드러내고 있는 옷은 얇게 표현하여 신체의 굴곡을 잘 드러낸다. 당당한 신체에 비하여 팔은 가늘게 표현하고 있으며, 왼손은 손바닥을 위로 하여 무릎 위에 올린 항마촉지인을 하고 있다. 연꽃무늬와 덩굴무늬를 새겨 넣고 가장자리에 불꽃무늬를 새긴 광배 또한 아름답다. 형태를 보면 통일신라 후기에서 고려 초기에 만들어진 작품으로 짐작된다.
용암사지 삼층석탑
용암사지 삼층석탑은 절터에서 1955년에 ‘용암사’라고 쓰인 기와가 출토되어 절의 이름이 알려졌다. 둘레에 구역을 조성한 기단은 각 면마다 모서리와 가운데에 기둥 모양을 본떠 새겨두었다. 기단의 윗면에는 괴임 2단을 별도의 돌로 끼워두었다. 탑신은 비례미가 뛰어나며, 1층 몸돌은 2매의 돌로, 2층과 3층은 1매의 돌로 구성하였다. 석탑 꼭대기에는 머리장식을 받치던 네모난 받침돌만 남아있다. 아래층 기단에서 다양한 불교 유물이 발견되어 용암사에 대한 단서를 제공하였다.
월출산 중턱의 용암사지를 보고나면 다시 오르막길을 타고 구정봉을 지나 향로봉 삼거리까지 가야한다. 용암사지에서 큰골로 내려가는 길은 폐쇄구간으로 출입이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어차피 나는 도갑사로 가려 했기 때문에 왔던 길을 되돌아가 향로봉을 지나 미왕재 억새밭으로 향했다. 비록 단풍은 보지 못했지만 억새밭은 노란색 물결로 뒤덮여 화왕산이나 간월재에 온 느낌이 들었다. 가을에 월출산을 찾은 보상으로 아름다운 억새밭을 볼 수 있어 행운이었다.
미왕재
미왕재에서 도갑계곡을 따라 절까지 가는 길은 완만한 경사길으로 1시간 10분이 걸린다. 도갑계곡의 끝에는 용수폭포가 있어 시원함을 더한다. 도갑사는 신라 말에 도선국사가 지었다고 하며 고려 후기에 크게 번성했다고 한다. 안타깝게도 도갑사 또한 한국전쟁의 화마를 피하지 못 했지만 국보 1점과 보물 4점이 아직도 남아 소중한 역사를 전하고 있다.
도갑사의 유일한 국보는 해탈문으로 모든 번뇌를 벗어버린다는 뜻을 갖고 있다. 앞면 3칸・옆면 2칸의 크기이며, 좌우 1칸에는 절 문을 지키는 금강역사상이 서 있고 가운데 1칸은 통로로 사용되고 있다. 건물 위쪽에 ‘월출산도갑사’라는 현판이 걸려있으며, 반대편에는 ‘해탈문’이라는 현판이 걸려있다. 비록 보기엔 단순한 목조 건축물일 수 있지만, 도갑사 해탈문은 춘천 청평사 회전문과 함께 우리 나라에서 흔하게 볼 수 없는 산문 건축을 보여준다.
도갑사 석조여래좌상은 투박하고 생략이 강한 고려 시대 양식을 대변하는 불상이다. 몸체와 광배가 하나의 돌로 조각되어 마치 바위에 직접 불상을 새긴 마애불을 보는 듯하다. 대체적으로 표현이 투박하고 옷주름이나 광배 또한 생략이 강하여 밋밋하다는 느낌이 강하다. 고려 시대에 전성기를 맞이한 도갑사기 때문에 신라시대의 화려했던 불상보다 대중에게 친근한 불상이 만들어졌을 것이다.
목조문수·보현동자상은 도갑사 해탈문 안에 있는 보물이다. 사자와 코끼리를 타고 있는 두 동자상은 높이가 약 1.8m에 달하며 크기와 조각기법 또한 비슷하다. 두 동자상은 동물상과 따로 만들어 결합하였으며, 두 손도 따로 만들어 끼웠다. 도갑사의 불상과 다르게 동자상의 머리를 묶은 모양새가 화려하고, 이목구비가 원만하여 동자의 천진스러운 모습을 잘 나타내고 있다. 사자와 코끼리를 탄 동자상은 대한민국에서 목조상으로는 유일한 작품이다.
영암 도갑사 도선국사・수미선사비
도선국사・수미선사비는 도갑사를 창건한 도선국사와 조선시대 활약한 수미선사의 행적을 기록한 5.17m 높이의 거대한 석비다. 석비를 받친 귀부는 머리를 오른쪽으로 약간 튼 형태이며, 입에는 여의주를 물고 있다. 앞발과 뒷발은 각각 5개와 3개의 발가락이 표현되어 있으며, 꼬리는 살짝 돌려 왼쪽 발의 허벅다리에 닿아있다. 비는 대리석으로 만들어졌으며, 비의 꼭대기에 올려진 이수는 2마리의 용이 돌 양끝을 물고 있는 형상이다. 비를 제작하는데 무려 18년이 걸렸다고 하며, 조선후기 조각사를 연구하는 데 귀중한 자료로 사용되고 있다.
도갑사 오층석탑
도갑사 오층석탑은 고려 초기에 조성된 것으로 여겨지며, 전체적으로 균형이 잡힌 안정된 조형미를 뽐내고 있다. 원래 하층기단을 잃은 채 단층기단 위에 5층의 탑신이 있었으나, 도갑사 경내에서 하층기단부가 발견되어 대웅전 앞에 복원하였다.
영암은 갈낙탕으로 유명하다
종주코스를 따라 걸은 탐방객은 대부분 대중교통을 이용할 것이다. 국립공원이 품고 있는 유명한 절은 대중교통이 편리한 경우가 많지만, 월출산은 예외다. 도갑사와 천황사 모두 하루에 네 편 또는 다섯 편만 운행되므로 운이 나쁘면 한 시간 넘게 기다려야 하는 경우도 있다. 하산을 할 때 시간을 잘 맞춰 버스를 타거나 택시를 이용하는 편이 낫다.
월출산을 다시 찾기로 결심하다
다시 월출산을 찾을 때는 노란 물결이 가득한 수확철이었다
월출산 종주를 마치고 영암읍으로 향하며 가족들과 함께 월출산을 다시 찾기로 결심했다. 월출산의 아름다운 풍경이 뇌리에 선명하게 남아있는데다 설악산만큼 힘들지 않기 때문에 부모님과 함께 산행하기에도 적합한 곳이었다. 다음 추석 때 월출산을 산행하고 월출산이 품은 또 다른 절인 월남사지와 무위사를 둘러보며 월출산의 매력에 흠뻑 젖어보기로 했다. 유홍준 씨의 ‘나의 문화유산 답사기’를 읽은 사람이라면 남도답사일번지로 월출산을 반드시 찾도록 하자. 그가 일번지로 꼽은 이유를 몸소 느낄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