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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술밖 미술비평 - 이가림
夢想하는 자의 의미론적 대화, 그 自身만의 상상력이 아쉽다
시인 이가림과 미술의 관계를 물을 때 가장 먼저 언급해야 할 책이 바로 바슐라르의 『꿈꿀 권리』이다.
『꿈꿀 권리』는 이가림의 번역으로 1980년 열화당에서 처음 출간됐다.
하지만 저작권 문제로 출판 중단됐다가 2007년에 같은 출판사에서 회복저작물 형태로 개정판이 나왔다.
이 책은 바슐라르의 진귀한 미술론으로 엄혹한 시절, 화가와 조각들에게 “한없이 신선한 생을 샘솟게 하는 몽상의
가치”를 계속해서 일깨워 주는 역할을 했다.
바슐라르가 한국 문학, 예술에 미친 영향은 두말할 필요가 없거니와 특히 이 책은 그가 직접 미술에 대해 말하고
있다는 점에서 우리 미술계의 남다른 주목을 받아왔다.
작년에는 파주 헤이리의 한 갤러리에서‘꿈꿀 권리’라는 전시가 개최되기도 했다.
이 전시도록에 실린 한 젊은 작가의 다음과 같은 발언은 『꿈꿀 권리』의 의미생성이 현재 진행 중이라는 사실을
시사한다.
“물질세계는 가시적이고, 분명하다. 하지만 우리가 우리의 경험을 통해 받아들이는 세계는 수많은 기억과 이미지가
공존하는 초현실적 세계이다.
일상은 건조한 물질세계이지만, 나의 경험과 상상이 결합된 채로 체험되는 일상은 나에게 감정을 불러일으킨다.
난 건조한 물질세계에 속해있지만, 상상과 경험을 통해 그 건조함을 제거하며 살아간다.
난 그 일상과 상상의 사이에 존재하는 것이다. 내가 그리고자하는 것은 보다 진실에 가까운 나일 것이다”(화가 서상익).
그림에 한눈팔기 좋아한 불문학자
『꿈꿀 권리』의 ‘옮긴이의 말’에서 이가림은 바슐라르를 따라 “많이 꿈꾸고 또 깊이 꿈꿀 수 있는 사람이야말로 가장
풍부한 생을 사는 자일 것”이라고 말하면서 “단순히 그림에 한눈팔기를 좋아하는 사람일 뿐인 역자가 감히 무딘 펜
으로 미술관계 번역에 손을 댄 것은 바슐라르 글의 매력 때문이었다”고 토로하고 있다.
그리고 이후 이가림은 바슐라르와 모네의 교류, 또는바슐라르와 샤갈의 교류 같은 몽상가들의 다양한 정신적, 정감적
교류에 관심을 갖게 된다.
1998년 2월에서 1999년 4월까지 <월간미술>에 연재했던 글들을 바탕으로 출간한 『미술과 문학의 만남』(월간미술,
2000)은 그 대표적인 성과다.
‘그림 속의 문학, 문학 속의 그림을 찾아 나선 예술기행’이라는 부제가 붙은 이 책은 화가와 시인, 또는 조각가와 소설
가의 지적, 정신적, 또는 정감적 교류를 추적한 18편의 글을 모은 것이다.
여기서 마그리트와 로브그리예는 ‘이미지와 텍스트의 기발한 연계’라는 제목으로, 마네와 바타이유는 ‘위반과 전복의
미학’이라는 제목으로, 또 푸생과 솔라레스는 ‘3세기를 뛰어넘는 미학의 발견’이라는 제목 아래 한 데 엮여 있다.
이러한 몽상가들의 교류를 추적함에 있어 이가림의 관심사는 단지 ‘눈’만이 아니라 여러 감각기관과 상상력까지도
포함한 전존재 간의 의미론적 대화에까지 걸쳐 있다.
특히 ‘파란색의 신비를 찾아 나선 방랑기사들’이라는 제목으로 콕토와 모딜리아니의 만남을 서술하는 대목은 이 책의
백미다.
여기서 이가림은 모딜리아니의 색깔 가운데 유난히 우리의 시선을 끄는 것이 파란색이라고 주장하며 「파란 눈의
소녀」, 「파란 옷의 소녀」, 「파란 상의의 소년」과 같이 그의 작품에 왠지 청색을 주제로 한 것이 많음을 지적한다.
특히 연약하고 섬세한 「파란 상의의 소년」에서 이가림은 일종의 우아함이 깃들어 있는 비애감을 느낀다.
모딜리아니는 죽음을 눈앞에 두면서 자유와 무한의 색깔인 파란색의 신비와 말없는 대화를 나누다 피안의 세계로
떠났다는 것이다.
이러한 평가는 모딜리아니의 “눈과 혼과 손 안에서 이루어지는 데생”은 “그의 선과 우리들의 선”이 남모르게 나누는
‘말없는 대화’가 된다는 콕토의 발언을 참작한 것이다. 이가림이 보기에 콕토의 많은 시들은 이 ‘말없는 대화’를 추구
한다.
가령 이가림은 「파란 눈」이라는 제목이 붙은 잔 에뷔테른의 초상 앞에서 콕토의 시 「파란색의 비밀」을 떠올린다.
“파란색의 비밀은 잘 감추어져 있다. 파란색은 피안 저쪽에서 온다. 오는 도중에 그것은 옅어져 산이 되어 버린다.
매미가 거기서 운다. 새들도 거기서 지저귄다. 사실상 사람은 아무것도 모른다. 감청색이라는 것이 있다.
나폴리에서는 하늘이 물러가고 나면 성모마리아가 벽 구멍에 머문다. 하지만 여기선 모든 게 신비다.
사파이어도 신비, 성모마리아도 신비, 사이폰도 신비, 수부의 저고리깃도 신비, 눈부시게 파란 햇빛도 신비, 그리고
내 가슴을 꿰뚫은 파란 눈빛도 신비다.”(장 콕도, 「파란색의 비밀」 全文, 『미술과 문학의 만남』에서 재인용)
몽상가들의 정신적·정감적 교류 주목
한편 초현실주의 운동의 동료였던 호안 미로를 “장식과잉과 유희에 빠지기를 잘하고 또 지성의 측면에서 보면 증언
의 폭에 한계가 있음을 드러낸다”고 비난했던 앙드레 브르통에 대한 해석도 흥미롭다.
이가림이 보기에 이러한 비난은 시인 브르통이 화가라는 직업에 대해서 품고 있는 어떤 선망의 콤플렉스, 또는 이율
배반의 감정을 드러낸다. 브르통은 자신이 화가의 재능을 가지고 태어났으며 또한 얼마든지 뛰어난 화가가 될 수
있다고 생각할 만큼 그림 그리는 작업을 선망했다는 것이다.
이렇듯 『미술과 문학의 만남』은 저자 자신의 표현을 빌자면 “시인·작가들과 미술가들이 장르상의 칸막이를 뛰어
넘어 울림과 되울림을 주고받는 행복한 정신적 교감을 추적한” 책이다.
이가림 자신은 이 책을 “그림에 한눈팔기를 좋아하는 한 프랑스 문학도의 화가와 작가, 시인들에 대한 열렬한 교감의
고백록”이라고 지칭한다. 그러면서 그는 자신이 유년시절부터 고교시절까지 그림그리기를 꽤나 좋아했고, 프랑스
유학시절 문학을 회화와의 긴밀한 관계망 속에서 연구한 조셉 마르크 벨베교수의 지도 아래 공부했던 것이 그러한
추적의 동인이 됐을 것이라고 말한다.
또한 그는 “프랑스 문학을 보다 온전하게, 더욱 더 깊이 있게 읽기위해 미술 분야에 상당한 관심을 쏟게 됐다”고 말한다.
그러나 “프랑스 문학을 보다 온전하게, 더욱 더 깊이 있게 읽기 위해 미술에 관심을 쏟게 됐다”는 발언 속에 이미 내재
된 바, 이가림의 관심사는 기본적으로 시인이나 소설가, 또는 문필가의 정신세계와 작품들이다.
그러니까 그는 눈앞에 있는 그림을 볼 때 자신의 눈과 몸으로 그것을 보는 것이 아니라 바슐라르, 콕토, 솔라레스와
아라공, 브르통의 눈과 몸으로 그것을 본다.
예컨대 그는 제리코를, 또는 제리코의 작품을 그 자체로서 만나기보다 아라공의 소설 『성주간』에 묘사된 바로서 만
난다.
“어쩌면 이 모든 것은 언제나 민중의 편에 서서 싸웠던 작가 아라공이 창조한 그야말로 순수한 문학적 상상력의 소산
일지도 모른다. 그렇지만 아라공에 의해 창조된 인물 제리코의 이미지를 통해서 볼 때 실재하는 화가 제리코의 그
후의 도정이 ‘허구’로서의 소설 속의 도정에 합치됨으로써 진실미를 더 한층 배가시켜 주는 것이 사실이다.”
(이가림, 『미술과 문학의 만남』에서)
메타비평에서 좀더 능동적 만남으로
그는 그들이 본 것만을 보고 그들이 느낀 것을 느끼며, 그들이 상상한 것을 상상한다.
그래서 그의 글에서는 자신의 감각기관과 상상력을 통한 미술작품과의 의미론적 대화를 찾기 힘들다.
그런 의미에서 그의 글은 엄밀한 의미에서 미술비평이라고 하기보다는 타인의 미술비평에 대한 일종의 메타비평이
라고 간주하는 편이 옳을 것 같다.
물론 그것은 그 자체로서 충분히 의미있고 가치있는 작업이다. 하지만 나는 그 만남이 좀 더 능동적인 만남으로 이어
지지 못한 것이 못내 아쉽다. 그가 번역한 바슐라르의 다음과 같은 발언에 깊이 공감하기 때문이다.
“오늘 시인과 판화가가 나에게 똑같은 충고를 한다. 즉 미세화를 무르익게 할 것, 거리를 즐길 것, 모든 깊이를 이용할
것, 조망의 원근은 눈의 역학과 뗄 수 없는 관계에 있으며, 번갈아가며 생각하며 꿈꾸는 자에게 있어 아무것도 고정된
것이 없다는 것을 이해할 것….”(가스통 바슐라르, 『꿈꿀 권리』에서)
미술밖 미술비평 - 박완서
深淵을 응시하는 자의 시선 … 슬픔은 어떻게 힘이 될까
소설가이자 수필가인 박완서의 작품을 이 코너‘미술밖 미술비평’이라는 주제로 다룰 때 먼저 주목을 요하는 작품이
바로 이 작가의 문단 데뷔작 『裸木』(1970)이다.
이 소설은 우리 문학에서 ‘화가’를 주인공으로 내세운 흔치 않은 작품 가운데 하나로도 중요하지만, 이 주인공이 우리
근대미술의 중요작가인 박수근을 모티프로 한다는 점에서도 큰 의의가 있다.
1985년에 박완서는 『나목』이 “어디까지나 소설이며 전기나 실화가 아니다”라는 것을 분명히 하면서도, 박수근이
전쟁기 “극심한 가난 속에서 온갖 수모를 견디면서 PX에서 싸구려 초상화를 그리던 모습이” 자신의 40세의 무사
안일과 나태를 뒤흔들었으며 그래서 쓰게 된 게 『나목』임을 밝히고 있다.
작가 박완서는 강릉 선교장 중채‘열화당’의 훼손되지 않은 기품을 보고 압도당한다.
그러고보면 박완서 또한 기품의 작가다.
특히 그녀는 박수근이라는 작가가 “예술가들이 미치고 환장하지 않으면 독한 술로라도 정신을 흐려놓지 않고는 견디
어낼 수 없었던 1·4후퇴 후의 암울한 불안과 혼돈의 시기”를 텅 빈 최전방 도시인 서울에 고립돼 지내면서도 “어떻게
미치지도, 환장하지도, 술 취하지도 않고, 화필도 놓지 않고, 가족부양도 포기하지 않고 살 수 있었나”에 관심을 갖게
됐노라고 회상한다.
생각하기 따라서는 지극히 예술가답지 않은 한 예술가의 삶을 증언하고 싶었다는 뜻이리라.
실제로 이 소설에서 또 다른 주인공 이경은 젊은 시절 옥희도(이 인물이 바로 박수근을 연상케 하는 화가다)가 그린
나무 그림에서 “꽃도 잎도 열매도 없는 참담한 모습의 고목”, 달리 말해 “빛과 빛깔의 빈곤, 그러니까 삶의 기쁨에의
기갈”을 본다. 하지만 중년이 된 그녀가 다시 옥희도의 유작전에서 그 나무를 보았을 때 그녀는 그 나무가 말라죽은
고목이 아니라 ‘봄에의 믿음’으로 의연히 겨울을 견디는 나목이라는 깨달음을 얻는다.
화가(박수근)의 작업은 말하자면 그림을 통해 잃어버린 나를 복원하는 일, 그렇게 함으로써 자신의 존재의의를 찾는
일이었던 것이다.
이러한 깨달음을 박수근 작품의 해석에 대입해보자면 그녀의 글쓰기에는 미술사가나 미술비평가들의 메마른 글쓰기
에서 좀처럼 찾아볼 수 없는 어떤 체험적 진정성에 기반한 ‘공감’이 내재해 있음을 발견하게 된다.
이렇게 화가 박수근의 예술은 소설가의 글쓰기를 빌려 오롯이 복원된다.
그래서 오늘날 박수근을 논하는 대부분의 미술비평가들은 박수근 그림 해석의 상당 부분을 박완서에 일임하고 있는
것이다. 예컨대 유홍준은 박수근을 평하는 글에서 그의 그림에 나타나는 ‘고목’이 지닌 뜻은 아무래도 아래 박완서의
『나목』 끝부분을 읽어보는 것이 제격일 것이라고 말하지 않았던가.
체험적 진정성에 기반한 공감의 매혹
“나무 옆을 두 여인이, 아기를 업은 한 여인은 서성대고 짐을 인 한 여인은 총총히 지나가고 있었다.
내가 지난날, 어두운 단칸방에서 본 한발 속의 枯木, 그러나 지금의 나에겐 웬일인지 그게 고목이 아니라 나목이었다.
그것은 비슷하면서도 아주 달랐다. 김장철 소스리바람에 떠는 나목, 이제 막 마지막 낙엽을 끝낸 김장철 나목이기에
봄은 아직 멀건만 그 수심엔 봄에의 향기가 애닯도록 절실하다.”
소영현의 지적에 따르면 박완서의 글쓰기는 “상흔으로만 남겨져 있던 자신의 경험들을 스스로 납득할 수 있는 인과율
을 지닌 사건으로 재구성하려는 노력”이며 그것이 “그 시절의 상처를 극복하는 그녀 나름의 방식”이다.
미술작품을 바라보는 관점 역시 이와 다를 수 없다. 그러나 그 복원은 쉬운 일이 아니다.
그녀의 널리 알려진 단편 『복원되지 못한 것들을 위하여』(1994)에는 깨진 도자기 복원과 관련한 일화가 실려 있다.
여기서 주인공 ‘나’는 어느 도자기 수집가 댁을 방문해 결손된 부분을 금으로 메꾼 연적을 구경한다.
그 수집가는 하필 비싼 금으로 결손 부분을 메꿔야 했을까. 빛깔과 질감이 비슷한 사기질로 감쪽같이 때울 수도 있을
텐데…. 수집가는 답한다. “그랬다가 아무도 이 연적이 깨졌다는 걸 못 알아보면 어떡하지요. 그건 속임수잖아요.
할 짓이 아니죠.” 하지만 박완서에게 진정한 복원은 이보다 좀 더 복잡한 문제다. 그녀는 묻는다.
“망가지고 흩어진 걸 복원하는데 있어서 제 조각을 찾으려는 노력 없이 딴 조각으로 메꾼 걸 진정한 복원이라고 볼 수
있을까. 설사 그 딴 조각이 금이라 해도 말이다.”
이렇게 진정한 조각을 찾는 일을 단념하지 않는, 아니 단념할 수 없는 복원가-소설가에게는 눈을 현혹시키는 것, 말
하지 못하게 압도하는 것, 그래서 진정한 조각을 찾는 일을 훼방 놓는 것들이 적이다.
예컨대 그녀의 초기 수필집 『혼자 부르는 合唱』(1977)에는 다음과 같은 구절이 있다. “정교한 신라 금관이나, 삼테
기로 금을 쓸어담았다고까지 전해지는 무령왕릉 유물 전시실도 놀랍고 눈부시지만 나로선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
아무리 태평성대의 제왕이라도 한 몸에 그렇게 많은 금붙이를 지닌 인간을 상상하면 정나미가 떨어진다.
거기보다는 원만하고 평화롭고도 좀 바보스럽게 웃는 石頭 등불상이 있는 방이 좋다. 바보스러우면서도 인간의 지혜가
짜낸 온갖 사상, 온갖 고뇌를 포용하고도 남을 것 같으니 또한 기막히다.
”화려한 금관보다는 소박한 석불상을 좋아하는 소설가는 자연에서 훔친 진귀한 돌을 가져다 마치 자기 것인양 하는
수집가의 손에서 돌을 훔쳐내 衆愚의 시선으로부터 해방시켜 자연으로 돌려놓고 싶어한다(『혼자 부르는 합창』, 1977).
이 소설가가 도박과 환락의 도시, 라스베이거스를 추악한 폐허와 악몽으로 기억하는 것(『잃어버린 여행가방』, 2005)
은 당연한 일이다.
그렇다면 이 소설가가 찾고자 하는 것은 무엇인가. 수필집 『지금은 행복한 시간인가』(1985)에 실린 「어떤 古家」
를 보자. 여기서 박완서는 양옥을 한옥으로 개조하는 풍조를 개탄한다.
“토담에 타일을 바르고 창호지문은 유리문으로 고치고 마루엔 모노륨이나 양탄자를 깔고 기와는 오지기와로 바꾸어”
집모양을 망쳐 놓고 있다는 것이다. 그런데 우연히 강릉 경포대 근처에서 발견한 ‘열화당’에서 그녀는 수리란 명목의
횡포가 가해진 흔적을 발견하지 못한다. 거기에는 전혀 손이 안 것처럼 원형을 복원하려는 노력이 깃들어 있었다.
물론 그렇게 하려면 정성과 수리비가 곱절은 들어야 한다. 그 집 앞에서 그녀는 사람의 의무를 생각한다.
“그 집을 온전히 잘 보존하는 게 후손의 의무라면 그 집 둘레에 서린 기품과 정적을 보존하는 건 우리 모두의 의무인”
것이다.
산만하고 가벼운 글쓰기의 역설
사실 소설가 박완서는 본격적인 미술비평이라 할 만한 글을 전혀 쓰지 않았다.
오히려 그녀는 자신을 미술에 관한 한 ‘아마추어’로 생각하며, 미술관에서 “다 보려 하다가 하나도 보지 못한 사람”
(『두부』, 2002)으로 묘사한다.
하지만 그녀의 글에 묘사된 미술과의 만남에는 어떤 진정성있는 ‘믿음의 교감’같은 것이 있다.
이런 교감에 기반한 글쓰기는 어떤 의미에서 산만하고 가벼워 보인다. 그리고 사실 그녀는 지금 “한겹 두겹 책임을
벗고 점점 가벼워지는 느낌을 음미하면서 살아가고 싶다”고 말한다(『두부』).
하지만 그 가벼움은 애당초 무게를, 억압을, 고통을 체험할 수 없었고 또 체험하고 싶어 하지도 않은 우리 시대 작가
들이 추구하는 가벼움과는 진정 다른 종류의 것이다.
애당초 심연을 들여다보는 일을 포기한 사람들이 절대로 볼 수 없는 어떤 것을 그녀는 본다.
그래서 나는 그녀가 미술에 관해 쓴 글에서 전문비평가나 역사가들이 쓴 글에서 느끼지 못했던 어떤 깊은 감동, 슬픔,
또는 아름다움을 느낀다. 이런 감동, 이런 슬픔이 무엇을 말하는지는 산문집 『아름다운 것은 무엇을 남길까』(2000)의
한 구절을 인용하는 것으로 충분할 것이다.
“이 세상에 태어나서 여태껏 만난 수많은 아름다운 것들은 나에게 무엇이 되어 어떻게 살 것인가를 공상하게 했지만
살 날보다 산 날이 훨씬 더 많은 이 서글픈 나이엔 어릴 적을 공상한다.
이 서글픈 시기를 그렇게 고웁디곱게 채색할 수 있는 것이야 말로 내가 만난 아름다운 것들이 남기고 간 축복이 아닐까?
예사로운 아름다움도 살 날보다 산 날이 많은 어느 시기와 만나면 깜짝 놀랄 빼어남으로 빛날 수 있다는 신기한 발견을
올해의 행운으로 꼽으며 안녕.”
미술밖 미술비평 - 박정자. 박홍규
두 개의 서로다른 시선 … 통찰력의 기원 또는 인간에 대한 예의
미술작품을 그저 미적 관조, 또는 快의 대상으로서가 아니라 하나의 인문학적 사실로 간주해 그로부터 시대정신,
패러다임 또는 이데올로기의 양상 및 변천을 읽어보려는 시도는 미술사, 철학을 위시한 인문사회과학 전반에서 오랜
전통을 지니고 있다.
이러한 시도는 한편으로 미술작품을 보다 풍부하게이해할 수 있는 길을 열어주면서 다른 한편으로 인간의 삶과 문화
에 대한 보다 심화된 해석에 기여해 온 것도 사실이다.
더 나아가 그러한 접근은 더 나은 삶을 위한 구체적인 실천들의 바탕이 되기도 했다.
하지만 이러한 접근은 결코 쉽지 않다. 왜냐하면 이런 방식으로 미술작품에 다가서려면 분석가 또는 해석가는 부지
런하여 풍부한 인문학적 지식을 소유하고 있어야 할 뿐만 아니라 미술사학자 에르빈 파노프스키가 지적했듯 시대
와 현실, 그리고 작품에 대한 뛰어난 통찰력과 직관력을 지녀야 하기 때문이다.
우리 사회에서 불문학자 박정자와 법학자 박홍규가 미술작품에 관해 쓴 글들은 이러한 통찰력과 직관력의 의미와
의의를 새삼 되돌아보게 하는 노작들이다.
바타이유를 따라 체험하는 황홀한 법열
먼저 박정자의 경우를 보자. 박정자는 우선 푸코와 더불어 시선과 권력의 문제에 관심을 갖게 됐고 뒤이어 이런 관심
을 미술에 대한 관심으로 넓힌 경우다.
이러한 궤적을 잘 보여주는 저서가 바로 근래 출간된 두 권의 저서, 곧 『시선은 권력이다』(기파랑, 2008)와 『마네
그림에서 찾은 13개 퍼즐조각: 푸코, 바타이유, 프리드의 마네론 읽기』(기파랑, 2009)이다. 『시선은 권력이다』의
서문에서 박정자는 자신이 1979년 푸코의 『성의 역사』 제 1권 ‘앎에의 의지’를 『성은 억압되었는가?』라는 제목
으로 번역, 출간하면서 권력과 시선의 문제에 관심을 갖게 됐노라고 말한다.
그러니까 이 책은 “언제는 번역으로, 언제는 논문으로, 단편적이고 참조적인 글을 쓰면서” 갖게 된 “시선과 권력의
문제를 포괄적으로 정리해보고 싶다는 욕망”의 소산이다.
이렇듯 오랜 욕망의 산물인 『시선은 권력이다』는 시선과 권력에 대한 푸코의 담론을 읽기 쉽게 설명해주고 있다.
시선의 문제는 결국 인정투쟁, 곧 “사람과 사람의 힘겨루기 내지는 권력게임의 문제”이며 현대 철학에서 시선의 문제
가 갈수록 부각되는 것은 “기술문명이 발전하고 인류가 진보하면 할수록 나를 몰래 바라보는 타인의 시선에 대한
공포가 더욱 커지기 때문”이라는 이 책의 결말은 읽은 이로 하여금 주어진 조건과 상황을 되돌아보게 만드는 힘을
갖는다.
『마네 그림에서…』는 또 어떤가. 이 책은 부제가 말해주듯 푸코, 바타이유, 프리드, (그리고 그린버그)의 마네론에
대한 진지한 독해다. 이 책에서 박정자는 열거한 논자들을 따라 마네 그림에서 서사와 환영, 그리고 (선)원근법이
붕괴되고, 있는 그대로의 그림, 즉 화면 속에 깊이라고는 없는 캔버스의 평평한 평면이 드러나는 과정을 추적한다.
그리고 그로부터 박정자는 바타이유를 따라 합리적 이론이나 앎으로 설명되는 세계가 아닌 그냥 뭔지 알 수 없는
황홀한 법열의 순간을 체험한다.
이러한 독해 과정에서 박정자는 특히 마네 그림에서 나타나는 원근법의 붕괴에 주목한다.
그녀에 따르면 세상은 원근법이 표상하는 바 “그렇게 부동의 자세로 꼼짝않고 얼어붙어 있는 대상이 아니다.”
마찬가지로 근대철학이 과학적 원리들을 동원해 대상 세계에 의미를 부여했던 주체의 자리는 작위적이고 허구적인
것이다. 그렇다면 마네는 오늘날 포스트모던 담론에서 대두된 ‘주체에 대한 회의’를 선취한 선구적 작가로 평가될 수
있다.
이렇듯 박정자는 푸코, 바타이유 같은 철학자들이 시각과 미술을 보는 관점을 훌륭히 그리고 친절하게 풀어 설명
하고 있다. 하지만 여기에 박정자 자신의 보다 적극적인 독해가 없는 것은 아쉽다. 저자 나름의 분석, 해석이 없는
것은 아니지만, 그러한 분석은 어디까지나 푸코, 바타이유가 그어놓은 테두리 안에서 행해지고 있다는 것이다.
이러한 소극성은 때로 이들 서구 작가나 사상가들의 입장과 지나치게 가까워져 다음과 같은 아슬아슬한 발언으로
이어지기도 한다.
“원근법의 부정, 農談이나 그라데이션 없는 투명하고 순수한 색채의 사용, 프레임에서 잘리는 주제 등 마네가 시도한
새로운 기법들은 모두 일본의 채색 목판화 우키요에에서 차용한 것이다.
이미 100년 전에 일본이 서구인들의 의식을 강렬하게 사로잡고 그들의 사유방식까지도 바꿔놓았다는 사실이 부럽고
아프게만 느껴진다. 그 시대에 우리는 아직 중국의 신선과 산하만을 그리고 있었고 동시대의 풍속을 그린 풍속화들이
있기는 해도 양적으로 빈약하고, 스케일이나 화려함에 있어서 일본의 그림과 비교할 수 없이 열세였다.”
(『마네 그림에서…』, 23쪽)
이제 박홍규의 경우를 살펴보기로 하자. 박홍규는 법학자이지만 자기 고유 영역 바깥(?)에서 푸코의 『감시와 처벌』,
사이드의 『오리엔탈리즘』 같은 굵직한 번역서를 세상에 내놓았으며, 미술과 관련된 번역서나 저서 역시 오랜 기간
다수 발표해온 저자다.
그 가운데 공예가이자 건축가, 디자이너, 정치가였던 윌리엄 모리스의 생애를 조명한 『윌리엄 모리스의 생애와 사상』
(개마고원, 1998), 『윌리엄 모리스 평전』(개마고원, 2007), 『내 친구 빈센트』(소나무, 1999), 『오노레 도미에-
만화의 아버지가 그린 근대의 풍경』(소나무, 2000), 그리고 『야만의 시대를 그린 화가, 고야』(소나무, 2002), 『빈센
트가 사랑한 밀레』(아트북스, 2005), 『구스타프 클림트, 정적의 조화』(가산, 2009)등이 두루 포함돼 있다.
또 『시대와 미술』(영남대학교출판부, 1997), 『예술, 정치와 만나다』(이다미디어, 2007)과 같이 시대나 정치 같은
보다 포괄적인 관점에서 미술을 조명한 저서들도 있다.
세상의 변화를 꿈꾸는 주관적 해석의 무게
웬만한 미술전문가를 압도하는 박홍규의 미술에 대한 여러 저작들에서 공통적으로 나타나는 관점은 ‘삶의 본질에
대한 인간적인 이해’에 다다르기 위한 예술가들의 사투, 곧 인간해방을 위한 노력들에 대한 애정이다.
이러한 애정은 그러한 해방을 방해하고 거부하며 저주하는 것들에 대한 예술가들의 반항에 대한 지지와 연대로
이어진다.
그래서 그의 미술에 대한 글쓰기는 항상 양식이나 작품보다는 작가에 초점을 두고 있다.
특히 그가 애정을 갖는 작가들은 모리스나 반 고흐, 도미에, 고야, 클림트 같이 비속한 것들에 맞서 설령 실패하더라도
자유로움을 향해 날개짓 했던 작가들이다.
예컨대 그는 산업혁명기 대량생산이 낳은 비인간적인 현실을 비판하면서 예술의 민주화와 사회주의를 역설한 모리스
를 따라 다음과 같이 외친다.
“모든 인간이 본래 가졌던 인간성이 깃든 제품을 ‘만드는 즐거움’을 회복해야 한다.
미술과 공예는 그러한 인간성의 해방을 목표로 삼아야 한다.” (『윌리엄 모리스 평전』, 309쪽)
이러한 시각은 가령 부르주아의 호사 취미에 영합해 관능적이고 퇴폐적인 작품을 제작한 화가로 평가받던 클림트에
대한 재해석에서 빛을 발한다.
그것은 자신의 예술이 ‘그 시대의 정신을 표현한 가장 참된 예술’이라고 믿었던 클림트의 신념에 귀를 기울이는 일이다.
이렇게 클림트의 작품, 「키스」를 다시 보면 우리는 실제로 관능적이라고 볼 요소를 별로 찾을 수 없다.
“「키스」의 두 연인만이 아니라 클림트의 여러 그림에 등장하고 클림트 자신이 그 연인과 함께 속옷없이 걸친 푸른
통짜옷은 그 시대에 대한 ‘반항의 옷’이었다.
이는 신체 부위를 그대로 드러내기 위해 속옷으로 몸을 죄는 당시 유행한 귀족과 부르주아의 에로티시즘 패션을 부정
하고 몸을 통한 인간해방을 상징한 것이기도 했다. 뿐만 아니라 그 화면을 덮는 황금색도 고대 비잔틴 종교화에 사용
된 것으로 그것을 배척한 교조적인 세속 전통화에 대한 반발이었다.” (『구스타프 클림트』, 255쪽)
그러니까 박홍규는 ‘노동의 즐거움, 창조의 즐거움, 삶의 즐거움’으로 가득한 사회를 꿈꾸는 유토피언이다.
이 유토피아주의자가 꿈꾸는 세계는 특권 정치와 재벌 경제 하의 추악한 자본주의의 정 반대편에 서있다.
그 세계를 그는 예술가들과 더불어 꿈꾼다. 이를 위해 그는 예술의 과제가 “가능한 한 민중이 각자의 독자적인 이의
제기를 다양하게 표현할 수 있는 공동체를 실현하는 것”(『예술, 정치를 말하다』, 290쪽)이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이쯤해서 박홍규의 해석은 상당히 주관성을 띤다. 그러나 그러한 주관성, 그러니까 세상의 변화를 꿈꾸는 주관성은
더 나은 해석을 위한 통찰력과 직관력만큼이나 미술에 대한 글쓰기에서 중요한 것이 아닐까.
존 버거가 쓴 『피카소의 성공과 실패』(아트북스, 2003)의 역자 해설에서 박홍규는 이렇게 말한다.
“버거의 모든 책에 등장하는 근본적인 주제는 ‘보는 것’이다. 버거는 그림이나 사진 앞에 서서 자신이 보는 것을 이해
하기 위해 자신과 싸운다. (…) 그는 충분히 오랫동안 보면 어두운 그림자를 뚫을 수 있다고 확신한다.
즉 ‘모든 바라봄 속에는 의미에 대한 기대가 숨어있다.’” (346쪽)
미술밖 미술비평 - 김윤식
幻覺 또는 허무에 맞선 ‘포플라’의 운명
문학비평가 김윤식과 미술의 인연을 말할 때 가장 먼저 언급해야 하는 책은 그가 1979년에 내놓은 『문학과 미술
사이』이다. 이 책은 그의 많은 글쓰기 가운데 한줄기를 이루는 이른바 예술기행 양식의 출발점이다.
이후 그는 『황홀경의 사상』(1984), 『작은 생각의 집짓기』(1985), 『낯선 신을 찾아서』(1988), 『환각을 찾아서』
(1992), 『설렘과 황홀의 순간』(1994), 『풍경의 계시』(1995), 『머나먼 울림, 선연한 헛것』(2001) 등으로 이어
지는 ‘예술기행’ 모음집을 꾸준히 발표했다.
여기 실린 글들은 대부분 그가 직접 발품을 팔아 작품이 존재하는 현장, 또는 그 작품이 탄생된 공간을 찾아가 거기서
자신이 느끼고 생각한 바를 에세이로 정리한 것들이다. 물론 여기에는 문학, 미술, 건축 같은 작품들이 두루 포함된다.
그런데 그는 왜 기행을 떠나야 했는가. 1996년 발표된 『김윤식 선집』 6권 해제에 따르면 김윤식의 예술기행은 ‘
낯선 풍경과 환각을 향한 그리움’에서 발원한다. 환각(유토피아)을 향한 영원한 동경이야말로 그로 하여금 이 세계의
무수한 곳을 편력하도록 이끌고 그 흔적을 남기게 만든 결정적인 추동력이라는 것이다.
그러니까 김윤식은 환각, 또는 유토피아를 찾아 떠난 나그네다.
그에 따르면 이 환각, 유토피아는 “지상에 존재한 공상 중 가장 황당무계한 것”이지만 그것은 “모든 민족은 이것 없으면
산다는 일을 원치 않을뿐더러 죽는 이조차 불가할 정도”의 열도를 가진 황홀경의 환각이다(동양정신과의 감각적 만남).
인간은 이 ‘황홀경의 환각’ 없이는 살 수 없다.
그것은 김윤식도 마찬가지다. 그러나 그가 환각에 집착하고, 유토피아에 집착하는 것은 남다른 데가 있다.
그는 환각을 그리워해 찾아 나서지만 자신의 환각을 만들고 그 안에 칩거하지않는다.
그는 환각에 빠지는 것을 두려워한다. 아니 좀 더 정확히는 환각에 맞선다. 하지만 그것은 쉽지 않은 일이다.
두려움 또는 유토피아에 집착하기
그는 이렇게 말하지 않던가. “떠날 때는 언제나 설레였고 돌아올 땐 한결같이 피로하였다.
이 가슴 설렘이란 내 것이 아닌지도 모른다. 누구나 갖고 있는 그리움이랄까, 에로스적인 것이라 할 수 없을까? …
누가 이 장대한 황당무계한 환각 앞에 감히 알몸으로 맞설 수 있으랴. 내 피로함은 이 환각의 너무나 큰 압력에서 왔다.
나는 그 환각 속에 빨려 들어가지 않기 위해 필사적이어야 했다.” (설렘과 황홀의 순간)
그렇다면 그는 피로를 무릅쓰고 기행에 나서 어떤 환각들과 만났을까. 가령 그는 중국 서안에서 만난 대안탑 앞에서
이렇게 말한다.
“탑이란 무엇인가. 인간 염원의 하나이리라. 그것은 빈공간을 향한 발돋음의 표상이다.
이를 기도하는 자세라 부른다. 그것은 하늘 위로 솟아야 한다. 빈 하늘만 있으면 인간은 참지 못한다.
백지의 공포인 까닭이다. 이 빈 하늘의 아득함에서 그 두려움에서 필사적으로 도망치고 싶은 마음의 끝이 마침내
탑을 지어내었던 것. 빈 하늘을 조금이라도 가리고 채우기의 한 가지 방식, 그것이 탑이다.” (풍경의 계시)
그러니까 탑을 만들어내고, 그 탑에 의미를 부여하는 것은 하늘이다. 그런데 이 하늘은 빈 하늘, 곧 허공이다.
‘비어있음’의 공포가 그것을 초극하려는 어떤 집단적 의지를 작동시키고 환각을 만든다.
그 초극 의지가 절박할수록 탑은 더욱 아름다울 것이다.
이렇듯 허공의 공포를 초극하기 위해 환각을 만드는 일은 자기 정체성 찾기와 짝을 이룬다. 김윤식에 따르면 자기
정체성 찾기는 자기 위기의식의 산물이다. 가령 일본 예술의 특질로 ‘사비’라든가 ‘유현’을 소리 높여 외치고 그럼
으로써 일본예술을 서양의 그것과 구별하고자 했던 사람들은 오히려 서양의 그것과 끊임없이 ‘닮고자 하는 지향성’을
암암리에 내포하고 있다(머나먼 울림, 선연한 헛것).
‘비어있음’에 대한 공포는 환각을 통해 극복할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기실 그 환각은 존재하지 않는다.
그것은 말 그대로 ‘幻覺’이기 때문이다.
그러니까 ‘일본적인 것’도 ‘조선적인 것’도 ‘서양적인 것’도 모두가 환각이다.
그는 야나기 무네요시의 朝鮮美論를 이렇게 평한다. “조선의 미란 실제하는 것이 아니라 서양(일본)이 멋대로 창출해
낸 헛것에 지나지 않는 것. 실제와는 상관없이 일본(서양)인 야나기가 멋대로 자기 취향에 맞게 조선의 미를 線으로
창출해 낸 것일 따름.”(머나먼…) ‘허공’에의 공포는 결코 초극될 수 없다.
대개의 사람들은 그러나 이 사실을 인식하지 못하거나 인식하더라도 외면할 것이다.
에세이 정신과 ‘여로형’ 글쓰기
“성현의 학문을 머리에 이고 하늘의 별을 바라본 집단”으로서 젊은 집현전 학사들이 그렸던 유토피아, 곧 「몽유도
원도」는 텅 비어있지만 아름답다.
그러나 분열을 경험한 자는 다시는 그런 종류의 아름다운 세계로 돌아갈 수 없다.
이렇게 분열을 경험한 자가 ‘허무와의 대결’을 통해 순도 높은 고통을 드러내는 것, 그것이 김윤식이 생각하는 예술
이다(동양정신과의…).
허무와 대결한다는 것은 ‘환각’을, 달리 말해 유토피아가 환각임을 알지만 포기하지 않는 일이다.
그것은 김윤식 자신에게도 해당된다. 고흐의 「별이 빛나는 밤에」를 표지화로 건 『문학과 미술 사이』의 머리글
에서 그는 일찍이 이렇게 토로한 바 있다.
“철들면서 먼 도회지로 끊임없이 떠나고 싶었다. 그것은 생각컨대 근대적인 것에의 지향성이었으리라. 그 근대적인
것이 노예나 시녀의 길이었음을 깨닫고 황망히 돌아서려 하자 나의 들길은 근대적인 것이 통째로 삼켜 버리고 아무
데도 없었다. 허무가 앞뒤를 가로막아 나아갈 길은 이제 보이지 않는다.
그렇지만 그 허무의 안개 저편에 솟아오르는 선명한 이미지가 있었다. 포플라의 모습이 바로 그것… 포플라는 줄지어
섰든 혼자 서있든 모습은 외로움이었다. 그러기에 포플라의 이미지는 내겐 릴케의 용담화이고 고호의 삼나무이다. …
포플라는 고독의 표상이기보다 고독 자체였다. 예술이나 문학이란 내게는 이와 같은 표상의 추구일 따름이리라.”
『문학과 미술 사이』에서 김윤식은 이 그림을 이렇게 묘사한다. “밤도 아니고 낮도 아닌 곳, 그러기에 태양도 달도
11개의 별도 함께 출석한 곳. 하늘엔 이것뿐이다. 이 무게 중심에 ‘나’가 놓여 있다.
그것은 실상 나가 아니라 꿈틀거리는 은하수이다. 별도 달도 태양도 이 성운에 휘말려 있다.
아니다. 성운이 별을, 달을 태양을 낳고 있는 중이다. 그러니까 새로운 세계의 자궁 속, 胎 내의 모습을 그대로 보이고
있을 뿐이다.”
이렇게 포플라의 이미지를 곁에 두고 그는 집을 떠난다. 이렇게 집을 떠난 상태란 ‘여로에 접어들었음’을 의미하는데
그 여로는 “뚜렷한 목적도 없지만 그렇다고 방랑도 아닌 여로”다.
그의 예술기행의 근간을 이루는 에세이 정신은 그러한 접점에 깃드는 정신이다.
그 접점에 정신이 깃들 때 “세상과 사물은 본래의 자리에 놓인 것으로 보이게” 될 것이라고 그는 믿는다.
이렇게 그는, 발레리의 표현을 빌면, 이질적인 것을 동시에 수용하는 모더니스트다.
따라서 그에게 문학에 대한 논의가 미술에 대한 논의와 겹치고 공존하는 것은 전혀 어색하지 않은 일이다.
아니 필연적이다. 이 모습은 어쩐지 모더니스트 이상의 그것과 닮아 있다.
김윤식은 화가로서의 이상의 모습을 다음과 같이 묘사하고 있다.
“셀 수 없이 많은 기괴하기 짝이 없는 병들이 카페를 둘러싸고 자라고 있었는데 이러한 병들을 가장 통렬하게 앓아본
사람은 오직 이상뿐이었다. 그 많은 정신질환을 이상은 사랑하고 한 몸에 그들을 감쌌다.
그러기에 그는 아달린과 아스피린을 수없이 장만하고 그 알약들을 보석처럼 『날개』의 삽화에 그려넣었던 것이다.
그가 그의 죽음조차 초월할 수 있는 방식은 오직 이러한 길뿐이었던 것이다.” (김윤식 선집 5)
“별이 총총한 하늘이 갈 수 있고 가야만 하는 길들의 지도인 시대, 별빛이 그 길들을 훤히 밝혀주는 시대는 복되도다”
라고 (젊은 시절 김윤식을 매료시켰던) 루카치는 말했다.
그러나 이 복된 시대가 아니라(내적)분열의 시대에 김윤식은 산다. 그는 복된 시대를 꿈꾸나 돌아갈 수 없음을 알고
있다. 하여 그가 누릴 수 있는 최선의 자유는 “뚜렷한 목적도 없지만 그렇다고 방랑도 아닌 여로”에 나서는 일이다.
이 여로에 나서는 일은 그 자신에게나 그것을 지켜보는 자에게 똑같이 고통스러운 일, 권태롭고 피로한 일이다.
그러나 고통, 그 권태, 그 피로에도 불구하고 어떻게든 자신의 주어진 상황에서 사람들이 치열하게 구축한 개개의
유토피아들은 또 얼마나 아름다운가. 설령 그것이 곧 무너질 운명에 놓여있다 해도 말이다.
홍지석 (객원기자·미술평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