왼쪽 유지열선교사목사님 오른쪽 중부연회 前감독 전명구목사님
5일
만나’(Manna
for five days) (678)
무치스크교회 건물이 완공되기까지…… ⑪
러시아의
복음의 문이 열리고 신학교 미 필 목회자들의 교육의 필요성이 대두되어 러시아감리교신학교에서 목회자반을 모집하여 교육하기 위하여 신학생들을
모집했다.
이
복음의 소식을 듣고 모스크바 시 근교 위성도시에서 목회를 하는 전도사들이 입학을 하였는데 모스크바에서 450km
덜어져 있는 스몰렌스크 주에서, 400km 떨어진 아레오주 무친스크시에서 온 학생들도
있었다.
스몰렌스크에서 온 바울은 신학교를 졸업하고 목사안수를 받아 계속 목회를 하면서 교단 설립 당시 교회등록을 시켜서 한
몫을 하였고, 교단 선교국장을 역임하며 크게
활약하였고, 금란교회에서
실시한 ‘세계감리교대회’에도 러시아 RMC 대표 일행 4명(유지열감독, 바울선교국장, 최화순이사장, 황 뽀리나 평신도표)으로 참가할 때 함께 와서 한국교회를 돌아보고 귀국하여
계속 사역하고 있다.
모스크바에서 360km 떨어진 무친스크에는
고르바또프와 드미트리가 성경공부 그룹을 하면서 신학교육을 받으며 그들의 요청에 의해 기차를 타고 함께 가서 무친스크교회를 개척하여 고르바또프를
담임전도사로 임명하였다. 러시아의 침례교는 고난의 시기에도 믿음을 지켜온 뿌리가 깊은 교단이고, 오순절교단도 함께 고난을 당하면서 믿음을 이어 온 양
교단이 존재하여 서방세계선교에 밑 거름이 돼 주었다.
그 중에
고로바또프전도사는 온 가족이 침례교회 성도들이라 아내의 반대로 도중하차를 하여, 알렉세이를 전도사로 목회하면서 자체건물 구입을 알아보니 시청으로부터 약 100m 떨어진 곳에 적당한 건물이 매물로 나와
감리교신학교에 강의 차 온 단양교회 임재선목사와 장로님이 함께 단기선교로 와서 무친스크지역을 돌아보고 건물 구입을 의뢰하였더니 한국에 돌아가서
단양교회 명의로 대지와 신축건축을 해 주겠다는 기쁜 소식이 왔다.
Ⅰ.
대지 구입에 일어난 에피소드
단양교회에서 보내온 10,000$를 루불로
환전하니 거금인데 최화순통역을 대동하고 가서 공증서류를 하는데 외국인의 명으로는 안 된다고 고집을 보려 하는 수 없이 어차피 현지인들에게 넘겨야
할 재산이라 알렉세이 명의로 대지구입을 마치고 매매대금을 주었더니 매매자가 거액을 받기에 벅차니 은행에 직접 가서 위폐를 확인하는 수순을 밟게
돼 은행에 도착하니 은행직원이 비상을 내려 은행에 들어 온 고객들을 모두 내 보내고 문을 걸어 놓고 약 1만 불로 환전한 루불을 한 장 한 장 위폐 여부를
확인하고 근 한 시간이나 소요해서 마치고 그제서야 은행 문을 열고 정상근무를 하는 모습을 보면서 당시에 보안이 얼마나 허술한가를
직감했다.
Ⅱ.
건축상의
에피소드
러시아감리교단에 첫 번째 건물을 마치고 두 번째 건물은 동해교회 임홍만목사가 신학교 강의로 왔다가 뽀바로붜교회를
방문하여 영화관을 임대하여 사용하는 것을 보고 안타까운 마음이 감동받고 동해교회가 후원하기로 작정하고 돌아가 불타고 뼈대만 남아 흉하게 보이는
건물이 나와서 구입하고 도우미들을 동원해 건축을 하는 동안 80km 거리를 매일 출퇴근 하면서 자재공급과 감리를 겸하여 완공하기 까지 즐거운 고역을 기쁘게
치렀다.
단양교회에서 한국으로 알렉세이 담임전도사를 초청하여 약 1개월간 머무르면서 성도들과 교제도하며 친교를 하고 돌아와 얼마 후에 건축비를 보내왔기에 무친스크교회 건물은 담임자인
알렉세이가 건축과를 나왔다며 3만 불을 보내주면 책임시공을 하겠다 기에 필자도 숄코바 건축과 뽀바로붜 건축에 진이 빠졌을 뿐만 아니라 거리도 멀어
고민하던 차라 신임하고 그에게 맡겼다. 건축비는 순차적인 건축공률에 따라 대금을 분활 지급한다는 계약서를 작성하고, 기공식을 마치고 매 주 달려가 공정을
살펴보았다. 기초공사를
마쳤다는 보고를 받고 가서 보았더니 건축금액에 비해 엄청나게 크게 지하를 팠기에 건축비에 어려움을 직감하고 줄여서 기초를 쌓으라고 했더니
알렉세이가 대금 3만
불만 주면 완공하겠다며 강권하기에 2차 공사비를 지급하고 내려가 외벽공사를 지켜보는데 진도가 올라가지 않아 독촉을 하였으나 진도가 나가지 않아 단양교회에
건축이 늦어져 봉헌식을 연기하자 부탁을 했더니 최초 약속한대로 봉헌식 준비를 위해 오겠다니 난감했다.
수시로
내려가 독촉을 하며 한국 후원교회에서 봉헌식을 예정대로 하러 온다며 시기에 맞추어 건축이 진행되기를 기다렸으나 봉헌식 날짜를
10여일 앞두고 건축은 고사하고 목회도 그만 두겠다니 난감할 수
밖에! 단양교회에
연락하고 알렉세이전도사에 아내와 모친을 찾아서 권면해 보았으나 본인이 거부하니 다른 방법이 없어 단양교회에 연락을 해 건축공사가 지연되니 차후에
연락해서 봉헌식을 하자며 지연을 말했으나 이미 준비된 모든 진행을 미룰 수 없다는 것이다.
별도리가
없어 신학생들을 차에 싣고 내려가 건축의 무지한 그들에게 무엇을 기대할 수 없어 서울에서 연마한 건축기술을 발휘하여 자재구입과 벽돌 쌓기를
마치고 이미 지붕 철골은 완성했기에 지붕공사를 마치고 루핑을 덮고 스레트도 못 덮고 창문도 못 달고 위에서는 햇빛이 루핑 사이로
밝혀주고, 창문 틀로는 바람을 통행을 막지도 못한 채 단양교회
임재선목사와 장로님들 일행을 맞아 봉헌예배를 드렸다.
나중에
안 일이지만, 담임자 알레세이는 인근 타 교단의 건물에 비해 초라한
건물로는 안 되기에 한국사람들은 저지르면 다 해준다는 타 지역 경우를 들어 지역에 걸 맞는 건축을 하려고 이지경이 되었으니 담임목사의 믿음이
유감독의 믿음보다 커서 여기까지 으르렀으니 앞으로 완공하기에는 약
2만 불이 더 요구되는데 단양농촌교회에서 큰 일을 하셨는데 금액을 요청하기도
어려우니 제가 1만
불을, 단양교회가 1만 불을 감당하자고 염치 없이 부탁을 하고 돌아왔다.
단양교회도 어렵겠으나 선교사인 내가 어떻게 1만
불을 감당할까? 고민하며
시간은 지나가는데 마침 모스크바중앙교회 예배에 참석했던 한국여행객 중에서 나의 광고를 듣고 예배를 마치고 돌아가다가 한 분이 다시 돌아와서
‘선교사님! 그 건축비 제가 헌금하면 안
되겠습니까?’ 무명으로 해 달라는 부탁과
더불어 1만 불과 어려운
교회 운영에 5천불을
함께 보내줘서 하나님이 보내주신 천사를 통해 내 몫의 건축비와 도우미들을 관리하는 경비로 감사히 받았다. 마침 이때에 한국으로 가려고 찾아 온 도우미들이 건축의
마무리를 해주어 건축비는 단양교회에서 요청한 금액을 더하고도 부족하여 필자가 한국에서 자녀들을 통해 차용해 와서 일단 공사를 마칠 수
있었다.
Ⅲ.
건축비 충당의
에피소드
해외 선교사들의 고민은 건축비의 후원과 실제 공사 사이에는 너무도 차이가 나서
현지인들에게 맡겨서 건축하기가 어렵다. 인건비 절약을 위하여 때 맞춰
찾아 온 도우미들을 360km까지 가이들의 눈을 피해 싣고 가서 주중에 건축을 마무리 하려니 건축비의 부족한 부분은 자녀들에게 차용해 보내줘서 일
단 공사를 완공시켰다.
전명구감독을 통해 중부연회여선교회연합회(회장 이옥순권사)에서 2차 봉헌식을 하면서 감당해주었지만,
부족한 부분을 인천대은교회에서 맡아 줘서 완공하니 교단 내에 유일한 종교시설건물로
십자가를 높이 세워 교회 건물답게 아름다운 건축을 마칠 수 있었던 것은 이 공사를 크게 계획한 알렉세이목사의 믿음의 작품이고 그 뒤치다꺼리는
유선교사 매주 숄코바에서 새벽예배를 마치고
360km를 달려 밤낮 없이 뛰었고, 여러 명의 도우미들의 헌신의
결과물이다.
2001년 필자의 심장제세동기를 수술하면서 치료비에 남은 비용으로 선교지로 돌아와 구입한 현대액센트는 뽀바로붜교회 건축과
무친스크교회 건축을 하는데 큰 몫을 감당해 주었지만 먼 거리를 직접운전을 하며 오가는 도중에 얼마나 고장으로 어려움을 당했나?
폐차 직전에 이른 승용차를 보면서 주님을 태운 나귀새끼를 생각하며 나와 같이
하나님께 영광에 쓰임 받은 은혜를 감사했다.
◈
무친스크교회가
이루어 지기까지에는
무친스크교회 총 공사비 86,228$ 중 단양교회 47,988$,
무명씨 10,000$, 중부연회 여선교회(이옥순권사) 16,670$,
인천대은교회 26,573$의 후원으로 이뤄졌고 건축은 많은 이탈주민들의
수고했다.
2016, 6, 5
첫댓글 감격 감동합니다.