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할렐루야 할렐루야 제가 좀 몸이 좀 쉬었는데 양해를 구합니다. 좀 불편하시더라도 은혜 가운데 주의 성령이 오늘 이 시간 모인 여러분들에게 임할 수 있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우리 서로 사랑의 고백, 축복의 인사 나누겠습니다.
주님 안에서 사랑합니다.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특별히 오늘 초대받아서 오신 몇 분 계시는데 참 감사하고요. 잠 잘 오셨습니다. 이 시간을 통해서 예수 그리스도께서 여러분들을 만나주셔서 인생에서 최고의 인생, 행복한 인생 살아갈 수 있기를 간절히 소망합니다.
유대인의 탈무드에 보면 세 가지 질문과 세 가지 답변이 있습니다. 그 세 가지 질문을 한번 제가 해보겠습니다.
첫 번째는 누가 지혜로운 사람인가?
여러분 누가 지혜로운 사람일까요? 많이 배우는 사람이 지혜롭겠죠 열심히 배우고 열심히 갈고닦은 사람들이 지혜로운 사람 늘 배우는 일에 열심을 내야겠죠.
두 번째, 누가 강한 사람인가?
여러분 누가 강한 사람입니까? 예 기도 많이 한 사람 아주 원론적인 답변을 참 잘해주셨어요.
진짜 강한 사람은 여러분 그 누구보다도 자신을 이기는 사람이에요. 자신을 이기는 사람 여러분 나 자신을 이기는 게 얼마나 어렵습니까? 뭐 하나 작심한다고 해서 그것을 막 열심히 해나가는 게 얼마나 힘듭니까? 작심 3일이라는 말이 있잖아요. 작심해도 3일 되면 지쳐버리는 거예요. 그래서 여러분 3일마다 작심할 필요가 있어요. 그렇지 않습니까? 작심하고 또 안 되면 또 작심하고 안 되면 또 작심하고 그래서 나를 이기는 것 그것이 가장 중요한 것이죠. 나를 이기는 사람이 가장 강한 사람이다. 그렇게 말합니다.
세 번째는 누가 가장 행복한 사람인가?
여러분 여러분들이 생각할 때 가장 행복한 사람은 누굽니까? 나 감사해. 엄청난 축복의 대답 아닙니까? 나 나로 인해서 감사합니다. 여러분 돈이 많으면 행복할까요? 내가 좋은 지위에 올라가 있으면 행복할까요? 아니면 진짜 가장 축복이라는 건강한 삶을 날마다 살아가면 행복할까요? 물론 그것들이 행복 요소가 될 수는 있습니다. 그렇죠 돈이 많아 보세요. 얼마나 행복해요? 하고 싶은 거 다 할 수 있잖아요. 또 명예가 있어 보십시오. 누군가가 많은 사람들이 내 앞에 조아릴 거 아닙니까? 그러니까 얼마나 기쁘고 행복하겠어요? 여러분 건강한 것 행복하죠. 내가 병원에 가지 않고 하루하루 건강하게 먹고 살 수 있는 것만으로도 너무 감사한 일입니다.
그런데 중요한 건 뭐냐 하면 그것도 한계가 있다는 것이죠. 돈과 명예와 건강이 있어도 불행한 사람이 있더라는 거예요. 그렇지 않아요. 분명히 건강한데 저분이 참 좋아 보이는데 그런데 삶의 요소 가운데 불행을 느끼는 것이죠.
그래서 탈무드는 감사하는 사람이 행복한 사람이다 이렇게 이야기합니다. 따라서 여러분 감사는요 행복 지수의 바로미터라고 할 수가 있는 것입니다. 감사가 많으면 많을수록 우리의 행복지수는 올라가고 올라가고 무한대로 올라가는 거 그러나 감사가 적은 사람 적으면 적을수록 행복지수는요. 밑으로 떨어지고 떨어지고 한도 끝도 없이 떨어지게 돼 있다는 것입니다.
여러분 감사의 씨앗이 풍성하여서 열매를 많이 맺는다고 생각해 보십시오. 얼마나 행복하겠어요? 눈 떠도 감사, 눈을 감아도 감사 내가 발 한 걸음 걸어도 감사 감사가 풍성한데 어찌 불행할 수가 있겠습니까? 저와 여러분들이 오늘 추수감사주일을 맞이하여서 이 예배를 통해서 하나님께 감사하는 은혜가 있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을 드립니다. 이 자리에 있는 우리 모두가 감사의 씨앗을 통해서 풍성해지고 풍성해지고 더 풍성해지는 축복이 있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부탁을 드립니다. 그래서 우리의 행복지수가 여러분 비상하고 비상하고 비상하고 하늘 끝까지 치고 올라가는 놀라운 축복의 자랑 그러한 사람이 저와 여러분들이 되시기를 다시 한 번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오늘은 추수감사주일로 지킵니다. 그래서 추수하는 씨라는 게 생각이 나서 씨, 풍성한 열매 그리고 감사라는 주제로 한번 말씀을 좀 나누어보려고 합니다.
먼저 씨를 한번 생각해 보면 좋을 것 같아요. 씨 하니까 번뜩 떠오르는 게 저한테는 심은 대로 거둔다는 그러한 표현이었습니다. 금요일날 전도팀과 이렇게 같이 붕어빵을 나누고 이야기하는 중에 대화를 하면서 배춧값에 대한 이야기가 나왔습니다. 올해 배춧값은 좀 저렴한 것 같다. 예전에 너무 비쌌으니까 그랬겠죠. 여러분 김장철이 되면 김장하시는 분들은 늘 민감해하죠. 배춧값이 얼마냐 고춧가루값이 얼마냐 마늘값이 얼마냐 굉장히 민감해지는 것 같아요. 다 잘 되면 좋은데 다 좀 싸면 좋은데 배추가 비싸면 고춧가루가 비싸고 고춧가루가 비싸면 어떻게 돼요? 또 마늘값이 비싸고 이렇게 다양한 수치들로 인해서 늘 민감해지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여러분 이 심은 대로 거두지만 거두는 양은 항상 일정치가 않다는 것이죠. 해마다 수확은 하지만 매년 이 수확량이 똑같지는 않다는 거예요. 작년에 여러분 사과값이 얼마나 비쌌습니까? 당시에 금값이라고 어떤 분들은요. 이럴 때는 사과를 사 먹는 게 아니라고 저한테 가르쳐 주셨어요. 얼마나 비싼지
여러분 올해 샤인머스켓이라는 그 과일이 얼마나 쌌습니까? 여러분 기사를 보니까 3년 만에 반토막이 났대요. 그 값이 3년 전만 해도 굉장히 비쌌다는 것이죠. 저는 2018년도에 서울에서 사역할 때 처음 그것을 접하게 되었어요. 한 가정에 심방을 갔습니다. 예배를 마치고 권사님이 이렇게 과일을 제공해 주시는데 야 이거 뭐지? 정포도 같기는 한데 아닌 것 같기도 하고 그러면서 그것을 하나 떼서 입에 딱 물어 넣는 순간 저는 여러분 눈이 커지고 코가 벌렁벌렁거리면서 입꼬리가 올라가면서 이런 맛이 있는가 도대체 이건 도대체 뭔가라는 그러 맛을 느꼈던 시간이 있습니다.
그래서 권사님께 물어봤죠.
사님 이건 제가 보니까 청포도는 아닌 것 같은데 뭐예요?
요즘 새로 나온 따끈따끈한 아주 맛있는 샤인머스켓이라는 것입니다.
저는 그때 처음 봤거든요.
이거 백화점에서 한 성률이 3만 원짜리입니다. 그때만 해도 그랬어요. 제가 목사님 저희 교회 와서 심방해 주셔서 감사해서 제가 목사님 대접해 드리려고 이렇게 준비했습니다.
이렇게 자랑을 하는 거예요. 그런데 그분이 항상 교회 하기 가장 좋은 걸로 가장 이렇게 아름다운 걸로 섬기는 그러한 분인데 그렇게 하나님께 가장 좋은 것으로 아름다운 걸로 섬기는 그 삶은요. 하나님께서 날마다 풍성하게 채우시는 것이 왜 하나님께 좋은 씨를 드리니까 하나님께서 풍성하게 채워주시는 것이다. 그러한 사랑 그러니까 제가 여러분 그 포도 샤인 머스킷 한 송이 가운데 몇 알을 집어먹는데 얼마나 감동이 되겠어요?
여러분 이 씨앗이라는 것이 이렇게 풍성한 열매를 가져다줍니다. 그런데 그 수확량은 항상 다르다는 것이죠. 물론 수확량은 그때그때 다를 수밖에 없습니다.
왜요? 날씨와 환경 상황에 따라서 달라질 수밖에 없는 것이죠. 하지만 변하지 않는 분명한 사실이 있죠. 그것은 씨앗을 뿌리면 반드시 결실을 맺는다. 이것은요 변함없는 진리라는 것입니다.
여러분 이 앞에 과일들이 이렇게 쭉 장식돼 있습니다. 야채도 있고요. 여러 가지들이 있는데 이 앞에 있는 배추 보이십니까? 배추 얼마나 커요? 이게 씨라고 꽉 찼습니까? 깜짝 놀랐어요.
이 배추를 보면서 야 이 작은 씨앗이었을 텐데 그것이 이렇게 튼실하고 꽉 찬 배추로 자랄 수가 있구나. 여러분 이 작은 씨앗이 풍성함을 가져다주었다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여러분 이러한 결실을 맺기 위해서 가장 중요한 것이 무엇이라고 생각합니까? 이 결실을 맺기 위해서 그것은 씨. 아무리 아무리 무언가를 만들어내려고 해도 씨가 없으면 만들어질 수가 없는 것이죠. 풍성함은커녕 열매도 맺을 수가 없는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의 인생 모든 원리가 다 똑같다는 거예요. 씨앗이라는 것이 있어야 그것이 시발점이 되어서 열매도 맺고 풍성함으로 나아가게 된다는 것이죠. 그래서 이 씨앗은 매우도 중요한 것입니다. 그래서 오늘 본문 말씀을 통해서 이 씨앗을 통해 몇 가지 질문을 가지고 삶의 원리 우리가 너무나 잘 아는 이 씨앗에 대한 결실들을 통해서 삶의 원리를 좀 생각해 보려고 합니다.
첫 번째 이 씨앗은 누가 주시는 건가요? 믿음의 백성들은 당연히 하나님이라고 말하겠죠. 우리 10절 앞부분인데 한번 같이 읽어보실까요?
심는 자에게 씨와 먹을 양식을 주시느니가 너희 심는 것을 주사
사도바울은 씹는 자에게 씨와 먹을 양식을 주시는 이가라고 하면서 주시는 분 공급하시는 분이 있다는 것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여러분 그러면 이 공급하시는 분은 누구십니까?
하나님이시라는 거 여러분 생각의 씨앗 우리에게 가지고 있는 생각의 씨앗이라든지 마음의 씨앗 또한 우리의 생명의 씨앗 모든 것이요. 다 하나님께로부터 온 것이다. 어떤 씨앗이든지 간에 그 씨앗을 주시는 분이 계시니 그분은 하나님이시다. 여러분 이 사실을 먼저 기억하시기를 소망합니다.
두 번째는 그렇다면 하나님께서 c를 주신 이유는 무엇인가?
뭔가 주실 때는 이유가 있을 것 아니에요 야 너 가서 콩나물 사와라. 그래서 돈을 주는 거 아니에요? 돈도 안 주고 콩나물 사와라 그러면 안 되겠죠 주시는 이유가 분명히 있습니다. 여러분 그것은요. 풍성함과 더불어서 열매를 더하시기 위함이다. 우리 11절 뒷부분을 한번 같이 읽어봅니다.
너희 심을 것을 주사 풍성하게 하시고 너희 의의 열매를 더하게 하시리니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씨앗을 통해서 먼저 우리가 풍성하기를 원하신다. 할렐루야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생명의 씨앗도 주셨고 삶을 살아가는데 물질의 씨앗도 주셨고 살아가는데 건강의 씨앗도 주셨고 아닙니까? 하나님께서 주신 이 삶을 우리는 그냥 사는 것이 아니라 풍성하게 사는 그 풍성함을 위해서 우리에게 모든 상황과 환경들을 열어주셨다는 것이죠. 그래서 여러분 이 씨앗은요 결실을 소망하면서 살아가는 겁니다.
여러분 생각해 보세요. 씨를 뿌리는 사람 그분들이 기본적으로 기대하는 것이 무엇입니까?
그것은요. 풍성한 열매라는 거예요. 제가 농사는 지어보지 않아서 사실 잘 모르지만 들어본 바에 의하면 씨를 하나 뿌릴 때에 줄기가 나고 이삭이 생기고 달랄이 붙기 시작하면 보통 10개에서 20개 정도의 곡식이 붙는다고 해요. 맞습니까? 저희 농사 지어보신 분들이 아시겠죠?
저는 안 지어봤지만 들어본 바에 의하면 하나의 씨앗이 10알에서 20알 정도의 곡식을 생산해 낸다는 거예요. 결국 씨앗 하나를 통해서 10개에서 20개를 수확하는 목적이 있는 것이죠. 그렇기 때문에 씨를 뿌리는 농부의 심정은 이 많은 씨를 뿌리면서 더 풍성한 것들을 소망하면서 그 결실을 기대하면서 씨를 뿌리게 되는 것이죠.
마찬가지로 하나님께서 저와 여러분들에게 씨를 주셨는데 그 씨앗을 통해서 저와 여러분들의 삶이 풍성해지기를 원하고 원하고 바라신다. 할렐루야 여러분 내가 건강한 것은요. 그냥 건강함으로 그냥 그렇게 살아가라는 것이 아니라 건강함을 통해서 더 풍성한 인생을 살아가라고 나에게 물질을 주신 것은 그 물질을 허랑방탕하게 쓰라는 것이 아니라 그 물질을 통해서 더 풍성함을 나누며 살아갈 수 있도록 나에게 풍성함 열매를 맺어가라고 우리에게 주신 것이죠.
그렇다면 이제 한 단계 더 넘어가서 하나님께서 저와 여러분들에게 씨앗을 주신 이유는 풍성함과 열매를 위하는데 그럼 풍성함과 열매의 목적은 무엇입니까? 그냥 풍성하고 열매를 맺어서 나혼자 기쁘면 끝입니까?
하나님의 목적이 있습니다. 11절 우리 한번 읽어보실까요? 11절입니다.
너희가 모든 일에 넉넉하여 너그럽게 연보를 함은 그들이 우리로 말미암아 하나님께 감사하게 하는 것이라
풍성케 하심을 통하여서 나 혼자 누리고 사는 것이 아니라 이것을 나눔을 통하여서 이 사람과 나누고 이 사람과 나누고 하나님께서 주신 은혜가 너무나 커서 이것들을 나누고 나눔을 통해서 이 나눔 받은 사람들이 뭐라고요?
하나님께 감사, 나한테 감사한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나에게 주신 것을 나눔으로 인해서 받은 자들이 하나님께 감사하라고 우리에게 이 풍성한 결실을 허락해 주셨다는 거예요.
여러분 그러니 여러분 나에게 주신 풍성함은 무엇을 위해서 따라합시다
축복의 통로 축복의 통로
그것이 하나님의 가장 기뻐하시는 삶의 모습, 하나님의 목적이라는 것입니다. 저와 여러분들이 하나님께서 주신 수많은 씨앗들을 가지고 풍성하게 열매를 맺어서 우리 주변의 이웃들과 나무를 통해 그들이 하나님께로 나아가는 축복의 통로가 될 수 있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을 드립니다.
그러면 이제 여러 가지 씨앗들이 있는데 오늘은 복음의 씨앗에 대해서 여러분들에게 다시 한 번 좀 말씀을 드리려고 합니다. 여러 가지 씨앗이 있지만 그중에 가장 귀하고 가장 좋은 씨앗은요. 복음의 씨앗이다. 복음의 씨앗이야말로 우리에게 허락하신 하나님의 선물이요. 최고의 은혜다. 할렐루야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복음의 씨앗을 주신 이유도 동일하다는 것입니다. 먼저 그 씨앗을 통해서 풍성하여서 내가 무엇을 누리는 거예요? 따라 합시다.
구원
구원의 기쁨을 내가 삶 속에서 누리며 사는 거예요. 여러분 복음의 씨앗이 떨어져서 내 안에 있을 때 내 삶은요. 이 구원의 감격과 감사와 기쁨 속에서 날마다 춤추며 하나님께 감사하며 살아갈 수가 있다는 것이죠. 그렇지 않아요 여러분 우리가 이 땅의 삶으로 끝이라면 구원의 기쁨은 아무 의미가 없어요.
그러나 우리가 죽고 나서 하나님의 영광의 보좌 앞에 간다라고 생각한다면 그 어떤 것도 그 기쁨 이상의 기쁨이 될 수가 없는 것이죠. 또한 내가 기뻐 감사하며 구원의 기쁨을 누리는 것이 끝이 아니라 이 풍성함이 어떻게 내 주변에 내 자녀들에게, 내 가족들에게 내 이웃들에게 흘러감을 통해서 그들도 하나님의 구원이라는 역사가 놀랍고 크구나 나도 그 하나님 앞에 감사하며 살아야겠다고 흘려보낼 수 있는 그 목적이 우리에게 있다는 것이지, 여러분 저와 여러분들이 받은 그 구원의 기쁨 홀로 누리지 마시고 흘려보내는 축복의 통로가 될 수 있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을 드립니다.
그래서 이 시간 그 원리를 가지고 여러분 복음의 씨앗을 이 시간 제가 다시 뿌릴 거예요. 가지고 계시던 분들도 다시 받으시고, 복음의 씨앗이 아직 내 안에 없다는 분들은 이번에 받으셔서 풍성한 열매를 맺고 그 열매를 통해서 이웃과 나눌 수 있기를 소망합니다.
이제 제가 잘 뿌릴 테니까 여러분 마음 밭을 활짝 여셔서 한번 받아보십시오. 여러분 사람은 누구나 행복하기를 원합니다. 그렇죠 행복하기 원치 않은 사람 손 들어보십시오. 목사님이 질문하니까 나는 그냥 반대하겠다. 그런 마음 잊지 않고서는 다 행복하기를 원하실 것입니다.
그런데 문제는 우리가 아무리 잘 살고 행복한 삶을 살아간다 할지라도 그것은요. 잠시 잠깐뿐이라는 거예요. 왜냐하면 누구나 죽음이라는 것을 직면하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아무리 행복하게 살고 있다 할지라도 죽음이 내 앞에 찾아왔을 때에는 그 이상 행복이라고 말하지 않는 것이죠.
이 죽음을 직면하는 현실이 우리의 삶에 누구에게나 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성경 히브리서 9장 27절은 이렇게 말씀합니다. 우리 큰 소리로 같이 한번 읽어보실까요? 한 번 띄우잖아요. 시작
한 번 죽는 것은 사람에게 정하신 것이오. 그 후에는 심판이 있으리니 여러분 한 번 죽는 것 이것은 정해져 있다.
이것을 부인할 사람 있습니까? 없어요. 여러분 예수 안 믿어도 이것을 부인할 사람은 없습니다. 그런데 여러분 중요한 것은 죽으면 끝이 아니라는 것이죠.
여러분 죽으면 끝입니까? 그렇지 않다는 거예요. 여러분 오늘 본문에 보니까 죽음 후에는 반드시 심판이 따르겠다 그렇게 말합니다. 심판이라는 것이 있다는 거예요. 그런데 그 심판을 통해서 어떤 사람은 천국을 가게 돼 있고요. 어떤 사람은 지옥으로 가게 돼 있다라는 거예요. 그런데 더 큰 문제는 심판 이후에 천국과 지옥 이 삶은요. 다시 돌이킬 수가 없다는 거예요. 그곳에서 영원히 살아야 되는 그러한 삶이라는 것이죠.
그렇다면 여러분 죽으면 천국과 지옥을 가게 되는데 여러분들은 천국 가기를 원하십니까? 지옥 가길 원하십니까? 저는 아직 잘 모르겠습니다. 그런 반응이 여러분 천국이 있든 없든 우선은 그래도 이러한 질문을 받으면 둘 중에 하나를 선택하라면 그래도 천국을 선택하겠죠.
그 아무도 지옥 가겠다고 말하는 사람은 없을 거예요.
천국이 어디 있어? 지옥이 어디 있어? 그래도 둘 중에 하나만 선택해 보십시오라면 그럼 천국 가야지라고 하는 게 보편적인 대답일 것입니다.
그런데 여러분 천국과 지옥이 실제로 존재한다면 어떡하겠어? 아직 우리가 보지 못해서 결정할 수는 없지만 실제로 내가 죽었는데 천국과 지옥이 있다. 내가 어머니 뱃속에서 있다가 이 세상에 있는지 모르고 태어났는데 아 세상에 있더라. 나처럼 내가 죽었는데 실제로 천국과 지옥이 있더라라고 한다면 그것이 확실하다면 여러분 어떻게 하겠습니까?
그러면 이것은 가볍게 생각할 문제가 아니죠. 왜 나는 죽기 때문에 안 죽으면 상관없는데, 죽기 때문에 죽음 이후에 천국과 지옥이 있다면 이거는 심각하게 고려해야 될 문제라는 것입니다. 그리고 실제 존재한다는 확신이 있다면 그 누구도 지옥을 선택하는 사람은 절대로 없을 것입니다.
어떤 방법을 써서라도 내가 그 천국에 반드시 가야겠다는 그러한 확신을 가지고 살아가는 것이죠. 어떻게든 그 방법을 찾기 위해서 안간힘을 쏟게 될 것입니다.
그런데 감사한 것은요. 말씀에 보니까 천국에 들어갈 사람이 어떤 사람인지에 대해서 가르쳐 주었다는 거예요. 여러분 어떤 사람이 천국에 들어갈 수 있습니까? 여러분 어떤 사람이 천국에 들어갈 수 있어요?
여러분 천국에 들어갈 수 있습니까? 성경은요 죄 없는 사람이 천국에 들어 있습니다. 죄 없는 사람 죄 없는 사람이라는 그러한 티켓이 있어야 하나님의 나라의 천국에 들어갈 수 있다.
그러나 불행하게도 성경은 또 이렇게 말합니다. 모든 사람이 죄입니다. 실제 천국에 들어갈 사람은 단 한 사람도 없다는 것입니다. 성경은 그렇게 얘기해 천국에 들어갈 사람은 죄 없는 사람인데 그런데 이 땅에는 죄 없는 사람이 없다.
로마서 3장 23절 우리 한번 같이 읽어보실까요?
모든 사람이 죄를 범하였음에 하나님의 영광에 이르지 못하더니
그렇습니다. 모든 사람이 죄를 범했기 때문에 하나님의 영광에 이르지 못한다.
왜요? 여러분 아담의 죄가 후손들에게 이어지는 것 아니겠어요? 그러니까 우리는 죄인이라는 DNA를 가지고 태어난 거예요. 그 누구도 의인이 될 수 없어요. 목사라고 해서 제가 이 자리에 있다고 해서 제가 의인일까요? 아니요. 저도 죄인입니다. 저도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갈 수 없는 천국에 갈 수 없는 존재라는 거 모든 사람이 똑같다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죄의 문제를 해결하는 것은 우리 모두의 숙제예요. 교회를 오래 다니건 짧게 다니건 이제 처음 맞건 간에 누구에게나 천국 가기 위해서는 죄의 문제를 해결해야 되는 숙제가 있다는 것이죠.
그러면 여러분 이 죄의 문제를 어떻게 해결할 수 있습니까? 내가 이 땅에서 열심히 돈 벌어서 돈 많으면 죄의 문제가 해결이 됩니까?
여러분 돈으로 죄가 해결된다면 열심히 살아서 돈 벌어서 죄의 문제 해결하겠죠. 선행을 만일 하거나 도덕적으로 바른 생활을 열심히 하면 죄의 문제가 해결됩니까? 아니요. 그러한 선행과 열심은 있을지 모르겠지만 여전히 우리 안에는 죄성 DNA가 있다는 것입니다. 삼남 만상을 향해 또한 인간이 만든 우상을 향해서 죄의 문제를 해결해 주십시오.
죄의 문제를 해결해 주십시오라고 기도한다면 그러면 죄의 문제가 해결이 될까요?
여러분 우리는요. 그 어떤 노력도 세상에 있던 어떤 것도 우리의 죄 문제를 해결해 줄 수가 없다는 거예요. 그래서 단 한 사람도 하나님의 나라 천국에 갈 수가 없는 것이죠.
그런데 하나님께서 우리 인생들을 긍휼히 여기시고 사랑하셔서 죄의 문제의 길을 해결할 수 있는 다나의 길을 하나의 길을 열어주셨다는 우리 한번 같이 읽어보실까요? 요한복음 3장 16절 같이 읽습니다.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이는 그를 믿는 자마다 멸망하지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라
하나님께서 저와 여러분들을 사랑하시고 긍휼히 여기셔서 독생자 아들을 이 땅에 보내주셨다. 그가 누구십니까? 예수 그리스도 그를 믿는 자는 누구든지 간에 아무리 이 세상에서 죄를 많이 지었다 한다 할지라도 그를 믿는 자는 멸망하지 아니하고 영생을 얻는 법을 허락하셨다. 할렐루야.
그렇다면 예수가 우리를 구원할 수 있는 이유는 무엇인가 하나님은요. 우리가 이 땅에 살아가면서 적어도 네 가지 만남을 허락하셨어요.
첫 번째 만남 부모와의 만남입니다. 태어나면서 누구를 만납니까? 태어나면서 부모를 만나게 돼 있어요. 여기서 부모 없는 분은 한 사람도 없잖아요. 부모 없이 태어난 사람은 한 사람도 없다는 거예요. 그래서 부모와의 만남이죠.
두 번째는 스승을 만납니다. 스승 우리는 나이가 많건 적건 간에 누군가를 통해 배워요. 그 사람이 나의 스승이 되는데 스승을 만나게 되죠.
세 번째는 배우자를 만납니다. 하나님의 법칙이에요. 배우자를 만나서 함께 행복한 가정을 누립니다. 그런데 사실 이 시대에는 그 축복을 누리는 젊은이들이 많이 줄어서 안타까운 모습인 건 맞습니다. 하나님께서 만남을 허락하신 축복 중에 하나는 부부예요.
그리고 네 번째는 예수 그리스도를 만나서 자유케 하는 것입니다. 이 만남이 어쩌면 가장 중요한 만남이겠죠. 이 만남은 왜 중요하냐 예수는요. 죄가 없으신 분 저와 여러분들은 죄인이지만 예수는요. 동정녀 탄생을 통해서 예수 그리스도에게만큼은 죄가 없으셨다.
여러분 만약에 예수님께서 죄가 있으시다면 우리의 죄를 담당할 수가 없는 것이죠. 죄 없으신 예수님께서 우리의 모든 죄를 짊어지고 십자가에 죽으셨다. 그리고 무덤에 장사되었습니다. 그러나 거기에 머물지 아니하시고 우리 하나님께서는 예수 그리스도를 부활시키셔서 부활의 첫 열매가 되게 하셨고, 그 예수를 믿는 자들에게는 예수님이 죽으셔서 부활하셨던 것처럼 우리도 부활하여 하나님의 곁에 하나님과 함께할 수 있는 천국의 자리로 인도하신다. 할렐루야.
그래서 여러분 믿는 자들 믿기만 하면 구원받게 된다고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예수가 곧 길이라는 거예요. 그래서 요한복음 14장 6절 말씀은 이렇게 우리에게 주십니다. 같이 읽어볼까요?
예수께서 이르시되 내가 곧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니 나로 말미암지 않고 아버지께로 올 자가 없느니라
그렇습니다. 길은 단 하나밖에 없어요.
여러분 우리가 산에 올라갈 때는 이곳에서도 올라가고 저곳에서도 올라가지만 천국 가는 길은요. 내가 선행을 했다고 해서 올라가는 게 아닙니다. 내가 돈을 많이 벌었다고 해서 올라갈 수 있는 길이 없어요. 오직 다나나 길 예수 그리스도 유일한 길을 주시는 거예요.
아담의 죄로 인해서 하나님과 함께할 수 없어. 에덴에서 쫓겨났던 이 인생은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 의롭다고 인정받아서 의로우신 하나님과 함께할 수 있는 공간에 가게 되는 것이죠. 여러분 이것이 바로 하나님께서 열어주신 길이다.
그런데 이것만으로는 천국에 갈 수가 없다는 거예요. 여러분 예수에 대해서 모르는 사람이요. 이 땅에 얼마나 있겠어요? 사실 이렇게 주변을 살펴보면 예수에 대해서 아는 분들이 참 많아요.
바울이 말도 들어봤어요. 요새 알죠 교회에 예수님 있잖아요. 주변에 한번 확인해 보세요. 예수를 모르는 사람보다 아는 사람이 훨씬 많아요. 그러면 그걸 알아서 다 천국 갈 수 있을까요? 아니요. 성경은 그렇게 말하지 않습니다. 들은 바 머리로 알고 있는 것 그것으로 인해서 하나님의 나라 천국 갈 수 있는 것이 아니라 믿음으로 가는 나라. 그래서 요한복음 1장 12절은 이렇게 말씀합니다. 같이 한번 큰 소리로 읽어봅시다.
영접하는 자 곧 그 이름을 믿는 자들에게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주셨으니
따라 합시다.
영접하는 자 영접하는 자
영접하는 자하고 뒤에 설명하는 게 뭐예요?
그 이름을 믿는 자 영접 그 이름을 믿는 자 영접 그 이름을 믿는 자 할렐루야 예수의 이름 그분이 나의 구원자라는 것을 믿는 자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 천국 권세를 우리에게 허락해 주셨다는 것. 즉 여러분 우리는 죄인이지만 하나님께서 예수의 씨앗을 우리에게 뿌려주셔서 이미 저와 여러분들은 하나님의 그 씨앗을 통해서 구원받은 하나님의 백성이 되었다.
그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풍성함을 살아가라고 말씀합니다. 여러분 예수님께서 주신 그 씨앗 예수님께서 죽으셨잖아요. 여러분 씨앗은 땅에 들어가 썩어야 죽어야 생명이 되잖아요. 예수님께서 죽으셔서 썩어서 죽으셔서 우리에게 생명이 됐는데 여러분 예수님이 오신 목적에 대해서 요한복음 10장 10절은 이렇게 말합니다. 우리 한번 같이 읽어볼까요?
도둑이 오는 것은 도둑질하고 죽이고 멸망시키려는 것뿐이오. 내가 온 것은 양으로 생명을 얻게 하고 더 풍성히 얻게 하려는 것이라.
그렇죠 여러분 도둑이 와서 제가 오늘 선물 가져왔어. 도둑인데요. 제가 과일 좀 드리러 왔습니다. 이런 도둑이 있습니까? 도둑은 빼앗고 멸망시키기 위한 목적이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오신 목적은요. 양으로 생명을 얻게 한다. 첫 번째 생명입니다. 여러분 예수로 인해서 생명 얻는 은혜가 있기를 소망합니다.
그리고 더불어서 그 생명으로 끝나지 않고 더 풍성해지라 더 풍성해지라고 무엇과 같습니까?
아까 씨앗이 뿌려져서 죽어서 그 씨앗이 열매를 맺는데 풍성하게 열매를 맺는 것과 똑같다는 것입니다. 저와 여러분들이 이 풍성함도 누릴 수 있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을 드립니다.
그래서 여러분 예수님의 구원 사역은요. 이 세상이 그 어떤 무엇보다 감사할 일이에요. 추수 감사 주일날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여러 가지 씨앗을 주셔서 이렇게 열매로 감사를 드리지만 여러분 우리가 가장 크게 감사해야 될 것은 하나님 내가 무엇이라고 나 같은 죄인에게 예수의 의를 주셔서 영원한 천국을 얻게 하셨습니까?
여러분 이것이 저와 여러분들에게 가장 큰 감사, 풍성한 은혜가 될 수 있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그리고 오늘 혹여라도 처음 이 복음의 메시지를 들으신 분들은 하나님께서 이 시간 여러분들을 위해서 뿌려주신 씨앗입니다. 그냥 외면하지 마시고 마음 가운데 이렇게 잘 숨겨놓아 보십시오. 때가 찬 시간 저는 하나님이 반드시 일할 것이라 믿습니다.
이곳까지 오게 하신 것도 하나님의 손길이고요. 이 과정 속에서 하나님을 믿게 하는 놀라운 역사가 분명히 인생이 어느 순간에는 반드시 찾아올 거라 저는 믿습니다. 그리고 저는 기도할 때 그때 하나님의 은혜와 영광이 얼마나 큰지를 깨닫게 될 것입니다.
저와 여러분들에게 뿌려진 씨앗, 바라는 것은 내 안에 풍성함으로 많은 열매로 나타날 수 있기를 간절히 소망합니다.
그리고 혼자만 누리지 마시고 잘 흘려보내셔서 이 은혜가, 이 감사가 내 이웃들이 함께 감사할 수 있는 여러분 이 땅에 살면서 얼마나 힘들고 어려운 일들이 많아요.
그런데 여러분 예수 믿고 웃고 기쁘고 감사합니다. 얼마나 감사한 일이 여러분 예수 믿으면서 인상 쓰지 맙시다. 예수 믿으면서 웃으며 삽시다. 예수 믿으면서 누구 미워하지 맙시다. 예수 믿으니까 더 감사함으로 축복하며 살아갈 수 있기를 소망합니다.
그러한 은혜가 우리 안의 씨앗으로 시작이 되어서 더 풍성한 이 땅 가운데 나타날 수 있기를 간절히 소망합니다. 할렐루야
◈ Messenger’s Note:
“In his heart, a man plans his course, but the LORD determines his steps.” (Proverbs 16:9)
“Nevertheless, not my will but yours, be done.” (Luke 22:42)
“And when the angel stretched out his hand toward Jerusalem to destroy it, the LORD relented from the calamity and said to the angel who was working destruction among the people, ”It is enough; now stay your hand.“ And the angel of the LORD was by the threshing floor of Araunah the Jebusite.
And David built there an altar to the LORD and offered burnt offerings and peace offerings. So the LORD responded to the plea for the land, and the plague was averted from Israel.” (2 Samuel 24:16,2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