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괴의 기습 남침으로 동동 구르던 6.25 전쟁의 포성이 울린지도 어느덧 75주년이라는 세월이 흘렀다. 파죽지세로 밀고 내려오는 적들 앞에 낙동강 전선은 대한민국의 최후의 보루이자 생명선이었다. 나라의 운명이 그야말로 풍전등화(風前燈火)요, 존망지추(存亡之秋)였던 그 시절, 그 절체절명의 위기를 단숨에 역전시킨 위대한 기적, 인천상륙작전의 현장을 찾아 성동고 16회이자 육사 27기 자전거 동호회 동기들이 '원팀'으로 뭉쳤다. 모두가 육군사관학교 출신인 우리에게 이번 탐방은 단순한 라이딩을 넘어, 조국을 구한 영웅들의 발자취를 온몸으로 되새기는 엄숙한 라이딩이었다.
2025년 9월13일, 늦여름의 잔열이 남아있는 바람을 가르며 우리는 응봉산 자락에 위치한 자유공원으로 향했다. 마침 광장에서는 인천상륙작전 75주년 기념식 준비가 한창이었고, 반가운 얼굴인 육사 총동창회 문인회장 이석복 예비역 소장도 자리를 함께해 의미를 더했다. 전쟁의 영웅, 맥아더 장군의 동상 앞은 추모의 화환으로 가득 차 있었다. 은륜을 잠시 멈추고 장군을 향해 올린 거수경례와 묵념 속에서, 가슴 깊은 곳으로부터 뜨거운 무언가가 울컥 치올랐다. 본격적인 답사는 상륙작전의 세 갈래 주역이었던 레드비치(Red Beach), 그린비치(Green Beach),, 블루비치(Blue Beach)를 따라 이어졌다.
가장 먼저 당도한 곳은 인천항 부근의 레드 비치엿다. 붉은 빛깔의 표지석과 상륙 해병의 조각상이 우리를 맞이했다. 미 해병 제1사단 5연대의 1,2대대가 빗발치는 포화속에서 해벽을 기어올랐던 현장, 이후 미 제7보병사단과 우리 국군 제17연대가 후속으로 합류하며 승리의 발판을 다진 곳이다. 여기서 페달을 밟아 약 1,7km를 더 달리니 월미도 선착장의 그린비치가 나타났다. 미 해병 5연대 3대대가 첫발을 디뎠던 곳이자, 상륙작전의 서막을 연 역사적인 장소다. 당시 월미도에는 2,000여 명의 북한군이 배수진을 치고 있었으나, 미 제7함대를 주축으로 한 유엔군 군함 261척과 7만여 명의 대병력이 투입되었다.
전투력 수치만 1대 35, 그야말로 압도적인 전력이었다. 작전명 '크로마이트(CHROMITE)'. 9월 15일 새벽 6시 30분, 함포사격의 거대한 포연을 뚫고 감행된 1단계 월미도 점령 작전은 대성공이었다. 하지만 선발대 장병들은 밀물이 들어올 때까지 약 12시간 동안 고립된 채 버텨야만 했다. 사선을 넘나드는 사투 끝에 마침내 만조가 된 오후 5시 30분, 주력부대가 전차와 차량을 이끌고 레드비치와 송도의 블루비치로 밀물처럼 밀려들었다. 수세에 몰려있던 전쟁의 판도가 공세로 완벽하게 전환되는 역사적인 순간이었다.
이윽고 우리 국군 해병 제1연대의 상륙을 끝으로 세계 전사에 유례없는 2단계 상륙작전은 장엄한 마침표를 찍었다. 조수 간만의 차가 워낙 커 성공 확률이 극히 희박했던 이 작전이 기적으로 남을 수 있었던 이유는 무엇일까. 자전거를 멈추고 거친 숨을 몰아쉴때마다 그 해답들이 가슴에 와닿았다. 첫째는 50여 회의 상륙작전을 성공 시킨 '상륙작전의 귀재' 맥아더 장군의 탁월한 혜안과 보급로 차단이라는 과감한 전략이었다. 둘째는 목숨을 걸고 작전에 침투해 수심과 적 동태를 파악하고 팔미도 등대를 탈환했던 켈로부대(대북 첩보부대)의 눈부신 활약과 치밀한 준비였다.
셋째는 한미 연합군이 인천으로 오지 못할 것이라 방심하고 전력의 90%를 낙동강에 쏟아부었던 김일성의 오판이었으니, 이는 실로 하늘이 대한민국을 도운 천운(天運)이었다. 마지막으로 군산과 장사리 등지에서 적을 완벽하게 속여 넘긴 학도병들과 장병들의 처절한 기만 양동작전이 있었기에 가능한 승리였다. 마지막 여정으로 옛 모습을 가장 잘 간직하고 있는 북성포구(레드비치) 안쪽으로 들어섰다. 썰물로 물이 빠져나간 거대한 갯벌 위로 어선들이 덩그러니 누워있는 풍경이 눈에 들어왔다. 대형 선박은 접근조차 힘든 이 험난한 지형을 마주하니,
당시 급조된 사다리를 타고 방벽에 오르던 발도메로 로페즈 중위의 상륙 사진이 오버랩되며 숙연함이 더해졌다. 적의 허리를 끊어 낙동강의 적들을 오도가도 못하는 신세로 만들고, 서울 탈환과 북진의 계기를 마련한 위대한 승리의 현장이 바로 이 거친 갯벌 위에 있었다. 전국토의 90%를 잃었던 절체절명의 위기에서 자유대한민국을 구출해 낸 인천상륙작전, 오늘날 우리가 누리는 자유와 평화, 번영의 일상은 결코 값엇이 주어진 것이 아니다. 이름 모를 바다와 땅에서 목숨을 바친 유엔군과 국군 장병들의 고귀한 희생,
그리고 우리를 도와 준 6개국의 고마움을 우리는 한순간도 잊어서는 안 된다. 돌아오는 길, 자전거 체인 도는 소리가 75년 전 그날의 웅장한 진격 소리처럼 귓가를 울렸다. 다시는 이 땅에 전쟁의 비극이 되풀이 되지 않도록 굳건한 자주국방의 태세를 다지는 것, 그것이 먼저 간 전우들의 희생에 보답하고 자유대한민국을 지키는 우리 군인들의 영원한 사명임을 명비(銘碑)처럼 가슴에 새기며 라이딩을 마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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