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미희 동시 레시피 연재-오늘의 날詩
탄 식빵의 날씨
오늘 나는 심장까지 까맣게 타버렸답니다.
코의 활약으로 제 임종 임박을 알아차린 주인님은 사색이 된 얼굴로
급히 가스 불을 끄더니 나를 하얀 접시에 눕히더군요.
나는 주인님이 자신의 오른손을 향해
“이보게, 메스!”
(발음에 주의 하세요-누운 나에게 덩어리나 수학을 내밀진 않겠죠.)
라거나,
“가위!”
(수술할 때 가위를 영어로 말하나요? 의학 드라마를 건성으로 본 후회가 몰려옵니다. 아, 가위 대신에 '컷'이라고 말한 게 불현듯 떠오릅니다.)
따위를 외칠 줄 알았어요.
누구나 잊고 싶은 역사는 있기 마련이라 검게 얼룩진 내 몸을 도려낼 줄 알았거든요.
내 몸에 흑역사를 지우고 나면 그야말로 혀끝이 밟아야 할 유적지는 너무나 소소하여 식빵으로서의 정체가 소멸할 위기에 처했지요.
나는 이 집의 마지막 보루! 식빵 한 조각이었고 주인님은 지금 나를 취하지 않으면 위장의 반란에 멸망할 지경이었어요.
이심전심이었을까요?
주인님은 부활을 믿더군요. 오롯이 나를 거두기로 했나 봅니다.
지금은 밤 12시. 밖은 온통 어둠에 덮였고 푸른 아파트는 암막을 두른 듯 검고 구름 한 점 알아볼 수 없었지요.
먹물을 뒤집어쓴 빵으로 여기기로 했을까요?
(눈을 속이기 위한 기술 들어갑니다.)
주인은 집 안의 불이란 불은 죄다 껐어요. 그리고 간곡한 기도를 올렸어요.
“혀님이시여! 당신에게 5분간 잠들 것을 강요하노니 부디 경고를 받아들이시어 이제껏 경험하지 못한 바삭한 식감을 탐하지 마시옵고 검은 물이 드는 것을 노여워 하지 마시옵고 암세포라는 놈이 기웃거리거든 하이킥을 날려 주시옵고 건망증으로 괴로워하는 나의 실수를 혀 감아 주시옵고 이건 요리라 명명하기 어려우니 절대로 호기심을 발동하지 마시옵소서. 마지막으로 야심한 밤 위장이란 놈의 몹쓸 욕구가 바람직하지 않았음을 일깨워 주시옵소서.”
기도를 마친 주인은 입을 벌려 내 몸을 우걱우걱 밀어 넣었지만 바삭거리는 소리까지 막진 못했어요. 맛있는 소리로 귀를 속이는 데는 성공했다고 뿌듯함을 느끼기로 한 듯해요. 혀님은 늦은 밤이므로 귀찮음을 가장하여 ‘나 몰라라 정신’을 유감없이 발휘해요.
하루가 어떻게 지났는지 모르겠습니다. 하루만 더 있었다면 제 몸에는 곰팡이란 놈의 습격을 받을 뻔했지요. 위기를 넘어 다시 위기에 봉착한 참 지조 있는 삶이었습니다.
오늘 날씨는 검은 빵 사이로 먹을 만한 빵 조금이라고 말하겠어요.
까만 날/김미희
까만 식빵을 발견한 까만 토끼
까만 밤에 까망 까망 두 마리
만져보고 흔들어보고
깨웠지만 대답이 없다
딱딱하게 식었다
식빵은 이미 떠난 뒤였다
까만 토끼는 꺼이꺼이 울며
까만 식빵을 보냈다
식빵은 이다음에
까만 토끼로 태어나고 싶었다
울어주는 토끼가 되고 싶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