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은 면천에 위치한 몽산성 마룻길 탐방하는 날입니다. 아미산은 몇번 올라가 봤지만 몽산은 처음이라 기대반 설레임 반인데요.
면천 농협 주차장에서 일행들과 함께 면천읍성으로 향합니다.
면천읍성은 둘레가 약 1,200m로 평면은 네모꼴에 가까운 타원형을 이루고 있는데요.
성문은 남문·동문·서문이 있었습니다. 남문은 옹성(甕城)을 설치하여 적의 침입에 대비하여 유용하게 방어할 수 있도록 설계되어 있으며, 남문과 서문에는 문루가 설치되어 있었는데요. 성벽 역시 7개의 치성(雉城)을 설치하여 외적의 침입에 대비하였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복원 현장을 살펴보기 위해 동벽 방향으로 향합니다. 동벽은 읍성의 흔적이 가장 적게 남아 있다고 하는데요. 조선중기에 사면으로 덮였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동벽은 현재 복원중인데 성벽을 쌓았던 흔적이 나와 발굴 조사중인 장소인데요. 오늘은 특별히 남광현 팀장님과 성벽 축조 형태에 대해 살펴보았습니다.
면천에는 7개의 치성을 뒀다고 하는데요. 치성은 성 구조물의 일부로 성벽의 바깥으로 덧붙여서 쌓은 벽을 말합니다. 적이 접근하는 것을 일찍 관측하고 싸울 때 가까이 오는 것을 막을 수 있도록 한 시설로 이곳에 누각이 있으면 ‘포루’라고 한다고 합니다.
위에 비닐이 덮인 사진이 치성의 흔적이 남아 있는 곳이라고 하네요.
복원된 면천 객사 앞에서 남광현 팀장이 면천객사 이야기를 들려줍니다.
객사는 조선 시대에 주로 왕의 위패를 봉안하고 공식 행사를 하던 곳으로 조선왕조의 정체성이 담겨있다고 하는데요. 면천객사는 가운데 위치한 정청과 동익헌·서익헌으로 구성돼 있습니다.
정청에는 조선 임금과 중국임금을 상징하는 전패와 궐패가 모셔져 있었다고 하는데요. 보름에 한번 전패와 궐패에 절을 올리며 예를 갖추는 의식 삭망례를 진행하는 곳이라고 합니다.
사극을 보다 보면 '종묘사직을 보존하시옵소서!'라는 말이 많이 나오는데요. 종묘는 역대 왕들의 위패를 모신 사당이고, 사직은 토지 신과 곡식 신이라고 합니다.
조선시대에는 '위로는 왕을 존중하고 밑으로는 백성을 위한 신들한테 잘하면 조선은 잘 된다'라는 건국이념에 종묘사직을 중요하게 생각했다고 하는데요. 때문에 정청이 있는 면천객사는 동헌보다 위계가 높았다고 합니다.
면천객사에서는 세 가지 곳(마을의 수호신인 성황사· 땅의 신·여단)에 제사를 지낸다고 하는데요.
여단은 전통사회에서 돌림병이 돌면 그 원인이 제사 지내주지 않는 여러 가지 귀신들이 원한이 사무쳐서 하늘로 못 올라가고 떠돌다가 돌림병을 일으킨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면천객사에서 풍락루를 돌아 몽산으로 향하는 길에 객사 왼편으로 공터가 보이는데요.
관아자리를 발굴한 결과 객사시설을 중심으로 주변 건물지 및 축대, 누각 등 5개의 건물을 발굴했다고 합니다.
몽산성 마룻길 입구에 도착해 남광현 팀장에게 몽산성에 대한 이야기를 듣습니다.
몽산은 면천면 성상리, 송학리와 순성면 성북리, 백석리에 걸쳐 있는 고도 299m의 산인데요. 조선 시대 면천군의 진산(鎭山)으로 '몽산성(夢山城)'이라 불리기도 한답니다.
몽산성은 몽산의 능선을 타고 흙을 다져 쌓은 퇴뫼식 산성으로 백제시대부터 존재하던 산성이라고 하는데요.
산성 일대에는 마룻길이라고 불리는 숲길이 조성되어 있으며, 이 숲길을 '몽산성 마룻길'이 부른다고 합니다.
[여지도서] 면천조에는 "몽산성은 돌로 쌓았는데, 주위가 1,314척이다. 안에 2개의 우물이 있는데, 지금은 못쓰게 되었다. 면주이던때에 이곳에 관아가 있었다"고 기록되어 있다고 합니다.
몽산으로 향하는 초입부터 가파른 길이 이어지는데요. 지칠 즈음에 완만한 길이 이어지며 독특한 수형의 나무들이 많이 보여 나무를 구경하는 재미도 솔찬합니다.
몽산여단 표지판이 보이는 곳에서 몽산여단에 대한 이야기를 듣습니다. 여단은 면천읍성 북문 밖 3리에 있다고 전해지나 위치는 정확하지 않다고 하는데요.
백제 말년으로 추정되는 시점에 여단제라는 것이 있었다고 합니다. 규모에 대해서 알려진 바는 없지만 과거 몽산에는 절과 성황당이 있었다고 하는데요. 이로인해 억울한 영혼을 달래기 위한 제사가 지내졌을 것으로 전해진다고 합니다.
정상으로 향하는 길에 제 1 망루 추정지 푯말이 보입니다. 망루는 성벽 방어, 감시, 통신, 지휘, 조망 등을 위하여 구릉부 등에 설치하는 누각인데요. 포곡식 산성인 몽산성에는 지장대를 중심으로 양쪽 능선에 대칭으로 8개의 망루지 흔적이 있었던 것으로 추정된다고 합니다.
망루 추정지를 지나며 걷다보면 크고 작은 성돌들이 보이는데요. 성내 시설로는 동, 서, 남, 북문 터와 망루터가 있으며, 정상부를 중심으로 동쪽은 토성, 서쪽은 석축 성의 흔적이 남아 있습니다.
현재의 몽산성 터는 능선을 따라 자연스럽게 토축하여 성을 쌓고 그 위에 석축으로 성을 쌓은 흔적이 그대로 남아 있는데요. 지형과 토질에 따라 토축으로 쌓은 토성 지대와 돌로 쌓은 석축 성 지대가 명확히 구분된다고 합니다. 이것은 원래 토성이었던 것을 후대에 석축하여 성을 쌓았다는 뜻이라고 하네요.
면천면 문봉리가 바라보이는 멋진 조망이 펼쳐진 장소에 도착했습니다. 미세먼지로 인해 마을의 모습이 희미하게 보이지만 나름 풍경이 운치 있어 기념사진을 찍었습니다.
신선바위를 지나 내리막길을 가는것도 잠시 다시 오르막길이 나옵니다.
4망루 추정지를 지나니 말로만 듣던 고로쇠 나무도 보이고 꾸찌뽕 나무도 보이네요.
정상이 가까워지자 커다란 성돌이 많이 보입니다.
산 정상부에 도착하니 퇴뫼식 산성의 흔적이 보입니다. 퇴뫼식 산성은 백제부흥군이 활동한 백제시대의 흔적이 남아있는 석축 성인데요. 산의 지형을 이용하여 성곽이 산의 정상을 중심으로 7~8부 능선을 따라 거의 수평되게 한바퀴 둘러 쌓은 산성입니다. 단시간의 전투에 활용하기 위한 산성이라고 하는데요.
현재는 성벽이 무너진 채 방치되어 있습니다. 몽산성은 조선 초기까지 면천군의 행정 치소 역할을 했다고 하는데요. 이후 평지성인 면천읍성이 1439년(세종 21)에 완성되어 치소의 기능을 상실한 이후 쇠락했다고 합니다.
드디어 몽산 정상에 도착했어요. 이곳은 백제, 고려, 조선시대 와편들이 있어 백제시대부터 치소였을 것으로 추정되는 곳입니다.
몽산 정상 부근에 2,000여 그루이상 시무나무 군락지가 조성되어 있는데요.
예로부터 우리의 선조들은 성곽주변에 탱자나무와 시무나무 등을 심어 방어수단으로 사용했는데 몽산성에서는 시무나무를 통해 방어막을 구축했다고 합니다.
전국적으로 시무나무를 통한 인위적 방어벽 산성은 몽산성이 유일하다고 하는데요.
몽촌토성은 개발로 인해 홰손되었지만 하루속히 몽산성 유적지의 역사성 및 시무나무 군락지라는 희귀성과 보존에 대한 필요성을 요하고 있습니다.
시무나무는 가지에 긴 가시가 있는데요. 가지를 잘라 살펴보았습니다. 가지에 달린 가시를 보는 것만으로도 위협적인데요. 어마무시한 시무나무 가시에 한번 찔리면 적군들이 전의를 상실해 삼십육계 줄행랑 할 것 같습니다.
오늘 몽산 탐방엔 어린이와 청소년, 나이 지긋한 어르신들과 강아지도 참석했는데요. 중간에 포기하지 않고 정상까지 오른것을 기념하며 단체사진을 찍습니다.
정상에서 50m 내려가니 넓은 쉼터가 보입니다. 쉼터엔 의자와 산에 오르느라 뭉친 근육을 풀수 있도록 운동기구가 설치되어 있네요. 한쪽엔 위트있는 시가 있어 읽어 보았습니다.
성곽에 대해 한눈에 알아볼 수 있도록 세워진 안내판이 보이는데요. 그밖에 몽산과 관련된 기록들이 새겨진 안내판이 많이 있습니다.
쉼터는 군량과 무기를 보관하던 창고가 있었을 것으로 추정되는 장소인데요. 산 위에 이정도의 넓은 평지가 있는걸 보니 백제 부흥 전쟁 당시 풍왕이 잠시 천도하였던 피성으로 추정된다는 설에 공감이 됩니다.
쉼터 뒤쪽으로는 멋진 바위가 보이는데요. 가까이 가보니 제단으로 사용된 흔적들이 보이네요.
쉼터에서 5 망루 추정지를 지나 능선을 따라 내려가면 장승쉼터가 보입니다.
왼쪽엔 돌탑에 등산객들이 쌓은 돌탑이 있네요. 한 학생이 마음을 담아 돌을 쌓고 있습니다. 오른쪽으로는 남·녀 장승들이 보이는데요. 그동안 보았던 장승과 다른 독특한 형태의 장승입니다.
2시간 가까이 진행한 몽산 탐방에 지칠법도 한데 벚나무길을 따라 하산하는 발걸음이 마냥 가볍습니다.
그동안 몰랐던 몽산성의 역사적 가치를 엿볼수 있었던 시간이었기 때문이겠지요. 똥꼬발랄한 모습으로 역사탐방에 동행한 강아지가 주는 즐거움은 보너스였답니다.
몽산성 마룻길 탐방을 마치고 면천에서 먹는 바지락 칼국수도 면천 콩국수에 뒤지지 않는 별미였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