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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착(執着) 이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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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선사들의 조언 (12) 》
제목 : 집착의 대상은 사람에게 슬픔이 된다 [만화 빠알리대장경]
20241216
(아래의 링크를 복사 또는 누르세요..)
https://youtu.be/ChKMVDdannY?si=YsOm-1NuSDcStBJx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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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잘 들어보세요, 이 안에 해답이 있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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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 내용)
<핵심 내용>
이상 생략..
세존께서 말씀하셨다.
"아들이 있는 사람은 아들로 인해 슬퍼한다.
마찬가지로 소를 가진 이는 소로 인해 슬퍼한다.
집착의 (대상은) 사람에게 슬픔이 된다.
집착이 없는 사람에게는 슬퍼할 것이 없다."
이하 생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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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이뭣고]의 곁가지 김태현입니다. 😄🙏
한 주일 잘 보내셨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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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본문 내용도 어려운 단어들이 별로 없네요.^^
수행자들에게 있어서 오늘 내용의 핵심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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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행자들이 해야 할 일..>
(1)
"아.. 내가 지금 집착을 하고 있구나.."
"아.. 내가 지금 끌려들어 가고 있구나.."
하는 것을 100% 알아차리셔야 한답니다.
(2)
깨닫기 전에 사람들이 집착이 붙지 않으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지 아십니까?^^
첫째 자극적인 것들을 보지 마십시오.(眼)
둘째 자극적인 것들을 듣지 마십시오.(耳)
셋째 자극적인 냄새를 맡지 마십시오.(鼻)
넷째 자극적인 것들을 맛보지 마십시오.(舌)
다섯째 자극적인 것들을 피부에 닿게 하지 마십시오.(身)
쉽게 말해 무조건 내 마음에 영향을 주는 자극적인 것들을 멀리하십시오.
그러면 의(意)가 안 생기고 집착이 안 생긴답니다.
집착이 안 생기면 끌려들어 갈 일도 없고요.
이것이 [십이연기법]의 핵심이고 부처님 가르침이랍니다.
예를 들면 요즘 정치 문제 때문에 자극을 받고 괜히 화를 내거나 악한 말을 하거나 악한 마음을 먹는 사람들이 많잖아요?
그러니 이런 곳에 의식을 두거나 보지 말거나 듣지 말라는 것입니다.
괜히 정치인들 입 놀음에 집착을 해서 끌려들어 가지 말라는 것입니다.
그래도 자꾸 그쪽으로 의식이 가면 그냥 지켜만 보십시오.
지켜만 보는 것이 안되면 의식을 완전히 그런 쪽으로는 끊으셔야 여러분들 마음이 살수 있답니다.
무엇보다 우리들이 할 수 있는 것은 투표권 외에는 아무것도 할수 있는 것이 없는데 왜 그런 곳에 의식을 두어서 내 소중한 내 마음에 스스로 칼질을 해대고 송곳으로 찌르면서 화를 내고 악한 소리를 하십니까?
특히 수행자들은 지금 자기 마음도 하나 제대로 해결을 못하시는 분들이 괜히 이런 곳에 의식을 두어서 속상해하시면 그 마음은 어떻게 되겠습니까?
수행자들은 반드시 지금 이 내용을 마음에 새기셔야 한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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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럼 본론으로 들어가서..^^
여기서 말하는..?
↓↓↓
“나는 밥도 지어 놓았고 우유도 짜 놓았습니다.
마히 강변에서 가족과 함께 삽니다.
내 움막은 지붕이 덮이고 불을 지필 땔감이 쌓여 있으니,
“쇠파리나 모기가 없고, 소들은 습지 무성한 풀 위에서 거닐고, 비가 와도 비를 견딜 것입니다.
나의 아내는 온순하고, 탐욕스럽지 않습니다.
오랫동안 함께 살아도 즐겁습니다.
나는 그녀에 관해 어떤 악도 들은 적이 없습니다.
나는 나 자신의 벌이로 살아갑니다.
나의 아들들은 나와 함께 건강히 살고 있습니다.
그들에 관해 어떤 악도 들은 적이 없습니다.
다 자란 송아지도 있고 젖먹이 송아지도 있습니다. 또한 성년이 된 암소도 있고 소들의 대장인 황소도 있습니다.
말뚝은 땅에 박혀 흔들리지 않습니다.
문자 풀로 만들어진 새 밧줄은 잘 만들어져서
젖먹이 송아지조차도 끊을 수 없을 것입니다.
↑↑↑
이런 내용들은 간단히 말해 소치는 다니야 자신은 부자이고 모든 것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아무런 걱정 근심도 없이 잘 살아가고 있다는 뜻이랍니다.
그리고 여기서 말하는..?
["그러니 하늘이여, 그대가 원한다면 비를 뿌리려무나.”]
라는 뜻은 하늘에서 비바람과 같은 고난과 평지풍파가 몰아닥치더라도..
나는 아들과 아내와 가축 등을 가진 안정된 삶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아무리 하늘에서 비바람이 몰아쳐도 근심 걱정이 없다는 뜻이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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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어느 날 진짜로 낮은 지대와 높은 곳을 비바람들이 가득 채우면서 갑자기 큰 구름이..?
소치는 다니야의 가정에 비를 뿌렸다는 것입니다.
이 말의 뜻은 다니야의 인생에 힘들고 어려운 일들이 몰아닥쳤다는 것입니다.
우리들도 살다 보면 천둥과 비바람처럼 모질고 힘든 근심 걱정들이 휘몰아쳐 올 때가 있잖아요?
그런 뜻이랍니다.
좀 더 쉽게 말하면 일반 사람들은 소 치는 다니야처럼 인생을 잘 살다가도 갑자기 폭풍과 천둥 번개가 치면서 비바람이 몰아치는 것 같은 모질고 힘든 근심 걱정들이 휘몰아쳐 올 때가 있잖아요?
이럴 때 일반 사람들은 그대로 그 비바람 속으로 고통과 근심 걱정 속으로 끌려 들어가게 되고요?
하늘이 내리는 재앙을 그 누가 피할 수 있겠습니까?
그러나 부처님처럼 깨닫고 증득한 사람들의 마음은?
아무리 하늘이 내리는 재앙이라 하더라도 끄떡없다는 뜻이랍니다.(실제로도 그러함)
그러면서 세존께서는 지금 이렇게 말씀을 하시고 계시답니다.
"아들이 있는 사람은 아들로 인해 슬퍼한다.
마찬가지로 소를 가진 이는 소로 인해 슬퍼한다.
집착의 (대상은) 사람에게 슬픔이 된다.
집착이 없는 사람에게는 슬퍼할 것이 없다."
라고요.
그러나 우리들의 마음속 마구니(악마)는 옆에서 우리들에게 이렇게 속삭인다는 것입니다.
악마 빠삐만이 말했다.
"아들이 있는 사람은 아들로 인해 기뻐합니다. 마찬가지로 소를 가진 이는 소로 인해 기뻐합니다.
집착의 (대상은) 사람에게 기쁨의 대상이 됩니다.
집착이 없는 사람에게는 기뻐할 것도 없습니다."
라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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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충 설명>
사람들은 누구나 집착이 있지요?^^
그리고 이 집착이 우리들을 구렁텅이로 몰아넣는 경우가 많이 있습니다.
그리고 이 집착은 모든 수행자들에게 최대 적이기도 하고 풀어야 할 숙제이기도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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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들이 알아야 할 것은 모든 화(火)는 집착에서 온다는 점입니다. (진실)
이 내용은 아주 평범한 얘기 같지만 모든 수행자들에게는 알아차림 제 1 순위라고 보시면 된답니다.
"아.. 내가 지금 집착을 하고 있구나.."
"아.. 내가 지금 끌려들어 가고 있구나.."
하는 것을 100% 알아차리셔야 한답니다.
왜냐하면 이것이 안되면 아무것도 할 수가 없기 때문입니다.
"아.. 내가 지금 집착을 하고 있구나.."
"아.. 내가 지금 끌려들어 가고 있구나.."
정도만 알아차려도 수행의 3/2는 갔다고 보시면 된답니다.
왜냐하면 알아차림 자체가 이미 나는 준비가 되어 있다는 것과 같기 때문입니다.
깨닫기 전에는 알아차림 외에는 다른 방법이 없다고 세존은 말씀하셨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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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부처님처럼 깨닫고 증득을 하게 되면 마음 상태는 완전히 달라진답니다.
왜냐하면 모든 집착들이 일순간에 사라지니까요. (진실)
마음이 완전히 비워진 상태에서는 그 어떤 것도 마음에서 일어나질 않는답니다.
물론 밥도 먹고 똥도 싸고 일도 하고 하지만 그냥 하는 것이지 집착을 하거나 끌려들어 가지는 않는답니다.
물론 때로는 시빗거리도 생기고 다투기도 하고 논쟁도 하지만 그때뿐이지 그것에 집착을 하거나 끌려가지는 않는답니다.
자꾸 시빗거리가 생기고 다툼이 생기고 논쟁 거리가 생기면 아예 상대나 그 대상과 연을 끊든지 아니면 최대한 멀리하게 됩니다.
가족이나 친척들도 마찬가지랍니다.
그래서 깨닫고 증득한 사람들이 가장 멀리하게 되는 것이 시끄러움입니다.
뭐가 이러네 저러네 하면서 세상이 어떻고 저떻고 하면서 시끄럽게 하는 사람들이나 동물이나 장소는 빨리 정리를 하고 아예 멀리하게 된답니다.
깨닫고 증득한 사람들은 항상 조용한 곳에서 부처님을 따라배우거나 명상 하기를 좋아한답니다.
그래서 혼자 다니는 경우가 많습니다.
불교에서 말하는 "밑창이 빠진다." 또는 "물이 가득 든 큰 물 항아리 밑이 빠지듯 한다." 와 같은 체험을 하게 되면 반드시 이렇게 된답니다.
뭐를 해야겠다는 마음도 없게 된답니다.
그날그날 직업이 있으면 일을 하고 경전 공부나 마음 수행만을 하게 된답니다.
간혹 가족들이나 친척들이 화를 내는 경우도 있습니다.
어떻게 너는 너만 생각하느냐고요..?
그래서 깨닫고 증득한 사람들은 더욱 깊이 숨는 경우가 많답니다.
왜냐하면 무슨 말을 하든 그들에게는 이해가 안 갈 것이니까요.
깨닫고 증득을 하게 되면 무상도 같이 깨닫게 되기 때문에 자연히 이렇게 된답니다.
그래서 일반 중생들과 깨닫고 증득한 사람들과는 어울리기가 참으로 힘든 것이고요.
왜냐하면 일반 사람들의 마음은 밖에 있지만 깨닫고 증득한 사람들의 마음은 마음 안에만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깨닫고 증득한 선사들은 대부분 가족들을 등지고 혼자 떠나있는 것이고요.
왜냐하면 가족들과도 삶의 방향이 틀리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수행을 하는 도반들 외에는 다른 부류의 사람들은 가족들이라 해도 동떨어지는 생활을 하게 되는 것이고요.
물론 이것을 이해 못 하는 가족이나 친척들은 화를 내겠지요?
그러서 서로 같이하기가 어려운 것이랍니다.
이런 현상들은 다른 방법이 없답니다.
부처님도 그렇게 박에 할 수가 없었으니까요.
다행히 부처님 같은 경우는 자식들도 부처님 제자가 되어서 같이 하게는 되었지만 그것은 어디까지나 부모 자식 간에 일이 아니라 스승과 제자로서의 관계였고요.
왜냐하면 깨닫고 증득한 사람들은 세상에 뜻을 두고 사는 사람들이 아니라 마음 법에 뜻을 두고 사는 사람들이라 그렇습니다.
그래서 마음에 걸리 적 거리는 사람이나 물건이나 동물이나 그 무엇이든 있으면 버리거나 멀리하게 되는 것이고요.
그래서 깨닫고 증득한 사람들은 내려놓고 버리는데 선수랍니다.
자기 자신까지도 내려놓고 버리는 사람들인데 그 무엇인들 들고 있겠습니까?
그래서 오늘 부처님 말씀처럼 내려놓고 버리면 집착할 것도 없게 되니까요.
이쪽 세계가 바로 그런 세계이고 오늘 내용도 바로 그런 내용이랍니다.
(끝..🤗🙏🏻)
오늘은 여기까지 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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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록)
오늘 내용과 같은 내용이 있어서 부록으로 올려 보는 것인데요.^^
지금은 돌아가셨지만 법명만 대면 불자라면 누구나 거의 다 알만한 어느 크게 깨달았다고 하는 한국 스님과 남방불교에서는 아주 유명한 어느 스님과의 일화랍니다.
어느 날 남방불교 스님이 한국에 방문을 했었던가 봐요?
하루는 한국에 깨달았다고 하는 스님이 남방불교 스님을 초청을 해서 선문답을 나눈 내용을 오늘 내용과 비교해 보려고 하는데요.
그날 한국 스님이 사과 하나를 손에 쥐고 내밀면서 남방불교 큰 스님에게 이렇게 물었다고 합니다?
(한국)
"이것이 무엇입니까?"
(남방)
"사과 입니다"
(한국)
"틀렸습니다. 이것은 사과라고 이름 붙여진 무상한 것일 뿐 이것도 저것도 아닙니다. 스님은 방금 사과라는 이름에 집착을 하셨고 끌려오셨습니다."
했다는 식으로 말을 했다는 것이에요?
그래서 남방 불교 큰 시님이 아무 말을 안 했다는 것인데요.
저는 개인적으로 유튜브를 통해 이 내용을 보면서 나도 모르게 속으로 혀를 찬 적이 있었답니다.
왜냐하면 이 한국 스님이 한국 불교 망신을 혼자서 다 시켰기 때문입니다.
더 기가 막혔던 것은 해설자가 하는 말이?
이 한국 스님이 남방 불교 큰 스님 입을 막았다는 식으로 해설을 하기에 더 기가 막혔었는데요.
불교에서 말하는 [집착]이나 [끌려들어 가다]라는 표현은 [마음 상태]를 뜻하는 것이랍니다.
내 마음이 어떤 대상에게 집착을 하고 있느냐? 아니냐?
내 마음이 어떤 대상에게 끌려들어 가 있느냐? 아니냐?
라는 것입니다.
이 스님처럼 세상의 편의를 위해 만들어 놓은 이름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이 스님 말씀처럼 손에든 사과가 사과가 아니라 한다면 이 스님은 그냥 굶어 죽어야지 아무것도 하지 말아야 한답니다.
왜냐하면..
예를 들어 이 스님 말씀 대로라면 식당에 들어가서 어떻게 주문을 하겠습니까?
"된장국 주세요."
그러면 자기도 된장국이라는 이름에 끌려들어 가는 것이 되는데요?
그렇지 않겠습니까?
이 큰 스님 말씀대로 세상에 지어 놓은 모든 이름들이 집착의 대상이고 끌려들어 가는 대상이라면 남방 불교 큰 스님처럼 자기도 세상에서 지어놓은 이름들을 쓰지 말아야 하지요.
그렇지 않겠어요?
이 스님 말대로 하면 이 스님은 물건을 살 때에도 돈 계산도 해서는 안 된답니다.
왜냐하면 만약에 이 스님이 마트에서 만 원짜리 물건을 사고 있다면 자기도 만 원이라는 상에 끌려가는 것이 되니까요.
그렇지 않겠습니까?
"나는 김태현이다"
그러면 그냥 나는 김태현이지 내가 김태현이라는 이름에 끌려가는 것은 아니지 않습니까?
이런 것을 가지고 태어나기 전에는 김태현이라는 이름은 없었다느니 하면서 말꼬리르 물고 늘어지는 것이 선문답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그냥 모든 이름들은 편의상 붙여진 이름이랍니다.
하늘이라는 이름도 그렇고
땅이라는 이름도 그렇고
자동차라는 이름도 그렇고
비행기라는 이름도 그렇고요.
그냥 편의상 붙여진 이름들이랍니다.
누가 이런 이름에 집착을 하고 애착을 하고 끌려들어 가는 사람들이 있겠습니까?
여러분들도 친구나 자녀 이름을 부를 때 그냥 부르지 마음에 집착을 하거나 끌려들어 가면서 부릅니까?
이런 말도 안 되는 이런 것을 가지고 유치하게 선문답으로 적용을 시켜서 말장난을 하시면 안 된다는 것입니다.
항상 어른들끼리도 만나서 법담을 나눌 때에는 용왕의 딸 용녀의 예가 아주 좋은 예라 할 수 있답니다.
그 자리에 모인 여러 지역의 스승들이 한자리에서 만나 서로 대화를 나누는 내용들을 한 번 보십시오?
먼저 건강부터 묻지 않던가요?
그리고 그 지역에서는 수행자들이 얼마나 열심히 하고 있고 또 어떤 결과들을 내고 있는지?
수행을 가르치거나 하는 데에 있어서 불편한 점들은 없었는지?
그리고 또 수행을 가르치거나 하는 데에 있어서 좀 더 나은 방법들은 없었는지?
등을 어른들끼리 만나서 서로의 정보를 주고받으면 얼마나 좋겠습니까?
저라면 외국에서 온 큰 스님에게 수행이나 수행자들에 대해서 물어볼 것들이 엄청 많을 것 같습니다?
그런 자리에서 한국의 큰 스님이라는 사람이?
그런 귀한 손님을 초대해 놓고 자기 손에 든 이것이 무엇이냐? 하는 것이 말이 되느냐 이겁니다?
아만심도 이런 아만심이 또 어디 있겠습니까?
물론 다 그런 것은 아니지만 이것이 현재 한국 불교의 수준이라는 것입니다.
선문답으로 승패를 가르려는 그 못된 버릇 말입니다.
선문답 같은 것으로 상대를 찍어 누르려고 하는 그런 못된 버릇 말입니다?
아시는 분들은 잘 아시겠지만 2년마다 열리는 [세계불교도 대회]라는 것이 있는데요?
거기서는 선문답 같은 것은 쳐주지도 않는답니다.
그곳에 참석했던 한 스님의 얘기로는 차마 이 자리에서는 창피해서 말도 못 할 지경이고요.
그 남방불교 큰 스님이 본국에 돌아가서 주변 스님들과 얼마나 흉들을 보았을까요?
그리고 이런 유치한 선문을 받고도 이렇다 저렇다 말 한마디 안 하고 침묵을 유지하는 그분의 마음이야말로 마음 법의 대가라 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실제로 마음자리를 아는 사람과 모르는 사람과의 차이가 이런 대에서 차이가 나는 것이랍니다.
왜냐하면 본인이 마음을 비워 봤어야 내가 어떤 대상에 집착을 하거나 끌려들어 가고 있는지를 알 수가 있기 때문입니다.
그렇지 않겠습니까?
내가 지금 마음이 비워져 있어봐야
"내가 예전에 집착을 하고 있었구나.."
"내가 이리저리 끌려다니고 있었구나.."
하는 것들을 알 수가 있지 않겠어요?
마음을 비워보지 못한 사람들은 늘 그래 왔었기 때문에 내가 지금 집착을 하고 있는지? 이리 끌려다니고 저리 끌려다니는지?를 이 스님처럼 모르지 않겠어요?
이런 것을 불교에서는 무명(無明)이라 하는 거랍니다.
그래서 여러분들이 지금 하셔야 할 것은 다른 것이 아니라..
"아? 내가 지금 집착을 하고 있구나?"
"아? 내가 지금 어떤 대상에 끌려 들어가고 있구나?"
하는 것을 먼저 알아차려야 한다는 것입니다.(※중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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끝으로 여기에 대해서는 예전에 했던 것이지만..
부처님께서도 [선문염송]에서 건달바와 가섭의 춤을 놓고 이런 이야기를 하셨답니다.
[가섭은 지금 춤을 추고 있는 것이 아니다]
라고요.
오늘 내용과 같은 내용이랍니다.
가섭은 지금 그냥 춤을 출 뿐이지 춤에 대한 집착이나 춤에 끌려들어 가는 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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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 獻樂
世尊 因乾闇婆王 獻樂 其時 山河大地 盡作琴聲 迦葉 起 舞 王 問佛 迦葉 豈不是阿羅漢 諸漏已盡 何更有 餘習 佛云 實無餘習 莫謗法也 王 又撫琴三偏한대 迦葉 亦三度作舞 王云 迦葉 作舞 豈不是 佛云 寔不會作舞 王云世尊 何得妄語 佛云 不妄語 汝撫琴 山河大地木石 盡作 琴聲 豈不是 王云是 佛云 迦葉 亦復如是 所以 塞不 會作舞 王乃信受
건달바왕이 부처님께 음악의 공양을 올리니, 그 때 산천과 대지가 모두 거문 고의 소리를 내었다. 이에 가섭이 일어나서 춤을 추니 건달바가 부처님께 묻되 "가섭은 큰 아라한으로서 모든 번뇌가 다하였아온데 아직도 저런 습기가 남았습니까?" 하니, 부처님께서 "남은 습기가 없다. 공연히 법을 비방하지 말라" 하셨 다.
이에 왕이 다시 세 곡의 거문고를 탔었는데, 가섭이 또 세 차례 춤을 추니, 왕이 묻되 "가섭이 춤을 추는 것이 사실이 아닙니까?" 부처님이 대답하시되 "춤춘 일 이 없느니라" 하셨다.
이에 왕이 다시 묻되 "세존께서는 어찌 거짓말을 하십니까?" 하니, 부처님이 대답하시되 "거짓말을 하지 않았다. 그대가 거문고를 탔으니 산천과 대지와 목석 이 모두 거문고 소리를 내는 것이 사실이 아니냐?" 하셨다.
이에 왕이 "그러하옵니다" 하니, 부처님께서 말씀하시되 "가섭도 역시 그러니라. 그러기에 춤을 춘 일이 없느니라" 하시니, 건달바왕이 믿어 받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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