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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도행전 9장 32-43절. 베드로가 룻다와 욥바에서 사역함
구절 해설
8장 26절부터 9장 31절까지의 내용은 베드로와는 상관이 없는 빌립의 전도와 사울의 회심 사건이었습니다.
즉 빌립은 사마리아 지역을 전도하다가 에디오피아 내시를 전도합니다.
그리고 사울은 예수 믿는 사람을 핍박하려고 다메섹까지 갔다가 다메섹 도상에서 예수를 만나서 예수님을 위한 사도로 전환을 합니다.
이 두 사건이 8장과 9장에 기록되어 있는데, 왜 누가는 베드로의 이야기를 하다가 도중에 빌립의 이야기와 사울의 이야기를 개입시켰을까요?
그것은 한 가지 목적 때문입니다.
즉 빌립의 사건이나 사울의 사건이나 베드로의 사건이 모두가 다 공통점을 가지고 있는데, 그것은 이방인을 향하여 복음의 문을 열고 있다는 것입니다.
32절. 그 때에 베드로가 사방으로 두루 다니다가 룻다에 사는 성도들에게도 내려갔더니
New American Standard Bible: Now as Peter was traveling through all those regions, he came down also to the saints who lived at Lydda.
그 때에 베드로가 사방으로 두루 다니다가
Ἐγένετο δὲ Πέτρον διερχόμενον διὰ πάντων,
It came to pass then Peter passing through through all,
직역하면 ‘그 때 베드로가 모든 곳으로 두루 다니게 되었다’는 뜻입니다.
‘두루 다니게’(διερχόμενον)는 현재분사이고(passing through), ‘되었다’(Ἐγένετο)는 부정과거로서(It came to pas) 과거에 일어난 확실한 사실을 가리킵니다.
사도행전 8장 1-3절에 기록된 예루살렘의 큰 박해는 3년 동안 계속되었고(36-39년), 39년에 로마 갈리굴라 황제가 자신의 동상을 예루살렘 성전에 세우라고 하여 40년까지 유대인들이 폭동을 일으켰을 때부터 4년간(40-44년) 교회는 평온하여, 크게 확장되었습니다. 요세푸스 고대사. 18권. 8:2-9.
그러자 베드로가 각 지역에 있는 성도들을 심방하였는데, 오늘 본문이 바로 그러한 사역 가운데 하나입니다.
여기 룻다에 애니아라는 성도와 교회는 빌립의 전도로 형성된 것이었습니다(행 8:40).
룻다에 사는 성도들에게도 내려갔더니
κατελθεῖν καὶ πρὸς τοὺς ἁγίους τοὺς κατοικοῦντας Λύδδα.
went down also to the saints of the inhabiting Lydda
‘사는’(κατοικοῦντας)은 현재분사이고(inhabiting), ‘내려갔더니’(κατελθεῖν)는 부정과거 부정사형 동사로서(went down) 확실하게 내려간 과거의 사건을 가리킵니다.
룻다는 욥바와 예루살렘으로 연결된 도로에서 4킬로 떨어진 곳이고, 욥바와는 15킬로 떨어진 곳입니다.
구약에는 로드(느 7:37, 11:35)나 롯(대하 8:12)으로 기록되었으며 마카베오서에는 룻다로 기록되어 있습니다(상11:34).
요세푸스에 의하면, 룻다는 도시에 버금갈 만큼 큰 마을이었다고 했으며(고대사 10권 6:2), AD 70년 예루살렘 파괴 이후에는 기독교 공동체의 중심지이기도 했습니다. Baker.
1. 베드로는 사마리아 지역에 가서 기도하고 성령 받게 한 후에 예루살렘으로 돌아오는 길에 사마리아와 유다 땅의 중간 지점이 되는 해변 지역의 룻다라고 하는 곳에 들어가게 되었습니다.
우리는 여기서 베드로의 또 하나의 모습을 발견하게 되는데, 그것은 흩어진 성도들을 심방하고 도와주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오늘 우리가 성경을 보면 이미 예수 믿는 사람들이 룻다와 사론과 욥바에도 있었다는 것입니다.
즉 사울의 핍박으로 흩어진 사람들이 룻다와 욥바에도 갔고, 빌립을 통해서 믿은 성도들도 있었던 것입니다.
그런데 사도행전을 보면 하나의 공통점은 복음이 국적과 인종과 문화와 전통을 초월하여 흘러간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복음이 흘러가면서 또 하나의 놀라운 사실이 보여지는데, 그것은 이미 믿은 성도들을 심방한다는 것입니다.
즉 사도행전은 어떤 의미에서 심방의 책입니다.
즉 1차전도 2차전도 3차 전도와 4차 전도도 전도한 후에는 다시 가서 심방을 했습니다.
목회자로 부름받은 주의 종들은 예수 믿는 사람이 정말 예수님을 잘 믿고 있는지 유혹을 받아서 자꾸 흔들리고 있는지 늘 심방을 통해서 살피고 돌보아주어야 합니다.
과거에 예수님을 주님으로 확실히 믿은 사람도 환경의 유혹을 받아서 자꾸 흔들리고 의심을 하게 됩니다.
섰다가 또 넘어집니다.
그런 사람들을 계속 격려하고 도와주는 것이 심방입니다.
그런데 사도행전에 나오는 사도들은 늘 교회를 방문하여 성도들을 격려하고 돌보아주었습니다.
바울은 여러 통의 편지들을 썼습니다.
물론 이 편지들은 대부분 신약성경에 들어있습니다.
그런데 이 편지들은 대부분 이미 설립된 교회에 보내는 심방용 편지라고 할 수 있습니다.
즉 성도들을 격려하고 위로하고 마귀의 시험에 빠지지 않도록 도와주기 위하여 쓴 ‘심방 편지’인 것입니다.
성령 받은 사람의 특징은 심방을 많이 합니다.
성령 받지 않은 사람들 심방을 잘 안 합니다.
할 수 있으면 모여서 놀고 또 해외로 놀러 가려고 합니다.
33절. 거기서 애니아라 하는 사람을 만나매 그는 중풍병으로 침상 위에 누운 지 여덟 해라.
New American Standard Bible: There he found a man named Aeneas, who had been bedridden eight years, for he was paralyzed.
거기서 애니아라 하는 사람을 만나매
εὗρεν δὲ ἐκεῖ ἄνθρωπόν τινα ὀνόματι Αἰνέαν,
he found then there man certain named Aeneas,
직역하면 ‘그는 그 때 거기서 애니아라는 사람을 찾았다’는 뜻입니다.
‘만나매’(εὗρεν)는 부정과거로서(he found) 과거에 확실히 만나려고 찾은 사실을 가리키고, 원형(εὑρίσκω)은 ‘발견하다, 찾다’(find, discover especially after searching)는 뜻입니다.
이때 베드로는 성도들을 방문하고 있었기 때문에, 애니아는 성도였을 것입니다.
애니아는 헬라파 유대인이었는데, 어떤 이(Besser)는 그가 성전 미문에서 치료받았던(행 3:9) 사람이었다고 말합니다. Baker
침상 위에 누운 지 여덟 해라
ἐξ ἐτῶν ὀκτὼ κατακείμενον ἐπὶ κραβάττου,
for years eight lying on bed
직역하면 ‘8년 동안 침상에 누워있는’(애니아)란 뜻입니다.
‘누워있는’(κατακείμενον)은 현재분사로서(lying) 8년 동안 계속 누워있는 모습을 가리킵니다.
사도행전의 기록자인 누가는 의사로서 질병에 대해서 자세히 기록하고 있습니다(행 3:7, 행 9:18, 28:8).
그는 중풍병으로
ὃς ἦν παραλελυμένος.
who was having been paralyzed
직역하면 ‘그는 중풍병에 걸린 채로 있었다’는 뜻입니다.
‘중풍병에 걸린 채로’(παραλελυμένος)는 완료분사 수동태이고(having been paralyzed ), ‘있었다’(ἦν)는 미완료과거로서(was) 중풍병에 걸린 채로 계속 있었다는 뜻입니다.
1. 오늘 본문을 보면 베드로가 심방하면서 영혼들을 돌아보아 주다가 중풍병으로 고생하고 있는 사람을 만나게 됩니다.
그것은 8년 동안 자기 스스로 옷을 입을 수가 없고 화장실을 갈 수가 없어서 누군가의 도움을 받아야 되는 애니아라는 중풍병자를 만나게 됩니다.
그런데 베드로는 성도들을 심방하다가 이 중풍병자를 만난 것입니다.
우리 주변에 보면 정말로 도와주어야 할 사람이 많이 있는 것을 봅니다.
그러나 심방을 하지 않으면 그런 속사정을 알 수 없습니다.
베드로는 심방을 하다가 교회들을 돌보다가 바로 8년 된 한 중풍병자의 가정을 심방하게 되었습니다.
34절. 베드로가 이르되 애니아야 예수 그리스도께서 너를 낫게 하시니 일어나 네 자리를 정돈하라 한대 곧 일어나니
New American Standard Bible: Peter said to him, "Aeneas, Jesus Christ heals you; get up and make your bed." Immediately he got up.
베드로가 이르되
καὶ εἶπεν αὐτῷ ὁ Πέτρος
and said to him Peter
직역하면 ‘베드로가 그에게 말했다’는 뜻입니다.
‘이르되’(εἶπεν)는 부정과거로서(said) 단호하게 말한 사실을 가리킵니다.
애니아야, 예수 그리스도께서 너를 낫게 하시니
Αἰνέα, ἰᾶταί σε Ἰησοῦς Χριστός.
Aeneas, heals you Jesus Christ
‘낫게 하시니’(ἰᾶταί)는 현재형으로서(heals) 지금 낫게 하고 계신다는 뜻입니다.
중풍병자 애니아를 낫게 하시는 분은 베드로가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시었습니다.
일어나 네 자리를 정돈하라 한대
ἀνάστηθι καὶ στρῶσον σεαυτῷ.
rise up and make the bed for yourself
직역하면 ‘일어나서 스스로 자리를 정돈하라’는 뜻입니다.
‘일어나’(ἀνάστηθι)는 부정과거 명령형으로서(rise up) 단호하게 일어나라고 분명하게 명령하는 말입니다.
‘자리를 정돈하라’(στρῶσον)도 부정과거 명령형으로서(make the bed) 단호하게 자리를 정돈하라고 분명하게 명령한 말인데, 원래 이 단어(στρωννύω)는 ‘자리를 펴다, 식사 준비를 하다’(make one’s bed, get ready to eat)는 뜻입니다.
애니아는 8년 동안 자기를 다른 사람의 도움으로 자리를 정돈할 수 있었으나, 이제 예수 그리스도의 치유를 받고서, 스스로 자리를 정돈하게 되었습니다.
곧 일어나니
καὶ εὐθέως ἀνέστη.
and immediately he rose up
직역하면 ‘그러자 그가 곧 일어났다’는 뜻입니다.
‘일어나니’(ἀνέστη)는 부정과거로서(he rose up) 즉각적으로 분명하게 일어난 것을 가리킵니다.
1. 베드로는 이 중풍병자를 주님의 능력으로 일으키는 기적을 보게 됩니다.
그렇습니다.
여러분이 연약한 성도들을 돌보다 보면 가끔 기적적인 일들이 일어납니다.
베드로는 8년 된 병자를 심방했는데 주의하면서 관찰해야 할 부분이 있습니다.
첫째는, 이 애니아를 낫게 하신 분은 예수님이셨다는 것입니다.
이렇게 말하고 있습니다.
'애니아야 예수 그리스도께서 너를 낫게 하신다'.
베드로는 8년 된 중풍병자를 보는 순간에, 자기 안에 성령으로 와 계신 예수님께서 그를 고치신다는 확신이 있었던 것입니다.
두 번째, 베드로는 주님의 이런 확신이 왔을 때, 그대로 믿고 선포했습니다.
예수께서 너를 낫게 하시니 지금 일어나 네 자리를 정돈하라고 명령을 합니다.
그러자 애니아는 즉시 일어났습니다.
얼마나 놀랍습니까.
예수님이 하셨기 때문에 즉시 일어났습니다.
예수님은 육신으로 계실 때 중풍병자와 많은 병자들을 고치셨고, 귀신들린 자에게서 귀신을 쫓아내셨고, 죽은 자들을 살리셨습니다.
그런데 그 예수님께서 지금도 변함없이 믿는 성도들 안에 성령으로 와 계셔서 똑같이 병자들을 고치시고, 귀신을 쫓아내시면서, 사람들이 예수님을 믿고 구원받게 하십니다.
예수님은 어제나 오늘이나 영원토록 동일하시고, 어저께나 오늘이나 영원톡 변함이 없으십니다. (히 13:8, 찬송가 135장)
35절. 룻다와 사론에 사는 사람들이 다 그를 보고 주께로 돌아오니라.
New American Standard Bible: And all who lived at Lydda and Sharon saw him, and they turned to the Lord.
룻다와 사론에 사는 사람들이 다 그를 보고
καὶ εἶδαν αὐτὸν πάντες οἱ κατοικοῦντες Λύδδα καὶ τὸν Σαρῶνα,
and saw him all those inhabiting Lydda and the Sharon
‘사는’(κατοικοῦντες)은 현재분사로서(inhabiting) 살고 있는 사람을 가리킵니다.
‘보고’(εἶδαν)는 부정과거로서(saw) 확실하게 분명히 본 것을 가리킵니다.
원래 사론(혹은 샤론)은 지중해 연안으로 남북으로 펼쳐진 비옥한 평원인데, 룻다로부터 북쪽의 갈멜산에까지 펼쳐져 있습니다.
그런데 본 절의 사론은 그 평원이라기보다는 룻다 근처에 있는 마을을 가리킵니다.
주께로 돌아오니라.
οἵτινες ἐπέστρεψαν ἐπὶ τὸν Κύριον.
who turned to the Lord
‘돌아오니라’(ἐπέστρεψαν)는 부정과거로서(turned) 단호하게 확실히 돌아온 것을 가리킵니다.
룻다와 사론에 거하는 지역의 주민들과 이곳에서 가이사랴에 이르는 48킬로 미터 경내의 모든 주민들이 예수님을 믿었다는 뜻입니다.
그때 사람들은 다 베드로에게 관심을 가질 수가 있는데 이 기적을 보면서 사람들은 예수님께로 돌아갔습니다.
이것이 참된 기적이고, 이것이 참된 기적의 열매인 것입니다.
즉 참된 기적은 사람에게 영광을 돌리는 것이 아닙니다.
36절. 욥바에 다비다라 하는 여제자가 있으니 그 이름을 번역하면 도르가라. 선행과 구제하는 일이 심히 많더니
New American Standard Bible: Now in Joppa there was a disciple named Tabitha (which translated in Greek is called Dorcas); this woman was abounding with deeds of kindness and charity which she continually did.
욥바에 다비다라 하는 여제자가 있으니
Ἐν Ἰόππῃ δέ τις ἦν μαθήτρια ὀνόματι Ταβειθά,
in Joppa now certain there was disciple named Tabitha
‘있으니’(ἦν)는 미완료과거로서(there was) 계속 살고 있는 것을 가리킵니다.
욥바는 여호수아 당시에도 있었던(수19:46) 유명한 항구도시였는데, 요나가 다시스로 가기 위해서 배를 탄 곳이었고(요나 1:3), 솔로몬 성전을 건축하기 위해서 두로와 시돈 지역의 목재를 나르는 항구였고(대하 2:18), 스룹바벨 성전을 건축할 때도 목재를 나르던 곳이었습니다(에스라 3:7).
이곳에는 현재도 다비다의 묘소가 남아 있습니다(Herr Schick. Quaterly Statement. 1894. 1. p.14).
욥바는 예루살렘으로부터 60킬로 떨어진 항구 도시이고, 팔레스틴에서 주요한 항구이고, 오늘날에는 ‘야파’(Jaffa)라고 하며, 이스라엘 최대의 도시인 텔아비브의 외곽에 있습니다.
그 이름을 번역하면 도르가라
ἣ διερμηνευομένη λέγεται Δορκάς·
which being translated is called Dorcas
직역하면 ‘그녀는 도르가로 번역되면서 불려지고 있다’는 뜻입니다.
‘번역되면서’(διερμηνευομένη)는 현재분사 수동태로서(being translated) ‘현재 번역되면서’란 뜻입니다.
‘불려지고 있다’(being translated)는 현재 직설법 수동태로서(is called) 불려지고 있는 것을 가리킵니다.
‘다비다’는 사슴이라는 뜻인데, 헬라어로는 ‘도르가’라고 합니다.
몸매와 눈이 아름다운 여성을 표현할 때, 사슴이라고 많이 표현했습니다(아가 2:17, 4:5, 8:14).
선행과 구제하는 일이 심히 많더니
αὕτη ἦν πλήρης ἔργων ἀγαθῶν, καὶ ἐλεημοσυνῶν, ὧν ἐποίει.
she was full works good, and of alms that she continually did
직역하면 ‘그녀는 선행과 구제가 가득했고, 그것을 그녀는 계속했다’는 뜻입니다.
‘가득했고’(ἦν πλήρης, was full)에서 동사(ἦν)는 미완료과거로서(was) 선행과 구제가 계속 가득해 왔던 사실을 가리킵니다.
‘계속했다’(ἐποίει)는 원래(ποιέω) ‘행하다’(do)는 뜻인데, 시제가 미완료과거(she continually did)이기 때문에, ‘계속했다’고 번역한 것입니다.
도르가는 외모만 아름다운 것이 아니라, 행실도 아름다웠습니다.
1. 또 하나의 사건이 일어납니다.
룻다로부터 18킬로 떨어진 욥바라는 곳에서 다비다라는 여성 제자가 죽었습니다.
이 여성도의 특징은 선행과 구제가 많았습니다.
그런데도 이런 훌륭한 성도도 죽었습니다.
그래서 모든 사람이 아쉬워하고, 무척 서운하게 생각했던 것입니다.
2. 도르가는 성경에 나타난 여자 가운데 아름답고 특이한 한 여성도입니다.
이 여자는 선행과 구제가 심히 많은 여자라고 설명하고 있습니다.
이것은 참으로 쉬운 일이 아닙니다.
여러분에게 선행이 있습니까?
교회에서 봉사도 많이 하지만 정말 남에게 선행을 많이 하는 그런 성품이십니까?
구제와 선행을 베푸는 사람에 대해서 하나님은 관심이 참 많으십니다.
이 여자가 죽었는데 그 죽음의 이유를 이렇게 생각해 볼 수 있습니다.
구제하다가 지쳐서 죽었을 것입니다.
즉 구제를 너무 좋아하다가 자기의 건강을 돌보지 않다가 죽은 것입니다.
사도행전 10장에 가면 고넬료라는 사람의 가정이 구원을 받습니다.
어떻게 구원받는지 아십니까?
천사가 나타났습니다.
'내가 네 기도와 구제를 보았느니라' 이렇게 말했습니다.
그러나 그는 평소에 구제를 많이 했습니다.
그는 평소에 하나님을 경외하는 마음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하나님이 그것을 보신 것입니다.
구제를 많이 하고 선한 일을 많이 한 사람들은 하나님이 절대로 안 버립니다.
오늘 이 성경을 계속해서 보면 이 여자가 죽었을 때 그 주변에 있는 사람들이 정말 슬퍼했습니다.
사람이 죽으면 그 사람을 압니다.
이웃에게 구제와 선행을 많이 한 사람들은 그 사람이 죽을 때 비록 장례식에는 가지 못한다고 할지라도 눈물을 흘리게 되는 것입니다.
‘참 아깝다. 그 사람은 안 죽어야 되는데’라고 말하는 것입니다.
어떤 사람이 죽으면 ‘죽어 싸다’ 그럽디다.
얼마나 악행을 일삼고 힘들게 했으면 그 말을 하겠습니까?
37절. 그 때에 병들어 죽으매 시체를 씻어 다락에 누이니라.
New American Standard Bible: And it happened at that time that she fell sick and died; and when they had washed her body, they laid it in an upper room.
그 때에 병들어 죽으매
ἐγένετο δὲ ἐν ταῖς ἡμέραις ἐκείναις, ἀσθενήσασαν, αὐτὴν ἀποθανεῖν·
It came to pass but in the days those, having become sick, she died
직역하면 ‘그 때 이런 일이 있었는데, 그녀가 병들어 죽었다’는 뜻입니다.
‘있었는데’(ἐγένετο)는 부정과거로서(It came to pass) 일이 분명하게 일어났다는 것을 가리킵니다.
‘병들어’(ἀσθενήσασαν)는 부정과거 분사로서(having become sick) 확실하게 병든 것을 가리키고, ‘죽으매’(ἀποθανεῖν)는 부정과거 부정사형 동사로서(to die) 맨 앞의 동사(ἐγένετο)와 연결되어 ‘죽는 일이 일어났다’(죽었다)는 뜻입니다.
시체를 씻어 다락에 누이니라.
λούσαντες δὲ, ἔθηκαν ἐν ὑπερῴῳ.
Having washed then, put in upper room
직역하면 ‘그후에 씻어서 다락에 두었다’는 뜻입니다.
‘시체’란 말은 본문에 없으나 의역한 것입니다.
‘씻어’(λούσαντες)는 부정과거 분사로서(Having washed) 분명히 단호하게 씻은 것을 가리킵니다.
‘두었다’(ἔθηκαν)는 부정과거로서(put) 확실하게 둔 사실을 가리킵니다.
유대에서나 헬라에서도 사람이 죽으면 정결례로서 시체를 씻어서 장례식을 준비했습니다.
그리고 장례가 지체되면, 시체를 씻어서 다락방에 두었습니다.
예루살렘에서는 죽은 시체를 하루 만에 장사지내야만 했으나, 예루살렘 밖에서는 3일까지 허용이 되었습니다. NIV-SB. 1662
1. 팔레스틴에서는 날씨가 무척 덥기 때문에 사람이 죽으면 시신을 바로 장사합니다.
그러나 바닷가인 욥바에서는 곧 바로 장사하지 않고, 시체를 씻어서 다락방에 넣어두었습니다.
무덤에 넣을 수 없다는 것입니다.
그런 사랑과 애정이 주변 사람들로부터 나온 것입니다.
이것은 또한 도르가에 대한 아쉬움이 컸기 때문이고, 베드로에 대한 일말의 희망을 가졌기 때문이었을 것입니다.
38절. 룻다가 욥바에서 가까운지라. 제자들이 베드로가 거기 있음을 듣고 두 사람을 보내어 지체 말고 와 달라고 간청하여
New American Standard Bible: Since Lydda was near Joppa, the disciples, having heard that Peter was there, sent two men to him, imploring him, "Do not delay in coming to us
룻다가 욥바에서 가까운지라.
ἐγγὺς δὲ οὔσης Λύδδας τῇ Ἰόππῃ,
near now being Lydda from the Joppa,
여기 동사(οὔσης)는 현재분사로서(being) 직역하면, ‘룻다는 욥바에서 가까운 곳으로서’란 뜻입니다.
제자들이 베드로가 거기 있음을 듣고
οἱ μαθηταὶ ἀκούσαντες ὅτι Πέτρος ἐστὶν ἐν αὐτῇ,
the disciple having heard that Peter is in it,
‘있음을’( ἐστὶν)은 현재형이고(is), ‘듣고’(ἀκούσαντες)는 부정과거 분사로서(having heard) 확실하고 분명하게 들은 것을 가리킵니다.
두 사람을 보내어
ἀπέστειλαν δύο ἄνδρας πρὸς αὐτὸν
sent two men to him
직역하면 ‘그들이 두 사람을 그에게 보냈다’는 뜻입니다.
‘보내어’(ἀπέστειλαν)는 부정과거로서(sent) 분명하게 보낸 사실을 가리킵니다.
지체 말고 와 달라고 간청하여
παρακαλοῦντες, Μὴ ὀκνήσῃς διελθεῖν ἕως ἡμῶν.
imploring, not delay to come to us
‘지체 말고’에서 동사(ὀκνήσῃς)는 부정과거 가정법 동사이고(delay) ‘와’(διελθεῖν)는 부정과거 부정사형 동사(to come)로서, 단호하게 어서 빨리 오라는 것이고, ‘간청하여’(παρακαλοῦντες)는 현재분사로서(imploring) 계속 간청하는 모습을 가리킵니다.
위문을 위해서든지 기적을 위해서든지, 베드로는 장례 전에 빨리 오라는 전갈을 받았습니다.
1. 그를 깨끗이 씻어서 다락에 올려놓고 두 사람이 뛰어서 룻다로 갔습니다.
거기에는 베드로가 있었기 때문입니다.
베드로가 그때 8년 된 중풍병자를 고쳤다는 사실을 소문으로 듣고 베드로에게 찾아간 것입니다.
그리고는 <우리에게 좀 와주십시오> 라고 간청했습니다.
우리는 여기서 베드로를 데리러 갔던 사람들의 마음을 읽을 수가 있습니다.
존경과 사랑과 이 죽은 여자를 위해서 무언가 해주고 싶은 그런 마음이 있었던 것입니다.
그러나 무언가 이대로 무덤에 데려갈 수는 없다고 해서 베드로를 데려온 것입니다.
39절. 베드로가 일어나 그들과 함께 가서 이르매, 그들이 데리고 다락방에 올라가니 모든 과부가 베드로 곁에 서서 울며 도르가가 그들과 함께 있을 때에 지은 속옷과 겉옷을 다 내보이거늘
New American Standard Bible: So Peter arose and went with them. When he arrived, they brought him into the upper room; and all the widows stood beside him, weeping and showing all the tunics and garments that Dorcas used to make while she was with them.
베드로가 일어나 그들과 함께 가서
ἀναστὰς δὲ, Πέτρος συνῆλθεν αὐτοῖς
having risen up then, Peter went with them
‘일어나’(ἀναστὰς)는 부정과거 분사로서(having risen up) 단호한 모습으로 결단력 있게 일어나는 것을 가리킵니다.
‘함께 가서’(συνῆλθεν)는 부정과거로서( went with) 단호하게 결단력을 가지고 가는 모습을 가리킵니다.
이르매 그들이 데리고 다락방에 올라가니
ὃν παραγενόμενον, ἀνήγαγον εἰς τὸ ὑπερῷον,
who having arrived, they brought into the upper room
직역하면 ‘그가 이르매, 그들이 다락으로 데리고 갔다’는 뜻입니다.
‘이르매’(παραγενόμενον)는 부정과거 분사이고(having arrived), ‘데리고 갔다’(ἀνήγαγον)는 부정과거로서(brought) 둘 다 확실하고 단호하게 이루어진 행동을 가리킵니다.
모든 과부가 베드로 곁에 서서
καὶ παρέστησαν αὐτῷ πᾶσαι αἱ χῆραι,
and stood by him all the widows,
직역하면 ‘모든 과부들이 그의 곁에 섰다’는 뜻입니다.
‘서서’(παρέστησα)는 부정과거로서(stood by) 곁으로 와서 진지한 모습으로 곁에 서있는 모습을 가리킵니다.
울며-- 속옷과 겉옷을 다 내보이거늘
κλαίουσαι καὶ ἐπιδεικνύμεναι χιτῶνας καὶ ἱμάτια,
weeping and showing tunics and garments
직역하면 ‘울면서 속옷과 겉옷을 보이면서’(서 있었다)는 뜻입니다.
‘울며’(κλαίουσαι)는 현재분사로서(weeping) 큰 소리로 울고 있는 모습을 가리키고, ‘내보이거늘’(ἐπιδεικνύμεναι)도 현재분사로서(showing) 도르가가 지은 옷을 선물 받은 과부들이 입고 있는 그 옷들을 보이면서란 뜻입니다. Linguistic Key. 283.
도르가가 그들과 함께 있을 때에 지은
ὅσα ἐποίει μετ’ αὐτῶν οὖσα ἡ Δορκάς.
that had made with them being the Dorcas
직역하면 ‘도르가가 그들과 함께 있으면서 계속 지었던’이란 뜻입니다.
‘있을 때’(οὖσα)는 현재분사로서(being) ‘있으면서’란 뜻입니다.
‘지은’(ἐποίει)은 미완료과거로서(had made) 계속해서 항상 지었던 것을 가리킵니다.
1. 베드로가 도착했을 때 베드로가 다락방에 올라가 보았습니다.
그때 그 주변에 과부들이 울고 서 있었다고 말했습니다.
그러면서 베드로에게 옷가지를 보여줍니다.
그것은 도르가가 만들었던 속옷과 겉옷입니다.
이 속옷과 겉옷은 무엇입니까?
그것은 분명히 과부들을 격려하고 가난한 자들을 위해서 지었던 속옷과 겉옷일 것입니다.
이 옷을 보여준 것은 도르가의 선행을 입증해 보여주기 위한 것이었습니다.
이 과부들이 눈물을 주체할 수 없었던 것입니다.
얼마나 많은 사랑과 애정을 가졌느냐를 여기서 보게 됩니다.
구제와 선행은 마음의 문제입니다.
우리가 죽을 때 우리를 기억하고 몇 명이나 울까요?
40절. 베드로가 사람을 다 내보내고 무릎을 꿇고 기도하고 돌이켜 시체를 향하여 이르되 다비다야 일어나라 하니 그가 눈을 떠 베드로를 보고 일어나 앉는지라.
New American Standard Bible: But Peter sent them all out and knelt down and prayed, and turning to the body, he said, "Tabitha, arise." And she opened her eyes, and when she saw Peter, she sat up.
베드로가 사람을 다 내보내고
ἐκβαλὼν δὲ ἔξω πάντας, ὁ Πέτρος,
having put then outside all, the Peter,
‘내보내고’(ἐκβαλὼν)은 부정과거 분사로서(having put) 베드로가 모든 사람들을 단호하게 밖으로 내보낸 동작을 가리킵니다.
엘리사가 수넴 여인의 아이를 살릴 때도 단둘이서 기도하고 살렸습니다(왕하 4:33).
예수님께서도 야이로의 딸을 살리실 때, 소수 외에는 사람들을 내보내시고, 살리셨습니다(눅 8:51).
베드로는 예수님이 죽은 자를 살리실 때 세 번 다 참여했습니다( 막 9:25, 눅 7:11-17, 요 11:1-44).
그러나 베드로는 예수님과는 달리 무릎을 꿇고 기도했습니다.
무릎을 꿇고 기도하고
καὶ θεὶς τὰ γόνατα, προσηύξατο,
and having bowed the knees, he prayed
‘꿇고’(θεὶς)는 부정과거 분사로서(having bowed) 단호하게 무릎을 꿇는 모습을 가리킵니다.
‘기도하고’(προσηύξατο)는 부정과거로서(he prayed) 베드로가 진지하고 결의에 찬 모습으로 기도하는 것을 가리킵니다.
돌이켜 시체를 향하여 이르되
καὶ ἐπιστρέψας πρὸς τὸ σῶμα, εἶπεν
and having turned to the body, he said
직역하면 ‘그 시체를 향해 돌아서서, 말했다’는 뜻입니다.
‘돌이켜’(ἐπιστρέψας)는 부정과거 분사로서(having turned) 역시 결의에 찬 모습으로 베드로가 몸을 돌이키는 것을 가리킵니다.
‘이르되’(εἶπεν)는 부정과거로서(he said) 확고한 믿음과 결의에 찬 모습으로 단호하게 말하는 것을 가리킵니다.
다비다야 일어나라 하니
Ταβειθά, ἀνάστηθι.
Tabitha, arise
‘일어나라’(ἀνάστηθι)는 부정과거 명령형으로서(arise)믿음으로 결의에 찬 모습으로 명령한 것을 가리킵니다.
그가 눈을 떠
ἡ δὲ ἤνοιξεν τοὺς ὀφθαλμοὺς αὐτῆς,
the then she opened the eyes of her
직역하면 ‘그러자 그녀가 그녀의 눈들을 떴다’는 뜻입니다.
‘떠’(ἤνοιξεν)는 부정과거로서(she opened) 갑자기 눈을 뚝 뜨는 모습을 가리킵니다.
베드로를 보고 일어나 앉는지라.
καὶ ἰδοῦσα τὸν Πέτρον, ἀνεκάθισεν.
and having seen the Peter, she sat up
‘보고’(ἰδοῦσα)는 부정과거 분사로서(having seen) 분명하게 확실히 보는 것을 가리킵니다.
‘앉는지라’(ἀνεκάθισεν)는 부정과거로서(she sat up) 벌떡 일어나 앉는 것을 가리킵니다.
1. 마가복음 5장 35절 이하에서 예수님이 야이로의 딸을 살렸을 때의 모습과 흡사한 것을 보게 됩니다.
그 속옷과 겉옷을 받아들고 많은 주위의 여자들이 눈물을 흘리며 정말 슬퍼하고 있는 모습을 보고 싸늘한 시체가 되어있는 한 여인의 시신을 보았을 때, 베드로의 마음은 겉잡을 수가 없어서 사람들을 다 나가라고 말했습니다.
그리고 기도에 방해가 되기 때문에 다 나가라고 했습니다.
그리고 그는 이 시신 앞에서 무릎을 꿇었습니다.
그리고 기도했습니다.
여러분 어찌 시체를 대고 그렇게 기도할 수가 있습니까?
그러나 베드로는 분명히 시체를 보고 있었으나 실상 시체를 보고 있지 않고 살아계신 하나님의 능력을 바라보고 기도했습니다.
그는 야이로의 죽은 딸에게 예수님이 ‘소녀야 일어나라’(달리다 굼)하시면서 소녀를 살려내신 예수님을 바라보았을 것입니다. (막 5:41)
기도를 마치고, 베드로는 '다비다야 일어나라'고 했습니다.
그러니까 다비다가 눈을 떠 베드로를 보고 일어나 앉았습니다.
이런 일은 지금도 있을 수 있습니다.
개인이나 교회나 사회나 국가나 이 시대의 세계조차도 이렇게 회생할 수 있다고 믿습니다.
41절. 베드로가 손을 내밀어 일으키고 성도들과 과부들을 불러 들여 그가 살아난 것을 보이니
New American Standard Bible: And he gave her his hand and raised her up; and calling the saints and widows, he presented her alive.
베드로가 손을 내밀어 일으키고
δοὺς δὲ αὐτῇ χεῖρα, ἀνέστησεν αὐτήν·
having given then her (his) hand, he raised up her
직역하면 ‘그가 손을 그녀에게 내밀어 그녀를 일으켰다’는 뜻입니다.
‘내밀어’(δοὺς)는 부정과거 분사로서(having given) 단호한 모습으로 손을 내미는 것을 가리킵니다.
‘일으키고’(ἀνέστησεν)는 부정과거로서(he raised up) 단호하게 확 잡아 일으키는 모습을 가리킵니다.
성도들과 과부들을 불러 들여
φωνήσας δὲ τοὺς ἁγίους καὶ τὰς χήρας
having called then the saints and the widows
‘불려 들여’(φωνήσας)는 부정과거 분사로서(having called) 기쁜 모습으로 단호하게 베드로가 사람들을 부르는 모습을 가리킵니다.
그가 살아난 것을 보이니
παρέστησεν αὐτὴν ζῶσαν.
he presented her living
직역하면, ‘그가 살아있는 그녀를 보였다’는 뜻입니다.
‘살아 있는’(ζῶσαν)은 현재분사로서(living) 현재 살아있는 모습을 가리킵니다.
‘보이니’(παρέστησεν)는 부정과거로서(he presented) 단호하게 자랑스럽게 보여주는 것을 가리킵니다.
42절. 온 욥바 사람이 알고, 많은 사람이 주를 믿더라.
New American Standard Bible: It became known all over Joppa, and many believed in the Lord.
온 욥바 사람이 알고
γνωστὸν δὲ ἐγένετο καθ’ ὅλης τῆς Ἰόππης,
known then it became through all of the Joppa
직역하면 ‘그것이 욥바 모든 사람에게 알려지게 되었다’는 뜻입니다.
‘되었다’(ἐγένετο)는 부정과거로서(it became) 확 다 알려지게 된 것을 가리킵니다.
많은 사람이 주를 믿더라
καὶ ἐπίστευσαν πολλοὶ ἐπὶ τὸν Κύριον.
and believed many in the Lord
‘믿더라’(ἐπίστευσαν)는 부정과거로서(believed) 확실하게 믿은 것을 가리킵니다.
1. 여기서 이 기적의 결과를 보게 됩니다.
베드로가 손을 내밀어 일으켰습니다.
성도들을 불러서 그의 산 것을 보여주었습니다.
온 욥바 사람이 이 소문을 듣게 되었고 살아난 다비다를 보고 나서 수 많은 사람들이 예수님을 믿었습니다.
베드로를 믿은 것이 아니고, 예수님을 믿고 주님께로 돌아온 것입니다.
43절. 베드로가 욥바에 여러 날 있어 시몬이라 하는 무두장이의 집에서 머무니라.
New American Standard Bible: And Peter stayed many days in Joppa with a tanner named Simon.
베드로가 욥바에 여러 날 있어
Ἐγένετο δὲ ἡμέρας ἱκανὰς,
it came to pass then days many,
직역하면 ‘그 후에 여러 날이 지났다’는 뜻입니다.
‘지났다’(Ἐγένετο)는 부정과거로서(it came to pass) 여러 날이 지나간 과거의 사실을 가리킵니다.
시몬이라 하는 무두장이의 집에서 머무니라
μεῖναι ἐν Ἰόππῃ παρά τινι Σίμωνι βυρσεῖ.
he stayed in Joppa with certain Simon tanner
직역하면 ‘그가 무두장이 시몬과 함께 욥바에 머물렀다’는 뜻입니다.
‘머무니라’(μεῖναι)는 부정과거로서(he stayed) 과거의 확실한 사실을 가리킵니다.
‘무두장이’일은 유대인의 율법에 부정한 것으로(defiling) 간주되었습니다.
욥바는 예루살렘으로부터 60킬로 떨어진 항구도시이고, 팔레스틴에서 주요한 항구이고, 오늘날에는 ‘야파’(Jaffa)라고 하며, 이스라엘 최대의 도시인 텔아비브의 외곽에 있습니다.
1. 베드로가 욥바의 한 성도이면서 가죽 무두질을 해서 만들어 파는 시몬의 집에 머물렀습니다.
요즘에 무두장이 일을 갑피하는 일이라고 합니다.
즉 가죽을 손질해서 신발도 만들고 가방도 만드는 사람입니다.
이 피장 시몬의 집에 베드로가 있을 때, 사도행전 10장에서 고벨료가 환상을 보고 하인들을 시몬의 집에 보내서 베드로를 청하게 됩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오늘은 베드로가 심방을 하면서 중풍병자 애니아를 낫게 하고, 죽은 도르가를 살려낸 것을 보았습니다.
예수님은 세상에 계실 때도 중풍병자를 고치셨고, 죽은 소녀와 청년과 나사로를 살리셨습니다.
뿐만 아니라 부활 승천하신 예수님은 베드로를 통해서 다시 중풍병자를 고치시고, 죽은 도르가를 살리셨습니다.
오늘날도 예수님은 동일하게 우리를 구원하시고, 치료하시고, 살리시는 분이십니다.
그러므로 어떤 환경 가운데서도 매일 기도하고, 주님 모시고 살아가시기 바랍니다!
그래서 주님의 돌보심을 받고, 주님께 큰 복을 받는 성도님들이 되시기를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