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태복음 1:18-25 아들을 낳으리니 이름을 예수라 하라
요셉과 마리아는 결혼을 약속한 사이였다. 이제 결혼만 하면 부부가 된다. 신혼부부가 될 사람들은 예나 지금이나 항상 설레고 기대가 많다. 어떻게 가정을 일굴까? 자녀는 몇 명 낳을까? 가구 배치는 어떻게 할까? 자녀 교육은 어떻게 할까? 서로에게 어떻게 섬겨 줄까? 등 이런 생각을 하다 보면 즐거워서 잠이 오지 않는다. 요셉과 마리아도 수천 년이 지난 고대 사람들이지만 신혼의 마음은 지금과 다르지 않을 것이다.
신혼의 꿈에 잠겨 있는 마리아에게 가브리엘 천사가 나타났다(눅 1:26,27). 그리고 “은혜를 받는 자여 평안할지어다 주께서 너와 함께 하시도다”(1:28)라고 말했다. 전혀 예상하지 못한 천사의 나타남과 메시지였기 때문에 마리아는 놀라서 속으로 당혹스러워했다. ‘이런 인사가 어찜인가?’ 다시 말해서 ‘이런 인사는 무슨 뜻이지? 갑자기 왜?’ 마리아는 당혹함을 넘어 무서웠다. 그러자 천사는 “무서워하지 말라 네가 하나님께 은혜를 입었느니라”라고 말했다. 결혼을 앞두고 천사가 축하를 해주는 것일까? 모두가 다 하는 결혼에 왜 천사까지 나타나서 축하 메시지를 전하지? 천사가 나타날 만큼 대단한 결혼인가? 그만큼 마리아는 중요한 인물인가? 마리아는 갈릴리 나사렛에 사는 평범한 여성이었다. 평범한 여성과 천사의 결혼 축하 메시지? 너무 어울리지 않는다. 격이 맞지 않아 보인다. 결혼에 대한 축하 메시지는 아닌 것 같았다. 그렇다면 하나님으로부터 무슨 은혜를 입었다는 것인가?
천사는 계속 말을 이어갔다. “보라 네가 잉태하여 아들을 낳으리니 그 이름을 예수라 하라 그가 큰 자가 되고 지극히 높으신 이의 아들이라 일컬어질 것이요 주 하나님께서 그 조상 다윗의 왕위를 그에게 주시리니 영원히 야곱의 집을 왕으로 다스리실 것이며 그 나라가 무궁하리라”(눅 1:31-33) - 아무리 지극히 높으신 하나님의 아들에 관한 임신이라지만 곧 결혼을 앞둔 처녀에게 임신이라니 너무 충격적인 메시지 아닐까? 결혼을 망치려고 온 것인가? 이게 천사가 할 말인가? 이는 천사가 아니라 마귀 아닐까? 예비 신랑 요셉이 천사의 말을 들었다면 어떤 생각이 들었을까? 사생결단을 내고 싶었을 것이다.
다행히도 마리아는 천사의 말에 방어벽을 쳤다. “나는 남자를 알지 못하니 어찌 이 일이 있으리이까?” 그러자 천사는 “성령이 네게 임하시고 지극히 높으신 이의 능력이 너를 덮으리니 나실 바 거룩한 이는 하나님의 아들이라 일컬어지리라. 네 친족 엘리사벳도 늙어서 임신하지 못한다고 했는데 임신한 지 벌써 6개월이 되었다. 하나님의 모든 말씀은 능하지 못하심이 없느니라”(35-37)고 말했다. 이때 마리아는 어떻게 말해야 하는가? 결혼을 앞둔 예비 신부로써 거절해야 한다. 그러나 마리아는 흔쾌히 허락했다. “주의 여종이오니 말씀대로 내게 이루어지이다”(1:38) 예비 남편 요셉이 옆에서 마리아의 말을 들었다면 어땠을까? 이성을 잃어버렸을 것 같다. 마리아에 대해 심한 배신감이 들었을 것 같다. 결혼할 사람이 아니라면 뭐가 문제겠는가? 그런데 곧 결혼할 건데 임신을 허락하다니 마리아는 참으로 대책이 없는 여자처럼 보인다. 아무리 하나님의 뜻일지라도 시기가 시기인 만큼 거절해야 하지 않을까? 가정을 깨는 메시지가 과연 하나님의 뜻인가?
천사가 떠난 후 처녀 마리아의 배가 불러왔다. 예비 신랑 요셉은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결혼하기로 약속한 여자가 어디서 외간 남자와 사통을 한 것인가? 분노와 실망감과 배신감이 몰려왔을 것이다. 간음한 마리아를 당장 재판에 넘겨 돌로 죽이고 싶었을 것이다. 이렇게 해도 율법에 어긋나지 않는다. 하지만 요셉은 율법의 칼날을 휘두르지 않고, 마리아와의 관계를 가만히 끊[정리]고자 했다(마 1:19). 결혼을 취소할 계획이었다. 심사숙고 끝에[신중하게] 결정했기 때문에, 하늘이 두 쪽 나도 의롭고 강직한 요셉의 마음은 바뀌지 않을 것이다. 그런데 그런 요셉이 임신한 마리아를 데려왔다(24). 요셉은 이랬다저랬다 하는 사람이 아닌데 어떻게 된 것인가? 마리아 데려오는 것을 무서워[주저]했던 요셉 아닌가! 무엇이 요셉의 마음을 바꾼 것인가?
결혼을 백지화하기로 결심하고 요셉이 잠을 자고 있을 때, 주의 사자가 꿈속에 나타나 마리아가 임신한 아이는 사통이 아닌 성령으로 된 것이라(마 1:20)고 자초지종을 설명한 후 마리아 데려오기를 무서워하지 말라(1:20)고 주저하는 요셉에게 힘을 실어 주었다. 그리고 이 모든 일이 된 것은 주께서 이사야 선지자로 하신 말씀 즉 “보라 처녀가 잉태하여 아들을 낳을 것이요 그의 이름은 임마누엘이라 하리라(사 7:14) 하셨으니 이를 번역한즉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계시다 함이라”(마 1:23)을 이루려 하심이다(마 1:22)고 설명해 주었다. 그리고 이름도 지어 주었다.
요셉의 시그니처가 무엇인가? 요셉을 한마디로 요약하면 무엇인가? 의로운 사람(마 1:19). 의로운 사람은 말씀에 껌뻑 죽는다. 아무리 강직하더라도 말씀이 옳다고 하면 의로운 사람은 목에 칼이 들어와도 말씀대로 바꾼다. 주의 사자를 통해 왜 마리아가 임신할 수밖에 없었는지 그 실마리[의문]가 풀어지자, 마리아에 대한 배신감과 분노는 눈 녹듯이 사라졌을 것이다. 동시에 마리아가 한 없이 위대해 보였을 것이다. 왜냐하면 결혼이 취소될 수도 있고, 간음한 여인으로 낙인찍혀 돌에 맞아 죽을 수도 있는데도 불구하고 그 위험을 감수하고 하나님의 뜻을 받아들여 임신했기 때문이다. 부끄러웠던 마리아의 임신은 이제 요셉애게 영광이었다. 그리스도가 유다 가문의 다른 누구도 아닌 요셉 자신을 통해 이루어진다고 생각하니 은혜가 아닐 수 없었다. 감개무량할 수밖에 없었다. 그리하여 요셉은 마리아를 데려왔고, 아들을 낳기까지 동침하지 않았으며, 아들을 낳자 하나님의 명령대로 이름을 예수라고 지었다(마 1:21,25).
자신이 처한 상황이 무조건 불리할 것을 뻔히 알면서도 하나님께서 명령한 말씀대로 자신의 가치관과 생각을 바꾸는 요셉과 마리아가 대단해 보이지 않는가! 결혼을 앞둔 선남선녀들이 하나님의 뜻에 순종하는 이 모습이 멋져 보이지 않는가! 하나님은 유다 가문 중에 이런 요셉을 찾았고, 이스라엘 여인 중에 이런 마리아를 찾으셨다. 우리도 이런 길을 가자.
예수는 무슨 뜻인가? 자기 백성을 그들의 죄에서 구원함(마 1:21)이다. 한자로 구주(救主), 구세주(救世主)이다. 자기 백성은 일차적으로 이스라엘을 가리킨다. 하지만 더 나아가서 예수님을 구주로 받아들이고 그 권위와 그 통치를 인정하는 이방인도 자기 백성이다. 죄[ἀμαρτία]는 화살이 과녁에서 벗어난 것을 말하는데, 하나님의 뜻[과녁]에 인간의 의지와 행동[화살]이 벗어난 상태가 죄이다. 아담 이후로 인간들은 죄로 인하여 하나님의 뜻에 맞게 화살[행동]을 쏠 수 없었다. 어떤 부자도, 어떤 영웅도 불가능했다. 100번 쏘면 100번 모두 과녁[하나님의 뜻]을 빗나갔다. 이를 해결해 줄 사람이 필요했다. 그가 누구인가? 하나님의 아들이었다. 그 아들을 통해 죄에서 자기 백성을 구원하려고 기름을 부으셨다. 그래서 그리스도이다. 기름 부은 자. 그 기름 부은 아들에게 예수[자기 백성을 그들의 죄에서 구원함]라는 이름을 부여하고 본격적으로 죄에서 구출하는 작업을 하셨고, 그 끝이 십자가이다.
죄로 포로 된 자에게 자유를, 죄로 눈먼 자에게 다시 보게 함을 전파하며, 죄로 눌린 자를 자유롭게 해 주셨다(눅 4:18). 그들이 가지고 있는 불치병도 고쳐주고, 죽은 자도 살리고, 귀신도 쫓아내 주시면서. 죄에서 구원받고 싶은 심령이 가난한 자에게 복음을 전하기 위해 하나님께서 예수께 기름을 부으셨다(눅 4:18)고 말씀하셨다. 그래서 세례를 받을 때도 성령이 임하셨다. 눅 3:22 성령이 비둘기 같은 형체로 그의 위에 강림하시더니 하늘로부터 소리가 나기를 너는 내 사랑하는 아들이라 내가 너를 기뻐하노라 하시니라 - 기름 부음 받은 자가 그리스도이다. 예수 그리스도가 십자가에 죽고 부활함으로써 온 인류를 죄에서 구원할 수 있는 길을 마련해 주셨다. 여러분의 현재 죄에서 구해주실 분 누구인가? 예수! 수많은 죄인들을 그 죄에서 구해주실 분도 누구인가? 예수! 그 예수님이 여러분을 추수할 일꾼으로 불렀다. 그 예수를 소개하고 죄에서 건져지는 놀라운 기적들이 많이 일어나길 축복한다.
결론 – 아들을 낳으리니 이름을 예수라 하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