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현경 시인이 2016년 3월 28일 시로 등단한 이후, 첫 번째 시집 “허밍은 인화되지 않는다”는 2018년 7월 7일, 두 번째 시집은 2019년 9월 19일, 그리고 제3 집 “나무의 시계”는 2024년 6월 27일 출간했다.
제3 집은 제2 집 출간 후 거의 5년이 흐른 후에야 출간하게 된 것은 상념이 충분히 익지 않다는 이유로 차일피일 미루다 보니 이렇게 늦었다고 한다. 시인으로서 작품을 강호제현들에게 내놓을 때는 시인이라는 이름에 걸맞은 작품이 되어야 한다는 시인으로서의 소신이라 여겨진다.
미국 시인 W.H.Auden은 현대 시를 다음과 같이 진단한다.
“왜 당신은 시를 쓰려하오?’라는 질문에 ‘나는 말하고 싶은 중요한 것을 가졌기 때문이다’라고 대답하면 그는 시인이 아니다. 만약에 나는 말이 이야기하는 것을 귀담아들으면서, 말을 따라다니기가 좋아서라고 대답한다면 그는 아마 시인이 될 것이다.”
김종길 시인은 그의 詩論에서 “확실히 언어의 신비, 언어에 대한 애정에 눈뜨는 것, 이것이 시인으로서의 출발이 솔직한 사정이다.”라고 피력하고 있다.
‘나무의 시계’ 해설을 맡은 중견 시인 마경덕의 해설 한 부분을 인용하면,
“이현경 시인의 시그니처는 ‘흙’이다. 사각의 프레임으로 정형화된 도시는 온통 시멘트로 포장되고 ‘흙’을 딛고 살던 그때가 그리운 시대, 도시화된 우리는 수많은 선택 앞에서 답지 안에 답을 적고 그 선택을 원치 않는 타인과 갈등하며 살아간다.
흙담처럼 자연 친화적인 시들은 현대인의 메마른 감성을 자극한다. 무엇보다 관찰자적인 시선이 자연을 톺아보고 서사를 재현하며 위로를 주고받는다. 구체적이고 섬세한 언어로 자연을 구성하는 요소들이 무엇인가를 깨닫게 하는 ‘나무의 시계’는 곧 우리 ‘모두의 시계‘인 것이다.
이현경 시인의 시를 읽어 보면, 감각적인 언어를 구사할 뿐 아니라, 인간 내면의 잠재의식을 되살리려는 의도가 보인다. 김종길 시인이 말한 것처럼 그의 시는 언어의 신비, 언어에 대한 애정이 깊게 담겨 있음을 볼 수 있다.
이러한 시에 대한 철학이 이현경 시인으로 하여금 시집을 조기에 내지 못한 이유가 된 것으로 보인다. 즉 시는 시다워야 한다는 의식이 계속 이현경 시인의 잠재의식 속에 들어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이현경 시인의 제3 집은 총 4부로 구성되어 있는데, 4부는 ‘숲을 열고 나온 나무’라는 독특한 이름을 붙여 놓았다. 이는 시인의 시그니처가 흙이라고 마경덕 해설인이 말했듯 숲 역시 자연 친화적이라고 한 것과 일맥상통한 것으로 보여 그렇게 작명한 것이 아닌가 여겨진다. 수록된 시는 총 94편이다.
이 시집의 표제 시를 소개한다.
나무의 시계/이현경
숲을 열고 나온 나무
선명한 무늬로
커피숍 조명 아래 있다
생의 여정을 보듯 톱날에 잘린 살갗의 무늬
겉을 벗겨보면
아직 눈물이 남아있을까
초록의 탑이 멈추어버린 나무의 시계
아픔의 면적이 넓다
물을 부어도 푸르게 일어서지 못하고
숲으로 달려가고 싶었을 너는
길게 외로웠을 것이다
탁자와 나의 간격은 가까워지고
스며든다, 너에게
내 마음과 같아서 물끄러미 바라보다가
손바닥 온도로 교감하며
너의 거처에서 아픔을 어루만진다
차라리 세밀하게 보지 않았다면
이야기를 모으는 하나의 탁자였을 텐데
너는 끝나지 않은 물음표
과거에서 먼, 흙이 부른다
시니어들에게도 '꿈이 있다면 이제는 마음껏 펼치라'고 말하고 싶다. 십여 년 전 99세의 일본인 시바타 도요(1911 - 2013)가 "약해 지지마"라는 시집을 내어 150만 부가 팔리는 초 베스트셀러가 되었다는 글을 읽은 적이 있다. 그녀는 92세에 처음 시를 쓰기 시작하여 7년 후에 위의 시집을 출간하게 되었다. 시바타 도요 할머니는 초고령 사회를 피하지 않고 정면으로 당당하게 맞서 스스로의 길을 일구어 나갔다는 의미에서 더욱 가치가 있다고 생각한다.
이현경 시인도 도요 할머니처럼 나이에 구애받지 않고 자연 속에서 큰 나무가 되어 시를 품고 살아갔으면 하는 바램이다.
내가 제 3 집을 읽으며 느낀 것은 시들이 다 훌륭하지만 그중에서도 나의 가슴에 깊게 남아있는 작품은 ”작은 배 하나“라는 시이다. 이제 그 시를 소개한다.
작은 배 하나/이현경
싱싱한 꽃그늘이 멈춘 저녁
저편, 기다림을 가득 담고
수변에 작은 배 하나 묶여있네
바람이 배를 건드릴 때마다
풍속만큼 밀려갔다 다시 돌아오네
묶여있는 시간을 풀지 못하는 적막한 고립이네
갈증을 느낀 별빛이 물면에 떨어지면
작은 배 하나 외롭지 않네.
풍경 속 고요로 있다가
기류에 조각조각 난 물면이 구슬피 번지네
네 가슴에 다가온
슬픈 파란처럼 번지네
나는 이 시가 어쩌면 김소월의 산유화와 비견될만한 시라는 생각이 들었다. ”....산에서 우는 작은 새여 꽃이 좋아 산에서 사노라네....“에서 작은 새와 작은 배가 짝하는 것처럼 보였다. 시어 중에서 ‘싱싱한 꽃그늘’, ‘적막한 고립’, ‘기다림을 가득 담고’ 등의 시어는 탁월한 메타포라는 생각이 들었다..
제3 집을 내신 이현경 시인에게 큰 축하를 드리고 앞으로도 우리나라 시의 지평을 크게 넓혀 한국 시의 거목으로 성장하길 기대해 마지않는다.
첫댓글 회장님,
수고 많으셨습니다 ㆍ
잘 담아주셔서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ㆍ
더 좋은 글로 보답하겠습니다 ㆍ
이현경 시인님
세번째 시집 출간을 축하드립니다
앞으로 더욱 좋은 시
쓰시기를 기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