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세기 북아메리카 대륙의 인삼 채취 열풍은 곧 무분별한 채취로 이어졌다. 인삼이 멸종될지도 모른다면서 우려했지만 지나친 채취를 막을 길은 없었다. 점차 인삼을 찾아볼 수 없게 된 지역들이 늘었다. 다량 채취와 대규모 수출이 불러온 또 다른 문제는 가격 하락이었다. 프랑스 상인들이 가져간 캐나다인삼을 중국 상인들은 아시아삼과 섞어 팔아 엄청난 이익을 남겼다. 하지만 이런 추세에 맞춰 인삼을 지나치게 많이 수출함으로써 결국 가격이 폭락하는 일이 벌어졌다. 북아메리카 대륙에서 인삼 발견의 역사는 점차 서부로 확장해가는 백인들의 이주 움직임과 그 궤적을 같이한다. 인삼 발견 소식은 특정 지역에 대한 이주민의 진입을 의미했지만 곧이어 정착민이 많아지면 인삼은 급격히 사라지는 경향을 보였다. 하지만 인삼 붐이 그치지 않고 계속되었기 때문에 인삼의 고갈이 두드러지기보다는 오히려 수확 가능한 지역이 지속적으로 확대되는 것처럼 보였다. 미국에서 인삼 채취의 역사는 미국의 경제적 독립 과정을 함축적으로 보여준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미국은 1783년 미국은 파리조약을 통해 완전한 독립국으로 인정받게 된다. 독립 전까지 미국삼은 중국에 직접 수출한 것이 아니라 영국이나 프랑스로 수출된 후 유럽에서 중국으로 수출되는 형편이었다. 독립과 더불어 미국은 곧바로 중국과 직접 교역을 꾀했다. 미국 입장에서 중국과의 교역이 절실했던 이유는 차 때문이었다. 차는 동인도회사가 독점적으로 공급하는 물품이어서 아주 비싼 값을 치러야만 했다 차는 미국인들에게 빼놓을 수 없는 일용품이었지만, 식민지 시절 미국은 중국과 직접 교역하는 것이 완전히 차단되어 모든 수입물품은 영국을 거쳐 들여와야 했고, 운송마저도 동인도회사의 배를 통해서만 가능했다. 1776년 독립 선언 후부터 1783년 파리조약으로 독립이 승인되기 전까지 미국에서는 차의 공급이 거의 끊기다시피 했다. 미국 상인들은 수요가 치솟는 차를 구하기 위해 중국에 갖다 팔 수 있는 물품을 찾느라 혈안이 되어 있었다. 거의 자급자족이 이루어지고 있던 거대한 중국에 미국 입장에서는 마땅히 갖다 팔 것이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