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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프리카 기행문 (창원, 이정우 16세)
내 친구들과 다른 중3들은 고등학교 준비를 하는 중3 겨울방학에 나는 고등학교 공부 보단 좀 더 세상을 보는 눈을 넓히고 안 좋았던 일들이 많았던 2016을 떨치고 새롭게 시작하고 싶어서 아프리카 여행을 선택했다. 다른 참가자들은 12월 달 에 아프리카에 필요한 준비물을 사느라 바쁘고 했겠지만 나는 저번 독일여행갈 때 다 준비해놓아서 아무 생각 없이 학원만 다녔었다. 그렇게 의미 없이 12월이 지나고 1월 3일이 되어 출국 날짜가 되었다. 오후 1시에 창원 버스 터미널에 가서 이번에 내가 같이 가자고 꼬신 슬우와 만나 같은 버스를 타고 인천공항으로 향했다. 약 5시간을 달려서 인천공항에서 내리고 당당이 있는 곳으로 가서 인사 드리고 참가자들과 참가자 부모님들과도 인사를 나눴다. 인사를 나누고 참가자들이 다모이자 각자 자기소개 간단히 하고 기내반입 금지품목 물품 전부다 당당에게 맡겨 놓고 비행기 탑승장 으로 향했다. 그런데 탑승장에 도착 해보니 영우형은 항공권에 문제가 생겨 12쯤에 출발하게 됬고 당당샘 아들은 여권에 문제가 생겨서 못 가게 되었다. 출발부터 문제가 생기니 뭔가 조짐이 안 좋았다. 좋지 않았던 일은 다 잊고 비행기에 탑승하였다. 탑승하고 보니 내 옆자리 두 명이 우리 일행이 였다. 한명은 슬우 였고 한명은 호영이 였다. 비행기 타기 전에는 몰랐는데 타고 보니까 독일 1차때 같이 간 호영이 였다. 3명에서 얘기 하면서 가니까 비행 시간은 금방 흘러갔다. 15시간 쯤 지나니 에티오피아 아디스 아바바에 도착해 있었다. 모두 비행기에서 내려 환승장으로 이동했다. 경유시간이 1시간 정도 됐는데 환승장 옆에 있는 면세점은 못들어가고 별로 할게 없어서 각자 자기소개 제대로 한번 씩 하고 여행 시작전에 모임을 가지지 않아서 일정공유를 아디스 아바바에서 했다. 그렇게 1시간이 지나고 아디스 아바바에서 남아공 요하네스버그로 출발했다. 4시간정도 지나고 보니 요하네스버그 풍경이보였다 공항에서 멀어질 수 록 농촌과 허름한 집, 비포장도로가 많이 보였고 가까워 질 수 록 주택가, 포장도로 같은게 많이 보였다. 남아공이 빈부격차가 많이 난다고 들었지만 사실 이였다. 요하네스공항에 도착해서 내리고 입국수속을 밟으로 갔다. 남아공은 미성년자가 입국하려면 서류가 좀 필요했기 때문에 중간에 서류를 꺼내서 갔다. 입국절차가 많이 복잡할 줄 알았지만 그룹으로 했기 때문에 생각보다 빨리 끝났다. 화물 붙인 사람이 몇 있어서 화물을 찾고 택시를 기다렸다. 택시에 짐을 실으려고 하는데 갑자기 옆에서 몇 흑인들이 들러붙어 짐을 실어주었다. 우리는 아프리카에 처음 왔기 때문에 공항 직원 인줄알고 그냥 가만히 있었다. 근데 갑자기 돈을 달라는 거였다. 힘들게 그 사람들을 뿌리치고 택시에 타서 첫 숙소로 출발하였다. 숙소로 가면서 주변 풍경을 둘러보니 집마다 전부 펜스를 쳐놓고 큰 도로가 아니면 신호등과 횡단보도가 없었다. 숙소에 도착해서 택시요금을 내려는데 기사가 자기는 잔돈 없다면서 400란드인가 그대로 내라는 것 이였다. 그때서야 여기는 아프리카라는 것을 깨닳았다. 택시 요금을 잘 해결하고 숙소안으로 들어가 체크인을 했다. 근데 체크인을 하는데 좀 까다로웠다. 집 주소 쓰고 여권 보여주고 나는 그려려니 하고 쓰고 짐 풀고 슬우랑 샤워를 했다. 샤워를 하는데 차가운 물 나오는 수도꼭지가 약간 이상했다. 샤워를 끝마치고 당당이 나랑 호영이랑 슬우랑 수오보고 장을 보라고 돈을 줬다. 그래서 슈퍼가 어딘지도 모른채 그냥 길거리 사람들에게 길물어보며 갔다. 가는 도중에 수오가 계속 지나가는 흑인 보고 저 사람 총으로 우리 쏘면 어쩌지? 라고 계속 우리에게 물어봤다. 나는 계속 괜찮다 했지만 집집마다 펜스가 쳐져있고 평소에 안보던 흑인들이 널려있으니깐 조금 무섭기는 했다. 20분 정도 걸었을 까 슈퍼가 보이기 시작했다. 슈퍼에 들어가서 아침거리와 음료수를 사서 다시 숙소로 돌아갔다. 숙소로 돌아 왔는데 분위기가 이상했다. 전미란 선생님에게 상황을 들어보니 샤워실 수도 꼭지가 빠져 집 전체에 물이 끊겼다는 것이다. 어이가 없어서 따지고 싶었지만 총 맞을 수도 있을 것 같아서 따지지 않았다. 라면을 끓여 먹으려 했지만 주방사용이 안된다 해서 커피포트에 물 끓여서 뽀글이 해먹었다. 뽀글이 다 먹고 나서 뒤에 수영장이 있어서 호영이와 수영을 했다. 근데 들어가고 보니 겁나게 추웠다. 아프리카라 365일 더울줄 알았더만 가을같은 날도 있었다. 수영하는중에 추워서 나가려하니까 영우형이 와 있었다. 영우형이 호영이와 나랑 수영하는 사진을 찍어주고 나와서 좀쉬고 식탁에 모여 이야기를 나눴다. 대충 이때까지 느낌말하고 영우형 소개듣고 자유시간을 가졌다. 거실에나와 몇몇 아이들과 이야기를 나누고있었는데 어떤 백인 아저씨가 들어왔다. 처음에 이 호스텔에 머무는 아저씬줄 알았는데 그냥 엄마 집에 눌러 사는 백수였다. 피터가 주방을 둘러보더니 설거지를 안했다고 우리에게 뭐라고 했다. 그러니까 우리 일행이 바로 설거지를 하고 이야기를 나누다 잠에 들었다. 잘자다가 새벽 4시쯤 싸우는 소리가 들렸다. 난 아무것도 아니겠지 하고 잤는데 2시간 뒤에 원우형이 짐빨리 싸라고 나가야된다고 했다. 짐 다싸고 보니까 피터가 술취해서 막 욕을 했다. 자기 엄마에게 꺼지라고 하고 우리보고 나가라고 했다. 아침부터 기분 안 좋은채 나가서 사정을 들어보니까 피터가 새벽에 술마시고 들어 와서 당당샘과 원우형 영우형을 깨워서 막 화를 내고 나가라고 소화기를 뿌렸다고 한다. 그래서 어이가 없어서 경찰을 불렀다는데 경찰이 오지않아 나왔다고 한다. 나오기 몇분전에 접시가 깨져서 피터가 화를 더 냈었었는데 원우형에게 형이 깼냐고 물어보니 피터 지가 깼단다. 나중에 구글에 쳐보니까 평점이 5점만점에 4.5점이 였다. 그냥 피터는 나이먹고 엄마집에 눌러사는 불효자에 분노조절장애에 인종차별주의자인 속된말로 병신이였다. 피터 집에서 나와서 어디로 가냐고 당당에게 물어보니 협회 측에서 미안했는지 최고급 호텔을 잡았다고 그리로 간다했다. 그 최고급호텔은 피터 집에서 걸어서 10분 거리 였다. 그 호텔에서 체크인을 하고 짐풀고 쉬었다. 당당과 원우형 민아 전미란 샘은 주변에 시내 쪽에 알아본다고 나가고 나머지사람들은 12시반까지 쉬다가 근처 식당가서 밥을 먹었다. 밥을 먹고 나서 호텔로 돌아와 수영을 하면서 참가자 아이들과 친해지고 방에가서 좀 자다가 저녁은 가지고온 비상식량으로 때우고 잠에들었다. 그 다음 날은 아침 일찍 일어나 아침열기 시간을 가지고 호텔에서나오는 아침을 먹고 원주민 청소년과의 만남을 가지러 필란스버그 국립공원에있는 골든 레오파트 리조트로 출발 했다. 나는 원주민 청소년 이라해서 다큐멘터리에서 보던 정글에 고립되 지신들만의 문화를 가지고 생활하는 그런 원주민인줄알고 약간 호기심 같은게 들었다. 필란스버그 국립공원 으로 가는데 총 2시간 정도가 소요 됐는데 주변풍경이 정말 멋졌다. 아프리카 평균해발고도가 670M라 그런지 구름이 지상과 엄청가까이 닿아있었다. 그리고 아프리카 가기전에 아프리카에는 도로주변에 임팔라 같은 초식동물이 막 뛰어 다닐까 라고 생각했었는데 전혀아니였다. 시골로 들어가면 소밖에 없었다. 그래도 멋진 아프리카 풍경을 감상하면서 2시간이 가는줄도 모르고 필란스버그 국립공원에 도착했다. 도착하니까 그곳은 리조트가 아니고 그냥 한국의 휴양림같은 곳이였다. 차에서 내리니 라마코카 교무님들이 우리일행을 반겨 주었다. 교무님옆에는 몇 명의 흑인 아이들이 있었는데 내가 생각 했던 원주민과는 다르게 그냥 우리처럼 평범한 청소년이 였다. 그리고 식당으로 가서 밥먹고 각자 나이대에 맞는 아이들과 사진찍고 산책을 했다. 나랑 슬우랑 나이대가 같은 아이는 낄레라는 아이였는데 여자아이였다. 이야기를 나누다가 태권도 이야기가 나왔는데 낄레는 2품인가 그랬다. 라마코카 교당에서는 태권도도 가르쳐 주나보다. 그렇게 각자 이야기를 마친후 방배정을 했는데 우리방에는 당당 수민이 나 슬우 이렇게 됐는데 원주민아이가 한명도 안끼여서 아쉬웠다. 그렇게 각자 방으로 짐을 풀고 다같이 수영장으로 갔다. 처음에는 서로 물싸움 같은 걸 하다가 당당이 공을 구해와서 수구를 했다. 적팀에 디제라는 흑인 아이가 있었는데 원주민 무리중에서 대장인거 같았는데 피지컬이 장난이 아니였다. 결국은 디제 덕분에 우리팀이 지게 되었고 결론은 재밌었다. 저녁에 흑인아이들과 다같이 놀고 다음날에는 선시티 리조트에 수영만 하러 갔다. 선시티 리조트는 마이클 잭슨이 남아공오면 많이 들렸던 리조트라 하룻밤 자고 갈까 기대 했었는데 아니였다. 선시티 리조트 수영장은 무슨 파도풀도 있고 놀이기구도 있고 한국 워터파크랑 똑같았다. 리조트 수영장에는 라마코카 아이들이 거의 다 왔는데 그 아이들은 워터파크에 처음 오는지 엄청 신나 보였다. 어쨌든 라마코카 아이들은 점심식사를 하지 않았기 때문에 점심식사를 하러가고 우리일행은 먼저 티켓팅을 하고 옷을 갈아입고 리조트 수영장으로 들어가려 했다. 갈아 입은 옷을 보관하려고 락커를 빌리는데 하나에 60란드 정도 했다. 한화로 약 5000원 하는 가격이 였지만 어쩔 수 없이 4개정도 빌려서 옷을 넣고 수영장으로 향했다. 수영장으로 가자마자 보인게 파도풀이라서 나와 대부분의 아이들은 파도풀로 향했다. 규모가 엄청 작을줄 알았지만 생각 보다 컷었다. 파도풀에서 놀고 있는데 라마코카 아이들이 점심을 먹고 파도풀로 들어왔다. 그래서 서로 인사를 하고 같이 놀고 있었는데 갑자기 사람들이 우! 우! 우! 이러면서 이상한 구호를 외쳤다. 나는 뭔가 하고 있었는데 갑자기 앞에서 엄청나게 큰 파도가 몰려오는 것이 였다. 가만히 있었는데 물속에서 붕 떠서 20m 정도 뒤로 밀려 났다. 그 다음 사람들이 구호를 외칠 때 파도가 나오는 쪽을 보니까 벽쪽에 사자 얼굴상이 6개인가 있었는데 그 사자들이 한 마리 씩 물줄기를 뱉고 나머지 사자들이 전부 물을 뱉고 있으면 천둥소리가 울리면서 엄청나게 큰 파도가 몰려오는 것이 였다. 그 다음부터는 파도가 언제 나오는지 아니까 파도쪽으로 잠수를 하거나 아이들과 어깨동무해서 가만히 있기 등등을 했다. 그렇게 재미있게 노는 도중에 라마코카 아이들이 우리보고 옆에 있는 워터 슬라이드를 타러 가자는 것이 였다. 하지만 줄이 너무 길어 서 같이 타지는 못했다. 그 때 원우형이 밥먹으러 가자고 해서 아쉬움을 남긴 채로 점심을 먹고 우리 일행끼리 워터 슬라이드를 타러 가기로 했다. 워터 슬라이드는 4종류인가 있었는데 하나는 맨몸으로 타는 것이고 하나는 튜브를 끼고 타는 것이고 또 하는 2인용 튜브에 2명이 타서 내려 가는 것이고 마지막은 맨몸인데 튜브같은 곳에서 밑에 발판이 갑자기 꺼지면 내려 가는 것이 였다. 나와 몇몇 아이들은 발판 꺼지는 거 빼고 다 타고 영우형과 슬우는 발판 꺼지는 것 까지 다 탓다. 정말 재밌어서 한번 더 타려는데 당당이 라마코카로 출발해야 한다고 해서 더 타진 못했다. 라마코카 까지는 시간이 좀 걸려서 나는 가는 중에 자기로 하고 잠에 들었다. 몇 시간이 지났을 까 차가 덜컹대며 앞으로 잘 나아가지 못 하고 있었다. 도로를 보니 비포장 도로에 구덩이가 움푹 파여져 있었으며 주변에는 말로만 듣던 판자집이 있었다. 대부분 한국에서 보던 주택보다 좀 작고 상태가 안 좋은 수준의 집이 였지만 판자집도 몇 개 보였다. 그렇게 주변풍경을 보며 가니까 라마코카 교당에 금방 도착했다. 교당의 건물들을 보니 지붕쪽에 동그란 원이 붙여져 있었고 주변 정원쪽에도 원을 형상화 한게 많았다. 라마코카 교당이 원불교를 종교로 삼고 있다고 들었던거 같은데 사실이 였다. 차에서 내려서 식당 쪽으로 이동해서 교무님의 설명을 듣고 홈스테이에 관한 것도 들었다. 홈스테이 설명이 끝나자말자 교무님이 홈스테이를 같이할 아이들을 몇 명 데리고 왔다. 거의 다 나이가많고 두 명 정도는 나와 나이가 같았다. 교무님이 홈스테이 짝을 지어주셨는데 나는 임마누엘이라는 아이와 걸렸다. 그 아이는 19살이 였는데 고2였다. 첫인상은 약간 양아치? 같아 보여서 좀 불안했다. 저녁은 치킨과 밥과 샐러드 였다. 치킨을 먹었는데 진짜 맛있었다. 밥을 다먹고 나는 홈스테이 집에 줄 옥수수가루를 들고 임마누엘과 같이 출발 했다. 그날은 비가 많이 왔었는데 가는 길이 멀고 흙길이라서 신발이 다 젖었고 가시나무가 많아서 옷도 많이 찢어 졌다. 하지만 나와 임마누엘은 힙합이라는 공통으로 좋아하는 분야가 있어서 금방 친해졌고 서로 아는 음악을 공유하면서 가니까 먼 길도 힘들지 않았다. 그렇게 가다보니까 임마누엘 집에 도착 했는데 집 입구 쪽에는 철창이 쳐져 있었고 집이 생각보다 좋았다. 집에 들어가서 임마누엘 어머니와 임마누엘 동생이 있었는데 인사를 드리고 임마누엘 방으로 들어갔다. 임마누엘 집에는 거실과 부엌에만 백열등이 있어서 임마누엘 방에는 빛이 들지 않았다. 그래도 방에는 침대도 있고 스피커도 있었다. 임마누엘은 나보고 침대에서 자라고 하고 자기는 매트리스에서 잔다고 했다. 처음에 임마누엘을 봤을 때 좀 무섭게 생겨서 양아치라 생각 했었는데 실제로는 배려심이 깊고 착한 아이였다. 양아치가 생각한게 미안해졌다. 그렇게 임마누엘에게 잘자라고 하고 잠시 사색에 빠졌다가 잠에 들었다. 다음날 아침에 7시쯤 일어났는데 임마누엘은 이불이랑 다 개고 패드 같은걸로 애니메이션을 보고 있었다. 첫 번째로 아프리카 아이들이 패드를 가지고 있다는 것에 놀랐고 아침에 이불을 스스로 갠 다는 것에 놀랐다. 한국에 가면 나도 임마누엘을 본받아 아침에 이불을 개야겠다고 생각했다. 잠을 깨고 난 뒤에 임마누엘이 아침 거리를 사러 가자고 했다. 또 몇십분을 걸어 마트에 도착했는데 무슨 마트에 시리아 내전 일어나는 곳에 있는 마트 같았다. 임마누엘과 식빵과 설탕을 사서 다시 임마누엘 집으로 돌아갔다. 임마누엘이 부엌에 가서 콩과 생선 통조림으로 무엇을 만들었는데 비주얼이 좀 그랬다. 어떻게 먹냐고 물어보니까 식빵을 거기다 찍어먹으라고 했다. 근데 찍어 먹어보니까 정말 맛있었다. 임마누엘이 나보고 목마르지 않냐고 해서 부엌가서 주스를 따라먹으라고 했다. 나는 한국에 있을 때처럼 유리병 가득 담았지만 임마누엘이 나보고 뭐하냐고 했다. 임마누엘이 주스를 다시 주스병에 거의 다담고 아주 조금 남겨놓고 거기에 물을 따랐다. 아프리카에서는 주스를 많이 못사니깐 한국의 메실 엑기스처럼 먹었다. 그렇게 아침식사가 끝나고 라마코카 교당으로 향했다. 교당에 도착 했는데 홈스테이 하는 아이들 중에는 내가 젤 먼저 도착 했었다. 아이들과 좀 이야기를 하다가 임마누엘과 씻으러 가는데 그때 영우형과 디제 슬우와 비케이가 보이기 시작 했다. 그래서 다 같이 씻으러 갔는데 역시 흑인의 몸은 장난이 아니 였다. 샤워를 끝내고 좀 쉬다가 원불교 예배시간 인가 그랬는데 아프리카 아이들이 염불을 다 외우고 찬양가도 다 외우고 있었던 것이 였다. 라마코카에서 와서 여러모로 놀라는 일이 많은 거 같다. 어쨌든 예배 시간이 끝나고 교무님께서 영어로 무슨 말씀을 하셨는데 자세히는 듣지 못하고 대충 자신이 이렇게 사람들에게 후원받고 사랑 받으며 살았으면 커서 공공을 위해 일하라는? 이런 내용이였다. 교무님 말씀이 끝나고 우리 일행들이 라마코카 아이들에게 한명한명 소개를 하고 라마코카 아이들은 우리들에게 보여줄 공연 준비를 하러 갔다. 그리고 우리는 교무님에게 몇 말씀을 더 듣고 라마코카 아이들이 준비한 공연을 보러 갔다. 첫 번째 공연은 태권도 공연인데 아이들이 날라다니고 송판 다 부시고 정말 지린다는 표현 밖에 안나왔다. 흥분을 감춘채 다음 공연을 봤는데 아프리카 전통 춤이였다. 춤추는 걸 보니까 아프리카 아이들은 정말 흥이 많고 끼가 많다는 것을 느꼈다. 그 다음은 벨리댄스 였는데 역시 잘췄다. 준비한 공연이 다 끝나고 교무님이 우리 일행보고 공연에 답을 해줘야 한다고 하나 준비하라고 하셨다. 처음에 뭐할까 하다가 점점 랩으로 가는 분위기 였다. 그래서 결국 3분도 안되는 시간에 나 영우형 수민이 이렇게 3명이서 랩을 하게 되었고 나머지는 뒤에 호응해주고 춤추는 식으로 했다. 첫 번째는 퍼즐을 불렀는데 생각보다 반응이 좋아 라마코카 아이들이 앙코르를 외쳤다. 그래서 두 번째 곡도 했는데 거북선을 불렀다. 내가 첫부분을 불렀는데 아이들이 호응을 많이 해주니까 신이나서 더 크게 했다. 그렇게 공연이 끝나고 라마코카 아이들과 신이난채 점심을 먹으로 갔다. 점심은 바비큐 파티 였는데 여러 가지 고기 종류가 있었다. 점심을 맛있게 먹고 라마코카 아이들과 페이스북 친구추가를 하면서 놀다가 3시쯤 되니까 낄레네 집에가서 나무 심기를 해야 한다는 것이였다. 그래서 트럭을 타고 낄레네 집으로 향했다. 한국에서는 트럭뒤에 사람을 태우고 도로 위를 달리는게 불법이라 한번도 타보지 않았는데 아프리카에서 타보니 시원한 바람을 맞으며 속도감을 즐기면서 타는 것도 재밌는 경험 이였다. 몇분을 달려 낄레네 집에 도착해보니 진짜 판자집이였다. 그냥 순수 판자로 지은 집이다. 낄레네 집을 보면서 지구에는 이런 부류의 사람도 있다는 것을 알게되었고 한국에서 평소에 했던 사소한 에너지 낭비 했던 것이 후회 되기 시작했다. 그런 감정을 가지고 나무를 하나 둘씩 심어 갔고 그렇게 심다보니 20개정도 나무를 다 심을 수 있었다. 트럭을 타고 다시 라마코카로 돌아가서 조금 휴식을 가지고 어두워 지기 전에 각자 집으로 돌아가기로 했다. 홈스테이 하는 아이들 끼리 무슨 상의를 했는지 각자 집에가서 짐을 놔두고 디제네 집으로 모이기로 했다. 무슨 파티를 하나 보다. 그래서 임마누엘 집에 짐을 놔두고 디제네 집에 가는데 40분이 걸렸다. 디제네 집에가니까 슬우와 영우형이 있었다. 서로 이야기 하고 있는데 디제네 할아버지가 와서 우리를 만나서 행복하다고 하시고 다시가셨다. 서로 이야기 하다가 더워서 디제집 베란다 같은 곳으로 나가서 이야기 하고 있는데 디제가 아프리카 전통 술이라면서 가지고 왔다. 한번 마셔 봤는데 나랑 슬우가 쓰다고 표정을 일그러트렸는데 라마코카아이들은 그게 재미있다고 웃어댔다. 아이들이 참 순수 한거 같았다. 그렇게 웃고 있는데 디제 엄마가 밥이 다 완성 되었다고 했다. 밥은 치킨과 우갈리라는 음식이 였는데 옥수수가루와 물을 적당한 비율로 석으면 만들어지는데 아무맛도 나지 않았다. 맛있게 저녁을 먹고보니 베란다 쪽에서 음악이 흘러 나왔다. 그때 호영이와 수민이도 왔다. 베란다에서 파티를 했는데 다 같이 춤을 쳤다. 춤을 추다가 링을 만들어 가운데 한명씩 들어가 춤을 췄는데 나는 아프리카 아이들에 비해 굉장히 못췄다. 그렇게 파티가 끝나고 다들 아쉽다고 해서 맥주를 사서 다 같이 마셨다. 12시 정도 까지 놀다가 잠이 온다는 아이들이 많아서 다들 집으로 돌아갔다. 생각해보니까 교당에 7시까지는 가야 해서 다음날 6시에 일어나야 했다 잠을 4시간 정도 밖에 못 잔다는 사실에 화가 났지만 재밌게 놀았으니 된거다. 다음날 피곤하게 일어나서 바로 라마코카 교당으로 출발해서 짐 챙기고 홈스테이한 아이들과 사진을 찍고 차에 탔다. 떠나려니 굉장히 아쉬웠다. 당당은 왜 항상 재미있는곳은 몇일 안 있는지 모르겠다. 아쉬운 작별인사를 하고 인터케이프 버스를 타러 버스정류소로 이동했다. 버스를 타러 제시간에 도착 했는데 2시간정도 연착 되었다고 한다. 역시 아프리카 였다. 우리는 할게 없어서 버스정류소 주변을 둘러 보다가 볼게 없어서 다시 대합실로 들어와 지루하게 1시간을 보내고 버스가 오자 버스 탈 준비를 했다. 버스를 타러 가는데 또 티켓에 문제가 생겼는지 당당이랑 직원이랑 말싸움을 하고 있었다. 이 버스는 짐바브웨 까지 13시간에 걸쳐서 가는건데 버스가 업그레이드 되기는커녕 다운그레이드 됐다는 말이다. 정말 욕이 나왔다. 버스 뒤 쪽에 화물을 실고 버스를 타보니 좌석이 다 붙어 있었고 화장실이 있었는데 물이 안나오고 환경이 정말 열악 했다. 어떻게 8시간 잘 참고 보니 짐바브웨 국경에 도착해 있었다. 모두 여권과 서류를 들고 차에서 내려 입국 수속 받는 곳에 줄을 섯는데 아프리카 사람들은 개념이 없는지 은근 슬쩍 자꾸 새치기를 했다. 다행히 우리 버스에 같이 탄 직원 분이 잘 조절 해주셔서 아무 탈 없이 잘 끝났고 다시 버스에 타서 5시간을 더 달려 불라와요에 도착 했다. 불라와요는 빅토리아 폭포를 가기위해 잠깐 들리는 도시였다. 그리고 빅토리아 폭포까지 기차로 가기로 했지만 또 10몇 시간 연착이 되어 어쩔 수 없이 버스를 타기로 했다. 버스 정류장으로 가서 9시인가 버스를 탔었는데 역시 제대로 되는 법이 없다. 버스에 자리가 많이 비었었는데 그 자리를 1시간 정도 다 채워서 갔다. 그래서 겨우 출발해서 약 7시간 인가 달려서 빅토리아 폭포에 도착하였다. 도착하여 봉고차를 타고 n1 호텔로 갔다. 호텔에 가서 체크인을 하고 방배정을 하고 좀 쉬다가 바깥에 나가서 주변을 산책했다. 산책하는데 옆에 흑인들이 들러 붙었다. 뭐지 하고 봤는데 구 짐바브웨 화폐를 파는 것이다. 교과서에 짐바브웨에서 인플레이션이 일어나서 화폐가치가 엄청 올랐다는 것을 보았지만 실제로 볼줄을 몰랐다. 자기 나라 화폐를 보면서 느낀건데 보통 인플레이션이 일어나 화폐가치가 휴지조각이 되면 부끄러워서 숨기기가 보통인데 이사람들은 얼굴에 철판깔고 여행객만 오면 들러붙어서 판다니 신기하고 좀 한심했다. 돈이 없으면 직장 구할 생각이나 하지 망한 화폐를 팔고 있다니 물론 부패한 정부의 탓도 있겠지만 이러니까 나라가 발전이 안된다는 것을 뼈져리게 느꼈다. 참고로 짐바브웨 구 화폐의 가치는 us1 달러당 3경5000조 정도 된다. 산책을 마치고 숙소로 들어가 좀 쉬다가 호텔에 수영장이 있어서 영우형과 슬우, 호영이, 수민이와 같이 수영장으로 뛰어 들었다. 밤 수영이라서 좀 추웠지만 수영하고 노니까 좀 나아졌다. 수영을 다 하고 들어가서 나는 피곤해서 자고 몇 아이들은 밖을 돌아다니다 들어왔다. 그 다음날은 빅토리아 폭포에 갔는데 빅토리아 폭포 반경 1km정도 전이 였는데 물안개가 떨어졌다. 그렇게 기대를 안은채 입장했다. 입장한곳에서 5분정도 걸어가면 폭포가 보이는데 정말 말이 안나온다. 그곳에 10m 간격으로 뷰포인트 같은곳이 있는데 걸어갈때는 나무가 많아 물이 그나마 안튀지만 뷰포인트 쪽으로 나가면 물이 엄청 튄다. 그냥 튀는게 아니고 비가 오는 수준이다. 나는 거기 갈 때 우비를 쓰지 않았지만 만약 그곳에 가고 싶은 사람이 있다면 꼭 우비를 챙겨가는 것을 추천 드리고 싶다. 물 튀기는 것을 다 맞고 허리에 두른 가방을 보니 안에 있는 돈과 여권 황열병 카드가 다 젖어 있었다. 빅토리아 폭포를 다 보려면 끝 쪽에 다리가 하나 있는데 그 까지 가야한다. 하지만 돈이 다 젖어서 다 보지는 못하고 사람이 잘 안오넌 햇빛이 잘드는 곳에 가서 돈을 다 펼치고 말렸다. 돈을 다 말리고 12시쯤에 입구쪽에 모여서 밥을 먹으러 갔다. 점심을 다먹고 자유시간이였는데 나와 영우형 슬우 호영이는 수영을 하러 갔다. 수영을 좀하고 4시까지 호텔 로비에서 다 같이 만나서 빅토리아 폭포 뒤쪽을 둘러보자고 했는데 나와 영우형은 점심 먹었던 것이 너무 맛있어서 한번 더 먹으러 가자고 했다. 3시 몇분에 출발했는데 안 늦겠지 하고 메뉴를 시켜보니 4시가 넘어 가고 있었다. 우리는 먼저 갔진 않겠지 하고 뛰어 가봤지만 아무도 없었다. 영우형과 나는 방키도 없어서 그냥 무작정 길을 찾아서 갔다. 길을 찾다가 한국인을 봤는데 정말 반가웠다. 그 한국인에게 길을 물어봤지만 모른다고해서 뒤 쪽에 길이 있길래 그곳으로 무작정 갔는데 그 길이 맞았다. 그 길로 가보니 빅토리아 폭포 상류쪽이 나왔다. 우리 일행을 찾고 있는데 아무리 찾아도 보이니 않았다. 그래서 그냥 우리끼리 보자고 해서 강변쪽을 따라 계속 올라갔는데 중간에 하마 발자국 하마 똥이 보였다. 우리는 궁금증이 생겨 더욱더 깊이 들어갔다. 양손에 돌을 쥐고 덤불에 돌을 던져가며 계속 올라가는데 강에 돌같은게 움직이는 것이 보이는 것이다. 그래서 자세히 보니 그렇게 생긴게 5개 정도 더 있었고 그것들이 입을 벌렸는데 그제서야 하마인줄 알았다. 우리는 신기하듯 보다가 날이 점점 어두어지고 하마가 가까이 오는게 느껴져 그곳을 벗어나려고 엄청 뛰었다. 빅토리아 폭포를 벗어난뒤에 숙소로 올라가는데 덤불속에 무언가 반짝였다. 잘 보니까 반딧불이 였다. 한국에서는 시골 할머니 집에서 밖에 보지 못했었는데 아프리카에서 보니 신기했었다. 그 다음 숙소 쪽으로 가는데 힘들어서 인도쪽에 앉았는데 옆에 짐바브웨 구 화폐 파는 놈이 와서 계속 붙어서 사라고 했다. 우리는 안사겠다고 하니까 담배하나 달라고 졸라댔다. 나는 담배를 피지않기 때문에 없다고 했는데 이번에는 내 슬리퍼랑 돈이랑 바꾸자고 조르는 것이다. 그래서 영우형과 나는 무시하고 우리 일행을 찾으러 갔다. 주변에 거의 모든 식당을 다 뒤졌는데 보이지 않았다. 그래서 포기하고 호텔 가서 기다리려 했는데 그때 당당을 만났다. 당당에게 돈을 받아 kfc에가서 배고픔을 채우고 다시 호텔로 가니 우리 일행이 있었다. 다들 어디 갔다왔냐고 물어보니까 우리가 하마 보고 왔다고 했다. 그러니까 호영이 빼고는 다 부러워하는 눈치였다. 그렇게 이야기 하다가 잠에들고 다음날은 타자라 열차를 타기 위해 잠비아로 이동했다. 잠비아로 이동하는데는 별로 걸리지 않았다. 왜냐하면 빅토리아 폭포쪽이 잠비아와 짐바브웨의 국경선이 있는곳이기 때문이다. 국경을 넘고 또 버스타러 갔다. 버스를 타고 8시간 정도를 달려 잠비아의 수도 루사카에 도착 했다. 수도라서 좋을 줄 알았건만 버스에서 내리자마자 자기 택시타라고 30명정도가 한 버스에 매달렸다. 좀비들을 떨쳐내고 10분정도 걸어가면 있는 백화점에 가서 저녁을 해결했다. 그 백화점에는 중국사람이 많았었고 오다가 중국 은행도 봤는데 알고보니 그 백화점도 중국이 와서 지어줬고 잠비아에는 중국 노동자가 많았다. 어디서 아프리카를 차지하는 나라가 새로운 강국이 된다는 이야기를 들은거 같은데 중국은 이미 뿌리를 내릴 준비를 하는 것 같았다. 백화점 구경을 다하고 택시를 타고 숙소에가서 체크인을 하고 다음 일정을 위해 잠을 청했다. 다음날은 타자라 열차를 타기 위해서 카파라 음포시역으로 향했다. 버스를 3시간 정도 타고 카파라 음포시 역에 도착해서 티켓 예매를 했는데 역시 그냥 넘어가는 일이 없다. 1등석 예약을 안해놔서 3등석을 타야하는 것 이였다. 이제는 어느정도 내성이 생겨 기차시간을 기다리다가 열차를 탑승하려갔다. 티켓검사하는 입구에 사람이 엄청몰렸었는데 우리 일행은 그나마 좋은 자리를 차지하려고 밀고 들어갔다. 기차에 탑승했는데 생각보다 괜찮았다. 나는 서부영화에 나오는 창문 다 깨지고 좌석이 나무로 되있는 기차일거라 생각했는데 아니였다. 위에 짐실을 공간도있고 자리도 그나마 괜찮았고 창문을 올리고 나무 막대기로 고정시켜야 한다는 것 빼고는 만족했다. 그리고 우리칸이 식당칸 바로 앞칸이라서 밥먹을 때 이동을 많이 안해도 됬었다. 목적지가 탄자니아에 있는 음베아역 이고 거리가 925.6km 정도 였다. 나는 기차가 좀 낡았다는 것을 감안하고 20시간이면 갈 줄 알았다. 하지만 열차는 내 생각보다 느렸고 총36시간 정도 걸렸다. 열차에서 힘들었던점은 첫 번째로 자리지키기 였는데 3등석에 우리말고 아무도 식사하는 사람이 없어서 서로 교대하면서 식사를 했다. 안그러면 다른 사람에게 자리가 뺏기기 때문이다. 두 번째로는 잠자기 였는데 3등석이라 누워서 잘 수 있는 사람이 4사람 정도 밖에 되지않아 돌아가면서 자거나 나머지는 기차바닥에서 자야했다. 그리고 중간에 비자를 받아야 했었는데 출입국소 직원들이 와서 짐검사 다하고 비자비를 다 걷어서 우리는 기차 안에 있고 직원들이 비자랑 다 받아서 줬다. 물론 질문지 다 써서 냈다. 36시간이 지나서 열차에서 내리면서 든 생각이 다시는 이 열차 안탄다는 생각 밖에 들지 않았다. 음베아역에 들어가니까 저녁12시쯤이라 사람은 아무도 없고 쓰레기만 날렸다. 그러고 보니 다니엘이라는 가이드가 우리를 기다리고 있다고 들었는데 아무도 없었다. 전화를 해보니 트럭이 너무크고 늦은 시각이라서 못 데리러 가겠다는 것이다. 이 시각에 택시랑 아무 것도 안 다니는데 참 어이가 없었다. 어찌어찌 택시를 섭외해서 호텔까지 갔는데 다니엘이 있었다. 우리는 다니엘과 인사를 한뒤 침대로가서 바로 뻗었다. 그 다음날 아침 일찍 일어나 세렝게티 까지 갈 차를 봤는데 트럭을 개조해서 뒤에 좌석을 만든 차였다. 처음에는 신기하다고 좋아했지만 이것이 우리 여행단의 발목을 잡았다. 고장이 2번인가 나고 경찰에게 과속으로 걸려서 그런지 엄청 천천히 갔다. 이 차에서 하루자면 원래 싱기다에 도착해 있어야 했다. 그런데 탄자니의 수도 도도마 까지 밖에 못온 것이였다. 그 날 아침에 버스에서 내려 아침식사겸 회의를 시작했다. 세렝게티 국립공원을 가서 반나절을 볼지 아니면 가까운 타랑게리를 가서 하루종일 볼지 이렇게 회의를 했는데 당당이랑 전미란샘이 엄청 토론했다. 전미란샘은 세렝게티를 가고 싶다는 의견이 였는데 결국 당당 의견에 따르기로 하고 타랑게리 쪽으로 트럭을 타고 달렸다. 타랑게리를 가려고 아침부터 종일 달려서 갔는데 싱기다를 지나서 조금 밖에 못왔었다. 운전기사가 여기서 2시간 정도만 더 가면 된다고 해서 주변에 숙소를 잡고 하룻밤 묵었다. 다음날 7시쯤 트럭을 타고 타랑게리로 이동 했는데 3시간에 걸쳐서 가서 도착했다. 타랑게리 국립공원에 들어가서 입장권을 끊고 음베아에서부터 타고 왔던 트럭을 타고 타고 본격적인 사파리 투어를 시작했다. 타랑게리 국립공원에 들어갔을 때 가장 먼저 보인 동물이 임팔라 였는데 그때는 임팔라만 봐도 신기 했었다. 임팔라를 보고 30분 정도 가니까 얼룩말이 있었고 옆쪽에는 누도 보였다. 가끔 가다 타조도 몇 번씩 보였는데 타조가 이런데 사나? 하고 엄청 신기해 했었다. 그렇게 계속 똑같은 풍경만 보던 중 버팔로가 나무 그늘 밑에서 쉬고 있는 것이 보였다. 그 때 우리 일행들 다 신기해서 카메라 셔터를 엄청 눌렀다. 또 가다보니 기린이 나오고 또 가다보니 코끼리가 나오고 했는데 코끼리 다음에는 계속 똑같은 동물만 나왔다. 계속 같은 동물만 나오니깐 아이들이 점점 잠이 들었는데 그 때마다 당당이 “어! 표범이다.” 계속 이런 말을 해서 자다가 깜짝 놀라서 놀라곤 했다. 그리고 계속 지루하게 가고 있는데 다니엘이 나무 밑에 사자가 있다고 말하였다. 육안으로 봤을 땐 잘 보이지 않았었는데 망원경으로 보니까 암사자 수사자 두 마리가 나무 그늘 밑에서 쉬고 있었다. 그 때 정말 신기해서 앞으로 더 나오겠지 하고 잠에서 깨서 찾아 보았지만 한번도 보이지 않았다. 그렇게 실망감을 가지고 잠에 들었는데 당당이 운전기사 보고 “우문디 슬로울리 슬로울리! 스탑! 스탑!” (우문디는 운전기사 이름)계속 이런말을 외쳤다. 나는 뭔가 하고 깨서 봤는데 우문디가 중요한 순간에 계속 가고 있는 것 이였다. 그 후로 몇 번을 더 들었는지 모르겠지만 당당은 그 말을 계속 외쳤고 나는 제대로 자지도 못했다. 사파리 투어가 끝나고 약간 아쉬운점이 몇가지 있었는데 첫 번째는 건기라서 악어 하마 같은 주로 물에서 서식하는 동물을 보지 못해 아쉬웠고 육식동물을 좀 많이 보고 싶었는데 날씨가 너무 더워서 전부 보이지 않는 그늘 속으로 들어가버렸다는 것 이다. 다음 사파리 투어를 올때는 우기이고 날씨가 그나마 풀린 5월 6월 쯤에 와야 겠다. 신기 했던 사파리 투어가 끝나고 캠핑장으로 갔는데 캠핑장 입구가 너무 좁아서 그런지 트럭이 들어 갈 때 입구에 있는 나무를 다 부수고 들어갔다. 힘들게 캠핑장에 들어간 뒤 텐트를 치고 바비큐 파티 준비를 하였는데 각자 역할분담을 나눠서 일을 수행했다. 나와 수민이는 치킨에 호일을 싸는 역할이 였는데 생각보다 수월했다. 호일을 다 싸고 밖에 나가보니 숫불을 피고 있었는데 조금 힘들어 보여 도와줬다. 숫불을 다 피우고 라면을 끓여서 먹었는데 오랜만에 먹는 라면이라 그런지 맛있었다. 라면을 다 먹고 설거지를 하고 숫불에 구울 치킨을 올렸는데 1시간이면 익을 줄 알았건만 생각보다 익지 않았다. 그래서 40분 정도 더 익혔는데 호일을 까보니 비주얼이 괜찮았다. 그 다음엔 치킨 맛을 한번 봤는데 겉은 다 탔고 속은 한국의 삼계탕에 들어있는 닭같이 속이 아주 촉촉 했다. 치킨을 다먹고 기분 좋은 채로 잠에 들었다. 다음 날 일어나서 침낭을 개고 있는데 옆에 침낭 커버거 없었다. 내 옆에 슬우가 잤었는데 슬우의 가방도 없어졌다 했다. 이상해서 밖에 나가보니 텐트 바깥에 두면이 조금 찢어져 있었다. 옆에서 영우형과 수오도 뭐가 없어졌다하고 트럭안에서 잤던 당당도 뭐가 없어졌다고 했다. 텐트 주위를 찾아보니 침낭 커버가 있었고 슬우도 가방을 찾다가 우문디가 흩어져 있던 가방을 모아뒀던걸 찾았다고 한다. 슬우 가방을 열어보니 수오 여권 슬우 여권이 있었고 지갑과 돈은 사라졌고 보조배터리와 usb잭도 사라졌었다. 또 영우형은 바지와 폰을 잃어버렸고 당당은 여행자금과 폰 원우형은 돈 수오도 돈을 잃어버렸다고 했다. 그렇게 우왕좌왕 거리다가 영우형 바지가 주위에 있던 작은 트럭에서 발견 되었다는 소식이 들려 왔다. 그렇게 단서가 하나 둘씩 발견 되자 경찰을 불렀고 수민이와 당당은 경찰서에 분실신고를 하러 갔다. 그리고 전미란샘은 타자라 열차에서 폰을 떨어뜨렸었는데 그걸 찾으러 원우형과 다시 왔던길을 되돌아 갔고 남은 사람들은 초조하게 결과를 기다리고 있었다. 몇분뒤 우문디가 우리보고 경찰서로 가야한다면서 전부 트럭에 타서 경찰서로 갔다. 경찰서는 약간 허름했고 그냥 동네 지구대였다. 거기서 몇분을 기다렸는데 몇 명 취조를 해야될 사람이 있다면서 영우형은 취조하러 가고 나머지 아이들은 그냥 기다렸다. 한 30분뒤에 취조가 다 끝나고 탄자니아 경찰이 다 찾아 주겠다면서 가도 괜찮다고 했다. 우리는 갈길이 멀었기 때문에 기분이 언짢은 채로 케냐로 출발했다. 케냐로 가는 길은 좀 많이 걸렸는데 하도 이동을 해서 이제는 익숙해져서 점심쯤에 출발했는데 저녁에 케냐 국경에 도착했다. 입국수속을 다 밟고 호텔로 갔는데 이름만 호텔이지 물도 안나오고 변기물도 안 내려갔다. 그렇게 좀 힘든채로 잠이 들었고 다음날은 룸부아로 이동했다. 원래 룸부아있는 보마라는 가옥에서 자기로 했었는데 우리들이 너무 피곤해 해서 나이로비에 오후3시에 떠나기로 했다. 룸부아에 도착하니까 장세균 장로님이 우리를 반갑게 맞이 해주셨고 광주에서온 봉사 단체 분들도 있어서 반가웠다. 그때 운동회를 하고 있었는데 너무 피곤해서 나는 운동회에 참여는 하지 않았고 운동장 옆 쪽에 식당 같은 곳에 가서 유치부 아이들과 놀았다. 아이들은 너무 귀여웠고 또 너무 순수 했다. 내 핸드폰으로 사진을 찍었었는데 한 아이가 핸드폰을 가져갔었다. 그런데 놀랍게도 좀 가지고 놀다가 나에게 주는 것 이다. 그때 이 아이들은 여행 다니면서 봤던 아프리카의 다른 한량한 사람 처럼 안되기를 빌었다. 아이들과 계속 놀아주다가 점심시간이 였는데 밥은 콩과 옥수수를 버무린 요리 였다. 나는 엄청 조금 펐었는데 옆에 룸부아 아이들은 엄청 많이 퍼서 먹었다. 광주에서 온 봉사자 분께 들어보니 이 아이들은 이거 한끼 먹으려고 집이 엄청 먼 곳에서도 학교까지 와서 먹는 다는 것이 였다. 그때 한국에서 잘 먹고 잘 사는 내 자신이 약간 부끄러워 졌다. 앞으로는 한끼를 먹을 때도 이렇게 못 먹는 아이도 있는데 나는 축복받은 거라면서 감사하며 먹어야겠다고 다짐했다. 점심을 다 먹고 다시 아이들이랑 놀아주다 지쳐서 버스로 들어가 잠을 자다가 3시가 다되서 나이로비로 출발했다. 룸부아에서 나이로비 까지 3시간 정도면 갔는데 나이로비 시내에 가니깐 차가 엄청나게 많아서 길이 많이 막혔다. 차가 끼어들기를 하는데 우리나라처럼 양보를 해서 끼어드는게 아니라 그냥 밀고들어온다 그래서 차량간 간격이 엄청 좁았고 사고도 많이 날 것 같았다. 그렇게 위험한 주행을 하며 아파트형 호텔에 도착 했는데 엄청나게 좋았다. 내부가 복층이였으며 주방과 냉장고 까지 있고 테라스가 2개나 있었다. 그리고 바깥에는 깊이가 3m까지 있는 수영장도 있었다. 사다나를 가기전 마지막으로 피로를 풀 수 있는 곳 이였기 때문에 2일 동안 즐길 수 있는 만큼 즐겼다. 꿀 같은 2일이 지나고 사다나로 떠났다. 사실 사다나 가기 전에 좀 걱정이 됬었다. 사전에 본 인도 사다나 공동채는 채식만하고 똥을 닦을때도 손으로 닦아야 한다고 본거 같은데 케냐 사다나 공동체도 그런다고 했다. 걱정을 안은채 사다나로 떠났는데 나이로비에서 차로 8시간 정도 갔다. 사다나에 도착해보니 입구 쪽에는 shadana forest 라고 적혀 있었고 주변은 다 사막이였다. 입구로 들어갔는데 주변에 라마코카에서 봤던 가시나무가 많았다. 그 길을 따라서 계속 들어가면 마루 같은 곳이 있는데 그곳에서 브루스를 만나 사다나 공동체는 어떤 단체 인지 설명을 들었다. 사다나는 비영리 단체 였고 주로 나무 심는 일을 했다. 설명을 다 듣고 나서 락이라는 공동체 일원이 시설 설명을 해주었다. 식당을 설명 해주셨고 샤워실 손 씻는곳 화장실 빨래하는 곳 이렇게 설명해줬는데 화장실은 페인트 통 같은 빈통에 똥을 싸고 휴지로 닦고 톱밥으로 3번 덮어주면 됬었다. 그렇게 해서 통을 다 채우면 그것을 1년 정도 발효 시켜서 거름으로 사용하는 식으로 했다. 손씻는 곳은 통조림 빈통을 가져다가 송곳으로 구멍을 뚫어서 만든 곳에 물을 부어서 씻는 식이 였다. 한번 씻어봤는데 충분히 씻을 수 있었다. 그 다음에는 우리 일행이 잘 텐트를 소개 시켜줬다. 바람도 잘 안들어 왔고 잘만했다. 락이 다 설명한후 우리는 짐을 텐트에다가 풀고 공동체에서 준비해 준 밥을 먹었다. 채식이라 들어서 풀 밖에 없을 줄 알았지만 밥도 있었고 국도 있었고 생각보다 먹을 만 했다. 밥을 다 먹고 스스로 설거지를 해야 했는데 양동이가 4개 정도 있었다. 첫 번째 양동이에서 양잿물로 식판을 닦아 내고 나머지 양동이는 그 양잿물을 행구는 식으로 했는데 뒤로 갈수록 물이 맑아 졌다. 밥을 다먹고 양치를 한 뒤 잠에 들었다. 잠을 자는데 새벽에는 진짜 추웠다. 침낭을 덮지 않으면 잠을 못 잘 정도 였다. 그리고 아침이 밝았는데 아침에도 좀 추웠다. 텐트에서 나와서 다들 하는 말이 추워서 제대로 못 잤다는 이야기를 많이 했다. 아침은 원우형과 전미란샘이 준비했었는데 전부 과일이였다. 과일만 먹고 배가 채워 질까? 라고 생각 했는데 전혀 채워지지 않았다. 그래서 설거지 하고 바나나를 후식으로 더 먹었다. 사다나의 방침은 오후12시부터 4시까지 일한다는 조건으로 숙식을 제공하는거 였는데 둘째날은 사다나 공동체를 다 돌아보고 집짓기를 하였다. 집짓기는 흙과 모래 물 마른 풀을 일정한 비율로 섞어 벽돌 같이 만들어 점점 쌓는 것인데 과정이 좀 힘들었다. 처음에 흙과 모래를 일정한 비율로 섞고 그 다음 물을 조금씩 부어서 반죽을 하고 어느 정도 반죽이 완성되면 마른 풀을 넣어 흙과 흙이 잘 고정되게 해서 벽돌모양을 만들어서 점점 쌓아나가는 것 이였다. 흙으로 집을 지으면 조금 부실 하지 않을 까? 했는데 집 밑부분에 흙이 다마른 부분을 쳐보니 전혀 흔들리지 않았다. 벽돌을 어느정도 쌓은뒤 나는 저녁을 하러 갔는데 카레와 된장국이 였다. 생각보다 맛있었고 공동체 분들도 다 잘먹었다. 텐트에서 하루 잔 뒤 그 다음날에는 나무심기를 했다. 나무 심기전에 브루스가 우리에게 어떻게 심는지 보여줬다. 먼저 약간 땅이 비스듬한 곳에 자리를 잡고 위 아래는 뻥뚤린 원기둥을 그 자리에 둔다. 그리고 그 원기둥에서 세발자국 정도 떨어진곳에 구덩이를 판다. 그리고 구덩이를 파서 나온 흙들을 원기둥 주변에 화산 모양으로 고정하며 쌓는다. 계속 반복한다. 였다. 이렇게 하나씩 만들 조를 정했는데 나랑 영우형이 한 조가 되었다. 일정한 곳에 자리를 잡고 앞의 과정대로 따라 했다. 생각보다 쉬울줄 알았는데 땅이 굳어서 정말 안파졌고 구덩이의 흙을 덜어서 화산 모양 만드는 것도 힘들었다. 힘들게 하나를 다 완성하고 보니 우리 조가 일등으로 완성한 것이 였다. 그래서 옆에 다 안 끝난 조에게 가서 곡괭이질을 엄청 해줬다. 그렇게 모든 조가 완성되자 브루스가 우리를 불러서 재와 소똥을 구해오라는 것이다. 그래서 구해왔는데 재와 소똥을 원통에 넣고 거기에 물을 잔뜩 부어서 뚜껑을 닫고 4시간 정도 뒤에 다시 온다고 했다. 그래서 모든 조가 그렇게 한 뒤 사다나 공동체에 돌아가서 쉬다가 4시간 뒤에 나무 심은 곳으로 돌아갔다. 뚜껑을 열어보니 물이 조금 빠져 있었다. 브루스가 우리에게 원통에 나무와 패트병을 고정시키고 원통에 흙을 부어라 했다. 그렇게 하고 있는데 패트병은 왜 넣지 했는데 패트병 밑에 구멍이 세 개가 나 있었다. 여기는 사막이라서 비가 안 오면 패트병에 물을 주나보다. 모두 다 그렇게 한 뒤 원통을 빼보니 흙과 물이 섞여서 옆으로 흘러 나오고 화산 같이 만들어 졌다. 그 다음 패트병에 물을 채워 넣고 화산 모양 분화구 쪽에도 물을 채워줬다. 그렇게 나무를 다 심고 나니 뭔가 황량한 사막에 새 생명을 심었다는 것에 뿌듯했고 많은 자원봉사자들이 왜 사서 고생을 하는지 알 수 있었다. 그렇게 나만의 의미있는 시간을 가진 뒤 공동체로 돌아가 밥을 먹고 텐트에 들어가서 잠을 잤다. 그 다음날은 브루스가 우리 일행이 힘들어 보인다 길래 집짓기와 나무 관리하기 밖에 하지 않았다. 그 일이 다 끝나고 저녁은 토마토 스파게티를 먹었다. 채식 토마토 스파게티를 먹었는데 색 다른 맛 이였다. 맛있는 식사가 끝나고 브루스가 마지막 날 이라고 다큐맨터리 같은 것을 보여줬다. 하지만 나는 추워서 들어가서 잤고 사다나의 마지막 밤을 맞이했다. 그리고 다음날에 브루스와 사다나 공동체 일원분 들게 인사를 드리고 나이로비 베네딕트 수녀원으로 향했다. 수녀원에 도착했는데 수녀분들이 환하게 우리를 마지해주셨다. 그중에는 한국 수녀분도 몇 분 계셨는데 우리 일행에게 좋은 말씀을 많이 해주셨다. 마지막 일정 첫날은 백화점의 오픈마켓과 케냐 국립박물관에 갔는데 백화점의 오픈마켓은 우리나라 시장과 비슷했다. 딱히 정해져 있는 가격이 없어서 주인이 물건 값을 부르면 고객이 깎으면서 서로 만족하는 가격이 나왔을 때 물건을 파는 식이였다. 나는 거기서 팔찌 아프리카 전통칼 장식품 목걸이 등을 샀는데 한국이면 5만원 넘게 주고 사야할 것들을 1만5천원 값에 사갔다. 그 이유는 호영이 덕분인데 호영이는 흥정을 정말 잘했다. 나중에 할 일 없으면 아프리카에 와서 장사해도 될거 같았다. 그렇게 재미있던 흥정놀이가 끝나고 케냐 국립박물관에 갔는데 솔직히 볼게 없었고 옆에 뱀 박물관이 더 볼게 많았다. 교과서에서 보던 뱀 종류가 거의 다 있었고 육지 거북과 사파리에서 보지 못했던 악어도 있었다. 박물관 관람을 다하고 수녀원으로 돌아가서 우리 일행끼리 일정을 정리하는 시간과 여행 소감 같은 것을 말하며 여행을 정리 해갔다. 마지막 밤에 잘때는 여러 가지 생각이 들었다. 26일간 재미있었던 아프리카를 내일이면 떠난다는 사실이 좀 아쉬웠고 또 26일이 너무 빨리 지나갔다는 사실이 아쉬웠다. 그리고 가장 아쉬웠던거는 이번 여행이 이동하는데 너무 많은 시간을 소비했다는 것 이였다. 그런 아쉬운 생각도 나면서 한편으로는 즐거웠던 추억이 떠올랐고 여러 가지 생각을 하게 되는 밤 이였다. 그 다음날은 기념품을 많이 안 산 아이들을 위해 기념품점을 들리고 한식당도 들렸다. 한식당은 오랜만에 먹는 한식이라 반가웠지만 가격은 그렇게 반갑지 못했다. 어쨌든 점심 식사를 맛있게 하고 마트에 들려 추가 쇼핑을 하고 케냐 공항으로 출국 수속을 밟고 한국으로 떠났다. 그렇게 20시간 정도를 날아 한국에 도착했고 나와 슬우는 일행들과 작별인사도 못한채 해어졌다. 어떻게 보면 이동만 하다 끝난 여행이라고 볼 수 도 있지만 나에겐 많은 것을 깨닳게 해준 소중한 여행이였다. 또 많은 사람들이 아프리카에 대해 부정적인 시선을 가지고 있지만 아프리카는 정말 재미있는 대륙이라는 것을 알려주고 싶다. 이제 아프리카와 작별인사를 해야겠다. See you again Africa!