왕경산(덕산3봉: 261m) 정상에서..... 정상 표지판을 붙인 서래야님 감사합니다....
회장님의 수고로 풍양중학교에 주차후 교사 뒤 운동장을 횡단하여 좌측의 좁은 길로 올라간다...
둘레에 망을 친 묵은 밭을 따라 나아간다...
낙엽으로 쌓인 길을 따라서 ...
골짜기를 건너서 올라간다...
급경사의 미끄러운 낙엽 길을 한참 오른다..
숨이 턱에 차서 쉬어 가며 오른다...
우측 건너편 왕경산의 岩峯이 보인다...
우천 시 물길로 변해 흙이 쓸려나갔다......
풍양중 운동장과 시가지 그리고 멀리 비봉산이 우뚝하게 솟았다...
건너편 덕암산(활공장)이 정겹고 뒷편의 건지봉도 기회가 되면 가고싶은 산.........
로프를 안 잡고 엄대장님이 앞서서 돌길을 오른다....
잘 갖추어진 운동기구가 우리를 반긴다........
체육시설의 벤치에 앉아 담소하며 간식을 즐긴다.....
덕산 봉우리를 향해 출발....
가파른 암벽을 올라서니 덕산 봉우리가 눈 앞이다...
덕산(257,8m) 정상에 돌탑과 산불감시초소가 우리를 기다린다...
松崗님이 돌탑에 기대어 멀리 비봉산을 바라본다...
정면의 야산 아래 와룡2리(서동)와 서쪽의 낙상1리,
강건너 마리산(국사봉)과 군암산이 눈에 익어 반갑다...
풍양 시가지와 남쪽으로 뻗은 다인, 대구 가는 길....그리고 우뚝 솟은 비봉산.....
덕산 정상에 운동기구가 있고, 청소를 깨끗이 하여 감사했다......
주변의 경관을 살피면서 산에 오른 즐거움에 흠뻑 젖는다...
덕산 정상(257.8m) 이정표에서....
왕경상(덕산3봉) 가는 내리막길은 미끄러워 주저앉기 쉽다.....
앞쪽에 왕경산(덕산3봉) 암봉이 힘차게 솟아올랐다.
작은 봉우리를 넘는다...
다시 내려 갔다가 앞에 솟은 왕경산을 오른다.....
아름다운 청산은 떨어져 있어도 반갑다. 정상의 염소는 잘 있는지....
종점(오지리터널) 방향으로...
오르고 내리며 오지리터널 방향으로.....
회장님 신발 끈을 고쳐 묶고...
청운리 방향으로....
좁은 오솔길을 따라...
내리막길은 비단길...
도로 위의 철망 옆으로 로프 난간을 따라 내려간다....
오지리 터널을 우측으로 보면서......
도로에 내려서니 정면에 청산이 우뚝하다.....
인도 폭이 넓은 좌측으로 터널 통과...
풍양면사무소 방향의 시내로 입성....
풍양초등학교 진입로.. 교문에 스쿨버스가 나온다...
합동식당에서 소고기국밥으로.....메워서 혼났다..
주차한 풍양중학교에 도착...
경상북도 유형문화재 제122호 홍귀달선생 신도비 참배 → 20m
문경의 선비 홍귀달선생
1438년(세종20년)에 상주군 이안면 여물리에서 효손의 둘째 아들로 태어났다. 여덟 살 되던 해에 문경군 영순면 율곡리에 옮겨 살았다. 어린 시절 글방을 다니며 관솔을 따서 밤에 불을 밝혀 공부하고. 일곱 살에 효경을 읽고 한평생 정성을 다해 어버이를 섬기고, 어머니가 지어준 버선을 남의 눈이 있는 곳에서는 신고 그 외는 벗어 들고 다녔다. 아홉 살에 용궁에 있는 주 감사에게 논어를 배웠다.
1461년(세조6년)에 문과에 올라 조선전기 대제학, 대사헌, 이조판서 등을 역임한 문신이자 청백리였던 문광공(文匡公) 홍귀달(洪貴達. 1438~1504)선생은 본관은 부림(缶林: 現 부계). 자는 겸선(兼善), 호는 허백당(虛白堂)·함허정(涵虛亭). 사재감정 홍순(洪淳)의 증손으로, 할아버지는 홍득우(洪得禹)이고, 아버지는 曾 판서 홍효손(洪孝孫)이며, 어머니는 노집(盧緝)의 딸이다. 1498년(연산군 4) 무오사화 직전에 열 가지 폐단을 지적한 글을 올려 왕에게 간하다가 사화가 일어나자 좌천되었다. 1500년 왕명에 따라 『속국조보감(續國朝寶鑑)』·『역대명감(歷代名鑑)』을 편찬하고, 경기도관찰사가 되었다. 1504년 손녀(彦國의 딸)를 궁중에 들이라는 왕명을 거역해 장형(杖刑)을 받고 경원으로 유배 도중 교살(絞殺)되어 67세를 일기로 영면하였다. 문장이 뛰어나고 글씨에도 능했으며, 성격이 강직해 부정한 권력에 굴하지 않았다. 모두들 몸을 조심하라 했으나, 태연히 말하기를 “내가 국은을 두터이 입고 이제 늙었으니 죽어도 원통할 것이 없다”고 하였다.
중종반정 후 신원(伸寃:원통함을 풀어 버림)되었다. 함창의 임호서원(臨湖書院)과 의흥의 양산서원(陽山書院)에 제향되고, 저서로는 『허백정문집(虛白亭文集)』이 있다. 시호는 문광(文匡)이다.
신도비는 높이 3.74m, 너비 1.20m의 큰 규모를 자랑한다. 대제학(현.교육부장관)을 지낸 당대 명문장가인 남곤(南袞)이 문장을 짓고, 아들 홍언국(洪彦國)이 글씨를 썼으며 사후 30년이 지난 조선 중종 30년(1535년)에 세운 것이다. 비각 안에 있는 받침돌(龜趺) 위로 비신(碑身)을 세우고 머릿돌(離首)을 올린 모습으로, 각 부분의 조각이 아름답다. 비문은 일부 심하게 닳아 있어 읽기가 힘든 상태이나 다행히도 「부림홍씨 세덕록(缶林洪氏 世德錄)」에 그 원문이 실려 있으며 비문에 새겨진 글자는 모두 2,523글자이다.
부림홍씨 祭室..... 수고하셨습니다.
첫댓글 풍양소재지를 감쌓고 있는 왕경산은 우망리를 감싼 알운산과 연결 되고 들판에 우뚝하여 사방이 잘 보여 전망이 매우 뛰어난 산으로 풍양중학교로 입산하여 덕봉을 오르는 길이 경사가 가파르고 낙엽이 쌓여 호흡이 거칠어지고, 종아리가 당기는 코스로 여기만 지나면 그 후로는 비단길이어서 산행의 즐거움을 마음껏 느끼는 좋은 산이다. 오늘도 함께한 친구들 감사합니다.
豊壤은 겨울 山行地 요람이 되었다.나즈마한 봉우리가 사방에 걸쳐 있고 비교적 양지바른 곳이라서 적설기에도 걱정이 없는 곳이다.풍양중학교 뒷길을 통하여 3번째 오르는 길은 운동장이나 등산로나 인적이 없다.가파름 때문에 도중 運動施設에서 한숨 돌리고 정상에 서니 돌탑,감시초소,깃대 등 정돈이 매우 잘 되어있다.정초 해맞이 행사를 했는듯 동쪽으론 조망에 걸리적한 것들은 모조리 정리하여 황량하다.사방으로 길게 뻗은 봉우리를 살펴보니 未踏인곳은 德巖山 건너 건지봉 하나가 남았다.덕산~왕경산 길은 잘 조성된 솔숲이라 散策路로는 손색이 없다.오지터널로 내려오니 알운봉 오르던 지점이다.臥龍山 縱走를 한 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