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등포 한 중학교 초임 발령을 받아 근무를 시작했을 때, 내 앞전 근무자인 선생님은 강남 학교로 이동했었다.
강남 분위기는 어떻느냐 물어보니 그녀는 몇 가지에 놀라웠다며 말해주었다.
첫번째는 아이 일로 전화를 하면 학부모가 연결이 되지 않는 경우가 없이 즉각즉각 대기라는 것이다.
두 번째는 얼굴 부위도 아닌데 팔다리에 약간의 스크래치 상처에도 성형외과로 달려간다는 것이었다.
세 번째는 강남 테헤란로 근처에 소아정신과가 그렇게나 많고, 주의산만도 초기에 즉시적 대처를 한다는 것이었다.
당시 1990년대 중반이었다.
신경정신과 치료에 대하여 전통적 보수적인 편견과 낙인이 찍히던 시기였었다.
30여년의 세월이 흘렀지만 나는 지금도 얼굴아닌 작은 상처에 성형외과까지 보내지는 않는다.
주변에 성형외과가 있지도 않다.
내가 있는 학교에서는 아이가 수업중 연발성 뇌진탕이나 사건 발생시 나만 긴장하는 경우가 발생하곤 한다.
전화로 아이의 상황을 설명하면 학부모는 일상의 연속성이 깨진 것에 화가 난 것을 아이 탓으로 푸념을 한다.
" 그 녀석 학교가기 싫어서 그래요" 라거나, 학교에서 알아서 하라거나, 전화 자체를 받지 않기도 한다.
강남 학부모이면 민사소송, 형사소송, 법적 분쟁거리일 가능성이 엄청 높을 것이 예상되는데 말이다.
실상은 학부모가 신경을 못쓰면 교사가 더 많이 마음을 쓰고 정성을 기울여야 하는데 실상 또 그렇지가 않다.
별거 아니라는 식의 학교 측 또한 그에 맞춤한 무심한 대처로 넘어가곤 한다.
강남의 초등교에서 근무하는 동생은 요즘 학교내 아이들 갈등과 분쟁 해결이 학교 밖에서 이루어지고 있다고 한다.
학교측에 알리지도 않고 학부모들끼리 알아서 소송 등 법적 분쟁처리를 깔끔하게 한다는 것이다.
공교육을 완전 초월한 강남 스까이 캐슬 교육이 어마어마해서 세계적 탑 수준인 거다.
학교폭력대책위원회의를 참여하면서 교육청에 아이들 분쟁과 조정을 넘기는 것이 좋다는 생각이 점점 굳어져가고 있다.
내 조카 내 손주라면 나라도 학교측에 맡기지 않을 것 같다.
상담(교)사 또한 ' 왜 너 오라니깐 안 왔니?, 가보니 수업중이더라" 등 자신의 최선적 대처를 확인받기도 한다.
학생 사안처리의 가부간 결정은 "학교장님 가라사대" 아이를 한번도 대면하지 않은 학교장의 의사결정에 의존해 있곤 한다.
생활지도부장은 부드럽게 회의를 운영하지만 자신의 서류작성에 최우선적 관심사가 쏠려있곤 한다.
오류과 항변을 줄이고자 꾹꾹 눌러 아이에게서 " ~한 거 맞지?, 왜 그랬어? " 재차 점검하여 확인하는 것이다.
우리들 교사는 비폭력 대화나 글쓰기 훈련 자체가 안 되어, 사건개요서의 첫 문장부터 주어가 두 개를 넘기도 한다.
이런 모든 것에 '왜 내가 할 일도 없는 듯 한데 꼭 참석해야 하나?' 갈등하곤 했었다.
그러나 해보니 참석이 필요한 경우가 많다.
가해자 아이들인 경우 보건실에서는 잘 알기도 해서 그 아이가 왜 그랬는지 이해 촉구나 대변을 해 줄 수 있기도 한다.
이 아이들은 학폭위에도 부모(보호자)가 참석을 또 안한 경우가 태반이기도 하다.
아이들 학교폭력 문제를 들여다보면 바로 우리들 성인의 문제 축소판일 뿐이다.
반성은 성인들이 해야 하는 것이다.
가해자이든, 피해자이든, 아이들에게 저절로 미안한 마음으로 사과를 아니할 수가 없기도 하다.
"선생님이 잘 못가르치고 바르게 못 살아서 미안합니다"
아이들이라고 해서 기숙사 학교에서 24시간 붙어 사는 사회적 생활과 인생이 쉬운 것이 아닌 것이다.
폭력적 언행을 한 번 한 적 없는 듯, 제때 사과를 진심으로 하고 사는 듯 아이들 앞에서 고색창연한 훈계는 낯설기만하다.
학년 낮은 아이, 개성있는 아이, 약한 아이를 대리훈계할 완장을 쥐어 주고, 위계질서를 원하는 것은 학교측, 성인들 아닌가.
실컷 놀고, 이거저거 해 보고, 자신이 좋아할 학문을 선택할 기회가 재량껏 주어진다면 우리는 누구나 대학자가 될 것이다.
세계적 석학과 멘토와 분야별 고수를 만날 기회가 있다면 수학이 아니라 수학 할아버지라도 즐거운 공부는 가능한 것이다.
서울에서도 전북에서도 최고의 취약학교, 학교 내 에서도 최고 취약아를 전담하는 나는 장담할 수 있는 한 가지가 있다.
우리들 대부분 허준이 수학상을 받을 수 있다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